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너무 가슴에 울림을 주는 좋~~~은 말씀이로군요
자~~~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23-07-11 13:37:32 | 최영오
세상 외침과 성경 말씀의 대비 구절들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고 나갑니다
감사합니다 ~ ^^
2023-07-11 13:32:43 | 최영오
감사합니다
주님 은총 넘쳐나는 날들 보내세요 ~ ^^
2023-07-11 13:27:55 | 최영오
감사합니다
주님 은총 넘쳐나는 날들 보내세요 ~ ^^
2023-07-11 13:27:36 | 최영오
감사합니다
주님 은총 넘쳐나는 날들 보내세요 ~ ^^
2023-07-11 13:26:55 | 최영오
특별한 찬양
교회 지붕은
여하튼 철판으로 덮을 것이라
장맛비 억수같이 퍼붓는 날
예배당에 앉아보면
그 까닭 알게 되리
한 장 철판 너머 하늘 우러러
주 찬양할 때면
더욱더 잘 알게 되리라
죄인들의 찬송가 소리
그리고
온 세상 삼켜 버릴 듯한
천천 만만 천사들의 박수 소리
거룩함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노아의 그날 떠올렸음은
지은 죄들 때문이던가
목자의 말씀 선포에 때맞춰
천사들 찬양의 박수 잦아드니
신비 아니면 무엇이랴
내가 듣고 있노라
그 음성 들리는 듯 하더라
주 향한 그리움에 물기 어린 눈
눈
눈들
**********************************************************
그저께
그 주일 날의 그 찬양을 아마도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사랑침례교회
참...지붕까지도 끝내주더군요
찬양 분위기 완전 짱!
^^
2023-07-11 13:19:59 | 최영오
-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학문-안녕하세요?다들 평안한 주일되셨는지요?
지난 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해 같이 나눌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실존주의는 사실 지난 글 말미에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완전환 확실성 없이 활력을 갖고 행위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우는 것"싱겁지만 바로 이것이 실존주의의 핵심입니다.일단 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를 다루기 전에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에 대해 나눠보고 철학의 질문에 성경은 무어라고 대답하는지 병행하여 적어보겠습니다.전통적 의미에서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며 모든 대상들의 본질을 탐구하는 활동입니다.philosophy: philos(사랑하다) + sophia(지혜)그럼 지혜란 무엇일까요?지혜는 현상을 통해 그 이면(현상 너머)의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력(insight)입니다.또 지혜는 현상하는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본질을 바라보는 능력을 의미 합니다.다시 말하면 외면적인 것을 통해 내면적인 것을 통찰하는 능력입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것이 지혜의 시작(잠 9:10)이라고 했습니다.자 그럼 본질은 무엇일까요?본질이란 만유의 원인이자 목적입니다.만유의 원인: ~때문에,시작,알파,처음성경에 기록된 만유의 원인(창1,2장/사44:6;48:12/요1:1; 1:2;1:3; 1:10/계1:8;1:11; 1:17; 2:8 ; 22:13)만유의 목적:~을 위하여,끝 오메가,마침성경에 기록된 만유의 목적(사 44:6 ; 48:12/요 17:22/계 1:8 ; 1:11 ; 1:17; 2:8; 4:11 ; 5:13 ; 22:13)철학은 본질을 "진리"라고 부릅니다.-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요 14:6; 17:17/요일 5:6)본질이란 모든 현상들,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자 목적을 의미합니다."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와서 모든 것이 그것으로 되돌아가는것"-성경이 말하는 본질 계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존재 이유와 존재 목적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본질에 대한 탐구는 곧 존재론을 말합니다.철학=형이상학=존재론philosophy: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통찰meta-physics: 현상세계의 너머를 탐구하는 학문(형이상학)ontology:본질 탐구는 존재 이유/목적에 대한 탐구(존재론)철학에서는 "진리"를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습니다.본질:essence,wesen근원:origin,arche실체:substance,substanz일자:The One,Das Eins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철학은 곧 형이상학(meta-physics),물리학의 세계 너머를 탐구"철학은 모든 존재자들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이고,본질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이란 곧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 이유와 존재목적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이다."철학은 형이상학이고 형이상학은 곧 존재론 입니다.-형이상학에 대한 성경의 위대한 답변(롬 1:20/ 고후 4:18 /골 1:15,16/ 딤전 1:17 / 히 11:1 ; 11:27)어떤가요?제목에 적어놨듯이 철학은 신학의 발받침이라고 말한것이결코 과언 또는 허언이 아니었음을 여러분도 납득하셨을 겁니다.위대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고민하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성경에 이렇게 완전 무결하게 기록되어 있을 줄 저도 사실 몰랐습니다.진리 그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잠시 뒤로하고 6월 25일 고성국 박사님에 대한 강의에서 몇가지 짚어 보고자 합니다.여러분이 보셨듯 세상 학문중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철학은 신학(성경)앞에서 빌 2:10-11의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지난 6월 25일자 고성국 박사님의 강의 14분 58초 무렵 "절대적인 고독속에서 외로운 개인(단독자)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기독교 신앙"으로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이것은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1894년)'에 나오는 대목입니다(다음에 설명 드리겠지만 키르케고르가 주장하는 신앙은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저는 이부분을 보며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기독교의 교리를 신학자가 아닌 철학자를 통해 들어야만 하다니...키르케고르의 인생이 망가지고 그가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창했던이유도 당시 덴마크는 국가 교회(state church)-루터교를 지향하며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으로 통치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또 고박사님은 칼빈의 '예정설'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믿고싶어도 이미 칼빈주의의 이중예정에 의하면 천국갈 자, 지옥갈 자가 정해져 있어서 죽고 난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야 비로소 자신의 구원의 여부를 알 수 있기에 평생동안 불안에 떨면서 살바엔 신앙갖기를 체념한걸로 저는 생각되었습니다.여러분...저는 솔직히 칼빈이 천국에 갔는지 확신이 안 섭니다.이 칼빈주의는요 이렇듯 그 얼토당토 않는 비성경적인 교리로 인해유신론적 실존주의가 더 기독교 신앙에 가깝다는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칼빈주의는 기독교(복음)라는 진리를 종교 또는 철학으로 격하 시켜 버렸습니다.이 칼빈주의를 신봉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할 필요도 없으셨고 하물며 그분의 대신속죄를 왜 믿어야 하는지 퀘스천 마크 입니다.믿든지 아니하든지 이미 다 정해놓으셨는데 말이죠.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성경적 구원의 확신과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견뎌내야 할 그리스도인이 불안과 절망에 떨며 유신론적 실존주의라는 철학에 의탁해야 하는 비극이 말이 됩니까?존경하는 고(故) 구영재 선교사님의 책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52-3p에 가서 보면 에스텝(Estep) 교수는"교회의 타락에 대한 재침례교도들의 해석은 개혁자들과는 매우 다르다. 개혁자들은 분명히 콘스탄틴 시대를 교회의 승리의 시기로 보는 로만카톨릭 교회의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중략)그들에게 있어 개혁이란 교황권에 대한 반동이었지 로만카톨릭교의 제도로서의 교회의 개념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중략)그들은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는 믿었지만 교회라는 전체적 일치감에서 제외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로만카톨릭교회와 완전히 분리된 이후에도 그들은 계속 개혁 이전 로마교회와의 연속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 당시 개혁자들은 개혁 이전의 교회조직을 교회가 아니었다고는 보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재침례교도들이 개혁자들을 완전한 개혁자로 보지 않은 이유였다".군더더기 없는 비평입니다.간단하게 요즘 개혁신학자들의 성경 무오성에 대한 입장만 봐도 답이 나오는 부분입니다.개혁신학이 과학과 철학, 현대주의의 맹공에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잠식되가고 있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필요 없습니다.국내에서 주류 교파,주류 교단이라는 선민의식에 도취되서 성경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가르치기 보다는 칼빈주의만이 진리라고 믿으며허구한날 "칼빈이 나의 목자시요, 칼빈께서 이르시되..."를 남발하는 개혁주의 진영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갈라디아서 1장 6절 말씀은 칼빈주의를 경고한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사료됩니다.좀 두서가 없었는데요...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나눠보도록 하며다음 말씀과 함께 글을 맺을까 합니다.골로새서 2:8 어떤 사람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 그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
※ 전통적인 의미에서 철학의 정의에 대한 것은 부산대 철학과 정진우 교수의 영상을 참조하여 인용했습니다.
2023-07-10 22:09:50 | 박세원
2023년 7월 9일 (주일오전)
https://youtu.be/F9avvwVdj1c
2023-07-10 20:00:22 | 관리자
안녕하세요.직장때문에 중국에서 19년을 지내다가 2022년3월에 전가족이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하였습니다.
정동수목사님 설교말씀을 중국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고1아들과 중2딸을 위해 요번 설교하시기 전에 <수학싸부> 인강을 안내해 주셨는데, 신청 방법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잘 부탁드리겠습니다.
2023-07-10 17:21:04 | 김성재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걸 안다면 옳고,맞는 것만 따르면 되기 때문에 갈등이 없어 편안하다는 득이 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먼저 우리 몸 면역체계 하나만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창조주가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도 생각분별 잘 해야 덜 힘들텐데 점점더 생각의 부재가 심해지는 세상시스템에서 요즘 우리 아이들이 많이 불쌍해요..
2023-07-10 16:02:26 | 목영주
안녕하세요?
7월1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본문 : 욥기22~42장
1. 괄호 채우기(욥23:10)그러나 내가 가는 ( )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 )같이 나오리라.길, 금
2. 땅을 허공에 매다시고(욥26:7) 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뜻
3. 살아있는 사람이 코로 내쉬는 생명의 숨을 욥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27장)[하나님]의 영(욥27:3)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알려주신 지혜와 명철은 무엇인가?(28장)[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다(욥28:28).
5. 엘리후가 욥에게 진노한 이유는 무엇인가?(32장)[하나님]보다 도리어 자기를 의롭다하였기 때문에(욥32:2)
6. 엘리후가 욥의 세 친구에게 진노한 이유는 무엇인가?(32장)정확한 근거도 없이 욥을 정죄하였기 때문에(욥32:3)
7. [하나님]께서 만드신 조류 중에서 지혜와 명철이 없는 대표적인 새는 무엇인가?(39장)타조(욥39:14~17)
8. 꼬리가 백향목 같은 [하나님]의 창조물은 무엇인가?(40장)베헤못(욥40:15)
9. 두려움이 없는 존재로 모든 높은 것을 바라보는 자요, 모든 교만한 자녀들을 다스리는 왕으로 묘사된 사탄마귀를 상징하는 창조물은 무엇인가?(41장)리워야단(욥41:1)
10. [하나님]을 만난 욥이 결국 [하나님] 앞에서 한 일은 무엇인가?(42장)회개(욥42:6)
2023-07-10 10:33:01 | 관리자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해 졌음에도 풍요를 누리지 못한 가나한 삶'이란 말에 경종을 울리네요^^
이 땅에서의 염려와 복잡한 심정으로 영적인 기쁨을 누리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영과 육으로 풍성해지시는 자매 모임이 되길 소망합니다.
2023-07-10 08:46:54 | 김세라
-빠져 나올수 없는 심연속으로-
먼저 형제 자매님들 가정이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혹시 여러분들은 '철학'하면 어떤게 떠오르시나요?더 없이 화창하고 푸근한 봄날 백주 대낮에 공원에서 다른 이들이 각자 거닐때 잘 차려입고 안경낀 신사가 곰방대를 물고 세상 가장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고 턱을 괴고 벤치에 앉아 고뇌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아니면 후줄근하게 보이는 청년이 야심한 밤 골방에 촛점없는 눈으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천장을 응시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떠오르시나요?이처럼 '철학'하면 우리가 그 정의를 명확히 몰라도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그림이 그려집니다.그러면 '철학'이란 대체 뭘까?20세기 위대한 지성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이 '철학'의 정의에 대해 말한걸 한번 들어볼만 합니다.
Q:철학의 정의란?A:아직은 엄밀한 지식으로 정립되기 불가능한 문제들에 대한 추측들.Q:철학과 과학의 차이점 이란?A: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철학적 문제 들은 철학에서 과학으로 지속적으로 이행해 가고 있음.Q:철학의 유용한 점은?A:첫째는 과학적 지식이 아직 다룰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활발한 추측을 지속하는 것이다.과학적 지식은 인류가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만 할 문제들 중 일부분만을 다룸.오늘날 과학이 답변을 하지 못하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아주 많은 문제들이 있음.세계에 대한 상상의 영역을 가설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철학의 용도 중 하나인것.둘 째,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다고 여겼던 문제들과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음을 보여준다.우리가 앎에 이를 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유를 지속하게 해주며 앎처럼 보이는 것이 어떤 점에서 앎이 아닌 지를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것이다.Q.철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의 시녀 같은 것이 되는 건가?A:철학은 과학의 일부이나 시녀는 아니다.과학이 다룰 수 없는 수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임.가치와 관련된 모든 물음들을 예로 들면, 과학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려주지는 못할 것 같음.Q:철학의 미래는?A:과학의 발전은 철학의 중요성을 불가피하게 약화시킬거라 생각 됨.Q:철학의 가치를 요약한다면?A:첫째, 현재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아주 광범위하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도록 함.둘째, 사람들을 좀 더 지적으로 겸허하게 해준다는 것....저는 버트런드 러셀 만큼 철학에 대해 간단 명료하게 정의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또 그는 "언어가 시인의 손에 들어가면 꽃이 되지만, 철학자의 손에 들어가면 잘 훈련되고 조직된 군대가 되더라""사람들은 세상 무엇보다 생각을 두려워한다. 파멸보다, 심지어 죽음보다 생각을 두려워한다. 생각은 전복적이고 혁명적이며 파괴적이고 잔인하다. 생각은 특권과 안정된제도, 익숙한 관습을 봐주지 않는다. 생각은 아무 두려움 없이 지옥을 깊숙이 살핀다. 생각은 위대하고 신속하고 자유로운 세상의 빛이자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이다""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사회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매사를 의심하는데 바보들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는 것이다.""우리들은 모두 세상을 자신의 선입관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상반된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동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죠. "와 같은 생각하기를 기피하고 거부하는 불신자들과 sunday 크리스천들에게 해주고 싶은 주옥 같은말을 하기도 했습니다.물론 러셀은 대표적인 반기독교적인 인물입니다.그러면 우리는 버트런드 러셀의 인터뷰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추론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철학 속에 어떤 '의도'가 내재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혹은 어떤 '의도'로 철학을 전개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목적지와 활용 방법이 결정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저는 철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되었다면 예외없이 그 누구라도 성경을 읽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철학자의 본분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것을 넘어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습니다.과학 낙관주의가 붕괴된 세계 양차대전 후 불안과 절망에 휩싸인 수많은 사람들이 러셀에게 편지로 문의 하였다고 합니다.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지침들(추측컨대 성경에서 말하는)을 올바른 행위로 받아들이길 그만두고 어떻게 스스로 행동해야 할지 이제는 완전히 모르겠다고 하는 내용들로 말이죠.그래서 러셀은 전적인 확신을 적대시하며 그가 추구하는 철학의 용도와 유용성은 확신이라는 것이 자리하는 것을 엄금하며완전환 확실성 없이 활력을 갖고 행위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우는 것(도약)이라고 말이죠.이것은 바로 인본주의의 출발점인 '이성에서의 도피'와 '비(非)이성으로의 도약'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러셀을 비롯한 지성인들,사상가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한 시대(modern times)가 저물고 또다시 이들의 헛된 철학(과학 낙관주의)이 처참히 실패했을때 우리는 미국에서 일어난 근본주의 운동으로다시 그들을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다고 기대에 부풀었으나 하나님께선 자신의 전체 계획을 위한 직선적인 세계 경영통치를 그닥 늦추고 싶진 않으신것 같습니다.사탄과 그의 추종세력들이 자신들이 승리했으며 지금같이 그들의 시대가 영원할거라고 착각할 동안우리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끝나가고 있고 곧 심판이 닥치리란걸 알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인간 이성,도덕을 상실한 지금의 시대를 우리는 포스트 모던(post modern) 또는 포스트 포스트 모던(post post modern)시대라고들 합니다.그리고 현 시대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 철학은 실존주의(existentialism)입니다.대중문화와 사회 현상등을 통해 누구라도 인지 하고 있는 사실이지요.다음번엔 현재 만연한 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해 많이 부족하지만 간략히 적어 보고자 합니다.
-벧후3:8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벧후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2023-07-09 21:09:05 | 박세원
2023년 7월 9일 (주일 오전)
https://youtube.com/live/nb9u6tns2lY?feature=share
2023-07-09 11:40:16 | 관리자
2023년 7월 9일 (주일 오전)
https://youtube.com/live/nb9u6tns2lY?feature=share
2023-07-09 11:40:16 | 관리자
2023년 7월 7일 (금요일 저녁)
https://youtube.com/live/sze2jFbrFqk
2023-07-08 12:35:02 | 관리자
글만 읽어도 부쩍 성화된 기분이에요. 잘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전,성장이란 단어를 품기 위해 요즘 두 딸과 노력중이라 그런지 성령충만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오네요.. 부어주시는 평강의 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세상능력도 키워 예수님을 드러낸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소년들이라도 기진하고 피곤하며 청년들도 완전히 쓰러질 것이나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니 그들은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요, 달려가도 피곤하지 아니하고 걸어가도 기진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서 40장 30,31절 말씀입니다.
2023-07-08 12:15:09 | 목영주
빌3:20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이 예수님으로 인해 바뀌어야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있어요.
그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고요.
맑은 정신을 가지고 혼란한 이 시기를 바르게 걸어가야지요.
우리 모두 힘을 내자고요.
2023-07-08 11:04:16 | 이수영
2023년 7월 6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한 믿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나누는 교제는 주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인 것 같아요^^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우리의 칭의의 유일한 토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떠한 공로나 선함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공로나 선함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고, 보라 새 것이 왔도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회심한 그 순간부터,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주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마침내 그리스도를 대면 할 때까지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죄 없는 완전함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가 범죄 할 때, 아버지께 우리를 변호해주실
의로우신 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는 비록 형편없는 기도를 드릴지라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고
기도해주시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아버지, 우리는 날이 갈수록 우리의 죄책을 더 알게 되고
점점 더 우리의 죄를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더욱 더
신실함과 기쁨으로 주를 섬기게 해주십시오.
무엇보다도 우리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지금은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겸손히 주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주님
주께서 우리를 향해 하신 대속 사역은
우리가 우리의 섬김을 통해 주를 높이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섬김을 결코 공로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을 보완하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을 잘 섬긴다고 할지라도,
그 섬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토록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리스도만을 높입니다.
우리가 신실하고 겸손히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 10장 말씀을 묵상하라.
묵상은 적극적으로 성경을 되새기는 것이다. 시편에서 ‘묵상’대신 쓰인 표현으로는 ‘생각하다’와 ‘깊이 되새기다’를 들 수 있다. 묵상한다는 말은 스스로 진리에 관해 묻는 걸 가리킨다.
“지금 진리의 빛 가운데 살고 있는 걸까? 진리는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거지?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나? 진심으로 믿고 단단히 붙잡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성경 어느 본문을 묵상한다는 말에는 미리 치열한 연구와 해석을 거쳐 그 뜻을 파악한 상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무슨 얘긴지도 모르는 말씀을 되새기거나 누릴 수는 없는 법이다. 말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그 진리를 삶에 적용하도록 이끌어 간다.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성경 전체를 볼 때 본문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토대로 두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거기에 마음이 사로잡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스스로의 심정이나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묵상은 이성적인 사고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아니다.
성경적인 묵상은 성경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공부한 결과를 토대로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대단히 이성적이고 논쟁적이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분석과 성찰을 부추기고 그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맞춘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영적으로 성경을 ‘소화’하는 작업이다.
삶에 적용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이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상태와 앞길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어떻게 이끄는지 숙고하게 한다. 성경을 통해 힘을 얻고, 소망을 품게 하며, 스스로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기억하게 한다.
성경의 진리들을 가슴에 단단히 품고 새겨야 한다.
초월 명상의 한 갈래로 요즘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만트라명상’은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는 경험이기 때문에 이것은 성경적인 묵상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를 추상화하면 안 된다. 삶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여기면 안 된다.
성경 진리의 가르침이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행동과다와 주의력결핍장애에 빠진 현대사회는 속도가 떨어지는 성찰과 묵상을 실종된 기술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기도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가 되려면 규칙적으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일의 앞뒤를 골똘히 생각하여 깊은 확신에 이르는 성품을 갖는다. 어려운 개념을 쉽고 간단한 말로 설명할 줄 알며, 무슨 일을 하든 이면에는 그 이유가 있다.
만사를 건성으로 살피며,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고르고 선택하며 살뿐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다 보니 피상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묵상하는 이들은 압력을 받아 내고 견딜 줄 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쭉정이처럼 남들이 몰려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 뿐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가식적이고, 공허하며, 진전성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데 실패하여 원래 모습과 생활방식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높고 희귀한 일을 두고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믿음의 진리가 마음과 성품을 사로잡고 또 빚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유산을 남겼는데 이것저것 떼고 나면 몇 푼 안 될 것 같아 오래도록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기대와 달리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를 게 뻔하다. 실제로는 갑부였는데 쪼들리며 살았다니!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만은 피하라고 당부한다.
어쩌면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쁜 습관에 시달리고, 걱정, 따분함, 낙담, 분노 등에 휩쓸리기 일쑤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맞서고 처리해야 할 크고 작은 문제와 이슈들이 산더미 같다. 하지만 그 바닥에 깔린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안에서 부요해졌으면서도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다.
사도바울의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님의 ‘화학처리’, 다시 말해서 ‘영적인 감동’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머리로 진리에 동의하고 입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생활방식에는 이렇다 할 실질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성령님이 마음을 민감하게 하신 상태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는 진리의 빛에 노출되면, 정서적인 반응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생활하고 행동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성령님은 현실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쁨에 겨워 두려움을 잊고 과감하게 행동하게 하신다. 그러면 인생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복음 속에서 자신의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영적인 완고함, 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실감해야 한다. 얼룩덜룩 오점이 많은 선행 기록부를 가지고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 허다한 죄와 허물을 다 덮는 게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선택은 저마다의 몫이다. 두려움과 야심, 탐욕과 욕정, 중독과 내면의 공허감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알고 배워야 한다.
2023-07-08 10:44:26 | 이은정
살아계신 하나님을 뵐 날을 고대하는 마음은 최대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복음전하고 사랑,희생이란 단어를 저절로 품게 되는 것 같아요..육신의 연약함(ex. 고정관념,급한성격)은 제가 영안실에 누워있다는 상상으로 극복-제일 빠르게 감사함으로 전환시키는 저만의 방법이에요~^^
2023-07-07 13:46:02 | 목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