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가족입니다. 아들만 셋!!!
주님안에서 무럭무럭 함께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12-10 16:42:22 | 이명석
안산에서 오시는
차종헌 형제님과 최지나 자매님,
승진,승준,승규형제 입니다.
2018-12-10 16:23:26 | 관리자
산본에서 오시는김홍한 형제님 입니다.
2018-12-10 16:21:13 | 관리자
참 아름다운 믿음의 글을 보고 부끄러운 제 삶과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우리 모두 믿음이를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고 응원할께요.
다시 만나서 활짝 웃는 모습 보여주고 교회에서 만나면 꼬옥 안아보자꾸나^^
2018-12-10 13:04:19 | 주경선
품위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안과밖이 하나님의 자녀인
공주답게 도우시려 애쓰시는 사모님의 섬세함과 배려가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거룩한 무리들의 하모니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2018-12-10 12:40:37 | 김경애
대견스럽습니다.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자라서 이 사회 곳곳에서 선한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훈련받는 시간들입니다. 수고하시는 선생님,부모님들
모두 귀하십니다.
2018-12-10 12:34:56 | 김경애
안녕하세요?요즘 나라가 심히 어렵습니다.교회와 목사가 크게 타락하였습니다.우리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 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각하며 삽시다. 샬롬 패스터 ------♡ 생각이 무능한 자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특별법정에서 유명한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이었다. 아이히만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의 정예로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마지막 해결책’, 즉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다. 그는 유럽 각지에 있던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이송시키는 임무를 맡았었으며, 자신이 무려 500만 명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동시켰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재판 소식을 듣고 단번에 예루살렘으로 날아간 사람이 있다. 한나 아렌트였다.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나치의 탄압에 의해 갖은 고생을 하다 미국에 자리를 잡았고, 정치철학자로서 인정받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집필 활동을 통해 전체주의를 맹렬히 비판해오던 그녀는 아이히만의 소식을 듣고 뉴요커 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전범재판에 참관하게 된다. 악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인물을 기대했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그녀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인물이 피고석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아니 평범함 그 이상의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부하들에게 친절한 상사로 알려져 있었고,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재판 과정에서 칸트의 의무론을 인용하여 자신을 변호할 만큼 지적 교양을 갖춘 이였다. 그의 정신 상태를 분석한 정신과 의사들은, “이 사람은 나보다도 건강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아이히만이 “정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정했다. 아이히만에게는 심지어 유대인 친구들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내 친구들 중 유대인을 미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단지 명령 받은 일을 성실히 실행했을 뿐이다.” 어째서 그러한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느냐고 묻자, 그는 그 일이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자신의 의지로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였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테지만, 이는 상관의 명령이었고,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공직자의 서약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 의무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명령을 받든 것이므로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은, 국제적 관심 속에 7개월 동안 이어졌고, 결국 1962년 5월 31일, 아이히만에게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마무리된다.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그녀가 관찰한 아이히만의 모습을 담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역작을 탄생시킨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그녀가 관찰한 것에 대해 서술한다. 아이히만은 파괴적인 사상에 젖어있는 악마적 나치 광신도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와 같은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들은, 정신병자나 미치광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등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 순응함으로써 타성에 젖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선악구분이 무뎌진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하는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거대한 악을 행하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무려 500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의 끔찍한 행위는 그의 내면에 있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악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타성에 젖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은 ‘생각의 무능’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려는 의지를 잃는 순간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속에서, 집단 속에서, 군중 속에서 거대한 여론이라는 타성에 젖어 스스로 사고하는 것을 멈춘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 실제 사건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모두가 욕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 전문가들이 크게 걱정할 병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온 사회가 공유하는 미신적 공포에 더욱 신뢰를 가지는 사람들. 기억하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만든 것은 그 어떤 특별한 악이 아닌, ‘생각의 무능’이었다.생각의 무능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나.북한을 찬양하는 너무나 많은 생각의 무능한 자들.위 역사의 교훈이 얼마나 참담한 현실을 가져 오는지를 모르는, 대한민국의 종북 세력들에게 경고의 메시지일 것이다. Brain이 있고 thinking을 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이 혼란한 세상을 버티며 살 수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8-12-10 09:42:59 | 관리자
한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믿음의 형태가
단순히 발생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참 어려워요ㅜㅜ
요번 주제는 선생님 없이는
소화하기 힘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교제하시고
적어 내려가시는 자매님들 대단하십니다~~
2018-12-10 08:29:09 | 김세라
앞에서 발표하는 모습이 참 대견합니다^^
준비하는 아이들, 부모님, 선생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18-12-10 08:19:46 | 김세라
유년부 아이들임에도 대단하네요~
진지하게 자기 의견을 나누는 아이들이
미래가 기대가 됩니다~
수고하시는 선생님들과 부모님들도 대단하세요^^
2018-12-09 20:39:24 | 이수영
2018년 12월 9일 (주일 오전) : 빌립보서 2장 19~30절
https://youtu.be/ibjV99BWUCo
2018-12-09 17:34:15 | 관리자
이런 아이디어를 내서 추진한 선생님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 마음이 쑥쑥 안 큰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어요~ 울 선생님들 대단하세요. 새싹들에게 바른걸 심어주셔서 고맙습니다아~
2018-12-09 17:32:10 | 목영주
12월 2일 첫주에는 유년부 친구들의 TMS 3분 스피치가 있었습니다.우리 유년부 친구들이 열심히 준비했고 못 나오는 친구들도 따로 영상을 보내주어대부분의 아이들이 참여하였습니다.평소와는 사뭇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한 유년부 친구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냅니다.^^귀여운 우리 아이들의 스피치를 들어보세요 ♡♡1학년 스피치https://youtu.be/6qwzdDAF-DY2학년 스피치https://youtu.be/-fDbicHyLKQ3학년 스피치https://youtu.be/r94p0L0t93k
2018-12-09 08:13:36 | 주경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잘 완쾌되길 기원하며 은혜 가운데 평안을 누리길 바랍니다~
2018-12-08 18:29:47 | 정관영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권위 안에서만이 가능함을 이 장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인간적 질서와 권위는 전체주의를 낳거나,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권위가 무너지면, 혼란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감소하게 되는 것을 대한민국을 살면서, 역사를 통해서 알게되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고, 다시 10장을 읽어보니, 미국의 교회사를 통해서도 같은 원리를 발견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연구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바로 세우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가정, 교회, 국가에 속한 개인이 자유와 행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수고하는 사랑침례교회가 오늘도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2018-12-08 09:31:03 | 최재원
지금에서야 읽었네요~ 진심어린 고백에 참 고맙습니다
2018-12-07 22:50:48 | 백윤정
성경적인 근본을 지킨다는 것이 변화없어 보여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것이지요.
거룩함을 지켜가며 분별있는 사랑의 균형이랄까~
채리티 홀은 모든것이 다 아름다워 보여요^^
엘리가 커서도 외할머니 댁과 교회를 찾아오면 좋겠어요^^
2018-12-07 22:35:16 | 이수영
최근 좌파세력이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서 활개를 치고 수도 한복판에서 김정은 찬양대까지 등장했음에도 사법당국과 공권력인 검경은 손놓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에 보수 일각에선 보수주의에 대한 여러 견해를 제시하며 선명성을 제고하려 하지만 기독교인이 공감할 내용은 다소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 중 미래한국에서 '레이건의 신앙과 보수주의'란 제목의 좋은 글이 올라와 공유하고자 글을 쓰며 아래 글은 컬럼 중 인상적인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얼마 전 러셀 커크의 100주년 생일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샤론선언문을 발표할 당시 주역이었던 몇 명의 보수주의 거목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필자가 이들에게 물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커크와 버클리가 설파한 보수주의를 친구들에게 설명하다 보면 결국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의 주장을 보게 됩니다. 이게 맞는 겁니까?” 이제 노년이 된 그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보수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323
2018-12-07 20:06:56 | 정관영
완전한 진리10_ 미국과 기독교가 만나 누가 이겼을까? 제2차 대각성 운동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수중에 있다.-토마스 페인(Thomas Paine) 제1차 대각성 운동 때 부흥사들이 공격했던 것은 교회구조나 학문 자체가 아니라 성직자를 특권계급으로 만들어버린 악습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2차 대각성 운동에서는 교회라는 권위 자체가 “횡포”라고 비난 받았다. 만인 제사장직은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종교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복음주의자들도 “인식론적 위기”에 빠져들었다. 미국의 정신을 그대로 흡수했고, 어떤 면에서는 반권위주의적, 반역사적, 개인주의적 관점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이는 기독교 지성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당시의 정치문화에 대해 독특한 성경적 관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치적 자유와 영적인 자유를 동일 시 했다. 문제는 기독교가 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기독교를 좌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정치 영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것이 무비판적으로 교회에 적용되어 고도의 개인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교회론을 낳았다. 민주주의와 성경의 주제들이 서로 깊숙이 얽히는 바람에 어떤 실질적인 정치분석도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많은 이들이 역사적 교회와 고대의 신조와 신학지식을 거부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각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선포하기 시작했다.당시 대중적 복음주의 진영에서 개인주의적, 원자론적 교회관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는 동등하고 자율적인 개개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함께 모이는 집합체였다. 미국에서는 자연상태가 역사적으로 실재한 듯 보였다. 독립된 개개인들 사이에 진정한 자연적 평등이 있었다. 그 결과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정치철학이 되었다. 이로 인해 새롭고 흥미로운 사회관이 생겼는데 이들의 새로운 자유주의에 따르면, 사회구조는 하나님이 제정한 게 아니라 개개인이 자기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다. 자기희생의 윤리는 자기주장과 자기이익의 윤리로 대체 되었다. 복음주의 자들의 반역사적 태도와 과거를 배척하는 거만한 태도는 대각성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유산으로부터 스스로를 열심히 “해방시키고”있었던 셈인데, 그로 인해 얼마나 빈곤하게 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정치적으로는 토마스 제퍼슨의 시대에, 경제적으로는 아담 스미스의 시대에 번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엘리트주의와 권위를 배격하는 종교 메시지에 더욱 마음을 열게 되었고, 보통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를 옹호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복음주의자들은 당시에 등장한 근대적인 문화에 비판적 자세로 도전받기보다는 기독교를 근대적 경험의 범주에 맞추려고 개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적 복음주의가 옛날부터 내려오던 죄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했지만, 동시에 그 영성과 교회론은 철저히 근대적 성격-반역사적, 반권위주의적, 개인주의적, 자발적(개인의 결심에 따라 좌우되는)-을 띠고 있었다. 대중적 복음주의 운동 진영은, 지도자를 거룩한 인물로 보던 과거의 모델을 제쳐두고 기업가형 지도자, 곧 사람들을 회심시키는데 유용하다면 무엇이든 사용하려는 실용적 영업자 타입의 지도자를 양산 했다.설교방식도 성경본문에 대한 강해가 교인의 절실한 필요를 다루는 주제설교에 밀려났다. 당시나 지금이나 이 같은 기계적 의식구조의 자연스런 결과는 복음에 대한 신실한 태도와 사역자 개인의 덕이 아니라 숫자의 영향력으로 성공을 측정하려는 경향이다. 부흥사들 가운데는 완고한 지도자가 흔했고, 결국 자기들이 비난하던 전통교단의 목회자들보다 더 독단적이고 강력한 통제권을 휘두르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전통신학의 구조에서 벗어나라고 격려했던 매력적인 지도자들이 결국에는 그 그룹 내에서 권위주의적 리더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선동가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었다. 쉬운 언어와 정서적 호소를 통해 부흥사들은 광범위한 계층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마음의 종교‘로는 19세기에 부상한 지적인 도전들-특히 다윈주의와 고등비평-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우리시대 북미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지배적인 형태는 대중적 복음주의이다. 미국의 모든 종교에서 복음주의 패턴이 주류가 되고 있다. “개인화와 개인주의는 강화되고, 교리와 경건은 약화된” 패턴을 일컫는다. 어쩌면 우리는 “점차적으로 교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앨런 울프가 말하듯, “종교생활의 모든 면에서 미국의 신앙과 미국의 문화가 만났고, 미국문화가 승리를 거뒀다.”만일 우리가 복음주의의 유산가운데 최상의 것을 보존하기 원한다면, 냉정하게 그 약점까지 검토하고 개혁을 일으킬 지혜와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매님들과 나눔 이야기♥ * 미국 복음주의 역사를 통해 왜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적 세계관 전통을 지키지 못했는지, 또한 한국교회에서 드러나는 고질적 문제의 근원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 전통적 성직자들은 지적 가르침과 신학적 성찰 등 지성주의에 바탕을 둔 반면, 대중적 복음주의로 양산된 부흥사들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파워에 집중함으로 성경적 교리와 진리에 부합된 가르침이 결여되었음을 통해 바른 요소들의 균형이 필요함을 볼 수 있다. * 역사를 거슬러 우리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때, 우리의 신앙적 전통을 세우고 이어갈 수 있다. * 교회와 성도들은 지, 정, 의를 골고루 균형을 이루어 갖추어야 한다.각자가 어디에 치우쳐 있으며 취약한 부분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 1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의 배움을 바탕으로 이 시점, 좀 더 우리 교회가 보완하고 가야하는 부분을 온 성도가 책임감을 갖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체험을 강조하고 보여 지는 신앙을 중시하는 교회들의 가르침과 분위기를 통해 빈곤한 영적인 삶을 고스란히 경험을 했었다. * 성경적인 가르침을 통한 나의 삶의 지침을 얻고자 했으나, 사실 그러지 못했던 지난 믿음의 여정이 있었다. 우리교회는 그렇다면 복음주의로 받은 영향이 어떠한 것이 있을지, 미국 복음주의의 잘못된 잔재가 우리 안에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 이었다. * 우리교회의 믿음은 영적 체험(존중 하고 믿으나)은 있으나, 이것을 표면화 시키지 않는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각자가 속한 교회의 믿음이라는 것이 있고, 개인의 믿음이 있다. 여기서 개인의 믿음이 영혼의 자유인 것이다.개인의 믿음을 이해하면 서로를 존중하고 화평한 교회와 믿음생활을 할 수 있다. * 우리가 기도회를 할 때도 합리적인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의식 있는 기도가 필요하다. * 우리교회의 공동선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과 더불어 각자가 맞춰 나가야 할 부분이 있음을 염두 해야 한다. * 미국의 복음, 자유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나 개인적으로 있었으나, 개인의 성향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으로 오는 부작용을 보며 신앙적 균형이 중요함을 느꼈다. * 오늘날 크리스천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많다. 지성을 나누고 복음의 총체성을 다시 구축하고 회복해야 한다. “ 한파가 시작된 겨울 아침, 체리티 홀에서는 최고의 다과상이 차려졌어요. 가정에 있는 예쁜 찻잔들을 기증해주신 자매님들 덕분에 티 라이트에 티 포트까지 구색을 맞춰 격조 높은^^ 자매모임을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공부보다는 담소 나눌 분위기라 집중하는데 힘들었지만, 이내 또 진지한 교제에 집중하는 자매님들입니다. 갖가지 반찬이 모일 때 역시 설레이는 밥상이 차려지네요. 각자 준비해온 반찬들로 뷔페가 차려지고 미국서 뱅기타고 할머니댁에 온 엘리아가씨도 맛나게 식사교제에 동참합니다^^김희분, 김세연 자매님께서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인 뜨끈한 된장국으로 명품 밥상을 완성 하셨네요. 섬김에 감사드립니다.“ 부천에서 오시는 신현미 자매님의 직장 동료이신 조희수 자매님께서 지난 주일 예배 첫 참석 후 자매모임에 함께 해 주셨어요. 환영합니다♥
2018-12-07 18:40:21 | 장영희
언젠가도 믿음이의 편지가 소개되었던가요?
그 때도 어린 학생의 성숙함에 놀라서 믿음이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쩜 이리도 예쁜지요.
한참 공부에 몰두해야할 시기에 많이 다쳐 여러가지로 어려울텐데..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의 믿음이 참으로 귀하게 다가오네요.
얼른 낫고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형통하길 바랄께요.
믿음이 화이팅!
2018-12-07 17:19:01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