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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는 관계를 맺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의 삶은 독립적이고 자치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협소한 영광을 뛰어 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를 늘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도록 만들어 졌고, 이 공동체에는 이웃, 가족, 친구, 교회, 국가, 자매, 형제, 부모, 배우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웃이 포함됩니다. 매일 관계를 맺는 이 관계망은 우리를 고립과 단절로부터 벗어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집중할 때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공동체의 영광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세상에는 우리 삶의 규모를 현실적인 일들로 축소시키려는 강력한 압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해석과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전체를 보는 관점(origin to destiny)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3장. 순전한 인격을 갖춰라.   순전한 인격은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성품 가운데 하나다. 순전한 인격은 건전한 교리를 믿고 성경의 진리를 충실히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하다.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의 도덕적 원칙에 대한 일관된 순종은 기독교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정한 도덕 기준은 얼마나 높을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도덕적 순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고결한 윤리 기준을 힘써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명예, 우리의 인격, 우리의 증거를 위해서다.   우리는 모든 명예를 포기하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차원에서 우리의 명예를 지키는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명예란 특히 도덕적 순전함을 견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도덕적 순전함을 저버리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빠르고 심각하게 우리의 명예를 손상시킨다.   우리가 높은 윤리 의식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순전한 인격 때문이다. 내면의 도덕적 순전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우리의 인격이 이미 근본부터 부패했다는 증거다. 순전한 인격을 위해 싸워야 할 가장 중요한 싸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순전한 인격을 위한 싸움의 승패는 생각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부패한 인격은 반드시 명예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평판은 우리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고, 증거는 우리의 인격과 행위와 하나님에 관한 우리 자신의 증언을 의미한다.   도덕적 순전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말을 생각해 보자. 그의 말은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진실로 믿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도덕적 순전함을 무시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과 태도를 통해 하나님에 관해 거짓말을 전하는 것이다.   교회의 명예와 우리의 평판과 인격과 증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24. 교리에 충실하라.   사람들은 종종 왜 교리를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어떤 사람들은 교리보다는 실천에 좀 더 비중을 두는 설교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천적인 적용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의 설교는 대부분 건전한 교리를 충분히 강조하지 않고, 대신 인간관계나 유사 심리학 및 일상생활과 관련된 피상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는 경향이 다분하다.   교리적 진리와 실천적 진리를 구별하는 것은 인위적이다.   교리는 그 자체로 실천적이다.   기독교 믿음에서 건전한 교리보다 더 실천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씀의 진리를 저버리는 경우에는 어디에서도 경건한 삶을 위한 토대를 발견할 수 없다. 교리의 토대 위에 실천 원리를 건설해야 한다. 건전한 교리를 옳게 이해해 선포하는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교리가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먼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하지 못한 진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고, 거룩함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죄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거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삶이 불가능 하다. 이것이 바로 교리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자 교리가 그 자체로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2023-12-16 09:21:30 | 이은정
안녕하세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닮으신 자매님! 예전 교회서점에서 책 구입할때 자매님의 친절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뵙는날 오기를 고대합니다. 늘 주안에서 평안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2023-12-14 20:12:21 | 박세원
가족사진이 올라오기까지 세월이 10년이 흐른건가요~ 아이들이 이제 커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여요^^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기쁜 날이 오면 사진 또 찍어 주실거죠~ 그날을 기대합니다.
2023-12-14 14:34:29 | 이수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여러 형제 자매님축하드려요^^ 아는 얼굴들도 보여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네요. 주님의 몸에 더해지신 여러분의 마음가짐도 다르지요? 하늘에서도 축하하며 함께 참관했겠지요. 다시 한번 침례에 순종하신 것에  축하 드립니다.
2023-12-14 14:21:24 | 이수영
<K 형제 성추행 사건 재판 종료>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약 2년 전에 저희 교회에서는 저희 교회에서 목사 임명을 받은 부산의 K 형제가 성추행으로 기소되어 목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목사 임명을 취소하였습니다.   목사 임명 취소 내용 그 뒤 약 2년 동안 정식 재판이 진행되었고 2심 재판부는 2023년 12월 8일 K 형제에게 1심 형량인 징역 8개월을 그대로 선고하여 그는 법정 구속되었고 이로써 이번 사건이 최종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는 재판 기간에 횡령죄, 명예훼손죄 등으로 검찰에 의해 추가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희 교회가 목사로 임명한 형제와 관련된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공지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이 관련된 모든 분들에게 임하기 원하고 특히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당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매님과 그 가정에도 주님의 화평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12월 12일 사랑침례교회를 대표하여 집사회 일동 
2023-12-14 10:41:10 | 관리자
성지순례를 다녀와서(4) 미디어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을 넘어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신비가 무엇인가? 그 신비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지만, 성경만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비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생각은 오로지 남는 것은 기록뿐이라는 것이었다. 기록은 우리 사랑침례교회의 미디어 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도행전 13장부터 21장까지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이 소개된다. 많은 교회, 지명, 사람들이 나오는데, 지금은 현장에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는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여기가 OOO 교회 터”라고 소개하는 곳이 그럴듯하게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성경을 보면 빌립도 교회는 루디아 집에서 시작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서 시작하였고, 골로새서 교회는 에바브라가 시작하였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라는 여인의 집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교회는 가정교회였다. “여기가 OOO 교회 터” 라고 하는 곳이 가정교회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변천하여 우리가 이번에 본 교회 터가 되였는지를 연결시켜 주는 매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아쉽게도 사진기는 1839년에 발명)이라도 찍어 놓았더라면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고, 누구군가 글을 남겼다면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랑침례교회는 미디어 선교를 잘 한다고 외부에 알려져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미디어는 매체를 말한다. 매체는 어떤 것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미디어 선교를 한다고 할 때 미디어(매체)는 기록 매체, 저장 매체, 인쇄 매체, 녹음 매체 등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선교의 산출물은 자료다.   이런 자료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게 된다. 기록으로 남아야만 영원토록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세대들이 이어받을 수 있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침례교회가 미디어 선교를 하는 이유가 있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느낀 점에 대한 글은 오늘 4회로 마친다.
2023-12-13 13:13:56 | 이규환
안녕하세요? 인천 미추홀구에서 오시는 김영길 형제님(하정숙 자매님)이 최근에 폐암 판정을 받아서 항암 치료를 받을 예정입니다. 지금은 무릎 수술 받은 것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움직이지 않고 요양 중이며 1달 내로 표적 항암제를 사용하여 집중 치료를 받을 예정입니다. 우리 모두 인간이므로 고통을 당하고 병에 걸 릴 수 있습니다.  투병하는 형제님과 그 옆의 자매님을 기억하고 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롬12:15). 너희 가운데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시를 노래할지어다....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사람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효능이 있느니라(약5:13, 16). 샬롬 패스터
2023-12-12 12:13:25 | 관리자
  로마서로부터 히브리서에 이르는 14개 바울 서신서에 접하여 무척 궁금해하던 때가 있었답니다. 사도 바울은 도대체 누구한테서 그토록 위대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까, 바로 그 점을 말입니다.   로마서 내용 일부만 대충 짚어보더라도, 불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1:18-32),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3:21-26), 아담과 그리스도(5:12-21), 죄를 향해서는 죽고 의를 향해서는 살아 있다(6:1-14),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6:15-23), 율법에서 벗어남(7:1-12), 율법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7:13-25),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음(8:1-11), 성령을 통해 양자 됨(8:12-17) 등등의 그야말로 심~~~오한 진리를 구약성경 조각들 이리저리 짜맞춰 알아낼 수는 없는,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위 궁금증에 대한 답은 일단 성경에 나와 있다고도 할 수 있겠군요. ‘내가 선포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아니하고 배우지도 아니하였으며 다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주어졌느니라’라고, 갈1:11-12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원래 궁금증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법.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 즉 1:1 PT 받은 건 그렇다 치고...그렇다면...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계시들을 받았을까, 그 점이 또 새로이 궁금해지더군요. ^^   ‘자신의 은혜를 통해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내가 자신의 아들을 이교도들 가운데서 선포하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하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아라비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노라.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내가 베드로를 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보냈다’라는 갈1:15-19 말씀은 위 새로운 궁금증 관련 약간의 단서 정도를 제공할 뿐, 답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말씀 내용을 분석해 보면...1:1 PT 장소는 아라비아...뿐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참 아리끼리하죠. 아라비아에서 꼬박 삼 년 보낸 것도 아닌 것 같거든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아라비아로 갔다라는 말은 안 나오는 걸 보면 말입니다.   위 갈1:15-19 말씀뿐 아니라,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라는 고후12:7 말씀 등으로 짐작컨대,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많은 특별한 계시들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위 말씀 구절들로 인하여,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계시들을 주셨을까...가 더욱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가끔 인터넷상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만, 제가 궁금해하던 그런 내용에 관한 자료들은 없더군요.   엊그저께 구입한 신학원 마지막 과목 필독서 무려(^^) 세 권 가운데 ‘은혜와 근성의 사람 바울’(찰스 스윈돌 지음, 곽철호 옮김)이라는 책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속에 혹시 제 궁금증들에 대한 답이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로 거의 총알 같이 읽어보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그토록 빨리는 안 읽어보죠.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건 이후 삼 년 동안의 행적, 뭐 좀 알아냈냐구요? ^^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책 내용에 따르면, 바울의 아라비아 생활에 관해 연구한 사람들 많았던 것 같습디다만, 제가 찾고 있던 답은 안 나와 있었습니다.   답은 아니었습니다만, 마치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글이 있더군요. 해당 부분만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이 어떤 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여러 이론들을 가지고 그 빈곳을 채우려고 한다.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여정의 목적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제안들이 넘쳐난다. (중략) 진리는,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다.   ...   더 이상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분량을 몰라도 유분수지, 그렇잖아도 제안들 넘쳐나는 그런 곳에 얼쩡거려 봤자 다치는 일밖에 더 있을까 싶어서... ^^ ( 끝 )  
2023-12-12 00:07:59 | 최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