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영적 전쟁을 해야 하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좁은 길로 가기가 더욱 험난하겠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임에 틀림없기에
용기내서 걸어가야겠지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2018-04-23 11:23:27 | 심경아
형제님 귀한 간증 감사 드립니다~
저희지역에서 출석하시는줄 압니다
앞으로 지역식구들과 함께 교제하며
함께 음식도 나누는 모임을 통해서
어려운 신앙여정을 통해 오신 형제님께서 우리 사랑침례교회에 조속히 정착 하시길
간구 합니다~그리고 어제 침례를 받으신 것도 축하 드립니다 샬롬~!!
2018-04-23 11:22:13 | 강재구
얼마나 많이..힘들었을까..그 생각이 제일 많이 들어요..그래도 우리가 자랑할 건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교회)사랑침례교회가 있다는 거..오늘도 하나님께 덜 부끄럽기위해..이 먼지는 죽고 예수님, 성령님 의지하며 하루 보내겠습니다아~
2018-04-23 10:06:42 | 목영주
형제님의 귀한 간증 정말 감사합니다.
진리의 길은 좁고 험준하지만
참 진리이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어서 위로가 됩니다.
2018-04-23 09:32:07 | 김영식
세계 곳곳에서, 각처에서, 함께 동참하는 성도들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간구합니다.
2018-04-23 09:20:09 | 이수영
형제님, 반갑습니다.
시대의 조류는 홍수처럼 흐르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참으로 힘이 들지요.
홍수의 물을 먹을 수 없기에 기갈은 심해지고요.
감사하게도 형제님은 많은 고난이 단단한 기초가 된 것 같아요.
좁은 길이기에 형제 자매들이 더 귀할 수 밖에 없구요.
삼겹줄처럼 서로 손잡아 주면서 주님을 향해 한 걸음 씩 나아가자구요.
표현해 주는 용기도 감사합니다.
주님과 함께 가요^^
2018-04-23 09:11:22 | 이수영
좋은 책을 읽고 감동받은 부분을 나눠 주는 성도가 많아지면 좋겠네요-
자매님 감사해요.
2018-04-23 08:56:10 | 이수영
세상은 악해서 점점 악을 향해 치달을수밖에 없습니다.그속에서 진리를 지키려는 길은 좁으며,시대를 역행하며 살아가는것이 그래도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살아가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형제님의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볼수 있음에 도전받게 됩니다. 형제님같이 고민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청년들이 교회안에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2018-04-23 06:38:13 | 김경애
뵌적은 없지만 형제님의 진솔하고 의미있는 간증의 말씀이 제 머리와 마음을 콕콕 찌르네요.
바른 말씀 선포를 듣고 진리를 깨달아 바른 길로 들어서신 것은 긍휼하신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이 아닐수 없습니다.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녀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는 용기와 결단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도전을 받게 되네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
2018-04-23 01:28:06 | 김상희
저는 10대~30대까지는 스스로 난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의인의 잣대를 가지고 속으로 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비판하며 살았습니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린나이에 혼자서 하나님을 찾아서 알게 되었고 항상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어린 나에게 그것은 나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게 만든 기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다지 좋지 못했던 가정 환경속에서 자라면서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의롭게 살아야겠다는 성품과 정의감이 항상 내재한 채 자란 스스로가 대견했고 그런 스스로를 의롭다고 칭했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욕망이라는 것을 품게 되고 성공과 부를 갈급하게 되면서 세상의 온갖 유혹에 흔들리며 전혀 의롭지 못한 죄인이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내가 갈급하고 기도할수록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성공과 부를 주시기 보다는 더 많은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는 제 인생이 욥과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30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시련의 시간은 십여 년이나 지속되었고 그러면서 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우선 가장 소중한 시간을 잃었고 경제적인 것들을 잃었고 건강까지도 잃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긴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았던 인생에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기에 하나님은 저에게 반드시 큰 축복을 주실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때 혼자서 교회를 다녔지만 중2 때부터 아버지 집안 식구들이 모두 성당을 다니게 되고 급기야 아버지와 어머님이 성당을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면서 그 이후로는 부모님은 성당도 잘 안 나가시게 되었지만 저는 20대 후반까지 열심히 성당을 출석하는 신실한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고 기도할 때는 항상 예수님과 하나님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호주 시드니에 가는 기회가 생기면서 자발적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거기서 다시 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주에 머무는 동안 신앙은 자라게 되었지만 내가 바라던 성공보다는 시련이 찾아오게 되고 결국 다시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상황들은 나를 크리스찬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신앙이 자리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속에서 어우려져 살며 삶의 전쟁터에서 처절하게 싸우게 만들었고 점점 더 오기와 악이 생겨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욕망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기도를 결코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전 너무도 오랫동안 하나님께 저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서 제 친구들과 형제 친척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시련을 통해서 많은 나의 욕망을 내려 놓게 만드셨습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면서 스스로 너무도 나약한 인간인 나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부터 제 기도는 축복의 통로가 아닌 선한 길을 가게 해 달라는 기도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죄인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 저는 그 때부터 진정한 크리스챤으로써 구원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더 정확하고 완전한 말씀에 대해 갈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 다른 말씀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감성적인 사람이기 보다는 이성적인 사람에 가까웠기에 경배와 찬양은 몇 번 들으면 지루해졌고 성령 임재와 하나님의 음성 듣기와 같은 것보다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의 역사와 원리가 이해되어야 믿음이 자라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교들을 찾아보게 되면서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접하게 되었고 그동안 몰랐던 요한계시록에 대해 알게 되면서 계속해서 더 많은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고 완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혹시 잘 못된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지며 신중하게 알아보기 위해 4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사랑침례교회를 관찰해 왔습니다. 제가 알고 싶었던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출석했던 어떤 교회에서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빠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은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 것처럼 오랜 시간동안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진심으로 내 자신의 죄인 됨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려면 우리는 어쩌면 많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며 세상 적으로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죄를 지어야 합니다. 저는 그 동안 인생을 살면서 너무도 많은 죄를 지었으며 그 죄들은 이 세상의 법으로는 저를 죄인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분명 저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제 죄가 모두 드러나는 심판의 날에 그 두려움 앞에 도저히 설 자신이 없을 정도로 전 큰 죄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저를 용서해 주셨고 제가 선한 길로 인도 받기를 원한다고 하는 기도를 하는 동안에 저에게 진리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전 죄인이기에 비로소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너무도 놀랍고 경이로운 원리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이후에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까지의 삶은 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바로 구원 받은 자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한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직 죄로 가득한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포기하는 삶은 점점 믿지 않는 친구들과의 교제를 멀어지게 하고 세상적인 교제의 자리를 피하게 만들며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들을 모두 내려놓게 만듭니다. 또한 하나님의 오른쪽의 가치에 반하는 것들에 저항하게 만들며 그 반대편에 있으며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왼쪽에 있는 친구들과 사람들에게 험한 소리를 듣게 만듭니다. 육신의 한계에 갇혀 있는 동안 구원 받은 후의 우리의 삶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아주 평탄한 삶으로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좁은 길로 가게 하시며 빛으로 어둠과 밝음을 명확하게 구분하듯이 세상과 어우러져서 적당히 사는 회색지대에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고민스럽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과 반하여 돌아가는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서 올바른 진리를 외치기 위해서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표현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많은 용기를 내야하고 저항해야 하며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되고 사랑 침례교회를 선택하게 되면서 제가 이제 좁은 길로 가는 문에 들어서게 됨을 압니다. 그 길은 어쩌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죽은 후 그것으로 끝이라면 결코 가지 말아야 되는 길이며 너무도 미련한 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의 단 1%의 노력도 없이 오직 100% 하나님의 은혜로 이 죄인에게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을 자로써 지금 내가 이 길에 들어서지 않는 다면 그리고, 잘 못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융화되어 세상 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면 겨우 구원만 받은 제가 죽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설 그날에 얼마나 두려움에 떨어야만 할까요? 바울, 베드로, 루터 등 수많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세상적인 성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비참한 세상을 살다가 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의롭다 칭찬받고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며 분명 그들은 지금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이 세상에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는 그 날에 그분들은 하나님께 보상 받은 데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진리를 알지 못했을 때의 저와 이제 알게 된 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양심이 거부하며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삶들이 아직 저에게는 많은 불편함과 근심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방심과 안일함은 또다시 죄를 짓게 만들며 비록 구원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사방을 항상 죄들이 둘러 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항해야 하며 용기를 내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더욱 그런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때인거 같습니다.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 것을 거역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쩌면 더 좁은 길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 아이들이 구원 받는 진리의 말씀들은 들을 기회는 더욱 닫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축복이 아니라 진리를 성공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본 받을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행위가 상관없이 은혜로 너를 구원해 주었으니 너는 기꺼이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너무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오늘도 죄에서 완전히 승리하지 못했고 내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자 기꺼이 좁은 길에 들어서는 용기를 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완벽하게 보존된 진리의 말씀을 알게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구원받은 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옳다고 하시는 것에 용기 내어 기꺼이 함께 설 것이며 옳지 못한 것에 소리 높여 저항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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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23:39:10 | 이준휘
우리는 늘 영적전쟁속에 살고 있지요.사단은 끊임없이 넘어뜨리려 불화살로 공격하지만 우리가 영적 깨어있음으로 즉시 꺼버려야하는 결단함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는군요.자매님의 쉼없는 독서와 공부하시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2018-04-22 22:35:36 | 김경애
자매님의 나라 사랑하시는 마음이 같은 마음으로 전해져 옵니다. 우리가 할수있는것이 그저 이 상황을 아뢰는 일밖에는 없음을...
2018-04-22 22:22:01 | 김경애
자매님~
두주간 얼굴도 못뵜네요.
오늘 독후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저자가 강조한다는 교회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영'으로 역사하는 사탄의
전략으로 관계를 파괴시킨다는 언급에 공감하며
감정적인 신앙으로 미성숙했던 저의 교회생활도
떠올려지네요.
물론 지금도 완전히 성숙해진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은 아니지만요.(부끄)
마귀는 호시탐탐 우리를 넘어뜨리려 애를 쓰지만
그래요 쉬지말고 기도하며 말씀인 무기로 대적해 나가며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다시한번 다짐해 봅니다 샬롬!
2018-04-22 20:36:58 | 이진
동감입니다.
2018-04-22 20:01:02 | 이남규
요즘 사무엘기하의 압살롬 반역 사건을 읽으며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위기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성경의 모든 기록이 우리의 배움을 위해 기록되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위로를 주어 소망을 주신다는 귀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어쩌면 외견상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아름다운 누이 다말이 그의 이복형 암논에게 부당하게 강간을 당한 사건이 발단이 된 것이다. 마치 세월호 사건이라는 지극히 개인 가정사적인 사실이 체제 전복적 정치사로 변환된 것처럼. 압살롬은 암논에게뿐 아니라 아버지 다윗에게도 상당한 원망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암논의 거짓 연기에 속아 자기 누이 다말을 암논의 시중을 들도록 보낸 것이 다윗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압살롬이 야망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가정사적 원망을 빌미로 그의 야망의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압살롬은 2년 동안이나 일절 이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왕권 찬탈의 주도면밀한 계획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이 사이에 이 압살롬 가족의 비극을 알고 있었던 일반 대중들은 압살롬이 당한 불의에 심정적으로 동정하고 그가 2년 후에 암논을 술책을 써서 살해하였어도 대중은 아마도 마땅한 일로 여기고 오히려 박수를 쳤을 것이다. 만일 압살롬이 사건 발생 직후 암논을 죽였다면 여론이 그토록 압살롬을 동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압살롬이 얼마나 원통하겠어. 아버지 다윗은 뭐하는 거야. 아니 암논이 아버지 다윗의 비호를 받으니까 압살롬이 아무말도 못하고 당하는 게 아니야? 압살롬이 불쌍해" 등등. 여론이 그렇게 압살롬에게 흘러가도록 스스로 참았을 것이다. 이후의 압살롬이 취한 수년에 걸친 일련의 사건들은 그가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반역을 준비하며 민심을 이용했는지 잘 드러내준다. 어쩌면 현대의 이미지 정치를 십분 활용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암논을 죽인 직후 자기 외가인 그술 왕 달매에게로 도주하여 3년 간 망명생활을 한다. 이 때 압살롬은 다윗 왕국의 실세인 요압과 모종의 연락을 취하고 있지 않았나 싶은 정황이 드러나 있다. 요압을 통해 자기가 예루살렘에 돌아갈 길을 마련하고 자기에게 향한 아버지 다윗의 사랑을 철저히 이용한다. 다윗으로부터 법적으로 용서받은 압살롬은 그 직후부터 본격적인 반역의 수순을 밟게 된다. 우선 그는 반역에 필요한 병력을 준비하면서 치밀하게 민심을 훔치는 작업을 개시하는데, 오늘날의 이미지 정치를 보는 듯하다.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여기는 백성이 다윗에게 가려 하면 압살롬은 우선 그 사람의 입장에 무조건 동조해 주면서 마치 자기만이 해결사인 양 "나라면 네 문제를 해결해 줄 텐데. 다윗 체제는 안 돼. 틀려먹었어!" 하면서 체제비판에 열 올리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스킨십 하고. 과연 대중의 감성을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외모는 완벽에 가까와서 대중들의 호감을 한몸에 모으고 있던 인물이 아닌가! 반역사건의 정점의 순간은 다윗을 속이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주께 서원한 것이 있어 주께 서원을 갚으려 헤브론에 갑니다." 하면서 정권 전복의 치밀한 계략을 진행해 나가 순식간에 세를 불리게 된다. 여기에 편승한 인물들! 이 반역의 도모에 아히도벨 같은, 찬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돕기까지 하는 인물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백성들은 압살롬이 미리 풀어놓은 스파이들이 퍼뜨리는 언론조작 선동에 휘둘린 채 열렬히 따라갔고, 더구나 한심하게도 압살롬의 초청을 받은 많은 지도층들이 "단순히 가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압살롬과 운명을 함께했다는 것이다. 이러니 하루 아침에 다윗의 나라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살펴 보니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현 상황의 그림자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여기서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끝났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하지만 후반부의 반전은 감사하게도 야구의 9회 말 2 아웃 상황에서의 역전극보다 더 큰 희열을 주는 주님의 역사가 있어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다윗은 그에게 있어 느닷없는 아들의 반역 사태를 맞이하여 황급히 수도를 버리고 울며 울며 맨발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이 장면에 이르면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염려하며 슬퍼하는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사라지려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가 가졌던 영적 자세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사실을 단지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면 진실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이 모든 사태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님을 잘 인식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를 도와 따라나서려는 제사장 사독을 만류하면서 다윗은 "주의 눈에 호의를 입으면" 자기가 예루살렘에 돌아올 것이고 "주께서 너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하면" 주의 뜻대로 자기에게 행하시라고 고백한다. 또 그는 눈물의 피난길에서 사울을 패망케 한 죄값을 받는다고 돌멩이를 던지며 끈질기에 따라붙어 그를 저주하고 비난하는 시므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그를 죽이려는 신하를 만류하며 "주께서 그를 명하셨으니 그를 내버려두고 그가 저주하게 하라. 혹시 주께서 내 고통을 보시리니 이 날 그의 저주로 인해 내게 선으로 갚아주시리라." 고백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 모든 사태의 원인에 자기의 죄가 있음을 고백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겸손히 인정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다윗의 겸손한 믿음을 하나님이 압살롬 반역 사건의 후반의 통쾌한 결말을 이끄시는 촉매제로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난국을 풀어나간 사람들이 다윗 한 사람만이 아니었음을 보게 된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주께서 사용하시는데 적진의 한 가운데 생명을 내걸고 뛰어들어 지략을 사용해 적진을 무력화 한 후새와 같은 책사들, 적진의 돌아가는 상황을 그들 또한 생명을 내걸고 우군에게 알려주는 아이하마스와 요나단 같은 소식통들과 그 보호자들, 후방에 왕과 함께 고난을 같이하고 기도하며 끝까지 왕을 지킨 백성들, 피곤하고 지친 그들에게 자기의 재물을 기꺼이 털어 먹이고 입혔던 외방 사람들 소바와 마길과 바르실래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멋진 역전극을 마련하셨는다. 그것은 압살롬의 책사 아히도벨의 기가 막힌 계략을 다윗 측의 책사인 후새의 계략이 저들에게 먹히도록 역사하셔서 일거에 압삽롬의 반역사건이 종말을 맞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었는지! 이 현 상황 이쯤 해서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돌아본다. 나는 아마도 피난길의 다윗 왕을 따라나선 백성 중 한 명이 아닐까? 아니 그것도 과분한 비교일 테지만 그래도 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무언가 감당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상상해 본다. 고난의 다윗 왕 옆에서 눈물로 기도했을 민초의 한 사람으로 서 있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기도회가 그렇게 귀할 수 없고 어떻게 해서든 함께 기도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2018-04-22 17:47:20 | 박혜영
제목 : 영적 전투의 전략 - 사탄의 전략을 무력화시키라 [저자 Warren W. Wiersbe] 워렌 W. 위어스비는 북침례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테네시 템플 대학에서 목회학 석사,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 그랜드 레피즈 침례교 신학대학원의 설교학 명예 교수직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1971년 부터 1978년까지 7년간 시카고 무디 기념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사역했고, 그후 20년이 넘는 목회 경험과 목회자들을 위한 칼럼을 저술하여 "목사들의 목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탁월한 기독교 작가요, 신학자이며, 강해 설교자인 그는 출간한 책만도 150권이 넘는다. 그는 복음주의기독교출판협회(ECPA)로부터 평생공로상(GMLA)을 수상한 바 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위어스비 목사는 우리 시대 최고의 성경 강해 설교가"라고 극찬했다. 현재 한국에 번역된 저서로는 <워렌 위어스비의 말씀묵상 365>(디모데), <크레겔 고전 설교 시리지>(살림),<상상이 담긴 설교-21세기 설교 시리즈1>(요단) 등이 있다. [독후감상] 이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초신자들은 신앙생활이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임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초신자가 자신이 영적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이제 성숙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늘 말해주곤 했다. 스펄전도 늘 얘기했듯이 "사탄은 죽은 말은 차지 않기 " 때문이다. 영적 전투 그리고 전략.....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생각났는데 차례를 보니 총 10장 중 8장에서 전쟁터에 무엇을 입고 나갈 것인가로 나와있었다. 에베소서 6장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13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저자는 이 책이 그리스도인 병사들을 위한 훈련교본임을 꼭 명심하라고 하며 이 책은 지금 전쟁터에서 온 힘을 쏟고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아주 실제적인 안내서라고 했다. 실제로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핵심을 짚어주는 참고서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단어가 있다면 <불화살>과 <발판>이다. 사탄은 가족, 친구, 경제, 감정의 문제들이 생길 때 우리 가까이에서 공격할 기회를 찾고 있으며 그 때에 불화살을 쏜다는 것인데 우리는 사탄이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것이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부분을 읽으며 사탄의 불화살이 우리를 통제하는 발판의 기회였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안일하게 대처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저자는 불화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불화살을 즉시 꺼버리는 것이다. 즉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떠올리고 그것을 믿으라. 그렇지 않으면 불은 곧 퍼지기 시작할 것이고, 거기다 기름만 조금 부어도 우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감정이 요동치고 불안해질 것이고, 머지않아 사탄이 우리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 기억에 남는 또다른 단어는 <영적인 의지력>이다.의지는 사탄의 공격지점이라고 하면서 머리는 인정하면서도 삶자체는 변화되지 않는 "지성 중심 신앙"과 감정의 변화에 의존하는 "감정적인 신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내키든지 내키지 않든지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늘 기복이 심하다. 하지만 <영적인 의지력>에 기반하여 사는 그리스도인은 일관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는 변화하는 상황과 감정에 구애받지 않고 안정된 사역을 해나갈 수 있다. 저자는 교회를 공격하는 사탄의 전략에서 <사탄은 교회 안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영"으로 역사하여 관계를 파괴한다 >는 이 부분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하며 이렇게 말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모든 성도들이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사탄을 알고 물리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사탄을 알고 물리칠 수 있도록 배우는 것....나는 이 책을 보면서 사탄의 존재에 대하여 생생하게 보았고, 특히 사탄의 발판이 된다는 불화살에 대하여 깨우치게 해 준 이 책이 참 고맙다.. 그리고 이제 불화살을 즉시 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깨어 있어야겠다. 베드로전서 5:8정신을 차리라, 께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2018-04-22 07:18:23 | 이정자
네 좋은 글 감사해요.
공산주의는 100% 마귀 시스템입니다.
인류가 만든 사상 중에 가장 사악한 사상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힘으로만 누를 수 있습니다.
대화니 타협이니 하면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벽에 부딪힐 때만 후퇴한다" 는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8-04-19 12:13:15 | 관리자
어린시절 아버지의 책장은 문학소녀를 꿈꾸던 내게는 큰 도전이자 동경의 보고였다.마치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던 낯선 방의 오래된 낡은 옷장 처럼 미지의 세계인 나니아로 들어가는 비좁은 통로 같았다고나 할까?그 시절 아버지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들은 대부분 두꺼운 양장으로 커버가 되어 있고 누런 종이에 세로 줄로 읽어야 하는 그런 낯설음이 있었지만 나는 왠지 그런 책들을 접할 때마다 마치 내가 집안 한 구석에 틀어박혀 뜻도 다 모를 두꺼운 책을 심취해 읽어 나가는 소설 속 주인공 어린 제인에어가 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면 종류도 다양했던 것이 톨스토이의 작품이나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퍼얼 벅, 앙드레 지드 같은 작가들의 소설집이나 프로이드의 책들, 삼국지, 천하통일 같은 역사책들, 그리고 엄마의 여성백과사전, 다양한 요리책들(그당시 어린 동생들과 소꿉놀이 하듯 요리책을 보며 자주 놀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 단편 소설 전집 등 종류도 제법 다양했다.그 중 가끔씩 내 기억에서 이상하게 떠오르는 책 한 권이 바로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이다.사실 그 시절엔 상당히 두껍고 뜻모를 용어들이 많아 어렵기만 했던 그 책이 왜 가끔씩 기억에 남는지...아마도 책에 실린 솔제니친의 흑백 사진도 기억의 잔상에 오래도록 남았던 것 같다.세월이 많이 흐르고 철이 들어서야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 시절 책에 대한 기억은 그가 감옥에서의 일상을 기록 했던 내용들이 기억의 전부 였지만 오늘 우연히 한 블로그에서 그가 타계한 이후 그에 작품과 사상에 대한 회고의 내용을 담은 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그가 말하고자 한 이야기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적용해야 할 공통분모가 분명 있기 때문이었다.한편 오늘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그 시절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문득 지금 나의 책장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져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이다음 나의 자녀들도 부모님의 책꽂이에서 어떠한 소중한 추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위대한 유산은 물질적 가치 보다 정신적 가치가 더 큰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늦은 밤 잠을 못 이루게 되어 부족함을 드러내 이렇게 끄적거리게 되었다.아래 글은 우연히 솔제니친에 대한 궁금증과 어린시절 기억이 떠올라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기록자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솔제니친이 타계한 후 그가 남긴 명언들을 잘 기록한 내용이라 첨부하기로 한다.어쩌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믿음을 소유한 우리들이 여전히 과거의 유물론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데에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부지런히 깨어서 바르게 분별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반성을 하며 글을 마치려한다.강철군화 2008/08/04 "공산주의자들은 벽에 부딪힐 때만 후퇴한다" 3일 타계한 솔제니친이 남긴 명언들 솔제니친, 거인의 생애거인이 세상을 떠났다. 구소련 시절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이던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3일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제2차세계대전 당시 포병장교로 참전했던 솔제니친은, 종전 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것 때문에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는 신세가 됐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암병동>,<수용소군도> 등 소련강제수용소의 실상을 폭로하는 소설들을 썼다.그 공적을 인정받아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소련에서 출판하지 못한 자신의 작품들을 서방에서 비밀리에 출판한 것이 문제가 되어 1974년 소련시민권을 박탈당하고 국외 추방됐다. 이후 그는 미국 버몬트주에서 망명생활에 들어갔다. 솔제니친이 서방으로 추방될 무렵, 서방세계는 데탕트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솔제니친이 미국 의회, 노조(AFL-CIO), 하버드대학교 등을 돌면서 ‘철의 장막’ 이면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전략전술을 폭로하면서, 서방세계 사람들에게 데탕트의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헬싱키협정으로 데탕트가 절정에 달했던 당시,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서방세계의 계속되는 양보를 비판했고, “공산주의자들은 벽에 부딪힐 때에만 굴복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것은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었다.구소련이 붕괴한 후인 1994년, 솔제니친은 국외추방 20년 만에 귀국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 전통’의 강조를 통해 혼돈 속에 방황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이념적 구심점을 제공해 주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20여 년간 일반 러시아인들과 격리된 삶을 살았던 망명객의 말에 귀 기울이기에는 당시의 상황은 너무나 척박했고, 세상은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나의 스승 솔제니친 내가 솔제니친을 만난 것은 1980년대 중반 대학시절이었다. 솔제니친의 소설 <1914년8월>과 그의 미국 내 강연 내용을 담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전망>을 통해서였다. <1914년8월>은 제1차세계대전 직후 러시아군이 독일군에게 대패한 탄넨베르크 전투를 그린 소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 전야 러시아 젊은이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었다. 흔들리는 조국의 운명 속에서 혁명이냐 개혁이냐를 놓고 고뇌하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전망>은 작은 문고판 책자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솔제니친의 가르침들은 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다른 친구들이 마르크스와 레닌, 김일성을 읽으면서 ‘혁명’을 꿈꾸고 있을 때, 나는 솔제니친을 통해 그런 인간들이 세상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어떻게 인간을 짓밟는지, 그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배웠다. 이후 나는 지금까지 그의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내게 있어서 좌파이념에 대한 백신주사였고, 이념의 스승이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불굴의 투사였지만, 그렇다고 서방세계를 공산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방세계의 물신주의(物神主義)와 방종,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를 위한 투쟁 의지’의 결여를 비판했다. 솔제니친이 공산주의의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러시아 고유의 공동체주의와 러시아정교회 신앙이었다. 그의 가슴 속에는 항상 ‘조국 러시아’,‘어머니 러시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한 마디로 애국자였다. 그의 애국심은 나의 가슴을 울렸다. 그가 공산주의에 반발하면서 서방 세계를 맹종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나는 솔제니친으로부터 그렇게 크게 감동받지 못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소련이라는 ‘수용소 군도’에서 나온 솔제니친의 눈에 서방세계는 너무 나이브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피를 토해가며 공산주의의 위협을 경고했다. 그의 경고 가운데 상당수는 다행히 빗나가고 말았다. 솔제니친이 파쇼 독재를 타도한 후 공산독재로 넘어가지나 않을까 가슴 졸였던 포르투갈은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고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자리잡았다. 그가 공산주의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으로 간주했던 헬싱키 협정은 인권을 매개로 공산체제를 압박하는 유효한 수단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대단히 견고하게 보았던 공산전체주의체제는 그의 미국 순회강연이 있은 지 10여년 후에 자멸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솔제니친의 경고가 헛된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수용소 군도'의 체험자인 솔제니친의 공산주의에 대한 경고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둘도 없는 대공(對共)전선의 바이블이다. 그의 어록들은 김정일 집단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삼가 고개 숙여 위대한 자유투사이자 애국자인 솔제니친의 명복을 빌며, 그의 어록들을 소개한다.<솔제니친 어록>“제발 와서 간섭해 달라” ● 오늘 여러분과 더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있는 이 시간, 만일 다른 쪽에서는 사람들이 정신병원에서 신음하며 죽어간다면 그것은 데탕트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소련에서 박해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여러분의 아량과 고상함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들도 지키는 것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미래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잡한 혹성 지구 위에는 이제 더 이상 국내 문제라는 것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지도자들은 "우리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 우리가 우리 시민들을 평화롭게 목조를 수 있도록 가만히 있으라"고 말합니다.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보다 많이 간섭하라. 여러분이 가능한 한 더욱 깊숙이 간섭하라. 제발 와서 간섭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본 몇몇 지방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지역들은 미국 역사의 발상지로서 미국을 창건했던 영웅들이 자신의 도덕적인 책임을 결코 소홀히 한 적이 없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선(善)과 악(惡)의 개념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정책은 도덕적인 표준으로 일관되어 있었지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도덕적인 조치를 채택했겠습니까?여러분의 나라를 창건했던 지도자들은 "우리의 바로 옆에서 노예제도가 판을 치더라도 필요할 땐 노예를 부리는 사람과도 데탕트를 해야 한다.그들이 우리를 침략하지 않는 한..."이라는 식의 논리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자신도 억압에 대해 들고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면 그것은 결국 여러분의 장래를 동시에 보호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 소련의 공산치하에서 우리들은 이를테면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비록 노예이지만 자유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여러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노예로 부리는 공산주의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생매장하려고 할 때 제발 여러분들은 공산도당에게 땅을 하는 도구, 그것도 가장 현대화된 굴착기계들을 제공해 주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공산주의자를 도와주면 결국 여러분의 입을 흙으로 채우려고 덤벼들 것입니다. ● 유감스럽게도 어떠한 타인의 괴로움도 우리들의 일시적인 지복(至福)을 어둡게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 괴로움이 우리들의 신변에 미칠 때까지 우리들 자신에게는 절실히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인간의 천성이 아닐까요.“공산주의자들은 벽에 부딪칠 때만 후퇴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이 아닌 것이 곧 평화'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전쟁과 평화를 대치되는 개념으로 본 것입니다. 이는 잘못이지요. 단지 반대되는 명제의 일부분을 전체 명제에 대립시킨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벌일 수 없으면 테러를 사용하는 등 배후에서 탄압정책을 써 왔습니다. 빨치산 전쟁, 각종 폭력, 감옥, 집단수용소 등등 그들이 이용하는 수단은 많습니다. 이것이 '평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공산주의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레닌의 모든 '교훈' 중에서 자기 앞에 놓여진 것을 취하지 못하는 자는 바보로 취급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인 것입니다. 만일 가질 수 있으면 가져야 하고, 공격할 수 있으면 공격하라는 것입니다.다만 벽에 부딪치면 후퇴하라는 것이지요. 공산지도자들은 확고한 자세만을 존경하고 계속해서 후퇴하는 사람은 경멸하고 비웃습니다.내가 여러분의 지도자의 연설에서 끝으로 인용하고자 하는 것은 "화해를 모르는 힘은 세계분쟁을 초래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복종만 하는 힘은 결코 힘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데탕트는 미소를 짓거나 구두로 양보하는데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고한 기초 위에 존재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고한 기초 아래 데탕트가 하룻밤 사이에 파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이의 보장을 위하여 협정의 상대편 당사자는 여론과 언론 및 자유선거에 의한 의회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통제가 존재할 때까지는 결코 보장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 소련에서 소위 이념전이라고 부르는 비인도적인 선전을 자행한다면 그것이 무슨 데탕트일까요? 우리가 데탕트를 유지하려면 피차 우호적이어야 하며 이념전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협상을 하는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다가는 막판에 가서 조금 양보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마치 승리나 한 듯이 "보라, 그들의 양보를 얻어냈다. 이제 서명할 시간이다"라고 떠들어댑니다.“공산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인도적인 일이다” ● 오늘날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현대인들이 공산주의의 다양한 행태를 그냥 보고만 있다는 점이지요. 탱크가 부다페스트의 시가를 누비고 체코에서 탱크포가 불을 뿜어대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비공산주의자들이 그런 짓을 했다면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지만, 공산주의자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서방세계는 자신의 잃어버린 의지력을 되찾기 전에는 아무리 강력한 무기나 수단이라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안락을 숭배하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각오가 있기 힘듭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 것은 양보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벌려는 시도와 배반만 남습니다. ● 현상유지의 쇠약한 꿈은 발전을 중단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 현재 동구의 여러 나라에서 공산주의는 이념적으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점수로 따지자면 빵점이나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일부 지식인들은 아직도 공산주의에 대해 관심과 연민을 갖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방세계가 공산권과 대결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 여러분들이 자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 복잡한 세상에서 상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자유를 획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세계의 상당한 인민들이 폭력과 탄압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 아래서 여러분 스스로만 자유를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 우리들은 당신들에게 우리의 쓰라린 경험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수많은 죽음과 노예상태라고 하는 우리들이 지불했던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에게 우리들의 경험을 살려주십사고 간청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당신들 사회는 경고하는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군요. 필경 경험이란 것은 도시 전달불가능한 것으로서, 누군들 스스로 체험해야 된다는 사실을 유감스럽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반공주의(anti-communism)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우매한 표현입니다.마치 공산주의가 무슨 근거가 있는 독창적인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또 반공주의가 공산주의를 대상으로 한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공산주의의 어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때문에 나는 이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는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 비(非)인도적인 것이니까요.그러므로 우리가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행위는 바로 인도적인 일이 됩니다. 다시 말해 비인도적인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선(善)과 악(惡)의 관념을 망각시키려고 책동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우리 영혼의 저항입니다.“공산주의는 과학이 아니다” ● 전문가들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통계에 의하면 러시아 혁명 이전 80년 동안 연간 약 17명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혁명운동의 시대로서 짜르를 암살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았던 때입니다. 수십년 동안 지속되었던 스페인의 종교재판도 그 절정기에는 매달 10명 정도 밖에는 처형하지 않았습니다.'수용소 군도'에서 나는 '체홉'이 1920년 출판했던 저서를 인용한 바 있습니다. 체홉은 이 책에서 1918~1919년 동안 매달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처형되었다는 '혁명활동'을 자랑스럽게 보고했습니다. 체홉이 지적한 이 수치가 완벽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아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체홉이 이러한 내용에 관해 역사가 조명하기 이전에 스스로 집필한 것은 사실입니다.스탈인의 테러가 절정에 달했던 1937년과 1938년에 처형된 사람들은 월별로 따져보면 1개월 동안 약 4만 명 이상이나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민주적인 서방국가들이 어떻게 러시아와 동맹을 맺을 수 있었을까요?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과학이 아니다"이 점은 소련의 인텔리들도 전적으로 확실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의 일종으로 본다면 그것은 조크로밖에 볼 수 없지요. 그것은 물리학이나 수학 및 기타 자연과학과 비교할 수 없을 뿐더러, 일반 사회과학처럼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합니다.사실 공산주의는 그 어떤 예측도 하지 못했지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선전 뿐이지요.즉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들이 들고 일어나 부르조아 계습을 타도하게 되면 그때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사회가 된다는 것뿐입니다.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의 환상은 모두 이 예측을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누구도 그러한 사회가 어떤 형태를 갖고 등장할 것인지에 관해 보다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찬란'하고 '행복'하며 모든 것이 인류를 위하는 방향으로 될 뿐이라고 말했을 따름입니다. ● 거듭 말하거니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수용소를 만들어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역시 최초로 인질 제도를 도입, 자신들이 추적하고 있는 인사를 체포하지 못하면 그의 가족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을 마구 체포하여 사살해 버렸습니다. ● 스웨덴의 사회주의 지도자인 오라프 팔메는 "공산주의가 생존해 나가려면 민주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이리가 살아나가려면 고기를 먹지 말고 양처럼 순해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http://www.thinkpool.com/MiniBbs/ViewPost.do?action=read&hid=greenhill&cid=mini&ctg=0&viewType=1&sn=976719
2018-04-19 02:32:26 | 김경민
참으로 귀하신 형제님!!!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이런 난세에 하나님의 바른 가치에 대해 표현까지 해주신
형제님께 하나님의 무한하신 공급하심이 풍성키를 원합니다.
2018-04-17 18:00:39 | 김경애
처음부터 끝까지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다보니 마음이 든든해지네요.
어려운 이 시기에 형제님처럼 하나님의 오른쪽 가치를 즉각 삶에 적용하여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혜를 모아 한 목소리를 소리 높여 내고 열심히 전하여 사악한 무리들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귀감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2018-04-17 08:41:35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