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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꾸는 꿈은 현실에서의 갈등이나 마음 속의 욕망이 반영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계획을 알려주기 위해 주신 꿈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 계시는 "네가 나중에 출세할 것이다", "부자가 될 것이다" 등과 같이 개인의 욕망을 달성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지요. 은사주의 교회에서 야곱의 예를 들어 "꿈을 꾸려고 하고, 뭔가를 보려고 하고, 그것을 입으로 자꾸 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데 (4차원의 영성), 이런 것은 성경 말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상입니다. 좋은 꿈을 꾸려고 노력하기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분의 관심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거기에 헌신하는 것이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04-28 22:08:56 | 김문수
요셉이 형들의 잘못 하는 일을 아버지께 알게 한 일들이 형들의 미움을 샀지요. 꿈이야기도 바르게 아뢰었음에도 아버지와 형들의 원망을 사게 되었고 결국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지요. 요셉이 이후에 이집트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고향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과 형들과의 일들, 아버지 등 등...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주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살게 되고 더욱 더 주님을 가까이 의지하고 믿음이 성숙되어가게 되지 않았을까요? 바른 것을 바르다고 하는 데에도 태도나 마음의 문제에 대해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요셉이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한 말에서 넓은 아량과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모든일에 감사하라는 말씀과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오직 우리의 길을 아버지 하나님과 주께 의지하게 됩니다.
2012-04-28 16:00:29 | 이수영
형제님의 글 이야기를 기다린답니다.^^ 진작에 활동하셨어야 하는데 말이죠. 담담하지만 정감이 느껴져 참 좋은데요. 얼마든지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모두 빨강이나 초록일 수 없지요. 무지개색과 혼합색들이 섞여 있어서 아름다운거 아닌가요?
2012-04-28 15:40:40 | 이수영
성경적인 교회, 지금도 가능한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저는 기독교 자체는 싫어하지 않아요. 예수님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나 목사는 싫어요.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들이 교회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경건해야 할 목사들이 합당치 않은 세습과 부정부패를 행하며 또 이단이나 사교들의 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저도 한때 교회에 다녀 봤지만 염증을 느끼고 지금은 마음속으로만 믿습니다.”   기독교는 온 우주 만물을 6일 만에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습니다. 온 우주 공간의 모든 것들은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사람들이 자신을 믿도록 기독교(교회)를 창시하셨을 때에,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아들을 수 있게, 그 길을 쉽게 알려주시지 않았을까요?   현 시대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성경에서 떠나 심히 뒤틀려 있습니다. 심지어 교과서인 성경마저도 샤머니즘과 이교 사상으로 심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른 교과서를 손에 쥐면 지금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일단 다음의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고치면 성경적 기독교(교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1.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닙니다. 예배당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면서 과도하게 건축을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배당이 성전이 되면 목사는 자연히 제사장이 됩니다. 이런 것은 구약 시대의 일입니다. 교회를 ‘성전’으로 부르는 일은 거의 한국에만 있는 일입니다(마16:18; 고전6:19; 고후6:16-18; 딤전3:15).   2. 신약 시대의 목사는 결코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는 목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도들 가운데 한 형제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바른 데로 이끄는 일을 하며 목사와 성도들은 직무가 다를 뿐이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엡4:11; 딤전3:1-7; 히2:11-13; 벧전2:9-10).   3. 목사는 성경을 읽고 말씀 자체를 강해해야 합니다. 록펠러, 제이 씨 페니, 링컨, 콜게이트, 마더 테레사, 성 프란시스 등의 이야기나 판에 박힌 예화 혹은 위인전으로 설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악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말씀 선포에 있지 프로그램에 있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의 엘리야, 엘리사, 예레미야 등으로부터 신약 시대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 날개, 알파 코스 등의 인위적 성공/성취 프로그램은 성도들을 영적 기근으로 몰아가려는 시도입니다(롬10:17; 고전1:18-25).   4. 주일 성수, 특별새벽기도, 십일조, 일천 번제 헌금, 큰 액수의 헌금을 통해 만사형통을 이루려는 것은 하나님과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허탄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어려움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최종 종착지는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므로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순례자로 지냅니다(마19:24; 고전10:13; 고후12:7-10; 딤후4:20; 약5:14; 히11:13).   5. 신약 시대의 헌금은 자발적으로 드리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강제성을 띤 십일조, 맥추 감사 헌금 등은 구약 시대에 신정 정치 하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율법으로 부과된 세금과 같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교회에 헌금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헌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를 밝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불신행위로서 연약한 성도들을 짓누르는 악한 일입니다. 교회에는 자발적인 헌금과 일시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목적 헌금 외에 다른 헌금은 없습니다(롬10:2-4; 고전16:1-2; 고후9:6-7).   6.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하나님이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그분은 단지 말씀만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되 단 6일 만에 - 여기의 하루는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하루를 뜻함 -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무한한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서 구원과 부활과 재림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를 믿지 않고 많은 신학교들이 세상과 타협하여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습니다(창1; 출20:11; 31:17).   7. 교회의 음악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귀를 찢는 듯한 록 음악, 댄스 음악, 힙합 음악 등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저질의 세상 음악입니다. 이런 음악에 심취하면 사람의 영과 혼이 마귀에게 사로잡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크리스천 유행가에 해당하는 CCM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CCM이 가사만 기독교의 틀을 유지할 뿐 실제 음악 자체는 세상의 유행가와 같습니다(삼상16:14-23; 고전14:33; 엡5:19).   8. 교회는 무엇보다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그들이 앞으로 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흉악하고 영적으로 혼란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바른 음악을 통해 주님의 교육과 훈계로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신6:3-9; 엡6:4).   9. 천주교회, 몰몬 교회, 안식교회 등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복음을 무력화하고 성도들을 기만하는 ‘불경건한 연합체’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옴에 따라 이제는 전혀 다른 종교들과 연합하는 배교 행위도 교계에서 버젓이 심심찮게 벌어지며 그 내용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요14:6; 행4:12; 롬16:17-18; 엡5:11-12; 살후2:9-12).   10. 앞으로 이 땅에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 이전에 적그리스도의 철권통치가 이루어지는 7년 환난기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도들은 이 7년 환난기 전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몸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하늘로 들려올라가는 휴거를 받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환난기를 통과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환난 통과설’을 주장하지만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의 행위를 더하려는 시도에 다름없습니다(살전4:13-18; 5:9; 살후2:1-12; 계3:10).   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듣고 자신의 뜻에 따라 성도를 고쳐 주실 수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신유(병 고침)의 은사가 있어서 그 사람에게 가서 기도를 받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도의 은사들 - 병 고침, 방언, 방언 통역 등 - 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신약 성경 기록이 완성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 시기가 지나자 사라졌습니다(고전13:8-10; 히4:15-16; 요일5:14).   12. 이빨이 금니로 변하고 금가루가 날리며 무질서한 가운데 사람들이 뒤로 쓰러지는 현상은 성령 체험이나 영적인 은사가 아닙니다. 마귀는 사람을 쓰러뜨리고 예수님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이상한 육적인 현상으로 연약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오순절 은사주의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믿을 때 한 번 임하셔서 영원히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이후로 성도들은 성령님의 충만을 통해 성령님의 열매를 추구하며 인격적 변화를 지향해야 합니다(고전14:23-33; 갈5:22-23; 엡5:18).   13.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하는 개역(개정)성경과 NIV, NASB 등은 천주교의 바티칸 사본(1% 소수 사본 본문)에서 나온 천주교 계열 성경입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해서 종교개혁자들과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전 세계에 편만하게 보존해 주신 공인(共認) 본문(99% 다수 사본 본문)에 근거한 성경만을 썼습니다. 이 성경들 중에서 1611년도에 출간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난 400년 동안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이 온 세상의 대부분 국가에서 번역되고 읽혀온 순수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는 개역(개정)성경에서 ‘없음’으로 표기된 구절이 전혀 없습니다(마17:21; 18:11; 23:14; 막9:44, 46; 11:26; 15:28; 눅17:36; 23:17; 행8:37; 15:34; 28:29; 롬16:24).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성경 지킴이’ 그리스도 예수안에032-872-1184, www.KeepBible.com ‘진리를 선포하는’ 사랑침례교회032-664-1611, www.cbck.org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03 11:58:07 성경교리에서 복사 됨]
2012-04-28 15:19:12 | 관리자
한국교회에서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대표적 케이스가 바로 요셉의 사건이죠 하나님을 잘믿으면 국무총리 된다 -_-;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가 되어버린 요즘 참 씁쓸함을 금할길이 없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2-04-28 15:11:03 | 송재근
루 월레스(Lew Wallace)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군요, 그는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없애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그리스도에게 매어있는 굴레로부터 벗겨주자고 다짐했답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허위라는 것을 주장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제1장을 마치고 제2장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그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펜을 꺽고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후에 쓴 소설이 벤허이랍니다. 진리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진정한 승자입니다.최 형제님으로 부터 이어지는 진리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2012-04-28 12:40:11 | 조양교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 교회를 다니면서도 구원을 받지 못했던 시절에 교만했던 마음이 있어서 고백하는 글입니다. 자칫 잘못 하다가 별 내용도 아니면서 자주 올리는 글 때문에 저를 미워하지나 않으시려는지요.   * 처음 교회로 인도를 받고 성경을 받았으나(이때 받은 성경이 개역한글이었음) 교회 생활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분들은 저마다의 직분이 있는 상태고 특별히 찬양대를 섬기는 분들이라 저와의 교제가 거의 없었죠. 거의 방목 수준 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설교를 듣긴 들어도 딴 생각(?)이 자꾸 들어오고, 그렇게 주일예배를 드리고 총알(?)같이 교회를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작심을 하고 성경을 한번 처음부터 읽어 보아야겠다 마음을 먹고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한줄 읽으면 눈이 스스르 감기고 또 도리도리 한번하고 또 보려고 하면 스스륵! 이제 창세기 덮고 마태복음으로 갑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더하데요. 누구를 낳고 또 낳고 저 어린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학생들이 대사하던 그 내용이 나오는 겁니다. 햐! 어디부터 읽어야 재미가 있을까? 어디 성경 쉽게 가르쳐주는데 없을까? 먼저 교회 다닌 분들 보다 늦었으니 빨리 알아야할 텐데... 성경 속에 교회 생활 지침 같은 것도 있겠지? 막연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죠. 성경의 구조도 잘 모르겠고 깨알 같은 글씨에 페이지도 많고 이때에 교만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 합니다. 사실 교만인지도 잘 모르고 만행?을 저지르려고 계획하게 되었죠. 무엇이었냐고요? 요즘 길에 다니다 보면 모 단체에서 가끔 콘사이스(concise)성경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보시죠. 이것처럼 내가 성경을 한번 줄여보리라 마음을 먹은 거죠. 우습죠? <이 생각을 할 때에는 콘사이스성경은 보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한글은 말 줄이기에 자신이 좀 있었거든요. 학창시절 노트정리는 일가견이 좀 있었습니다.<자랑임^^> 그런데 막상 성경을 펴 놓고 글자 한 자 한 자 들여다보면서 함축을 시키려고 하니까 두려움이 막 드는 겁니다. 혹시 이 단어 또는 말 속에 숨은 뜻이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이건 한글개역을 가지고 느낀 생각입니다.>   ** 시간이 흐르고 방황?하는 속에서 감사하게도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손에 넣었고 또 정동수목사님의 성경론 등과 같은 강의를 듣고 비로소 그때 실행? 하려고 했던 생각이 엄청난 교만 이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단어와 또 문장으로 인한 해석이 엄청나게 다르게 되어 질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특별히 성경대로 믿는 우리에겐 글자 한 글자, 한 글자가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결국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려는 것이 단어, 단어인데 그것을 임의로 바꾸거나 줄이려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죄 구나!!!   *** 우리사랑침례교회성도님들은 다 잘 하시고 계신거죠?   요즘 바빠서 즐겁습니다. 회사일이 바쁜 것이 아니라 펴진 홈피돗자리에 장난감(글)을 늘여 놓을 생각 때문에 행복합니다. 무공해여야 되는데 혹시 가지고 놀다 다치시는 분이 계시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살짝 하면서... 성분분석은 실력 있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해 주실 줄로 믿으며 저는 성경말씀을 배운 것 까지만 재료를 써서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직 성경을 잘 모르므로 재료가 빈약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하여 주셔요) 아직 교제를 못해서 성함도 얼굴도 모르지만 성도님들 사랑합니다... 제 아내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한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랑침례교회성도님들 한데는 부끄럽지가 않으니 어떡한데요?   - 킹제임스흠정역성경과의 만남 2주년을 자축하며 반성합니다 - ^^돌아오는 4월30일이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의 말씀과 사랑을 시작한 2주년 되는 날입니다^^ 월요일에 올리려고 했으나 저희 회사 사무실 이전 때문에 바쁠 것 같아서 미리 올립니다....
2012-04-28 11:33:16 | 최현욱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꿈은 이루어 진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꿈을 많이 꾸라고 하기도 하고, 좋은 꿈 꾸라고들 합니다. 좋은 말 같지만 제가볼땐 아닌 것 같아요. 문자적으로 볼때 계속 잠만 자라는 이야기 잖아요? 생각하는 것과 꿈꾸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잠자는 자는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생각하는 자는 꿈을 이룰 수 있다' 고 들은 말이 있었는데 가물가물^^
2012-04-28 11:16:50 | 최현욱
  요셉만큼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야곱의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라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그것은 요셉의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사람을 의식하기보다는 하나님앞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발견합니다. 그러기에 그의 여러 가지 행동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집안의 막내이지만 외람되게 바른 소리를 하다보니 형들의 시기로 죽음의 문턱에 까지 이르게 되고 급기야는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요셉은 이집트 파라오의 소유물을 관리하는 호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노예가 됩니다.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살았던 환경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요셉의 믿음에는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또 한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용모가 준수한 것을 알고 부적절한 관계를 갖자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이를 단호히 거부한 요셉은 강간범으로 몰려서 결국 왕궁의 지하 감옥에 갇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원망스런 상황입니다. 이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답변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최악의 상황입니다. 히브리 노예의 신분으로 강간범으로 몰리고, 그것도 대상이 파라오 호위대장의 부인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은 포기해야 할 입장입니다. 이정도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원망 뿐 아니라 저주까지도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어떤 환경도 요셉을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입에서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감옥으로 밀어 넣은 보디발의 아내에 대해서도 쓴 뿌리를 갖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삶에 감동을 받은 간수들은 요셉에게 감옥의 모든 일을 맡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잔 맡은 자의 우두머리의 꿈을 해석해 주는 일로 대 반전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꿈을 해석하는 재능으로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주게 되고 일약 이집트의 2인자의 자리에 까지 올라갑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나중에 기근 때문에 찾아왔던 형제들과의 대화에서 형제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상처 준 일로 인해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형들에게 안심을 시키고 오히려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의 직에 올랐지만 여전히 요셉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향하여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 21 그러므로 이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어린것들을 부양하리이다, 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친절히 말하였더라.“(창50:19-21절) 사람들은 요셉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요셉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며 아무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서 요셉과 같이 꿈꾸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정작 요셉은 하나님께 꿈꾸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꿈꾸는 자가 되려한 적도 없었으며,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주어진 위치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앞에서 최선의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요셉을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시키시고 이집트의 총리까지 세우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요셉과 같이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믿음을 간직하며, 항상 하나님앞에서 사는 자와 같이 주어진 일에 성실하며, 쓴 뿌리를 갖지 않고 주어진 위치와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저 자신도 이러한 요셉의 믿음을 본받기를 원하며 애꿎은 상처의 치유를 논하고 꿈 타령하며 성공 스토리로 내모는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2012-04-28 10:02:04 | 조양교
나의 살던 고향은 ~♬ 이곳은 제가 8살때까지 살았던,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입니다. 집도 개울도 주막집도 모두 물 속에 잠기긴 했지만 아직도 제겐 동네 모습이 눈에 선하지요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이 곳에 자매님들과 함께 하니 마치 어린 아이로 돌아가 들판을 헤집고 놀던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자연에 우리의 필요를 풍성하게 채워주시고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2012-04-28 09:06:21 | 김애자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부부의 아름다운 찬양으로 은혜가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유년부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애쓰는 청년 선생님 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침례탕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완성이 되었네요..ㅎㅎ 교회 이전과 이모저모 교회의 필요을 위해 선전하시는 형제자매님들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4-27 19:56:10 | 김상희
형제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성도들을 헤아리는 섬세하신 면이 귀감이 됩니다. 이정표(?)를 달아 문단을 나누어 글을 올리시니 재미도 있고 형제님의 재치가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2-04-27 15:21:30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