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의 선봉에 서는 교회 그리고 성도이기를 소망합니다.
2025-09-30 22:17:05 | 최영오
서신 또는 칼럼 등의 글을 읽을 때면, 글 쓰신 분의 의도와 당시 상황까지도 곰곰이 짚어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즉 성경 구절들 읽어 내려감에 있어서는 그런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글 쓰신 분의 의도와 당시 상황을 곰곰이 짚어보게 되는 때가 언제냐 하면, 글 다 읽고 나서 다른 일 할 때인 것이 보통이죠.
다른 일 하던 중 불현듯 생각난 말씀 한 구절에 붙잡혀 일련의 점검 및 재확인 끝에...그렇구나...!...그것이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었구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때면...가까운 듯했던 진리가 아직 멀리 있음에 대한 부끄러움 느끼는 한편, 나름 정확히 알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온 죄(?)와 그 용서까지를 구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뒤늦게나마 말씀이 지닌 참된 의미 알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곤 하죠.
그런 말씀 한 구절, 그러니까, 제대로 아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가다 뒤늦게 참된 의미 깨닫고서 죄와 그 용서, 은혜 그리고 감사에 이르게 된 경우의 일례를 밝혀 보고자 합니다. 새삼 회개하는 의미에서라고나 할까요. ^^
1. 요일5:7, 바로 그 말씀
위 일례의 그 말씀은 요일5:7 말씀인바, 우리 성경, 즉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 요일5:6~8 말씀을 우선 적어봅니다.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분은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를 명쾌히 설파한 위 말씀이 NIV 성경, 개역 개정 성경 등의 현대 역본 성경에는 없습니다. 똑같은 요일5:7이되 서로 다른 내용이라는 거죠.
참고로, NIV 성경 요일5:6~8 말씀의 경우,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로 기록된 반면
개역 개정 성경 요일5:6~8 말씀의 경우,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고 /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착각 속의 단편적 이해
위 킹 제임스 성경 요일5:7 말씀을 접한 이후 한동안 상당한 자긍심 느끼며 지냈답니다. 기독교 기본 중의 기본 교리라 할 만한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가 참으로 명확 명쾌히 규명된 성경, 즉 킹 제임스 성경으로 믿음 생활 하고 있음에 대한 자긍심, 충분히 가질 만하지 않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 명확히 규정한 성경 구절은 없다느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 혹시 만나 우리 성경 보여줄 날 있으면 좋겠다...라는 다소 거시기한 생각 할 때도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
그런데 말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 말씀, 즉 요일5:6~8 말씀 기록할 당시 상황을 알아본바, 그분 말씀의 주된 의도, 목적은 그게 아니었더군요. 그분은 반영지주의적(反靈智主義的) 선언 차원에서 그 말씀 하셨던 거죠.
말하자면, 성령님께서는 예수님 십자가 수난에 앞서 이미 떠나신 결과, 예수님 흘리신 피는 하나님의 피가 아니라는 영지주의자들을 입틀막(^^)하려는 의도였더군요.
그런 것도 모른 채, 오히려 아는 척 자긍심에 젖어 있었던 자신을 돌이켜보매 솔까말 많이 부끄러웠답니다. 그래, 너는 아직 멀었다...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3. 단편적 이해로 그친 원인
이처럼 단편적으로 알고 지내게 된 원인을 짚어보았습니다. 구절 하나를 흘려들었기 때문 – 엄밀히 말하자면, 흘려읽었기 때문 - 이라는 답이 바로 나오더군요.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바로 그 구절 말입니다. 증언? 무엇을 증언한다는 건가? 라는 생각 한 번만 했더라면...그랬더라면 그 말씀의 의미 정확히 알았을 것 아닌가...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한 글자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성경 읽어 내려가기야 좀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한 구절 대충 지나쳐 버리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참된 의미를 찾아서
이어서...한때 상당한 자긍심의 근원이었던 요일5:7, 그 말씀의 근원이라 할 만한 요일5:6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요일5:7 말씀이 지닌 참된 의미를 찾아 나섰다고나 할까요. ^^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신 분이라는...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그 말씀이더군요. ‘성육신(Carnation)’ 교리가 바로 그것이잖습니까.
요일5:7 말씀은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보다 ‘성육신’ 교리 확고히 해 놓으려는 사도 요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은 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요일4:3 말씀이 결국 요일5:7 말씀, 즉 세 분 인격체 한 하나님의 증언으로 확증되고 있음 새삼 알아차리매 그 의도,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한편으로는...3개 절에 걸쳐 그토록 확실히 ‘성육신’ 교리 세워두고자 했던 당시 상황을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알아본바, 먼 옛날의 한 이단 사상으로 대충 알고 있던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의 실체가 제법 선명한 모습으로 드러나더군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 곧 죄들의 용서(마26:28, 엡1:7, 골1:14 등)를 전면 부정하다니, 그리고,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 즉 그노시스(Gnosis)를 깨달음으로써 이루어진다니...영지주의자들, 세상에 이단도 그런 이단이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생각이 그에 이르자, 요일5:7 말씀이, 그 말씀이 지닌 참된 의미...랄까, 그 가치가 어찌 그토록 거룩하게 느껴지던지요.
사도 요한 그리고 그분의 제자 분들, 또 그 제자 분들의 제자 분들...그분들은 당시 기승을 부리던 영지주의자들에 맞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펼쳤었고, 그 확실한 전승(戰勝) 기록처럼 보존된 정녕 귀한 말씀, 그것이 바로 요일5:6~8 말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5. 그분들에 관한 일화
검색 과정에서 알게 된 위 그분들 관련 일화, 그러니까, 육체 안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제대로 지켜 전하는 일에 모든 것 바쳤던 그분들의 거룩하신 삶을 되새기고 싶어서 관련 일화 하나를 옮겨 봅니다.
폴리카르포스(Polycarp, 사도 요한의 제자)의 제자인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 약 130~202)는 그의 저서 ‘이단 논박(Against Heresies)’에서, 자신의 스승(폴리카르포스)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어느 날 에베소 공중목욕탕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시린투스(Cerinthus) 라는 영지주의 지도자가 들어온 것을 보고는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이단자와 함께 무너질까 두렵노라!”
시린투스는 “예수님은 단지 인간이었고, 그리스도의 영이 일시적으로 임했다가 십자가 직전에 떠났다”라는 이단적 주장을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가르침을 극도로 가증스럽게 여겨 함께 있는 것조차 거부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 그분의 그 말씀으로 인한 생각 기타 일련의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면서,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말씀 떠올려 봅니다. 아는 것...정확히 아는 것을 뜻하시겠죠...? ( 끝 )
2025-09-30 21:53:50 | 최영오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 간다는 소식은 반가운데 어떤 교회로 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네요..
국내에선 챨리를 대항하기 위해 마귀언론이 윤×× 같은 인물을 내세워 자기의 남자 며느리가 이쁘고 사랑스럽다고 대놓고
동성애 아들을 선전하고 다니니 마귀의 순발력은 참 대단합니다..
2025-09-25 19:30:04 | 최철호
마지막 때가 가까운 것이 증명이 되네요.
아직도 교회라는 이름 속에 있지만 무지한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도 탄식이 절로 나오는데 말이지요.
마라나타!
2025-09-18 14:21:22 | 이수영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미혹되거나 패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2025-09-18 09:30:17 | 김지훈
세상시스템속에서-하나님계심을 말하는 사람,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사는 사람,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니라.-히브리서10장36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올리브나무에 수고의 산물이 없고 밭이 먹을 것을 내지 아니하며 우리에서 양 떼가 끊어지고 외양간에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를 기뻐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리라.-하박국3장17,1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m.youtube.com/watch?v=Na43taBsK5s
2025-09-17 23:08:13 | 목영주
진리를 외친 자의 죽음, 그 뒤에 있는 영적 전쟁
이미 알고 있는 바와같이, 2025년 9월, 미국의 젊은 보수운동가이자 신실한 크리스천인 찰리 커크는 공개 강연 도중 총격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그는 Turning Point USA라는 단체를 이끌며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성경적 가치와 진리, 생명의 소중함, 자유의 정신을 담대히 외쳤던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증오를 퍼뜨렸다.”라는 이유로, 한 청년에 의해 공개적으로 암살당했다. 진리를 선포한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아내, 에리카 커크의 반응이었다. 남편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그녀는 담담히 일어나 이렇게 선언했다. "제 남편의 운동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커지고, 더 담대해질 것입니다. Turning Point는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성경을 믿는 교회(Bible believing Church)에 참여하라고, 그곳에 뿌리내리라고 권했다. 단순한 위로가 아닌, 지금 우리가 맞서야 할 어둠에 대한 영적 전쟁의 분명한 선언이었다.
요한복음 3장 19절은 이렇게 말한다. “정죄의 근거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오히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찰리 커크는 빛을 외쳤고, 어둠은 그 빛을 지우려 했다. 하지만 빛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사상의 충돌이나 정치적 갈등을 겪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마귀와의 전쟁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대적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11), “너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 4:27),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예전에도 지금도 복음을 외치는 자들은 공격받고, 진리를 말하는 교회는 조롱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마귀는 진리를 미워하고, 복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에리카 커크는 남편을 향한 이 죽음이 끝이 아님을 선포하며, 이렇게 외쳤다. "그들은 제 남편을 죽였지만, 그분이 외치던 복음은 죽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촉발시킨 건,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각성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세우십시오. 교회로 돌아오십시오."
이 사건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통찰을 준다.
첫째, 복음을 외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진리를 전하는 삶은 때로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선포하도록 부름받은 자들이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은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나”고 말한다.
둘째, 교회는 피난처이자 전진기지이다. 에리카가 말한 “Bible-believing Church”는 단지 건물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의 방주이며 영적 전쟁의 중심이다. 히브리서 10장 25절은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더 그리하자.”라고 권면한다.
셋째, 마귀는 실제로 역사하며,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은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체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통해 강력하여 강한 요새들도 무너뜨리느니라) 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며,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덧입어야 한다.
마귀는 육신을 해할 수는 있어도, 진리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찰리 커크의 피는 땅에 떨어졌지만, 그의 메시지는 더욱 강력하게 세상 속으로 퍼지고 있다. 복음은 살아 있고, 죽음을 이긴 능력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그 빛 가운데 거하며, 그 빛을 전하는 자들로 살아가야 한다. 에베소서 6장 13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2025-09-17 16:22:51 | 이규환
첫째,(제가 안 튀어나오게)예수님은 오늘도 저의 주인이십니다 그다음, 급진적인 사랑을 하기위해 저의 옛사람은 죽었습니다..이렇게해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잘 안되는 저의 천성입니다..상대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도 내것을 표현할때 예의를 갖추어서 전한다면,그것만으로도 건강한 의사소통이라고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마귀를 대적하라.그러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하나님께 가까이 가라.그러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야고보서4장7,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09-06 15:45:20 | 목영주
잘못 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니.....
오직 주님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모든 것을바로 잡아주실테니.
2025-09-05 21:45:08 | 이수영
요즘 생성되는 말들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세상에서 유행하는 것들 모두엔 사람의 관계가 있지요.
나이들면서 더욱 엡4:32절 말씀이 다가옵니다.
2025-09-05 21:43:12 | 이수영
'테토남', '에겐녀'라는 표현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서로 다른 성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모든 관계의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5-09-05 16:19:51 | 김지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예전에 간증할 때, '이공제공'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말이지요.
이공제공을 응용하며 '이킹제임스 성경 제 여타 성경'하면 됩니다.
킹제임스성경으로 여타 성경을 물리친다는 말입니다.
2025-09-04 22:53:42 | 이규환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비밀
요즘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 중 하나가 바로 테토남, 에겐녀, 테토녀, 에겐남이다. 이 단어들은 각각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 성향을 기반으로 사람의 대인관계 스타일을 유쾌하게 분류한 개념이다.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밈 같지만, 놀랍게도 이 네 가지 유형 조합은 현실 속 인간관계에서 자주 겪는 감정과 갈등을 꽤 정확하게 짚어준다.
테스토스테론은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경쟁심, 추진력, 직설적인 표현, 결정력과 같은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반면 에스트로겐은 여성에게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감정적인 교감, 공감 능력, 배려, 눈치와 같은 섬세한 감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 두 호르몬은 남녀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사람마다 어느 호르몬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느냐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
이 두 가지 호르몬과 남녀를 조합하면 네 가지 조합이 나온다. 이 네 가지 조합에서 각각의 특징과 갈등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1. 테토남과 에겐녀의 조합
테토남은 추진력 있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효율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다. 반면 에겐녀는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 조율과 배려를 중시한다. 이 조합은 마치 리더와 조율자의 만남 같다. 테토남이 빠른 결정을 주도하면, 에겐녀는 그 사이에서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환상의 짝이 될 수 있지만, 감정 표현 방식이 너무 다를 경우 오히려 서운함과 오해가 쌓일 수도 있다. 특히 테토남의 직설적인 말투는 에겐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에겐녀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테토남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2. 에겐남과 테토녀의 조합
감성적이고 섬세한 에겐남은 주로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관계를 조율하려 하고, 테토녀는 강단 있고 솔직하게 말하며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처음에는 정반대의 매력에 끌리기 쉽다. 테토녀는 에겐남의 다정함과 배려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에겐남은 테토녀의 당당함에서 자신감과 에너지를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테토녀는 "왜 그렇게 말을 아껴?" 하고 답답함을 느끼고, 에겐남은 "왜 그렇게 말이 세지?" 하며 상처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는 조합이다.
3. 테토남과 테토녀 조합
둘 다 직설적이고 주도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땐 말이 잘 통하고, 함께 일하면 추진력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속전속결, 목표지향적 성향이 잘 맞기 때문에 프로젝트나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연애나 친밀한 관계에서는 자존심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서로 물러서지 않고, 감정보다 논리를 앞세우는 대화가 반복되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대화를 하다가도 "그래서 누가 틀렸다는 거야?" 하는 식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서로 존중과 감정적인 배려가 없는 상태라면 관계가 지치기 쉽다.
4. 에겐남과 에겐녀 조합
이 조합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눈빛으로 읽고, 상처받지 않게 조심하며 말하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관계가 형성된다. 감정적인 교감이 깊고, 다투더라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풀어나간다. 하지만 갈등을 피하려다 오히려 대화가 부족해지고, 서로의 진짜 속마음을 모르고 오해가 쌓일 위험도 있다. 둘 다 양보하려다 정작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우유부단해지는 경우도 있다. 감정을 잘 읽는 만큼, 솔직한 표현과 의사 결정력이 함께 갖춰질 때 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네 가지 조합을 살펴보면, 어떤 조합이든 완벽한 건 없고, 갈등 없는 관계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성향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태도다. 우리 성도님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런 용어를 사용하고 있구나!” 정도만 알면 될 것 같다.
참고적으로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은 나이들면 분비 비율이 바뀐다고 한다. 따라서 남자에게는 에스트로겐이, 여성에게는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낙엽만 보고도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이것이 성화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호르몬의 비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이 예전에 비해 다소 과격(용감)해지는 이유도 호르몬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25-09-04 22:38:45 | 이규환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나 악한 사람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디모데후서3장12절,13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른 가치로 대한민국이 다시 세워질때-회개와 감사 무엇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계심을 깨닫게 되는 소망으로-내일도 긴터널을 잘 견디겠습니다..
total truth..급진적인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vHI_zylc4c
2025-09-01 16:49:08 | 목영주
NIV를 먼저 읽었어서 짐승의 혼으로 착각하고있었네요. 감사합니다.
2025-09-01 11:21:09 | 정예준
영과 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형제님.
2025-09-01 08:47:13 | 김지훈
희한하게 변해 버린 세상 따라 절기 또한 어떻게 되어 버린 듯, 처서를 한참 지났음에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여름날의 생기 이미 사라진 주변 초목들 바라보며, 만물의 성쇠가 정해진 때를 따라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탄하곤 합니다. 하늘과 땅 창조하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정녕 위대하심에 경외감 느끼지 않을 수 없더군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이는 주의 ‘영’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 사40:7 말씀 되새기게 됨은 물론입니다.
그런데...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이는 주의 ‘영’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그 말씀 떠올릴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할까, 서글프다고 할까, 무겁다고 할까...또는 부담스럽다고 할까...좀 그렇더군요. 시들어가는(^^) 인생에 대한 서글픔 때문 아니라...‘영’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 심히 변개되어 버린 현실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다수의 예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전3:21 내용을 관련 말씀 변개의 간단한 일례로 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온전히 보존된 킹 제임스 성경 전3:21 말씀에 따르면,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누가 알리오?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인즉,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간다는 건 아는데, 누가 그 영들을 알리오, 즉 알아보리오...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NIV 성경 그리고 개역 개정 성경에 따르면,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Who knows if the human spirit rises upward and if···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 특별히 ‘if’ 를 수반한 의문문, 그 의미인즉, 인생의 ‘혼’이 위로 올라가는지 어떤지 그리고 짐승의 ‘혼’이 땅으로 내려가는지 어떤지 누가 알리오...라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저자 솔로만 왕한테 감히 “당신이 알겠어, 내가 알겠어, 누가 알겠어” 라며 비아냥거리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사람의 ‘혼’과 동물의 ‘혼’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한 마디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게다가, NIV 성경 그리고 개역 개정 성경의 경우 영어 원문상의 ‘spirit’, 즉 ‘영’을 ‘혼’으로 번역해 놓았더군요. 그러니까, ‘영’과 ‘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애당초 없는 거죠.
‘spirit’, 즉 ‘영’을 ‘혼’으로 번역해 놓은 위 건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항을 일단 짚고 넘어가 볼까 합니다.
그 하나로서, NIV 성경에 있어 ‘혼’ 관련 각주(脚註)에 적힌 ‘히, 영’, 그 의미 - 히브리어로는 영 - 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바, 히브리어로 ‘영’이면 ‘영’으로 번역해 놓을 것이지, 무슨 황당한 말 하고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설마 전3:21 히브리어 원문이 잘못된 거다, 그런 뜻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다른 하나로서는, 영어 원문 성경에 무려 535회 나오는 ‘soul’, 즉 ‘혼’을 살전5:23, 히4:12 같은 경우 빼고는 모두 ‘사람’ 또는 ‘자(者)’ 등의 다른 말로 바꿔 버린 개역 개정 성경이 위 전3:21 말씀 중의 ‘spirit’, 즉 ‘영’을 뜬금없이 ‘혼’으로 번역하고 있으니, 설마 아~무 생각 없이 번역하지는 않았을 텐데, 참으로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처럼, NIV 성경 그리고 개역 개정 성경의 경우, 일례로서의 위 전3:21 말씀을 포함한 상당수의 ‘영’ 그리고 ‘혼’ 관련 말씀들의 변개로 인해 적어도 ‘영’ 과 ‘혼’에 관한 진리 체계가 심각한 왜곡 정도를 넘어 완전 붕괴 상태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지 않을까...라는 생각 하곤 합니다.
그러한 생각 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할까, 서글프다고 할까...그렇게 되더군요. ‘영’ 과 ‘혼’에 관한 진리의 말씀 자체가 심히 변개된 성경 들고서 하나님께 경배드릴 사람들, 무척 많은 사람들 생각 때문입니다. 그들의 경우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 요4:23 말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그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
관련하여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영’에 관한 진리의 말씀 거의 없다시피한 성경들이다 보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어쩌고, 또는 성경에도 없는 ‘영성’을 훈련하고 어쩌고 하는...엉뚱한 말들이 오히려 대단한 의미로 쓰이는 현실, 그것이 이해할 만하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또한 그러한 생각 할 때면,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할까, 부담스럽다고 할까...그렇게 되더군요. ‘영’에 관한 진리의 말씀은 물론, 총체적 진리, 즉 토탈 트루스(TOTAL TRUTH)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된 성경, 즉 킹 제임스 성경으로 믿음 생활 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책임 또는 사명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위 의무, 책임 또는 사명 같은 것을 진리 전쟁...그 전장의 한쪽 귀퉁이에 선 한 전사의 비장한 심정 같은 것에 비유한다면...분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 말하자면, 꼴값떠는 – 헛소리...일까요...? ^^ ( 끝 )
2025-08-31 22:20:04 | 최영오
힘든시기에 좋은편지 감사합니다.
2025-08-22 14:14:04 | 정예준
공감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나 또한 사랑이십니다.
2025-08-04 10:04:08 | 이수영
모든 영광을 우리 주 하나님 홀로 받으시기 원합니다. 아멘.
2025-08-03 22:18:22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