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차이를 인정함과 동시에 상대의 의견을 참고하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연마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7-02-20 07:07:36 | 김상희
안녕하세요?
믿음의 본질을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7-02-18 08:17:24 | 관리자
때론. 이웃의 정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저도 아파트의 개인적 삶에 적응이 되어 이웃이 관심줄까봐, 마주쳐도 인사만 하고 얼른 문을 닫아버리네요
그래도 다행이예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있어서...
생각케하는 글 감사합니다
2017-02-17 07:31:58 | 박순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도 종종 들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속해있고 서있는 이자리가 참 귀중하다는 생각을 하고,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바른곳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맘껏 알아갈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기도하고 열심으로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2017-02-17 07:20:49 | 박순호
올 해는 교사로 섬기게 되어 오후 예배와 이런 특별한 모임을 함께 할 수 없음에
좀 아쉬웠는데 이리 나눴던 내용을 조금이나마 브리핑해 주시니 교제 모임의 그림이
그려 집니다~ 실감나게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해요,자매님~~
2017-02-15 15:02:45 | 이명숙
오전 말씀 "교회에 속한다는것"을 들은후 나눈 교제라 더 뜨겁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교회의 일원으로 있어야 할 자리에 늘 있으며 해야하는 일 같이 나누어 하면서
든든히 세워나가면 좋겠어요.
2017-02-13 18:35:05 | 김혜순
우리가 정많은 민족이라는건 인정합니다 ㅎㅎ
생활속에 일어나는 일로 설명하니 공감이 갑니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연마되어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는 자매님 마음에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고싶네요.
조카들 이름이 특이하고 이뻐요.
2017-02-13 18:30:04 | 김혜순
항상 재미있고 속 깊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02-13 14:20:04 | 박혜영
앞으로 일어나는 일에대해 어느때는 적당히 스릴이 넘치고
것또한 번지점프를 하듯 즐기며 (?) 살았던것 같은데
아직 젊음에도 불구하고 롤러코스터도 타고 싶지 않은 제가 되있네요.
혼자 살수는 없는것이고 서로 부벼야 불꽃이 일고 따뜻해지는것처럼
부족함을 채워주고 주님의지하며 다함께 나아가기를 소원해봅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자매님.^^
2017-02-13 13:33:45 | 이청원
미국에서 살다온 조카와의 설날에 있었던 해프닝입니다.
열매는 늦게 본 아이라 큰 누나와는 나이차가 많았어요.
큰 누나인 봄이와 작은 누나인 여름이도 6살 차이니까 열매는 8살이나 어리지요.
당연히 세뱃돈을 차등을 두어서 줬어요.
막내인 열매가 자기가 받았던 세뱃돈과 누나들과 차이가 나는 것을 보더니
“치사해”
하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일어나는 거에요.
순간 모두가 당황했고 아빠인 남동생이
“누나는 Big sister 잖아”
아빠와 엄마가 달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
미국식 사고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지금은 열매 덕분에? 모두 다 똑같이 통일(하향조정)해서 주게 되었죠^^
한국인은 집에 무슨 공사를 하거나 할 때 사람을 부르면 당연히 식사도 대접하고
커피도 타주고 마음에 들게 시킨 일을 잘하면 약정한 금액 외에도 더 얹어 주기도 하죠.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도 하고요^^
그런데 외국인들은 전혀 약정한 외에 것은 생각에 없지요.
당연히 약정된 돈을 지급하면 끝이지요.
돈을 주고 일을 시킨 것인데
“왜 그래야 하냐?”
고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지요.
물론 일 끝난 뒤에 “Thank you” 라고 말하지요.
도대체 한국 사람은 왜 약정한 돈 이외에 이것저것을 주고, 일을 시키면서 미안해?
하느냐고요.
우리의 정서를 이해를 못하니 어쩌면 당연하지요.
요즘은 많은 부분이 합리적인 서구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여서 약정한 것 외에는 군더더기가
없는 거래가 많아졌지요.
이사의 경우를 봐도 식사를 회사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여러 부분에서 합리적인 마인드가 정착이 되어 약정한 것 외에는 소비자부담이 없어져서
좋아요.
그러나 가정에 방문해서 일 할 때는 대부분 주부들은 음료라도 대접을 하는 편이지요.
아직 한국인의 정서에는 ‘정’이라는 것이 작용을 많이 하지요.
나이든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전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지만 그 때가 더 정이 많았고 살기 좋은 시절이었어”
“지금은 아파트에서 문 꼭 닫고 살아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예전에는
한 동네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누구인지도, 형편도 다 알고, 서로 십시일반 하는
따뜻한 사회였는데 요즘은 살기는 좀 나은데 따스한 정이 없다니까.....“
사회가 각박해진 것은 누구나가 다 느끼는 것 같아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를 걱정하고 정을 나누는 데
현대적인 아파트에서는 사람이 죽었어도 모른 채 지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일전에 동피랑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TV에서 보았는데 좁디좁은 산비탈에
지어진 작은 집들에서 살면서 정을 나누고 살았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누구든 군대 가면 군대 간다고 인사하러 다녔고, 십시일반으로 환영해 주고,
제대 하면 제대 했다고 인사오고.....
어려운 가운데 십시일반 해서 환영 해주고, 어려운 일 당하면 서로 위로하고, 같이 울어주고,
서로 서로 왕래하고, 정을 나누면서, 남을 배려하며, 진실로 걱정을 해주면서 살았어.
지금은 하나, 둘 형편이 나아져 여러 타지로 나가서 살고 연락이 안돼...
그 때가 그리워....“
국민소득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고 모든 일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은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끼지요.
모든 것이 국민성에 맞게 LTE 급으로 빨라졌구요.
그런데 모두 너도 나도 아날로그시대가 그립다고들 합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살아가기가 어려워 졌다고들 말하지요.
아이들 교육현장도 예전과는 판이하지요.
네 아이 내 아이 따지지 않고, 누구나 훈계도 하고, 칭찬도 하고, 나누어 먹이던 시대가
아니지요.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며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도 못하는 시대지요.
‘묻지마’ 살인은 물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지요.
운전도 참말 어려운 시대고요.
하루하루를 주님의 돌보심이 없으면 정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주님을 모르는 채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기이합니다.
사고방식이 다르니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전혀 다른 문화에 당황하고 어려움을 겪지요.
주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될 때 많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같은 나라라도 지방에 따라 다른 면도 많이 있기에, 각자가 형성된 사고에 대한 이해는
서로 서로 교제를 통해서 이해시키고 교류가 되는 것 같아요.
전혀 다른 문제로 대립이 생길 때는 열을 내고 대판 싸우거나, 아니면
한 발 물러서서 차근차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듣고, 말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겪지요.
후자가 좋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전혀 다른 주장을 할 때는 막상 이해가 안 되니
대립이 되는 것이지요.
사고방식이 다르니 행동도 다르게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요.
우리는 유기체인 교회이기에 지방색도 있을 수 있고, 어떤 교회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 많이
다르기도 하고, 성격도 다르고, 말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은사도 다 각기 다르니
이런 저런 일로 모이면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에요.
우리는 다이아몬드 원석들이니 주님께서 우리를 아름다운 모양으로 다듬어 가시지요.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만 연마가 된다고 해요.
우리가 마치 거대한 드럼세탁기에 들어 있는 빨래 같다고나 할까요?
세탁 도중에는 어지럽다고 내릴 수도 없고, 다른 빨래들과 세제로 인해, 물로 인해
서로가 고통을 당해도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만 멈추지요.
빨래가 끝나 깨끗해져야만 어지러움에서 해방이 되죠.
그 단계가 끝나면 착착 개여 서로에게 눌리고 숨이 막힐 때쯤
하나씩 빨래 줄에 널려서 햇빛과 바람에 말려져야죠.
그리곤 옷으로 돌아와 옷의 의무를 수행한 다음엔 또 세탁기 안에 들어가죠.
사람의 인생이 이런 것 같아요.
이 산 하나 넘으면 이젠 산이 없겠지 하지만 다른 산을 만나지요.
때로는 평지도 있고 내리막길, 오르막길, 돌아가는 길도 있고, 길이 없는 곳도
나와요.
망망대해도 만나고, 사막도 있지요.
함께 가는 길도 있지만, 철저하게 혼자 일 때도 있어요.
천로역정 같은-목적지는 다 같지요.
각자를 지으신 주님께서 각자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사람의 자유의지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어요.
혼자보다는 함께 가면 가는 길이 힘들어도 즐겁게 갈수 있지요.
서로가 차이들을 인정하면서 서로 연마되어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해요.
2017-02-13 12:19:49 | 이수영
아침 좋은설교말씀에 이어 생김은 제각기 다른모습이지만
성도님 한분한분 주님을 닮아간다는 느낌과 한마음으로 가고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무척 기뻣습니다.
앞으로 10년후, 많은 어려움 닥치겠지만 목사님 가정을 비롯
모든성도님들 영육 건강하시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2017-02-13 12:00:24 | 이청원
오늘 처음 방문하신 분이 끝까지 함께 해 주셨지요.
미국에 침례교회 목사인 외삼촌으로부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우리교회를 소개 받아서 한 번 방문하셨다고 하네요.
가운데 동생 자매의 인도로 세 자매가 우리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동생의 소개로 나오긴 하는데 방학?도 했다가 다시 나왔다 하면서 적응하고 있다는 믿음의 초보단계라고 소개해 주신 분도 계시네요.
교회가 자꾸 이상한 것을 강요하고 열심에 특심 요구로 교회를 다니면서 평안이 없던 중
알고 지내던 교회 가정이 우리교회에 나간다고 하니 ‘그분들이 그 교회를 나간다면, 그 교회가 이상한 교회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서 우리교회를 방문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확실히 주님 앞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네요.
앞으로 10년 후에는 앞에서 증거한 자매님의 말에서 처럼
‘그분이 나가는 교회는 바른 교회 일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자매님,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열심히 전파했고, 남편은 신천지에서 교육을 시키는 사람이고,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적극적으로 설득했지만, 목사님의 설교와 시디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었으나 주변에 강적들이 많이 있어서 숙제가 많다고 하시는 자매님,
교회를 모태신앙으로 다녔지만 설렁설렁 다니다가 점점 교회가 은사주의를 강요하고 이상해지지는 데 마음이 어려워서 이 교회 저 교회 다녀봤는데 마음속의 기갈을 채워주지 못하던 터에
우연치 않게 정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 들으면서
확신을 갖게 되어 교회를 오게 되었고 참으로 목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너무 감사하며
교회를 다닌다는 자매님,
앞으로 10년 후에는 누구도 탈락없이 모두 함께 성장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같이 늙어 가면 좋
겠다는 자매님,
정말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와 교회의 종으로서 교회를 다녔지
참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가 유튜브를 통해 접한 설교를 통해 진리를 알게 되어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진실을 깨닫고 있으며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는 자매님,
교회에서 강요된 일들과 은사주의가 심해지며 시스템에서의 압박들로 마음이 많이 어려워져서
여기저기 다른 교회를 다녀 봐도 기쁨이 없어 그냥 집에서 하나님을 섬겨야겠다고
일 년을 쉬고 있을 때 목사님의 설교와 킹제임스 흠정역 영한 성경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개역과 함께 비교하면서 보다가 없음이 없는 성경임을 확인하고는 개역을 안 보게 되었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보니 다른 설교는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 우리 교회를 찾아오게 되었다는 자매님,
우리교회 나오면서 신천지가 왜 이단인지를 확실히 분별하게 되었고,
남편이 따라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더니 좋은 교회를 잘 선택했다고 말했다네요.
항암하면서 약만 쓰지 말고 보조제도 쓰면 좋겠다는 조언도 해 주셨고,
바른 찬양을 드리고 싶어 마음이 어려울 때 외국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우리교회를 소개 받고
비록 혼자 나오지만,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는 자매님,
남편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우리교회를 오게 되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고 기쁨으로 섬기고 있다는 자매님,
앞으로 10년 후에는 두 딸들이 같은 믿음 안에서 결혼해서 손자손녀와 함께 교회 나오는 것이 꿈이라는 자매님,
목사님도 사람이라 완벽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자의 모습을 보고 배우니
앞으로의 10년 후가 더 기대가 된다는 자매님,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하기에 핍박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각 개인이 견고히 서는 것이 중요하고, 삼겹줄은 끊기가 어려운 것처럼 튼튼한 교우관계를 위해서는 먼저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고,
고신측 교회를 다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교회는 갈 곳이 없으니 견고히 붙어 있고 언제든 상담이 필요하면 찾아달라고 말한 자매님.
다른 자매님들의 간증을 일일이 다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오늘도 우리는 다른 성도의 간증을 통해 바른 말씀에 근거한, 바른 교리로, 바른 교회를
섬기고 있음을 감사하는 시간이었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사님을 만난 것도 너무나 감사하고, 킹제임스 흠정역을 알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요.
불러 주신 각자 개인마다 특성이 있고, 성향도 다르지만, 한 교회, 한 몸으로 부르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을 느끼며 공감하는 중 시간이 후-딱 가버리네요.
그리고
오늘 오전 설교 때 전해진 “교회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의 물음과
<빌립보서2:2 너희는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한 마음과 한 생각이 되어 내 기쁨을 성취하라.> 는 말씀과
“교회에 속한다는 것은 교회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 지금까지 심연을 울리네요....
2017-02-12 22:38:05 | 이수영
우리는 자기 입장에서 이해하고 이야기를 하게되니 문제가 생기는것 같아요 .
한번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대화를 한다면 더 아름다운 관계가 대리라 생각합니다.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볼수있는 글 잘읽었습니다 .
2017-02-09 12:11:30 | 윤정용
우리집과 같네...라며 처음에든 위안이,
반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남만 탓하는 저는 제자신을 너무도 몰랐습니다.
재미도 있으며. 깨닫게 하는 글~감사합니다.
2017-02-08 13:29:52 | 박순호
사람들이 어떤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는 것은
객관적 생각이 좀 더 보편타당하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국어사전에도 ‘객관화’를 보편타당성을 가진
지식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뜻풀이 해 놓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 그것도 많은 사람의 객관적 생각이라고
그것이 실제로 꼭 보편타당한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객관화와 참된 보편타당은
결국 진리이며 이는 곧 하나님의 시선에서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분별하는 것이겠지요.
때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객관적 생각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어떤 의견이 교회에서 설득력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며
하나님의 방법이 아닐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그 객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극히 인본주의적 판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중의 잘못은 리더의 바른 판단으로만 교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떤 리더를 따라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가정에서 가장의 자리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현상도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오늘은 다소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언제나 묵상의 물레질을 가능하게 해 주시는
자매님의 귀한 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7-02-08 12:23:02 | 김대용
복음이 주는 참자유를 모르는 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종교의 하나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결과적으로 책임은 각자 본인에게 있겠지만 죄를 말하지 않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부패한 기독교의 실상을 보는 듯 합니다.
교회는 많지만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진리를 찾지 않는 악순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생의 합작품인 종교인을 양산해내는 것이 한국기독교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제 주변도 마찬가지로 바른 것을 알려줘도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뿐입니다.
2017-02-08 09:17:08 | 김상희
요즘은 많은 가정의 부부들이 맞벌이를 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책임을 우선적으로 지고 있는 아빠들이 가장의 권위를 세워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일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 등 가정의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여
관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네요.
그만큼 가장의 역할이 쉽지는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겠지요.
역할 분담에 있어서 물론 예외인 경우의 가정들도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가족의 소통이
원만하도록 노력하여 가정의 질서를 지켜 나가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7-02-08 08:59:02 | 김상희
큰애가 믿기전 엄마를 가끔 이야기 해주면 실감합니다. 성령님 의지하며 애써도 좋은 가정 만들기가 이렇게 힘든데..저 뺀 모든 사람을 안쓰럽게 여기며 바라보겠습니다. 성령님 저를 불쌍히 보시어 오늘도 많이많이 사랑하게 해 주세요~
2017-02-08 05:53:19 | 목영주
바른 교회에서 말씀 들으며 생각이 바르게 정리되니 서로 존중하고
아이들과의 대화도 잘 되어 감사가 됩니다.
앞으로의 모든 삶의 과정에서도 쭉 그리되면 좋겠습니다.
2017-02-07 22:34:53 | 김혜순
자기 자신은 자신을 볼 줄 모른다.
정말 모른다.
객관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빠와 엄마와 딸이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빠와 딸은 대립각을 세우고 큰소리로 싸우듯이 말을 하고
엄마는 소심스레 아이 편을 들어주고 있다.
내용인즉
대학 4학년인 딸아이가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외국에 나간다고 한 결정에 대해
아빠와 상의도 없이 결정했다고 아빠가 딸을 야단을 치고 있고,
엄마는 조심스레 변명을 한다.
“나도 이 사실을 안지 얼마 안 되었어.
당신도 바쁘고 애도 바빠서 서로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야.“
아빠는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를 다그친다.
“너는 니가 다 결정해 놓고, 아빠와 상의도 없이 엄마만 OK하면 다 되는 거냐?”
“아빠는 돈 벌어오는 기계냐?”
아빠의 목소리가 커지자 딸도 그만큼 커진 목소리로
“아빠는 내가 뭘하면 언제나 부정적으로 지적하고 못하게 하니 아빠랑은 말하기가
정말 싫어요.“
어느 집이나 아이들 교육과 양육에 엄마가 중심이 되고 아빠들 대부분이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빠의 입장은 아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걱정스런 염려가 부정적인 지적질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거하면 달라지는 게 뭔데?”
“그래서 어떤 이득이 있는데?”
“도중에 그만 두면 어쩔래?”
“또 그건 왜 하려고?”
항상 지적질을 하고 있는 것을 아빠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아이가 제 맘대로 한다고
큰소리로 나무라고, 아이는 아이대로 불만이 가득하다.
“아빠는 항상 이런 식이야”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할 때 응원을 해줘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정말 아빠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다....”
제 삼자가 봐도 아빠의 문제가 심각한데 아이만 나쁘다고 한다.
서로가 언성을 높여 서로를 탓하고 있으니 아내가 참다가 솔직한 마음을 내비친다.
“당신은 자기가 애한테 어떻게 했는지는 생각도 안 해.
당신이 애를 그렇게 만든 거잖아.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애만 나쁘다고 하지.....“
아빠가 식사를 하다가 숟가락을 놓고 나가버린다.
아빠들은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에 힘들어 아이들 양육은 아내에게 전담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보니 자녀들과 소통이 서먹서먹한 경우가 많이 있다.
한 TV 프로에서 대학생인 딸들을 시켜서 아빠에게 전화해서
“아빠 오늘 저 늦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
라고 말하게 한 실험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왜 그걸 나한테 말해? 엄마한테 해”
“엄마한테 말해”
대부분의 아빠들의 놀라운 반응이었다!
아내에게 모든 양육권과 교육, 집안 대소사를 전담시키고 오직 회사가 우선인 생활을
하다 보니 가장은 가장인데 가장의 위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유교의 영향도 있지만 모든 일의 최종 결정권은 아버지에게 있었고,
아이들을 훈육할 때도 ‘아빠한테 말한다’ 면 아이들이 말을 들었다.
그만큼 가장의 위치는 가장의 능력과 무관하게 가정의 최종 결정권이 있었다.
요즘은 남편이 오직 경제력 이외에는 모든 것을 아내에게 전담시켜서
아내가 가정의 최고 사령탑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어떤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고린도 전서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2017-02-07 17:23:14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