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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김태권 목사> 대화처럼 정감 넘치는 메시지와 성경적 원리에 충실한 열정적 설교로 이미 널리 알려진 김태권 목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공무원을 하면서 트리니티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워싱턴 한인정통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다가 남서울교회 부목사를 거쳐 현재 평촌에서 남서울평촌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다.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살아있는 메시지로 눈에 띄는 부층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외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김태권 목사는 <<고난의 현장에서 만난 하나님>> 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될 현실적인 교훈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상을 일깨우는 1%의 크리스천>>(아가페 출간)이 있다.     [독후감상]      나는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고난이라는 글자가 빨간 색으로 되어 있고 이제 막 올라온 새싹의 방향이  고난이라는 글자를 향해 있는 듯한 표지를 보고 마치 어떤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의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사기를 현대인의 삶에 비추어 들려주는 현실적인 삶의 교훈을 주는 책이었다.  현대인의 완악한 마음을 성경강해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사사시대의 사람들 마음과 비교하며 들여다보게 한 책으로 본문의 곳곳에서 나는 찔림을 받기도 했다.그리고 이 책은 이 말씀이 핵심으로 나온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삿21:25) "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   저자는 하나님이 중심인 삶을 살자고 강조하기 위해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현대인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은 듯하다.  본문은 사사기 1장 여호수아가 죽은 뒤의 가나안 정복부터 이스라엘과 베냐민과의 싸움 후 베냐민 사람들을 위해 아내를 제공하는 21장까지 전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사기. . . 3천년 전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 . 그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때의 모습과 생각과 결과들을 보며 지금 이 순간도 함께 하고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갑자기 자세가 바로세워진다.    갈렙의 동생 옷니엘부터 시작한 사사의 이야기는 3장 첫 주자들에서 보통 누구의 아들이라고 나오는데 옷니엘은 왜 형을 소개 했을까? 를 보니 생각없이 읽었던 부분이라 정말 왜 그랬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성경에는 짧게 두 절만 나오는 옷니엘에 대해 저자는 영적 유산을 말하며 갈렙으로부터 좋은 신앙의 유산을 받은 옷니엘을 말하고 현대인의 영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왼손잡이였던 에훗을 말할 때 원어에는 왼손잡이라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을 못 쓰는 사람"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고 하는 부분은 나에게 새로운 단어여서 흥미로웠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관심있게 봤던 부분은 8장 바닥에서 정상으로 편과 9장 영웅의 탄생 편이다. 어머니가 기생인 입다가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집에서 쫓겨난 후 11장 1절 <이제 길르앗 사람 입다는 강한 용사요> 라고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신앙적인 부분을 다시 알게 된 부분이었다.   사사기 11: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고향으로 데리고 돌아가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주깨서 그들을 내 앞에 넘겨주시면 내가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하니 [이것은 우리의 주인공 입다의 신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본문의 첫 번째 신앙고백입니다. 이 말은 먼저 승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P187)]   만일 주께서 그들을 내 앞에 넘겨주시면.....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입다의 마음에 품고 있는 중심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늘 깨어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입다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이 책이 새삼 고마웠다.   9장 영웅의 탄생편에서는 삼손의 탄생 이야기이다. 삼손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하고 영화로도 소재가 되었지만  여기서는 삼손보다는 그 부모에 대한 부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나는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삼손의 부모에 관한 부분을 보며 그리고  그 부부의 관계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에 그 여인이 가서 자기 남편에게 고하여 이르되....(삿13:6) 이에 마노아가 주께 간청하여 이르되, 오 내 주여, 주계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에게 다시 와서 앞으로 태어날 그 아이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를 가르치게 하소서, 하매(삿13:8)   나는 이 부분을 책과 성경을 같이 보면서 부부간의 예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생각해 보았다. 아이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불임이었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먼저 알리는 그 마음과 행동을 생각하며 겸손과 순종을 떠올리고,  마노아 또한 그저 기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라고 기도를 하는 그의 신앙이 참으로 놀랍다.   삼손의 가정은  보기 드문 경건한 믿음의 가정이었고 삼손의 부모는 삼손이 태어난 후에도 삼손을 나실인으로 거룩하게 키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모든 것을 지키면서 최선의 노력을 한  깊은 신앙의 부모라는 생각을 하니 그러면 나는 어떤가 스스로 물어보기도 하였다. 이 책에는 많은 사사가 나오지만 입다와 마노아의 신앙을 보며 내 기쁨 그리고 내 생각이 먼저였던 것을 돌아보며 내 눈에 옳은 것인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 좋은 책이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삿21:25) "
2017-09-10 19:00:14 | 이정자
선배님들의 말씀에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역시 살아오신 연륜은 무시할 수 없네요..ㅎ 글을 읽으며 '나는 지금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있는가...?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위해 생각을 주께 고정시키고 있는가...?' 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네요...
2017-09-06 07:12:06 | 박순호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대체할 만한 것들을 찾게 됩니다. 언제쯤 '내가'가 제 마음에서 사라지고 '주님만이'가 자리잡게 될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도 말씀 붙잡고 살아야겠지요? 저를 돌아보게 하는 교회가 있고, 지체가 있어 감사합니다.
2017-09-05 10:07:20 | 심경아
자세한 60대 자매님들의 교제 내용을 올려주셨네요. 저또한 목사님의 설교를 떠올리며 성령충만한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네요. 자매님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2017-09-05 03:51:51 | 김상희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볼 때마다 과연 나는 어떤가 생각해보며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곰곰히 생각할 때가 많아요. 나 자신도 스스로 다 인식하지 못하는 죄악된 이기심때문에 주님께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을 어느정도는 포기하며 내안의 옛사람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네요. 좋은 글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09-05 03:38:56 | 김상희
참 좋은 글의 내용이네요. 이렇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또 꼭 설교에서만이 아니라 지체들간의 다양한 교제속에서 명언이 나오고 명문장이 나오는 것을 대할때 자칫하다가는 사각지대에서 허우적 거릴 수 있는 저에게는 큰 확신을 더해주곤합니다. 이렇게 글을 공유하고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시간과 마음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09-05 03:34:09 | 오혜미
언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셔서 편한 일을 시키기 원한다고 믿기 시작한 것일까? 언제부터 현재 상태를 그럭저럭 유지하는 것이 신실함이라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것이 안전한 삶의 방식이라고,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이 얼마든지 있다고, 신앙적으로 철두철미한 것이 비정상이라고 믿기 시작한 것일까?   예수님은 우리를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대담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이다. 지금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귀한 분을 위해(All in all)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all in) 모든 힘을 쏟을(all out)때이다. 당신의 관(棺)을 싸라!   인간이 지닌 죄악의 핵심은 이기심이다. 이기심이란 자신의 욕구, 필요, 계획을 포함한 자기 자신을 다른 모든 것 위에 두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갈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분을 첫째로 갈망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리스도께 절하면 나를 높여주고, 그러면 사람들이 나에게 절하게 되겠지’ 라는 속셈이다. 영성을 가장한 이기심의 교묘한 형태로, 그리스도 중심(Christ-centric)이 아니라 나 중심(Me-centric)이다. 내가 그리스의 뜻에 맞게 살고 있는가? 보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뜻에 맞게 해 주고 계신가? 에 더 관심을 쏟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명백한 사실은 그들이 예수님에게 그들을 따르라고 요청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구원자((Savior)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Lord)으로 모신다고하면서 그 주인께 자신의 모든 것을 굴복시키지는 않는다.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세속적인 신념과 가치와 생활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의 전부가 아닌 반만 걸고(half in) 반만 쏟았다(half out).   당신이 단 하나만 결심하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용기를 내어 당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Lordship) 온전히 굴복시킬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 때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헌신은 우리의 행동을 교정하거나 도덕률을 따르거나 선행을 하는 것 그 이상이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그보다 더 깊고 더 참된 것이다. ‘성결하게 하라’는 뜻은 ‘우리자신을 따로 구별해 둔다’는 의미이다. 우리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전적인 헌신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신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좌에 모시는 것이다. 모든 사리사욕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며, 거부하는 권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모든 것에 굴복시키는 것이며, 내 삶의 모든 시간, 모든 에너지, 모든 돈, 동전 하나까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을 위해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다. 헌신은 모든 영적 성장의 분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모든 운동, 그리고 모든 부흥운동의 이면에 있는 촉매제이다. 기이한 일들이 언제나 올바른 헌신에서 시작되듯이 그 헌신은 언제나 기이한 일들로 끝난다. 우리의 자아가 죽어야 한다. 우리의 자아가 죽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참되고 완전한 의미에서 살아난다.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 자신을 잃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인류를 위해 자신의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도 분명히 우리의 십자가를 져야한다. 그것은 우리의 임무가 아니라 최고의 특권이다. 지금이야말로 값을 지불할 때이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이다. 만일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의 주님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전혀 당신의 주님이 아니다. 이것은 전부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냐의 문제이다. 지금 하느냐 아니면 영원히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마크배터슨의 책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앞부분만 조금 요약했지만 도전이 될 것 같아서 여러분들도 읽기를 권해 드립니다.)     ALL IN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크배터슨   1. 지금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 2. 모든 것을 걸라 3. 온 힘을 다하라 4. 가장 귀한 분 5. 전부냐? 아무것도 아니냐?
2017-09-04 11:28:58 | 이수영
*60대 자매들의 모임에서 나오신지 얼마 안된 자매님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오는 자매님은 남편이 한 달 먼저 나오고 자매님은 뒤늦게 왔는데  5월에 침례에 순종했고, 지금은 자녀들을 안착시켜려 애 쓰는 중에 있고, 좋은 교회에 오게 되어 감사하다.   서울에서 오시는 자매님은 2월에 유투브를 통해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남편에게도 마태복음을 들을 것을 권유했고,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게 되었다. 그동안 가까운 곳에서 바르게 예배를 드리는 곳을 찾았으나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마지막 때라 말씀의 홍수가 났지만 먹을 물이 없는 상태라. 동기들도 목회를 하고 있으나 담임 목사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대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 다 옳다고 할 수 없다.   목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성도들을 너무 어렵게 해서 실망하고 지내던 중 시누이의 소개를 받았으나 우리 교회 나오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되었고,큰 일을 겪은 탓에  밥만 먹으면 배가 아파서 밥을 못 먹고 있어 15kg이 빠졌는데 우리 교회 나오면서 식사를 하게 되어서 요즘은 건강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라는 소개를  했다.   2017년은 개인 적으로는 국가를 생각할 때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우울했고,   우리 교회를 봐도 외부와 내부의 큰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하는 일들로 마음이 눌리는 때가 많아서 주님께 간구하게 된다.   모친의 암을 너무 늦게 발견하게 된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수술후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 병실로 가게 되어 소생희망을 갖었었다.  6, 7월에  식사를 못하시게 되면서 급속도로 심해지고 두 주만에 돌아가시게 되었다. 평소에 하는 말들을 주님께서 듣고 계신것을 느꼈고 .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에 속한 것임을 깊이 느끼면서 우리 성도들 지체 하나 하나가 몹시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친이 자전거를 타고가다 일어난 뇌출혈 사고로 머리를 절개하고 수술을 하셨는데 주님께서 살려 주신 것은 순전히 복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교회에서 성도들의 기도모임이 있어서 주님께서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것이라 복음을 순전히 받아 들이도록 기도부탁을 하였다.   *생활 간증과 성령 충만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들*    죽음에 대해서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주님앞에 갈 때까지 준비해야 할 것을 생각하다보니, 자녀들 걱정도 되고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하면 down 되다가도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열정이 솟구친다. 나이가 더 들어서도 열정적으로 섬기길 원한다.   성령충만한 삶을 누리는지? 자신에게 묻게 되는데, 믿음이 같은 성도들과 교제하면 성령 충만해 지는 것 같아서 교회를   꼭 와야 한다고^^ 남편이 주일날 함께 교회에 나와 주어서 너무 고맙고, 같은 지역 형제님들의 친절함이  함께 하는 데 힘이 된다.   우연히 길 건너 요양병원에 뇌출혈로 입원해 계신 할머님을 휠체어로 모시고 온 손녀가 오후 예배에 참여 하려고 왔다가 동참했는데 핸 폰에서  관심거리를 하나 보면 그 다음에 딸려 나오는 동영상을 보게되고, 또 이어지는 다른 동영상도 보게 되고 한 두 시간은 훅- 가곤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다음 주에는 오후2시에 12층에서 오후예배가 있다고 얘기해 주었고, 신경이 예민하셔서 주방에서 나는 소리때문에 불편해 하셔서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갔다.   같은 맥락으로   다른 자매님이 TV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성령충만은  내 속의 성령님께서 불편해 하는 것을 느끼면 의지를 들여서 바로 중단하는 것이 성령 충만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나를 밀어 내는 것 같은 생활을 느끼고 "내가 떠밀려 가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말씀을 듣고 보는데 시간과  마음을 들여야 겠다.   더위에 쳐지고 다운될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원으로  좋아하는 프로의 TV를 보게되는데 계속 이어지는 시간낭비를 보낸후 사탄은 아주 작은 미끼로 유혹해서 성도를 낙심시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성령충만한 시간을 떼어놓아야만 하고, 성령님이 주시는 작은 싸인을 무시하면 안되겠다. 그런 인식이 되면 의지를 들여 딱 끊어야 겠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사는 패턴은 영원히 살것처럼 살게 되는 것을 보면서 주님앞에 갔을 때를 깊이 생각해보고 지금이 정신을 차려야 할 때구나!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것이 성령충만이라고 생각한다.   성화의 과정은  구원받을 때 자신의 의지로 반응하듯, 반드시 의지를 사용해야 함을 느낀다.   구원의 첫 걸음은 사람들의 친화력이 무척 중요한 것 같다.   6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주님 앞에 갈 때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 것에 마음이 갈 때 그 마음을 속히  접어버리고,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요한 계시록을 다시 들으며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다시금 인식하고 감사가 되었다.   삶의 우선 순위두고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면 성령충만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작은 일들이 축적이 되어 성화되어 가는 것인 아닐까?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갖게된 지금의 나이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라도 같이 함께 하고, 나누고, 만나는 축복을 누리면 좋겠다.   산책을 나갔다가 목사와 77세 할머니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할머니보고 신학해서 가정제단을 쌓으라고 권고하는 것을 들으며 속이 너무 답답해서 말해 주고 싶었다. 친구들과 장보러 가는 일이나 만나는 일을 자제하고, 마태복음을 다시 들으며 바른 교회를 찾아오게 되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성령 충만한 삶은 말씀을 들으며 생각을 주님께로 고정 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모가  권사로서 평소에 교회다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믿음이 좋았는데 요즘에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신다. 노인이 되니까 소망을 잊어버리고 친구들의 말을 듣게 된다고. 그래서 주님에 대해 설명하고 소망에 대해 상기시키니 "그래 , 그게 맞지-" 하시며 안심하신다.   말씀을 갖고 살아야 성령충만이 된다.   성령 충만은 순간순간의 선택이다. 의지를 발동시켜 벗어나도록 해야만 한다.   주어진 삶에 욕심 부리지 않고 찬송을 부르면 수월히 넘어가 감사가 되고 모든 일에  더 많이 감사하게 된다.   TV를 볼 때 양심이 손상되면 바로 성령님께 순종해 내 생각 내려놓고 주님께 향하도록 의지를 사용해야만 한다. 매순간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성령 충만하는 길이다.   세상에 살면서 여러가지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완전히 down이 되어버리곤 하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나?" 물어보게 된다.   아들과 성경공부를 하다가 안하니까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성령 충만함을 잃어가다가 때마침 기도모임에 남편의 순종함으로 참석하자 마음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성경공부가 성령충만함의 비결이 아닐까?   물건을 사와 계산을 맞춰보니 거스름 돈을 더 받아 왔다. 주인이 잘 못 계산 한 것이라 내 잘못은 아니었으나   버스를 타고 시간을 들여서 가게에 가서 돌려 줬는데 주인의 무반응에 실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주님 눈 앞에서 정직하게 한 것이니 감사가 되었다.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이러한 교제를 나누며  자매님들이 모두 성령 충만속에 거하려 하는 마음들을 서로 서로 느끼고 새로운 각오를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2017-09-03 23:08:30 | 이수영
어제 구원 세미나를 통해 새삼 남아있는 생애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될것인가? 무엇에 최선을 다해 야 주님 오실때 많은 상급을 받을것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항상 유익한 형제님 글 감사 드립니다. 샬롬
2017-08-21 10:08:30 | 강재구
오는 8월 20일 주일 오전에 구원 세미나를 실시한다는 계획은 한 주 전 교회소식란에 공지한 바 있다. 따라서 평소 오전에 진행하던 예배는 오후로 미루어질 만큼 본 구원 세미나의 특성과 필요성은 강조되었고, 우리는 다 함께 이 복음사역에 참여하는 성도로서 그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디시 한 번 살피고 다지면서 오직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축복이 임하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다.  일반적으로 대화란 언어 등의 도구를 통해 동시적 쌍방향 의사를 교류하지만, 강해란 주로 공급자가 일방향적 메시지 선포형식므로 일상적인 대화와는 다른 이해 소통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말씀을 듣는 자는 말씀 전달자의 메시지를 잘 경청해야함은 물론 바로 풀리지 않는 내용은 간직한 후 개별상담 등을 통해서라도 더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태도이다.  특히 하나님을 선포하는 복음전도란 듣는 이의 마음자세가 절실하지 않고서는 더욱 수용이 어렵기 때문데 최소한  다음 사항들은 미리 염두에 두고 자신의 자세를 살피고 정리한 후 구원 세미나에  참여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깃든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이로서 확고부동한 구원간증의 기쁨을 지니며 소망을 누리고 이를 전파하는가. 둘째, 가족 친척 친지를 구원 세미나에 인도하기 위한 안내자로서의 마음가짐은 절실하고 소망으로 벅차오르는가. 셋째, 평소에 믿지 않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며 복음전도의 길로 인도하려고 주님의 사랑을 공급하며 교제하는가.   사도행전 8장에는 전도자 "빌립"이 피전도자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전도원리와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1. 전도자는 주의 천사가 인도하는 방향을 따라 피전도자를 찾아서 먼 사막의 길을 떠난다. 2. 그곳에서 병거에 앉아 말씀의 깊이를 모른 채 성경을 읽고 있는 피전도자를 목격하게 된다. 3. 이 때 성령님은 두 사람을 합류시키고 첫 질문을 하게하며 대화교제의 은혜를 베푸신다. “네가 읽는 그것을 깨닫느냐?” 4. 피전도자는 겸손히 자기의 부족한 현실 여건과 연약한 믿음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들어내며 “누가 나를 지도해주지 않으면(니)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라고 반문한다.  이윽고 피전도자는 전도자를 정중히 모시고 간절히 가르침을 원하는 마음으로 같이 않기를 간청한다. 5. 그리고 피전도자는 전도자의 선포말슴에 집중하며 좀 전에 읽고(듣고) 있던 성경 내용이 바로 구원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진리임을 듣고 믿고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는 벅찬 기쁨을 난생 처음으로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아쉽지만 개역성경에는 앞에서 설명하는 결정적 복음구절이 없음 / 37절) 6. 두 사람은 곧 물속으로 내려가고 전도자는 피전도자에게 침례를 준다.   위 설명에서 복음을 듣는 이의 생각과 상태의 추이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암시한다.   1 영혼구원 즉 복음 사역은 인위적이 노력이 아닌 오직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만 비롯함을. 2.피전도자는 복음을 접할 때 진리를 갈급하는 마음이 매우 겸손, 진실, 절박함을. 3.구원 받은 자는 주님 은혜에 대한 살아 숨 쉬는 감사와 기쁨이 자연스럽게 고백하게 됨을 4. 하나님의 자녀라는 큰 영광에 참여하면 그 믿음을 경주하느라 참 소망에 이름을.   * 혹 구원 받은 날을 간직하고 사는 영혼은, 천국소망의 감사와 기쁨을 더 충만히 누릴 수 있음을.   골1:6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  끝
2017-08-18 05:51:49 | 최상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유한한 이 땅의 삶 가운데, 믿음의 본을 보이시고 자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신 어르신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와 어린 자녀들이 주님을 즐거이 섬길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신 한숙향 어르신을 우리의 본 고향에서 만날날을 기억하며... 남은 이땅에서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지체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살것을 다짐해 봅니다.
2017-08-14 00:04:54 | 오광일
천국에서 만날 것을 알면서도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음에 저희 아빠 돌아가실 때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살다가 문득문득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면서 그리워지지만 천국에 계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천국시민이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요.. 자매님 문득문득 생각이 많이 나시면서 그리운 시간들이 있을겁니다... 힘내시고 늘 주님안에서 기쁨으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2017-08-13 21:21:29 | 엄인호
모친님 생전에 지극정성으로 돌보시고 간호하셨던 남자매님! 때로는 친구처럼.한편으로는 많은 부분에서 같은 여자의 일생을 나누시며 늘 다정히 동행하셨던 모습이 생각 납니다. 어머니와의 삶. 또 모든것이 이제는 추억이 되고 지나간 과거의 한 페이지가 되가는 시점에서 천국에서 다시 만나 뵐 것을 바라보며 이별의 아픔을 감내 하시고 승화 시키시는 자매님의 글에 같은 소망의 마음입니다. 어르신의 소천은 우리 모두에게 죽음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자매님께 함께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슬픔 다시 없고 무거운 짐도벗고 질병과 아픔과 이별도 영 없는날 나를 위해 죽으신 주와 영영 살리라 얼마나 영화로운 날일까 (찬송가 511장)
2017-08-12 22:50:27 | 황선화
영정 속 한숙향 어르신의 밝은 모습은 아직 이 세상에 가까이 머물러 계신 듯 보였지만, 주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큰 기쁨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따뜻한 모습으로 문상객들을 맞아주시는 남윤수 자매님을 통해, 하늘에 더 큰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짧은 인생 여정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자매님께 주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평강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샬롬.
2017-08-12 20:41:06 | 김지훈
우리의 삶은 유한합니다. 우리의 좌표를 잘 설정하고 살면 좋겠습니다. 어르신의 소천이 여러 사람들에게 삶의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다시 만나 영원히 살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7-08-12 14:54:01 | 관리자
징치고 막을 내리니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인다는 말씀에 참 많이 공감이 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실감할 수 없는 그 새 예루살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조금 있으면 펼쳐질 우리 주님의 도시에서 영원히 사는 소망을 가지고 오직 믿음으로 어려움과 고난들을 이겨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것이 예수님안에 있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에겐 가장 큰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며, 조금 있으면 주님 앞에서 모두 다시 만날 그 날을 위하여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2017-08-12 13:21:31 | 이명석
어머님을 떠나 보내신 자매님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얼마전 신실하게 신앙하는 친구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너무나 슬퍼하고 있는 친구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보게 친구 자네 아들이 군입대 할때 서운해 하던 딱 그만큼만 서운하도록 하세...자네 아들이 조금 참고 지내다 보니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볼수있었듯이 우리 어머님도 잠시후면 다시 뵐수 있으니 말일세...자매님 힘내십시요 ^^♡
2017-08-12 11:59:42 | 오경철
남윤수 자매님이 이렇게 글 남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장차 그 곳에 갈 목적으로 살고 있으니 어르신이 부럽기도 합니다. 남아있는 우리는 빈자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으니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하지요. 천국에서는 반가운 잔치가 있었겠지요..
2017-08-12 10:11:31 | 이수영
어르신과 다정히 대화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고통의 세월을 다 감내하시고 이제 하나님 품으로 가셨으니 저희도 따라가든지 주님께서 오시든지 그때 다시 만나뵙고 기쁘게 얘기나누기를 소망해 봅니다. (제게도 화투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말이죠~) 남자매님을 비롯한 유가족분들에게 슬픔과 위로와 소망을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7-08-12 09:12:35 | 정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