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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집 생활지침이 뿌린대로 거둔다 입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신) 이유를 알 수 없는 힘겨움에는 (낙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버틸힘 주세요! 라고 기도 드려요..올 한해 시작할때는 <헌물>이라는 단어에 꽂혔는데 하반기에는 <무익한 종>이라는 성경단어가 마음에 들어오네요.. -그러므로 형제들아,내가 하나님의 긍휼에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로마서 12장 1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m.youtube.com/watch?v=FlDU6-4ggjQ  
2024-10-05 07:53:49 | 목영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죄에 대한 징계는 당연한 것임에도 회피하기 위한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인간적인 만족을 위해서 뭔가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항상 경계하겠습니다.
2024-10-04 23:42:18 | 김지훈
중보기도는 어떻게 해야할까?     얼마 전의 일이다.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교회(장로교)의 권사들이 운영하는 단톡방에 아래와 같은 중보기도의 내용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OOO 권사님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다고 합니다. 구속당하지 않고 벌금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부탁합니다.”   (뺑소니)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과연 이 교회 권사님(?)들은 어떻게 기도를 했을까? 대략 짐작은 가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중보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세와 느헤미야의 사례를 보자.   1. 모세의 기도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명령들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든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멸시키겠다고 했을 때 모세는 아래와 같이 하나님께 간청한다.   주여, 주께서 큰 권능과 강력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신 주의 백성에게 어찌하여 맹렬히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가 악한 일을 이루기 위해 그들을 데리고 나와 산에서 그들을 죽이고 지면에서 끊어 소멸시켰다,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고 돌아서셔서 주의 백성을 향한 이 해악에 대해 뜻을 돌이키소서. 주의 종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 자신을 두고 그들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번성하게 하고 내가 말한 이 온 땅을 너희 씨에게 주어 그들이 영원토록 그 땅을 상속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매(출애굽기 32장 11절~14절)   모세가 주께 돌아가 이르되, 오 이 백성이 큰 죄를 짓고 자기들을 위해 금으로 신들을 만들었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그러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출애굽기 32장 31절~32절)   2.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는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서 거기 그 지방에 남게 된 남은 자들이 큰 고통과 치욕을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도 무너지고 그곳의 성문들은 불탓다는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고 며칠 동안 애곡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아래와 같이 기도한다.   간청하건대 오 주 하늘의 하나님 곧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이제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시고 눈을 여사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내가 이제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주 앞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죄들을 자백하오니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나이다. 나와 내 아버지 집이 죄를 지었나이다. 우리가 주를 매우 악하게 대하였으며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명령들과 법규들과 판단의 규범들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간청하건대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말씀을 기억하옵소서. 이르시기를, 만일 너희가 범법하면 내가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로 널리 흩으리라.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게로 돌아서서 내 명령들을 지키고 그것들을 행하면 너희 중에서 하늘 맨 끝 지역까지 쫓겨난 자들이 있을지라도 내가 그곳에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가 내 이름을 거기에 두려고 택한 곳으로 데려오리라, 하셨나이다. 실로 이들은 주께서 주의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오 주여, 간청하건대 이제 주의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기 원하는 주의 종들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원하건대 이날 주의 종의 일들을 형통하게 하사 이 사람의 눈앞에서 주의 종에게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하였나니(느헤미야 1장 5절~11절)   모세와 느헤미야는 무슨 잘못을 했는가? 모세와 느헤미야의 기도를 읽으면서 중보기도는 기도해야 할 사람들과 동일시 되고 죽을 각오(순교)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이 교회 권사님들이 몇 날 며칠 동안 슬피 울고 금식하고 애곡했을까? 오늘날 교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2024-10-04 08:27:36 | 이규환
  한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제4차 로잔대회(9월 22일~28일)가 막을 내렸군요. 그 총체적 결산이라 할 로잔 서울선언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소견에 따르면 ^^)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 곰팡이 쓴 빵 연상되는 내용이었다고나 할까요.    어차피 곰팡이 쓴 빵 정도의 선언문에서 무슨 특별한 의미를 찾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즉 성경 읽는 방식에 관한 오류를 지적하고 싶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로잔선언문 중 ‘II. 성경 : 우리가 읽고 순종하는 성경’ 부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더군요.   (전략) 따라서 높은 성경관을 확언하려면 성경의 역사적, 문학적, 그리고 정경적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 성령의 조명을 받으며 교회의 해석 전통에 따라 성경을 읽는 방식이 필요하다. (중략) 역사적 맥락에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본문의 배경이 되는 세계와 본문이 쓰인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적 맥락에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문학인지 그리고 더 넓은 본문 내에서 단어와 아이디어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정경적 맥락에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에 비추어 각 부분을 함께 읽는 것을 의미한다.      아닌데...아니지...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선언문 상의 해당 부분(위 ‘중략’ 이하의 대목)에 시선 고정한 채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생각,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역사적 맥락에서’는 뭐, 그렇다 치고, ‘문학적 맥락에서’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서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에 의해 주어진 것(딤후3:16)이라고, 하나님께서 성경 기록을 통해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거늘, 그 말씀을 문학적 맥락에서 읽으라니 말이 됩니까? 성경 말씀이 문학 작품입니까? 문학 장르(선언문 상에 나오는 표현임) 어쩌고 아이디어의 흐름 어쩌고 하게 말입니다.   ‘정경적 맥락에서’ 역시 문제 있는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에 비추어 각 부분을 함께 읽어라, 참으로 허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꾸어 말씀 드리면, 신구약 성경 전체에 비추어 어쩌고 하면서도, 정작 가장 핵심적인 사항, 구체적으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뜻 또는 계획, 바로 그것에 비추어...라고 명기, 즉 분명히 기록하지 못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 사랑침례교회 신학원에서 배운 바 있는 ‘조직신학’ 72강 중 제7강 교재를 펼쳐 보았습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군요.   (전략) 성경 신자들은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해석을 취한다. a. 문법적 : 문맥에 맞추어 문자 그대로의 정상적인 의미를 취한다. b. 역사적 : 시대, 수신자, 목적 등의 역사적 배경 하에서 해석한다. c. 신학적 : 하나님의 목적과 설계에 따라 해석한다.   위 조직신학 교재 내용과 대비하매, 로잔 서울선언문 상의 성경 읽는 방식, 그 심각한 오류, 허구성이 밝히 드러나는 것 같군요. 특히, 아이디어의 흐름에 따라 문학적으로가 아니라 문맥에 맞추어 문자 그대로 문법적으로, 그 대목에서 너무나도 확연히 말입니다.    ( 끝 )  
2024-09-30 14:28:32 | 최영오
  날이 갈수록 정녕 비성경적인 뉴에이지 사상으로 물들어가는 세상 속에서 뉴에이지 운동의 기원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몇 가지 생각들을 밝혀 보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랑침례교회 신학원 수강과목 ‘조직신학 2’ 교재 내용 중 ‘뉴에이지 운동의 영적 배경’이란 부분에 적혀 있는 ‘뉴에이지 운동은 창3 때 이미 시작됨’이라는 제 메모 글, 그러니까, 목사님 강의 내용 일부와 관련 있습니다. 1) 뉴에이지 운동의 기원 나무위키와 위키피아에 따르면, 강신술(Mediumistic Phenomena) 연구를 목적으로 1857년 헬레나 블라바츠키를 중심으로 설립된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신의 지혜)) 협회는 오늘날의 뉴에이지 운동을 시작한 기관으로 유명하며, 이 신지학이라는 것은 신지학 협회에서 비롯된 밀교, 신비주의적인 사상 철학 체계로서, 모든 종교, 사상, 철학, 과학, 예술 등에 관한 근본적으로 하나인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군요. 그러나 저는 뉴에이지 운동, 그 사상적 기원은 1857년의 신지학 협회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강신술이니 신의 지혜니 어쩌고 하는 것들은 그보다 훨~~~씬 앞서 우리나라 무당 분(^^)들이 이미 통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뉴에이지 운동의 기원은 무당 분들보다 훨~~...~~씬 더 앞선 창세기 3장, 그때가 옳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2) 뉴에이지 운동의 기원, 창세기 3장 4-5절 창세기 3장 4-5절 말씀인즉,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gods)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입니다. 뱀, 즉 사탄이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하는 대목이죠. 위 ‘조직신학 2’ 교재 내용 중 ‘뉴에이지 운동의 영적 배경’이란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답니다. 범신론 : 너희가 신들같이 되리라, 윤회론 :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상대론 : 너희가 선악을 알리라(도덕의 붕괴), 신비주의 : 너희 눈이 열리리라(전시안(全視眼)) 오늘날의 뉴에이지 운동, 그 영적 배경이 위와 같은 범신론, 신비주의 등과 일치함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뉴에이지 운동, 그 사상의 씨앗은, 아니 누룩은 창세기 3장 4-5절, 그때 사탄에 의해 이브, 즉 사람의 생각(mind) 속에 뿌려졌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3) 뉴에이지 운동 관련 말씀 변개 사탄, 즉 뱀은 사람의 생각 속에 뉴에이지 사상이라는 최악의 독성 누룩을 뿌림으로써 사람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도록 변질시켜 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 속에도 또한 독성 누룩 대량으로 뿌려 놓았음을, 말하자면, 수많은 말씀 구절들 변개시켜 버렸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 변개 부분들 중 뉴에이지 사상 관련하여 특히 떠오르는 두 곳을 짚어보겠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창세기 3장 5절에는 ‘너희가 신들(gods)과 같이 되어’라고 표기된 반면, 변개된 성경들, 즉 NIV·개역 성경 등의 현대역본 성경들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God)과 같이 되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이브가 선악과에 눈멀었다(^^) 쳐도 그렇지, 감히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알았을까요? 이브는 결코 그런 생각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위와 같은 형태의 말씀 변개를 통하여, 사람이란 창조물의 생각 속에 스스로 하나님, 즉 창조자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사상적 바탕을 깔아 놓았지 않은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다니엘서 3장 25절에는 용광로 속 다니엘의 세 친구를 구해 주시는 분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과 같도다’라고 표기된 반면, NIV·개역 성경 등의 현대역본 성경들에는 ‘신들의 아들(a son of gods)과 같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한 번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 그분 아니고선 절대 불가능한 기적 시연해 주신 분을 신들의 아들, 말하자면, 잡신들의 한 아들쯤으로 낮춰 버린 것입니다. 위와 같은 형태의 말씀 변개를 통하여, 사탄은 사람이란 창조물의 생각 속에서 창조자, 즉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지워 버렸지 않은가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형태들의 말씀 변개, 구체적으로는, 낮춰야 할 곳에서는 높이고(gods -> God) 높여야 할 곳에서는 낮추는(God -> gods) 형태의 말씀 변개를 통하여 사탄, 즉 뱀은 사람의 생각 속에 뉴에이지 사상, 그러니까, 사람 안에 존재하는 신성(神性)으로 인해 사람이 하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식의 사상, 그 씨앗을 심어 놓았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위의 경우들은 어디까지나 예에 불과할 뿐, NIV·개역 성경 등의 현대역본 성경들 속 엄청난 분량의 말씀 변개가 있잖습니까. 이는 결국 창세기 3장, 그때 뿌려진 뉴에이지 운동, 그 사상의 씨앗이 앞으로 거침없이 자라날 수 있는 여건까지 이미 갖춰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뉴에이지 운동의 드러남 세상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의 경륜(dispensation of time)’에 따라 이루어져 왔듯이, 오늘날 세상을 점령해 나가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 역시 창세기 3장 4-5절, 그때 그 뱀, 즉 사탄이 뿌려 놓은 독성 누룩이 때를 만나 무서운 속도로 거침없이 퍼져 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 정하신 때를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라 사람의 힘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고 봐야겠죠. 5) 뉴에이지 운동이 드러나는 때의 의미 약간 다른 측면의 말씀입니다만, 뉴에이지 운동이 사람들 눈에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오늘날이라는 때의 의미 또는 특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때, 더 이상의 과학 발전 없는 것이 차라리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풍족한 때(어디까지나, 돈만 있으면 ^^)가 바로 오늘날이라 할 것입니다. 에스겔서 16장 49절에 기록된 소돔의 불법들 중 일부, 즉 ‘빵의 풍족함과 게으름’이란 대목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바꾸어 말씀드리면, 더할 수 없이 풍족한 오늘날이야말로 죄, 극심한 죄 짓기 딱 맞는 바로 그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안에 존재하는 신성을 개발해야 하고 어쩌고 하는 뉴에이지 운동 역시 동성애의 죄질보다 덜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6) 뉴에이지 운동 판치는 세상 살아가는 법 뉴에이지 운동 판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세기 3장, 그때 사람의 생각 속에 뿌려진 뉴에이지 사상의 씨앗, 누룩 자체를 사람 스스로 제거할 수는 없기에, 오로지 그 싹 자라나지 못하도록 힘쓰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성경, 바른 말씀 따라 성화의 길 걷는 한 문제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7) 새삼 느끼는 감사 인생 막판(^^) 구도자의 길에서 득도로써 그 피날레를 장식(^^)하려 했던, 한 마디로, 극심한 죄인으로 살아가던 사람을 돌려세워 이와 같은 글 써도록 만들어주신 절대적 권능과 영광의 하나님께 새삼 뜨거운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 끝 )
2024-09-11 02:22:05 | 최영오
감사합니다 교회라는  조직에 있어서 성도간의 역활이 상호  의존적인것 그리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한다는것을 염두에두고 서로를 존중하고 살피고.섬기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댜
2024-09-06 10:57:43 | 이상기
리더(Leader)와 팔로워(Follower)   최근에 흥미로운 조사를 봤다. 이른바 '꼴불견 직장인'이다. 꼴불견 직장인 5위 중에 하나가 총론에 찬성하고 각론에서 사사건건 시비와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1절에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 질서 없이 걸으며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하기만 좋아하는 어떤 자들이 있다 하는도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래는 리더와 팔로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조직 내에서 리더와 팔로워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다. 리더는 방향을 설정하고 이끄는 역할을, 팔로워는 그 방향을 지지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성공적인 조직은 리더와 팔로워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이루어지며, 이 둘의 관계는 조직의 성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1. 리더와 팔로워의 정의 리더(Leader): 리더는 목표를 설정하고 팀을 이끌며, 조직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 것을 넘어, 팀원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동기부여하며, 방향성을 제시한다. 리더의 역할은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며, 조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팔로워(Follower): 팔로워는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을 지지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팔로워는 리더의 비전을 이해하고, 팀과의 협업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훌륭한 팔로워는 수동적으로 명령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에 주인의식을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리더의 결정을 지지하고 필요할 때는 건설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2. 리더와 팔로워의 자세 리더의 자세: 비전 제시: 리더는 조직의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팀원들에게 전달하여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책임감과 결단력: 리더는 상황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며, 그 결정에 책임을 진다. 소통과 경청: 리더는 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열린 소통을 통해 신뢰를 구축한다. 동기부여와 영감 제공: 팀원들이 스스로 동기부여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긍정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간다. 팔로워의 자세: 적극적 참여와 책임감: 팔로워는 단순히 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소통과 피드백 제공: 팔로워는 리더와의 소통을 통해 조직의 목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필요시 건설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성장 의지와 학습 태도: 팔로워는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리더십 지지와 팀워크 강화: 팔로워는 리더의 결정을 지지하며,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협력한다. 3. 리더와 팔로워의 행동사례 리더의 행동사례: 결단력 있는 위기 대응: 위기 상황에서 리더는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팀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명확한 지침을 제공한다. 피드백을 통한 성장 유도: 리더는 팀원들에게 정기적으로 피드백을 제공하여, 각 개인의 강점을 발전시키고 개선할 부분을 제시한다. 변화 주도와 혁신: 리더는 조직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전략과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팀원들을 혁신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팔로워의 행동사례: 능동적인 문제 해결: 팔로워는 문제 상황에서 지시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리더와 협의한다. 팀 협력과 지원: 팔로워는 동료와 협력하여 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며, 필요할 때는 리더를 지원한다. 건설적인 피드백 제공: 팔로워는 조직의 개선을 위해 리더에게 건설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제안한다. 4. 결론: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충실한 팔로워의 경험이 필수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팔로워로서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된다. 팔로워로서 리더의 지침을 따르며 협력과 소통의 중요성을 배우고, 조직의 구조와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은 리더십을 발휘할 때 큰 밑거름이 된다. 충실한 팔로워는 리더가 되기 위한 기초 역량을 쌓아가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교회는 조직이다. 조직이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리더(집사, 지역리더, 교사 등)와 팔로워(직책을 맡지 않은 모든 성도)의 역할은 상호 의존적이며, 그 관계 속에서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팔로워로서 가장 좋지 않는 것은 불평불만과 참견이다. 이런 팔로워는 결코 리더가 될 수 없다. 
2024-09-04 16:58:24 | 이규환
어디에 이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이곳에 씁니다. 스터디 성경전서 400 주년 기념판을 갖고 읽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1 절  이에 그들이 그분을 반가이 배로 받아드렸고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물)에 이르렀더라 핸드폰에 다운 된 같은 부분에는 (물)이 아니고 (뭍)이었어요. 목사님 말씀에 따라서 틀린 부분 을 알립니다. 더 완전해지는 성경을 위하여!!
2024-08-28 10:24:31 | 이향란
관점의 차이로 마음 상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점을 도움 받으며 협력함으로 바른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는 지체가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교회에서 다방면으로 섬기시는 분들께서도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역시 사랑으로 기쁨으로 모든 일을 잘 처리하기를 소망하며, 섬김으로 봉사헤 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2024-08-26 11:57:13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