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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내 나라를  위한 마음'이 절절해 익는 동안 눈물이 어립니다. 어떻게 그당시, 확고한 믿음 가운데 세태를 직시하고  우매한 백성들을 위한 인물을 우리나라에 주셨는지 !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거론 안하면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다큐로만 된 영화가 온 세상으로 퍼져  대한사람들이 각성하길 바랍니다. 국부에 대한 기념관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인 슬픈 현실이니.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이 속히 지어지길  바랍니다.
2024-02-13 07:41:55 | 이수영
안녕하세요?  2월 1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1. 이스라엘 자손에게 부정하니 먹지 말라고 하신 짐승들은? (레 11장) 낙타, 토끼, 산토끼, 돼지 (4-7절)     2. 여자아이를 낳은 여인은 며칠 동안 정결하게 하는 날을 채워야 하는가? (12장)   66일 (5절) 3. 사람에게 나병이나 종기 등이 생기면 누구에게 데려가라고 하셨나? (13장)  제사장 (2절) 4. 제사장은 나병에서 정결하게 될 자에게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몇 번 뿌리는가? (14장)  일곱 번(7절)  5. 유출이 있는 자가 정결하게 되려면 며칠을 센 후 자기 옷을 빨고 몸을 씻을 수 있는가? (15장)  이레(7일) (13절)  6. 아론은 죄 헌물로 취한 두 마리 염소를 두고 각각 무엇을 위해 제비를 뽑는가? (16장)  한 제비는 주를 위하고 다른 제비는 속죄 염소를 위하여 (8절) 7. 육체의 생명이 있으며 혼을 위해 속죄하는 것은 무엇인가? (17장)  피 (11절)  8. 사람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해서 제물로 바치는 이방 신의 이름은? (18장)  몰렉 (21절) 9. 포도를 수확할 때 다 따지 말고 누구를 위해 남겨 두라고 하셨나? (19장)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 (10절)  10.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를 어떻게 하라고 하셨나? (20장)  반드시 죽일 것 (9절)  11. 제사장 아론의 씨 중에서 주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고 주의 헌물도 드리지 못하는 자는 누구인가? (21장)  흠이 있는 남자 (21절) 12. 제사장의 딸이 거룩한 것들의 헌물을 먹지 못하는 경우는 언제인가? (22장)  낯선 자에게 시집갔을 때 (12절) 13. 주의 명절 중에서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첫째 날과 일곱째 날에 집회로 모이는 명절은? (23장) 무교절 (6-8절)   14. 성막의 상에 올려두는 보여주는 빵은 모두 몇 개인가? (24장)  열두 개 (6절)  15. 이스라엘의 땅은 몇 년째에 안식을 취하게 되나? (25장)   일곱째 해(4절) 16.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 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순종하게 되면 몇 배나 더 벌을 받게 되나? (26장)  일곱 배 (18절)  17. 하나님께 맹세로 봉헌한 사람 중에서 예순 살 이상 남자의 정한 값은 얼마인가? (27장)  십오 세겔 (7절)  18. 이스라엘 자손 중 스무 살이 넘어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숫자는 모두 몇 명으로 계수되었나? (민 1장)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 (46절)  19. 성막을 중심으로 동쪽 편에 진을 치고 가장 먼저 출발하는 세 지파는? (2장)  유다, 잇사갈, 스불론 (3-9절)  20. 레위 사람 중에서 태어난 지 한 달 이상 된 모든 남자의 수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처음 난 모든 남자의 수는 몇 명의 차이가 나는가? (민 3장)  이백칠십삼 명 (46절) 
2024-02-12 10:08:15 | 관리자
아름다운 두자매님!!! 오랫만에 사진 올라왔군요.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씀처럼 한 교회에서 함께 믿음을 키워가고 계시니 하니님께서 은혜를 더하사 필요한 부분들 채워주시고 인도하사 하나님의 뜻데로 살아가는 귀한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4-02-11 20:01:48 | 김경애
먼곳임에도 불구하고 늘 한결같은 이쁜 자매님들~~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소망하는 일들 모두 이루시고 앞으로의  일상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길 바래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24-02-11 00:03:05 | 김혜순
  일전에 올린 바 있는 ‘성경의 주제에 대하여’란 제목의 글과 관련 있는 내용, 그러니까, 그 후속편 성격의 글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상의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한글판 NIV 성경, 개역 개정 성경 등(이하 ‘NIV 성경 등’이라 함)에는 ‘천국’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앞서의 ‘성경의 주제’ 관련 글에서 말씀 드린 바 있듯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신 왕국, 즉 ‘kingdom of heaven’을 ‘천국’으로 번역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왕국 플랜’ 자체를 삭제 또는 흐려 버리는 행위...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킹제임스 성경 원문 상의 ‘kingdom of heaven’이 NIV 성경 등의 원문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살펴본바, 역시 ‘kingdom of heaven’, 똑같은 ‘kingdom of heaven’으로 되어 있더군요. 바꾸어 말씀 드리면, NIV 성경 등에서만,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만...창조의 마스터 플랜 중 핵심이라 할 ‘왕국 플랜’을 망쳐 놓고 있더라, 이 말씀입니다.   한편...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상의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의 경우는 어떤가 하면, 원문 상으로 똑같은 ‘kingdom of God’을 NIV 성경 등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해 놓았더군요.   위와 같은 NIV 성경 등의 번역 실태에 접하여 몇 가지 생각들...나름대로의 심각한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우선...‘kingdom of heaven’, ‘kingdom of God’을 ‘천국’, ‘하나님의 나라’로 각각 번역한 것은...글쎄요...상당히 사악한 행위...아닐까 싶더군요. 왕들의 왕, KING OF KINGS(계19:16), 그 ‘KING’을 지워 버리겠다는, 사탄이나 감히 품을 만한 지극히 사악한 의도가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그리고...세리 출신의 사도 마태가 기록한 마태 복음, 그 책에만 나오는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32개 절에 걸쳐 33회 나오는 그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을 말씀으로 남겨 주셨을 때는...특히...바로 이어지는 절(마19:23. 24)을 통해 예수님께서 직접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을 따로 구분하여 말씀하실 때는...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 그리하셨을 텐데...그런 건 알 필요 없고...?...그냥 하나는 ‘천국’,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로 마구 번역하다니...그야말로 대책 안 서는 사람들이라는 생각 했답니다.   하나 더 있군요...‘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천국’으로 번역된 성경...그러니까, ‘왕’, 즉 ‘king’이 사라진 ‘천국 복음’...엄밀히 말하자면, 성경에도 안 나오는 복음(글 번호 1018 '네 가지 복음 관련하여' 참조要)을 땅끝까지 전하고 어쩌고 하는 그런 분들 생각에...뭐랄까요...답답~~~한 생각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더 있군요...^^...거시기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kingdom’이 ‘국’이든 ‘나라’든 뭐든, 그런 건 생각조차 않음에서 나아가...유대 백성들이 입에 올리기 두려워 ‘LORD’, 즉 ‘주’로 표기해 놓았다는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 ‘YHVH’를 우리말 그대로 많이도 적어 놓은...그런 성경 들고서 주여삼창, 통성기도 소리 높여 하고 있을 이 나라 그리스도인 분들...용감한(?) 대한의 용사 아니라 대한의 그리스도인 분들 생각, 서글픈...?...두려운...?...생각에 잠겨 보았답니다.   가끔 드리곤 하는 말씀입니다만, 우리 손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있음에 무한한 감사 드리는 동시에 최대한 널리 알려 나갈 책임 느끼게 됩니다.  ( 끝 )        
2024-02-06 11:32:20 | 최영오
안녕하세요? 3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1. 예수님 십자가 처형 시 두 명의 사형수의 증언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왜 차이가 나는지?   마가복음 15장 32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을 모욕하더라'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누가북음과 이 부분에서 내용이 일치하려면, 예수님을 모독한 십자가에 매달린 두 명의 사형수 중 한 명만 예수님을 모독해야 하고, 즉 "못 박힌 자들도"와 같이 복수가 아닌 '못 박힌 자도'라고 단수 표현이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 부분이 이상합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43절을 보면 예수님 양쪽에 십자가에 매달린 사형수 중 한 명은 예수님을 조롱하였으나 다른 한 명은 그 사형수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라며 예수님과 낙원에 함께 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황상 좀 더 상세하게 기록된 누가복음의 기록이 더 정확할 것으로 보입니다만은 왜 이런 차이가 성경에 기록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 성령님께서 4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의 방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마태, 마가복음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강도들을 보여 주고 있으며, 누가복음은 십자가의 주님을 보고 결국 자신의 죄를 깨달아 주님을 의지하며 구원받는 것을, 요한복음은,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구약에 기록된 말씀들을 증거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질문의 요지를 성경을 통해 살펴 보겠습니다. 처음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때에는 둘 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통해 보듯이 마태, 마가복음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모욕'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마 27:44.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같은 말로 그분을 욕하더라. 막 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을 욕하더라.   십자가에 못 박기 전, 심한 채찍질을 당한 후에 십자가에 못을 박게 됩니다. 채찍질 후 더 큰 고통의 십자가형을 사람이 견딜 수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두 부류의 사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강도처럼 완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남을 저주하지만, 그 고통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3. 그들이 갈보리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범죄자들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있더라. 34. ¶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분의 옷을 나누어 제비를 뽑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이 처음 들은 말은 ‘저들을 용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바로 주님을 알아보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한 강도들은 강팍한 마음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유대 종교인들, 지나가는 사람들, 로마 병사들의 말에 한마디도 되받아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구원받은 강도의 마음은 점점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눅 23:40.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결국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래 42절처럼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눅 23:42.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앞에 간단히 요약한 것을 풀어 설명 드렸습니다.  "못 박힌 자들도"라고 복수로 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기록된 말씀에 따라 증거하자면,   막 15:32 Let Christ the King of Israel descend now from the cross, that we may see and believe. And they that were crucified with him reviled him.   ’they that’이라고 영문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호(ὁ)”는, 관사로 사용되었으며 주격 남성 복수입니다.   2. 창세기 6장에서의 거인의 출현 시기에 대한 궁금증   창세기 6장 1절에서 4절에 적혀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가 그들이(딸들이) 아이들을 낳음으로 거인이 출현했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목사님의 설교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해 아이를 낳아 거인이 출현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6장 4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가.......(생략)'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뒤에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가...'에서 "그 뒤에도 즉"이라는 표현을 본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천사)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가기 전에도 거인이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민수기, 여호수아기, 사무엘기 등에서도 여러 거인이나 거인족이 출현하는 부분은 이해가 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8명의 가족 중 노아의 아들들의 며느리들이 배에 같이 타면서 그들 중 거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던 가능성으로 인해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거인족이 출현 할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6장 4절의 문자적 해석상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의 딸들에 들어가기전에도 거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요?   답변 : 성경을 읽으실 때 기록 시기와 배경을 잘 이해하고 읽으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노아의 홍수는 노아의 나이 600세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창 7:6) 땅 위에 물들의 홍수가 임할 때에 노아가 육백 세더라.   노아의 출생년도는 BC2948년이고 600년을 더하면 BC2348년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창세기는 BC1450년경에 기록되었으니 노아의 홍수 898년이 지난 시점에 기록 되었습니다.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가......‘에서 “당시에“라는 말은 노아의 홍수 이전을 말하고 ”그 뒤에도“라는 말은 노아의 홍수 이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노아의 홍수 이전과 이후에도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 들어가 거인들을 낳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타락한 천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후로 마지막 심판 때까지 지옥에 들어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후 2:4.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5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   노아의 8명의 가족 중 거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추정은 대단히 잘못된 견해입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keepbible.com/Dictionary/View/2g5?stype=snc&keyword=%EB%AF%B8%EB%A6%AC%20%EC%95%84%EC%8B%AC    3. 신약 공관복음에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마귀의 시험에서 예수님과 마귀의 대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늘의 왕국을 선포하러 다니실 때,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곳곳을 다니실 때 많은 마귀들린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마귀들린 자의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쉽게 알아채고 존칭을 쓰면서 사정하는 말들을 합니다.   욥기 1장 7절에도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서 오느냐? 하시니 이에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에서 이리저리 다니고 그 안에서 위아래로 거닐다가 오나이다"라면서 존칭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 사탄이 비록 하늘에서 매우 높은 자리에서 있다가 그의 교만으로 쫓겨나긴 했지만, 또한 예수님께서 사람의 완전체 몸으로 오신 것을 고려하더라고, 창조주와 창조물이라는 불변의 바뀔 수 없는 위치가 있고, 이 또한 사탄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을 때, 마귀는 예수님께 마치 같은 동등한 위치나 또는 아래 사람에게 말하듯 존칭을 쓰지 않고 말을 했습니다.   사탄은 '왜?', '어떤 이유로?' 예수님께 말을 높이지 않고 반말조로 명령을 하거나 제안을 했을까요? 제가 이해 못한 부분이 있을까요?   답변 : 영어는 한국어처럼 존댓말, 반말 표현에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공손한 표현이 바로 '영어 존댓말', '영어 높임말'이 됩니다. 아래 두 구절을 영문과 한글 표현으로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 8:31. 이에 마귀들이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내쫓으시려거든 우리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하소서, 하매 So the devils besought him, saying, If thou cast us out, suffer us to go away into the herd of swine.   마 4:3. 그 시험하는 자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 하거늘 And when the tempter came to him, he said, If thou be the Son of God, command that these stones be made bread.   즉, be 동사는 명령문으로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am, is, are을 쓰지 않고 be를 써서 be made bread. 이렇게 표현됩니다. 또한 한글 번역으로 옮길때에도 영어의 표현과 문맥으로 존댓말과 명령조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탄, 즉 마귀들의 통치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탄이,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어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과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부터 하나님보다 더 높이 자기의 위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에 눈이 가려 창조주와 창조물의 개념이 아예 없다는 말입니다.    덧붙여 성경적 교리로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면,  욥기서에 높임말이 사용된 것은 마귀가 창조주 하나님을 대한 것이고,  시험할 때 높임말이 사용되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의 직분을 가지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마귀가 창조물로 대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아래 성경 구절을 유심히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라는 말씀이 교리적 확증을 줍니다.    (kjv 마태복음 4:3 흠정역)  그 시험하는 자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 하거늘,   샬롬
2024-02-05 22:42:07 | 관리자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가사 하나하나가 절실히 와닿습니다. 오로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삶 갈길몰라  헤메는 무지한 백성들앞에  이스라엘을위해 모세를 준비시키신것처럼 이승만 대통령을 선물로 보내주신 하나님 우리나라에 축복이고 은혜였습니다. 우리모두가 그분의 뜻을 이어받기를 원합니다. 용기있는 결단력과 지혜로움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키게 하옵소서.
2024-02-05 14:51:21 | 김경애
  영화 '건국전쟁' 주제가   '저 바다 너머 그리운 나라'   작사 송재윤 작곡 오현규 노래 정진영     저 푸른 바다 너머로 날아가는 갈매기 나래에 실려서 내 나라로 가고파   이 몸이 다시 죽어서 또 살 수 있다면 구슬땀을 흘리면서 새 나라를 열고파   가슴에 맺힌 서러움 알알이 영근 이 눈물 모두 다 버리고 돌아가리   먼 길을 헤쳐오면서 못다 한 일이 있기에 다시 할 일을 하리   내 혼에 불을 지펴서 더 살 수 있다면 지친 몸을 일으켜서 내 나라를 세우고파   가슴 벅차게 들리는 영원한 약속의 말씀 뜻하신 그대로 따라가리   긴 세월 살아오면서 못다 꾼 꿈이 있기에 다시 꿈을 꾸겠네   먼 길을 헤쳐오면서 못다 한 일이 있기에 난 다시 할 일을 하리   어둠을 뚫고 오면서 못다 꾼 꿈이 있기에 다시 꿈을 꾸겠네                      
2024-02-05 10:02:39 | 김문영
현실적인 예화를 곁들여 성화의 길을 쉽게 설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설교를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평안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2024-02-04 22:28:04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