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며 이룬 침례교 역사를 통해 이 가치를 다음 세대에도 잘 전달해야겠다는 자매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이웃들에게 전해지고 자연스럽게 복음이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06-07 21:06:04 | 김지훈
함께한 (나이가)젊은 자매님들께 감사합니다. (나이에 비해)젊어보이는 자매님들께는 젊어보임에 더 감사입니다. 침례교의 사명 5가지가 참 귀하고 귀하네요.
-주의 종들인 아브리함과 이삭과 야곱을 기억하사 이 백성의 완고함과 사악함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신명기9장27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두려워하지 말라.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주 네 하나님 그분은 너와 함께 가시는 분이시니라.그분께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하니라.-신명기31장6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6-07 14:17:07 | 목영주
2026-06-06 13:21:23 | 조민수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많은 일들이 분주하게 만든 한 주간이지만 주님안에서 힘을 내셨길 바라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순종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하느니라."(행5:29) 대형 교단들과 적당히 타협하길 권하던 전 이대위 목사의 권면이, 초대교회로 부터 오늘 날까지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투쟁한 것처럼 여전히 우리도 진리의 싸움을 계속해야 함을 일깨워 준것 같습니다. 이번주는 챕터12. 침례교 신학이 법이 되다
(266년 투쟁의 완성 AD1525 - 1761) 이며, 이 장에서는 유럽에서 가난하고 소수였던 침례교회의 신학이 어떻게 제퍼슨과 매디슨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헌법 수정 조항 제1조로 결실을 맺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 266년의 여정 : 침례교 신학이 최고법이 되기까지
- 1791년 12월 15일, 헌법 수정 조항 제1조가 비준되었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전례 없는 혁명이었다. 1525년부터 펠릭스 만츠, 콘라드 그레벨, 토마스 헬위스, 로저 윌리암스, 그리고 버지니아의 감옥에서 울려 퍼진 침례교 목사들의 그 외침이 마침내 1791년 미국의 최고법이 되었다.
(자매:정교 분리가 미국 헌법으로 제정 되기까지 26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대에는 누리지 못한 종교의 자유,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 진것처럼 우리도 당장은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가 믿는 진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헌법 수정 조항 제1조 - 두 조항, 하나의 원리
- 국교 금지 조항: 첫째, 정부는 특정 종교를 지지할 수 없다. 둘째, 정부는 종교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 셋째, 정부는 종교적 교리를 법으로 강요할 수 없다. 넷째, 정부는 종교 기관을 통제할 수 없다. 이 모든것은 침례교가 266년 동안 주장한 것이다.
- 종교의 자유 실천 조항: 첫째,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믿을 권리. 둘째,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실천 할 권리. 셋째, 종교적 확신에 따라 행동 할 권리. 넷째, 종교를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조항은 국교 금지 조항의 또 다른 면이다.
(자매:정교 분리의 정확한 이해가 없으니 대형교단이나 총회, 교회들은 정부와 연합 된듯한 모습도 있습니다. 교단에 속한 교회들은 막대한 분담금을 납부하고, 교단 측은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로잔대회 같은 행사를 합니다. 교회안의 교육기관 역시 정부 보조금으로 인해 관리 감독과 통제를 받는 안타까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 두 조항의 조화 - 완전한 정교 분리
- 1802년1월1일, 제퍼슨은 코네티컷 댄버리 침례교회 협의회에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습니다. 이 법을 제정함으로써 그들은 교회와 국가 사이에 분리의 벽(wall of separation)을 세웠습니다. 이 표현은 인간의 양심에 대한 모든 침해를 막아주는 장벽을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자매:'분리의 벽'에서 벽은 경계이고 보호라고 하였습니다. 경계는 그리스도인가, 벨리알인가? 진리인가, 비진리인가를 구분하며, 벽은 또한 보호를 말하지만, 이 현시대는 보호가 허물어지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각자가 무엇이 옳은지 구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겠습니다.)
● 침례교 - 정교 분리의 창조자
-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해야한다. 침례교는 정교 분리를 단순히 지지한것을 넘어 그 개념을 형성하고 확립한 주역이었다. 1525년 이전에는 정교 분리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종교 개혁도 처음에는 이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재침례교가 처음으로 주장하고 그 이후 토마스 헬위스, 로저 윌리암스, 그리고 버지니아 침례교로 이어져, 마침내 메디슨과 제퍼슨이 이 원리를 헌법에 새겼다. 그러므로 정교 분리는 침례교 신학의 산물이다.
● 침례교 신학에서 미국 헌법까지 - 명확한 경로
- 이제 우리는 정교 분리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그 흐름을 명확히 볼수있다. 그 여정은 1525년 재침례교가 신학적 원리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이 제정되며 종교의 자유는 처음으로 헌법적 권리로 선언되었다. 매디슨의 영향 아래, 이 문서에는 '모든 사람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종교를 자유롭게 실천 할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문구가 담겼다.
- 1786년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이 통과되자 국교 체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확립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정교 분리 입법이었다. 그리고 1791년 헌법 수정 조항 제1조가 비준되면서 침례교 신학이 마침내 헌법에 공식적으로 보장되었다.
(자매:버지니아는 철옹성같은 국가 교회 체제였습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것 같은 상황에도,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 침례교가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미국 전역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막막 할수록 더욱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침례교의 독특한 기여
- 우리는 침례교가 기독교 역사속에서 남긴 독특한 기여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타협없이 정교 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해 왔다. 그들은 권력을 가질 기회가 있을때 조차 거절했고, 어느 상황에서도 그 원칙을 타협하지 않았다. 침례교의 여정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진리의 길, 그리고 자유를 향한 오랜 투쟁과 승리의 역사였다.
● 침례교의 사명
- 언제나 침례교의 사명은 변하지 않았다. 첫째, 복음을 전하라. 둘째, 성경을 지켜라. 셋째, 자유를 옹호하라. 넷째, 교회를 순수하게 지켜라. 다섯째, 섬기고 사랑하라
- 소수의 신실함이 다수의 타협보다 더 깊고 먼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침례교의 역사는 증명한다. 우리의 사명은 분명하다. 이 진리를 지키고, 이 자유를 보호하며, 이 유산을 다음 세대에 넘겨 주어야 한다.
(자매: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고 투쟁하며 얻어낸 침례교 역사를, 다음 세대에도 잘 전달을 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미디어 사역을 더 알릴 수 있도록 이웃들에게 영상도 전달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지혜있게 권면하면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전히 무지하여 힘든 신앙을 하고 있는 성도들도 우리가 지켜야 할 세대들이 아닐까 합니다.)
2026-06-06 10:38:31 | 최성미
2026-06-02 11:56:46 | 정영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온 선조들의 헌신에 감사하며 본받기 원합니다.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06-01 11:16:47 | 김지훈
2026-06-01 10:28:34 | 고승훈
저도 이렇게 부러운데 외부성도분들은 자매모임 사진보고 로망 생길듯해요~^^ 요즘 저는 신명기를 읽고 있습니다. 분명하고 자세히 일러주시는 하나님이 참 멋지시고 감동이에요..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명기8장 3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live/4qbNSHrWGxQ?si=855-842EonU1lTzI
2026-05-31 17:34:53 | 목영주
2026-05-30 16:55:28 | 김순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아직 5월임에도 초여름의 날씨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있는 교회의 법적인 문제와 곧 있을 6.3 지방선거를 통해 변화 될 국가적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모두 평안 가운데 지내셨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번주 책나눔은 챕터11, 버지니아에서의 자유 투쟁 - [세계 최초의 정교분리 성취] 이며, 이 장에서는 18세기 버지니아를 배경으로 국교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던 침례 교인들의 투쟁, 제퍼슨과 매디슨의 사상,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초로 법제화 된 정교 분리의 과정을 알아 보았습니다.
● 신대륙의 아이러니
- 초기 13개 식민지 중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국교 체제를 유지했다. 코네티컷, 뉴 햄프셔, 메사추세츠는 회중교회(청교도)를 사실상 국교로 삼았고 버지니아, 메릴랜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는 성공회를 국교로 정했다.
-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곳은 오직 로드 아일랜드 뿐이었다. 로저 윌리암스가 세운 그 작은 식민지 만이 모든 사람에게 양심의 자유를 허락했다.
● 버지니아의 국교 체제
- 버지니아의 국교 체제는 철저하고 포괄적이었다. 1619년부터 법으로 확립 된 이 체제는 다음과 같이 작동했다. 첫째, 모든 주민은 자동으로 성공회에 속했다. 둘째, 교회세는 강제적으로 부과 되었다. 셋째, 성직자 임명은 교인들이 선택할 권리가 없다. 넷째, 성공회 예배 참석은 법적 의무였다. 다섯째, 다른 종교 집단의 예배는 허가가 필요했다. 여섯째, 공직은 성공회 신자들에게만 열려있다.
- 이러한 법규들이 결합하여 강력한 통제 체계가 이루어졌으며 성공회에 도전하는 행위는 사회질서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되었다.
● 대각성 운동 - 변화의 바람
- 대각성 운동은 개인의 회심 경험을 강조했다. "당신은 다시 태어났습니까?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이 메세지는 기존 교회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 처음에는 장로교 목사들이 이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1750년대와 1760년대 더 급진적인 그룹이 등장했는데 바로 침례교였다. 단순히 회심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교회론 전체를 재구성했다.
● 침례교의 등장 - 뿌리부터 다른 교회
- 침례교의 메세지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이었다. 설교자들은 지옥의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했으며, 회개의 긴급함을 열정적으로 외쳤다. 청중은 울었고, 소리쳤고, 기뻐했다.
(자매:침례교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아마도 영과 진리로 드린 예배였을것 같아요.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갈급했었는지가 그들의 모습을 통해 감격과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 성직자와 교구 위원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성공회와 달리 목사를 선택하는 것도 새회원을 받아들이는것도, 권징을 하는것도 정책을 정하는것도 모두 회중이 함께 결정했다. 사람들은 이를 민주적일 뿐 아니라 교회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느꼈다.
(자매:침례교가 정책을 결정하는것도 모든 회중이 함께 결정했는데 오늘날, 때론 의사 결정에 있어서 빠른 시간을 요하거나 리더 그룹에서 결정해야 되는 사항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때 성도들이 교회를 신뢰하며 결과를 기다려 주는것도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침례교의 급속한 성장은 버지니아 지배층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침례교가 질서를 파괴하고 전통을 훼손 할 뿐만 아니라 권위를 약화 시킨다고 믿었다.
● 감옥에 갇힌 목사들
- 1768년부터 1776년까지 약8년동안 최소 30명 이상의 침례교 목사들이 버지니아에서 투옥되었다. 제임스 아일랜드는 1769년 컬페퍼 카운티에서 투옥되었으며 폭도들에 의해 유황과 고추를 태운 연기로 인해 고통 받았으며, 존 윌러는 설교 중 성공회 지지자들에 의해 채찍질을 당했다.
- 감옥에 갇힌 목사들이 창문을 통해 설교하는 광경은 버지니아 곳곳에서 벌어졌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이 말은 18세기 버지니아에서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자매:감옥에서 설교하는 목사, 그 설교를 들으러 감옥 창문으로 몰려든 사람들, 모두가 절실함을 통해 한마음이 된것 같습니다. 열악한 감옥 환경에 대해 나누다가 문득 오늘 날 우리가 누리는 편안함과 자유민주주의, 경제발전을 만들어준 정치인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 제임스 매디슨 - 22세 청년의 각성
- 1768년 17세였던 매디슨은 여러명의 침례교 목사들이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예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고 투옥되는 사건들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이 경험은 매디슨의 평생 사상을 형성했다. 그는 종교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기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 청원의 폭풍 - 침례교의 정치적 투쟁
-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은 침례교에게 예상하지 못한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영국의 폭정에 반대하며, 대의를 위해 싸웠고 민병대에 가입했으며 전쟁을 지원했다. 버지니아정부는 침례교의 지원을 환영했다.
- 1776년, 버지니아는 새로운 헌법을 작성하고 있었다. 식민지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야 했는데, 이는 침례교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새로운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포함시킬수 있다면 그들의 투쟁은 영구적인 승리를 거둘것이다. 침례교는 조직적인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 1786년 - 버지니아 종교의 자유법
- 일반세금 법안이 패배한 직후 매디슨은 재빨리 움직였다. 그는 7년전에 토마스 제퍼슨이 작성한 법안을 꺼냈다. 버지니아 종교의 자유법이었다.
(자매:토마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고 버지니아 종교의 자유법을 만들었으며, 헌법 수정 조항 1조를 통해 정교 분리의 원칙을 확립한 대통령이었지만, 그분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임을 알게 되니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마16:26~)
- 마침내 1786년 1월 16일, 버지니아 의회는 종교의 자유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정교 분리를 법으로 확립한 최초의 입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의 핵심 조항은 명확했다. 1.교회세 폐지 2.국교 체제 폐지 3.종교를 이유로 한 모든 차별 금지 4.완전한 종교의 자유 보장
● 1791년 - 헌법 수정조항 제1조
- 1791년 12월 15일, 권리 장전이 비준되면서 12개의 최종 안 가운데 처음 10개 수정조항이 헌법의 일부가 되었다.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언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평화롭게 집회 할 권리, 정부에 청원 할 권리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이 45개 단어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중 하나가 되었다.
● 1525년에서 1791년까지 - 266년의 여정
- 취리히의 작은 방에서 재침례교가 정교 분리를 처음 주장한 후 266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투쟁 후 마침내,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 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그들의 희생과 고통과 용기는 미래 세대를 위한 자유의 기초를 놓았다.
(자매:저에게 마음의 감동이 된것은 침례 교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린 시간이었습니다. 26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인내한 시간을 생각하니 뭉클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분들의 고난과 박해를 견딘 시간들 덕분에 오늘 우리가 그 열매를 먹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 침례교의 공헌이 인정을 받다
- '분리의 벽'은 제퍼슨이 만든 표현이고 후에 헌법 수정조항 제1조를 해석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분리의 벽은 침례교에 보낸 편지에 처음 사용되었다. 1811년 침례교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헌법에 명시된 것은 침례교인들의 열정과 끈기 덕분입니다. 침례교는 이 원리를 위해 고통받았고 이 원리를 위해 싸웠으며, 이 원리의 승리를 보았습니다."
2026-05-30 11:09:59 | 최성미
2026-05-28 14:39:58 | 심동휘
날이 좋아 더욱 즐거운 교제의 시간이 되었을 듯합니다. 자매 모임을 통해 책의 주요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고, 다른 분들의 생각도 곁들여 듣게 되니 감사합니다^^
2026-05-27 10:31:34 | 김지훈
자매님들 화사한 웃음에 나라걱정을 잠시 잊었습니다~^^ 말씀(하나님)으로 마음을 충분히 적신후에야 버틸수 있는, 마지막때임을 실감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기록된 바,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느니라,하시더라.-누가복음4장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m.youtube.com/watch?v=381GiIHyl_A&pp=iggCQAE%3D
2026-05-23 21:01:55 | 목영주
지난주는 책 모임을 하지 않고 야외로 나가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진 몇장 같이 올립니다.
댓글로 함께 공감해주시는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026-05-23 12:45:06 | 최성미
2026-05-23 12:42:06 | 최성미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성령님과 함께 걸으셨나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내가 존중히 여기며 나를 멸시하는 자들을 경홀히 여기리라" 이 말씀에 따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워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성도들이 눈을 뜨고 올바른 의를 선택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챕터10. 신대륙의 청교도 신정국가 - [광야에서 피어난 자유]이며, 미국에서 침례교가 말하는 정교 분리와 양심의 자유, 국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교회라는 이상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 비로서 역사속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그리고 메사추세츠 신정국가의 구조 및 한계와 로저 윌리엄스가 로드 아일랜드에서 시작한 종교의 자유가 침례교회로 이어지는 과정과 확산, 그리고 미국적 자유 개념 형성에 어떤 토대를 마련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 청교도들의 이주 - 또 다른 탈출
- 17세기 초 영국은 분리주의자들과 청교도들에게 여전히 위험한 곳이었다. 탄압을 피해 그들은 새로운 선택지를 고민하였고, 그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곳이 신대륙 아메리카였다.
- 1620년 9월,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메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1630년에는 약 1,000명의 청교도들이 11척의 배를 타고 메사추세츠만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빠르게 번영하는 식민지가 되었으나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있는곳은 아니었다.
(자매:청교도들의 신대륙 이주와 정착이 미국의 역사와 종교의 자유를 가져온 것이 아니고, 이 책의 배움을 통해 침례교의 유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역사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현재의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보며 깨닫게 되네요.)
● 메사추세츠의 신정국가
- 메사추세츠 식민지의 국가 운영이 청교도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에, 영국 성공회 대신 회중교회(청교도)가 지배하는 국가 교회체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 회심한 교회 회원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기에 회원 자격을 거절당한 수많은 가정에 벌금과 차별등, 깊은 상처를 남겼다.
- 1656~1661년 사이에 퀘이커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메리 다이어라는 여성도 자신의 신앙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으로 인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자매:영국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왜 여전히 국가교회를 하며 다른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박해를 했을까? 먼저는 인간의 악함 때문이고, 이들이 이주한 1620년경에는 아직 킹제임스 성경이 보편화 되지 못했기에, 읽고 연구하며 사고하는 부분에서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이것이 청교도들이 신대륙에서 구현한 '종교의 자유'의 실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자유롭게 실천할 자유를 원했지만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같은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자매:존 코튼 목사는 "이단자를 관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것이다" 란 말을 하였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 분 자체로 거룩하신 분이기에 사람의 말이나 행위가 거룩함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그도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좋은 부분만 취하고 악한 일에는 눈을 감는 다면 오늘 날 좌파의 사상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 로저 윌리엄스 - 다른 목소리
- 1631년2월, 윌리엄스와 제인이 보스턴에 도착했을때 메사추세츠 청교도들은 그를 환영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은 학자였고 능력있는 설교자였으며 열정적인 청교도였다.
- 목사직을 제안한 보스턴 교회가 여전히 영국 국교회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자 '분리되지 않은 교회'라고 비판하였고, 곧 윌리엄스의 급진적 견해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 윌리엄스의 위험한 생각들
- 그의 주장들은 메사추세츠 청교도 지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첫째, 국가는 종교를 강제 할수없다. 둘째, 교회는 순수해야 한다. 셋째, 영국 왕은 원주민의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 이는 식민지의 법적 기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넷째, 각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 할 권리가 있다. 이 발언은 당시로서는 극도로 급진적인 주장 이었다. 그는 양심의 자유는 진리 뿐 아니라 오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매:윌리엄스의 주장 중 교회는 순수해야 한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한번 쯤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습니다. 오늘 날에도 적용해보면, 우리 교회안에도 회심한 성도들만의 모임이 아니기에, 믿음을 고백한 후 침례를 받고 회원으로 가입하는 과정을 둔 방침은 현대 교회안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 재판과 추방
- 1635년 10월, 총회 앞에 소환된 윌리엄스는 '새롭고 위험한 의견을 퍼뜨리고 정부와 교회의 권위를 거스른 죄' 라는 판결을 받았고 메사추세츠 식민지에서 추방 당했다. 1636년1월, 윌리엄스는 한겨울의 폭풍 속으로 도망쳐 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 광야에서의 14주
- 이후에 윌리엄스가 겪은 14주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윌리엄스는 원주민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로 존중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 프로비던스 - 하나님의 섭리
- 1636년 봄, 윌리엄스는 나라간셋 부족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새로운 정착지를 세우며 그 땅을 프로비던스(Providence, 하나님의 섭리) 라고 이름 지었다.
- 공동체의 원칙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선언했다. 예배의 참석을 강요하지 않았고, 국가가 특정 교리를 강제할 수 없으며, 모든 남성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졌다. 교회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으며 정부는 교회를 간섭하지 않는다. 프로비던스가 완벽한 공동체는 아니었으나 종교의 자유에 관한 한 시대를 몇 세기나 앞서간 곳이다.
● 1638년 - 미국 최초의 침례 교회
- 1638년 윌리엄스는 홀리만을 포함한 약 10명에게 침례를 주며 미국 최초의 침례 교회가 프로비던스에 세워졌다. 이 교회는 오늘날까지 존재하며 프로비던스 제일 침례 교회로 불린다. 이 교회는 초창기부터 침례교의 핵심 원리를 실천했다.
● [피로 물든 박해의 교리] - 윌리엄스의 대작
- 1644년 윌리엄스는 [피로 물든 박해의 교리]라는 책을 런던에서 출판하였다. 이 책은 종교적 박해를 정당화하는 모든 논리를 공격하는 강력한 저술이었다. 영국 의회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몰래 읽으며 그의 사상은 점차 확산되었다.
● 로드 아일랜드 - 피난처가 된 식민지
- 1644년 윌리엄스는 영국 의회로 부터 로드 아일랜드 개척지에 대한 허가서를 얻었는데 이 허가서는 로드 아일랜드의 독특한 원칙, 즉 종교의 자유, 정교 분리, 자치권을 보장했다. 로드 아일랜드는 17세기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이었다.
(자매:청교도들은 로드 아일랜드를 이단들의 소굴이라고 비난했지만, 종교의 자유는 경제적으로도 성공하게 하며 시장 경제의 모델이 된것 같습니다. 정교 분리와 자유 시장 경제가 하나님의 원리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됩니다)
● 미국 침례교의 확산
- 18세기에 일어난 대각성 운동은 영적 부흥 운동이었다. 휫 필드와 에드워즈같은 설교자들이 이 운동을 이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했고 교회들이 성장했다. 침례교의 신자침례 강조와 회심에 대한 강조는 폭발적으로 성도들이 늘어나게 했고 18세기 말, 침례교는 미국에서 가장 큰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자매:진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양심을 강제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지만, 분명한것은 스스로 교리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성경적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겠습니다. 요즘 교회안에 몰래 들어와 분란을 조장하는 다른 교리를 가진 자들에게는 더욱 단호함이 필요하고 때론 교회의 리더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것도 기억해야 겠습니다.)
2026-05-23 12:28:59 | 최성미
떠들썩 기대감과 흥분과 즐거움이 막 전달 되는 느낌입니다.
필요한거 장만도 하고 교제도 하고 맛 있는 점심도 드시고
함께 하는 모습 너무 좋네요~
2026-05-22 16:37:36 | 김혜순
사진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2026-05-12 16:38:05 | 김지훈
이정도면 파티아닌가요?정숙자매님!멋진포즈 거울보고 따라할뻔했어요~^^미선자매님!저도 사랑하고 무지무지 감사드려요옹~♡
https://youtu.be/qWp3D3R6P_4?si=nk0J6RQtcLKnNEUx
2026-05-09 22:52:27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이번주 자매모임은 매년 두 번 정도 하는 바자회로 진행하였습니다. 행사 때 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순서를 결정하곤 하였는데, 이번 바자회에서는 그동안 함께 읽고 나누었던 신약교회사 책에서 문제를 만들고 각 조별로 스피드퀴즈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어도 긴장하여 답이 생각나지 않거나 혹은 오답으로 까르르 웃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임에 참석하지 않던 서른명 정도의 자매님들이 동참하여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러 자매들의 섬김을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여전히 나라 안팍의 사정이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주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26-05-09 16:26:12 | 최성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