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이후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회계보고하는 그 날에 주님께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든지 이제는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할지 각자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 함께 가세!'
좋은 글 깊이 공감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2016-06-17 06:06:38 | 김상희
풍파를 겪은 후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한 글로 우리의.믿음과 가져야 할 자세를 잘 정리해 주셨네요.
바쁜 중에도 신실한 형제님께 감사드랴요.
2016-06-17 05:31:25 | 오혜미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말씀)을 믿어 영원한 구원에 이르고, 신약 성도들은 예수님(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돌이킬수 없는 영원한 구원에 이르듯이, 개역 성경이든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든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똑같은 땅에 씨 를 뿌려도, 씨앗이 어떠한것과, 심고 물을 주는 사람과, 그 나무가 섭취하는 영양분에 따라
그 열매는 확연히 다릅니다.
모든 믿음의 성도들의 마음밭에, 올바른 씨 만이 심기워져, 좋은 열매가 맺혀지기를 소망합니다.
깨끗한 진리의 글 감사합니다.
샬롬
누가복음 6:43 좋은 나무가 변질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며 변질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느니라.
2016-06-16 18:28:57 | 이명석
저는 이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저절로 신실한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과 성경 읽는 모습이
그려지곤 했어요. 본래 믿지 않는 집이었기에 우리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지만요.
우리 성도들은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2016-06-16 14:42:01 | 이수영
안녕하세요?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귀한 글 감사합니다.
동성애 반대집회를 다녀온 뒤 마지막 구절을 읽으니 가슴에 와 닿습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1007
샬롬
패스터
"개역성경이든 킹제임스 성경이든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속한 지체요, 영원히 맺어진 영적 가족입니다. 부디 이 마지막 때 보수적이고 근본적인 한국 교회의 성도들과 작년 여름 사랑침례교회 채리티 콰이어가 부른 찬송가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 함께 가세!’를 외치며 영적 전장의 전우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아끼는 관계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6-06-16 11:57:53 | 관리자
여러분은 찬송가 ‘There's Dear and Precious Book’을 기억하시나요?
1893년 보스턴에서 열린 집회가 계기가 되어 윌리엄스(M.B. Willims) 목사가 가사를 쓰고 틸만(C.D. Tillman) 목사가 곡을 붙인 찬송가 ‘There's Dear and Precious Book’의 우리말 제목이 바로 통일찬송가 234장에 수록된 ‘나의 사랑하는 책’입니다. 묘하게도 한국적인 정서가 진하게 느껴지는 이 정겨운 찬송가의 1절 가사를 옮겨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속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가사를 쓴 윌리엄스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간직한 소천하신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성경책을 모티브로 이 찬송가를 작시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믿음의 유산에 대한 향수가 담긴 이 사연을 접하고 어떤 분은 바울이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답니다.
내가 네 속에 있는 꾸밈없는 믿음을 회상하노니 그것은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으며 네 속에도 있는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딤후1:5)
제가 이 찬송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철없이 교회 행사를 쫓아다녔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입니다. 어느 무더운 날 여름성경학교 조회 시간에 다 함께 이 찬송가를 불렀는데 어린 마음에도 이 찬송가의 곡조와 가사가 어찌나 애잔하고도 정겨웠던지 그때 받은 감동이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저는 윌리엄스 목사님이 유품으로 간직한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지금 저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주저함 없이 곧바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윌리엄스 목사님의 사연처럼 저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성경책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나의 사랑하는 책’은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저는 그것은 솔직하게 ‘개역성경’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불신자의 집안인 저의 집에서 유일하게 장로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개역성경 안에 들어있는 진리의 말씀으로 중학교 때 제 전 인생을 걸고 복음을 받아들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자로 영접하고 구원받았습니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라면 개역성경이 저의 어린 시절 믿음의 추억이 담긴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출석하고 있는 사랑침례교회 성도 전체의 90%가 넘는 분들도 ‘개역성경’을 통해 구원받았고 그분들의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에는 ‘개역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나요? :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3&write_id=749
그러므로 사랑침례교회의 성도들 또한 윌리엄스 목사님이 간직했던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과 같이 추억이 담긴 정겨운 성경책을 말해 보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분이 ‘개역성경’을 꼽게 될 겁니다.
이렇듯 킹제임스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도들은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구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 한국 교회 안에서 구원받고 성장한 사람들이며 일반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의 믿음의 동료요 친구입니다. 사랑침례교회의 경우만 봐도 대다수가 기존 교계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다가 오신 분들입니다.
사랑침례교회 성도들은 결코 전략적 계산으로 혹은 현실적인 이득을 챙기고 날카로운 비판을 피하고 보기 위해 일단 자세를 낮추고 ‘개역성경’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이미 입증했듯 거의 다수가 개역성경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성경을 부인하면 저희는 일순간불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부인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겠습니까.
단언하건대 저희는 진심으로 개역성경으로도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한국 교회의 근본적이고 보수적인 믿음의 사람들과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개역성경에만 안주하지 않고 더 탁월하며 오류가 없고 완전하다고 확신하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우리 믿음의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존중하며 이 탁월한 킹제임스 성경을 지금처럼 앞으로도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로 전파해 갈 것입니다.
사람침례교회 성도들은 물론이고 성경지킴이 사이트를 오가는 많은 분들조차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작금에 저희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대해 매우 신랄하고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공격과 비판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완전한 성경에 대한 우리의 확고부동한 믿음은 앞으로 털끝만큼의 양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어려움을 계기로 저희는 우리가 믿는 믿음과 진리를 전하는 자세와 언행에 잘못된 부분은 없었는가를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온라인상에 올려진 자료 중 과도하고 부적절한 부분을 교정하는 일을 시행하였고 이미 상당 부분 마무리 지었습니다.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지금이 마지막 때요, 말세의 지말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아시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복음이 흥왕했다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조차 이제는 갈수록 기독교인의 사회적 입지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영적 태풍이 세차게 휘몰아칩니다. 태풍이 거세게 몰아칠수록 방파제를 더 두껍게 쌓고 더욱 견고하고 강하게 지어진 집으로 피신해야 살 수 있습니다.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집 중에 늑대의 공격에 맨 마지막까지 견디며 그들의 생명을 보존해 준 집은 막내의 벽돌집이었습니다.
왜 하필 이 마지막 때 성경 이슈가 세상의 주목받는지를 차분하게 생각해 보시길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이때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줄 오류가 없는 완전한 성경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리의 혼돈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요즘 완전한 성경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적 평온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전개될 마지막 때를 온전히 대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점점 흉포하게 변해가고 교회들은 점점 더 세속화의 수렁 속에 잠겨 갑니다. 이렇듯 영적 전장은 점점 치열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이럴 때 한 사람의 아군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정말이지 요즘은 수많은 적군 사이에서 섞여 있는 소중한 아군을 잘 분별하는 피아(彼我)의 올바른 식별이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근본적이고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은 눈에 띄게 그 수효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로마 카톨릭, 동성애, 이슬람교 등 기독교의 믿음과 교리를 위협하는 세력은 그 크기를 점점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위급한 때 적군과 아군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를 공격하는 자중지란의 늪에 빠져서야 어떻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더불어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분들이 사용한 ‘사기’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표준국어대사전은 ‘사기’라는 단어의 정의를 아래와 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사기(詐欺) : 나쁜 꾀로 남을 속임.
풀어 말하면 일부로 지어낸 생각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의도적으로 남을 속이는 일을 가리켜 ‘사기(詐欺)’라고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자유이며 그 양심의 자유는 당연히 침해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유일성을 순수하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믿지 않으면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교묘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조차 양심의 자유로 존중받을 수는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유일성을 믿는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몸과 마음을 바쳐 뜨겁게 사랑하고 싶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는 저희의 이 믿음에 동의 못 하실 수도 있고 때로 우려의 시선을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이 개역성경에 담긴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만약 어떤 분의 주장대로 킹제임스 성경의 유일성에 대한 우리의 굳건한 믿음이 기독교가 아닌 신흥 종교라면 우리들의 구원의 근간이었던 개역성경도 신흥 종교의 교도를 구원한 성경이 됩니다. 따라서 개역성경을 옹호하려는 그분도 신흥 종교에 구원을 안긴 성경을 옹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 그분은 개역성경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도 킹제임스 성경 신자가 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듯 한 가지만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면 심각한 오류의 함정에 빠집니다. 물론 우리도 혹 그러한 불찰은 없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마 그동안 성경 이슈의 심각성으로 인한 조급함으로 오늘까지 달려오면서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의 몇몇 언행에서 다소 오해를 불러온 부분도 있었을 줄로 압니다. 반성할 점이 있다면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으로 교계의 바른 충언은 얼마든지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오해가 짙어진 만큼 더욱 한국 교회에서 타의 모범이 되고 긍정적인 사역을 풍성하게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겁니다.
분명한 점은 일반적인 한국 교회와 저희의 믿음에는 차이가 있으며 아직은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개역성경이든 킹제임스 성경이든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속한 지체요, 영원히 맺어진 영적 가족입니다. 부디 이 마지막 때 보수적이고 근본적인 한국 교회의 성도들과 작년 여름 사랑침례교회 채리티 콰이어가 부른 찬송가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 함께 가세!’를 외치며 영적 전장의 전우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아끼는 관계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송-우리 모두 함께 가세 (Charity Choir) :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cm&write_id=1090
감사합니다.
9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는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
11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바바리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게시느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생각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입고
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속에서 다스리게 하라. 너희도 그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17 또 너희가 말이나 행위로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며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9~17)
2016-06-16 11:57:13 | 관리자
한번도 가보지 못해 늘 그립고 가보고 싶은 사랑침례교회.
그 어느 교회보다 영혼의 자유함을 누리고 강조하는 교회이지만 그 어느곳보다도 더한 질서와 바름이 있을것 같은 교회가 제가 상상하는 교회모습입니다.
그러다보면 딱딱한 잣대가 사방에 진쳐져 있을것 같은 상상도 되는데요. 그 상상을 여지없이 부드럽게..서로 마음을 열고 부족한 부분을 진솔하게 마음을 열어 대화할 수 있을것 같은 교회의 모습으로 바꿔주는 이수영 자매님의 글은 저로 하여금 당장이라도 비행기 타고 날아가고 싶은 교회가 되게하고 말지요. 정말 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목사님은 그러실까요?
가까운 교회로 가십시요. ㅎㅎㅎ
2016-06-15 03:22:16 | 김남희
마음속 생각을 글로 거부감 없이 써서 공감을 느끼해 하는것도 귀한 달란트죠.
좋은게 좋지 하던 마음에서 아닌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그리고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그런 모임과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2016-06-14 10:02:48 | 김혜순
백배로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멋진 글 깊이 공감합니다.
어찌나 글을 잘 쓰시는지 크리스쳔 계몽 에세이 작가(이런 명칭이 있는지는 모르지만ㅎ) 로 등단하셔도 될것 같아요.
영혼의 자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참그리스도인으로서 절제하며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6-06-14 05:35:37 | 김상희
형제님이 콕 집어 요점을 말씀해 주시네요.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빛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도록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동글동글한 몽돌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 중이겠지요-
2016-06-13 21:42:24 | 이수영
세상 사람들간의 사귐은 자기를 나타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성도들간의 교제사이에는, 그 중간에는, 항상 예수님께서 계신다는것을 잊어 버리지 않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의인이라는 칭의를 얻었다면,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우리를 통해, 칭의의 목적인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지기를 소망합니다.
남해안의 몽돌 바닷가가 생각나네요. 거기에는 모난 돌이 하나도 없지요^^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어도,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그런 몽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 묵상 글 감사합니다.^^
샬롬.
2016-06-13 19:20:09 | 이명석
잘해보겠다고 (내가 튀어나와)10점~20점 맞느니 예수님의지하며 (잠자리에 들 즈음)100점 맞고 싶어요^^
모든게 감사함...그럼 끝난건데도 말이에요. 성령님~~ 저 많이많이 도와주세요~~
2016-06-13 14:18:16 | 목영주
취미로 그림을 그릴 때 젊은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가르치는 방식이 참 특이했어요. 첫날 소개를 다 하고나니 백지를 나누어 주고 무엇이든 아무거나 그려보라고 해요. 사람들이 ‘ 배우러 왔는데, 맨 땅에 헤딩하라’ 고 하니 다들 쉽게 그리지 못하고 있었죠. 그래도 시간이 흘러 각자가 그린 그림 하나씩을 이젤에 올려놓고 선생님이 설명하였지요. 그린 사람의 성향을 말해주고, 이런 방향으로 그려나가면 좋겠고, 참고 할 화가는 누구라고.
만화처럼 그린 그림을 보고 일본 만화가 누구를 소개하면서 그분 그림의 느낌이 난다고. 그분의 그림을 많이 보고 이런 방향으로 그려보세요.
여백이 많은 느낌이 있는 그림을 보고 동양화를 했는지 묻고 어떤 그림이 좋았는지 수묵화도 잘 맞을 것 같다고.
각자의 성향을 파악해서 자기에게 맞는 것을 알려주면서
“각자가 자기가 사용하고 싶은 재료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해 보세요. 수업진행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림은 각자 인생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이라 잘하고 못하고가 없습니다.”
“우리가 피카소의 그림도, 인상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여러 작품들도 보다시피 시대에 따라 그림의 성향이 달라지고 개성이 있는 것을 알기에 어떤 틀에 매이지 않고 개성 있게 자기만의 표현으로 그리는 것이 중요한데 학원에서 석고 하나를 놓고 모두가 다 똑같이 따라서 그려야만 하는, 개성 없이 복사를 해내는 것에 익숙해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강의하는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과제를 주면 마감일을 넘기기가 일쑤인데다 상상력의 빈곤을 보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선생님의 그림 관에 대해서 듣고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다음 시간에도 몇 몇 사람들이 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앉아만 있었어요.
선생님이 여러 가지 그림을 제시해 줬는데도 시작을 못하고 망설이며 시간이 흘러갔어요.
여러 사람들이 모이니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났는데 어떤 나이 드신 남자 분은 스티브잡스를 연필로 시작했는데 두 달에 걸쳐서 진짜 스티브잡스를 그려내셨어요!
흑백 사진이었는데 털 하나하나까지 연필로 세밀하게!!! 나중에 그 분을 ‘잡스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또 한 젊은 엄마는 너무 궁리를 하고 지우고를 반복하느라 세 시간을 보냈고 어떤 나이 드신 여자 분은 크레파스로 그렸는데 형태도 안 맞고 우리가 보기엔 너무 못 그려 보이는데 선생님이 극찬을 하셨어요.
전문가들에게 자기 학생 그림이라고 스마트폰으로 돌릴 정도로.
그림은 아주 거칠고 원본과는 형태도 다른데 야성이 느껴지고 순수성이 돋보였어요.
신 피카소? 랄까^^
그런데 중요한 건 선생님이 최고라 인정을 하고 동료들이 잘 그린다고 말해도 정작 그린 본인은 전혀 인정을 못하는 거예요.
자기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고 자기가 봐도 원본과는 형태가 전혀 다르니까요.
도무지 자신감이 없어하고 숙제를 숨기고^^
저의 경우는 선생의 그림 관을 확실히 이해하니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쓱-싹 그려내고^^
각자가 다 다른 재료와 소재로 그리는 그림이 한 교실에서 진행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나중에 어느 정도 그리면 선생님이 한 작품씩 이젤에 놓고 부족한 부분은 가필하면서 설명을 하면 눈썰미도 생기고 여러 가지를 보는 재미가 생겼고요.
자유를 누리면서 내 맘대로 그리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지요. 성격대로라서 덜렁덜렁 휘- 딱^^ 그려내면 꼼꼼한 성격의 정밀화를 그리는 분은 너무 부러워하고 반대로 나는 또 초정밀 하는 분이 존경스럽고^^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죠^^
사람들의 성격이 그림에도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역시 살아온 흔적을 드러낼 수밖에 없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어요.
하나하나 진행할 때마다 망설이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분이
“어떻게 그렇게 망설임이 없이 뚝 딱 쉽게 그리세요?”
물어왔어요.
“맘에 안 들면 다시 그리면 되니까요”
아주 단순한 대답을 들으면서도 납득이 안 되는 얼굴 표정-
어떤 남자 분은 설계도를 보는 것 같은 초정밀의 그림을 그려내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저는 머리가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적성이 아닌거죠^^
정말 신선한 학습법이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심리 상담에서 왜 그림을 사용하는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소수였어요.
저는 내 맘대로 그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그 자유를 아무것도 못하는 망설임 속에서 보내는 분들도 있음을 보았지요.
점차 수업에 안 나오고 (자유의 이면에는 수업에 참여할 책임이 있는데) 가끔씩 나와서는 여행 다닌 얘기만 하다가는 결국 중도 하차하는 분도 생기고....
“나는 기초부터 배우려 왔는데, 선생님이 기초를 안 가르쳐 줘서 못 나오겠어요.” “기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하시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한 번 시도를 해 보세요”
하고 권해도 도무지 너무 가르치는 것이 없다고 도중하차....
“선 긋기 이런 거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계속 주장하는 한 분은 사각석고를 놓고 그리라고 배려를 했는데 결국 재미없다고 도중하차하고 말았어요.
첫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미술’이다 는 말을 듣고 모두가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말이지요.
듣기는 들었고 이해도 한 것 같았으나 자기 생각에 이리 저리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 한 발도 내딛지를 못하니 수업이 어렵고 힘들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제가 경험한 취미 미술수업에 국한 된 일이지만 우리 교회가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다보니 간혹 이해를 잘 못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영혼의 자유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인데 말이지요.
“어듬 속의 등불”이라는 영화를 봐도 우리가 보는 성경이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피 값인 것을 알게 되는데, 현재 우리가 (감사하게도) 공산국가가 아니라서 고귀한 피 값인 성경을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볼 수 있고, 교회도 많아서 그 귀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OoNZv1Te-6Q
중세시대는 말 할 것도 없고, 근세에 들어서도 영혼의 자유를 얻기 위해 죽을 각오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선진들-그들의 피 값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참수형을 당한 우리의 선조들의 피 값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선진들의 피 값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누리는 영혼의 자유는 선진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어렵고, 힘들게, 피 흘려 죽기까지 지켜온 것임을 잊어버리고 당연시 하는 것은 아닌지?
주일 성수를 주장하는 교회는 당연히 출석률이 좋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자원해서 행하는 것을 취하다보니 너무 자유롭게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데도) 방종으로 가는 분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요.
교회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몸과 마음과 시간과 금전으로 섬기는 것이 당연하건만 자기 좋은 것만을 취하는 분도 드물게 생기지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간증을 들어보면 교회 안에서도 “좋은 게 좋지”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 듯해요.
그래서 일반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부정을 저질러도 눈감고 넘어가고 성도끼리도 서로 말 안하고 넘어가는 것이 너그럽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해요.
“관용”이라는 좋은 단어를 사용해서 “거룩함”을 덮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기도 해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오래참고 기다려 줘야 한다고. 그런 사고는 “분별력 있는 사랑”이 차갑게 느껴질 수 있어요.
비근한 예로 대부분의 조부모는 손자, 손녀에 대해 너무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지요.
부모들은 사랑하기에 매를 들기도 하고 야단도 많이 치구요.
누구나가 인정하듯 무조건 적인 사랑은 기준이 없다보니 자기 위주의 사람을 만드는 경향이 많이 있지요.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만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온갖 좋은 것은 다 해주면서 자녀들이 반드시 배우고 알아야하는 참을성, 예의, 도덕적인 기준과 분별력, 사회성, 인성, 겸손 등을 안 가르쳐서 신문의 사회면을 채운 다음에 후회하기도 하지요.
‘무조건적인 사랑’ ‘관용’ ‘좋은 게 좋지’
이러한 사고가 거룩함과 배치 될 때는 우리는 거룩을 취해야 한다는 말씀이 옳다고 생각해요.
한 성도와 교제가운데에서도 증명이 되는데,
예전에 설렁설렁 그냥 교회 다닐 때는 사무실에 친구들이 매일 많이 놀러 와서 농담도 하고 시끌벅적했는데, 바른 성경과 바른 설교를 통해서 영적인 영양을 공급받고 부터 매일 사무실에서 설교CD를 틀어놓고 공부를 하고, 들은 말씀을 전하려고 애쓰다보니 한 사람 두 사람 발길을 끊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거룩함은 분리라는 뜻도 있으니 그리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랄까요?
세상의 영과 분리될 수밖에 없어서 대부분은 세상 친구들과는 멀어지게 되지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을 사귀는 일을 제외하고는 될수록 먹고 마시는 모임은 피하게 되지요.
말 한 마디를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서로 교제가 되는 성도들을 만나는 일이 더 기쁘고 좋으니 자연스레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서로가 교제하며, 위로하고, 감동도 함께 나누며, 또한 서로 권면하고, 받고 하면서 성장해 가는 것 같아요.
옷을 입었는데 속치마가 삐죽 나와 있으면 가서 말해 바로 잡아 주는 성도가 되어야 우리 교회의 모습이 단정해지지요.
한 개의 돌이 바닷가의 고운 모래가 되기까지는 수나 양을 셀 수 없는 물의 연단을 받고, 같은 돌끼리도 부딪히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 고운 모래가 되듯이 우리도 그러한 과정 속에 있다고 여겨져요.
그것도 주님 오시기까지 쭈-욱 -
물결이 세고, 파도가 높아서, 떨어질 때 죽을 것 같이 아파도,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후퇴하고 싶어도,
부딪힘이 너무 싫고 괴로워도,
우리는 성령님의 품안에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외로움도 감사로,
아픔도 감사로,
고난도 감사로,
연단도 감사로,
모든 것을 감사로 받으면서 주님을 바라며 함께 성장해 가야겠지요.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날까지.....
마라나타!
2016-06-13 12:48:28 | 이수영
k형제님께선 분명 긴박하고 숨막히는 상황였을텐데 이글을 읽고있는 저는 침을 꼴깍 삼키며
서바이벌 소설책을 재미나게 본것같은 기분은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가집에 다녀오면서도 본인의 죽음은 아주 멀리있거나 아예 죽지 않을것같은 착각속에 살고있지요. 제얘깁니다. 다행히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살게된것을 감사드립니다.
살아있을때의 생명을 소중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겠습니다.감사합니다.
2016-06-08 10:41:31 | 김준수
K형제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문득 누가복음 12장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18절..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거기에 내 모든 열매와 물건을 쌓아두고 19절.. 여러해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리라..
20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밤에 네게서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한 치 앞을 알수 없는 인생길에 주님께서 등불되어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됩니다.^^
2016-06-07 11:25:03 | 오광일
김형제님~ '단 하나의 날'이 바로 오늘! 주일 아침에 시작되어 지네요. 형제님의 말씀 처럼 "허무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헛된 욕심에 자신의 귀한 하루를 소모하지 말자.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세워주고 바르게 이끌어주는 소중한 일들에 천금 같은 시간을 사용하자"는 다짐이 저 자신의 고백으로도 다가옵니다. 오늘 하루도 저와 사랑침례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더욱더 '하나님의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위해 교회로 모이는 은혜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6-06-05 06:34:41 | 장용철
아랫글은 올해 3월 5일 제가 운전 중 직접 겪은 사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free&write_id=14716
감사합니다.
2016-06-04 23:57:21 | 김대용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6-02 14:22:52 | 관리자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공개적인 글로 표현 한다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자매님의 용기에..그리고 결단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샬롬^^
2016-06-01 15:16:31 | 오광일
자매님의 진솔한 삶의 공개로 인해 우리 교회가 훈훈해 지네요. 휴먼세탁소..화이팅!!
2016-06-01 11:28:24 | 오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