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37811개
안녕하세요?  7월 4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1.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무엇과 같다고 했나? (1편)  바람에 날리는 겨(4절) 2.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 다니는 중에도 잠을 잘 수 있었던 이유는? (3편)  주께서 떠받쳐 주셨기 때문(5절)  3. 시편 5편은 다윗이 어떤 악기에 맞추라고 악장에게 준 시인가? (5편)  느힐롯(1절)  4. 다윗이 다시는 압제하지 못하도록 기도한 사악한 자가 속한 곳은? (10편)  땅(18절)  5. 주께서 무엇을 지키시며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겠다고 하셨나? (12편)  주의 말씀들(7절)  6. 하나님을 둘러싼 창공의 짙은 구름들은 무엇에 의해 사라지는가? (18편) 광채(12절)  그분 앞에 있는 광채(12절)  7. 우리가 신뢰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병거나 말이 아닌 무엇인가? (20편)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7절)  8. 주께서 무엇을 한 세대로 여기시는가? (22편)  한 씨(30절)  9. 주의 거룩한 곳에 서는 사람은? (24편)  깨끗한 손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4절)  10. 주께서 온유한 자를 무엇으로 지도하시는가? (25편)  판단의 공의(9절)  11. 다윗이 주께 바라던 한 가지 일은 무엇인가? (27편)  평생토록 주의 집에 거하여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의 성전에서 여쭙는 것(4절)  12. 사악한 자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28편)   악한 일(3절)  13. 다윗은 무엇으로 주께 경배해야 한다고 했나? (29편)  거룩함의 아름다움(2절)  14. 다윗은 무엇 때문에 기력이 약해지고 뼈가 쇠약해졌다고 고백하는가? (31편)  자신의 불법(10절)  15. 다윗은 올바른 자들이 해야 할 합당한 일이 무엇이라고 했나? (33편)  찬양(1절)  16. 어떤 자들이 땅을 상속하며 넘치는 화평 속에서 기뻐하는가? (37편)  온유한 자들(11절)  17.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장막들이 있는 곳은? (46편)  거룩한 처소(4절)  18. 온 땅의 기쁨이 되는 시온 산은 어떤 곳인가? (48편)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위대한 왕의 도시(2절)  19. 존귀함 가운데 거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과 같다고 했나? (49편)  멸망하는 짐승(20절)  20. 아삽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은 다 어떤 자들이라고 했나? (50편)  찬양을 드리는 자(23절)  
2025-08-03 14:47:10 | 관리자
저는 욥기중 40장 1절~5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신다는 생각(의식적훈련)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더운날씨 애국시민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보소서,나는 비천하오니 내가 주께 무어라 대답하리이까? 내가 내 손으로 입을 막으리이다.-욥기40장4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28gzVW49U
2025-08-02 17:48:42 | 목영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자!   지난주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설교를 들었다. 설교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자’   성경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광을 접한 이들의 반응을 기록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심에 압도되어 쓰러지거나 엎드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그분의 본질적인 거룩함, 위엄, 권능, 임재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환상이나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서, 죄인 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실제적인 임재로 나타난다. 이 영광을 경험한 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에스겔 에스겔은 바빌론 포로 시절,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환상 중에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사방으로 퍼지는 그 광채의 모양은 마치 비오는 날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 모양 같았는데 이것은 주의 영광의 모습을 가진 모양이더라. 내가 그것을 볼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씀하신 분의 음성을 들으니라.”(에스겔서 1장 28절)   또한 에스겔 3장 23절에서도 그는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때에 내가 일어나 평야로 나갔는데, 보라,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영광과 같은 주의 영광이 거기 서 있으므로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3장 23절)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에스겔은 말할 수 없는 경외감에 압도되어 땅에 엎드린다. 직접적으로 “죽겠다”는 표현은 없지만,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전적인 항복의 자세를 취한다.   2. 이사야 이사야 역시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했을 때, 자신의 죄된 상태를 자각하며 이렇게 외친다.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게 화가 있도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또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이 왕 곧 군대들의 주를 보았기 때문이라 하매.”(이사야서 6장 5절)   이사야의 반응은 단순한 놀람을 넘어서,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듯한 절박함이 느껴진다.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섰을 때 느끼는 절망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 사도 요한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때의 장면이 인상 깊다.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매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요한계시록 1장 17절)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서 말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진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다정히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인간이 자신의 죄성과 무력함을 깊이 깨닫고 죽을 것 같은 상태에 빠졌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며, 인간은 본질상 죄인이다. 죄인이 그분의 영광을 직접 마주하면 그 자체로 존재가 붕괴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은혜 가운데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한복음 1장 18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믿음을 통해 담대함과 아버지께 확신 있게 나아감을 얻나니”(에베소서 3장 12절)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가운데 계시하셨고, 그분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죄인에게는 죽음의 공포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의 빛이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지만 동시에 사랑이시며, 그분의 영광은 심판의 불과 동시에 구원의 빛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이사야처럼 회개하고, 요한처럼 두려워하되,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자. 
2025-08-02 13:21:03 | 이규환
글을 읽는 내내 너무나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내용에 마음 속에서는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눈시울은 붉어집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위 글을 쓰신 자매님의 바람처럼, 사랑침례교회의 모든 성도분들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왕으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의지하여 승리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으로 충만하기를" 저 또한 기도합니다.
2025-07-31 10:31:51 | 김영규
오늘 김갑순 자매님 무릎 관절 수술이  잘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최호성 형제님의 헌신적인 아내 사랑 돌보심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계십니다 외면하지 않으실것입니다 형제님의 간절한 바램과 절규를요 최호성 형제님 건강도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형제님께 늘 함께 하실것입니다  
2025-07-31 07:38:06 | 김순임
계속되는 폭염에  모두 평안하신지요? 산본에 살고 있는 최호성 형제, 김갑순 자매입니다.   제 아내와 손을 잡고 교회에 출석하여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 김갑순 자매가 지난 6개월여를 일어서지도,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만 의존하다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오늘 아침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1~2개월 동안 걷지 못한 환자에게는 수술 효과가 희박하므로 수술을 권하지 않는데, 더구나 6개월여를 서지도 걷지도 못한 것은 물론 중증 치매까지 있어서 이런 경우 수술을 하지 않고 있으며, 수술을 해도 잘해야 20%의 성공률로 그것도 보행기를 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라 수술을 포기하자는 선생님의 소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100% 완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믿기에,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7월 31일 오후 4시 30분에 우선 오른쪽 무릎부터 인공관절 수술을 해보고 경과를 보면서  왼쪽 무릎도 인공관절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입원할 때는 휠체어에 의존해서 왔지만, 퇴원할 때는 걸어서 퇴원할 수 있도록 형제자매님들의 중보기도의 도움을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기도가 중노동이라고들 하는데, 더운 날씨에 이렇게 힘든 부탁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형제, 자매님 가정에 주님의 평안을 축원드립니다.
2025-07-30 23:29:23 | 관리자
안녕하세요? 날이 무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면서 지난 주일에 선포한 하나님의 영광 신학을 생각하며 다음 글을 묵상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영광> 하나님은 모든 존재들 가운데서 ‘타고난 영광’ 혹은 ‘고유한 영광’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없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그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창조되기 전부터 그분은 영광스러운 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유의 영광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의 영광은 주어지는 것이다. 만일 왕의 옷과 왕관을 벗기고 그를 깨끗이 목욕시킨 거지 옆에 둔다면, 아마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될 것이다. 왕과 같은 사람의 영광은 외적이고 후천적으로 습득한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본성에 포함된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없앨 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다. 줄어들 수도 없는 온전한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행전 7장 2절에서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으로 불린다(시29:3에도 한 번 더). 태양이 빛나는 것처럼, 하늘이 푸른 것처럼, 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당신이 물을 축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물은 원래 축축하다. 당신이 하늘을 푸르게 만들거나 태양이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본성이 그런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없앨 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누어주거나 함께 나누지 않으신다. 이사야 48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복, 지혜, 부, 명예를 주시지만 자신의 영광은 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본질을 벗어버리시겠는가? 그분은 신자들 안에 자신의 영광을 심어두지만, 결코 그것이 자신에게서 떠나게 하지 않으신다. 영광은 우리의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이며, 우리를 통해 나타날 뿐이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성령의 사람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맥아더의 <예배>, 246-247쪽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위선자가 될 수 없다. 위선자는 고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려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영광을 취하려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1-2절에서 그런 위선자들을 질책하신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고자 할 때에는 절대로 우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할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을 가르치든, 간증을 하든, 기도를 하든, 헌금을 하든, 죄를 꾸짖든, 다른 어떤 선한 일을 하더라도, 우리의 동기가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켜 개인적으로 칭찬받기 위함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노력에 진실로 복을 주실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약간이라도 훔치려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과 기쁨을 빼앗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은 곧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참된 예배자는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그것을 인해 얼마나 돈을 벌게 될지, 얼마나 성공할지, 얼마나 큰 명성을 얻을지, 얼마나 많은 친구를 얻을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적으로 보일지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는 고독한 일이다. 참된 예배는 인기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맥아더의 <예배>, 255-256쪽
2025-07-30 14:10:0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