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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교 형제님의 글과 김정훈 형제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다만 글을 쓸때 조심스럽습니다. 조양교 형제님의 글이 어떠한 바를 의도하는지 알기에 앞뒤 정황을 다 설명하여 칼럼을 쓴다면 엄청난 글의 양이 될것이기에 충분이 그 내용과 의도를 잘 파악하였고 좋은 글이라 생각됩니다 정확한 단어와 문맥과 의도와 교리와 모든것에서 완벽하다면 참 좋겠지만 다 완벽할 수 없고 부족함이 있기에 글쓰기와 댓글을 달때 저처럼 두려워 하는 분이 있을것 같습니다^^그럼에도 조양교 형제님께서 용기를 내어서 좋은 글들을 올려주시니 매번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아쉬움이 있는 부분은 때로는 김정훈 형제님처럼 올려주셔서 참고 하실수 있도록 해주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또한 교리적이거나 크게 무리가 없다면 서로 부족함을 채우면서 세워주면 어떨까 싶네요. 다들 정확, 예리하셔서 놀라지 않을수 없네요. 저처럼 모난 글이 올라오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두분께 배우고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2012-02-08 00:19:41 | 주경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과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마태복음 23 : 23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근본적으로 주님을 알므로 세상에서 살면서도 세상과 분리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기에 오히려 영혼이 더 고통스러움 속에 있음을 우리는 모두 체험으로 알지요. 그렇기에 더욱 교회안에서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고 위로받아야 하지 않나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죠.
2012-02-07 23:46:19 | 이수영
선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을 내나니 그의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누가복음 6 : 45 마음에 가득한 것이 행동으로 나오게 되지요. 순서가 잘못되면 걸려 넘어지게 되어있고요.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인 줄 착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지요. 자기 의는 너무나 끝없이 힘든 길이고 은혜의 삶은 너무 쉽고 기쁜 길이기에 하나님께선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2012-02-07 23:17:34 | 이수영
아래에 적은 글은 성도컬럼 123번에 실린 조양교 형제님의 글 "옳은 것처럼 보이는 길"을 읽고 느낀 소감을 적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댓글로 달려고 하였으나, 양이 너무 많아 독립된 글로 올립니다. 조양교 형제님께서 쓰신 글이 분명 좋은 의도로 쓴 글임에는 틀림없다고 믿는데, 글을 읽으면서 (아마도) 본래 의도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오해의 소지도 다분히 있다는 아쉬움이 들었고, 결국 깊은 생각과 고민 끝에 그래도 이렇게 글을 써서라도 저의 생각을 같이 나누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유익하지 않나 하는 결심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1. “나의 어떤 성과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오, 소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필요한 자리에 나를 앉히실 수도 있으시고, 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더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신 것은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하실 수 있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나의 어떤 성과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말씀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더 중요하게 해결될 문제라는 지적도 일견 타당한 말이긴 하지만, 앞에서 말한 ‘어떤 성과’와 맞물려서 같이 생각해 보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을 근본적으로 다시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이 말씀을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으로서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고전 3:9).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그 분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어 우리에게 면류관과 상까지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빌 3:14; 고전 9:24-27; 히 10:35).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 앞에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있는 것 이지요 (히 12:1). 다만 이 모든 명령 받은 일을 행한 후에 그저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겸손히 고백해야 하겠지요 (눅 17:10).   이러한 하나님의 같이 일하심과 맡김의 원리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마 25:14-30). 여행을 떠난 주인이 5 달란트와 2 달란트 받은 종에게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김에 대하여 칭찬을 하시되, 1 달란트를 받고 그저 땅에 묻어둔 종은 크게 나무라셨습니다. 그때 1 달란트 받은 종이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데서 거두고 흩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라고 말하였는데 (마 25:24), 가만히 음미해 보면 이 말은 자신의 주인 즉, 하나님의 능력을 칭송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만 믿고 오히려 자신의 일을 다 하지 않은 종이 되었기에 주인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됨을 봅니다. 제가 말씀 드리려고 하는 요지도 이것입니다. 형제님의 글에도 가만히 보면 한편 하나님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심과 못하심이 없는 능력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나의 성과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기에, 마치 1 달란트 받은 종의 말처럼 들리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칫 놓치기 쉬운 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능력이 많으시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맘먹을 때 하면 되지 하고 그저 멀리서 팔짱끼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완수하게 격려 하시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뤄낸 성과들로 인하여 같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상까지 주시며 세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탁월함을 들어내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해야 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지 그것이 단지 ‘사람이 보기에 옳은 일’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윗을, 모세를, 바울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도 모두 탁월함을 일군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도 여전히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성공을 하고 나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세상 유혹만을 쫒아갈 때가 잘못된 것이겠지요. 아울러 형제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적으셨는데, 무엇을 말씀 하시려고 하시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사실 존재야말로 어떻게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존재를 따지기로 하면, 우리의 구원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이뤄진 것이며 (롬 5:8), 성화를 위해 싸워 가는 과정에서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내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여전히 버거워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롬 7:13-25). 그런 ‘존재’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오히려 죄의 법을 이기는 힘을 얻기도 하며, 그 크신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성과를 낸’ 우리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그 일을 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상을 주시며 칭찬하시겠다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은혜인 것입니다.   2.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적 사고의 힘, 웃으면 복이와요, 등과 같이 그럴듯한 말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너무 고지식하게 살면 안된다, 세상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등과 같이 타협을 제의해 오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상대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문화나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능동적으로 적응해 나가야 한다. 등과 같이 다원주의, 상황윤리와 같이 교묘한 말로 현혹을 시키기도 합니다.”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적 사고의 힘", "웃으면 복이 와요", "너무 고지식하게 살면 안 된다", "세상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말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틀린 말들이 아닙니다. 칭찬은 정말로 고래도 뛰게 할 만큼 탁월한 교육 효과가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는 좌절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음을 누가 부인할까요? 웃음은 복까지는 몰라도 확실히 신체 및 정신 건강에도 유익할 뿐만 아니라 주변도 환하게 해주어 좋습니다. 고지식하게 살면 분명히 많은 경우 사회생활에서 주변에 덕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을 즐기면서 사는 것 또한 결코 나쁜 일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즐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만 ‘무엇을 즐기냐’의 차이가 있겠지만요. 그런데, 이런 말들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의 중심이 ‘하나님 안’에서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내용을 다룬 시중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대부분 인본주의 내지는 진화론 혹은 뉴에이지적 접근으로 이런 주제를 확대 해석하거나, 하나님 없이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는 유토피아적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형제님도 문장 말미에 “어쨌든 사람에게 기원을 둔 말이나 이론들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하게 보이고 무언가 힘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라고 적어 놓으신 것을 보면 이런 점을 지적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만, 하나님을 떠난 것이 문제이지 앞에 제시한 예들 (예, 칭찬은 고래를..) 그것들 자체가 문제는 아님을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위에 열거한 예들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충실히 따라가면 그렇게 남을 칭찬하고, 세워주며, 자주 웃고, 긍정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회생활에서 술 같은 것을 안하여 더러는 고지식해 보일 수도 있으나, 다른 면에서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봉사와 성실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얻게 되는 총명함으로 고지식하기는 커녕 인정 받으며 리더가 더 잘 될 수도 있습니다. 향락적 세상 문화를 즐기지는 않지만, 건실한 교제와 봉사와 전도의 삶으로 더욱 풍요롭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가치관들을 분명히 분별은 하되, ‘그럴듯한 말’이나 ‘타협’ 혹은 ‘현혹’으로만 치부하여 그런 모습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결론적으로 외적인 것, 환경적 요인을 바꾼다고 마음의 상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웃는다고 해서 마음이 즐거울 수는 없으며,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긍정적 결과를 야기할 수 없습니다. 칭찬과 위로를 한다고 해서 헌신과 봉사를 유도할 수 없습니다. 칭찬과 위로가 소홀해지는 순간 그 헌신의 열의는 사그러들고 말 것입니다.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높이고 존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 물론 외적 요인을 바꾸는 것은 근본적인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것 보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외적 요인을 바꾸려는 노력과 태도가 필요하고 실제로 마음의 상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깨끗이 청소된 집이나 아늑한 커피숍을 연상 해 보십시오. 바람이 거세고 눈보라가 치는 날과 쾌청하게 맑은 날을 비교해 보십시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녀가 건실하거나 교회가 비좁아도 성도들 간에 사랑이 넘쳐남을 상상해 보십시오.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는 우선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주변 환경적 요인을 바꾸기 시작하는 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환경을 바꿔 주면 마음도 어느 정도는 좀 더 쉽게 따라와 줍니다. 웃는 것, 긍정적인 말과 사고, 칭찬과 위로, 이 모든 것들은 결코 ‘나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지향해 나가야 할 덕목입니다. 은혜로 복음을 받은 자들이 교회에 와서 조차도 무뚝뚝하기 그지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보기 안 좋습니다. 하나님을 알기에,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원하기에 우리는 좀 더 기뻐해야 하고, 의도적으로라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게 되며, 칭찬과 위로로 서로 세워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행동을 하다 보면 마음도 변합니다. 마음이 변하면 다시 그 행동이 습관이 되면서 쉬워지기 시작 합니다. 마음의 상태를 온전히 한 후에 일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바울도 죄의 법과 씨름할 만큼 육신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마음은 진정으로 의를 행할 만큼 온전하여 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2-02-07 19:07:33 | 김정훈
이 댓글을 쓸까 말까 무척이나 망설였습니다. 조양교 형제님께서 분명 좋은 의도로 쓴 글임에는 틀림없다고 믿는데, 글을 읽으면서 (아마도) 본래 의도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오해의 소지도 다분히 있다는 아쉬움이 들었고, 결국 깊은 생각과 고민 끝에 그래도 이렇게 댓글을 써서라도 저의 생각을 같이 나누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유익하지 않나 하는 결심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까 댓글로 올리기에는 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아져서 성도컬럼 124번에 독립된 글로 올립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02-07 19:02:00 | 김정훈
형제님의 주간 5분 묵상의 글.. 관용과 포용,감상과 감동으로 신앙과 믿음을 착각하게 하는 요즈음 사랑침례교회는 진리안에서의 사랑을 자꾸 일깨워주는 사람들이 있어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조용한 음악과 함께 읽으니 더욱 마음이 움직이네요...
2012-02-07 14:52:09 | 오혜미
한재석 형제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너무 귀한 말씀이 었습니다. 제게 은혜가 되어 영상을 통해서 한번 더 들었습니다. 그래도 진리의 말씀은 참으로 기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음이 찔려 속사람은 울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진리의 말씀이 형제님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선포되어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02-07 13:25:00 | 노영기
아멘.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갈1:10
2012-02-07 11:54:12 | 이청원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심지어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그 희락의 끝은 근심이니라. (잠14:12-13절)   사람이 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는 길이 있습니다. 옳은 길에 대한 바른 분별은 그 종말/끝을 보라는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적 사고의 힘, 웃으면 복이와요, 등과 같이 그럴듯한 말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너무 고지식하게 살면 안된다, 세상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등과 같이 타협을 제의해 오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상대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문화나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능동적으로 적응해 나가야 한다. 등과 같이 다원주의, 상황윤리와 같이 교묘한 말로 현혹을 시키기도 합니다. 어쨌든 사람에게 기원을 둔 말이나 이론들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하게 보이고 무언가 힘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예전에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영역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재계에서, 정치계에서, 문화계에서 탁월한 성공을 이루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효율적으로 복음이 전파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사람이 보기에 옳은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분명 그리스도인들이 빈궁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지혜롭게 부지런히 맡은 바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의 어떤 성과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오, 소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필요한 자리에 나를 앉히실 수도 있으시고, 또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더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잠언서의 글을 읽다보면 의로운 자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의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이고, 마음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이 나오며, 바른 열매를 맺게 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마음이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사람은 사악한 말과 사악한 행동이 나오고, 사악한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재앙가운데 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외적인 것, 환경적 요인을 바꾼다고 마음의 상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웃는다고 해서 마음이 즐거울 수는 없으며,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긍정적 결과를 야기할 수 없습니다. 칭찬과 위로를 한다고 해서 헌신과 봉사를 유도할 수 없습니다. 칭찬과 위로가 소홀해지는 순간 그 헌신의 열의는 사그러들고 말 것입니다.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높이고 존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2012-02-07 10:49:37 | 조양교
목사님,사모님 뵙게되어 반가웠구요, 한형제님의 분별있는 말씀이 너무 귀감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어주신 모습을 보니 주일날의 모습을 새로이 돌아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2-07 10:36:22 | 조양교
오 의로운 자들아, 너희는 주를 기뻐하라. 찬양은 곧바른 자들이 마땅히 행할 바로다. 하프로 주를 찬양하고 비파와 십현금으로 그분께 노래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분께 노래하며 큰 소리로 솜씨 있게 연주할지어다.(시편33편 1~3) 주일에 있었던 교회의 요모조모를 다시 볼수 있어 좋아요.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성도들이 끝까지 남아 교제하며 담소하는 분위기가 어언 4년이 되도록 지속된다는 것이 참 뿌듯하고 즐거워요. 아이들도 교회안에서의 사귐과 시간들을 기뻐하는 것 같아 다행이고요. 이젠 아이들때문에라도 남아 있다 가는 가정도 있는 듯하네요. 남는 인원이 많아지면 저녁거리도 부담이 되겠지만 여태까지는 정말 자연스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식사까지 잘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5만원쯤의 재료비로 3~40명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도요.. 이를 위해 또 알게 모르게 돕는 마음과 손길이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간증이지요.. 모두 함께 하지는 못하시겠지만 이런 일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누며 기뻐해주셨음해요.
2012-02-07 02:29:13 | 오혜미
오케스트라가 매주 함께 수고해주어 우리 성도들이 즐겁게 찬양할 수 있지요. 주님이 모든 수고를 기억하실 거에요. 주일학교가 유년부와 초등부로 나뉘어 진행하니 훨씬 좋아보여요. 곳곳에서 자원하여 수고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바른 믿음안에서 자랄수 있겠지요. 이사가는 곳은 공간이 충분하니 학생부가 한결 편해지겠네요. 현재는 머리속에 그림이 안그려지지만 주방 시설은 그대로 인수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맘에 들던걸요. 전문가의 의견도 참고해서 멋진 공간들이 나오길 기도합니다. 곳곳의 현황을 사진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청보석의 빛이 반짝 - 반짝 -
2012-02-06 23:16:02 | 이수영
오늘은 사랑교회 오케스트라 모습으로 문을 엽니다.^^ 아래 왼쪽부터 클라리넷을 맡고있는 염태경, 바이올린에 박영선, 김준영, 위쪽 왼쪽에 바이올린의 김태민, 김현수, 플룻에 정아현자매, 박혜리자매님, 그리고 피아노에 황주영 자매입니다. 피아노에 하은경 자매님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며 수고하는 모습에 언제나 감동입니다.  서로 다른음색이 이렇게 잘 어울릴수 있는 것인지 .... 주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광주에서 올라오셔서  이렇게 우리에게 귀한 말씀으로 섬겨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한재석 형제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오후예배때 주일학교 유년부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친구들이 결석생?? ^^   우리 미래의 조그만 성도님들의 경건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주일학교 초등부 모습입니다. 중고등부는 이곳에서 창세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결같이 섬겨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 아이들 모습에서 우리미래의 희망을 봅니다.^^ 이시각 예배당에서는 홍승대형제께서 좋은 말씀 전해 주셨습니다. 예배를 모두 마친뒤 찬양연습중인 모습입니다. 4층에선 이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 다른성도님들은 이사갈 건물을 다함께 보고 왔습니다. 송내역에서 500m정도 떨어져 있으며 교회에서 인천대공원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습니다. 영상중 주유소옆 하늘색 건물이 보보골프장모습입니다. 골프장의 모습을 하고있어 구조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우선 이사할 곳 지정에 있어 합격점을 받았답니다. 칼국수 속으로 쏘옥~ 빠져 아주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졸업, 입학 시즌입니다. 가까이 있는 성도들께 관심 가져주시고 졸업, 입학생들이 있으면 각 집사님들께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선물이 준비되있다는 귀띔이. ^^ 평안한 한주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12-02-06 20:31:4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