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번역본을 보다가
KJV으로 보니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얼마나 큰 차이인지요!
예배 역시 형식도 갖추어야 겠지만 구원받은 자들이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런 행동이 예배인 것을 생각할 때
"삶이 곧 예배" 일수 밖에 없음을 새삼 인정하게 됩니다.
2025-06-25 16:47:01 | 이수영
하나님 말씀에 충성스럽게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한때는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다행스럽게 여길 때가 있었지만, 온 마음과 온 삶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전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항상 좋은 글 요약과 자매님들의 의견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6-25 16:34:30 | 김지훈
아이들 잘못을 판단할때도-죄성,교만스런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육신의 연약함에서 온 과오인지 잘 생각해서 보게 돼요. 전자라면 무게있게 혼내고 예수님께 같이 회개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위하는 마음의 언어로 전달해야 받아들여지는 우리들입니다.또한 천성이 걱정이 많고,능력부족으로 겁이 많은 저의 시각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거나 편안한 언어로 전달을 못할때가 많구요.. 오늘도 나라걱정을 주인이신 예수님께 맡기고 하루 잘 살아내겠습니다아~~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들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6-25 09:25:50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우리가 자고 일어난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최근 12일간 이어진 이스라엘,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이, 이란의 항복으로 인해 휴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비록 많은 나라들이 타락했을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나라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평화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의 타협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그분을 두려워하게 될 때 지켜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아래 세워진 대한민국도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들이 악한 자들의 손에 넘어간 듯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를 포함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찾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자매모임에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는 주제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책을 나눌수록, 우리 자매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귀한 나눔을 성도님들과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Part 12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226p 그리심 산에서 드린 예배는 열광적인 이단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드린 예배는 메마르고 생명이 없는 정통 신앙이었다. 참된 예배의 두 가지 적은 그리심 산과 예루살렘이다. 진심과 열정과 적극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진리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 또 진리가 기초가 되지만 그것이 간절하고 열정적인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부족하다.
:정말 시대를 막론하고, 현대 교회 역시 과거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애초부터 진리 없이 예배를 드렸던 것처럼, 오늘날 일부 은사주의자들도 진리가 결여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리 없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은 자칫 이단으로 빠지기 쉬운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저는 진리 없는 열정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올바르게 알고, 그 위에 예배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 때 비로소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29p 그의 회개가 진심이라는 증거는 번제가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모든 예배에 적용된다. 진실한 예배의 증거는 마음속에 있으며, 바로 그 마음에서 진실한 예배가 나온다. 다윗의 글은 마음속에 회개와 감사, 찬양이 가득하여 입술로 그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시51:15-17참조).
:이 문장을 읽으며 예전에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장례식장에 가면 반드시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지인의 장례식장에 갔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분을 떠나보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울어야 한다'는 형식적인 것에만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정작 그분과의 추억과 이별의 슬픔에는 마음이 가지 못했던 것이죠. 예배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그분 자체가 아닌 예배의 형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회개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230-231p 어떻게 하면 예배하는 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나님의 영이 없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겠는가 이것은 참된 예배의 기초가 구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둘째, 영으로 예배하려면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먼저 구원받은 성도가 되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라는 사실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예수님의 인성에 감동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영적인 진리는 결코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고 난 뒤, 공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인지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완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그 마음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게 여겨지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233-234p 때로는 우리 삶 속에 고백해야 할 죄가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하나님 보시기에 괜찮을 거라고 우리 스스로 생각할 때가 있다.
:저 또한 때때로 위험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죄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참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234-235p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면 제대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거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핑계댈 수 있지만, 우리가 정말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나 활동을 위해서는 시간을 낼 수 있다. 그런 핑계를 늘어놓는 사람의 진짜 문제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즉 너무 게으르고 방종해서 우선순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분명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지체들을 대할 때의 태도입니다. 가끔 우리는 어떤 성도가 예배를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마음속으로 그를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그 성도에게 어떤 사정이 있을지 헤아려보고, 이해하는 마음과 부드러운 태도로 권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41p 예배의 본질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찬양과 기도, 노래, 헌금, 삶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진리에 기초를 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스럽게 헌신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갑자기 제압하여 고개 숙이게 하심으로 드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에 계시해 주신 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내면과 영혼의 자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헌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원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성도들 간의 헌금 금액을 매주 주보에 기록함으로써 일종의 경쟁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헌금 금액까지 공개되곤 했는데, 저는 그것이 매우 안타깝고 악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성도들로 하여금 헌금의 기쁨을 잃게 만들고, 실족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고백이 되어야 하니까요.
2025-06-24 18:06:01 | 박수현
매주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시는 모습을 보며
참여 하시는 분들의 내면이 단단해 지고
흔들림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아직 일희일비 하며 힘겹게 견딥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를 외치며.
2025-06-19 16:58:17 | 김혜순
자매님들과 오붓하게 보셨군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게 와 닿네요.
2025-06-19 16:53:18 | 김혜순
자매님들만을 위해 영화관을 대여한 것처럼 보이네요^^
SBS <성경의 여정>을 통해,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손에 성경이 한 권씩 들려 있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어서 감사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깨끗하고 좋은 교회 건물에서 예배드리고 교제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희생하신 형제자매님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모든 분들에게 은혜와 화평을 풍성히 주시길 소망합니다.
2025-06-19 09:23:38 | 김지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평안 가운데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하셨는지요?
이번 자매모임에서는 책 나눔 대신, 의미 있는 영화를 한 편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그 감동을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어 이렇게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본 영화는 [신은 죽지 않았다 2 (God's Not Dead 2)]입니다. 단순한 법정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한 여교사가 수업 중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신념 사이에서 진리와 양심을 지켜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증언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신앙을 지킨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 한번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영화는 강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진리를 외면하고 침묵을 강요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할 대가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때로는 신앙 때문에 오해를 받고 불이익을 겪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영화를 기억하며, 진리 위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담대한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신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드러나길 간절히 바라며, 모든 성도님들께 주님의 평강이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2025-06-17 22:00:25 | 박수현
당시에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믿지않던 이들이 있었죠.
지금은 완전한 말씀인 성경이 주어진 시대에 살고 있어서
어찌보면 쉽게 하나님을 믿을 것 같지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자기식대로 믿는 믿음이 너무 만연한것 같고.
기독교가 깨어나지 못한 현실이 그대로 정치에 반영된거죠.
2025-06-14 08:51:12 | 이수영
메시아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끝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건,
그리고 지금 너무나 좋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지금 이 시대가 다르지 않다는 말씀에 큰 공감이 됩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암담하게 느껴지지만, 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속에서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도, 점점 악해지는 현실을 깨닫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더해지길 소망합니다.
2025-06-13 22:35:02 | 김지훈
하나님아버지께
아버지!나라걱정에 한숨을 한귀퉁이에 안고 사는 국민들 생각할때마다 마음이 많이 힘들지만, 저 낙심 안하고 잘 보내고 있어요..나라위한 기도는 거룩한 삶에 더 가깝게 만들었고,깊은 절망감은 오히려 아버지께 더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그때는.. 잘 견뎌냈구나 하시며 제 눈물을 닦아주시는 상상으로, 내일도 예수님께 누가 되지 않는 하루 보내겠습니다!
-내가 내 어머니 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벌거벗은 채 거기로 돌아가리라.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욥기1장21절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들을 경홀히 여기리라-사무엘기상 2장3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6-12 22:42:40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참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계절을 잘 누리고 계신가요?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땅에 죄악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견고하게 세워줍니다. 무더위가 오기 전, 이 초여름의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제는 “아버지께 예배하라”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이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고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열심히 드린 예배라도 그 대상이 잘못되었다면 헛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제를 통해 하나님은 매우 정확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하나를 알더라도 ‘바르게’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책을 읽으시며 어떤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는지 함께 나눠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Part 11 아버지께 예배하라
214p '아버지'는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하나님의 호칭이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말씀하신 적이 약 70번 정도 기록되어 있는데,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을 때만 제외하고 매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호칭이 단순한 말이 아닌, 실제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말로만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만든 구절이었습니다.
215p 요한복음 4장 21절에 "아버지께 경배할"이라는 말이 나오고, 23절 앞부분에도 "아버지께 참되게 경배하는"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23절 끝부분에도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은 분명히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표현을 보며, ‘얼마나 예배하는 자들이 드물기에 하나님께서 찾기까지 하실까’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 예배 태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과연 내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길 때 우리 삶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저는 이렇게 정리해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두려움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전환된다.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을 배우게 된다.
공동체 의식이 강화된다.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진다.
217p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가 존재, 본질, 신성이 동등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5:17 참조). 아버지가 하나님이신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질을 갖고 있다는 뜻임을 알았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고도 어찌하여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과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부정했습니다. 지금 시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고 악한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221p 삼위일체 교리는 참된 예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우리의 예배를 인도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길은 그 아들을 예배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똑같이 공경받아 마땅한 그 아들이 하나님과 하나임을 인식할 때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예배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아버지시기에 더 크다’는 식의 비교나 분리는 참된 예배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버지만, 또 어떤 곳은 예수님이나 성령님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올바로 알면 이러한 편향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223p 삼위일체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각각 독특한 사역을 맡으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성자 예수님께로 부르시고, 성자는 우리를 성부 하나님께로 부르신다. 또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예배는 삼위일체 세 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세 분 모두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으시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 세 위격이 분명히 존재하시지만 본질적으로 ‘한 하나님’임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일부 성경에서 ‘하나’가 아닌 ‘한 분’으로 번역된 이유는, 잘못하면 이단 사상인 양태론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해야 ‘시간’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이해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성경이 계시한 대로 삼위일체 교리를 바로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온전한 예배자로 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25-06-11 20:38:12 | 박수현
아주 좋아 보입니다.좋은 곳에서 초여름을 만끽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요.
계속 좋은 모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2025-06-07 07:33:29 | 이규환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에서 교제 나누신 자매님들 부럽습니다~ 즐거운 마음이 기쁜 표정에 모두 드러나니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집니다:-)
2025-06-05 13:25:25 | 김지훈
좋은 날씨에 나들이를 하셨네요.
주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같은 생각을 가진 자매들과의 교제는
시간이 빨리가지요~
어제도 바람은 심하게 불었지만 하늘은 맑고햇볕이 따스해나가고 싶은 날이었어요. 기침하느라 밖에 못나가서 더 그랬겠지요^^
모두 감기 조심 하시길~
2025-06-05 06:02:06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지난 자매모임에서는 책 모임 대신 야외로 나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깊은 나눔의 시간은 없었지만, 함께한 따뜻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나라의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소망을 더욱 하늘에 두며,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휴거의 날까지, 우리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끝까지 함께 예배드리기를 소망합니다.
2025-06-04 17:35:43 | 박수현
육신의 편안함은 영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되죠.
오히려 괴로움과 어려움, 여러가지 고난은 반드시 유익이 있고요.
일상생활 중에 말씀이 진실임을 진솔히 느끼게 되니까요.
2025-05-28 21:29:35 | 이수영
하나님계심을 알고 구원의 확신이 들고 말씀먹여주는 사랑침례교회가 너무 귀해, 교회 화장실청소가 로망이 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청소 한번 못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어떤날은 형제님자매님께 넘 고맙고 미안해 숨어다닐까?한 적도 있어요~^^ 사랑침례교회는 지금 이 나라 교회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애써주시는 형제님 자매님들이 없다면 유지 자체가 안될거예요..제가 언젠가 죽어도 저희 아이들이 다닐수 있는 교회를 유지시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6월 3일 혹시라도 낙심되어 고개 숙이고 다닐 자신이 없음을..믿음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구원받고 지나온 저의 마음 동기를 보시고 저 살려주세요..나라 예수님이 구해주세요..
-나를 부르라.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강력한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서33장3절
- 보라,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예레미야서32장2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28 17:04:25 | 목영주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 봅니다. 쉽게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 예수님의 크신 희생 덕분에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2025-05-28 11:20:19 | 김지훈
“그러나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홍해 속에서 뒤엎으신 분께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을 영원하도다.” (시136:15)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오늘은 나라의 비상사태를 맞아, 성경의 정신을 따라 우리 교회는 자발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한 번만 더 살려주시고, 악한 자가 하나님이 세우신 대한민국의 통수권자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교회는 하나님의 끝없는 긍휼과 은혜를 잊고, 많은 악한 일들에 동참해왔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본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쁜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 이 나라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이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올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사회주의 체제 속으로 나라를 밀어 넣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야 할 때입니다. 시편 136편의 말씀처럼, 영원한 긍휼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시어, 마음이 강퍅한 지도자들과 그들의 세력을 3500년 전처럼 홍해 속에서 뒤엎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자매 모임에서는 [여기가 그곳이다] 라는 주제로 함께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할 그 자리임을 고백하며,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Part 10 여기가 그곳이다
200p 예수님의 대답은 흥미로운 질문을 유발한다. 제일 먼저 예배 장소가 과연 중요한지 묻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성전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예배가 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면, 왜 그렇게 특별한 예배 장소를 지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교회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옛 제도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예배 장소는 그리심 산에 있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지도 않다. 예전과 같은 예배 의식과 전통은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엘리트 사제, 제단, 희생 미사, 촛불, 분향 등이 필요 없다.
:아직도 구약식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 가톨릭을 들 수 있는데요, 의식과 형식을 곧 예배라고 여기며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형식적인 예배가 참된 예배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201p 성전은 실체가 아니라 상징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것을 이해해야 했고, 우리 역시 그렇다.
(고전 6:19)모든 성도는 살아 숨 쉬는 성전이며,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그것은 신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통해 전 인류에게 시청각적인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성막(또는 성전)은 유대인들이 각 기구 하나하나를 두려움과 정성으로 준비했던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은혜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몸이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 ‘전(殿)’을 유대인들처럼 경외심과 정성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회개하게 됩니다.
:모든 성도가 살아 숨 쉬는 성전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피부에 와닿지 않아,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말씀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자연스럽게 예배와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3p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사실상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도가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건물을 예배 장소로 특별히 지정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사실 새 언약 아래서도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의 몸인 성전과 별도로 또 다른 성전을 갖고 계시며, 거기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신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건물이다(엡 2:19-22).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이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장소’의 중요성도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예배를 드렸는데, 아무리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려 해도 어느새 흐트러진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인 편안함은 종종 영적 성장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지 오래되었어도, 때때로 내 영 메말라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지칠 때도 그렇고, 교회 생활이 길어질수록 기쁨보다는 타성에 젖을 때가 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는 이유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제를 통해 다시 치유받고 회복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07p 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요소는 형식이 아니라 성도의 마음 상태다. 우리의 공동 예배가 개개인의 예배하는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 평상시에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 아침 교회에 가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 하셨습니다. 구원을 받고 올바른 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성도라면, 상한 심령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동안 죄 가운데 살고 교회에 나아왔을 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며 하나님 앞에 회개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의롭다’ 하셨다는 말씀이 너무나도 큰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208p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교회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왔다. "사람들은 설교자가 무대에 선 배우이고 자신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칭찬하는 비평가인 줄 안다.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으니, 바로 그들이 무대의 배우라는 것이다. 설교자는 단지 그들이 대사를 잊어버렸을 때 상기시켜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관객'이시다!
:나도 모르게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비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일부러 그런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우리의 육신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반응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경건 서적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배를 본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예배의 관객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209-211p 개인적인 예배와 공동의 예배는 서로 양분을 공급해준다. 그래서 한편으로 내게는 성도들 간의 교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성도들의 공동체는 지속적인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지원과 서로 간의 격려가 없으면 우리의 영적 성장과 안정성은 유지될 수 없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교회다. 교회 안에서, 즉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천국의 예배에 가장 가깝다. 누가 그런 예배에 참석하고 싶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책에서 소개된 석탄의 비유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속담 중에도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함께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생명력을 얻고, 유익을 얻는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2025-05-27 12:05:10 | 박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