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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세한 인사말씀으로 가정의 소망과 믿음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좋은 열매로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7-11-27 14:35:28 | 장용철
복음의 (본질상) 공격성이 마치 나의 본성(죄성)인 것처럼 드러나서는 안될 것 같아요. 너무나 지당하시네요...저의 쓴뿌리입니다...뽑아내도 뽑아내도..어쩜 그래 그대로인지...한심하기 그지 없는
2017-11-27 14:18:22 | 박현숙
활발한 온라인 교제가 모처럼 활기를 띠네요. 흩어진 지체들이 무시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격려하는 모습이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영적인 지구력...혼자서는 한계가 분명히 있기에 버팀목의.지체들이 주변에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미약함을 인정해야 하고.... 말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라 진지한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네요. 현숙 자매님 반갑습니다.!
2017-11-27 13:10:07 | 오혜미
참 반듯한 인상을 받으며 오래된 저로서 다시금 옷깃을 여미며 교회에 임하는 자세를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이렇게 글을 올려주시니 교회안에 풍부한 교제와 생기가 살아나도록 힘을 주셨네요. 이렇게 먼저 온 사람과 나중온 사람의 차이가 없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11-27 13:01:35 | 오혜미
"복음은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다." 100% 동의합니다! 세상의 죄를 이길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복음의 (본질상) 공격성이 마치 나의 본성(죄성)인 것처럼 드러나서는 안될 것 같아요. 오히려 복음의 그 공격성으로 나의 본성이 깨어지고 부서지게 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지요. 이미 복음에 공격당한 나의 본성이 자라지 않도록 누르고 버티는 지구력이 주님 오실 그날까지 매일매일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11-27 11:48:34 | 정진철
현재 많은 교회들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방법들을 찾고 있다. 하지만 복음은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죄인들에게 자신의 죄에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무 공감이 가요...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소동이 일었났음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최근에 온라인으로 젊은 사역자분하고 이야기 나누다 솔직히 좀 감정적이 되었었죠... 근본주의 신앙을 공격하면서 세대주의를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말이 안된다고 조롱하더군여 분란만 일으키고 접근성도 떨어진다고...아브라함 어쩌구 하면서 교회가 이스라엘이라 하고, 저 땅이 이스라엘이라고 지금 돌아왔지 않느냐 하니 시오니즘 뭐라하면서 나쁜 집단의 미혹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구여...성경역사 6천년도 6일창조도 과학적으로 너무 위배되고 말이 안된다고 하길래 그럼 거기에 나오는 아담의 후손들 나이가 말이되냐...창조 1일이 문자 그대로가 아니면...그랬더니 구원에는 관계없는데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분란만 만든다고 하더군여...저는 교회 밖에서 하나님 존재를 깨닫고 처음부터 문자대로 성경 공부를 해온지라 그분들 주장이 도무지 이해도 안되고 근본주의 신앙에 대해 방어할 수 있도록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젊은 사역자 분께서 천주교에 대해서도 천주교 성도들과 이야기 해보면 개신교 비판 내용하고는 많이 다르다...그쪽 교리로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왜 일어난건지...근본주의 신앙에 감사하지만 솔직히 타 성도들과 연합과 교류가 힘들어... 좀 힘든부분이 있지만 견뎌내야 겠죠...
2017-11-27 11:41:18 | 박현숙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번주(17.11.26)에 처음 예배드린 안영호형제입니다. 저희 가정은 저와 아내(김태연), 아들(안대일/초1)이며,영종도 하늘도시 거주하고 있습니다. 한달 격주로 서울 반포동 할머님댁에서 아버지, 할머니, 저희가정이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일산에 거주할때 송도로 출퇴근하면서 고속도로 차안에서 목사님의 설교와 성도님들의 찬양을 듣고 참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올4월 영종도 이사오면서 격주 할머님댁 가정예배외에 한달에 1번이라도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기회가 있을때마다 아내와 대화하고 주님께 아내의 마음이 움직이길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앞으로 저의 가정의 신앙목표는 *한달에 1번 예배참석이 정착되고, 더 나아가 격주 참석으로 정착하고 *오전예배후에 바로 가는것이 아니라 성도님들과 식사교제 나누고 *오후예배까지 참석하는것이 저의 1차목표이며 *그 이후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작은봉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랑침례교회 예배당 뒤에 있는 성경읽기표를 가지고 와서 오전 설교말씀인 시편 126편을 읽고 성경읽기표에 체크했는데 아들이 그걸 보고 본인도 성경을 읽고, 자기 성경읽기표에 체크하고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행위가 없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아들은 나의 거울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방문했던 저희가정을 위해 일부러 식사 준비해 주셨는데, 참석하지 못하고 가서, 준비해주신 모든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교회소식게시판 [공지]교회회원가입에서 최소한 누가 누군지 아는 상태에서 회원이 되는것이 좋고 최소3개월이상 지나서 교회가 어떤곳이 체험한뒤 가입원서를 써주면 좋겠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12번이상 저희 가정이 한마음으로 교회예배에 참석후 아내와 아들에게 교회회원가입을 권유할 계획입니다   홈페이지 글을 쓰고 있는데방금 목사님께서 교회 방문해주셔서 감사 글과 예수님안에서 큰 평강을 누리길 원한다는 문자가 왔네요.문자 감사드립니다. 이번주는 에베소서-데살로니가후서까지 읽고 국가안위와 교회사역을 위해 기도하자는 문자를 읽으니 *성경읽기표의 방향이 정해진것 같습니다.   샬롬
2017-11-27 10:34:06 | 안영호
문득 자려고 옆에 누운 아이가 묻는다. "엄마, 지구력이 뭐예요?" 흔한 단어인데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고 머뭇거리자 아이가 재치있게 다시 묻는다. "아, 지구를 막 미는 힘이에요?" 순간 이런게 창의력일까, 반신하며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아이가 잠들고나서 잠시 책상에 앉아 있다가 그 생각이 떠올라 '지구력'이라는 단어를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다. 지구력(持久力)이란 어떠한 일을 오랫동안 버티며 견디는 힘을 의미한다. 지구의 힘이 아니다 종종 과소평가되는 '인간'의 신체 능력 중 타 동물 대비 가장 우수한 항목이 지구력이다. 운동역학적 면에서 2족 보행이 4족 보행보다 효율적이며, 연비가 좋다. 훈련된 인간은 몇 시간 이상 지속적인 달리기와 수영이 가능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 지속 보행이 가능하다. 특히 두 손이 비어있기 때문에 이동 중에도 음식물 섭취(=에너지 보충) 등 다른 동작이 가능하다. 수렵채집문명의 사냥꾼들이 자기보다 강한 동물을 사냥하는 방법이 바로 지구력을 활용해서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추격하는 방식. 잘 단련된 성인 남성이라는 가정 하에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추격할 수 있다! <위키백과> 인간이 동물과 다른 차별된 능력 중  하나 혹은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추격할 수 있다는 문구가 바로 '지구력'이라는 말에 순간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자기능력 이상의 버거운 거대한 청새치를 얻기까지의 지구력이란 가히 경이적이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며칠 동안 청새치의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흉상어떼를 물리치기까지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도 노인은 고집스럽고 미련하리만큼 대단한 인내심으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살은 다 흉상어들에게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끌고서 뭍으로 나왔을 때의 노인의 포부는 더욱 놀랍기만 하다. 다시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자는 것이다. 지구력이란... 고도의 인내와 수련이 없이는 한순간의 의지만으로 단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그런데 <노인과 바다>에서의  주인공의 모습을 가만 생각해 볼 때 지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희망에 있었던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믿음에도 지구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수많은 환경의 변화 속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지구력이다. 굳이 따져본다면 믿음에서의 지구력은 자유의지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얼만큼 삶속에서 제대로 올바르게 지구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을까? 주님께서 복음의 무한 선물을  누구에게나 주신 것 만큼 자유의지 또한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부여하신 놀라운 특권임에도 나는 얼만큼의 지구력을 발휘하며 이것을 올바르게 잘 활용하고 있을까? 가벼운 풍파에도 쉽게 요동하거나 무뎌진 양심의 날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안주하며 이 소중한 자유의지를 아예 지구력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 천국은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나 한편으로는 성도 앞에 닥칠 더욱 큰 시험 즉 예수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선다는 사실을 나는 종종 망각 내지는 편리함 앞에서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존 맥아더 목사님의 책 <순전함>의 서론에 보면 이런 인상적인 구절이 나온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 능숙하게 세상과 타협해서 타협하지 않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방법들을 찾고 있다. 하지만 복음은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죄인들에게 자신의 죄에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은 내가 구원에 이르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더불어 성경 전체에 나타난 여러 인물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구주로 시인하는 전과정이 이 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뼈를 깎는  자기 부인에서 출발하여  예수그리도의 본성에 참여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발휘하는 순전한 지구력으로 견디어야 함을 새삼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2017-11-27 10:15:58 | 김경민
맞아요. 우리는 사람이 몰라주어도 주님이 아시고, 세상이 다 yes라해도 no 라고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고, 지침서 이기 때문이지요. 오직 말씀만이 우리의 위로이고 소망입니다.
2017-11-20 12:03:31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