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글로벌 방에 한번 올렸던 내용인데요.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 라는 책 읽어보셨나요?
강아지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서 저 사람이 날 예뻐해주고 끼니 때마다 밥을 주고 내 필요한 모든 걸 다 주는거 보니 분명 내 왕.내 주인임에 틀림없어. 그러니 내가 더 잘해야지~~
하며 죽기 전까지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들고 마중을 나와 반긴다네요.
반면 고양이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서 끼니때마다 밥을 주고 예뻐해주고 필요한걸 다 나에게 해주는거 보니 내가 이집의 왕.주인임에 틀림없어~~
하고 주인이 오면 높은곳에 올라가 내려다 보고 숨어서 주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본다네요.ㅎㅎㅎ
교회안에서 예수님덕에 구원 받아놓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잘 사는지 잊어버리고 자기가 왕이 되는 줄 알고 자기의 모든것에 예수님이 다 맞추라고 하고 오히려 예수님보다 높아진곳에 자기 자신을 두려 하는 자들이 있다지요~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지요?^^
그저 강아지와 고양이의 특성을 이입하여 쓴 책이고 고양이 신자가 다 틀렸다는것이 아니라 불충분하다는 관점에 쓴 것이므로 고양이 예뻐하시는 분 오해금지요~~^^;;
2016-04-09 04:47:50 | 김남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6-04-09 02:45:44 | 김삼호
자매님의 글을 읽으며
지금의 사랑침례교회가 있기까지 기쁨과 아픔이 공존했던 일들이 생각나네요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음을 되새기게 하는 글입니다.
과거에 나의 나 되었던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군요.
말씀에 비추어 수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를 낮추는 훈련을 스스로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절구절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의 글 감사합니다.
2016-04-09 02:20:35 | 김상희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교정이 필요한 지체들입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하는 나의 악한 옛사람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대적하고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을굳게 지켜나가는 의지가 필요하지요. 우리 모두가 말씀 앞에 겸손하게 무릎꿇읍시다.
2016-04-08 21:08:24 | 박혜영
많은 분들이 우리 CD나 유튜브로 목사님의 설교를 계속해서 듣는 분들은
일종의 부작용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분별하게 되니- 판단 병이 생긴다고 말하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예배를 드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설교를 들으면서
‘저건 아닌데...’ ‘그런 말씀이 아닌데...’ ‘헉- 세상에....’ 등등
자기도 모르게 판단하게 되는 ‘판단 병’이 생겨 교회 다니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해요.
어느 순간 교회만 가면 답답해지고 ‘저건 말도 안 돼’ ‘저건 그런 말씀이 아니잖아?’
‘목사님이 하나님 자리에 계시네...’ 등등 ....
매 주일마다 교회만 갔다 오면 마음도, 생각도 엉클어져 돌아오니 안 나가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요.
정말로 교회 가기가 싫어진다고요.
그래서 결국은 안 나가기 시작하고 (-가나안 신자로)
유튜브를 통해 지속해서 설교를 듣다가
‘교회에 한 번 만이라도 방문해 보자’고 작정을 하고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는 교회에서 무리하고 부당한 일들을 겪으면서 회의를 느끼게 되면서 교회를 안 나가고
집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이 교회 저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섭렵하다가
우연히도- 유명인도 아닌 정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게 되어 귀가 번쩍 뜨이는 계기가 되어
지속해서 설교를 듣다가 보니 ‘과연 이 교회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가서 봐야지’
하고 방문하시는 경우도 있고요.
정 목사를 비방하는 한 동영상을 보고 도대체 정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정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았다가 왕- 팬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지요.
다양한 이유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우리 교회에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한 번 방문하려고
했는데 주일이 되면 또 오고 싶어서 나오게 되는 분들도 많이 있지요.
거리와 시간의 문제보다 영적인 예배와 교제가 갈급해서 우선순위를 생각하게 되었다고들
말하세요.
우리 교회가 전국구가 되어 버린 이유지요.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단계를 거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여 주는데
얼마가 지나면서는 저마다 내면의 안경으로 보고 이리저리 고치려고 하지요.
자기가 보니까 우리 교회가 ‘체계적이지 못하다’
목사와 사모는 이러저러해야 하는데 -목사는 성도들과 얘기하면 신비감이 없어지고
사모님은 항상 미소 띤 조용한 그림자같이 말없이 목사님을 보필해야 한다.
회사의 계급체계 같은 위계를 도입해야한다 등등.....
각기 몸담았던 교회의 체제를 적용하려고 하는 분들이 나타나지요.
물론 그런 주장은 우리 교회를 좀 더 좋게 하려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이해는 되지요.
교회는 세상과는 구별되어야만 하는 거룩한 분리가 있어야 하는데 때로는
‘신약교회’ 라는 뜻을 이해 못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목사님이 헌금내역을 안 보신다는 것에 놀라거나 (우리 교회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목사님께 따로 보고 하지 않거든요. 재정부에서 한 달에 한 번 재정보고를 예배당 뒤편에
고지하기에 누구나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알 수 있지요.)
예배당 건축을 위한 풀링 약정도 하나님 앞에서 자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 못 하고
커다란 부담을 지고 있거나
누가 실세(?)인가를 살피는 정치적인 성향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무엇을 해도 꼭 누가 했다고 이름을 드러내려는 언행을 하거나
항상 좌중에서 중심이 되려고 혼자서 독무대를 펼치거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매번 야외 놀러 가는 듯한 복장으로
무신경하게 자유(?)를 만끽하거나
지속해서 호시탐탐 목사님과만 얘기하려고 하거나.....
대형교회서 이러저러한 일을 한 사람인 나를 전혀 알아주지 않아서
무시당하는 것 같다거나.....
모두가 자기중심적이 생각과 사람을 의식하는 언행인데
예전에 몸담았던 잔재가- 자기도 모르게 안경으로 남아 있어서- 아는 바대로, 배운 바대로,
익숙한 것을 행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자기가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자기 조언에 반응이 없으면 다른 교회를 찾아 떠나게 되는 일도 심심찮게 있지요.
이러한 과정들을 누구나 조금 또는 많이 겪어내며 잘못 알고서 굳어져 있던 자기 생각의 틀을 고치고 바꾸어가면서 신약교회를 이루어가겠다고 남는 분들이 우리 사랑교회 멤버가 되어 섬기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에 개나리가 한창 피어서 너무 탐스럽고 예쁘잖아요?
멀리서 보면 너무 예쁘기만 한데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죽은 가지들도 있고
개나리가 아닌 이름 모르는 잡다한 잡목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고
꽃이 맨 끝에 겨우 한두 송이 피어 있는 가지도 있고
다닥다닥 온통 꽃들로 덮여있다시피 한 가지도 있고
한마디로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개나리 덤불 속 모습들이 보이지요.
이처럼 멀리서 생각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천사들이 모인 것으로 생각하다가
와서 생활하다 보니 죄인들인 사람들로 전락? 한다고나 할까요^^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신 신분은 천사보다 훨씬 나은 의인이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죄성과 항상 싸워야만 하는 불완전한 죄인이니 냄새가 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개나리 덤불 속에 들어가 보면 이러저러한 잡목들로 복잡하고 일률적이지 않은 모습들도 있듯이 우리 성도들의 모습도 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고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성화를 위하여 서로가 도우며, 부딪히고,
사랑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성장해야 할 과정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중이고요.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성화’라는 대열 속에 들어가 함께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중이지요.
때로는 높은 가파른 언덕도 나오고, 평탄한 평지를 가기도 하고, 작은 언덕을 넘어서니
또 다른 언덕이 나오고, 자갈밭도 가기도 하고, 시내도 건너면서 험난한 좁은 길을 가지만
함께 가니 서로가 힘도 되고, 웃기도 하고, 함께 울기도 하면서......
신약교회는 말 그대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니 사람에게 보일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고 사람의 개개인의 마음의 생각과 동기까지도 알고 계신 분임을 잠시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모두가 백일하에 다 드러날 것을......
(일루미나티 멤버들이 호루스의 눈을 그러한 의미로써 상징으로 사용하는 건 아닌지?)
누구라도 주님 앞에선 포장하거나 감추거나 변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오랫동안 몸에 익숙해진 습관이 나오는 것 같아요.
새 포도즙은 새 부대에 넣어야 터지지 않고 둘 다 보존되는데
이런 모습들은 이전에 쓰던 낡고 오래된 옛 부대에 새 포도즙을 담는 모습이랄까요.
우리 교회 성도라면 이전 것들은 다--- 미련 없이, 아낌없이 버리고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새롭게 지어지는 신축 건물로서 신약교회를 이루어 가도록
마음을 열고, 서로가 솔직한 교제로, 사랑의 권고로, 성화를 향해 함께 조금씩 나아가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자원해서 섬기며,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를 배려하며,
아름답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어디에도 완전한 교회는 없지만
그래도 바른 성경에 기초한 말씀을 통해 생활에 적용하는 성화에 힘쓰다 보면
말씀의 능력으로 인해
‘과거의 나’ 보다 ‘현재의 나’ 가
주님 은혜로 인해 조금은 변화가 있어 ‘감사하는 나’가 되길 바라지요.
정말로 세상은 악할 대로 악해져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무르익은 것 같아요.
제발, 주님 속히 다시 오시길 기다리면서, 마라나타!!!
2016-04-08 17:39:10 | 이수영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맞춘 우리가 나누어야할 그리고 필요로하는
진정하고 올바른 교제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깊이 공감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6-03-29 06:03:19 | 김상희
새삼 믿음의 교제가 왜 중요한지 잔잔한 필체로 정리해 주셨네요.
개인적으로 주일이 분주한 날이 되면서 성도님들과 차분한 교제가
어려워진 점도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교제의 자리로 달려갑니다.
귀한 글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2016-03-27 01:31:14 | 김대용
네 같은 마음입니다 ㅎㅎ
2016-03-26 15:18:23 | 김혜순
샬~롬
많은 내용들에 공감을 느끼며 은혜롭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2016-03-26 10:53:31 | 이명숙
성도들 보면 그냥 이뻐보이고 있는 거 다 주고싶고..
아롱이다롱이 라는 말이 넘 좋아요~
2016-03-25 20:34:58 | 목영주
한 자매님과 교제 중에 20년 가까이 사귀어 온 분들에게 흠정역 성경과
우리 CD를 권하였고 어느 정도 들은 듯해서
“함께 하고 싶어요, 어려운 길이지만, 우리 진짜를 위해 살아가요 “
하고 눈물로 호소했고 서로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정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기도해 주세요.....”
“전 복음이 저만 믿고 살면 되는 건지 알았어요.”
“이렇게 애가 타게 전해야..... 전하고 픈..... 전해야만 하는 건지...... ”
“정말 어찌나 다들 안됐는지.....”
교제가운데 마음이 울컥 해왔어요.
외국에서 살고 있으니 우리들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지요.
오랜 세월 서로를 알아왔고, 동포애가 작용도 하는 것도 있지만,
잘못된 교리로 인해 많은 분들이 얽매여 있는 줄도 모르고,
그게 주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저 열심히 사는 분들을
주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찡하더군요.
복음을 전할 때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 놓은 후에 복음을 전해야 조금씩
받아들여요.
물론 몇 번 만났어도, 처음 만나도 복음이 전해지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많은 시간을 공들여가며 때를 얻도록 노력을 하고요.
불신자들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하나도 꺼내지 않아도 성도의 삶을 관찰하며
가늠을 하는 것 같아요.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인격이 어떤지?
복음뿐만 아니라 어떤 일상적인 얘기도 사람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만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같아요.
그런 가운데서 ‘나도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어야 겠다’ 는 말을 들으면 반은 성공이지요.
많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 생각 속에 있는 것을 얘기하게 되고
나눌 수밖에 없지요.
당연히 성경책을 펴고 들이밀지 않아도 자연스레 말씀을 인용하고 설명하게 되고
조언도 말씀에 있는 것을 하게 되고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저는 서로 간에 신뢰를 쌓으며 알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성도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에요.
우리 교회는 주일에 한 번 모이는 성도들이 대부분이지요.
전국 각지에 살고 있어 서로 만나 교제할 시간이 없어요.
주일엔 서로가 모두 바빠서 오후 설교가 끝날 때까지는 개인적인 교제로 말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주일에 모인 성도들이 교회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같은 지역에 속하는 성도들끼리
얼굴도 익히고, 새로 더해지신 분들 소개하는 시간도 갖지요.
한정된 짧은 시간이기에 우리 지역 식구인 것을 인지하면 금방 시간이 가버리지요.
그러다 보니
교제가 너무 그리워서 지역마다 모이는 날을 정해서 모이는 모임이 있어요.
각 지역마다 다르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모이는 것 같아요.
가정에서 모여 서로 간에 개인 사정이나 어려움들을 진솔하게 나누고 주변의 상황들을 알게 되는 귀한 시간을 갖지요.
그런 교제 가운데서 간증도 나오고, 말씀교제도 하고, 감동도 나누며 더 가까워지지요.
얘기를 나누는 중에 기도할 제목들도 마음에 담아두고요.
설교시간에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도 서로 나누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의합 된 소수가 성경공부로 따로 시간을 갖는다면 또한 좋은 일이죠.)
우리교회는 일주일에 설교가 3편이 올라오고 간증도 올라와요.
전 듣고도 잘 잊어버리기에 또다시 들으면 이런 말씀도 했었나? 싶을 때도 있어
‘아! 이런 게 늙는 건가 보구나.... ’ 낙담도 되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성경적인 가르침과 자료는 우리교회가 넘치는 것 같아요.
다시 들어야 할 CD도 쌓여있고요.
교회가 커지다보니 성도들 간의 친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지역모임을 통해 서로 사정을 알아가며 친밀도를 높이길 원하지만
교제하다 보면 시간이 왜 그리 빨리 가는지--- 못내 아쉬워하며 헤어지곤 해요.
요즘은 모두들 바쁘게 살기에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런 교제시간이 성도로서 서로에 대해 더 다가가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지역모임을 통해 친밀도를 높여 가며 서로를 알아가지요.
저희 지역은 남자 형제들끼리 모여 시장가서 같이 국밥도 먹고 나서 학원에 모여
교제하면서--학원을 운영하는 형제님이 계신 덕분에- 서로 말씀교제도 자유롭게 하지요.
자매들은 자매들끼리 가정에 모여 교제하고요
두 달에 한 번은 온 가족모임으로 모두 다 함께 모이고요.
참으로 한 분 한 분이 모두 너무 귀하고 사랑스럽지요.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 있었을까? 놀랍기도 하고요.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일도 바쁜 생활 때문에 빠지는 일도 생겨요.
성도도 서로의 사정을 알아야 친밀해지고, 알아지고, 또 아는 만큼 생각도, 공감도,
상대를 위해서 기도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성도들끼리 모여 서로가 아는 말을 하고, 알아듣는 얘기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주 중에 성도들을 만나는 일이 생기면 보너스 같아요^^
매일 모일 수도 없고, 교제 할 수 없으니 어떤 일로든 서로 얼굴을 맞대고 본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일 수밖에요^^
그래서 목사님이 지역모임은 교제모임이라고 강조 하시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요.
우선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한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자기의 생각을 나누고 때론 논박도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겪어가면서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지요.
비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지니까요^^
우리는 모두 주님의 ‘아롱이다롱이’ 라 서로가 다 개성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서로 다른 색깔이 부딪히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면서 자기 것만을 주장하던 일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도 귀담아 들을 줄도 알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우고 단련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주장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낮추면서 우리가 더 가까워지고
한 마음이 되어 가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일반 교회에서 여러 과정의 공부를 열심히 하셨던 분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성경 나눔이 월등히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 역시도 성경지식을 탐구하던 사람이라 큐티를 항상 나누길 원했었지요.
성경 말씀으로 하는 교제가 아니면 뭐가 빠진 듯 생각 했어요.
자신은 의식을 못하는 중에 어찌 보면 일종의 영지주의 같은? 생각-
성경공부는 우위에 있고 그 밖에 하는 활동들은 열등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반드시 성경책을 펴고 말씀을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것만이 영적이고
교제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편견을 갖게 된 것이지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시스템에 나도 모르게 체화되어 있었기에 그것을 당연히 여겼었지요.
그러면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주님을 영접해서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이미 거룩하게 구분된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거룩해 진 것 맞지요?
우리가 주님의 영을 모신 성전이 되니까요.
그럼 그런 내가 밥을 해도 거룩하고 청소를 해도 거룩한 거죠?
성경을 봐도, 피아노를 쳐도, 그림을 그려도, 사람들과 교제를 해도 ....
거룩한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니 무엇을 해도 우열이 있을 수 없잖아요?
이것을 우리교회에서 생활하면서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으니!!!
물론 혼자서 성경공부 해나가기가 어려워서 -의지가 약하다보니 함께 하기를 원해서 모인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이지요.
설교를 통해 배우게 된 것을 실생활에 적용해 가도록 도전도 서로 하고
성장하도록 격려도 하고요.
서로 간에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야 매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이 땅에서도, 주님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함께 지내야 하는 주님의 자녀들이니
좀 더 진실하고, 좀 더 성실하게, 주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기에
세상에서 살면서 불합리하게도 이리저리 치이고 핍박을 받다가도
서로가 모이면 동일한 어려움들을 겪는 성도들의 얘기가 힘이 되고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는 교제가 좋을 수밖에 없지요^^
다시 태어나면 저절로 성도들과 모이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사모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 스스로 알게 되니까요.
서로 간에 솔직한 마음의 대화가 있어야 성도들도 더 가까워지는 거죠.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상대도 여는 것 같아요.
말씀을 많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괴리가 클수록 사람의 마음을 얻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지적인 부분은 아주 높은데 그것이 생활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어
말씀을 나누는 것에 대한 막강한 책임감-주님께 비난이 될까 -염려가 되기도 해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인격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백번 공감을 하죠.
영적인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시니 모든 일에서 거룩함(세상과 분리된 사고와
온건한 행동)을 갖는 것이 마땅하고요.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생활해야하기에 주님께 칭찬받아 마땅한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드러내기가 때로는 두렵고 어렵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 성도들끼리 모이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한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는 모든 일이 이 땅에서의 성화를 위한 것이지요.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니 더더욱 주님이 오실 때가 급박해짐을
느끼게 되고요.
주님께서 오셔서 ‘잘하였다’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이 마지막 시기를 성도들과 속마음을 솔직하게 나누면서 서로 위로도 받고,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서로의 사정과 형편을 위해 기도하면서,
교제하며, 성장해 가며 주님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마라나타!!!
2016-03-25 15:47:37 | 이수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겠지요.
친구에게 지혜로운 제안을 하셨네요.^^
2016-03-23 01:22:26 | 김상희
허춘구형제님께서 요로결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도부탁드립니다.
2016-03-16 23:30:46 | 박진태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히 5:7)"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 고 하시며, 매사에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 앞에 나아가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힘 중에서 가장 큰 힘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이런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은 해도, 실제로 주님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가 아닌 다른 일로 너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기도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부담감을 늘 느끼면서도, 실제로 기도하는 시간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는게 현실입니다.
사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에 사로잡혀 사는 기도의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만, 우리는 게으르고 서툴러서 이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에 능한 사람이 되려면 우선 기도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기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기도가 향상됩니다.
그리스도인들 간의 능력과 거룩함의 차이는 그들의 기도의 차이에서 생깁니다. 나약한 신앙은 짧고 빈약한 기도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은 기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처럼 기도하십시오.
"이 엠 바운즈의 기도 선집"
2016-03-16 22:50:04 | 박진태
문화센터에서 몇 년 동안 함께 그림을 그리며 알아왔던 한 엄마와 은행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말했고 그 후로 서로 두어 번 만나
밥 먹으며 친해졌어요.
그러다가 우리 집에 와서 이야기하며 개인의 여러 가지 일들과 속마음을 터놓게 되면서
종교얘기까지 조심스레 나누게 되었어요.
다행이랄까- K 목사의 설교를 듣고 일반교회의 잘못 된 점을 알고 있어서
우리 교회 얘기를 하고 CD를 주게 되었지요.
흠정역을 소개하고 성경책도 사다 주었어요.
예수님을 믿기에 교회를 나가긴 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소극적인 교회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내가 k목사의 설교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너무 놀랐는데 그 목사님 덕분에 일반 교회의
실상을 알았기에 언니 얘기에 거부감이 안 들었어요.”
“아들 하나는 군복무 중이고 작은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예수님을 알았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끌고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조언을 했어요. 아들이 성경을 읽게 하면 된다고.
마침 노안이 와서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맞추고 왔다고 하기에
“돋보기를 쓰면 오래 책을 못 보니까 아들보고 성경을 읽어 달라고 해봐”
했더니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마침 눈 핑계도 댈 수 있고-”
“그냥 읽게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읽어대기만 하니까 요점 정리를 해 달라고 해요”
“요점 정리가 정확히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요점을 찾아야 하니 집중해서 읽게 되고
국어 공부에도 도움이 확실히 되거든요.“
“내가 애들에게 시켜 봤더니 자기가 금방 읽은 것도 생각 없이 읽으니
질문에 대답을 하는 애들이 없었어요.“
“가끔씩 ‘이건 무슨 뜻이냐?’ 고 질문도 사용하면 좋아요.”
마침 겨울 방학 중이었으니 마음 착한 아들이 들어 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흠정역 성경으로 아들이 잠언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엄마는 요점정리 해주는 것이 너무 기특해서 은행에서 나온 작은 수첩에 그 때마다 기록하고 내게 매일 저녁 카톡으로 보내줘요.
아들이 자기가 요약해 준 내용을 엄마가 수첩에 기록하는 모습을 보더니 더 집중을 하더래요.
“작은 아들이 정말 기특하네요. 아는 사람한테 자랑했다고 하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세요.”
아들이 많이 아팠던 때를 제외하고 거의 잠언이 끝나갈 무렵에
“아들이 학교가면 바쁘다는 얘기를 자꾸 하는 게 읽기 싫은가 봐요.”
“그럴거에요. 영적인 싸움이니....
그럼 아들한테 학교 다니면 바빠지니까 시편을 읽으면 어떻겠냐고 얘기해 보세요.”
아들이 성경을 읽어 주는 목소리를 들을 때 엄마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고
아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혜롭게 얘기 해 보세요.“
며칠 후에 카톡으로 ‘시편 1편 읽어줬어요.’ 하고 소식이 왔어요.^^
시편을 보더니 하겠다고 한 거죠^^
직장을 다니기에 서로 만날 시간이 없지만 카톡으로 매일 읽은 내용 요약을 전해 주네요.
엄마는 직장 나가며 노모를 모시고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지만
‘성경 맥잡기’를 하루에 하나씩 듣기로 했는데 쉽지가 않나 봐요.
얼마 전에 정명훈 아내가 서울 시향에 나쁜 일을 지시한 비리가 뉴스에 나온 걸
함께 봤는데 작은 아들이
“말씀에 지혜로운 여자를 얻어야 한다고 했는데- ”
하더래요^^
시편 6편 읽을 때
“죽음 속에서는 주를 기억할 수 없사오니 누가 무덤 속에서 감사 하리이까”
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엄마, 영적으로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영적으로 살아서 주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는 뜻이야“
라고 나름대로 대답을 해 주더라네요.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아들을 제 마음대로 ‘보배’라고 불러요^^
여름 방학 때는 로마서를 읽도록 조언했는데 아들의 성경 읽기가 지속되길 바라지요.
로마서를 읽을 때 확실히 주님의 자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지만
고2라 변수가 있을까 염려도 되지요.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말씀의 능력으로 혼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2016-03-15 11:51:46 | 이수영
이인술 어른신께서 교회에 오시기 전에 저와 전화상담을 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확고한 믿음으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신 초연한 모습으로 여러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본을 보이시며 예수님을 증거하셨으니 본받아야할 감동의 소식입니다.
속히 쾌차하셔서 건강하게 활동하시길 기원합니다.
2016-03-10 10:03:57 | 김상희
참 어려운 고비를 넘기신 이인술 어르신의 병상생활을 보고 두분이 구원을 받을수 있었다는
것은 감동이내요 .믿음은 어려운 일이 닦칠때 나타나는것 같아요.
수술중에 돌아가실수도 있다는 말에도 마음에 조금도 흩틀어짐이 없이 평안한것을 보고
과연 그리스도인은 다르구나 하고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믿겠다는 고백이 얼마나 귀한것인
지요. 한 병실에 있던 두분은 복받으신 분들이내요. 어서 회복 되셔서 교회에서 뵙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죽음도 우리의 평안을 못 빼앗아가는 믿음이 보배이지요
먼곳까지 문병을 가시고 다 주님의 사랑으로 알고 감사드림니다.
2016-03-01 23:43:54 | 윤정용
"그의 이름 곧 그를 일컬을 때 쓸 이름은 이것이니 곧 주 우리의 의라.(예레이야 23:6)"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를 생각할 때마다 가장 큰 위로와 평강을 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도들이 얼마나 자주 낙심하며 좌절합니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부패했다느니, 우리의 마음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느니, 우리의 마음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느니, 우리 영혼은 본래 악하다느니 하며 항상 부정적인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왜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타락과 부패에 대해서만 늘 생각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가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설사 골치 아픈 일들이 나를 짓누르고, 사탄이 나를 공격하며, 천국에 이르기 전에 체험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입니까?
이런 것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 언약안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주님 안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다 이루셨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완전합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 속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 3:9)"
만일 성도가 "나는 오직 그리스도 덕분에 산다. 나는 구원을 완성한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한다. 내가 아무리 무가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 은혜에 감사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만일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라면 우리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이같이 판단하노니 곧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면 모든 사람이 죽었느니라.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구원받은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분의 의를 대단히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스펄전의 365일 묵상"
2016-03-01 00:39:59 | 박진태
세상은 유행을 따라 변해가지만 복음은 수천년이 지나도 같은 이치 같은 방법으로 전하고 받아들이는 모양이 참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인술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침에 마음속으로 어서 쾌유하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어르신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경험했을 의료진들의 모습이 드라마처럼 머리속에 떠오르네요.
모두에게 샬롬...
2016-02-27 08:52:27 | 김경민
요즘은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듣고자 하는 사람이 없고 배척을 받기 일쑤라
참 마음에 답답함이 많아요.
겨우 안면을 트고 조금씩 복음을 말하면 이단시하고 피하고.....
영적인 In Put 은 많은데 Out Put 이 안되니 정말 기쁨이 없어요....
복음을 들을 사람만 있다면 거리가 멀더라도 정말 기쁘게 전하러 갈 수 있는데
말이지요.
예전에 복음집회에 초대해서 구원을 받은 친구를 돕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이 걸려 친구 집에 가서 성경의 기초부터 함께 공부할 때는 너무 기쁘게
아픈 것도 잊고 다녔거든요.
교회를 다닌 적이 전혀 없는 친구라 너무 단순하게 복음을 받아 들여서
내심 걱정도 되었고요.
일주일에 한 번 방문했기 때문에 숙제로 읽을 성경 분량을 정해 읽게 했지요.
신약을 읽을 때
“ 얘, 이거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읽은 것 같은데? 똑같은 일 같은데 이름이 다르다?”
그래서 사 복음서에 대해 설명하며 질문에 대답해 주고 성경에 대해 나누고 알려주는
영적인 운동을 했을 때 마음은 물론 몸도 가볍고 내안에서 기쁨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곤 했거든요.
아파서 누워 있다가도 복음을 들을 사람이 찾아오면
“아픈 것 같은데 다음에 올게요”
하는 사람을 붙들어 앉게 하고 복음을 조금씩 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큰 목소리가 되고 힘 있게 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손님도
“선생님 이젠 안 아픈 것 같아요^^”
놀랍게도 언제 아팠는지 몸살에서 회복이 된 경우도 있고요.
전에는 아파트에 영어 성경공부하자고 붙여보기도 했는데-그 땐 NIV로,
KJV을 몰랐던 때라^^
요즘은 신천지 때문에 할 수도 없네요.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봉사에 열심이고 거의 교회 일로 바쁘게 지내는 데
진실로 알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너무 어려워요......
주민 센터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해서 몇 개월 함께 공부하고 사귀어 복음을 꺼내면
종교얘기는 하지 말자고 딱 자르는 일은 예사고요.
돌들에게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하지요.
구약의 선지자들의 심정이 쬐금이나마 이해도 되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인술 어르신께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4번에 걸친 수술을
무사히 마치시고 일 인실에 계시다가 6인실로 옮겨 달라고 하셔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게 한 얘기를 들었지요.
주님의 자녀임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인정받으신 모습도 감사가 되었구요.
병원 측이 의료사고로 동맥을 건드려 어려운 상태라 수술 결정하기가 어려웠던 가운데
의사들이 어렵게 꺼낸 말이
“어르신 수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잠시의 망설임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수술 중에 죽어도 주님께 감사하겠습니다. 싸인 하겠습니다”
하는 반응을 보고 오히려 의료진이 더 놀란 모습이었다고.
죽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평온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을 들은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어르신, 얼굴에서 빛이 나세요”
여러 의료진들이 어르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신 것을 듣고
감동을 받았는지 더 열심히 치료해 주려고 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셨다지요.
병원에서는 수술하고 입원해 있는 24시간을 함께하는 특별한 환경 탓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낮아져 있거나, 동병상련의 병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혹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다 열린 마음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모든 과정이 성령님의 주장으로 혼의 구원을 받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들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을 줍니다.
요사이 느끼는 답답한 마음에 단비 같은 소식이지요.
생사를 넘나드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그 혼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이 누구시고, 예수님이 왜 필요한지?’ 로 시작해서 복음을 확실하게 전할 때
장시간 수술을 받은 사람 같지 않게 평온한 모습(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지요?)
에 감탄하며 경청하다가 “내가 이제 예수님을 믿겠다” 고 선언을 해 두 가족들에게
(한 가족은 침례교, 다른 한 가족은 장로교) 감사 인사를 받게 되었다고^^
얼마나 큰 기쁨 -영의 기쁨이 있었을지 겪어본 사람은 알지요.
수술 후 육신은 큰 고통 중에 있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같은 병실에 있게 된
두 혼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어르신께 힘을 주신 것 같아요.
수술 후 중환자실에 20일 넘게 있다가 병실로 오신 것도 놀라운 주님의 돌보심인데다,
장시간의 수술로 고통을 겪고 있는 중 병실에서 복음을 전하실 수 있게 하신 것도
너무나 크신 주님의 은혜이며 역사지요.
그 소식을 듣고 덩달아 기쁘고 감사가 되었어요.
이런 소식들이
저에게도, 우리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죠.
어르신이 속히 회복이 되셔서 직접 겪으신 일들을 생생하게 간증 해 주시는
날을 기다립니다.
2016-02-26 15:37:12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