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에서 예배,말씀 듣고 왔습니다.
요부분은 누가 해주셨나요?
이부분은 누가 해주셨나요?
일일이 인사 드리고 싶은 맘 굴뚝 같았어요.
목영주가 시련은 많아도 죽을때까지 다닐 교회는 단번에 해결해 주시는 구나...
하나님아버지께서 날 참 예뻐해 주시는 구나...싶었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저도 언젠가 편히 교회 다니면서 교회화장실 청소할 수 있는 첫날...펑펑 울것 같아요.
그런날 생각하면서 당당히(?) 말뿐인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많이 애쓰셨어요.
2012-05-20 15:46:53 | 목영주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성경이 꼭 순서데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의 사건은 순서데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창 26:8,9)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의 왕 아비멜렉이 창 밖으로 내다보다가 보매, 보라,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와 즐겁게 놀므로』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보라, 그녀는 정녕 네 아내이거늘 어찌하여 네가 이르기를, 그녀는 내 누이라, 하였느냐? 하니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르기를, 그녀로 인해 내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였기 때문이라.』
이삭은 자기 아버지와 비슷한 사건으로 아비멜렉에게 질책을 당합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 사건의 학습효과로 미리 예방조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구요.
2012-05-20 08:58:45 | 허광무
질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종합해보면, 형제님이 고민하고 있거나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영적인 성장과 성화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유명한 설교자나 변증가가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직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구원과 성화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면 대부분의 의문점들은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영접기도"를 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이 구원은 우리의 행함이나 신앙의 연륜이나 도덕적으로 수준높은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죄로부터 멀어졌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와졌는지는 성화의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구원받은 사람의 현 상태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키와 몸무게가 얼마나 자랐느냐, 말을 잘 하느냐, 혼자서 걸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시 태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행위에 대한 문제는 설교와 말씀 - 특별방송 - "야고보서 이해와 오해 풀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C.S. Lewis가 다른 종교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했는지, 금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셨는지만 주의해서 읽고 그대로 따르시면 됩니다. C.S. Lewis가 사회적으로는 유명한 변증가일지 모르지만, 저는 마법과 판타지 등 이교적인 요소들을 기독교에 접목시키려는 사상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3. 신본주의에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통치를 인정합니다. 제사장이나 인간 왕이 중심이 되는 제도를 신본주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약 교회 성도들은 성전이나 제사장이 없지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진리의 말씀을 따르며 성령의 통제 하에 주님께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학문은 인본주의이고, 신학은 신본주의일까요? 교회 일은 거룩한 일이고, 직장 일과 가사는 세속적인 일일까요? 일주일은 단 하루의 거룩한 주일과 6일간의 속된 평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에 대해서는 별도로 성경을 읽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해서는 www.keepbible.com에 있는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학에 "무한대"의 개념이 나옵니다. "무한"이라는 것을 통해서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수학자라면 그의 학문적 관점은 인본주의가 아닐 겁니다. 인본주의 학문의 대표적인 것이 심리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사람은 날 때부터 죄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라는 진리를 발견했다면, 그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All truth is God's truth.
수학, 화학, 기계공학, 물리학, 천문학, 정치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이런 학문들이 인본주의인가 아닌가, 이것들을 지양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보다 이 학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스포츠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0257&page=2)
2012-05-20 01:55:31 | 김문수
허광무 형제님이 제기하신 부분에 많은 의견들이 있는데 정답은 말씀 그대로 믿는것이 바른 믿음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이 논리적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자 신학자들이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해서 주석을 다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었기 떄문입니다. (대표적예로 모세의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바다가 갈라진 것이 아니라 달밤에 갈대숲을 지난것을 그림자 떄문에 바다가 갈라진것이라 해석등등 -_-;) 가장 보편 타당한 의견을 제시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성경은 꼭 쓰여진 순서대로 기록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고 한 것은 90세에 이삭을 낳기 훨씬 전입니다. 하갈을 첩으로 준 이전일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사래가 일시 애굽에 살다가 돌아와서 아비멜렉에게 수치를 당할 번 한 후, 사래가 더 늙으니 자기의 종을 남편에게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래의 나이 76세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으므로 아비멜렉과의 사건은 사래의 나의 67세~75세 사이에 일어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물론 70세 전후의 나이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그런 할머니에게 반할 수 있을까요?
노아홍수전에는 사람들이 900세, 800세 이상을 보통 살았습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고 노아는 950세를 살았습니다. 영화 등에 노아홍수때 노아를 늙은 할아버지 배우로 분장시켰는데, 전혀 틀린 이야기입니다. 노아 600세에 홍수가 났으니까 지금으로 친다면 노아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홍수가 난 것과 같습니다.
노아홍수 후에 기후, 환경의 변화로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노아의 손자 아르박삿은 438살까지 살았고, 아르박삿의 증손자 밸렉은 239살까지 살았고, 벨렉의 손자의 손자인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205살까지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살까지 살았고, 사라는 127살까지 살았는데 당시 나이로 보아서, 또 여성들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라가 결코 오래 살은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137살 이후에도 다시 후처를 취하여 많은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지금과 건강, 수명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그후 칠대, 팔대 후손의 수명은 현재 인간의 수명과 비슷하여 집니다.
사라는 분명히 대단한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라가 70세 정도였다는 것은 지금으로 친다면 40세나 40세 초반 정도의 나이, 아무리 늙었다해도 50세는 안넘은 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미모에 충분히 아비멜렉이 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에 유명한 미인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40대 중반 사진 모습을 보았는데 아주 매력적이어서 충분히 사람을 매혹시킬만 하더라구요. 그 당시 사라는 지금 70 노인 할머니의 쭈구렁탱이 모습은 물론 아니었지요. 당시 먼 나라, 우르에서 온 외국여인인 사래가 특히 매력적으로 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 네이버 지식인 답변 中
절대 태클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의견제시 입니다. 형제님 덕분에 자료를 찾아보고 성경을 읽고 아뭏튼 좋은 공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5-20 00:06:19 | 송재근
자매님들과 성도님들의 수고에 늘 감사드립니다. 샬롬!
2012-05-19 23:43:31 | 송재근
안녕하세요
김애자 자매입니다.
교회 이전하면서 식사 당번과 설거지 당번에 변동이 있어 재편성 하였습니다.
늘 도움의 손길을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12-05-19 23:36:02 | 관리자
추가 : 2-2)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나 문화 등에 관련한 여러 생각이 뒤엉켜 있는 가운데 한 질문임을 참고하시면 보다 이해가... 명확할까요? 구체적으로는 라는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문화와 결별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복음성가, 신앙 서적 등에 담긴 경건하고 성스러운 것만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창세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되려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2012-05-19 20:43:57 | 문석휘
1. 폴 워셔란 유명한 목사가 있습니다. 이 곳을 찾는 여러분도 이곳 저곳에서 이 분의 설교 영상 등을 보셨을 것입니다.
Illbehonest.com이란 사이트에도 영상 등이 잘 편집되서 올라와 있죠.
확실히 제 마음과 혼을 가차없이 찌르는 설교가 많습니다. 함부로 '은혜'가 가득한 설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볼 때마다 나 자신을 점검하게 되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폴 워셔 목사도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http://www.samil.org/zbxe/londonhorace_06/5309 에 적힌 글이 있습니다.
인용한 글의 요지를 제 나름대로 추려보자면,
1) '영접 기도' 한 번 했다고 하여 구원을 얻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것은 되려 거짓 복음이다 : 이에 동의합니다.
2) 당신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하고 삶의 스타일이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에 맞추어져 있을 때에 비로서 당신은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 역시 동의합니다.
(저번에도 비슷한 글을 킵바이블에 쓴 것 같긴 하지만) 궁금한 것은 "행함이 없음으로 증명된 그들의 믿음의 부족"이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즉, 진정한 회개는 단지 나의 죄를 자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전히 죄성에 젖어 있기에 비록 완벽할 수는 없을지라도) 거룩함에 다가서기 위한 행위가 함께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이것도 결국은 행위와 믿음의 결합적 구원이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 C.S. Lewis
Mere Christianity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기독교 '변증서'를 써낸 사람으로 유명하죠 . 제 친구도 저에게 이 책을 권했고 저 또한 읽어보았습니다. 확실히 정말 깔끔하고 읽기 좋다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합니다.
다만 궁금한 것이,
1) 책에서 '여타의 종교도 나름대로 어떠한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노력한다' 라는 식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타의 종교도 배울 점이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이러한 서술이 종교 통합 내지 종교 다원주의를 이미 염두에 두고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그러한 작업의 논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2) 절대 금주(teetotalism)를 요구하는 것은 이슬람이지 기독교가 아니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어서 "특정 부류의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자기들이 포기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다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이유로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는 순간, 혹은 그런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순간, 그는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자체에 대한 의견들은 어떠신지요? 저도 원론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만, 분명한 정죄와 판단이 필요할 것임에도 언제, 어디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력이 미숙한 상태입니다.
3. 이른바 '신본주의'에 관하여
위에서 인용한 폴 워셔의 설교에서도 드러나고 (우리는 하나님이 불쾌해하는 것을 너무나 사랑한다), 여타 기독교 방송 등의 내용(일례로 CTS에 출연한 사람의 "주일에는 경건하게 지내기 위해 이메일이나 인터넷 뉴스도 확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발언 등)에서도 이른바 인본주의를 지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자는 신본주의적 자세가 깔려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 그렇다면, 이른바 제사장과 왕이 중심이 된 것과 같은 고대 국가의 신정 형태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요? 여러 글을 보다보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목회자 등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 인본주의를 경계하고 부정해야 함이 구원과 성화에 관련한 영역에서는 당연히 인정될 수 있으나, 이른바 '학문'의 영역에서는 그것이 힘든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16세기 르네상스 운동의 모토가 인본주의이고 지금의 세계를 이룬 학문이 모두 이와 같은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러한 인본주의를 지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골로새서 2:20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로부터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늘 어찌하여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이 규례들에 복종하느냐?
여러 부분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글이 좀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읽는 데 불편함이 없으셨기를 바랍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cf. 2-2)는 절대 제가 과음해서 난동을 부리려는 걸 합리화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개역한글에서는 골 2:20의 '유치한 원리'를 '초등학문'으로 번역했기에 아마 3-2)와 같은 의문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2012-05-19 20:35:33 | 문석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납니다.
(창 20:2)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녀는 내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가니라.
아기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연로한 할머니(여인의 관례가 멈춘) 사라를 아비멜렉이 데려 갑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사라가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사라의 신체를 젊게 되돌려 놓으신 거라 생각 됨니다.
2012-05-19 18:31:10 | 허광무
아이구 죄송합니다. 오늘 기관대항 체육대회가 있어 참석치 못하였습니다.
2012-05-19 18:17:33 | 허광무
방송일을 보시는 성도님들도 몇분 더 오신 가운데
아직 소예배실과 식당이 어수선하여 소예배실이 아닌 유년부실에서
첫 금요모임을 가졌습니다.
금요모임에서 요즘은 '사사기'를 보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에 오시면 함께 하실수 있습니다.
어제는 방송에 관하여 일이 마무리가 되었고
가스, 그 밖에 시설이 완료 되었습니다.
오늘 오후 2시부터는 공간청소와 창고 정리를 하려 합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고 주일에 뵙겠습니다.
2012-05-19 11:22:27 | 관리자
어느 날 아브라함은 세 남자의 방문을 받는다. 한 분은 주 하나님이셨고, 두 남자는 주 하나님을 수행한 천사들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방문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일 것이다. 그냥 심심해서 오셨을리는 만무한 일이다. 아브라함은 극진하게 대접을 한다. 아브라함은 발 씻을 물을 가져오고, 급히 장막안으로 들어가 하인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지시하고 납작한 빵과 연한 송아지 고기 요리를 급히 준비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서 대접 받으시는 일을 생각해 보라! 창조주께서는 아브라함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 들이고 요리를 급히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 보셨을 것이다. 준비도 안되었는데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어쩔줄 몰라하는 주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어쨌든 주 하나님과 두 천사는 경황중에 준비된 음식을 맛나게 드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는 아내 사라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신다. 주 하나님은 장막 밖의 나무 그늘 아래서 아브라함과 대화를 하고 있었고, 사라는 무슨 말을 하는가 하고 장막안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 하나님의 말씀은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가질 수 없는 나이였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 많아 연로하고 또 사라에게는 여인들의 관례에 따른 것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사라에게 아들을 갖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아들을 가질 것이라고 하시니 사람의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물론 기뻐서 웃는 웃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 하나님은 이런 일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한 때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고 자상하게 예전에 하셨던 그 약속을 분명하고 새롭게 해 주셨다. 주 하나님은 사람과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아니하고 함께 대화하기를 원하시며 진정한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 온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과 그들의 죄가 심하므로 직접 확인하시고 친국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입에서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라는 말이 급히 튀어 나왔다. 주께서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주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문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50명의 의인이 있다면 어쩌시겠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45명이 있다면, 그 다음에는 40명이 있다면, 아브라함의 말꼬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30명이 있다면, 20명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10명이 있다면 하고 제안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을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10명의 의인이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 온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어찌보면 이미 결정된 사안인데 아브라함의 간청을 귀찮다 하지 않고 다 들어 주시며 답변을 해 주십니다. 결국 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시지만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세상 문화에 찌들어서 분별력이 상실되어 버린 그 조카 롯과 두 딸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대화중에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에 정의와 사랑과 친절하심과 마지막 까지 인내하심이 구구절절이 배어 나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창조주로서 권위만을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고자 하는 것과 어쩔 수 없었던 그 일까지 후대에 반복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려는 주님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친족들을 향해 아브라함과 같이 주님앞에 간절히 애청하는 자리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제 결혼한지 만 28년이 되었습니다. 한 때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롯과 같이 불신앙의 자리에 있었으나 아브라함과 같은 중보의 기도때문에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사람들을 어려움에서 구출하셨다고 하신 것처럼 먼저 믿고 예수님의 은혜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 주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간절히 드렸으면 합니다. 학생부 교사들과 공과 준비했던 내용으로 이 주말 아침 시간에 나눔의 글을 올렸습니다. (창세기 18장 참조) 행복한 주말이 되시고 오늘 교회청소 또 빠지게 되서 죄송^^합니다,
2012-05-19 09:54:13 | 조양교
안녕하세요 형제님. 홈페이지 관리자입니다.
위의 궁금하신 사항을 오른쪽 배너 맨아래를 보시면 KeepBible 클릭하셔서 그곳 검색창에 질문하신 사항을 검색 해 보시면 많은 정보를 얻으실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
2012-05-19 01:08:52 | 관리자
목사님 지금의 계17장.18장 정치.종교집단system(로마카톨릭체제)와
WCC.KNCC를 성경적 요한계시록 말씀에 비치어 설명 좀 해주세요?
또한 666 짐승의 표. 살속에 들어가는 그 가증한 표와 현 시대의 베레칩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며 묵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2012-05-18 13:00:29 | 이완복
저도 성경을 처음 접했을때의 느낌이 마치 카메라의 줌인, 줌아웃처럼 느껴졌습니다. 가까이 볼려고 하면 스르륵 물러가고 그러다가 또 천천히 다가오고 그러기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지만 좋은 형제자매님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고 '우리'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내가 다니고 있어서 특별한 교회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못난 저를 수용?해주는 교회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로서 사람의 행위로 만들어지는 전통이 아니라 성경적인 최소한의 것을 세우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랩입니다. 요란한 것보다 단순하게 그러나 진리의 말씀으로 목양되는 특별함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2012-05-18 09:48:56 | 최현욱
죄송하게도 그 파일은 녹음이 잘못되어 누구도 들을수가 없어요.
2012-05-17 13:28:14 | 이수영
우리 성도는 주님이 부르시기 전까지
벧후3:18을 힘써야할 뿐만 아니라
야2: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위없는 믿음도 죽었느니라. 고 하신 말씀의
균형을 잡아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겠지요?
2012-05-17 12:14:30 | 이수영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공간 밖에는 못보는데
이렇게 이곳 저곳의 사진을 찍어 올려주니
각 교실의 상황도 보게 되니 너무 감사하죠.
항상 순간을 포착하느라 식사도 맨 나중이고
교제도 잘 못하는 청기자의 수고 덕분에
우리가 행복을 누리네요. 고마워요.^^
이번주엔 침례탕 시험가동도 해보고
여러가지 뒷마무리로 바쁘게 보내겠네요.
함께 짐을 나누어 지면 가벼울텐데.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는 말씀처럼
가까이 있으면 팔걷고 돕고 싶은 마음인데 미안함이...
주님께서 힘주시고 굳게 붙드시기를!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신다는
말씀으로 위로합니다.
시62:12, 잠언 24 : 12
2012-05-17 12:07:21 | 이수영
진우의 피부가 깨끗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아토피에 좋은 천연파프리카비누만들었는데.다음주에 드릴께요~
2012-05-17 12:01:33 | 민혜영
요한계시록 27강 강의 꼭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강의를 넘 감사하게 듣고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평강과 지혜가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2012-05-17 11:27:27 | 이완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