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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날이 무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면서 지난 주일에 선포한 하나님의 영광 신학을 생각하며 다음 글을 묵상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영광> 하나님은 모든 존재들 가운데서 ‘타고난 영광’ 혹은 ‘고유한 영광’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없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그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창조되기 전부터 그분은 영광스러운 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유의 영광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의 영광은 주어지는 것이다. 만일 왕의 옷과 왕관을 벗기고 그를 깨끗이 목욕시킨 거지 옆에 둔다면, 아마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될 것이다. 왕과 같은 사람의 영광은 외적이고 후천적으로 습득한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본성에 포함된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없앨 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다. 줄어들 수도 없는 온전한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행전 7장 2절에서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으로 불린다(시29:3에도 한 번 더). 태양이 빛나는 것처럼, 하늘이 푸른 것처럼, 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당신이 물을 축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물은 원래 축축하다. 당신이 하늘을 푸르게 만들거나 태양이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본성이 그런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없앨 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누어주거나 함께 나누지 않으신다. 이사야 48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복, 지혜, 부, 명예를 주시지만 자신의 영광은 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본질을 벗어버리시겠는가? 그분은 신자들 안에 자신의 영광을 심어두지만, 결코 그것이 자신에게서 떠나게 하지 않으신다. 영광은 우리의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이며, 우리를 통해 나타날 뿐이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성령의 사람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맥아더의 <예배>, 246-247쪽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위선자가 될 수 없다. 위선자는 고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려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영광을 취하려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1-2절에서 그런 위선자들을 질책하신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고자 할 때에는 절대로 우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할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을 가르치든, 간증을 하든, 기도를 하든, 헌금을 하든, 죄를 꾸짖든, 다른 어떤 선한 일을 하더라도, 우리의 동기가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켜 개인적으로 칭찬받기 위함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노력에 진실로 복을 주실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약간이라도 훔치려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과 기쁨을 빼앗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은 곧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참된 예배자는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그것을 인해 얼마나 돈을 벌게 될지, 얼마나 성공할지, 얼마나 큰 명성을 얻을지, 얼마나 많은 친구를 얻을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적으로 보일지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는 고독한 일이다. 참된 예배는 인기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맥아더의 <예배>, 255-256쪽
2025-07-30 14:10: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다음은 유튜브 영상 <이건 종교인가, 속박인가? 절대복종해야만 하는 아미시 마을의 실체 #BBC>를 요약한 글입니다.    이건 종교인가, 속박인가? 절대복종해야만 하는 아미시 마을의 실체 #BBC   자신의 교회나 목사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고 성경대로 바르게 믿고 살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5장 7-9절 7 너희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대해 잘 대언하였도다. 그가 이르되, 8 이 백성이 자기 입으로는 내게 가까이 오며 자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있고 9 오히려 그들이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며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혹시 지금까지 우리의 믿음 생활, 교회 생활 가운데 사람의 전통이나 규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또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런 좋지 않은 사례들이 있나 점검하고 혹시 발견되면 집사나 지역 인도자 등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 종교와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1. 아미시 공동체와 에프라임 가족의 이야기   미국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곳에 시간이 멈춘 듯한 아미시 마을이 있다. 이곳 주민들은 300년 전 정착한 조상들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엄격한 규칙 속에서 소박한 농업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 전기를 사용하거나 자동차를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규칙을 어기면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하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되는 가혹한 벌을 받는다. 이러한 벌 때문에 많은 아미시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의 아미시 교파 중 하나에 속한 에프라임 슈츠퍼스는 아내 아만다와 세 자녀와 함께 농장을 운영하며 아미시의 생활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그는 아미시의 규칙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아미시 사람들은 규칙이 성경에 나와 있다고 믿지만, 옛 독일어로 된 성경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지도자들의 뜻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규칙에 대해 에프라임은 성경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에프라임은 영어로 된 성경을 읽으면서 모자의 폭이나 멜빵 매는 방식 등 수도 없이 많은 규칙들이 교회와 문화를 결합한 것이며,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특히 죽음에 대한 가르침, 즉 아미시의 규칙을 모두 지켜야만 천국에 갈 수 있고 규칙을 어기면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는 믿음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성경을 읽은 후 그는 아미시의 규칙 준수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게 되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이러한 믿음의 변화로 에프라임과 아만다는 아미시의 핵심 가치인 농장을 팔았고, 외부 세계의 죄악을 끌어들인다고 여겨 집안에 둘 수 없었던 전화기를 작업장에 설치하고 급기야 무선 전화기를 집안에 두기 위해 중고차 배터리를 이용한 임시 전력 장치를 만들었다. 이는 마을 원로들의 모임에서 모든 규칙을 결정하고 어긴 사람을 벌하는 아미시 주교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에프라임과 그의 친구 제시는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영어 찬송가를 부르며 신앙을 키웠는데, 이러한 행동은 아미시 교회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에프라임과 아만다는 이미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언급한 대가로 파문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아미시 생활 방식은 지키면서 마을을 떠나지 않고 아미시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설득하려 했. 파문은 간음, 살인 등 심각한 죄와 동등하게 취급되었으며, 공동체의 안전망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척당하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제시는 교회 원로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밝혀 파문되고 배척당했다. 에프라임과 아만다는 농장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새 집을 사려 했으나 자신들의 새로운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그 돈 전부를 기부했다.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을 통해 힘을 얻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딸 마리가 갑자기 고열로 쓰러져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들 가족은 큰 시련을 맞았다. 하루 병원비가 3천 달러(약 400만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모든 저축을 기부한 이들은 자력으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미시 공동체가 이들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파문당한 에프라임 가족을 피했던 가족들과 이웃들이 잔디를 깎고 청소를 하며 요리를 대신 해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 아미시 공동체의 회계사로 일하는 에프라임의 처남 덕분에 아미시 공동체의 의료 지원 제도에 예외적으로 포함되어 병원비 80%를 지원받게 되었다.   에프라임은 딸의 아픔을 통해 자신들을 쫓아냈던 아미시 공동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딜레마를 겪었지만,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것은 아미시의 신앙이 아닌 새로운 신앙이었다. 에프라임은 여전히 어느 교회에 나갈지 정하지 못했지만, 마차를 타고 다니는 등 아미시의 일부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딸 마리는 항암 치료를 계속 받고 있고, 아만다는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전통과 규칙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넘어선 개인의 신앙과 공동체의 역설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2. 종교적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의 위험성과 피하는 방법   에프라임과 제시 가족이 아미시 공동체 내에서 경험한 상황들을 통해 종교적 통제나 압박이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심리적 영향과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자료의 내용은 종교적 권위가 개인의 믿음과 판단을 억압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1. 종교적 통제와 압박의 위험성 (자료에서 유추된 '가스라이팅'과 유사한 경험):   • 맹목적인 순종 강요와 비판적 사고 억압: 아미시 공동체는 지도자들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며,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에프라임이 "성경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때, 이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환경은 개인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막고, 오직 공동체의 해석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여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   • 죄책감과 두려움 주입: 아미시 사람들은 교회가 정한 규칙을 모두 지켜야만 천국에 갈 수 있고, 규칙을 의심하거나 어기면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고 믿게 한다. 에프라임은 이 믿음 때문에 한때 장례식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개인에게 지속적인 죄책감과 죽음, 심판에 대한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심어주어 심리적으로 속박할 수 있다.   • 사회적 고립과 배척의 위협: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파문당하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되는 벌을 받는다. 파문당한 사람들은 공동체의 긴밀한 유대와 안전망(이웃의 도움, 의료비 지원 등)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은 개인이 자신의 믿음이나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 어렵게 만들며,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믿음을 숨기거나 포기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 개인의 가치와 신념 왜곡: 아미시 교회는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사소한 규칙들(예: 모자 폭, 멜빵 매는 방식)을 성경적 진리와 동등하게 취급하며, 이를 어길 시 파문이라는 중징계를 내린다. 이는 개인의 종교적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을 혼란스럽게 하고, 진정한 영적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에프라임은 심지어 성경 공부가 간음이나 살인과 같은 죄와 동등하게 취급되어 파문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2. 종교적 압박을 피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방법   • 성경에 대한 독립적인 탐구와 이해: 에프라임이 영문 성경을 읽으면서 그동안 배운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핵심인 성경과 교리를 스스로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외부의 왜곡된 해석이나 강요된 믿음에 저항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 의문 제기와 비판적 사고 유지: 에프라임은 아미시의 생활 방식에 따르면서도 규칙에는 의문을 품었고, 교회의 결정이 성경의 말씀에 어긋난다고 생각될 때 진리를 위해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가르침이나 규칙에 대해 건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자신의 양심과 믿음에 따른 선택: 에프라임과 아만다는 파문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성경 공부를 계속하고, 심지어 농장을 팔아 모은 평생의 재산을 기부하는 등 자신들의 새로운 믿음을 실천했다. 이는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양심과 내면의 확고한 신념을 따르는 용기를 보여준다.   • 지지 공동체 및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 에프라임은 제시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찬송가를 불렀으며, 파문된 다른 아미시 사람들이 에프라임 가족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자신의 믿음과 가치를 존중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찾거나, 같은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고립감과 싸우고 정신적 지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지: 에프라임은 딸의 투병이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힘을 느낀다"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궁극적인 진리와 사랑에 대한 믿음은 외부의 통제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3. 요약 이번 자료는 맹목적인 종교적 규칙 준수를 강요하고 이탈 시 심한 고립을 주는 공동체의 위험성을 보여주며, 이에 맞서 개인의 믿음과 판단을 지키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성경 탐구, 비판적 사고, 양심에 따른 용기 있는 선택, 그리고 상호 지지적인 공동체와의 연대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2025-07-28 11:11:12 | 관리자
2025.7.27 침례받으신 31분의 형제, 자매님들 축하드리고 축복합니다.   연수구에서 오시는 유양현 자매님     연수구에서 오시는 오진선 자매님     수원에서 오시는 김은정 자매님     만수동에서 오시는 곽계화 자매님     군산에서 오시는 김태연 자매님     서창동에서 오시는 주경화 자매님     송도에서 오시는 이제희 자매님     광명에서 오시는 양명숙 자매님     평택에서 오시는 최혜승 자매님       평택에서 오시는 정하진 자매님     분당에서 오시는 조명희 자매님     인천남동구에서 오시는 길나연 자매님     서울 구로구에서 오시는 정영옥 자매님     서울 강북구에서 오시는 엄진숙 자매님     인천 중구에서 오시는 정혜림 자매님     서울 종로구에서 오시는 진예원 자매님     서울 금천구에서 오시는 이영자 자매님     서울 마포구에서 오시는 유재학 형제님     인천 연수구에서 오시는 오연호 형제님     전북 군산에서 오시는 김기봉 형제님     안산에서 오시는 이상식 형제님     서창에서 오시는 박응신 형제님     안산에서 오시는 이동훈 형제님     시흥에서 오시는 진유광 형제님     서울에서 오시는 정한식 형제님     성남에서 오시는 한성재 형제님     분당에서 오시는 한경민 형제님     안산에서 오시는 윤길도 형제님     광명에서 오시는 박능출 형제님     인천 연수구에서 오시는 김승현 형제님     대전에서 오시는 안지환 형제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성도님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더하여 침례를 진행하는데 보이지 않는곳에서 항상 힘써주시는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5-07-27 18:32:28 | 관리자
안녕하세요?  7월 4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1. 바울이 어디에서 무의식 상태로 기도하다가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나? (행 22장)  성전 안(17절)  2.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듣고 성채로 들어가 바울에게 이른 사람은? (23장)  바울의 누이의 아들(16절)  3. 벨릭스 총독과 아내 드루실라에게 바울이 강론한 것들은? (24장)  의와 절제와 다가올 심판(25절)  4. 베스도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을 받으라고 제안한 이유는? (25장) 유대인을 기쁘게 하려고(9절)  5. 바울이 카이사르에게 청원하였기 때문에 그가 석방될 수 없다고 한 사람은? (26장)  아그립바 왕(32절)  6. 이탈리아로 항해 중인 바울 일행을 친절히 대우하고 자유를 준 사람은? (27장)   율리오(3절)   7. 멜리데 섬의 우두머리인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받아들여 며칠 동안 묵게 하였나? (28장)  사흘(7절)  8. 하나님께서 주에게 무슨 기름을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히 1장) 즐거움의 기름(9절)  9. 그리스도가 자기 위에 취하신 것은 천사들의 본성이 아닌 무엇인가? (2장)  아브라함의 씨(16절)  10. 그리스도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3장)  믿지 아니한 자들(18절)  11.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위대하신 대제사장이 우리와 다른 점은? (4장)  죄는 없으신 분(15절)  12.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난받으심으로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무엇이 되셨나? (5장)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9절)  13.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언제 얻었다고 했나? (6장) 끈기있게 견딘 뒤(15절)  14.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날마다 자기 죄들과 백성의 죄들로 인해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신 이유는? (7장)  그분께서 이 일을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27절)  15. 그리스도께서 첫 언약에서 흠을 발견하시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하신 일은? (8장)  새 언약을 맺으심(8절)  16. 첫째 성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어디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나? (9장)  지성소(8절)  17. 죄들과 불법들의 사면이 있는 곳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은? (10장) 죄로 인한 헌물(18절)  18. 믿음 안에서 죽은 조상들이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받지 못한 것은? (11장)  약속하신 것(39절)  19.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하시는 목적은? (12장)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10절) 20. 바울이 히브리서를 쓴 곳은? (13장)  이탈리아(25절) 
2025-07-27 14:10:03 | 관리자
위태로운 나라 사정으로 깊은 절망감을 찍고 올라오니 하나님만으로 기쁠 수 있게 된 요즘 저입니다.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이 제것이 되어진 듯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하시니라.-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거짓이 모두 드러나서 나라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는 시민들이 많아지게 해 주세요..
2025-07-25 17:35:01 | 목영주
뒷동산(용인 법화산) 산길을 걷던 중 어떤 이정표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 지나치는 곳이라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는데, 그날은...그렇게 되었답니다. 세 갈래 길 한쪽 옆에 세워진 그 이정표 중의 어떤 안내 문구가 그날따라 눈길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안내 문구 내용인즉. ‘출입 금지 (길 없음)’ 이었답니다. (그 길로 가면 뭐가 나오는지, 어떻게 되는지 등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   그 이정표 앞에서, 특별히 그 안내 문구에 시선 고정한 채로 이런 생각 했습니다. 길 없음...길 없음이라...너, 정말 대단한 이정표로구나. 그렇지, 그걸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다지 헷갈릴 것도 없는 갈래 길을 안내한답시고 온 팔 벌리고 서 있는 너를 본체만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갔던 내가 많이 무심했었구나...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 없음...길 없음...지금의 이 나라 이 사회가 바로 그런 길, 그러니까, 길 아닌 길로 가고 있는 상황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는...어떤 군상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길 아니다, 길 맞다, 논쟁 속에 그 길 계속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생각조차 없이 휩쓸려 들어 걸어갈 수밖에 없는 역시 많은 사람들...그런 한 무리의 사람들 말입니다. 이 시대,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 모습인 듯하여...마음이 많이 아프더군요.   아픈 마음 가다듬은 다음 다시 산길을 걸었습니다. 잠시 후, 조금은 엉뚱한 듯한 다른 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쩌면 이 시대를...‘이정표 없는 시대’ 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정표 없는 시대...이정표 없는 시대...몇 번을 되뇌어봤습니다. 막마~ㄱ한 생각에 마음 한없이 울적했다고나 할까요. 길 아닌 길에 이정표까지 없으니 그 결말 정녕 파멸에 버금갈 정도로 참담할 것이 뻔하니까요. 하긴, 길 아닌 길에 웬 이정표가 있겠습니까만...   그날 이후, 그때 그 울적한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길 아닌 길 걷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함께 걷는 수많은 사람들 돌려세울 수 있는 권능...그런 것과는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소위 필부의 심정, 어쩌면 많은 사람들 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그런 날들 보내던 중...한 줄기 빛인 듯한, 또는 작은 위안인 듯한 한 생각이 일었습니다. 성경 말씀 읽던 중에 말입니다. 어떤 생각인고 하니, 비록 이정표 없는 시대, 그런 세상임에도, 아니 그런 세상이기에 더욱 선명히 드러나 보이는 ‘삶의 이정표’ 있음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삶의 이정표라 함은 매 순간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생각(mind), 바로 그 '생각의 이정표'로서, 지금 이 사회보다 더욱 암담했던 어떤 한 세상을 오히려 기쁨과 기도와 감사 함께 흔들림 없는 순례자의 거룩한 삶으로 살고 가신 많은 분들, 그분들 생각 속에 참으로 확고히 세워져 있었을 그 이정표 말입니다. 영원(eternity)에 거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영원부터 영원까지(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세워두신, 말하자면, ‘영존하는 이정표’, 즉 성경 말씀 바로 앞에 두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생각이 그에 이르자, 읽어 나가던 곳에서 생각을 딴 데로 돌려, 수~~~없이 많은 이정표의 말씀들로 채워진 성경 말씀 속에서 특별히 몇 개 큰 이정표를 골라보고 싶었답니다. 말씀에 대한 얕은 지식 세계(세계랄 것도 없지만 ^^)를 더듬고 더듬어, 그리고 핸드폰 상의 ‘KJV성경암송’ 앱까지 훑고 훑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여...이정표 없는 암울한 시대 살아가는 제 생각 속에 특별히 드러나 보이도록 세워두고 싶은 이정표 몇 개를 골라본바,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1:1) /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마28:20) /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22:37) /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22:39) /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시작이니라 (잠1:7, 시111:10) /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엡2:8)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신다는 것과 또 그분께서는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하느니라 (히11:6) /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갈2:20)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 부지런히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라 (히12:15)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   그들이 배부르매 그들 마음(heart)이 높아졌으므로 그들이 나를 잊었느니라 (호13:6) /   A   /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5:7) /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출하리니 네가 내게 영광을 돌리리로다 (시50:15) /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히13:5) /   너희가 악한 날에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그러므로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을 입으며 화평의 복음을 예비함으로 너희 발에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해 그것으로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 (엡6:13~17)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4:16~17) /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자기가 알아야만 할 것에 대하여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고전8:2).   ...   너무 많은가요...? ^^ 사실은, 하나 더 있답니다. 그 내용은 물론 표현 방법(대귀법(對句法)?)이 기막히게 멋지다 싶어서 따로 적어 봅니다. 귀를 심으신(planted) 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빚으신(formed) 분께서 보지 아니하시랴? (시94:9), 바로 그 말씀입니다. 위 ‘A’ 표시 자리에 넣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상상조차 한 적 없는 ‘이정표 없는 시대’ 살아가매 더욱 선명히 드러나 보이는 ‘영존하는 이정표’, 성경 말씀...그것도, 그 말씀 그대로 온전히 보전된 킹 제임스 성경 있음에 새삼 무한한, 정녕 무한한 감사와 찬양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 끝 )        
2025-07-25 02:40:59 | 최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