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목사님은 주님과 함께 계시니 얼마나 좋으실까요?
거룩한 삶은 성화가 빠질수 없으니 삶이 곧 예배로 나타나야 마땅하다는 확실한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2025-07-17 15:10:36 | 이수영
한편으론 모든 시름 내려놓고 하나님곁에 계실 존맥아더목사님이 부러워요..고된일상은 기본, 십자가에 못박혔다생각하며 흘려보내야하는 순간들이 유독 많은 하루여도, 잠자리에 들때면 '아버지 잘못했어요.섬길수 있어서 감사합니다..'기도 드리며 자는 자녀입니다. 예수님이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당연 해주실거라 믿고 오늘 하루 감사함으로 편안히 보내겠습니다.-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바란다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로마서8장 18절부터 25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7-17 08:30:22 | 목영주
예배는 그 자체로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과 삶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니 큰 찔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도록 정결한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2025-07-17 07:58:26 | 김지훈
각각의 약점과 서로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고 온유한 영으로 세워 주라는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2025-07-17 07:53:53 | 김지훈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오늘은 [예배]의 마지막 장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동안 14번에 걸쳐 자매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깊이 있게 나누며,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떠한 자세와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지를 통찰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4일, 이 책의 저자 존 맥아더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안식에 들어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충실히 전하신 목사님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려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목사님은, 저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었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이 모든 은혜와 깨달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홀로 영광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예배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Part 15 예배의 본래 의미
277p 우리 예배의 대상은 오직 말씀에 계시된 대로 살아 계신 참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혔다. 예배는 언제 어디서나 드릴 수 있으며, 특히 구원받은 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배의 본질을 논하였고, 영과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의 균형이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단순히 가만히 앉아 형식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들을 때 내 마음속에서 그에 합당한 올바른 반응이 따를 때 비로소 그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사실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279p 위선은 예배에 치명적이다. 방황하는 마음, 자아도취,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진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급히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없다.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에서 제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드린 죄를 가볍게 여겨왔는데,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80p 히브리서 10장 22절의 마지막 포인트는 '순수함'이다. "우리 몸이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그것은 말 그대로 몸을 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죄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매일의 죄 고백과 영적인 정화를 뜻하는 것이다. 회심할 때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피뿌림은 삶을 영원히 완벽하게 씻어준다. 그러나 우리의 발에는 세상의 먼지가 묻기 마련이므로 주기적으로 씻어줄 필요가 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 속죄 헌물을 드리고 물두멍에서 손을 씻은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삶 속에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281-282p 많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교회에 다녀도 진심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것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예배가 힘들다고 불평한다. 그들의 개인적인 경건생활에서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난 것 같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신앙의 길에서 마주하는 장애물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더욱 성경 말씀을 바르게 알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사실, 죄를 인정하는 일은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솔직히 인정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287p 사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예배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교회가 성화되는 것이다. 개인으로서 당신이 드리는 예배는 당신의 삶뿐 아니라 온 교회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당신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라면 교회가 더 강해지고 성화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다면 교회는 더 약해질 것이다.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앞서 나눈 이야기처럼, 개인이 어떻게 6일을 보내느냐에 따라 주일 공예배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289p 예배는 구원 계획의 가장 큰 목적이다. 예배의 교리는 복음전도의 핵심이다. 어떤 사람은 예배와 복음전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미디어 사역을 통해 전도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전도에 대해 느껴야 할 영적인 책임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전도의 사명을 엄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교리를 잘 익혀 두면, 누군가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할 때 복음의 핵심을 기쁨으로,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침례교회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부록 마음과 생각과 목소리로: 찬송가와 가스펠송
300-301p 예배를 순전히 감정적인 활동으로 보는 근대적 탈근대적 개념은 교회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런 반지성주의는 우리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 왔다. 사실 오늘날 피상적이고 경박하고 내용 없는 설교가 성행하는 데 다른 무엇보다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현대 교회음악일지도 모른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오랜 세월 흥과 샤머니즘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 CCM 가사나 비그리스도인의 반주, 혼을 빼놓는 듯한 힐송 음악 등은 분별하며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311p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음악 사역을 좀 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감독해야 하며, 의식적으로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교리적 성경적 내용에 대한 높은 기준을 정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와 찬송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교회의 리더들이 애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 목사님과 찬양을 인도하는 리더분들께 감사드리는 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서 찬양의 기준을 잘 세워가고 계심을 느낍니다.
2025-07-16 17:44:34 | 박수현
감정형인 저는 돌이켜보니 그리스도인의 따뜻함을 계속 흘려보내면 상대 비난투의 말까지 좋아질까 기다린 시간도 있었네요. 사고형 상대에게 멋지다박수 쳐주는 마음 여전하지만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제발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말아주세요오~"(^^)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계속 새로워져(혼합형?이 되어져서) 인간관계가 점점더 모두-함께-가 되는것 같아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청조물이라.옛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린도후서5장1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7-16 15:47:51 | 목영주
형제님 의견에 공감 합니다.
아이들이 블럭을 갖고 놀때보면 각기 다른 모양이 있어야 성도 만들고 공룡도 만들더라구요.
'아롱이다롱이'라는 단어도 생각이 나고요.
2025-07-16 14:00:29 | 이수영
김민영자매님 반갑습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 하게 되어 좋네요.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래요.
2025-07-16 13:54:40 | 이수영
이은재 자매님 반갑습니다.
사진을 늦게사 찍으셨네요.
우리 교회의 특성을 잘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해요.
매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2025-07-16 13:52:37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경 번역의 궁금점은 아래 링크 글들을 참조하세요.
그리고 번역 문제는 항상 홈페이지 하단에 있는 메일로 보내시면 목사님께서 답변 주실 것입니다.
https://www.keepbible.com/KJB3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어다.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통치자 메시아가 올 때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며 참으로 고난의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고" (단 9: 25)
다니엘의 칠십 이레 중 일곱 이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며 느헤미야 6장 15절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느헤미야가 재건한 것은 성전 자체가 아니라 성벽과 도시 체계였습니다. 4번의 칙령 중 가장 나중에 내려진 것입니다.
다니엘 9장 25절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가 일곱 이레(49년)가 시작되는 기간입니다.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를 자세히 설명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BC 538 고레스: 성전 재건 허락 (에스라 1:1–4)
BC 520 다리오: 성전 재건 확인 (에스라 6:1–12)
BC 457 아닥사스다: 에스라에게 예루살렘 율법, 행정, 제도 정비 권한 부여 (에스라 7:11–26)
BC 444 아닥사스다: 느헤미야에게 성벽 재건 권한 부여 (느헤미야 2:1–8)
고레스부터 성전 건축의 명령이 나갔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사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전 건축의 의미는 예루살렘의 회복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BC 457년의 아닥사스다 조서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이 조서는 단순히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과 율법과 행정 체제 전반을 회복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 요약 설명 드리면,
BC 457년(아닥사스다 칙령) + 49년 = BC 408년경.
BC 408년경이면 예루살렘 성과 성벽, 율법, 행정 체제가 거의 완전히 자리 잡은 시점으로 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서는 이 시기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일곱 이레) 통치자 메시아가 올 때까지"(육십이 이레)를 따로 강조한 것입니다.
"앞부분 7이레에 대한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라고 하셨는데,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육십이 이레(434년)를 같이 설명 드리면, BC 457년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을 시점으로
7이레 ×7 + 62이레 ×7 = 49 + 434 = 483년이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기간과 연결 시키면,
BC 457년 + 483년 = AD 27년이 됩니다.
예수님은 BC 4년경 헤롯 대왕 통치 말기에 오셨습니다.
로마의 제 2대 황제 카이사르 티베리우스 재위 원년이 AD 14년이니, “티베리우스 제15년”(누가복음 3:1)은 AD 28–29년경이 됩니다. 이때 예수님이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므로, 누가복음 3장 23절의 '비로소 예수님 그분께서 서른 살쯤 되시니라'는 기록과 잘 맞습니다.
성경을 벗어나 자신들의 생각을 더하는 목사들의 해석에 미혹되지 마시고, 올바른 성경에 믿음을 두시면 더욱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어다.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통치자 메시아가 올 때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며 참으로 고난의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고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2025-07-16 12:00:57 | 관리자
감정형과 사고형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서로가 바라보는 시각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세워 주고 너 자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잘못은 개인의 특질 때문에 나오는 실수를 말한다. 이 실수를 온유한 영으로 바로 세워 주라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무심코 범하는 실수에 대해서 감정형과 사고형의 예를 들어서 서로의 강점과 약점, 서로가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성격유형에서 자주 나오는 감정형(F)과 사고형(T). 이 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감정형은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사고형은 논리와 사실을 기준으로 결정한다. 둘 다 나름의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1.1. 감정형의 강점
감정형은 타인의 감정을 잘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누군가의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도 그 감정을 눈치채고 다가가려 한다. 관계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며, 갈등을 피하고 모두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회의 자리에서도 누군가 말에 상처받지 않았는지 살피고, 모임에서도 서로가 어색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감정형은 인간적인 따뜻함과 감성적인 소통에서 빛을 발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반응하기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감정형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1.2. 감정형의 약점
하지만 감정형은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고려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 쉽다. 불편한 말을 피하려 하거나, 갈등이 생기면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조용히 넘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문제가 장기화되거나, 감정형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얻게 된다.
또한 감정보다 사실을 우선시해야 할 상황에서도 관계나 분위기에 휘둘려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있다. 피드백을 받을 때도 객관적인 지적임에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감정형은 공감에는 강하지만, 거리두기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2.1. 사고형의 강점
사고형은 감정보다는 논리와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상황을 구조화하고 분석하며,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문제를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피드백을 받을 때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개선하면 될까?”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태도 덕분에 업무 효율이 높고, 성장에 필요한 자기 반성이 잘 이루어진다.
2.2. 사고형의 약점
그러나 사고형은 상대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데는 약한 편이다. 말의 내용은 맞을지 몰라도, 표현 방식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공감보다는 해결책을 먼저 제시하려는 성향 때문에, 정서적인 지지가 필요한 순간에 거리감이 생긴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아, 상대는 “정이 없다”, “무심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감정형과의 관계에서는 사고형의 직설적이고 건조한 말투가 오해를 부르는 일이 잦다.
3.1. 감정형이 바라보는 사고형
감정형의 눈에 사고형은 때때로 너무 차가워 보인다. 분위기나 말투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듯한 표현은 감정형에게 상처가 된다. 감정형은 사고형이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옳고 그름에만 집착한다고 느낄 수 있다. 감정적인 위로나 공감을 기대한 순간에 “그건 네가 잘못했네” 혹은 “그럴 땐 이렇게 해야지” 같은 반응은 오히려 정서적인 소외감을 만든다.
감정형은 사고형을 ‘무정한 사람’,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으며, 감정적 거리감이 커지면 관계 자체가 단절될 가능성도 있다.
3.2. 사고형이 바라보는 감정형
반대로 사고형의 눈에는 감정형이 감정에 휘둘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감정형이 상처받거나 화를 내면, 사고형은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이건 논리적인 문제인데”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감정형이 갈등을 피하려는 태도도 사고형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빨리 끝날 일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고형은 감정형을 ‘비합리적인 사람’, ‘감정적인 사람’으로 단정 짓고 거리감을 둘 수 있다.
감정형과 사고형은 각자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감정형은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고형은 사실과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이 생기지만,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바울이 성도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각각의 약점과 서로를 바라볼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고 온유한 영으로 세워 주라는 것이다.
감정형은 사고형에게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함을 배울 수 있고, 사고형은 감정형에게서 관계를 섬세하게 살피는 배려심을 배울 수 있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에베소서 4장 16절처럼 각 부분이 분량대로 효력 있게 일함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꽉 차서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교회가 세워지는 비결이 아닐까!
2025-07-16 08:35:19 | 이규환
제목 : 다니엘서 9장 25절 70이레 예언 3등분 중에 제일 앞부분 7년에 대한 해석부탁드립니다.
바이블빌리브의 가치를 전달하시는 정동수 목사님과 교회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종말론에 관한 성경적 해석에 대해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종말의 근거인 다니엘의 70이레 예언에 대해 많은 자료와 설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질문 드립니다.
첫 번째 질문
1.다니엘서 9장25절에 대한 번역이 성경종류마다 다르게 번역된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and 부분에서 앞부분을 끊어서 해석하다보니 이어서 해석하는 것과 전혀 다른 뜻이 전개되는 문법적인 해석도 곁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1)킹제임스역
Know therefore and understand, that from the going forth of the commandment 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 unto the Messiah the Prince shall be seven weeks, and threescore and two weeks: the street shall be built again, and the wall, even in troublous times.
킹제임스흠정역 :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니라.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아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으리니 심지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
2)NIV역
"Know and understand this: From the issuing of the decree to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until the Anointed One, the ruler, comes, there will be seven 'sevens,' and sixty-two 'sevens.' It will be rebuilt with streets and a trench, but in times of trouble.
"너는 이것을 알고 깨달아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재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때부터 기름부음받은 자 곧 통치자가 올 때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다. 예루살렘은 거리와 도랑을 쌓을 것이나, 환난의 때에 재건될 것이다.
3)개역개정 :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4)공동번역 : 너는 똑똑히 알아라. 너희가 돌아가 예루살렘을 재건하리라는 말씀이 계신 때부터 기름 부어 세운 영도자가 오기까지는 칠 주간이 흐를 것이다.그 뒤에 육십이 주간 어려운 시대가 계속되겠지만, 그 동안에 성을 쌓고 재건하게 될 것이다.
5)새번역 : 그러므로 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로부터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오기까지는 일곱 이레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재건되어서, 거리와 성곽이 완성될 것이나, 이 기간은 괴로운 기간일 것이다.
6)현대인 : 이제 너는 깨달아 알아라.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내릴 때부터 하나님이 택한 왕이 오실 때까지 49년과 434년이 지날 것이며 그 49년 안에 예루살렘의 거리와 성벽이 재건될 것이나 그 때는 어려움을 당하는 때이다.
두 번째 질문
2. 70이레 예언 3등분 중에 앞 7이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느헤미아6장 15절에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라고 성경구절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현대인성경 : 그 49년 안에 예루살렘의 거리와 성벽이 재건될 것이나 그 때는 어려움을 당하는 때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도 아래 유튜브 21분에 예루살렘 도성 회복을 49년 걸렸다는 근거가 희박한 워딩을 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01Av9aIGyA&t=2274s
앞부분 7년에 대한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왜냐하면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가 예루살렘 도성 중건 명령으로부터 곧바로 69이레라고 설명하지 않고 계시의 명확성을 위해 7이레와 62이레를 구분한 것은 다니엘의 생존기간 동안 7이레의 현상에 대한 징조를 느끼게 하거나 목도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사료됩니다.이에 대한 성경구절과 역사적문헌 기록등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다니엘 서 연구 저자인 로버트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 등의 문헌도 곁들여 주었으면 합니다.감사합니다 김홍열목사올림
2025-07-16 01:38:14 | 김홍열
휴거이후 환난기 성도를 말하는 군요
2025-07-15 13:36:25 | 김홍열
존 맥아더 목사님, 주님의 품으로 가다
안녕하세요?
제 평생에 설교자로서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존 맥아더 목사님(Pastor John Fullerton MacArthur Jr.)께서 2025년 7월 14일(월, 미국 현지 시간) 만 86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는 맥아더 목사님의 ‘예배’ 책을 가지고 심도 있게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그분의 소천 소식을 접하니 인간적으로는 심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일을 그분께서 완수하고 가셨기에 영원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알기로 맥아더 목사님은 20-21세기 목사들 가운데 책이나 설교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분입니다.
지난 55년 동안, 한 교회 목회 사역을 하시며 그분이 하신 방대한 설교들은 영상과 더불어 거의 모두 스크립트와 함께 그레이스 투 유(Grace To You) 웹사이트에 들어 있습니다.
o 그레이스 투 유(Grace To You) 웹사이트
이렇게 잘 정리된 설교 자료를 남기고 가신 분은 아마 맥아더 목사님이 유일무이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한때 그분의 극단적 칼빈주의 및 몇 가지 독특한 교리들로 인해 설교자로서 그분의 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약 7-8년 전부터는 거의 그분의 설교만 듣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이분의 설교를 들으면 다른 사람의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분의 설교를 잘 발라서 가시를 빼내고 고기만 먹으면 아마 가장 유익한 영양분을 그분의 설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설교가 거의 다 강해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AI 가 발달해서 그분의 설교 링크나 설교 스크립트를 넣기만 하면 누구라도 설교의 핵심을 다 듣거나 볼 수 있으므로 그레이스 투 유(Grace To You) 웹사이트는 하나님의 진리를 찾으려는 모든 분들에게 가장 진귀한 보물 창고가 될 것입니다.
2025년 3월, 맥아더 목사님이 많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비록 그분이 설교하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분의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를 방문하고 싶어 제 처와 함께 방문하였고, 그분이 서서 설교하시던 강대상과 교회 내부를 보고 그곳 성도들과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o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맥아더 목사님도 아마 사도 바울과 같이 다음과 같은 선한 고백을 하고 주님 품에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
6 이제 내가 헌물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8 이후로는 나를 위해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21세기에 태어나 이런 귀한 분과 함께 같은 세대를 섬기는 특권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목사님의 가족과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큰 화평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패스터
정동수 드림
2025-07-15 12:04:08 | 관리자
주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위로가 형제님과 댁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정해진 때에 하늘나라에서 모두 다시 반갑게 만나리라 믿습니다.
2025-07-14 10:01:18 | 김지훈
주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위로가 자매님과 댁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때가 되면 기쁘게 다시 만나리라 믿습니다.
2025-07-14 09:58:42 | 김지훈
20여년간 다니신 교회를 떠나 바른 진리의 말씀을 찾아 오신 신앙 여정을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즐거운 믿음 생활 하시길 소망합니다.
2025-07-14 09:56:55 | 김지훈
반갑습니다 자매님, 우리 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즐거운 믿음 생활하시길 소망합니다. 샬롬
2025-07-14 08:14:54 | 김지훈
반갑습니다 자매님, 주님의 은혜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통해 기쁨을 누리고 즐거운 교제 나누시길 바라겠습니다. 샬롬
2025-07-14 08:14:03 | 김지훈
같은지역으로 만나게되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목요자매 모임도 오시고
찬양대에서도 열심을 다하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진리안에서 날마다
복된 삶이시기 바랍니다.
2025-07-14 07:27:32 | 김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