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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신약교회사 11조회수 : 32
    • 작성자 : 최성미
    • 작성일 : 2026년 5월 30일 11시 9분 59초
  •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아직 5월임에도 초여름의 날씨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있는 교회의 법적인 문제와 곧 있을 6.3 지방선거를 통해 변화 될 국가적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모두 평안 가운데 지내셨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번주 책나눔은 챕터11, 버지니아에서의 자유 투쟁 - [세계 최초의 정교분리 성취] 이며, 이 장에서는 18세기 버지니아를 배경으로 국교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던 침례 교인들의 투쟁, 제퍼슨과 매디슨의 사상,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초로 법제화 된 정교 분리의 과정을 알아 보았습니다.


    ● 신대륙의 아이러니

    - 초기 13개 식민지 중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국교 체제를 유지했다. 코네티컷, 뉴 햄프셔, 메사추세츠는 회중교회(청교도)를 사실상 국교로 삼았고 버지니아, 메릴랜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는 성공회를 국교로 정했다.

    -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곳은 오직 로드 아일랜드 뿐이었다. 로저 윌리암스가 세운 그 작은 식민지 만이 모든 사람에게 양심의 자유를 허락했다.


    ● 버지니아의 국교 체제

    - 버지니아의 국교 체제는 철저하고 포괄적이었다. 1619년부터 법으로 확립 된 이 체제는 다음과 같이 작동했다. 첫째, 모든 주민은 자동으로 성공회에 속했다. 둘째, 교회세는 강제적으로 부과 되었다. 셋째, 성직자 임명은 교인들이 선택할 권리가 없다. 넷째, 성공회 예배 참석은 법적 의무였다. 다섯째, 다른 종교 집단의 예배는 허가가 필요했다. 여섯째, 공직은 성공회 신자들에게만 열려있다.

    - 이러한 법규들이 결합하여 강력한 통제 체계가 이루어졌으며 성공회에 도전하는 행위는 사회질서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되었다.


    ● 대각성 운동 - 변화의 바람

    - 대각성 운동은 개인의 회심 경험을 강조했다. "당신은 다시 태어났습니까?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이 메세지는 기존 교회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 처음에는 장로교 목사들이 이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1750년대와 1760년대 더 급진적인 그룹이 등장했는데 바로 침례교였다. 단순히 회심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교회론 전체를 재구성했다.


    ● 침례교의 등장 - 뿌리부터 다른 교회

    - 침례교의 메세지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이었다. 설교자들은 지옥의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했으며, 회개의 긴급함을 열정적으로 외쳤다. 청중은 울었고, 소리쳤고, 기뻐했다.


    (자매:침례교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아마도 영과 진리로 드린 예배였을것 같아요.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갈급했었는지가 그들의 모습을 통해 감격과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 성직자와 교구 위원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성공회와 달리 목사를 선택하는 것도 새회원을 받아들이는것도, 권징을 하는것도 정책을 정하는것도 모두 회중이 함께 결정했다. 사람들은 이를 민주적일 뿐 아니라 교회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느꼈다.


    (자매:침례교가 정책을 결정하는것도 모든 회중이 함께 결정했는데 오늘날, 때론 의사 결정에 있어서 빠른 시간을 요하거나 리더 그룹에서 결정해야 되는 사항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때 성도들이 교회를 신뢰하며 결과를 기다려 주는것도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침례교의 급속한 성장은 버지니아 지배층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침례교가 질서를 파괴하고 전통을 훼손 할 뿐만 아니라 권위를 약화 시킨다고 믿었다.


    ● 감옥에 갇힌 목사들

    - 1768년부터 1776년까지 약8년동안 최소 30명 이상의 침례교 목사들이 버지니아에서 투옥되었다. 제임스 아일랜드는 1769년 컬페퍼 카운티에서 투옥되었으며 폭도들에 의해 유황과 고추를 태운 연기로 인해 고통 받았으며, 존 윌러는 설교 중 성공회 지지자들에 의해 채찍질을 당했다.

    - 감옥에 갇힌 목사들이 창문을 통해 설교하는 광경은 버지니아 곳곳에서 벌어졌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이 말은 18세기 버지니아에서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자매:감옥에서 설교하는 목사, 그 설교를 들으러 감옥 창문으로 몰려든 사람들, 모두가 절실함을 통해 한마음이 된것 같습니다. 열악한 감옥 환경에 대해 나누다가 문득 오늘 날 우리가 누리는 편안함과 자유민주주의, 경제발전을 만들어준 정치인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 제임스 매디슨 - 22세 청년의 각성

    - 1768년 17세였던 매디슨은 여러명의 침례교 목사들이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예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고 투옥되는 사건들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이 경험은 매디슨의 평생 사상을 형성했다. 그는 종교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기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 청원의 폭풍 - 침례교의 정치적 투쟁

    -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은 침례교에게 예상하지 못한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영국의 폭정에 반대하며, 대의를 위해 싸웠고 민병대에 가입했으며 전쟁을 지원했다. 버지니아정부는 침례교의 지원을 환영했다.

    - 1776년, 버지니아는 새로운 헌법을 작성하고 있었다. 식민지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야 했는데, 이는 침례교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새로운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포함시킬수 있다면 그들의 투쟁은 영구적인 승리를 거둘것이다. 침례교는 조직적인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 1786년 - 버지니아 종교의 자유법

    - 일반세금 법안이 패배한 직후 매디슨은 재빨리 움직였다. 그는 7년전에 토마스 제퍼슨이 작성한 법안을 꺼냈다. 버지니아 종교의 자유법이었다.


    (자매:토마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고 버지니아 종교의 자유법을 만들었으며, 헌법 수정 조항 1조를 통해 정교 분리의 원칙을 확립한 대통령이었지만, 그분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임을 알게 되니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마16:26~)


    - 마침내 1786년 1월 16일, 버지니아 의회는 종교의 자유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정교 분리를 법으로 확립한 최초의 입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의 핵심 조항은 명확했다. 1.교회세 폐지 2.국교 체제 폐지 3.종교를 이유로 한 모든 차별 금지 4.완전한 종교의 자유 보장


    ● 1791년 - 헌법 수정조항 제1조

    - 1791년 12월 15일, 권리 장전이 비준되면서 12개의 최종 안 가운데 처음 10개 수정조항이 헌법의 일부가 되었다.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언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평화롭게 집회 할 권리, 정부에 청원 할 권리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이 45개 단어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중 하나가 되었다.


    ● 1525년에서 1791년까지 - 266년의 여정

    - 취리히의 작은 방에서 재침례교가 정교 분리를 처음 주장한 후 266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투쟁 후 마침내,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 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그들의 희생과 고통과 용기는 미래 세대를 위한 자유의 기초를 놓았다.


    (자매:저에게 마음의 감동이 된것은 침례 교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린 시간이었습니다. 26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인내한 시간을 생각하니 뭉클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분들의 고난과 박해를 견딘 시간들 덕분에 오늘 우리가 그 열매를 먹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 침례교의 공헌이 인정을 받다

    - '분리의 벽'은 제퍼슨이 만든 표현이고 후에 헌법 수정조항 제1조를 해석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분리의 벽은 침례교에 보낸 편지에 처음 사용되었다. 1811년 침례교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헌법에 명시된 것은 침례교인들의 열정과 끈기 덕분입니다. 침례교는 이 원리를 위해 고통받았고 이 원리를 위해 싸웠으며, 이 원리의 승리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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