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며칠째 이어지는 비와 흐린 날씨로 습도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쌀쌀하고 흐린 기온 변화에 따라 컨디션이 저하되기 쉬운 요즘, 적절한 운동과 영양 섭취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양식까지 함께한다면, 몸과 마음 모두에 건강한 ‘근육’이 생겨 더욱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소홀히 하면 빠르게 쇠약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마음은 더욱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까다로운 존재입니다. 하루라도 하나님 말씀과 멀어지면, 어느새 육신의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도록 우리를 유혹하곤 하지요. 성도라면 누구나 죄의 몸으로 인해 이런 비참한 심정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성령을 따라 걷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7장의 절망 바로 뒤, 8장에서 우리는 다시금 소망과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자매 모임에서는 나라의 상황과 개인적인 고난 속에서 지쳐 있을 성도님들께 ‘단비’가 되어줄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주제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온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성취하신 뒤 휘장을 찢으시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래할 진정한 ‘뉴에이지’의 절정은 바로 성도들의 휴거입니다. 이 주제로 나눈 자매들의 이야기가 성도님들의 삶에도 따스한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Part 09 새로운 시대가 밝아온다 181p 우리는 예배가 단순히 우리의 일정에 간간히 포함된 활동이 아니라 모든 삶을 드리는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포괄적인 반응이고, 오직 구원받은 자들만 드릴 수 있는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삶 자체가 예배다”라는 말은 저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단지 두려운 감정만 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통해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더 기쁘게 여기실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다짐하게 되어, 제게는 참으로 유익한 말씀이었습니다. 182p (요 4:3-8)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신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미리 정하신 일이었다. 킹제임스 성경은 "그가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해 가셔야만 했다"고 번역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서는 "must needs go"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여기서 must라는 단어를 통해 그곳에 가야만 했던 이유가 더욱 강조되고 있지요.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깊이 느꼈고, 하나님의 놀라운 성실하심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일한 마음으로 저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사람을 등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당시 그녀가 겪고 있던 죄로 인한 내면의 고통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피해 대낮에 홀로 물을 길러 나왔던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 여인이 구원받을 자임을 아시고, 기꺼이 그곳으로 가셨다는 사실에서 크나큰 감격과 소망을 느낍니다. 185p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셨고, 예수님의 주장은 사마리아 여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장면을 통해 저는 예수님의 복음 전하시는 방식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정형화된 틀 속에서 반복적으로 외워 전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지요. 요즘엔 복음을 ‘암송하듯’ 전하는 경우도 많은데, 예수님은 그 사람의 삶의 형편과 마음의 상태에 맞게 다가가셨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의 필요와 상황을 먼저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말씀을 더 바르게 읽고, 더 깊이 묵상해야 하며, 그럴 때에야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도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88p 여인이 혼란스러워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여인은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예배 시스템 가운데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쪽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만족을 주는 영적 생명을 제공하는 것 같지 않았다. 유대인의 예배는 너무 의례적이었다. 엄격한 의식을 따라 행해졌다. 반면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그리 정교하거나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피상적이고 무심하며 자기들의 방식대로 예배 드리는 잘못을 범했다. :현대 교회의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안타까운 현상처럼 보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를 얻은 우리가 다시 율법의 멍에를 메려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아픈 현실입니다. 189-190p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옛 언약을 끝났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큰 사건으로 그것을 기막히게 극적으로 보여주셨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일어난 사건이다. 성막(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면서, 하나님이 그 모든 제도를 종결시키셨음을 나타냈다. :성막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그림자는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드렸던 정성된 예배의 정신은 신약의 교회도 본받아야 할 귀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형식은 지나갔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본이 됩니다. 192p 안식일에는 더 고귀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순전히 '상징적인 것'이다. 흠없는 어린 양과 수송아지와 피의 헌물을 드리는 희생 헌물 제도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을 상징했듯이, 안식일 제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아를 통해 발견하는 참된 안식과 예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예수님께서 왜 하필 안식일을 두고 분란을 일으키셨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분명히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기에, 그 전통을 의도적으로 넘어서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196p 만일 우리 주님께서 오늘 오신다면 그런 의식적인 예배를 비난하실 것이다. 안식일을 엄수하자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또 많은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행하고 있는 격식을 갖추지 않는 예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실 것이다. :예배에 대해 성경적으로 깊이 공부하다 보면, 우리의 예배를 더욱 균형 있게 세울 수 있습니다. 질서 없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예배드리는 것도 결코 성경적인 방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며, 동시에 ‘거룩한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197p 그리스도는 참된 예배의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그 예배는 외적인 것이나 상징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고, 내적인 것과 진정한 것에 초점을 둔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예배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합당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이 모든 내용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동의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형식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되, 그 안에 담긴 중심과 성경적 기준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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