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러더라."
"교단에서 그랬다더라."
사람의 말을 듣고 그냥 믿어버리는 믿음은 위험합니다.
그런 맹목적인 믿음이 참믿음의 길을 찾을 수 있나요?
수학에서도 증명이라는 것을 통과해야 비로소 수학이 되는 것을.
세상의 이런 말 저런 말에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진실, 진리를 찾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2026-06-10 15:01:37 | 이수영
손혜선 자매님 독후감 잘 읽었어요. 우리 책들이 많은 사실들을 담다보니 좀 두꺼운 책들이 많아요. 책을 읽고 느끼신 것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이 있어서 참 좋아요. 다른 책들은 가시들은 골라내며 읽어야 하고 성경구절도 kjv으로 찾아 보는 번거러움이 있어서 불편했어요. 우리 성경으로 인쇄되어 있고 쉽게 설명되어 있는 책들이 있어 감사한 요즘입니다.
다음에도 글 올려주시면 좋겠어요^^
2026-06-10 14:54:37 | 이수영
독서후기 잘 봤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교회서점에서 유료로 판매중이고 성도분들께 무료 배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책을 무료 배부하다보니 자매님께서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2026-06-10 12:10:28 | 김삼호
자매님의 독서 후기를 보며 책 내용을 다시금 새겨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읽히고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2026-06-07 21:10:10 | 김지훈
사람이 아니라 혼과 몸을 둘 다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만을 두려워하길 바랍니다.
2026-06-07 21:07:56 | 김지훈
바쁨중에서도 열심을 다하시는 자매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책무들을 묵묵히 감당하시고
귀한 독후감으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안에 거하시는
시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026-06-07 18:23:24 | 김경애
-네가 주 네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길들로 걸으면 주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굳게 세우사 자신에게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리니 땅의 모든 백성들이 네가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명기28장 9,1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6-07 15:05:18 | 목영주
처음 사랑침례교회 들어설때의 마음을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감사들이 무지 많았다는걸 아는 순간 무조건 감사해야 하는 이유구나..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난 자녀다 그럼 모든게 끝났고 다 감사다-다시 되새기게 되어 감사드려요오~
2026-06-07 14:32:55 | 목영주
“정치 문외한도 알기 쉬운 정교분리의 진짜 의미”를 읽고
두어 달 전쯤 목사님께서 정교분리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도 머리에서 정리가 잘 안 되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 후에 책으로 아주 자세히 만드셔서 성도들에게 읽으라고 무료로 나누어 주셨다. 나는 좀 기대가 되었다. 왜냐하면 책으로는 되돌려 읽고 중요한 내용은 줄을 긋고 표시하다 보면 머리에 정리가 잘 되기 때문이었다.
집에 가져와서 일단 책꽂이에 꽂았다. 읽고 있던 책이 좀 밀려 있어서 조금 정리한 뒤 읽기로 맘을 먹었다. 며칠 후 책을 펼쳤다. 분량도 400페이지라서 만만치는 않았지만, 차근차근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크게 펼쳐 보았다. 간간이 들어있는 참고용 사진 외에는 글로 꽉 찬 책이었다.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긴 했다.
제목이 “정치 문외한도 알기 쉬운 정교분리의 진짜 의미”였는데 내가 정치 문외한 사람이니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
소제목부터 살펴보니 평소 잘 듣지 못했던 교회 역사가 차례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마음 문이 쉽게 열리며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정치에 정말 관심 없이 살아온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교회 역사를 배우며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의 자유
나는 어릴 때 동네 언니들을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서 조금 떨어진 교회에 갔었다. 밤에 여럿이 어울려 가면 교회 지붕에 반짝이던 네온사인이 추억에 남아 있다. 그러다가 20대 초반에 침례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고 지금까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었다. 세상 복은 없어도 참으로 하나님 복이 많다고 감사해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자유가 수많은 선조께서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린 대가로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서간 성도들의 피 흘림에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자유가 오래전부터 있는 줄 알고 살아왔는데 이 자유가 놀랍게도 23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는 놀라움과 함께 감사 또한 절로 나오고 있었다.
{1791년에 미군 헌법 조항 제 1조가 비준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가 종교에 간섭할 수 없다는 원칙이 헌법에 명문화되면서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행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이 45개 영어 단어로 이루어진 이 조항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위의 내용을 읽으면서 이 시대에 태어나 선조들께서 만들어놓은 이 시대에서 자유롭게 사는 현실에 대해 마음에 무한한 감사가 나왔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종교의 자유 없이 살면서 각자가 태어난 나라의 종교를 따라야 했고 그러지 않으려면 산속으로 숨어 살아야 했고 전쟁을 해야 했다.
위클리프의 유골은 무덤에서 파내어져 불태워지기까지 했다는 내용을 읽으니 선조들의 목숨 바쳐 피 흘렸던 투쟁 앞에서 지금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도 또한 감사가 절로 나오고 있다.
종교재판소
1184년 교황 루키우스 3세가 이단 심문을 체계화하는 칙서를 반포하면서 종교재판소의 시대가 열렸다. 이단 혐의자가 고발되면 체포해 심문하고,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광범위하게 자행했다.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그중에서 악명 높았다. 정통 교리에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카톨릭 신자들까지 심문의 대상이 되고 약 350여 년 동안 수만 건의 사건이 종교재판소에 회부 되었고 그 가운데 화형, 재산몰수, 장기투옥, 공개 참회 등의 형벌을 광범위하게 부과했다. 이처럼 신앙을 지키려다 피를 흘리고 생명을 빼앗겨 가면서까지 선조들이 지켜낸 신대륙에서의 자유 투쟁을 읽으며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자유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다.
조지 월리엄스
조지 월리엄스는 신학을 공부하고 성공회 성직자로 서품받았으나 대학 시절부터 청교도 사상에 끌렸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그는 영국 국교회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확신하며 교회는 국가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월리엄스의 주장
첫째, 국가는 종교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
둘째, 교회는 순수해야 한다.
셋째, 영국 왕은 원주민의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
넷째, 양심의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이 주장에 대해 매사추세츠 당국은 월리엄스의 말이라고 주장했다.
제임스 매디슨- 한 청년의 각성
매디슨의 편지
[여기 버스니아에서는 지옥 같은 원칙이 여전히 만연해 있네. 대여섯 명의 정직한 침례교 목사들이 감옥에 갇혀 있어. 그들의 죄는 자기 양심에 따라 설교했다는 사실 뿐이라네. 이러한 악마적이고 잔인한 광경을 보니 내 영혼이 분노와 치욕으로 가득 차 버렸지. 자유와 권리에 관해 그토록 많이 말하고 글을 쓰면서도 우리 이웃의 양심을 이렇게 짓밟는다니! 이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피가 끓어오른다네!.
이 경험으로 매디슨은 종교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기초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1775년 미국 독립 전쟁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었는데, 이토록 다양하면서도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서 한 권의 책 속에 넣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신 정동수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아울러 앞서가신 침례교인 들의 희생에도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몰랐던 사실들이 책 속에 참 다양하게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사님께서는 그 많은 자료를 찾아서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볼 수가 있었다.
침례 교인들은 미국 독립을 위해 피를 흘렸다. ‘영구적인 종교의 자유’를 헌법과 법률 속에 새겨 넣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매디슨은 종교의 자유는 정부가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라고 확신했다.
6장 정도까지 읽다 보니 인류가 양심의 자유를 향해 걸어온 위대한 여정의 길을 알 수가 있었다. 수없이 많은 성도가 흘린 피의 대가로 지금 내가, 나아가 우리가, 이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다시 감사에 감사가 흘러나왔다.
정교분리의 진짜 의미
정교분리는 국가가 강단 안으로 들어와 설교내용을 검열하지 못하게 막는 방파제여야 한다. 역사는 증언한다. 국가가 종교를 해산하려 할 때마다 교회가 아니라 그 국가의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졌으며 권력의 칙령이 아니라 성도들의 굽히지 않는 양심이 살아남았다. 지금 이 법안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일제의 칼날 앞에 섰던 선배들의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정교분리라는 이름의 가짜 방패 뒤에 숨어 강단을 내줄 것인가?
정교분리의 원칙은 국가권력이 종교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재량적으로 좌우하지 못하도록 막는 최소한의 헌법적 경계선이다.
정교분리는 본래 교회를 제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이다. 미국 로저 월리엄스의 비유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정원”이었고 세상은 아직 복음으로 경작되지 않은 ‘황무지’였다. 벽은 정원이 본래의 생명력을 유지하도록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었다. 이 벽이 허물어지면 황무지가 정원 안으로 밀려 들어와 토양을 오염시키고 정원의 정체성을 약화하게 된다.
이 벽을 지키는 것은 국가권력이 신앙의 영역을 재단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성경 신자들이 감옥과 화형대 위에서 우리에게 물려준 정교분리의 참된 유산이다.
독서 후기를 마무리하며~~
이 책은 ‘종교단체 해산법의 문제’라는 소제목처럼 종교인이 읽는 책처럼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교회 목사님과 달리 우리 목사님께서는 교수로서의 본업을 가지시고 교회를 이끄시면서 많은 책으로 우리 성도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는 게 무척 망설여졌었어요. 그런데도 계속 생각이 남는 것은 1년 전쯤만 해도 정치에는 관심 없던 내가 12.3 계엄 이후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 정치와 신앙과 삶을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그런 생각이 계속 들고 있었기에 서 내려갑니다. 너무나 소중한 내용이 많았는데 연세 드신 분들이 눈이 안 좋아서 책을 읽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단하게라도 독후감을 써서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글씨가 부족함에도 용기를 낼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로 성도들이 알아보기 쉽게 사진과 자료로 성경 신자들의 삶을 볼 수 있게 알려주셨고 지금 종교단체를 해산하려는 움직임을 보며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동수 목사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목사님 댁내 두루 평안하시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26년 5월 사랑침례교회 성도 올림
2026-06-07 12:49:53 | 손혜선
이단 감별사들이여! 당신 교회나 잘 살피시라!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자신을 "이단 감별사"라고 부르거나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성경은 거짓 교사와 거짓 대언자를 분별하라고 명령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요일 4:1)
그러나 분별과 정죄는 다른 문제이다.
성경 어디에도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교회의 재판관이 되어 마음대로 사람을 이단으로 낙인찍으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모든 판단이 공의롭고 신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이 확정되리라." (고후 13:1)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 앞에서가 아니면 받지 말라." (딤전 5:19)
그런데도 충분한 조사도 없이, 당사자의 소명도 듣지 않고,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람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공의의 원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거짓 증언으로 형제를 넘어뜨리고, 명예를 훼손하며,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행위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하는 자는 망하리라." (잠 19:9)
또한 주께서 미워하시는 것들 가운데는
"거짓들을 말하는 거짓 증인과 형제들 가운데 불화를 뿌리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 (잠 6:16-19)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자칭 이단 감별사들을 향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의혹들이다.
교리를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영향력, 교단 정치에 따라 정통과 이단을 나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만일 돈을 주면 정통이 되고 돈을 주지 않으면 이단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리 수호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을 이용한 장사이며 영적 권력을 이용한 폭력이다.
성경은 이미 이러한 자들에 대해 경고한다.
"그들이 탐욕으로 말미암아 거짓된 말들을 가지고 너희를 상품 취급할 것이나..." (벧후 2:3)
또한
"너는 반드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느니라. 이런 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얻으려고 자기들이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 전체 가정들을 뒤엎고 있도다." (딛 1:11)
하나님의 교회는 돈으로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교단의 힘으로 사람을 정죄하는 곳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성경은 경고한다.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것이므로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 (잠 30:6)
특별히 자칭 이단 감별사들에게 묻고자 한다.
그대들은 무엇보다 먼저 목사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돌보며 보호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목사의 본분을 잊고 사람을 감시하고 정죄하고 낙인찍는 일을 사역의 중심으로 삼게 되었는가.
정말 진리를 사랑한다면 먼저 자신의 교회를 돌아보아야 한다.
맡겨진 성도들은 건강하게 양육되고 있는가?
강단에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가?
교회 안에는 탐욕과 외식과 세속주의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사도 베드로는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벧전 5:2)
성경은 목사에게 세상 모든 교회를 감시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살피고, 자기 교회를 살피고,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돌보라고 명령한다.
만일 어떤 목사가 충분한 조사도 없이 형제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거짓 증언을 하며, 명예를 훼손하고, 교단의 권력을 이용해 사람을 매장하려 한다면 그는 회개해야 한다.
만일 이단 감별이라는 이름으로 두려움을 조장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사람들을 상품처럼 이용하며,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는 더욱 회개해야 한다.
주님께서 가장 강하게 책망하신 대상은 세리나 창녀가 아니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 정죄를 피할 수 있느냐?"(마 23장)
그러므로 자칭 이단 감별사들이여,
더 이상 형제를 함부로 정죄하지 말라.
더 이상 거짓 증언으로 사람을 넘어뜨리지 말라.
더 이상 교단의 권력으로 양 떼를 위협하지 말라.
더 이상 불법과 불의를 진리 수호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말라.
회개하고 회개하고 회개하라.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오라.
교단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를 높이라.
사람의 명예를 무너뜨리는 일보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라.
목사라면 이단 감별사가 되기 전에 먼저 목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몇 명을 이단으로 규정했는가를 묻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맡겨진 양 떼를 얼마나 사랑으로 돌보았는가를 물으실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 (고전 10:12)
부디 지금이라도 사람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서 목자의 자리로 돌아오라.
2026-06-06 19:05:30 | 이규환
경험과 함께 좋은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품성 중 어느 하나라도 쉽게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긍휼은 특히 더 그런 듯합니다. 마음을 좀 더 열고 긍휼의 첫 단추를 채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2026-05-30 09:37:02 | 김지훈
'긍휼' 하면 언젠가 뜨끔하게 느껴졌던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긍휼 베풀지 않은 자는 긍휼 없는 심판 받을 것...약2:13 일부, 그 말씀 말입니다.
2026-05-29 22:08:43 | 최영오
오늘도 씩씩하고 바르게 살 수 있게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핍박 억울한 입장에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저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진정이 돼요~^^ 먼저 실수투성이 보잘것없는 저를 빠르게 인정하기-상대는 지금 어떤 어려움에 갇혀 있고 그 원인은 뭘까 생각하기-저들이 극복할 수 있게 내기쁨(나의 하나님)으로 환경(좋은밭)되어주기 입니다.요즘은 말씀에 순종하고자하는 결단! 하나님의 기쁨을 최우선 맨앞에 두기 작전으로 살고 있어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리라.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5장16~1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live/_cyHvoDNL-E?si=jM6TdUi7_wb0MLGt
2026-05-28 09:21:37 | 목영주
긍휼 : 급진적인 사랑, 파격적인 사랑
긍휼에 대한 경험(적용)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올린다.
나는 솔직히 말해 중언부언하는 사람, 동문서답하는 사람, 횡설수설하는 사람, 두서없이 말하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들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 성격이다. 대화가 답답하게 느껴지면 속으로 선을 긋는다. 이런 나의 모습이 늘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긍휼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최근 정동수 목사님의 누가복음 설교를 다시 듣고 있다. 설교를 듣던 중 “긍휼”에 대한 말씀이 예전에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다가왔다. 마치 번개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동안 나는 긍휼을 그저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긍휼은 단순히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마음으로 상대의 아픔을 바라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 팀원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6명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한 팀원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회식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고, 대화를 하면 질문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흐름과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를 해도 혼자 다르게 이해하는 일이 반복되고, 팀원들의 피로감도 점점 커져 갔다.
결국 팀 안에서는
“말이 안 통한다”,
“함께 가기 어렵겠다”,
“차라리 제외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는 결과도 중요하고 팀워크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난 후, 그 팀원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계속 저 사람의 문제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저 사람의 마음과 아픔은 알려고 했을까?”
예수님께서는 늘 사람들이 밀어내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셨다.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했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가셨다.
사람들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정죄했지만 예수님은 먼저 그 여인을 보호하셨다.
사람들은 나병 환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의 몸에 손을 대셨다.
또 사람들은 마귀 들린 사람을 두려워하며 동네 밖으로 내쫓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찾아가 회복시켜 주셨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그분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으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같이 지치고 널리 흩어졌기 때문이라.”(마태복음 9:36)
또 굶주린 무리들을 보시고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마가복음 8:2)
예수님의 긍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분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셨고, 들어주셨고, 만져주셨고, 회복시켜 주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도 이번에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전에 먼저 긍휼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업무 이야기만이 아니라 무엇이 힘든지, 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운지, 어떤 상황에서 부담을 느끼는지를 천천히 들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판단하지 않고 계속 들어주자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 사람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가 먼저 달라지기 시작하니까 주변 팀원들의 시선과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점차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공동체 안에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팀원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긍휼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배우게 되었다.
긍휼은 멀리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아픔 가까이로 걸어 들어가는 마음이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해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특별한 경험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 역시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선을 긋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긍휼을 실제 삶 속에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주변에 “불편한 사람”,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한 사람을 긍휼로 품는 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는 없을지라도, 한번 더 물어보고, 한번 더 들어주는 것이 긍휼한 마음을 품는 첫 단추가 아닐까!
그리고 시간을 내어 목사님의 누가복음 강해 18편, 19편. 20편을 꼭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끝.
2026-05-27 17:46:08 | 이규환
기초가 튼튼해야, 튼튼하면~~~
2026-05-27 17:28:06 | 이규환
분석을 자세하게 하셨네요^^
거의 부정적인 단어네요.
7교회의 모든 모습이 내게도 있구나 했는데 더 상세하게 말해주셨어요. 모두 다 떨어버리기를 ~
2026-05-23 06:41:17 | 이수영
모든 경우가 저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믿음이 약한 저를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6-05-22 09:45:17 | 김지훈
형제님글을 코팅해 마음속에 붙이고 다니고 싶어요~^^감사드립니다! 천성기질 자체가 염세적이라 불안 염려가 기본값인데다가 역량부족에서 오는 두려움까지 가진 저는 4,5번을 넘어 7,8,9번으로 가서-아버지와 마음으로 멀어질까봐..제가 말씀에 순종하려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저의 변화를 보고 위 천사들은 놀라 자빠질지경이겠지만,하나님께서 6번같은 상황안에 저를 오랫동안 있게 하시는 이유가-단련할게 무지많다는걸 증명하고 있어요. 예수님..나라 살려주세요.오늘도 거룩한 일상을 위해 예수님께 무릎꿇고 기도하는 하루 보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BCc_IbVx3rg?si=ukZWTE4AYlkhrLGr
2026-05-21 08:40:43 | 목영주
바른 믿음생활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어지는 시대 살아가매, 오래전 언젠가, 믿음이 적은 사람들의 공통적 심리 상태, 그것을 대표할 만한 단어로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불안, 실망, 두려움이 그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믿음이 적은 사람의 경우, 도래하지 않은 어떤 큰일이 발생하기 전에는 많이 불안해하고, 그 일이 발생한 후에는 많이 실망 또는 두려워할 것...이라는 결론 내려지더라는 뜻입니다.
그런 단어들을 찾아 나선 목적인즉 제 믿음생활의 충실도를 체크해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 만약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큰일에 대해 많이 불안하다면(스스로 판단하기에), 그 불안을 물리쳐줄 믿음의 분량을 대폭 늘리기 위해 더욱 빠른 속도로 하나님 향해 나아가겠다는 거죠.
어떻게? 성경말씀 더욱 열심히 읽고 기도 또한 더욱더 진지한 태도로 하고, 그렇게 말입니다. (성경말씀 엄청 열심히 읽는 사람으로 오해하시는 분 안 계시기를... ^^)
그러던 중, 최근에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성경말씀 속 사람들의 수많은 행위들 대부분이 ‘믿음’의 분량 측면에서 이해 또는 평가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 글은 위와 같은 다소 황당 또는 엉뚱한 생각에서 비롯된, 믿음이 적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현상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1. 두려워함 :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큰 폭풍으로 인한 파도에 배가 덮이게 되자 예수님을 깨우며 호들갑(^^) 떤 제자들의 경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마8:26)
2. 불안해함 / 염려함 : 형 에서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고 있다는 소식에 접하여 크게 불안해한 야곱의 경우.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창31:3)라는 주 하나님 약속의 말씀 미리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3. 조급해함 :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자기 손으로 번제 헌물을 드린 사울 왕의 경우.(삼상15) 또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때를 못 기다리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 태어나게 한 아브람과 사래의 경우.(창16)
4. 의심함 / 미심쩍어함 : “오라”는 예수님 말씀 따라 물 위를 걸어가다 사나운 바람 만나매 결국 물에 빠진 베드로의 경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 너 믿음이 적은 자야, 네가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마14:31)
5. 실망함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로 옆에서 함께 걸어가고 계셨음에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채 “우리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분이라고 믿었노라”(눅24:21)라며 실망감만 드러내던 엠마오행 두 제자의 경우.
6. 답답해함 / 신경질적으로 변함 : 광야 생활 속 계속되는 이스라엘 백성(모세의 표현에 따르면 ‘반역자들’)의 원망과 압박에 시달리던 모세는 결국 불신+분심(憤心)에 반석을 두 번 쳐 버렸습니다. "이 반석에서 반드시 물을 내야만 하랴?"라면서 말입니다. “너희는 그들의 눈앞에서 반석에게 말하라. 그러면 그것이 자기 물을 내리니”(민20:8), 주 하나님의 그 말씀 잠시 잊어 버렸을까요...?
7. 낙심함 :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말, 즉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가 메뚜기 같았으니...”(민13:33), 그 말에 완전 낙심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8. 절망함 : 갈멜산에서의 위대한 승리 후, 독오른(^^) 이세벨의 위협에 놀라 멀리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음을 구한 엘리야의 경우. 그는 말했죠. “오 주여 족하오니 이제 제 생명을 취하소서”(왕상19:4)
9. 원망함 : 오빠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야 찾아오신 예수님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으리다”(요11:32)라고 말한 마리아의 경우.
10. 불평함 : 저녁에는 고기로 아침에는 빵으로 족히 배부르게 해주셨음에도 계속 불평 늘어놓던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모세는 그들에게 말했죠. “너희가 불평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요, 주께 하는 것이니라”(출16:8)
11. 분노함 : 악한 길을 버리고 돌아선 니느웨 백성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일에 대하여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매우 분노한 요나의 경우.(욘4:1)
12. 마음속에 응어리(?) 형성됨 :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의 원로들이 어두운 곳에서 저마다 자기 형상을 둔 방들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고 주께서 그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겔8:12), 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의 그 이스라엘 원로들의 경우.
본인의 불순종, 반역 등에 대한 회개는 없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만이 쌓이고 쌓인 그런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무엇, 그러니까, 성경 말씀 속 bitterness...비슷한(^^) 것...들의 결정체 같은 그 무엇을 ‘응어리’라고 표현해 봤습니다. 정확한 용어 선택인지는... ^^
어쨌든, 믿음 부족(아예 없음?)이 그 정도 상황까지 이르면 ‘주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고 주께서 그 땅을 버리셨다’, 저런 말을 대놓고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응어리 관련하여 좀 더 말씀드리면, 마음속 응어리는 그 사람 본인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듦으로써 삶을 고통스럽게 할 뿐 아니라, 어쩌면 생각 없이 내뱉는 그런 말 듣는 다른 사람의 믿음까지도 헤치는, 말하자면, 더럽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히12:15 말씀 중의 ‘쓴 뿌리가 돋아나 많은 사람을 더럽히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13. 무감각해짐 : 밧모섬의 요한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으로부터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계3:15)는 지적 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
14.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이 사라짐 : ‘그의 발에 병이 생겨 마침내 심히 중하게 되었으나 주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사들에게 구했던’(대하16:12) 아사 왕의 경우.
15. 마음이 강퍅해짐 :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어쩌고는커녕 아예 말씀 자체를 외면하고 멸시하기까지 한 여호야김 왕의 경우. 말씀 두루마리를 펜 칼로 찢어 화롯불에 태워 버리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니(렘36:23-24)...그 마음의 강퍅함이 거의 차돌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16. 흘려들음 : 노아가 방주로 들어간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던(창24:38-39) 홍수 이전 시대 사람들의 경우.
17. 영적으로 눈멀게 됨 :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구원의 확신에서 시작하였으나 시간 지나가매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꾐에 넘어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경우.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 육체로 완전하게 되었느냐?”(갈3:3)
18. 육신적으로 행동함 : 산에 올라간 모세가 오래 내려오지 않는 상황에 처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금송아지를 신으로 모신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이어서 그들은 육체적 만족과 감각적 종교를 즐기며 먹고 마시고 뛰놀았죠.(출32)
19. 부인함 : 결국은 저주하여 맹세하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경우.(마26:74)
20. 거부함 : “너를 위해 주 네 하나님께 한 표적을 구하라”(사7:11)라는 거룩하신 주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저는 구하지 아니하겠고 주를 시험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사7:12)라고 답한 아하스 왕의 경우. 제 하나님 아닌데요? 라는 것도 아니고...대책 없다는 생각 듭니다만.
다소 본론을 벗어난 말씀입니다만, 아하스 왕에 대한 심층분석(?) 한번 해볼까 싶은 생각 가끔 하곤 합니다. 왜냐? “그는 고난당할 때에 주께 더욱더 범법하였는데 이 사람은 그 아하스 왕이니라”(대하28:22), 바로 이 말씀 구절 때문입니다. 대~~~단한 인물 아닌가요...? ^^
21. 냉소적으로 반응함 : 주의 궤가 다윗의 도시로 들어올 때 그 앞에서 뛰며 춤췄던 다윗 왕에게 냉소로 업신여겼던 미갈의 경우.(삼하6)
22. 흔들리고 불안정함 : 예레미야로부터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려 하느냐? 만일 주께서 하나님이면 그분을 따르라. 그러나 만일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열상18:21)라는 질타 받았던 아합 왕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생각을 품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길에 안정이 없느니라” (약1:8)
23. 사람을 의식함 :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음성에 순종함으로써 주 하나님을 거역한 사울 왕의 경우. 사무엘이 남긴 말씀 일부, 그 의미가 참으로 뜻깊은 것 같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24. 물러서고 멀어짐 : 한때 바울과 함께 사역했으나 결국 세상을 사랑하여 그를 버리고 떠난 데마의 경우.(딤후4:10)
글을 끝내면서, 믿음의 표본 정도로 알고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말씀 구절 하나를 옮겨 적어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 앞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한 말입니다.
오 왕이여, 일이 그리될지라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으며 그분께서 왕의 손에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으리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께서 세우신 금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할 줄을 왕께서는 아시옵소서, 하니라.(단3:17-18)
( 끝 )
2026-05-20 23:00:17 | 최영오
온유한 사람에 대한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잘 안되요.. 다시 한번 간구하면서 갑니다.
2026-05-18 09:12:51 | 김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