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모든 세상 학문의 주인 또한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모님의 말씀처럼 다방면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2012-04-07 12:31:20 | 김정훈
너무 귀한 일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감당 한다면 부담 없이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형제,자매님들 우리 모두 함께 동참해요.^^
2012-04-06 15:16:25 | 박진
우리 대신 죄가 되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셔야만 했던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2012-04-06 15:05:52 | 조양교
버스에 크게 흠정역 이 써있는 것을 직접보니 감동이에요.
400만원이면 한달을 광고할 수 있나봐요?
한형제님의 앞선 행동이 여러사람을 기쁘게 하네요.
후진들도 힘을 합쳐 계속 이어갈까요?
흠정역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도록!
2012-04-06 14:26:48 | 이수영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 시내 6개 버스 노선에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관한 광고가 부착되어 홍보되고 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217
버스 광고 이후로 출판사로 문의 전화가 이전보다 많이 옵니다. 당장 판매가 느는 것은 아니지만 문의 전화가 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사랑침례교회에서는 목요일 자매 모임(결혼한 주부들 모임, 20-60대)이 있어 늘 15-20명이 참가합니다. 그런데 어제 모임에서는 매달 2만원씩 200구좌를 만들어 앞으로 계속해서 버스 광고를 하자는 의견이 나와 곧바로 18분이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만간 여기에 동참할 분들을 모집할 것으로 압니다. 버스 광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그때에 한 구좌씩 들어 주시면 매달 400만원으로 서울 시내에 광고할 수 있읍니다. 자세한 것은 적당한 때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이런 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2-04-06 13:19:26 | 관리자
때에 맞는 글 감사합니다.
주님께 더욱 감사되는 계기가 됐어요.
의학적인 기제도 풀어주셔서 감사하고.
2012-04-06 13:17:23 | 이수영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고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샬롬
2012-04-06 10:30:27 | 패스터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앞서 고난받으신 사실을 다시한번 기억할 수 있도록 고급 의학 상식과 함께
또 성경의 말씀과 함께 글을 올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제님께서 가지고 계신 다방면의 지식과 믿음이 더욱 주님과 말씀을 드러내 주시네요.
다방면에서 종사하는 분들이 궁극적으로 한 믿음을 토로하는 것이 많은 힘이 됩니다...
2012-04-05 23:36:02 | 오혜미
* 제가 성도컬럼에 당분간 글을 안 올릴 예정이라고 하였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한 편의 글을 올립니다. 이번 주간이 마침 고난 주간이어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깊이를 같이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아픔은 아파 본 사람 만이 안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이 그렇듯이 고통의 감각 또한 매우 상대적이다. 동일한 자극에 대하여 느끼는 반응의 정도가 개인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은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이 되며, 주변에서 같이 아파함으로 어느 정도 고통의 경감은 가져 올 수 있을지라도, 결국은 자기 스스로가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
고통은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아프게 하며, 그래서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우리 몸에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가령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것을 만졌을 때 우리로 하여금 비명과 함께 손을 떼게 만드는 고통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손은 다 타버리고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은 또한 우리의 성격 형성에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 크게 앓고 난 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깊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는 옛 어른들의 말은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고통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전해지는지 그 과정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몸에 상처가 나면 그 조직의 세포막이 부서지면서 주변에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호르몬 같은 물질이 분비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근처에 있는 통각전달신경세포에 신호를 보내어 그 신경세포의 반응 문턱을 낮추게 한다. 이제 반응 문턱이 낮아진 신경세포는 평상시에는 무시해 버리던 동일한 크기의 자극에 대하여 반응을 하게 되고, 그 반응은 뇌로 전달되어져 우리에게 통증을 느끼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만일 프로스타글란딘의 역할을 방해 한다면 진통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바로 우리가 먹는 ‘아스피린(aspirin)’이나 ‘이부프로펜(ibuprofen)’ 같은 성분이 들어 있는 약들이 이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저해함으로써 진통제로써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한편, 우리에게 타이레놀 이라는 상품명으로 유명한 진통제도 그 안에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 이라는 성분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으며, 역시 간접적으로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에서 말한 진통제들은 일반적으로 몸의 통증을 억제하는 데는 좋은 효과를 보이지만, 불안과 같은 정신적인 고통이 같이 수반될 때에는 아편류 만큼 진통효과가 큰 물질은 없다. 보통 양귀비에서 추출해낸 모르핀(morphine)이 가장 대표적인 예인데, 모르핀은 우리의 뇌와 척수 속에 들어가 통증 전달의 신경경로를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우리 몸의 통증을 전혀 못 느끼게 하는 매우 강력한 진통제로 병원에서 널리 쓰인다. 하지만 그 양을 너무 많이 늘리게 되면 우리의 뇌 속에 황홀감을 만들어 결국은 중독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힘도 가지고 있는데, 일부 십대들과 연예인들 사이에서 점점 사용 증가 추세에 있는 헤로인(heroine)도 이 모르핀의 변형체인 것을 보면 그들이 헤로인에 탐닉하는 이유를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중독성 때문에 만성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일지라도 의사들은 모르핀을 처방하는데 상당히 신중을 기하고 있고, 일단 처방이 된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그 양을 조절하는데 따른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우리의 몸속에는 이미 하나님이 주신 모르핀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몸에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endogenous 인데, 여기에 morphine을 결합하여, endogenous morphine 이라 하고 이를 줄여서 엔돌핀(endorphine)이라고 부르는 물질이 바로 그것이다. 엔돌핀은 아편 속의 모르핀과 매우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몸속에서 스스로 생성과 분해가 이루어짐으로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중독을 일으키거나 할 염려가 없는 그야말로 천연의 진통제이다. 엔돌핀은 우리가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분비되어 우리 몸의 통증을 완화시키고 행복감을 갖게 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감수 해내야 할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시에 진통의 선물도 주신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 계실 때에 병사들로부터 아편류성 진통제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 마태복음 27장 34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들이 쓸개를 섞은 식초를 그 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더니 그분께서 그것을 맛보시고 마시려 하지 아니 하시더라”(마 27:34)
여기에서 나오는 쓸개란 단어는 히브리어 ‘Rosh’에서 온 말로서 이 말은 보통 쓴 맛을 내는 독성식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동일한 단어가 신명기 29장 18절에서는 ‘쓴 것’으로, 그리고 신명기 32장 32절에서는 ‘쓸개 포도’등과 같은 말로 붙여져 사용되고 있다. 특히 Gesenius가 쓴 히브리어 사전에는 이 단어가 양귀비를 뜻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당시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지는 죄수에게 고통을 경감시켜 줄 목적으로 이와 같이 쓸개를 탄 식초나 포도주를 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도 이와 같이 관습에 따라 일종의 모르핀과 유사한 효능을 발휘하는 아편류성 진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약을 거절하셨다. 우리 몸을 친히 지으시고 피조세계를 직접 만드신 예수님께서 어찌 마약의 진통효과를 모르시겠는가? 하지만 그 분께서는 능히 유혹을 물리치시고 스스로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이사야서에 그 답이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53:3)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53:4)
“그는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53:7)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53:5)
그렇다. 예수님께서 친히 받으신 그 고통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 하사 그를 고통에 두셨은즉..” (53:10)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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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고난 주간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고난의 의미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고자 하신 구원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이어야 함은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고자 예수님께서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일을 기억하는 시간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고통’을 일체 피하지 아니하시고, 몸소 직접 겪으셨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 감격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 나의 주님, 진정 당신을 사랑합니다!!
2012-04-05 22:30:19 | 김정훈
우리 동화가 기어다니던 때에 옆집에 사시던 분이 한참 말을 조잘거리며 물건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다섯살배기 딸에게 책을 가르키며 "이건 동화책이야"했더니 그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이거 동화 책, 아니야!"해서 웃던 생각이 나네요. 이수영자매님의 글이 봄 향기가 나는 맑디 맑은 동화책을 읽은 느낌입니다. 감사해요, 자매님.
2012-04-05 18:03:23 | 이청원
저의 어머니도 우리한테는 엄하셨어요. 조부모가 되면 손주가 너무 예뻐서 -안되보신 분은 모른다네요.-자꾸 보고 싶고 자랑하고 싶다네요. 친구들이 귀가 따가울정도라 손주이야기하려면 뭐든지 돈을 내서 사먹이고 얘기하라는 얘기가 있대요.^^
자녀교육의 책임은 첫째 부모에게 있다는 말에 동감이에요.
주님께 늘 엎드리게끔 하는 게 자녀인 것 같아요.
2012-04-05 12:38:56 | 이수영
아이들이야기는 의미심장하지는 않지만
미소를 자아내거든요.
그래서 머리속에 그림을 그리며 웃어보시라고
내용없는 글을 올리고는 남편한테 혼나고 있는중입니다.
그래서 글을 지우려했더니만 댓글이 달려있네요.
맞아요. 제 조카이야기에요.
조카 6명이름을 제가 지었어요. 봄,여름,가을,겨울,열매,보람이..물론 아명이죠.
어린아이도 형평에 어긋나는 것을 안다는 것이 놀랍죠?
아이들은 유괴범이라도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데 말이죠.
부모가 일관성을 유지하는데는 조부모도 협력이 되면 좋겠어요.
2012-04-05 12:31:07 | 이수영
엄격하게 자녀교육을 행했던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너무 엄격해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자랐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사람은 올바르게 자라서 미국의 고위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주에 대해서는 아주 딴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엄격했던 사람이 손주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루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나에게는 그렇게 엄격했으면서 손주들에게는 이렇듯 관대하시냐구요, 아버님 왈 " 자녀교육은 네 몫이야, 나는 책임이 없어!" 자녀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바로 부모가 당사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2012-04-05 10:10:24 | 조양교
교회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 것을 느낍니다. 왜곡되고 변질된 것들을 벗어버리고 순수함을 추구해 나갔으면 합니다. 분별력을 기질 수 있도록 바른 길들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삶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고, 미래를 이루는 초석이므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겠습니다.
2012-04-05 09:41:07 | 조양교
군대에서 팀별 구보대회를 합니다. 우승팀의 조건은 물론 빠른 시간에 들어오는 팀이겠죠, 그러나 한 사람도 탈락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팀내에서 누가 선두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함께 다 완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팀의 완주를 위해 많은 재능있는 동역자들이 더해졌으면 합니다.
2012-04-05 09:28:53 | 조양교
형통의 복음은 "그래도 잘되면 좋잖아~" 하면서 우리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단어입니다. 형통 자체가 믿음의 목적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2012-04-05 09:24:06 | 조양교
사랑교회에는 묵묵히 앞서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믿음의 길을 가면서 바른 성경을 믿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채워 나갔으면 합니다.
2012-04-05 09:18:31 | 조양교
마지막 글이 의미심장하네요..쌓인 분노가 용량을 넘게 되어 사춘기를
폭발적으로 맞이 한다는 말이 말예요..
곱게 자라서 고상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이제부터라도 주의하여야 겠어요.
봄이 이야기...자매님 조카예요?...
2012-04-05 06:09:40 | 오혜미
저는 이 글 중에 "선두에 선 갈매기가 힘이 빠지면 후미에 도움을 받으며.힘을 비축한.갈매기가
선두에 서서 그 대형을 이룬다".는 말이 좀 더 마음에 남아 우리 교회의 어느 부분이든
서로 한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가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름답게 비상하며 동고 동락 해 온 모든 동지들에게 새삼 애정을 느낍니다.
우리의 믿음은 만사형통의 복음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그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려고
꾸준히 서로를 격려하며 사는 그런 모습의 교회임이 분명하다고 봅니다.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교회.....
2012-04-05 05:56:08 | 오혜미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삼촌과 조카가 티격태격 하고 있습니다.
“삼촌! 우리 할머니야, 만지지마!”
“왜? 우리 엄만데? ”
할머니를 꼭 안아서 더 약 올립니다. 할머니는 맞장구를 쳐줍니다.
“맞아. 삼촌은 내 아들이야-”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던 조카가
“음- 삼촌은 이름이 2 개뿐이지? 난 3 개야! 그러니까 삼촌은 저리가!“
“왜 3갠데?”
“음- 볼래? 이지연이지, 봄이지, 할머니 강아지지”
모두가 파안대소- 삼촌이 짖궂게 빈정거리며 말합니다.
“그래, 그래. 너 잘-났-다! 잘 났어!“
봄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생각하다가
“삼촌은 나한테 잘났다고 하지 마!”
듣고 있던 고모가 한마디 합니다.
“봄이야, 잘났다는 말은 좋은 말인데?” “잘 생겼다 똑똑하다 이런 말이야.”
잠시 생각하더니만
“그래도 삼촌은 나한테 잘났다고 하지마라.” “고모랑 할머니는 해도 돼!”
모두가 미소-
4살인데도 말하는 뉴앙스를 알아듣는 것을 보고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말합니다.
“봄이야 친구들이 있는데 너는 말하면 안되고 너는 말해도 된다고 하면 어떨까?“
“그건.. 나쁜데.... 나쁜거야!” “그치만 삼촌은 안돼!” “삼촌은 그렇게 말하지 마라! 치-”
아직 어린 4살인데도 말 속에 있는 뜻을 알아듣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웃음이 한바탕 지나가고 환한 햇살이 부르는 것 같아 마당으로 나갑니다.
비가 온 뒤라 봄이 오는 모습이 눈에 확연히 들어옵니다.
산수유와 개나리는 벌써 피었고 철쭉은 봉오리가 나날이 통통해지고 있네요.
봄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봄단장들을 부지런히 했네요.
키 작은 바닥에 붙은 식물들도 머리를 꼿꼿이 들이대고 있고, 나무들은 삐-죽 뾰오죽
눈들이 생기고 있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며 “참- 신기하다”를 연발하다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저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똑같지 않고 각각 제각기 특색이 있는 창조물들-
우리는 작은 것에서도, 큰 것에서도 주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주님의 자녀 된 특권이지만 외인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신기해하고 하나님 찾고 그러냐고-”
크신 하나님을 어찌 다 알수있으랴마는 작은 것에서부터 오묘하신 주님의 솜씨를
느끼고 감탄하는 우리는 서로가 통하지요?
봄이가 삼촌과의 싸움이 끝났는지 강아지를 이리저리 몰고 따라다닙니다.
제 성미에 안 맞았는지 강아지를 인형 집듯이 집어 내던져 깨갱거리게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뛰어가서 봄이를 똑같이 집어 들고
“너도 강아지랑 똑같이 던져 버린다 !”
“아니, 아니, 안 그럴게요. 고모 한번만-”
금새 우는 얼굴로 작은 두 손을 싹싹 비는 모습에 속으로 너무 우습지만 엄하게
“정말? 약속할거지? 강아지가 아프다고 깨갱거리잖니?”
“다시 한 번 이러면 강아지보다 더 멀리 던져 버린다! 약속-”
손가락을 얼른 만드는 모습에 또 미소가.
‘애들은 웃음을 주는 웃음공장이야.’ 무슨 짓을 해도 예쁘고 귀엽고 순수하고..
가르쳐 주는 대로 잘 받아들이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일관성에 대해 생각이 머뭅니다.
봄이는 할머니가 우리 집 대왕마마인 것을 너무 잘 압니다.
뭐든지 할머니한테 가서 조르면 해결이 다 되니-
문제는 할머니가 봄이에겐 일관성을 적용하지 않아서 고모는 매번 무자비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크면 다 안다. 크면 다 한다’ 무슨 주문 같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대두!”
무조건적인 손주 사랑에 눈이 먼 할머니 때문에 부모도 고모인 나도 걱정입니다.
정해진 원칙을 알면서도 할머니가 계시면 욜리졸리 잘도 빠집니다.
아이들이 머리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돕니다. 빠질 기회를 너무도 잘 탑니다.
할머니가 계시면 부모도 때리지 못하다보니 어물쩍 넘어가는 때도 많습니다.
유치원에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일관성 있게 대하려 애를 쓰지만 집에 있는 토끼하나 못 잡고 있다니...
아이들이 부모가 일관성이 확립되어 있으면 처벌당해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억울해하지 않는데 일관성이 없는 부모의 처벌에는 분노를 하거든요. ‘전번에는 안 그랬는데..’ 비교되어 더 많이 억울해하죠. 부모님의 처사가 원망스럽고. 결국 원망과 분노를 자꾸 쌓는거에요. 사춘기도 빨리 오죠! 쌓인 분노가 용량을 넘게 되니까.
2012-04-04 22:53:02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