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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하여: 오류도 표준인가?> 안녕하세요? 요즘 표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역본을 만든 사람들이 자신들 번역의 저본으로 사용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대해 옳지 않은 것을 전달하기에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알리는 글을 적습니다. 영어 세상에서는 James White, D. A. Carlson 등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주로 영어 성경 본문을 가지고 이슈를 삼아 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무엘 깁(Samuel Gipp) 박사가 리건(David F. Reagan) 박사의 글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을 인용하여 잘 설명하였습니다.   깁 박사의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1611년에 탄생된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심하게 흔들려는 비평가들의 최후 배수진 가운데 하나는 소위 개정(改正)이라는 문제로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 곧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역사적 사실과 사본학적 증거와 성령님께서 이루신 명백한 증거들을 내보이며 자기들의 빈약한 주장을 뒤엎어 버리자 궁극적인 패배를 맛보지 않으려고 그럴듯해 보이는 이 요새로 도피한다. 일단 이 요새에 들어서면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에 대해 자신만만해하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여러분은 어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십니까? 1611년판입니까, 1629년판입니까? 아니면 1769년판입니까?”   이 같은 공격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충격을 받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면 그들은 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재빨리 도망쳐 버린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기들의 성안에 들어가 성문을 걸어 닫는 순간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리건(David F. Reagan) 박사라는 사람에 의해 이미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완전히 허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리건 박사는 미국 테네시주 낙스빌에 있는 트리니티 침례교회의 목사이다. 그는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 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했다. 다시 말해 리건 박사는 ‘킹제임스 성경’ 비평가들의 마지막 피난처를 파괴하는 일을 훌륭히 수행해 냈던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가 발견한 것을 좀 더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으므로 그의 허락을 받아 그의 소책자 전편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리건 박사의 원본 글은 이 기사 밑에 있는 PDF 파일을 다운 받으면 되고 이것을 번역한 글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리건 박사 글 번역본 즉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마치 영어 성경 본문이 정말로 개정되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이슈를 꺼냅니다. 그러나 리건 박사가 보여 주듯이 1611년, 1629년, 1645년, 1760년, 1769년판 등은 본문 개정이 아니라 철자법, 인쇄술이 바뀜에 따라 17세기의 영어를 18, 19세기의 영어로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1900년대 초반에 조선을 Corea로 표기하다가 후에 Korea로 바꾼 뒤 지금은 모두가 Korea라고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 이것은 조금 더 압축하면 영어 성경 본문이 옥스퍼드판이냐, 케임브리지판이냐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이 글을 썼고 적어도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옥스퍼드판이냐, 케임브리지판이냐를 두고 설전을 벌이지는 않습니다. 사무엘 깁, 피터 럭크맨, D. A. 웨이트 등 킹제임스 성경 진영 내에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23년도에 출간된 표준 킹제임스 성경 진영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1769년 케임브리지판을 영어 저본으로 썼고 이것이 가장 확실한 영어 본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 블로그 링크를 보기 바랍니다.  반면에 흠정역 성경은 1909년경에 발표된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이들은 영어 본문 차이로 인해 번역상의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저본의 출처가 어딥니까?>        먼저 이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글을 전개하겠습니다.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성경 본문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닙니다.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표준 킹제임스 역본의 영어 성경 본문에는 오류들이 있고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은 거의 다 흠정역 성경이 채택한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표준 킹제임스 역본 번역자들은 그것의 영어 성경 본문이 1769년 케임브리지판임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즉 어디에서 영어 성경 본문을 구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1611년판 킹제임스 영어 성경 교정 역사 1611년판 킹제임스 영어 성경 교정은 주로 세 가지 이유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1. 시간의 변화에 따른 철자법의 변화(리건 박사의 글에서 인용함)   고딕체 s는 단어의 첫머리나 단어의 중간에서 소문자 s로 쓰일 때는 마치 f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also는 alfo가 되고, set는 fet가 된다. 또 다른 변화는 독일체 v와 u에서 발견된다. 고딕체 u가 로마체 v처럼 보이지만 고딕체 v는 로마체 u처럼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왜 w를 ‘더블브이’라 하지 않고 ‘더블유’라고 부르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좀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익숙해지면 괜찮다. 따라서 1611년판을 보면 love는 loue로, us는 vs로, 그리고 ever는 euer로 쓰여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실 철자상의 변화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활자체의 변화일 뿐이다.  2. 인쇄상의 명백한 오류들 교정 당시에는 활판 인쇄를 위해 식자공이 일일이 모든 단어의 알파벳, 콤마, 하이픈, 마침표, 물음표 등을 손으로 심어야 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약 500만 개의 활자가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식자공이 500만 개 활자를 심다가 실수할 수 있습니다. 대문자를 소문자로 할 때도 있고 not을 넣어야 하는데 넣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Wicked bible로 알려진 1631년판입니다.      원래 출애굽기 20장 14절은 “너는 간음하지 말라”이고 영어로는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입니다.   그런데 식자공의 실수로 not가 빠지면서 “Thou shalt commit adultery.”가 되어 “너는 간음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1631년판은 나오자마자 모두 폐기되었고 인쇄소는 많음 벌금을 내게 되었습니다.     Wicked Bible 그러나 인쇄상의 이런 실수들은 너무나도 명백한 것들이라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모두 교정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성경을 개정한 것이 아닙니다. 3. 시간이 지나가면서 영어 단어들이 좀 더 정교하게 고정됨   영어 위키 백과 King James Version 항목에 가면 중간에 ‘1769년 표준 본문’(Standard text of 1769)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바로 이 부분이 이에 대해 잘 설명을 합니다.    위키백과 King James version 항목  먼저 이 부분의 제목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 제목은 ‘1769년의 표준 본문’이라고 말하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표준 본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1769년의 본문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표준 본문이라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곧 보게 되겠지만 1769년 이후에도 철자법과 아포스트로피 등이 변하면서 지금 인쇄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들은 1769년 본문 그대로가 아닙니다. 참고로 아파스트로피는 하나 이상의 문자 생략 (이를테면 do not과 don't)이나 소유격의 표시 (이를테면 cat's whiskers) 등에 사용되는 부호입니다. 위키백과의 이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케임브리지판은 파리스( Francis Sawyer Parris)라는 사람에 의해 편집되어 1760, 176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앞으로 편집이란 말은 본문 개정이 아니라 철자법, 인쇄상 실수 등을 고친 것을 뜻합니다.   반면에 옥스퍼드판은 1769년에 블레이니(Benjamin Blayney)에 의해 편집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1769년 본문이란 옥스퍼드판 본문을 말하는 것이며 1769년에 출간된 케임브리지판 본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표준 킹제임스 성경 제작자들은 자기들이 말하는 ‘1769년 케임브리지 영어 본문’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기간은 모름)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는 1769년에 블레이니가 만든 옥스퍼드판을 쓰기로 하였는데 그것을 그대로 100%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를 고쳐서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블레이니가 만든 1769년판에서도 역시 원어와 비교하였을 때 단복수 문제(예를 들어 sin, sins), 철자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키 백과는 마태복음 5장 13절을 한 예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1760년 케임브리지판: Ye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have lost hi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t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o be troden under foot of men. 1769년 옥스퍼드판: Ye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have lost its savou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t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o be trodden under foot of men. 이 둘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760 케임브리지판: lost his savour, troden 1769 옥스퍼드판: lost its savour, trodden 그러면 표준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표준: lost his savour, trodden 이것을 보면 표준 킹제임스 성경은 그들의 주장대로 1769년판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lost his savour는 케임브리지판, trodden은 옥스퍼드판을 따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흠정역은 lost his savour, trodden으로 되어 있어 표준역과 동일하고 이것은 troden을 trodden으로 고친 1909년경의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표준역은 케임브리지판도 아니고 옥스퍼드판도 아니며 정확하게 흠정역이 사용한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따르고 있습니다.  표준역은 오류도 표준으로 만드는가? 표준역을 만든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어 본문이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아포스트로피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표준역에는 you, we, they의 소유대명사가 your's, our's, their's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6장 20절과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보겠습니다.   표준역 눅6:20, And he lifted up his eyes on his disciples, and said, Blessed be ye poor: for your‘s is the kingdom of God. 표준역 고전1:2, Unto the church of God which is at Corinth, to them that are sanctified in Christ Jesus, called to be saints, with all that in every place call upon the name of Jesus Christ our Lord, both their's and our's: 표준역에는 분명히 눅6:20에 your‘s, 고전1:2에 their's, our's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오류입니다. 이것들은 당연히 yours, theirs, ours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표준역은 이런 데가 적어도 45군데나 있습니다. 창15:13의 their’s, 창26:20의 our’s, 신11:24의 your’s 등.    물론 흠정역 성경은 당연히 이런 단어들을 yours, theirs, ours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1769년판에서 창15:1의 their’s, 창26:20의 our’s, 신11:24의 your’s 등을 1769년판 원본 성경에 가서 보면 theirs(33쪽), 창26:20의 ours(45쪽), 신11:24의 your’s(201쪽)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표준역은 실제로 1769년판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769년판에는 여전히 your’s 같은 오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표준역 번역자들은 1769년 옥스퍼드 에디션(Benjamin Blayney)을 저본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의 원본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위의 구절 옆의 쪽 번호를 넣으면 누구나 금세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69년 옥스퍼드 에디션> 원본   표준역은 정말로 1769년 옥스퍼드(케임브리지?)판을 저본으로 사용했는가?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어떤 독자께서 표준역 지지자들이 영어 성경 저본을 꺼내 문제를 일으키자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1769년 옥스퍼드판과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비교하였습니다. 흠정역은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정화해서 1909년경에 출간된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저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의 원본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원본  다음 표에는 몇몇 구절에 대한 비교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각각 사용된 저본의 원문과 한영대역 성경의 영어 본문이 같을 때는 녹색으로 되어 있고 다를 때는 노란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흠정역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했다고 했고 실제 비교해 보면 이것이 맞음을 알 수 있습니다(녹색). 반면에 표준역은 1769년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 일부 구절에서만 옥스퍼드 에디션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주로 노란색). 참고로 이 표에서 원본 성경을 보여 주는 위의 두 링크로 들어가서 각각의 성경 보기에서 이 표의 원문 페이지 번호를 넣으면 원래 본문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성경들이라 스캔헤서 성경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표준역 번역자들은 1769년 옥스퍼드판 영어 성경이 표준이요, 저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퓨어 케임브리지판을 쓰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그려므로 이제 표준 킹제임스 성경을 만든 사람들은 대체 어떤 영어 성경 본문을 썼는지 밝히기 바랍니다. 부디 오류를 표준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1769년 이후로도 1884년에 스크리브너(F. H. A. Scrivener)는 「권위역 영어 성경(1611), 그 이후의 재판(再版)과 현대판들」(The Authorized Edition of the English Bible(1611), Its Subsequent Reprints and Modern Representatives)이라는 제목으로 킹제임스 성경 영어 본문 교정에 대해 책을 저술하였고 1769년판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어 분류하였습니다. 사실 파리스, 블레인, 스크리브너 등은 이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하였으니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인쇄되어 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킹제임스 성경 에디션 변화를 자세히 기록한 400쪽의 책 <A Textual Hi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Illustrated Edition>이 나왔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 책의 뒤에는 각각의 판에서 변화된 내용들이 분류되어 있습니다.   <A Textual Hi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Illustrated Edition> 그리고 2011년에는 킹제임스 성경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1611년판을 인쇄하되 명백한 오류들(철자, 인쇄 등)을 교정하여 인쇄한 성경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1611년판 거의 그대로라고 보면 되고 뒤에는 역시 G. Campbell이라는 저자가 에디션 변화에 대해 쓴 글이 있으며 1611년판의 철자 오류 등의 리스트가 있습니다. <King James Bible (text only) 400th anniversary ed edition by G. Campbell>    결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1611년에 인쇄된 본문, 1769년에 인쇄된 본문, 1909년에 인쇄된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611년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1611년 성경 발행 이후의 본문 변화는 인간의 언어(철자법)가 변하거나 인쇄 기술이 변하면서 이것을 교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아포스트로피, 하이픈, 대소문자 등은 원래 원문에 없던 것들이며 이런 것들이 설사 판별로 미세하게 몇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에 어떤 문제를 결코 져오지 않습니다. G. Campbell은 400주년 기념판 성경의 뒤에 쓴 글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 변화 등을 다 설명한 뒤 이렇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다른 역본들 – 이 중 어떤 것들은 정말로 좋은 역본일 수 있다 – 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끝까지 존속할 것이다.” "Other translations, some of them very good indeed, have come and will go, but the King James Version will endure."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건 박사가 지은 글의 끝맺는 말이 그 이유를 잘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 – 여기다 더하면 1760년판, 1769년판, 1909년판, 케임브리지판 혹은 옥스퍼드판 - 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2023-07-03 16:47: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6월4주차 성경읽기 퀴즈 정답을 올립니다. 샬롬~ 본문 : 욥기1-21 1. 욥기1:6, 2:1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인가? 천사 -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존재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다. 2. 모든 소유를 잃고 육신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욥이 [하나님]께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2장)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기 입술로 죄를 짓지 아니함(욥2:10). 3.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 욥은 [하나님]께 심각한 죄를 지었다(욥4:7) - 그러나 실제로 욥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 곧바른 자임(욥1:1, 2:3). 4. 엘리바스는 고난 당하는 욥을 정죄하면서 자신은 어떻다고 주장하고 있는가?(5장) 자신은 죄가 없어 고난도 없다(욥5:8) - 실제로는 위선 가운데 욥과 같은 고난이 닥칠까봐 두려워함(욥6:21). 5. 욥이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6장) 불쌍히 여김(욥6:14). 6.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고통은 반드시 악한 자에게만 임한다는 친구들의 주장에 욥의 대답은 무엇인가?(12장)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이 세상에서는 악한 자가 형통하고 선한 자가 고난 받는 경우도 많다(욥12:6). 7. 욥은 사람의 모든 허물과 죄가 신체의 어디에 그 자국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가?(13장) 발뒤꿈치(욥13:27) - 예레미야13:22 참조. 8. 욥이 [하나님]과 함께 심판 자리로 가서 변론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14장)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 정도로 큰 고통을 받을 만한 죄는 범하지 않았다(욥14:4,17). 9. 욥은 답답한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대신 말해줄 어떤 존재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16장) 변호자(욥16:21) - 예수님. 10. 빈칸 채우기(욥19:25~26)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내 살갗이 없어진 뒤 벌레들이 이 (  )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  )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몸, 안 - 몸의 부활에 대한 욥의 믿음의 고백.
2023-07-03 09:57:0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인천 간석동에서 출석하시는 나승섬형제의 모친 되시는 故 안성림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 빈소: 고대안산병원 특실111호 * 오시는길: 4호선 고잔역1번출구 맞은편 * 발인 7.3일(월) 7:10분 * 부의금: 농협 312-01497473-41 나승섬  성도님들께서는 기억해두셨다가 위로의 마음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을 당한 가정에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안을 기원하며 로마서 12장 10, 15절 말씀을 드립니다.   (롬12: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롬12:15)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   샬롬. 애경사 위원회 홍승대 형제 (010-5262-7168)
2023-07-01 18:01:18 | 관리자
진화론 인본주의로 가득차서는 허무주의,출세지향,물질만능주의,비교의식..단어들을 모두다 피하며 살아간다는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네요. 참기쁨,진심인 감사는 복음안에 그리고 진리안에 있다는 걸 모르는 우리아가들(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제일 마음 아프네요..
2023-07-01 13:00:04 | 목영주
하나님과 독대하는 기도는 꾸밀 수가 없어요. 모든 것 다  아시는 아버지께 다 쏟아놓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하나님께 영광과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싶은데.
2023-06-30 19:17:32 | 이수영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 끼치고 있는 영향-     프랑스어<D'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영어<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 긴 제목의 작품은 폴 고갱(Paul Gauguin, 1848년 6월 7일~1903년 5월 8일)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그는 이 작품을 1897년 타히티에서 사랑하는 딸 알린느의 죽음에 대한 충격, 극도의 궁핍과 건강의 악화로 인한 절망속에서 자살을 기도하면서 마치 유서를 작성하듯 일년을 걸려 이 대작을 완성한 뒤 그는 산 꼭대기에 올라 음독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습니다.이 작품은 지난 50년간 단 세 번의 외유만 가능했던 보스턴 미술관 소장작품입니다. 2013년, 마침내 3년간의 섭외 작업 끝에 극적으로 국내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된 고갱 예술의 백미이며 당시 평가가치 3천억원 이라는 단일작품으로는 천문학적인 가치가 매겨졌습니다.미술작품 사상 이보다 더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 있을까요?안타깝게도 고갱은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온 곳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갈곳도 없다..."라고 말이죠.고갱은 1901년 매독과 영양실조,모르핀 중독등으로 회복이 불가한상태에 이르렀고 1903년 매독 말기에 찾아온 정신착란 증세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긴 제목의 고갱의 작품을 철학의 언어로 다듬으면 이렇게 바꿀수 있지 않을까요?-(인간이라는)존재의 기원, 존재의 인식, 존재의 최후- 이렇게 말이죠.절정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계몽주의를 거쳐 완숙기로 가고있었는데, 르네상스 인본주의에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자율적인 존재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흐름이 지속되면서, 현대적 근대과학에 이르러선 사람은 존재의 기원과 그 이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지질학자였던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1797-1875)이 지질학에서 자연 원인의 제일성과 동일과정설을 특히 강조해 물꼬를 틔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 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라이엘의 생각을 생물학적 생명의 기원으로 확장 시켰습니다.이것은 바로 존재의 기원에서부터 비이성(非理性)의 영역으로 치닫기 시작하니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성과 근본적인 삶의 목적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사람이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의 전체 계획안에서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창조 되었으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롬 8:29/ 엡 4:13 에 잘 나타나 있음).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우리의 운명, 즉 7-80년 이라는 짧은 생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하고 절박한 고뇌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아예 괘념치 않게 됩니다.결과적으로 이것은 도덕과 가치 판단이 붕괴됨에 따라 인간성(人間性)을 상실한 야만인이 되어 되려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으며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젠 짐승들에게 배워야 하는 지경(욥 12:7)에까지 이르게 된것입니다.우리는 이 세상 모든것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것은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Chirist's an imminent of second comming)의 징조 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현재의 과정이 영원히 동일하다고 사람들을 속입니다.성경은 이미 이런 진화론에 타협적인 기독교인(유신진화론자,무천년주의자,후천년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예견했습니다.벧후 3:3-4 먼저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 정욕을 따라 걸으며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부터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 어떤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보신대로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은 전세계에 만연된 도덕적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으며 그 해악은 통계기간을 길게 잡으면 잡을수록 처참하기 이를데 없습니다.그러면 이 모든게 진화론이라는 사이비 과학 가설이 불러온 문제냐 하면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작은 누룩 하나가 온 덩어리를 뜨게 할진대 이미 진화론 이전에 신학과 철학의 분야에서 진화론이 뿌리 내릴수 있는 악의 토양을 조성했기 때문입니다.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기원은 어디입니까?또 우리는 무엇입니까?그 답은 오직 성경만이 말해줍니다.창 1:26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어...(중략)창 1:27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고 남성과 여성으로 그들을 창조하시니라.창 1:31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보라, 매우 좋았더라.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니라.하나님 께서는 단 두 구절에 네 번이나 강조하시며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되어있습니다.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5일에 걸친 창조 기간동안 온 우주를 창조하시며 좋았다고 하시지만(it was good)여섯째 날 비로소 자신의 형상(image)대로 지으신 사람을 창조하시고서야 매우 좋았더라(it was very good)라고 말씀하십니다.창세기 1장에 벌써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존재의 기원), 우리는 무엇이라는 것(존재의 인식)에 대한 답을 벌써 얻었습니다.따라서 우리는 온 우주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이 입증 되었습니다.왜?바로 우리는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또 한번 확증해 주십니다.창세기 3장에 기록된 대로 우리는 우리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사망의 운명에 처한 우리를,우리를 지으신 그분 곧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모든 피와 물을 쏟고 죽기까지 하시며 사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이제 고갱의 마지막 질문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남았습니다.성경은 말합니다. 값없이 주신 그 분의 은혜를 믿고 받아들인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종착지가 영원히 다르다는 것을요...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그리스도인이 왜 죽을때까지 공부해야 되는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고후 10:5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힘든 시기 , 힘든 계절입니다. 늘 주 안에서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을 쓰며 이재만 선교사의 세미나와 책, 헨리 모리스 박사의 저서, 프란시스 쉐퍼의 저서를 인용하거나 참조 했습니다.    
2023-06-30 18:43:27 | 박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