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36798개
안녕하세요? 인천 간석동에서 출석하시는 나승섬형제의 모친 되시는 故 안성림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 빈소: 고대안산병원 특실111호 * 오시는길: 4호선 고잔역1번출구 맞은편 * 발인 7.3일(월) 7:10분 * 부의금: 농협 312-01497473-41 나승섬  성도님들께서는 기억해두셨다가 위로의 마음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을 당한 가정에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안을 기원하며 로마서 12장 10, 15절 말씀을 드립니다.   (롬12: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롬12:15)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   샬롬. 애경사 위원회 홍승대 형제 (010-5262-7168)
2023-07-01 18:01:18 | 관리자
진화론 인본주의로 가득차서는 허무주의,출세지향,물질만능주의,비교의식..단어들을 모두다 피하며 살아간다는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네요. 참기쁨,진심인 감사는 복음안에 그리고 진리안에 있다는 걸 모르는 우리아가들(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제일 마음 아프네요..
2023-07-01 13:00:04 | 목영주
하나님과 독대하는 기도는 꾸밀 수가 없어요. 모든 것 다  아시는 아버지께 다 쏟아놓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하나님께 영광과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싶은데.
2023-06-30 19:17:32 | 이수영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 끼치고 있는 영향-     프랑스어<D'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영어<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 긴 제목의 작품은 폴 고갱(Paul Gauguin, 1848년 6월 7일~1903년 5월 8일)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그는 이 작품을 1897년 타히티에서 사랑하는 딸 알린느의 죽음에 대한 충격, 극도의 궁핍과 건강의 악화로 인한 절망속에서 자살을 기도하면서 마치 유서를 작성하듯 일년을 걸려 이 대작을 완성한 뒤 그는 산 꼭대기에 올라 음독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습니다.이 작품은 지난 50년간 단 세 번의 외유만 가능했던 보스턴 미술관 소장작품입니다. 2013년, 마침내 3년간의 섭외 작업 끝에 극적으로 국내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된 고갱 예술의 백미이며 당시 평가가치 3천억원 이라는 단일작품으로는 천문학적인 가치가 매겨졌습니다.미술작품 사상 이보다 더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 있을까요?안타깝게도 고갱은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온 곳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갈곳도 없다..."라고 말이죠.고갱은 1901년 매독과 영양실조,모르핀 중독등으로 회복이 불가한상태에 이르렀고 1903년 매독 말기에 찾아온 정신착란 증세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긴 제목의 고갱의 작품을 철학의 언어로 다듬으면 이렇게 바꿀수 있지 않을까요?-(인간이라는)존재의 기원, 존재의 인식, 존재의 최후- 이렇게 말이죠.절정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계몽주의를 거쳐 완숙기로 가고있었는데, 르네상스 인본주의에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자율적인 존재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흐름이 지속되면서, 현대적 근대과학에 이르러선 사람은 존재의 기원과 그 이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지질학자였던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1797-1875)이 지질학에서 자연 원인의 제일성과 동일과정설을 특히 강조해 물꼬를 틔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 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라이엘의 생각을 생물학적 생명의 기원으로 확장 시켰습니다.이것은 바로 존재의 기원에서부터 비이성(非理性)의 영역으로 치닫기 시작하니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성과 근본적인 삶의 목적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사람이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의 전체 계획안에서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창조 되었으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롬 8:29/ 엡 4:13 에 잘 나타나 있음).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우리의 운명, 즉 7-80년 이라는 짧은 생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하고 절박한 고뇌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아예 괘념치 않게 됩니다.결과적으로 이것은 도덕과 가치 판단이 붕괴됨에 따라 인간성(人間性)을 상실한 야만인이 되어 되려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으며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젠 짐승들에게 배워야 하는 지경(욥 12:7)에까지 이르게 된것입니다.우리는 이 세상 모든것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것은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Chirist's an imminent of second comming)의 징조 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현재의 과정이 영원히 동일하다고 사람들을 속입니다.성경은 이미 이런 진화론에 타협적인 기독교인(유신진화론자,무천년주의자,후천년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예견했습니다.벧후 3:3-4 먼저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 정욕을 따라 걸으며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부터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 어떤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보신대로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은 전세계에 만연된 도덕적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으며 그 해악은 통계기간을 길게 잡으면 잡을수록 처참하기 이를데 없습니다.그러면 이 모든게 진화론이라는 사이비 과학 가설이 불러온 문제냐 하면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작은 누룩 하나가 온 덩어리를 뜨게 할진대 이미 진화론 이전에 신학과 철학의 분야에서 진화론이 뿌리 내릴수 있는 악의 토양을 조성했기 때문입니다.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기원은 어디입니까?또 우리는 무엇입니까?그 답은 오직 성경만이 말해줍니다.창 1:26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어...(중략)창 1:27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고 남성과 여성으로 그들을 창조하시니라.창 1:31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보라, 매우 좋았더라.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니라.하나님 께서는 단 두 구절에 네 번이나 강조하시며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되어있습니다.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5일에 걸친 창조 기간동안 온 우주를 창조하시며 좋았다고 하시지만(it was good)여섯째 날 비로소 자신의 형상(image)대로 지으신 사람을 창조하시고서야 매우 좋았더라(it was very good)라고 말씀하십니다.창세기 1장에 벌써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존재의 기원), 우리는 무엇이라는 것(존재의 인식)에 대한 답을 벌써 얻었습니다.따라서 우리는 온 우주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이 입증 되었습니다.왜?바로 우리는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또 한번 확증해 주십니다.창세기 3장에 기록된 대로 우리는 우리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사망의 운명에 처한 우리를,우리를 지으신 그분 곧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모든 피와 물을 쏟고 죽기까지 하시며 사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이제 고갱의 마지막 질문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남았습니다.성경은 말합니다. 값없이 주신 그 분의 은혜를 믿고 받아들인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종착지가 영원히 다르다는 것을요...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그리스도인이 왜 죽을때까지 공부해야 되는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고후 10:5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힘든 시기 , 힘든 계절입니다. 늘 주 안에서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을 쓰며 이재만 선교사의 세미나와 책, 헨리 모리스 박사의 저서, 프란시스 쉐퍼의 저서를 인용하거나 참조 했습니다.    
2023-06-30 18:43:27 | 박세원
좋은말 실천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하네요! 하나님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말씀 가까이 하며 주인이신 예수님께 맡기는 하루되게 해 주세요..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2023-06-30 11:50:55 | 목영주
15가지로 점검 잘 해 보았습니다~ 청개구리마인드였던 제가 요정도 지금의 제가 있게 된건..하나님계심을 알아버렸고,구원받아 예수님이 주인이신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바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일만 커져서 해결하기 벅차지는 나이가 된건지..앞으로는 하나님말씀에 쏘옥 숨어 살다 가려고요~^^
2023-06-30 10:01:22 | 목영주
성경탐구하는 형제님 같은 분들이 계심에 같은 교인으로서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바른 교리를 따라 믿음생활,교제로 함께 성화하는 사랑침례교회 형제자매님들이 있어 저도 감사드립니다~^^
2023-06-30 09:35:56 | 목영주
2023년 6월29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경건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깊은 내면의 기쁨과 만족을 누린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연구하고 삶에 적용하여 윤리적이고, 순종하는 삶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풍성한 자원을 이용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며 그 자원을 이용해야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다.   제 7장 하나님에 대한 행복한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라.   기도란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독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보통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벌을 받을까 걱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로마서 8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관해 무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인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은 자기중심적인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 몰두하는 이들에게 찾아온다.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두려움이 갈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나님 안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임재 가운데 머무는 특권에 가슴이 떨리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갈망이 나날이 짙어진다. 주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워한다.   겸손은 기도하게 만드는 요인이자 열매이다. 영적 겸손은 스스로의 허물과 연약함에 무자비하리만치 정직해야 한다.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쓰는 ‘허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가식을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허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고백과 회개는 진실한 기도에 꼭 필요한 결정적인 성분이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데려간다. 인간의 결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현장이다.   올바른 기도에는 회개가 따라야 한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지는 대신 우쭐거리며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자기 합리화나 남 탓, 자기 연민, 영적인 교만 따위를 버리기를 요구하고 또 그럴 힘을 준다. 허구를 벗으면 벗을수록 기도는 그만큼 풍성하고 깊어질 것이다.   도깨비방망이, 요술 램프, 행운을 비는 주문 등의 얘기가 사방에 차고 넘치는 걸 보면, 이미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욕구를 조화롭게 처리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아서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주님은 거룩한 뜻에 어긋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그 뜻에는 멀리 내다봤을 때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들이 포함된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그렇다면 스위치가 전구에 에너지를 공급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빛은 전기에서 나왔다. 스위치는 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전구를 동력원과 연결시켜 주는 장치일 뿐이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건 요술 주문 같은 게 아니다. 주술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능력이나 경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고 용납해 주신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배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놓는 작업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주님의 거룩한 인격과 구원사역을 압축해 놓은 일종의 속기록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한행실에 기댈 게 아니라 주님의 청구권에 의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좋은 아버지라면 다 그러하듯, 하나님 아버지 역시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다. 성령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확신과 깨달음을 얻는다. 성경을 읽고 본문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려 주는지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함에 눈을 뜨면 자신의 죄스러움을 새로이 실감하게 되는 법이다. 죄를 더 깊이 인식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고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솟는다. “ 더 많이 용서받은 이가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 한다” 고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포도나무에 접붙인 가지와 같다는 뜻이다. 줄기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갈수록 분명하게 드러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말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은 유혹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지속되고 있으므로 승리를 위해 주님의 능력, 성령님의 권능, 성경적 진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추상적인 지침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영적인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갑으로 가슴을 가리며, 복음에서 비롯된 평안으로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로 공격을 막아 내야 한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기도하며, 늘 기도하라고 바울은 부탁한다.   기도는 정직한 자기 인식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올바르게 기도하면 영적인 시야가 투명해진다. 바리새인 같은 위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기도에는 인간들 사이에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투명한 정직성이 포함된다. 가면은 벗겨지고 ‘척’도 통하지 않는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 이다.            
2023-06-30 07:23:22 | 이은정
  너무나 쉽고, 너무나 어려운 신앙생활   성경을 읽다보면 세상이 외치는 소리와 성경이 외치는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소리는 확연히 다르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교회의 정의가 나온다. 거룩히 구별된 성도가 바로 교회인데, 구별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로 구별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고린도전서 1장 2절)   신앙생활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인데, 세상이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성경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일 것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쉽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어렵다고 호소한다. 예를 들어, 남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조용히 하면 너무나 쉽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면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어려워지는 것이다. 아래 내용을 음미하면서 나는 어떤지 점검해 본다.   1. 세상은 개선하라고 하고, 성경은 다시 태어나라고 한다. 2. 세상은 자기를 홍보하라고 하고,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한다. 3. 세상은 넓은 길로 가라고 하고, 성경은 좁은 길로 가라고 한다. 4. 세상은 자기를 채우라고 하고, 성경은 자기를 비우라고 한다. 5. 세상은 자기를 높이라고 하고, 성경은 자기를 낮추라고 한다. 6. 세상은 먼저 된 자가 되라고 하고, 성경은 나중 된 자가 되라고 한다. 7. 세상은 소리 나게 도우라고 하고, 성경은 소리 없이 도우라고 한다. 8. 세상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하고, 성경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9. 세상은 위로 올라가라고 하고, 성경은 아래로 내려오라고 한다. 10.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고, 성경은 주님이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11. 세상은 땅을 보라고 하고, 성경은 하늘을 보라고 한다. 12. 세상은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고,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 13. 세상은 어둠으로 나오라고 하고, 성경은 빛으로 나오라고 한다. 14. 세상은 출세하라고 하고, 성경은 거룩하라고 한다. 15. 세상은 자기의 뜻을 성취하라고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라고 한다.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한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검증하도록 하라.(로마서 12장 2절)
2023-06-29 19:28:26 | 이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