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05-16 13:12:45 | 박형욱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도록 모든 삶에서 온유함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2026-05-16 10:06:54 | 김지훈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눈물이 나는건 아직도 온유함이 힘들어 애를 써야 하기 때문인것 같아요..여기서의 삶은 섬길대상일뿐이지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라서 내맘을 흔들수 없다하며 씩씩한 날도 있는반면,억울해도 견디는 것밖에 할 수없는 상황일때 긍휼히 보는것만으로는 안되어서- 이상황을 허락하신 나의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옳으시다로 겨우 되는 저의 육신입니다.다행히 성화(온유)를 육신이 죽는날까지만 해도 되고 제가 휴거를 간절히 소망하는 큰이유에요~^^
https://youtu.be/DMUKuhnxWDE?si=3ubgS8eCJK1gYKhM
2026-05-16 07:18:35 | 목영주
정말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온유”라는 말을 들으면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떠올린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힘이 없고, 자기 주장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성경의 온유는 “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힘이 하나님께 통제된 상태”라고 설명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장 29절)
예수님은 온유하셨지만 결코 약하신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으며, 위선자들의 죄를 담대하게 책망하셨다.
또한 원하셨다면 수많은 천사들을 부르실 수 있는 권세도 가지셨다.
그런데도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온유이다.
온유를 이해하려면 야생마를 떠올려 보면 좋다.
야생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넓은 들판을 자유롭게 달리며 아무도 쉽게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그 힘은 통제되지 않는다.
반면 잘 훈련된 말은 어떠한가?
그 말 역시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주인의 손길에 반응한다.
주인이 멈추라 하면 멈추고,
가라 하면 간다.
짐도 나르며,
사람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힘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힘이 통제된 것이다.
성경적 온유도 바로 이와 같다.
온유한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화를 낼 수 있어도 하나님 때문에 절제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도 하나님께 맡기며,
자신의 힘과 감정을 자기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은 본래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 한다.
자기 감정대로 말하고,
자기 자존심대로 행동하며,
자기 욕심대로 달려간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훈련시키신다.
말씀으로 다듬으시고,
고난으로 연단하시며,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어 가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들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온유는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성령님의 열매이다.
또한 성경은 다른 사람을 바로잡을 때에도 온유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아 주고 너 자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갈라디아서 6장 1절)
진리를 말하더라도 거칠고 교만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강한 사람이 온유할 수 있다
세상은 자기 힘을 드러내는 사람을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을 귀하게 보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마태복음 5장 5절)
또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상속하며 넘치는 화평 속에서 기뻐하리로다.”(시편 37편 11절)
온유는 약함이 아니다.
하나님께 다스려지는 참된 강함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거칠고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모습을 다듬으셔서, 주인의 손에 쓰임받는 온유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고집만 붙들고 버티기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내 감정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가 되어야 하고,
내 자존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맡기고,
화를 내고 싶은 순간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사람을 이기려 하기보다 자신을 다스리려 해야 한다.
야생마가 주인의 손에 길들여질 때 비로소 귀하게 쓰임받듯이, 성도도 하나님께 순종할 때 비로소 주님의 일에 귀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온유는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몸에서 힘을 빼는 것이다. 특히, 눈에서 힘을, 목에서 힘을, 어깨에서 힘을 빼야 하지 않을까? 내면에는 강함을 간직한 채. 정말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쉽지 않다. -끝-
2026-05-15 19:34:16 | 이규환
대단하십니다 자매님. 어머님을 포함해 다른 가족분들도 조만간 기쁨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기를 소망합니다^^
2026-05-04 19:45:42 | 김지훈
긴 시간 영적전쟁
이제야 끝을 맺었군요.
자매님의 오랜기도와 어머니께 향한
사링의 헌신의 결과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이제는 자유로우시고
행복하실 것입니다.
주어진 모든 환경속에서 하나씩 실천의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향기되시는 자매님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2026-05-03 17:30:08 | 김경애
자매님의 활짝미소가 믿는사람임이 고스란히 드러나요!자매님 축하드리고 부럽습니다.평소 바른행실로 믿음드러내면서 그들이 낙심할땐 믿음으로 위로하면서..아직은 이렇게밖에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제게는 큰 산,벽이 있어요(그러나 맘속에는 언제든지 간결하게 적시적소에 꺼내 말할수 있는 믿음,복음을 장착하고 있습니다아~~^^)
-오 큰 산아,네가 누구냐?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그가 그것의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크게 외치며 부르짖기를,은혜,은혜가 그 돌에 있을지어다,하리라,하셨느니라,하니라.-스가랴4장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5-03 08:16:57 | 목영주
천주교를 다니시는 어머니는 명절에 차례를 늘 지내신다.
어머니가 정정하셨을 때에는 명절 며칠 전부터 장을 보러 다니시며 준비하셨고, 상에 다 올리지 못하실 정도로 차례 음식을 장만하셨다. 몇 년 전 몸이 안좋아지셔서 요양병원에 다녀오신 뒤로도 어머니의 차례상 음식은 대폭적으로 줄어들었지만 계속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 몸이 조금씩 좋아지시자 음식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앴다.
지난 설 때....
나는 설 연휴에 휴가를 더해서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찍 어머니에게 갔다. 어르신들은 밤새 안녕이라는데 올해 93세이신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함께 더 보내기 위해서이다. 어머니는 좋아하셨고, 식구들이 오기 전에 이야기도 많이 하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아구찜도 둘이 먹으러 갔다.
어머니집에 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안방에는 어머니와 성당에 다니는 큰오빠, 목사인 셋째오빠 그리고 내가 있었다. 어머니와 오빠들은 그동안의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는 좀 피곤해서 돌침대에 잠시 누었는데 바닥이 따뜻하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잠이 막 들 무렵 제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뭔가 이상해서 귀를 기울이니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슬며시 침대에서 내려와 셋째오빠 옆에 앉았다. 영적전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셋째 오빠는 우리는 하나님만 믿기 떼문에 하나님께서 하지말라고 하는 것은 하면 절대 안된다며 제사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하니 어머니는 여태까지 해 온 것이고 성당에서 제사는 지내도 된다라고 하셨다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말라고 하셨다.. 셋째 오빠는 조선 후기에 천주교도 제사금지로 인해 순교당한 사람들과 장소가 있는데 지금은 그곳이 성지가 되었다며 제사는 나중에 허용해 준 것이다라고 하니 어머니는 말문이 막히셨는지 자식이 부모를 이기려고 한다며 역정을 내셨다. 셋쩨오빠는 똑같은 어조로 제사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참수당한 천주교인들은 왜 그랬겠냐며 자신의 목숨을 신앙과 바꾼 것이라고 하니 어머니는 그렇게 죽었다고 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김수환 추기경이 죽어봐야 안다고 했다하셨다.
죽어봐야 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한마디 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거기에 대해 대꾸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나는 이 말씀 귀절을 그동안 어머니한테 여러번 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판을 준비해야 한다고....
예수님을 믿고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고 마리아는 창조물이라고.....
어머니는 결정을 내린 듯 그래도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시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목사인 셋째 오빠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정 그렇게 하시겠다면 저희 가족들은 내일 아침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때에 셋째오빠의 단호함을 보고 나도 말했다.
"오빠가 가면 나도 올라가겠습니다."
어머니는 역정을 크게 내시며 혼자 지낼테니 다 가라고 하셨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성당에 다니는 큰오빠가 말했다.
"어머니, 연세도 생각하시고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그리고 동생들이 저렇게 하니 저도 그 뜻을 따라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큰오빠의 말에 더이상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큰오빠는 어머니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거의 들어주는 편인데다 어머니는 아마도 큰오빠가 이렇게 말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신 것 같았다.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네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각자의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힌침 후 어머니는 일어나서 나가셨고 남은 셋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한참이 지나도 어머니가 들어오시지 않자 날씨도 추운데 걱정이 되어 나가서 여기저기 살펴보니 어머니는 주방 베란다 문쪽에 앉아 가로등 빛이 어슴푸레 비친 바깥문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작고 굽어진 어머니 등을 한참동안 바라보았고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시는지 가끔 손이 얼굴로 가기도 했지만 그 동작이 끝나면 목석같이 앉아계셨다. 한참 후 인기척을 느껴지셨는지 갑자기 뒤를 힐긋 돌아 나를 발견하시고 들어가라는 듯 손을 저으셨다. 나는 어머니랑 함께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계속 서있었다. 한참이 지나니 어머니가 일어서시고 우리는 안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명절 날 아침....
차례는 지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차례에 대해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조카들도....
나는 가족들이 모두 떠난 뒤 어머니와 함께 읍내에 있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그리고 시장가서 어머니가 입고 싶어하시던 옷도 사드리고...
마음에 들어하시는 모자도 2개 사 드리고...
다육이도 보고 ...
예쁜 꽃 화분도 사드리고...
그리고 남은 휴가 다 쓰고 돌아왔다.
엄마~~사랑해요~ (딸랑딸랑)
제사.... 그 질기고 질긴 끈
어찌 그리 사람의 약한 부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지....
에베소서 6장
10 주 안에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또 그분의 강력한 권능 안에서 그리하라.
11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대적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2026-05-03 07:49:29 | 이정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자신도 언제 어디서든 쉽게 넘어질 수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친한 지체들 간이라도 간혹 말실수를 하게 되지만, 온유하게 받아주는 지체들에게 또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2026-05-02 18:58:48 | 김지훈
다시 한번 환기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충돌이 일어난 후에야 돌아보고 조심할걸..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또 한번 다짐하게 하는 글입니다^^
2026-05-02 14:56:36 | 최성미
형제님글이 제겐 일침이면서 큰위로가 돼요.감사합니다~ <문제는 어떤 마음으로,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이다>명심하겠습니다.하나님이 제게 긴-터널을 주신 이유가 온유한 마음 때문인가 싶을 정도로 쉽지않네요..예수님을 드러내야지 하는 의식적 훈련으로만 겨우되는 저의 본성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마태복음7장3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5-01 22:20:48 | 목영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찬송가 가사가 성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때가 떠오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6-05-01 17:16:10 | 이규환
맞는 말인데, 왜 기분이 나쁠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통해 배우고 자라간다.
그러나 교제 가운데서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편함과 오해도 경험하게 된다.
오늘은 우리의 일상 속 작은 갈등을 통해
강점과 약점의 관계를 돌아보고, 성경이 말하는 바른 태도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래 대화를 떠올려 보자.
A: 글쎄. 그이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야채인간이 됐다고 하더라.
B: 야채인간이 아니고 식물인간 아니에요?
A: 제주도에 가면 비말국수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하더라.
B: 비말국수가 아니라 보말국수 아니에요?
A: 여름에 팔을 보호하려면 쿨피스를 입어야 한다고 하더라.
B: 쿨피스가 아니라 쿨토시 아니에요?
B의 말은 모두 맞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듣는 사람은 기분이 상한다.
심지어 B는 “아는 척한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강점과 약점은 같은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B는 정확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정확함은 분명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런 사람은 공동체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정확함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결국 강점이 약점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강점과 약점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얼굴이다.
우리의 성향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성향을 살펴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외향형은 분위기를 살리는 힘이 있지만, 지나치면 말로 실수하기 쉽다.
내향형은 신중하지만, 차갑거나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
감각형은 현실적이지만, 상상력이 제한될 수 있다.
직관형은 창의적이지만, 현실을 놓칠 수 있다.
사고형은 논리적이지만, 상대의 감정을 놓치기 쉽다.
감정형은 따뜻하지만, 감정에 휘둘릴 수 있다.
판단형은 계획적이지만, 융통성이 부족할 수 있다.
인식형은 유연하지만, 체계성이 부족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강점은 동시에 약점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강점이 약점으로 흐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룬다.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너희는 온유한 영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세워주고 너 자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갈라디아서 6장 1절)
여기서 말하는 ‘잘못’은 우리의 특질 때문에 나오는 실수를 말한다.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과 부족함, 곧 약점을 포함한다.
바울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세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자신도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교제는 단순한 친교가 아니다.
삶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강점과 약점이 드러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태도이다.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이다.
정확함이 사랑을 잃어버릴 때,
그 말은 옳아도 사람을 세우지 못한다.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
우리는 모두 부족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부족함 속에서 서로를 세워 가도록 부르셨다.
정확한 사람도 필요하고, 따뜻한 사람도 필요하다.
논리적인 사람도 필요하고, 공감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온유함이라는 통로를 통과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 될 것이다.
우리의 강점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도록,
우리의 약점이 방치되지 않도록,
서로를 향해
온유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2026-05-01 16:51:17 | 이규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한글 가사로만 찬송을 불렀지, 평소 영어 가사는 눈여겨보지도, 읽어보지도 않았기에, 오늘 처음으로 디모데후서 1장 12절 말씀 일부(I know whom I have believed)가 후렴구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2월 어느 주일, 목사님 설교 말씀(딤후 1장)을 들으며 사도 바울과 주님의 첫 인격적 만남(다마스쿠스 도상에서의)이후 유언과 같은 디모데후서 서신서를 통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며 막연하거나 저 멀리 셋째 하늘에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고난과 역경, 죽음의 고비들 속에서 바울과 늘 함께하시며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바로 곁에서 친히 말씀하시며 그를 도우셨던, 그 인격적으로 만났던 주님을 회상하는 듯한 고백인 “이는 내가 믿어 온 분을 <내가 알며>”(딤후1:12)라는 그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참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알며(I know whom~)”... 회심 후 바울의 모든 삶의 여정 속에서 그와 함께하시며 때론 용기와 소망을 주고 때론 위로와 격려를 하셨던 그 주님. 바로 그분을 내가 “알며” 지내 온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듯한 바울의 고백을 접하며, 마치 그의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제 마음을 스쳐 지나갔고 동시에 제가 인격적으로 만난 그 주님의 은혜가 오버랩되며 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게 했습니다.
사랑침례교회를 만나 주님 안에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많은 좋으신 분들을 알아가며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신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영어 가사에는 “내가 믿어 온 분을 <내가 알며>”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 한글 가사에는 저를 그토록 감격케 했던, 그 “내가 알며”(I know)가 누락되어 이 점이 참 아쉽습니다.
2026-04-09 23:43:30 | 김영규
필리핀에서 선교하시는 친구분의 간증과 현장을 공유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편안하게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친구 분의 말씀처럼, 아이들 중에서 하나님의 종이 여럿 나와 곳곳에 복음을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이 그곳에도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2026-04-05 22:25:18 | 김지훈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고 계시지요.
가끔 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도전을 받을 때가 있는데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섬기는 현장에 직접 가서 함께 하셨군요.
감동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04-04 23:07:34 | 이수영
늘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않는 자매님의 삶
작년 휴가기간동안
친구 선교지에서 있었던 사연
잔잔한 감동과 은혜의 시간들
귀한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04-04 17:09:59 | 김경애
"이는 좀 괜찮니?”
“약 먹고 있어. 더 심해지진 않은거 같아. 그런데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더라. 한국 어떡하냐...”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한국 걱정을 한다.
대한민국.....
진짜 어떡하냐.....
작년에 나는 친구가 있는 곳에 다녀왔다.
사실 해외에 혼자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공항에 나와있겠다는 친구의 말을 믿고 가기로 결정했다.
친구는 나의 오랜 고등학교 친구이다. 처음에 친구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랬다. 아주 오래 전 내가 그 친구한테 전도하려고 했을 때 그 친구는 교회에 ‘교‘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친구가 예수님을 믿고 신학을 공부하게 된 동기와 필리핀에 가게 된 과정을 말해 주었는데 나는 친구의 간증을 들으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놀랍고 하나님은 살아계심이 느껴졌다.
친구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필리핀 마닐라의 수도권인 파식시티이다. 그곳은 빈민가이지만 아이들은 정말 티없이 밝고 예뻤다. 그러나 그곳의 더운 날씨 탓인지 상의를 입지않은 성인 남자들이 많아서 보기에 좀 민망했다.
필리핀의 교통 수단인 트라이시클, 지프니도 타 보았는데 트라이시클은 좁은 길에 자주 이용되고 오토바이에 6인의 좌석이 부착된 소형 교통수단이다. 그리고 지프니는 20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문이 없는 소형 버스같은 종류로 나는 트라이시클도 지프니도 몹시 위험해 보였고 매연이 너무 심해서 마스크를 써야만 했다.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교회에 온다고 했다. 친구는 나에게 필리핀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데 교회의 아이들한테 악기를 가르켜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자피아노와 기타를 누가 줬는데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내가 기타와 피아노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악기에 먼지나 털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교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음료수 병에 콩을 넣어 간단하게 마라카스를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한국어로 배웠다는 찬양을 즐겁게 불렀다.
눈눈눈 성경보고요
눈눈눈 성경보고요
코코코 숨을 쉬고요
입입입 찬송부르고
귀귀귀 말씀들어요
머리머리머리 예수님 생각
가슴가슴가슴 예수님 사랑
손손손 봉사하고요
발발발 교회가지요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음도 제법 정확하게....
찬양을 듣는 내내 나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하나님께서도 이 찬양을 기쁘게 받아주셨으리라 믿는다.
(찬양 : 눈눈눈 성경 보고요)
http://https://youtube.com/watch?v=/vfBEMn7FTNw?si=eidDMOybSMnFy0YS
몇 평 되지않는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포함한 16명 내외의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 중에 하나님의 종이 나오기를 기도한다고....
나는 모든 것이 열악하고 부족한데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그 친구의 열정과 진심이 보여 숙연해졌다.
나는 친구의 약과 그곳의 아이들에게 보낼 한국의 물품들을 준비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불렀던 그 찬양과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받고 기뻐할 아이들과 친구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기도했다.
2026-04-04 15:54:35 | 이정자
너무나 은혜로운 찬송과 그에 담긴 의미, 작사가 휘틀의 배경 등을 상세하게 알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형제님 덕분에 'I know whom I’ve believed' 가사에 담긴 의미까지 되새겨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큰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2026-03-30 17:07:12 | 김지훈
엥? 환란 후 휴거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그죠? ^^ 딱 봐도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아예 순서대로 적어 수정했습니다.
2026-03-28 09:07:32 | 최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