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믿지않던 이들이 있었죠.
지금은 완전한 말씀인 성경이 주어진 시대에 살고 있어서
어찌보면 쉽게 하나님을 믿을 것 같지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자기식대로 믿는 믿음이 너무 만연한것 같고.
기독교가 깨어나지 못한 현실이 그대로 정치에 반영된거죠.
2025-06-14 08:51:12 | 이수영
메시아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끝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건,
그리고 지금 너무나 좋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지금 이 시대가 다르지 않다는 말씀에 큰 공감이 됩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암담하게 느껴지지만, 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속에서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도, 점점 악해지는 현실을 깨닫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더해지길 소망합니다.
2025-06-13 22:35:02 | 김지훈
하나님아버지께
아버지!나라걱정에 한숨을 한귀퉁이에 안고 사는 국민들 생각할때마다 마음이 많이 힘들지만, 저 낙심 안하고 잘 보내고 있어요..나라위한 기도는 거룩한 삶에 더 가깝게 만들었고,깊은 절망감은 오히려 아버지께 더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그때는.. 잘 견뎌냈구나 하시며 제 눈물을 닦아주시는 상상으로, 내일도 예수님께 누가 되지 않는 하루 보내겠습니다!
-내가 내 어머니 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벌거벗은 채 거기로 돌아가리라.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욥기1장21절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들을 경홀히 여기리라-사무엘기상 2장3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6-12 22:42:40 | 목영주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참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계절을 잘 누리고 계신가요?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땅에 죄악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견고하게 세워줍니다. 무더위가 오기 전, 이 초여름의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제는 “아버지께 예배하라”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이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고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열심히 드린 예배라도 그 대상이 잘못되었다면 헛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제를 통해 하나님은 매우 정확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하나를 알더라도 ‘바르게’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책을 읽으시며 어떤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는지 함께 나눠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Part 11 아버지께 예배하라
214p '아버지'는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하나님의 호칭이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말씀하신 적이 약 70번 정도 기록되어 있는데,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을 때만 제외하고 매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호칭이 단순한 말이 아닌, 실제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말로만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만든 구절이었습니다.
215p 요한복음 4장 21절에 "아버지께 경배할"이라는 말이 나오고, 23절 앞부분에도 "아버지께 참되게 경배하는"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23절 끝부분에도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은 분명히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표현을 보며, ‘얼마나 예배하는 자들이 드물기에 하나님께서 찾기까지 하실까’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 예배 태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과연 내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길 때 우리 삶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저는 이렇게 정리해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두려움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전환된다.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을 배우게 된다.
공동체 의식이 강화된다.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진다.
217p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가 존재, 본질, 신성이 동등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5:17 참조). 아버지가 하나님이신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질을 갖고 있다는 뜻임을 알았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고도 어찌하여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과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부정했습니다. 지금 시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고 악한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221p 삼위일체 교리는 참된 예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우리의 예배를 인도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길은 그 아들을 예배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똑같이 공경받아 마땅한 그 아들이 하나님과 하나임을 인식할 때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예배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아버지시기에 더 크다’는 식의 비교나 분리는 참된 예배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버지만, 또 어떤 곳은 예수님이나 성령님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올바로 알면 이러한 편향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223p 삼위일체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각각 독특한 사역을 맡으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성자 예수님께로 부르시고, 성자는 우리를 성부 하나님께로 부르신다. 또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예배는 삼위일체 세 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세 분 모두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으시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 세 위격이 분명히 존재하시지만 본질적으로 ‘한 하나님’임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일부 성경에서 ‘하나’가 아닌 ‘한 분’으로 번역된 이유는, 잘못하면 이단 사상인 양태론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해야 ‘시간’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이해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성경이 계시한 대로 삼위일체 교리를 바로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온전한 예배자로 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25-06-11 20:38:12 | 박수현
아주 좋아 보입니다.좋은 곳에서 초여름을 만끽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요.
계속 좋은 모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2025-06-07 07:33:29 | 이규환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에서 교제 나누신 자매님들 부럽습니다~ 즐거운 마음이 기쁜 표정에 모두 드러나니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집니다:-)
2025-06-05 13:25:25 | 김지훈
좋은 날씨에 나들이를 하셨네요.
주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같은 생각을 가진 자매들과의 교제는
시간이 빨리가지요~
어제도 바람은 심하게 불었지만 하늘은 맑고햇볕이 따스해나가고 싶은 날이었어요. 기침하느라 밖에 못나가서 더 그랬겠지요^^
모두 감기 조심 하시길~
2025-06-05 06:02:06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지난 자매모임에서는 책 모임 대신 야외로 나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깊은 나눔의 시간은 없었지만, 함께한 따뜻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나라의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소망을 더욱 하늘에 두며,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휴거의 날까지, 우리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끝까지 함께 예배드리기를 소망합니다.
2025-06-04 17:35:43 | 박수현
2025-05-31 21:13:12 | 고승훈
2025-05-30 19:59:18 | 박정미
2025-05-30 14:10:11 | 심동휘
육신의 편안함은 영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되죠.
오히려 괴로움과 어려움, 여러가지 고난은 반드시 유익이 있고요.
일상생활 중에 말씀이 진실임을 진솔히 느끼게 되니까요.
2025-05-28 21:29:35 | 이수영
하나님계심을 알고 구원의 확신이 들고 말씀먹여주는 사랑침례교회가 너무 귀해, 교회 화장실청소가 로망이 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청소 한번 못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어떤날은 형제님자매님께 넘 고맙고 미안해 숨어다닐까?한 적도 있어요~^^ 사랑침례교회는 지금 이 나라 교회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애써주시는 형제님 자매님들이 없다면 유지 자체가 안될거예요..제가 언젠가 죽어도 저희 아이들이 다닐수 있는 교회를 유지시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6월 3일 혹시라도 낙심되어 고개 숙이고 다닐 자신이 없음을..믿음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구원받고 지나온 저의 마음 동기를 보시고 저 살려주세요..나라 예수님이 구해주세요..
-나를 부르라.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강력한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서33장3절
- 보라,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예레미야서32장2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28 17:04:25 | 목영주
2025-05-28 13:20:35 | 변시아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 봅니다. 쉽게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 예수님의 크신 희생 덕분에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2025-05-28 11:20:19 | 김지훈
“그러나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홍해 속에서 뒤엎으신 분께 감사하라. 그분의 긍휼을 영원하도다.” (시136:15)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오늘은 나라의 비상사태를 맞아, 성경의 정신을 따라 우리 교회는 자발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한 번만 더 살려주시고, 악한 자가 하나님이 세우신 대한민국의 통수권자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교회는 하나님의 끝없는 긍휼과 은혜를 잊고, 많은 악한 일들에 동참해왔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본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쁜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 이 나라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이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올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사회주의 체제 속으로 나라를 밀어 넣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야 할 때입니다. 시편 136편의 말씀처럼, 영원한 긍휼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시어, 마음이 강퍅한 지도자들과 그들의 세력을 3500년 전처럼 홍해 속에서 뒤엎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자매 모임에서는 [여기가 그곳이다] 라는 주제로 함께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할 그 자리임을 고백하며,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Part 10 여기가 그곳이다
200p 예수님의 대답은 흥미로운 질문을 유발한다. 제일 먼저 예배 장소가 과연 중요한지 묻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성전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예배가 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면, 왜 그렇게 특별한 예배 장소를 지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교회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옛 제도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예배 장소는 그리심 산에 있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지도 않다. 예전과 같은 예배 의식과 전통은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엘리트 사제, 제단, 희생 미사, 촛불, 분향 등이 필요 없다.
:아직도 구약식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 가톨릭을 들 수 있는데요, 의식과 형식을 곧 예배라고 여기며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형식적인 예배가 참된 예배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201p 성전은 실체가 아니라 상징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것을 이해해야 했고, 우리 역시 그렇다.
(고전 6:19)모든 성도는 살아 숨 쉬는 성전이며,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그것은 신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통해 전 인류에게 시청각적인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성막(또는 성전)은 유대인들이 각 기구 하나하나를 두려움과 정성으로 준비했던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은혜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몸이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 ‘전(殿)’을 유대인들처럼 경외심과 정성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회개하게 됩니다.
:모든 성도가 살아 숨 쉬는 성전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피부에 와닿지 않아,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말씀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자연스럽게 예배와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3p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사실상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도가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건물을 예배 장소로 특별히 지정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사실 새 언약 아래서도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의 몸인 성전과 별도로 또 다른 성전을 갖고 계시며, 거기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신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건물이다(엡 2:19-22).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이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장소’의 중요성도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예배를 드렸는데, 아무리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려 해도 어느새 흐트러진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인 편안함은 종종 영적 성장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지 오래되었어도, 때때로 내 영 메말라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지칠 때도 그렇고, 교회 생활이 길어질수록 기쁨보다는 타성에 젖을 때가 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는 이유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제를 통해 다시 치유받고 회복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07p 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요소는 형식이 아니라 성도의 마음 상태다. 우리의 공동 예배가 개개인의 예배하는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 평상시에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 아침 교회에 가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 하셨습니다. 구원을 받고 올바른 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성도라면, 상한 심령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동안 죄 가운데 살고 교회에 나아왔을 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며 하나님 앞에 회개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의롭다’ 하셨다는 말씀이 너무나도 큰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208p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교회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왔다. "사람들은 설교자가 무대에 선 배우이고 자신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칭찬하는 비평가인 줄 안다.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으니, 바로 그들이 무대의 배우라는 것이다. 설교자는 단지 그들이 대사를 잊어버렸을 때 상기시켜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관객'이시다!
:나도 모르게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비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일부러 그런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우리의 육신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반응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경건 서적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배를 본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예배의 관객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209-211p 개인적인 예배와 공동의 예배는 서로 양분을 공급해준다. 그래서 한편으로 내게는 성도들 간의 교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성도들의 공동체는 지속적인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지원과 서로 간의 격려가 없으면 우리의 영적 성장과 안정성은 유지될 수 없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교회다. 교회 안에서, 즉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천국의 예배에 가장 가깝다. 누가 그런 예배에 참석하고 싶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책에서 소개된 석탄의 비유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속담 중에도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함께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생명력을 얻고, 유익을 얻는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2025-05-27 12:05:10 | 박수현
영적인 양식이 풍성해지도록 책 내용에 따른 여러 생각과 진솔한 고백을 공유해 주시는 자매님들, 정갈하게 정리해 주시는 박수현 자매님 감사합니다 :-)
2025-05-20 09:46:54 | 김지훈
수현자매님~서두부분 글로 위로받았습니다!복음전하기 위해 또는 그리스도인 모습 보이려 할때, 상대의 필요와 상황에 맞게 해주어도 그 가치를 모르고 거부,핍박할때는 맡기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내공도 필요합니다..제가 갈라디아서5장 24절을 좋아하게된 이유입니다~^^
추신.아버지! 아버지는 계세요. 아버지가 나라 해주시는 벅찬기쁨으로 감사함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나라걱정에-주변 불신자들에게 아버지계심,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이제사 이만큼 커진것에 회개 고백하며, 그것을 위해 건강위한 운동과 웃음을 훈련(?)--작은것부터 실천하겠습니다
-오 내 의의 하나님이여,내가 부를 때에 내 말을 들으소서.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에 주께서 나를 넗혀 주셨으니 내게 긍휼을 베푸시고 내 기도를 들으소서-시편 4편1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5-19 22:46:42 | 목영주
소규모 그룹이 각자 공부해 온 것을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이었지요.
날이 갈수록 자매모임이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스도인의 삶이 곧 예배라는 것을 실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겠어요.
돌아가며 인도하는 모습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우리 자매 모임이 되어가네요^^
2025-05-19 16:30:08 | 이수영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며칠째 이어지는 비와 흐린 날씨로 습도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쌀쌀하고 흐린 기온 변화에 따라 컨디션이 저하되기 쉬운 요즘, 적절한 운동과 영양 섭취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양식까지 함께한다면, 몸과 마음 모두에 건강한 ‘근육’이 생겨 더욱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소홀히 하면 빠르게 쇠약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마음은 더욱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까다로운 존재입니다. 하루라도 하나님 말씀과 멀어지면, 어느새 육신의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도록 우리를 유혹하곤 하지요.
성도라면 누구나 죄의 몸으로 인해 이런 비참한 심정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성령을 따라 걷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7장의 절망 바로 뒤, 8장에서 우리는 다시금 소망과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자매 모임에서는 나라의 상황과 개인적인 고난 속에서 지쳐 있을 성도님들께 ‘단비’가 되어줄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주제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온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성취하신 뒤 휘장을 찢으시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래할 진정한 ‘뉴에이지’의 절정은 바로 성도들의 휴거입니다. 이 주제로 나눈 자매들의 이야기가 성도님들의 삶에도 따스한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Part 09 새로운 시대가 밝아온다
181p 우리는 예배가 단순히 우리의 일정에 간간히 포함된 활동이 아니라 모든 삶을 드리는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포괄적인 반응이고, 오직 구원받은 자들만 드릴 수 있는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삶 자체가 예배다”라는 말은 저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단지 두려운 감정만 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통해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더 기쁘게 여기실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다짐하게 되어, 제게는 참으로 유익한 말씀이었습니다.
182p (요 4:3-8)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신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미리 정하신 일이었다. 킹제임스 성경은 "그가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해 가셔야만 했다"고 번역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서는 "must needs go"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여기서 must라는 단어를 통해 그곳에 가야만 했던 이유가 더욱 강조되고 있지요.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깊이 느꼈고, 하나님의 놀라운 성실하심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일한 마음으로 저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사람을 등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당시 그녀가 겪고 있던 죄로 인한 내면의 고통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피해 대낮에 홀로 물을 길러 나왔던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 여인이 구원받을 자임을 아시고, 기꺼이 그곳으로 가셨다는 사실에서 크나큰 감격과 소망을 느낍니다.
185p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셨고, 예수님의 주장은 사마리아 여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장면을 통해 저는 예수님의 복음 전하시는 방식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정형화된 틀 속에서 반복적으로 외워 전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지요. 요즘엔 복음을 ‘암송하듯’ 전하는 경우도 많은데, 예수님은 그 사람의 삶의 형편과 마음의 상태에 맞게 다가가셨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의 필요와 상황을 먼저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말씀을 더 바르게 읽고, 더 깊이 묵상해야 하며, 그럴 때에야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도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88p 여인이 혼란스러워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여인은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예배 시스템 가운데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쪽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만족을 주는 영적 생명을 제공하는 것 같지 않았다. 유대인의 예배는 너무 의례적이었다. 엄격한 의식을 따라 행해졌다. 반면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그리 정교하거나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피상적이고 무심하며 자기들의 방식대로 예배 드리는 잘못을 범했다.
:현대 교회의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안타까운 현상처럼 보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를 얻은 우리가 다시 율법의 멍에를 메려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아픈 현실입니다.
189-190p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옛 언약을 끝났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큰 사건으로 그것을 기막히게 극적으로 보여주셨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일어난 사건이다. 성막(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면서, 하나님이 그 모든 제도를 종결시키셨음을 나타냈다.
:성막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그림자는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드렸던 정성된 예배의 정신은 신약의 교회도 본받아야 할 귀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형식은 지나갔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본이 됩니다.
192p 안식일에는 더 고귀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순전히 '상징적인 것'이다. 흠없는 어린 양과 수송아지와 피의 헌물을 드리는 희생 헌물 제도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을 상징했듯이, 안식일 제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아를 통해 발견하는 참된 안식과 예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예수님께서 왜 하필 안식일을 두고 분란을 일으키셨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분명히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기에, 그 전통을 의도적으로 넘어서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196p 만일 우리 주님께서 오늘 오신다면 그런 의식적인 예배를 비난하실 것이다. 안식일을 엄수하자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또 많은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행하고 있는 격식을 갖추지 않는 예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실 것이다.
:예배에 대해 성경적으로 깊이 공부하다 보면, 우리의 예배를 더욱 균형 있게 세울 수 있습니다. 질서 없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예배드리는 것도 결코 성경적인 방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며, 동시에 ‘거룩한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197p 그리스도는 참된 예배의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그 예배는 외적인 것이나 상징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고, 내적인 것과 진정한 것에 초점을 둔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예배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합당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이 모든 내용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동의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형식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되, 그 안에 담긴 중심과 성경적 기준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입니다.
2025-05-19 15:32:15 | 박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