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36798개
박세원 형제님도 서두에 말했듯이 좋은 쪽으로 기여한 바가 있지요.  우리는 목사님이 늘 말씀하셨듯이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기에 100%좋은 사람없고 , 100%  다 나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올바른 길을 갔는데 끝에는 이상해지는 일이 다반사다보니 형제님이 염려하시는 것이지요~ 좋은 면은 취하되 그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니까  염려 마세요^^ ,
2023-06-13 10:25:24 | 이수영
안녕하세요 ^^ 글 잘읽었습니다 ~  레이 윤겐의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책을 통해 신비주의(신영지주의)의 역사와 신비주의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것도 자세히 알게되었습니다.   팀 켈러의 기도책이 우리 믿음에 절대적이지도 않고 기준도 되지 않지만 책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취할것과 버릴것을 충분히 서로 논의하고 의견을 나누어 우리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세우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통해 알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
2023-06-12 08:19:43 | 이은정
안녕하세요?  6월 1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본문 : 역대기하 1~24장  1. 개역 성경에서 솔로몬이 번제물을 일천 번 드렸다는 일천 번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1장) 일천 개의 번제 헌물을 한 번에 드림(대하1:6). 2.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짐을 나르고 돌을 다듬는 일은 누가 하였나?(2장) 이스라엘 땅에 있던 모든 타국인들(대하2:17). 3.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한 이스라엘의 절기는 언제인가?(5장) 장막절(대하5:3, 7:8-10). 4. 괄호 채우기(대하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  ) 기도하며 내 얼굴을 (  ) 자기들의 사악한 길들을 (  )돌아서면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낮추고, 구하고, 버리고. 5.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통치한 기간은?(9장) 사십 년(대하9:30). 6. 이스라엘 통일 왕국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진 것은 어느 왕 때 일어난 일인가?(10장) 르호보암(대하10:19). 7. 에디오피아 사람 세라가 백만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올 때 {주} 자기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한 유다의 선한 왕은?(14장) 아사(대하14:13). 8. 여호사밧의 가장 큰 잘못과 실수는?(18장) 북이스라엘의 가장 사악한 왕인 아합과 인척 관계를 맺고 교제한 것(대하18:1) 9. 여호사밧이 모압, 암몬, 세일 자손 연합군과 싸우기 위하여 나갈 때 맨 앞에 선 자들은?(20장) 찬양대(대하20:21). 10. 유다를 통치하던 악한 아달랴를 몰아내고 어린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세운 대제사장은?(23장) 여호야다(대하23:1-3)
2023-06-11 22:25:11 | 관리자
안녕하세요?형제 자매님들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얼마전 팀 켈러 목사가 소천하셨는데  미국 교계에서 이 분의 영향력은 컸으며 또 분명 좋은 쪽으로도 기여하신 부분이 많다고 사료 됩니다.그러나 D.A 카슨, 팀 켈러, 존 파이퍼등이 주도하는 "가스펠 컬리션(The Gospel Coalition)"에는 뉴에이지 이머징 운동가이자 차세대 개혁주의(?)지도자로 꼽히는 마크 드리스콜이 초창기부터 참여하고 있었습니다.이머징 교회라는 카테고리에 있어서 더 알기를 원하시면 로저 오클랜드가 쓴 이머징 교회와 신비주의(원제:Faith Undone) 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듯 합니다.드리스콜은 '순종'이라는 자신의 글을 통해 영성훈련에 있어서 리처드 포스터와 게리 토머스의 도움을 받으라고 적극 권했습니다. 그에 발맞춰 팀 켈러의 리디머 장로교회에서는 "수도승의 길(The way of the monk)"라는 관상기도 워크샾을 진행했었습니다.팀 켈러 처럼 영향력있는 미국 개혁주의 교계 리더가 교회 내에 관상기도를 들여오는 움직임을 우려하는 글들이 이미 2009년 무렵부터 게재 되었습니다.존 파이퍼 역시 드리스콜과 함께 강단에 서며 그를 차세대 개혁주의 리더로서 한껏 치켜 세워 주었습니다.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 혹은 Imaginative prayer) 하면 퀘이커 교 출신이자 동양 신비주의에 심취하고 뉴에이지 "레노바레"운동의 주도자인 리처드 포스터만을 떠올리기 쉬우나 사실 이것의 원래 출처는 예수회 창설자인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에 나오는  '이냐시오 관상' 또는 '예수회 영성' 인것입니다.저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과 다른 부가적인 예수회 서적을 통해 관상기도의 정의와 출처에 대해 직접 확인 하였습니다.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과 예수회 사제 제임스 마틴이 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를 참조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결론은 팀 켈러는 기도에 관한 책을 쓰면서 이런 '예수회 영성'의 요체인 관상기도의 위험성을 알리고 배척을  강조하기는 커녕 배울점도 있다는 타협적인 입장을 내보임과 동시에 그 자신이 적극적으로 교회 내에 관상기도를 스며들게한 과오가 있음을 부정할순 없을것 입니다. 물론 어떤 목회자든 신학자든 연약한 하나의 사람이기에 과오나 결점이 없을순 없습니다.그러나 교계에서 대중적이고 영향력을 지닌 인물의 경우에 자신의 모든 언행들의 파장이 크므로 이런 인물일수록 교리,신학,거룩의 부분에 있어서 성경에 위배되는 일이 없도록 본인 스스로가 철저한 주의를 기울이고 성도들 입장에서도 경각심을 갖고 대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1년 7월에 예장 합동측 총회 신학부에서 주최하는 '한국 개혁주의 신학대회'에서 김남준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께서 관상기도와 신비주의에 관해 예리한 분석과 지적을 통해 그 위험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교파,교단을 막론하고 로만 카톨릭 영성이 기독교 영성 혹은 복음주의 영성의 탈을 쓰고 교회안에 거대하게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걸 목도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나 교회의 교리적 순수성 보다는 오히려 교단에 맹목적 충성을 한 사람들이 교단의 고위직에 앉아 교단을 좌지우지한 '교단의 중앙집권화 부작용'의 한 단면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말세 즉 로만 카톨릭이 주도하는 대배도의 물결이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진지하게 고찰해 봐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2023-06-11 20:00:04 | 박세원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반찬들을 마구마구 집어먹고 싶네요~^^ 삶에서 큰고난은 물론 작은고난도 파워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심을 믿고 견딜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으로 그분에 대해 잘아는것! 그래서 저절로 맡겨지는 것! 거기에 있지않나 싶어요..오늘도 교회섬김으로 동분서주한 교회형제자매님들께 죄송하고 고마운마음이었습니다~~
2023-06-11 16:22:01 | 목영주
기도의 힘은 특별합니다. 위급한 순간에 합심하여 하는 기도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그러나 기도는 특별하고 거창하게 격식을 갖추어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제 경우는   일상속에서 주님과 대화하듯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니까요. 간절히하는 기도는 일상적인 기도와는 다르더군요. 기도라는 말은 한 단어지만 때마다 다르게 되는 것은 저만 그런지~
2023-06-09 16:29:10 | 이수영
2023년 6월 8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 오늘은 “ 팀 켈러의 기도 ” 책을 가지고 교제를 나누는 첫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중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또한 삶에 적용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15절 그러므로 어찌해야 하겠느냐?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한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한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   제 1장 바른 기도를 꿈꾸다.   - 명상센터를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 한 세대 전에 일어난 영성과 명상, 관상 등에 대한 관심이 아직까지도 서구 사회 전반에 걸쳐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비틀즈가 동양의 명상에 눈길을 주면서 순식간에 대중화의 물꼬가 트인 뒤로 제도 종교의 쇠락과 맞물려 꾸준히 확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정기적인 예배의 통상적인 절차를 아는 이들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영적인 갈망은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존재한다.   교회 역시 기도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져 왔으며, 묵상이니 관상이니 하는 옛 전례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움직임이 일었다. 온갖 ‘영성 훈련’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기관과 조직,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곳곳에 차고 넘친다.   - 기도는 세상을 거스른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7-18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받은 영적인 복을 이해하고 경건한 지식과 통찰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바울이 쓴 글을 다 살펴봐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환경과 처지를 바꿔 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이 들어 있지 않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살고 있었다.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바울의 기도들에서는 좀 괜찮은 황제를 만나게 해 달라거나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는 병사들에게서 지켜 달라는 건 물론이고 다음 끼니를 책임져 달라는 간구조차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요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기도 제목 리스트에 올려놓고 요청했음직한 온갖 유익한 조건들을 구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얻어야 할 결정적인 응답은 환경의 변화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실재를 강렬하게 감지하지 못한다면 좋은 환경은 지나친 자신감과 영적인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심 ‘요긴한 게 다 수중에 있는데 굳이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밝아진 마음‘이 없으면 좌절과 낙담에 빠질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땅히 그래야 하듯 한없는 위안을 주는 게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삶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더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외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면 내면생활은 어둡고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혼자라는 생각에 무얼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기 검열을 거듭할수록 심기가 불편해지고 급기야는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서 반성이니 성찰이니 하는 게 도무지 불가능한 형국에 이를 것이다. 거기서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진실성이 삶에서 완전히 실종될 수도 있다. 속에는 자기 회의와 걱정, 자기 연민, 해묵은 원한 등이 그득해도 겉으로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영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건강하고 온전한 듯 행세한다. 하지만 어떻게 마음속의 여러 방들에 들어가 무엇이 들어찼는지 확인하고 처리할 방도를 가늠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서, 내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한, 백이면 백 위선에 빠지고 만다.   참다운 자신을 찾으려면 지켜보는 눈길이 전혀 없을 때, 이러저러한 상념에 잠기도록 몰아가는 압박 요인이 전혀 없는 순간에 무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살피라. 생각이 하나님을 향해 흘러가는가? 잘난 체하지 않는 겸손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가? 솔선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내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말이 개인주의적이거나 이기주의적인 생활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가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해야 하고 개인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공동 예배에도 참석해야 하고, 고요히 묵상하는 동시에 성경을 공부하기도 해야 한다.   - 기도를 알려거든 성경을 펼쳐라. 성경은 시종일관 하나님을 말한다. 기도와 관련한 이야기가 갈피갈피 골고루 스며들어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기도가 위대한 것은 곧 인간의 삶 가운데 미치는 하나님의 손길과 영광이 크고 넓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경은 일관되게 이 진리를 증언하는 길고 긴 간증이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바치며 장대한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그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대목이다. 구약성경 욥기는 주로 욥이라는 인물이 엄청난 고통 속에서 기도로 나가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기도로 백성들을 고쳤으며,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이 변질되고 타락했음을 통렬히 비판했다.   기도는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성경 어디를 펴든 금방 찾아볼 수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계신 자리마다 어김없이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어디나 계시고 한없이 크신 분이므로 기도 역시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   - 기도라는 위대한 길에 들어서 보라 기도는 ‘인간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기도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기도는 인간이 갈구하는 영혼의 깊은 안식이다. 기도는 힘과 생명력의 유일한 근원인 ‘영혼의 피’다. 예수님의 이름에 기대어 기도하고 그분이 베푸시는 구원을 믿고 기도하면, 영적으로 임금님 앞에 서기에 합당한 예복을 ‘잘 차려입은 인물이 된다’   평생 동안 가야 할 기도의 험한 여정을 막 시작하는 이들은 너나없이 자신이 실체를 가늠하지 못한다.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저마다의 실상과 마주한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는 스스로의 참모습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기도는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의 참다운 됨됨이를 공부하고 그분께 스스로의 진수를 드리는 행위이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 가는 일이란 얘기다.   성경에는 탄식과 간구, 애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도는 세상의 악한 현실을 거스르는 일종의 반역이므로 성경에는 숱한 탄식과 간구, 애원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헛된 몸짓이 아니다.   오만한 심령은 성을 공략하는 병기로서 기도가 갖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예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마음 이야말로 죄를 면할 유일한 피난처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용서와 의로움에 기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 그분 앞에 서지 못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과 연합하게 한다.   기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요, 친밀감이며, 고단한 씨름이지만 본질에 맞닿는 길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하거나, 힘겹거나, 풍요하거나, 삶을 바꿔 놓을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 기도만큼 위대한 일은 결단코 없다.          
2023-06-09 08:19:14 | 이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