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나는 광명역에 주차를 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캐리어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 방학을 맞이해서 여행을 가는 듯한 아이들과 부모들의 소리로 이른 시간임에도 북적거렸다. 기차가 출발을 했다. 창밖은 아직 캄캄해서인지 유리창에 거울처럼 내 모습이 비쳤다.
바깥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파노라마의 속을 달리는 듯한 기차는 90세가 되신 어머니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코로나19가 한참 기승을 부릴 무렵 오빠네와 언니네 집에 번갈아 계시던 어머니는 급기야 침대 바로 옆에 있는 휴대용 변기에조차 가기 어려울 정도로 움직이지를 못하시고 계속되는 통증으로 어머니의 심신이 지쳐갈 무렵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어머니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통증 뿐이었다. 검사란 검사는 다 해봤지만 통증의 원인은 알 수가 없었고 거의 먹지도 않으시니 어머니의 몸은 빠른 속도로 쇠약해지셨다.
체구는 작지만 부지런하고 짱짱하셨던 어머니....
그러나 이제 체구는 더 작아지고 푸석하게 말라서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힘없고 약한 노인이 되어 버렸다.
이사야서 40장
6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라.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이는 {주}의 영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 참으로 백성은 풀이니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어머니는 우리가 요양병원에 면회를 갈 때면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다.
어머니를 만나면 반가워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돌아설 때는 안타까워서 간구의 기도를 하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말없이 듣기만 하셨다.
그러다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왔다.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형제들과 의논을 하여 이번 생신에는 모 연수원을 빌려서 출장 뷔페를 부르고 모든 조카들을 다 부르자고 하였다. 그리고 요양병원에는 특별 외출을 신청하였다.
그날...
어머니를 위한 기도로 목사인 셋째 오빠가 문을 열었고 사회는 내가 보았다.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다시 가셔도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이 귀에 쟁쟁 울려서 힘내시도록 하자고...
그날 어머니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고생했던 셋째 올케와 그리고 둘째 오빠, 어머니를 돌본 언니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사랑합니다” 소리를 원없이 들으셨다.
그리고...
그리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신지 5개월이 될 무렵 어머니는 기적같이 일어나셨다.
그리고 요양병원을 퇴원하여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예레미야서 33:3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강력한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나는 방학을 이용하여 그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벽열차를 탔고 덕분에 그날 아침은 어머니와 함께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지금 이렇게 걷고 계신 것이 꿈만 같다고 말하면서 요양병원에서 못나오시고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고 했다. 사실 내 주변의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신 뒤에 다시 나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셨는지 너무 힘들었다며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생신 때 찍었던 영상을 보여 드리면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실 것 같아 슬픈 마음으로 생신 준비를 했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이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예수님이 도와줬지. 동네에서도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아서 돌아왔다고들 해”
사무엘상 2장
6 {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무덤으로 끌어내리기도 하시고 끌어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나는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함께 지낸 3일의 마지막 날에 구원과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제를 나누며 천주교인인 어머니에게 천주교 성경으로도 구원에 관해 읽어드렸다. 예전에는 죽으면 천국갈 수 있냐는 질문에 “죽어봐야 알지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핀잔주시 듯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질문이 끝나기가 바쁘게 바로
“그럼 갈 수 있지. 나를 이렇게 있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여”
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순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닭 쫓던 개 바라보듯 망연자실한 마귀들을 떠올리고 활짝 웃었다.
에베소서 6: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권력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나는 그 믿음 흔들리지 마시고 죽을 때까지 예수님 그분만을 꼭 붙잡고 사시라고 말씀드리며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엄마, 사랑합니다”
이제 마음이 좀 가벼워진 것 같다.
2024-01-13 11:19:55 | 이정자
장문의 글인데 아주 재미있고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다만 디스크 때문에 목이나 몸이 뻣뻣할 수도 있고
눈이 나빠서 눈에 힘이 들어가는 분도 있으니
이 점은 감안하면 좋겠어요.ㅠㅠ
저도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하면 올해에, 땅을 엄청 많이 상속 받고 싶습니다.
2024-01-13 11:06:23 | 이남규
형제님 환영합니다.
영과 진리 가운데 예배의 기쁨이
교제를 통해서 혼의 기쁨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교회 오고가는 길도 화평가운데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2024-01-13 10:54:32 | 이남규
인천 계양에서 오시는 나춘성 형제님입니다.
반갑습니다!
2024-01-13 10:21:20 | 관리자
귀한글 감사합니다.
힘을 빼는 연습
온유함으로 하나님앞에 서고 싶습니다.
2024-01-13 10:06:50 | 김경애
두분 이름 올라온거 보고 어? 했는데
사진을 늦게 찍으셨네요.
필요한 곳에서 부지런히 섬기는
모습 보기 좋아요.
함께 할 수있어 기쁘고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24-01-12 21:42:59 | 김혜순
새해의 다짐 : 몸에 힘을 빼자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보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헌신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있다. 자기가 드러나거나 박수를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의 섬김으로 인해 성도들이 편안하고 교회가 발전할 수만 있다면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 한편 어떤 성도들은 외부 자극에 너무나 빨리 반응한다. 사람들이 나를 빨리 인정해주길 바라고 인정받지 못하면 화를 내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내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공격적이 된다. 세상은 너무 급하고, 빠르고, 화가 나 분노가 차오르고 있다. 내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 견디질 못한다. 온유함과는 거리가 멀다. 온유함을 가지고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써야지만 무시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고 자격을 갖추려고 한다. 가져야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온유란 통제된 힘을 말한다. 온유는 온순하고 부드럽고 나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런 것이 온유가 아니다. 온유가 약함과 항의, 저항이 없는 모습, 활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자랄 때는 밖에서 얻어맞고 집에 돌아오면 가서 두 대 때리고 오라고 했다. 양육강식의 세상에서는 약함은 생존이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쨌든 강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온유함이 교회에 안에서는 환영받지만 세상에서는 나약하고 생존하지 못함의 상징이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다. 하나님의 성품의 일부이다. 온유는 겸손함, 신사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온유는 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사용하는데 온유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것이 신약에 1번, 구약에 1번 나온다.
민수기 12장 1-2절을 보면,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그가 결혼한 에티오피아 여인으로 인해 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참으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며 지도자인 모세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권위에 도전한다. 이어서 3절에는 (그런데 그 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온유하였더라.)(민수기 12장 3절)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집트에서 혈기로 사람을 죽였다. 시내산에서는 화가 치밀어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집어 던졌다. 또 반석에게 말하라고 할 때, 반석을 내리쳤다. 결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광야에서 생활을 하면서 점점 깎이면서 온유하게 되었다.
온유는 통제된 힘을 말한다. 온유를 설명할 때 야생마 이야기를 한다. 야생마가 깃들여지면 순하게 된다. 온유는 자기의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는 통제된 강력한 힘을 말한다. 주인에게 깃들여져서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쓰는 것이 온유다. 하나님은 잘 길들여진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미리암과 아론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일으켜 벌을 받았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9-30절)
예수님은 온유한 분이셨다. 힘이 있었지만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으셨다. 침례자 요한을 힘으로 밀어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힘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회의 약자들 즉, 버림받은 어린이, 고아, 과부, 나병환자들을 찾아 다니셨다. 이들을 만나는 것이 무슨 득이 되었을까? 악한 자들의 악함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피하셨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도 정복자의 백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셨고, 마지막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겸손함의 절정을 보이셨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짓는 자야. 너 자신을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수제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그분을 조롱하며 이르되,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으리라.(마태복음 27장 40-42절)
수제자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께 “너나 구원해보라”고 조롱하였다. 우리 같으면 본때는 보여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조롱할 때 싹 쓸어버릴 수도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까지 조롱을 당하면서도 힘을 절제하셨다. 하나님(예수님)이 온유함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령님도 마찬가지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능력 면에서나 성품 면에서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그러나 성령님은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령님은 가장 온유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함 그 자체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자신을 증언하려 하지도 않으시고 주목받으려고 하지 않으신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드러내고 깨닫게 하고 적용시키려 하신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요.(요한복음 15장 26절)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요한복음 16장 13-14절)
새해를 맞이하면서 2024년 화두는 “몸에 힘을 빼자.”이다. 모든 운동은 몸에 힘이 들어가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좋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몸에 힘이 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 다짐한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것이다. 몸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자. 눈에 힘을 빼자,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자. 입에 힘을 빼고 말을 더디 하자. 항상 위로가 되는 말을 하자. 목에도 힘을 빼야 한다. 뻣뻣한 목은 거만하게 보이고 교만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발 성내지 말자. 나를 드러내지 말고 남을 드러내도록 하자. 내 안에 뛰노는 야생마를 다스려 잠재우자. 세상은 힘을 추구하라고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이 힘이 빠져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몸에 힘을 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 땅을 상속받고 싶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마태복음 5장 5절)
2024-01-12 21:20:25 | 이규환
형제님,자매님
사진으로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교회의 여러 일들에 수고하고 애써주시는 형제님.
가정과 하시는 일을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길 원 합니다.
2024-01-12 19:12:10 | 이상기
사진이 많이 늦으셨네요!
그럼에도 사진이 아주 잘 나왔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교회를 위해 수고하시는데
우리 주님의 위로와 은혜와 기쁨이 항상 가정과 사업장에 넘치시길 소망합니다.
2024-01-12 15:45:45 | 이남규
환영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에 출석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모습도 많지 않을 겁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나은 법인데 하물며 네 사람이겠습니까?
우리 주님의 은혜와 진리 가운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복된 가정되시길 바랍니다.
2024-01-12 15:41:43 | 이남규
제목이 제목인만큼 부족한 한 지체가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겁이 많고 편협한 사고, 급한성격을 가지고 핍박,곤경 속에서 성장하려니 제 나름 낙심하지 않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말씀도 읽을 수 없을만큼 힘든 상황에서는 조직신학 <하나님><예수그리스도>를 들으세요.
-하나님 계시는구나.예수님은 저의 주인이십니다-가 또한번 진심고백될때 새 힘으로 살아나오게 돼요.. 상황이 안바뀌어도 창조주 계시면 game끝-라고 느끼는건 진리를 재확인해서 그런듯합니다. 가지각색 취약많은 제가 낙심이 많은건 당연한거고 하나님께 고백(아버지 도와주세요. 저는 못하겠어요)하는 시간이 많은 삶이 오히려 더 ( 뒤로가지않고 조금이라도)나아가질 수 있는 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자존감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숙제를 다 마치고 홀가분하게 이세상 떠날때까지 (특히 저처럼 세상능력이 부족한 지체분들 계시면) 힘내세요!! 사랑침례교회 존재자체로 위로받는 한 지체성도로서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로의 목사님 말씀 감사 드리며 지금까지 사랑침례교회 이끌어주셔서, 아이들과 다닐 수 있는 교회 지켜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4-01-12 08:41:59 | 목영주
2024년 1월 7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uKmKwe6GgQ8
2024-01-12 00:33:37 | 관리자
사진을 그동안 찍지 않으셨군요.
사랑침례교회에서 믿음을 시작하시고
훈련받으시고 좋은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신 귀한부부를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사모님을 도와 사랑침례교회를
세워가는데 큰 일들을 감당하시리라 여깁니다.
모든 삶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이요.
형제님자매님 가정위에 구원의 기쁨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4-01-12 00:28:46 | 김경애
인천 송도에서 오시는 김홍기 형제님, 이은정 자매님 부부입니다.
반갑습니다!
2024-01-11 23:54:56 | 관리자
저희와 함께 하는 신앙생활이 주님과
동행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와 평안이 늘 있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24-01-11 23:25:45 | 김혜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예배 드리는 기쁨은
다른것과 비교가 안되는거 같아요.
이 기쁨이 일상생활에도 이어지길 소망하며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24-01-11 23:19:16 | 김혜순
네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하니 더 행복하시겠네요.
진리안에서 더 견고하게 터를 잡으시고
교회에 잘 적응하시길 바랍니다.
2024-01-11 15:05:49 | 김영익
진심으로 두분을 환영합니다.
많은 교제로 교회에 잘 적응하시고
함께 배우면서 주님의 진리안에서 같이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1-11 14:47:18 | 김영익
두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교회와 함께 하게 되여 매우 기쁘고
가정과 삶에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2024-01-11 14:43:41 | 김영익
형제님.자매님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 합니다.
올 한해도 주님께서 형제님과 자매님의 건강을 지켜주시길
바라며 항상 주님으로 인해서 기쁨이 넘치는 시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024-01-11 11:54:08 | 이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