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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문명 몰락의 신호탄 ,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처음 쓴 학자중 하나는 위대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입니다.   1940년대 토인비는 세계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연구에 몰두 했습니다.고대 로마~ 제국주의 중국, 바빌론~아즈텍 문명까지 포괄하는, 21권의 세계 문명에 대한 그의 연구에 기초하면 무너지고 있는 사회들은 일종의 "영혼의 붕괴"를 겪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헬라스 사회 이외의 어느 사회를 조사해 보아도, 문명 쇠퇴의 원인은외적이 한 일은 기껏해야 막 숨을 거두려는 자살자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일이었습니다.인간은 도덕성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자신들의 창의성을 버리며 스스로의 충동에 굴복합니다.그들은 또한 나태, 즉 현실도피 심리에 굴복하여 자신들만의 향락과 오락의 세계로 도망해 들어감으로써 문제의 회피를 꾀하였습니다. 자신들은 표류하는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면서 무의미한 결정론에 굴복하고, 마치 자기의 노력은 중요치 않고, 어차피 자기들 인생에 대한 아무 조절 능력도 없다는 듯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을 포기함으로써 나타나는 자기혐오의 자포자기식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혼음을 토인비는 성적 감각이라기보다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초점도 없이 타협하고, 무비판적으로 관용하는 의미로 보았습니다.토인비는 이러한 혼음을 "예절이나 관습 뿐만 아니라, 종교,문학,언어,예술을 뒤섞어 넣고 녹이는 용광로 속에, 자포자기로 끌려 들어가는대중심리의 승리"라고 했습니다.토인비는 자기가 살던 시대,2차 세계대전, 냉전의 시초에 대해 눈을 돌렸을 때, 토인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을 예견하면서 그 용어를 사용했을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게 될 의미까지도 묘사를 해뒀습니다.패트리시아 워프(patricia waugh)는 그의 예측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토인비에게는 포스트모던 시대가 넷째 단계가 될 것이며 이는 서구역사의 최후 국면이고, 고뇌와 불합리, 망연자실에 싸인 국면이 될것이다.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인간 의식은 표류하게 될 것이며, 지난 날 모더니즘적인 이상들이 세워졌었던 것과 같은 정의, 진리, 이성의 어떤 보편적 기반 위에도 다가설 수 없게 될 것이다.의식자체가 중심을 잃게 되고, 이미 더이상 세계속의 행동의 대변자가 되지 못할 것이며, 비인간적인 힘들이 서로 통하며 교차하는 기능의 역할만 하게 될 뿐이다. 예술은 인간 정신의 표출이 아닌, 또 다른종류의 상품이 될 뿐이다. 따라서 지식이 행하는 비평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예술은 그 기능만 지니게 될 것이다.더구나,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상황 속에 있고, 그 문화속에서 모든 지식은 설교를 통해서 형성될 것이며, 우리는 초월성에 대해 더이상 추구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를 바라 볼 수 있는 객관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관념으로 이겨서 얻기를 애쓰는 대상 범주 속에는 이미 개념적 공간이라는 알맹이가 빠져 버렸다. 즉 칸트가 말하는 " 신의 관점"은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오직 내면으로부터의 붕괴, 즉 소인정치, 언어 유희들, 장난 같은 싸움들, 이율배반, 분열 등만이 존재 할 수 있을것이다"우리는 이 "의식의 표류"가 많은 동시대 이론가들의 주장대로 "해방"인지 아니면 토인비의 주장대로 " 서구 문명 몰락의 신호탄"인지 살펴 보겠습니다.찰스 젱스(Charles Jencks)에 따르면, 모더니즘이 끝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시작된 기점이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 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모더니즘 최첨단 건축술의 표본이었던 '프루이트-아이고(Pruitt-Igoe 는 도시 재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이전 빈민가 자리에  연방 기금으로 건설되고 사회 공학적 의도가 가미된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공공주택 단지 개발 중 하나였다)가 폭파 및 철거된 일을 말합니다.   ※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면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archicube01&logNo=222174245824&targetKeyword=pruitt-igoe&targetRecommendationCode=1&keywordSearchType=TEXT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본래 건축학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콘크리트, 유리, 강철로 된 비인격적이고 꾸밈없는상자 모양의 건축물을 더 이상 짓지 않고, 과거로부터 여러 특색을 끌어오되 그 본래의 목적이나 기능과 상관없이 복잡한 모양과 형태를 꾸며내는 방향으로 전환된데서 유래 했다고 합니다.여기서 살펴 볼 수 있는것은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하나님을 제외하고서) 오직 자신의 이성에 기초하여 합리주의적 입장을 추구했던 사람들은 점차로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것을 기계로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사람은 물론이요 다른 동·식물들의 기관이 조화를 이루며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그 형태를 만드시되 또한 각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빛 바래지 않게 배려하신 우리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그 분의 선하고 아름다운 성품과 완벽하고 섬세한 예술감각을 보고 있자면 내 혼과 내 입이 온 마음을 다해 그 분을 찬양합니다.각설하고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프랑수와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포스트모던이란 용어를 문화적 정당화 방식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면서 문화 분석에서 핵심 단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서구 문화를 하나로 묶어 주는 단 하나의 "거대담론들(meta-narratives)"에 대한 불신으로 정의 했습니다.또 월터 트루엣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사상 변동을 형성하는3가지 과정을 인용했는데, (1) 믿음의 파괴 :오늘날엔 '옳은 것'에 대한 지구적(地球的)동의 사항이 없다. 우리는 "모든 신념체계의 방식이 대중 소비를 위해 주어지는 원칙 없는 현실이라는 시장에 와 있다"고 말했습니다. (2) 지구적 문화의 탄생 : " 모든 신념 체계는 다른 신념 체계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다." 고 말하고 , 그 결과로 그들 중에서 어느 것을 절대 참된 것으로 받아 들이기가 어렵게 된다고 합니다.(3) 새로운 극단화 :사회적 진리의 본질에 관한 투쟁들로 사회는 분열될 것이며 우리는 "문화 전쟁들" , 특히 교육과 도덕 지도에 관한 문제들을 놓고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합니다.그리고 과거의 위대한 지적 체계들은 늘 뚜렷한 근본을 가지고 있는 것들인데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든 객관적 기반을 파괴해버리고 아무 근본도 남겨두지 않는 것입니다.또한 지식이 곧 진리의 반영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과 역사 및 이성으로부터 안정된 근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상으로 정의된 "근본주의"를 배제 합니다.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역사도 분해하려 합니다.그들은 역사를 사실들의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지어놓은언어라는것과 맞물려 돌아가는 은유의 연속으로 간주 합니다.결국 우리는 사실과 소설을 구분 할수 없습니다.기독교 사상가 제임스 사이어가 정리한바에 의하면1. 포스트모더니즘이 다루는 첫째 질문은 무엇이 존재하느냐 혹은 그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언어가 어떻게 의미를 구성하느냐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일차적인 문제'가 존재에서 인식을 거쳐 의미 구성으로 변천된 것이다.2. 실재 자체에 관한 진리는 영원히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이라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뿐이다.3. 이야기는 공동체에 결속력을 제공한다.4. 모든 이야기들은 권력 놀음을 위장한다. 어떤 이야기든 일단 거대담론이 되면 억압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5. 실체적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에 관해 묘사하는 그 언어에 의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다.6. 윤리는 지식과 마찬가지로 언어적 구성물이다. 한 사회가 선(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회적 선이 될수 있다.7. 포스트모더니즘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이 정도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와 지향점에 대해 기본적인 서술은 되었다고 보여집니다.저는 개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정체성과 실체에 있어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혼돈 그 자체인 사상이기에 실존주의와 마찬가지로 대중 문화나 예술로 살펴보는것이 되려 이해가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피카소 작,"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현대 미술의 탄생을 의미함.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2)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ready-made)" 또는 "자전거 바퀴" 로 불림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액션 페인팅...모든것이 우연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신중하게 그림을 그림.   음악을 현대 사상의 운반 수단으로 만든 "12음계"를 발명한 쇤베르크   쇤베르크의 제자로서 우주가 우연의 우주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우연적으로 음악(날카로운 소음)을 만든 존 케이지(John cage).그러나 케이지는 사람이 그러한 기반에서는 살 수 없고, 우연적 우주 개념은 현재의 우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줌. 그리고 그는 버섯 연구 전문가로서 " 내가 만일 우연한 동작이라는 생각으로 버섯에 다가가면,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주정뱅이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 5번째(마지막)부분의 마지막황량한 탑속에 갇힌 아퀴텐 공작.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 왔다.분부대로 합죠.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다타. 다야드밤. 다미야타.산티 산티 산티.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은 심히 주관적이며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저도 이 글 쓰면서 도대체 내가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얼핏 들기도 했습니다.사실 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가장 큰 병폐는 사람들이 진지하기를기피한다는 점입니다.과거에는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의 변호를 위해 두꺼운 책 읽기를 마다 않는 노력과 진지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책은 커녕 동영상도 분량이 길면 기피하는 시대 입니다.이런 시대를 도래하게 만든 거대한 사회공학의 조작에서 그리스도인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확고한 진리의 반석위에 서 있는 은혜를 누리고 있기에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그 문화속에 교묘히심겨져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그것들을 분별하고 철저히 대적하며단 하나의 혼이라도 더 '길이요,진리요,생명'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인도하는게 우리의 책무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기에 성경과 비교하여 무가치하고 불결한 이런 반기독교적인 현대사상에 대한 공부도 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렘 5:31 대언자들은 거짓으로 대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방법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것을 사랑하니 그것의 마지막에는 너희가 무엇을 하려느냐?   다음엔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신학과 불가분의 관계인 실존주의에 대해 같이 나눠보고자 합니다.아무쪼록 변덕스러운 날씨에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며 에드워드 베이스, 제임스 사이어, 프랜시스 쉐퍼의 저서를 참조 및 인용하였습니다.  
2023-07-16 00:21:57 | 박세원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걸 제대로-확실히-알면 알수록(교리,하나님의 뜻) 사람들의 전통을 따를 수가 없을텐데..싶어요. 그분이 진리로 엄청나신데 거기다 (사람들의 전통에 위로받는) 내 생각을 조금 갖다붙이는 노력?까지 하며 살기엔 지금 이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3-07-11 19:15:58 | 목영주
    특별한 찬양   교회 지붕은 여하튼 철판으로 덮을 것이라   장맛비 억수같이 퍼붓는 날 예배당에 앉아보면 그 까닭 알게 되리   한 장 철판 너머 하늘 우러러 주 찬양할 때면 더욱더 잘 알게 되리라   죄인들의 찬송가 소리 그리고 온 세상 삼켜 버릴 듯한 천천 만만 천사들의 박수 소리   거룩함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노아의 그날 떠올렸음은 지은 죄들 때문이던가    목자의 말씀 선포에 때맞춰 천사들 찬양의 박수 잦아드니 신비 아니면 무엇이랴   내가 듣고 있노라 그 음성 들리는 듯 하더라   주 향한 그리움에 물기 어린 눈 눈 눈들       **********************************************************      그저께 그 주일 날의 그 찬양을 아마도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사랑침례교회 참...지붕까지도 끝내주더군요 찬양 분위기 완전 짱! ^^        
2023-07-11 13:19:59 | 최영오
-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학문-안녕하세요?다들 평안한 주일되셨는지요? 지난 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해 같이 나눌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실존주의는 사실 지난 글 말미에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완전환 확실성 없이 활력을 갖고 행위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우는 것"싱겁지만 바로 이것이 실존주의의 핵심입니다.일단 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를 다루기 전에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에 대해 나눠보고 철학의 질문에 성경은 무어라고 대답하는지 병행하여 적어보겠습니다.전통적 의미에서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며 모든 대상들의 본질을 탐구하는 활동입니다.philosophy: philos(사랑하다) + sophia(지혜)그럼 지혜란 무엇일까요?지혜는 현상을 통해 그 이면(현상 너머)의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력(insight)입니다.또 지혜는 현상하는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본질을 바라보는 능력을 의미 합니다.다시 말하면 외면적인 것을 통해 내면적인 것을 통찰하는 능력입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것이 지혜의 시작(잠 9:10)이라고 했습니다.자 그럼 본질은 무엇일까요?본질이란 만유의 원인이자 목적입니다.만유의 원인: ~때문에,시작,알파,처음성경에 기록된 만유의 원인(창1,2장/사44:6;48:12/요1:1; 1:2;1:3; 1:10/계1:8;1:11; 1:17; 2:8 ; 22:13)만유의 목적:~을 위하여,끝 오메가,마침성경에 기록된 만유의 목적(사 44:6 ; 48:12/요 17:22/계 1:8 ; 1:11 ; 1:17; 2:8; 4:11 ; 5:13 ; 22:13)철학은 본질을 "진리"라고 부릅니다.-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요 14:6; 17:17/요일 5:6)본질이란 모든 현상들,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자 목적을 의미합니다."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와서 모든 것이 그것으로 되돌아가는것"-성경이 말하는 본질 계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존재 이유와 존재 목적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본질에 대한 탐구는 곧 존재론을 말합니다.철학=형이상학=존재론philosophy: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통찰meta-physics: 현상세계의 너머를 탐구하는 학문(형이상학)ontology:본질 탐구는 존재 이유/목적에 대한 탐구(존재론)철학에서는 "진리"를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습니다.본질:essence,wesen근원:origin,arche실체:substance,substanz일자:The One,Das Eins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철학은 곧 형이상학(meta-physics),물리학의 세계 너머를 탐구"철학은 모든 존재자들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이고,본질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이란 곧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 이유와 존재목적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이다."철학은 형이상학이고 형이상학은 곧 존재론 입니다.-형이상학에 대한 성경의 위대한 답변(롬 1:20/ 고후 4:18 /골 1:15,16/ 딤전 1:17 / 히 11:1 ; 11:27)어떤가요?제목에 적어놨듯이 철학은 신학의 발받침이라고 말한것이결코 과언 또는 허언이 아니었음을 여러분도 납득하셨을 겁니다.위대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고민하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성경에 이렇게 완전 무결하게 기록되어 있을 줄 저도 사실 몰랐습니다.진리 그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잠시 뒤로하고 6월 25일 고성국 박사님에 대한 강의에서 몇가지 짚어 보고자 합니다.여러분이 보셨듯 세상 학문중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철학은 신학(성경)앞에서 빌 2:10-11의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지난 6월 25일자  고성국 박사님의 강의 14분 58초 무렵 "절대적인 고독속에서 외로운 개인(단독자)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기독교 신앙"으로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이것은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1894년)'에 나오는 대목입니다(다음에 설명 드리겠지만 키르케고르가 주장하는 신앙은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저는 이부분을 보며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기독교의 교리를 신학자가 아닌 철학자를 통해 들어야만 하다니...키르케고르의 인생이 망가지고 그가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창했던이유도 당시 덴마크는 국가 교회(state church)-루터교를 지향하며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으로 통치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또 고박사님은 칼빈의 '예정설'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믿고싶어도 이미 칼빈주의의 이중예정에 의하면 천국갈 자, 지옥갈 자가 정해져 있어서 죽고 난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야 비로소 자신의 구원의 여부를 알 수 있기에 평생동안 불안에 떨면서 살바엔 신앙갖기를 체념한걸로 저는 생각되었습니다.여러분...저는 솔직히 칼빈이 천국에 갔는지 확신이 안 섭니다.이 칼빈주의는요 이렇듯 그 얼토당토 않는 비성경적인 교리로 인해유신론적 실존주의가 더 기독교 신앙에 가깝다는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칼빈주의는 기독교(복음)라는 진리를 종교 또는 철학으로 격하 시켜 버렸습니다.이 칼빈주의를 신봉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할 필요도 없으셨고 하물며 그분의 대신속죄를 왜 믿어야 하는지 퀘스천 마크 입니다.믿든지 아니하든지 이미 다 정해놓으셨는데 말이죠.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성경적 구원의 확신과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견뎌내야 할 그리스도인이 불안과 절망에 떨며 유신론적 실존주의라는 철학에 의탁해야 하는 비극이 말이 됩니까?존경하는 고(故) 구영재 선교사님의 책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52-3p에 가서 보면 에스텝(Estep) 교수는"교회의 타락에 대한 재침례교도들의 해석은 개혁자들과는 매우 다르다. 개혁자들은 분명히 콘스탄틴 시대를 교회의 승리의 시기로 보는 로만카톨릭 교회의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중략)그들에게 있어 개혁이란 교황권에 대한 반동이었지 로만카톨릭교의 제도로서의 교회의 개념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중략)그들은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는 믿었지만 교회라는 전체적 일치감에서 제외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로만카톨릭교회와 완전히 분리된 이후에도 그들은 계속 개혁 이전 로마교회와의 연속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 당시 개혁자들은 개혁 이전의 교회조직을 교회가 아니었다고는 보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재침례교도들이 개혁자들을 완전한 개혁자로 보지 않은 이유였다".군더더기 없는 비평입니다.간단하게 요즘 개혁신학자들의 성경 무오성에 대한 입장만 봐도 답이 나오는 부분입니다.개혁신학이 과학과 철학, 현대주의의 맹공에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잠식되가고 있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필요 없습니다.국내에서 주류 교파,주류 교단이라는 선민의식에 도취되서 성경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가르치기 보다는 칼빈주의만이 진리라고 믿으며허구한날 "칼빈이 나의 목자시요, 칼빈께서 이르시되..."를 남발하는 개혁주의 진영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갈라디아서 1장 6절 말씀은 칼빈주의를 경고한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사료됩니다.좀 두서가 없었는데요...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나눠보도록 하며다음 말씀과 함께 글을 맺을까 합니다.골로새서 2:8 어떤 사람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 그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    ※ 전통적인 의미에서 철학의 정의에 대한 것은 부산대 철학과 정진우 교수의 영상을 참조하여 인용했습니다.
2023-07-10 22:09:50 | 박세원
안녕하세요.직장때문에 중국에서 19년을 지내다가 2022년3월에 전가족이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하였습니다. 정동수목사님 설교말씀을 중국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고1아들과 중2딸을 위해 요번 설교하시기 전에 <수학싸부> 인강을 안내해 주셨는데, 신청 방법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잘 부탁드리겠습니다.
2023-07-10 17:21:04 | 김성재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걸 안다면 옳고,맞는 것만 따르면 되기 때문에 갈등이 없어 편안하다는 득이 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먼저 우리 몸 면역체계 하나만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창조주가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도 생각분별 잘 해야 덜 힘들텐데 점점더 생각의 부재가 심해지는 세상시스템에서 요즘 우리 아이들이 많이 불쌍해요.. 
2023-07-10 16:02:26 | 목영주
-빠져 나올수 없는 심연속으로- 먼저 형제 자매님들 가정이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혹시 여러분들은 '철학'하면 어떤게 떠오르시나요?더 없이 화창하고 푸근한 봄날 백주 대낮에 공원에서 다른 이들이 각자 거닐때 잘 차려입고 안경낀 신사가 곰방대를 물고 세상 가장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고 턱을 괴고 벤치에 앉아 고뇌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아니면 후줄근하게 보이는 청년이 야심한 밤 골방에 촛점없는 눈으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천장을 응시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떠오르시나요?이처럼 '철학'하면 우리가 그 정의를 명확히 몰라도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그림이 그려집니다.그러면 '철학'이란 대체 뭘까?20세기 위대한 지성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이 '철학'의 정의에 대해 말한걸 한번 들어볼만 합니다.     Q:철학의 정의란?A:아직은 엄밀한 지식으로 정립되기 불가능한 문제들에 대한 추측들.Q:철학과 과학의 차이점 이란?A: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철학적 문제 들은 철학에서 과학으로 지속적으로 이행해 가고 있음.Q:철학의 유용한 점은?A:첫째는 과학적 지식이 아직 다룰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활발한 추측을 지속하는 것이다.과학적 지식은 인류가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만 할 문제들 중 일부분만을 다룸.오늘날 과학이 답변을 하지 못하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아주 많은 문제들이 있음.세계에 대한 상상의 영역을 가설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철학의 용도 중 하나인것.둘 째,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다고 여겼던 문제들과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음을 보여준다.우리가 앎에 이를 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유를 지속하게 해주며 앎처럼 보이는 것이 어떤 점에서 앎이 아닌 지를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것이다.Q.철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의 시녀 같은 것이 되는 건가?A:철학은 과학의 일부이나 시녀는 아니다.과학이 다룰 수 없는 수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임.가치와 관련된 모든 물음들을 예로 들면, 과학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려주지는 못할 것 같음.Q:철학의 미래는?A:과학의 발전은 철학의 중요성을 불가피하게 약화시킬거라 생각 됨.Q:철학의 가치를 요약한다면?A:첫째, 현재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아주 광범위하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도록 함.둘째, 사람들을 좀 더 지적으로 겸허하게 해준다는 것....저는 버트런드 러셀 만큼 철학에 대해 간단 명료하게 정의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또 그는 "언어가 시인의 손에 들어가면 꽃이 되지만, 철학자의 손에 들어가면 잘 훈련되고 조직된 군대가 되더라""사람들은 세상 무엇보다 생각을 두려워한다. 파멸보다, 심지어 죽음보다 생각을 두려워한다. 생각은 전복적이고 혁명적이며 파괴적이고 잔인하다. 생각은 특권과 안정된제도, 익숙한 관습을 봐주지 않는다. 생각은 아무 두려움 없이 지옥을 깊숙이 살핀다. 생각은 위대하고 신속하고 자유로운 세상의 빛이자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이다""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사회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매사를 의심하는데 바보들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는 것이다.""우리들은 모두 세상을 자신의 선입관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상반된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동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죠. "와 같은 생각하기를 기피하고 거부하는 불신자들과 sunday 크리스천들에게 해주고 싶은 주옥 같은말을 하기도 했습니다.물론 러셀은 대표적인 반기독교적인 인물입니다.그러면 우리는 버트런드 러셀의 인터뷰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추론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철학 속에 어떤 '의도'가 내재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혹은 어떤 '의도'로 철학을 전개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목적지와 활용 방법이 결정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저는 철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되었다면 예외없이 그 누구라도 성경을 읽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철학자의 본분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것을 넘어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습니다.과학 낙관주의가 붕괴된 세계 양차대전 후 불안과 절망에 휩싸인 수많은 사람들이 러셀에게 편지로 문의 하였다고 합니다.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지침들(추측컨대 성경에서 말하는)을 올바른 행위로 받아들이길 그만두고 어떻게 스스로 행동해야 할지 이제는 완전히 모르겠다고 하는 내용들로 말이죠.그래서 러셀은 전적인 확신을 적대시하며 그가 추구하는 철학의 용도와 유용성은 확신이라는 것이 자리하는 것을 엄금하며완전환 확실성 없이 활력을 갖고 행위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우는 것(도약)이라고 말이죠.이것은 바로 인본주의의 출발점인 '이성에서의 도피'와 '비(非)이성으로의 도약'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러셀을 비롯한 지성인들,사상가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한 시대(modern times)가 저물고 또다시 이들의 헛된 철학(과학 낙관주의)이 처참히 실패했을때 우리는 미국에서 일어난 근본주의 운동으로다시 그들을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다고 기대에 부풀었으나 하나님께선 자신의 전체 계획을 위한 직선적인 세계 경영통치를 그닥 늦추고 싶진 않으신것 같습니다.사탄과 그의 추종세력들이 자신들이 승리했으며 지금같이 그들의 시대가 영원할거라고 착각할 동안우리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끝나가고 있고 곧 심판이 닥치리란걸 알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인간 이성,도덕을 상실한 지금의 시대를 우리는 포스트 모던(post modern) 또는 포스트 포스트 모던(post post modern)시대라고들 합니다.그리고 현 시대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 철학은 실존주의(existentialism)입니다.대중문화와 사회 현상등을 통해 누구라도 인지 하고 있는 사실이지요.다음번엔 현재 만연한 포스트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해 많이 부족하지만 간략히 적어 보고자 합니다. -벧후3:8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벧후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2023-07-09 21:09:05 | 박세원
진화론 인본주의로 가득차서는 허무주의,출세지향,물질만능주의,비교의식..단어들을 모두다 피하며 살아간다는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네요. 참기쁨,진심인 감사는 복음안에 그리고 진리안에 있다는 걸 모르는 우리아가들(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제일 마음 아프네요..
2023-07-01 13:00:04 | 목영주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 끼치고 있는 영향-     프랑스어<D'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영어<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 긴 제목의 작품은 폴 고갱(Paul Gauguin, 1848년 6월 7일~1903년 5월 8일)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그는 이 작품을 1897년 타히티에서 사랑하는 딸 알린느의 죽음에 대한 충격, 극도의 궁핍과 건강의 악화로 인한 절망속에서 자살을 기도하면서 마치 유서를 작성하듯 일년을 걸려 이 대작을 완성한 뒤 그는 산 꼭대기에 올라 음독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습니다.이 작품은 지난 50년간 단 세 번의 외유만 가능했던 보스턴 미술관 소장작품입니다. 2013년, 마침내 3년간의 섭외 작업 끝에 극적으로 국내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된 고갱 예술의 백미이며 당시 평가가치 3천억원 이라는 단일작품으로는 천문학적인 가치가 매겨졌습니다.미술작품 사상 이보다 더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 있을까요?안타깝게도 고갱은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온 곳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갈곳도 없다..."라고 말이죠.고갱은 1901년 매독과 영양실조,모르핀 중독등으로 회복이 불가한상태에 이르렀고 1903년 매독 말기에 찾아온 정신착란 증세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긴 제목의 고갱의 작품을 철학의 언어로 다듬으면 이렇게 바꿀수 있지 않을까요?-(인간이라는)존재의 기원, 존재의 인식, 존재의 최후- 이렇게 말이죠.절정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계몽주의를 거쳐 완숙기로 가고있었는데, 르네상스 인본주의에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자율적인 존재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흐름이 지속되면서, 현대적 근대과학에 이르러선 사람은 존재의 기원과 그 이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지질학자였던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1797-1875)이 지질학에서 자연 원인의 제일성과 동일과정설을 특히 강조해 물꼬를 틔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 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라이엘의 생각을 생물학적 생명의 기원으로 확장 시켰습니다.이것은 바로 존재의 기원에서부터 비이성(非理性)의 영역으로 치닫기 시작하니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성과 근본적인 삶의 목적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사람이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의 전체 계획안에서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창조 되었으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롬 8:29/ 엡 4:13 에 잘 나타나 있음).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우리의 운명, 즉 7-80년 이라는 짧은 생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하고 절박한 고뇌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아예 괘념치 않게 됩니다.결과적으로 이것은 도덕과 가치 판단이 붕괴됨에 따라 인간성(人間性)을 상실한 야만인이 되어 되려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으며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젠 짐승들에게 배워야 하는 지경(욥 12:7)에까지 이르게 된것입니다.우리는 이 세상 모든것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것은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Chirist's an imminent of second comming)의 징조 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현재의 과정이 영원히 동일하다고 사람들을 속입니다.성경은 이미 이런 진화론에 타협적인 기독교인(유신진화론자,무천년주의자,후천년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예견했습니다.벧후 3:3-4 먼저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 정욕을 따라 걸으며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부터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이 어떤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보신대로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은 전세계에 만연된 도덕적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으며 그 해악은 통계기간을 길게 잡으면 잡을수록 처참하기 이를데 없습니다.그러면 이 모든게 진화론이라는 사이비 과학 가설이 불러온 문제냐 하면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작은 누룩 하나가 온 덩어리를 뜨게 할진대 이미 진화론 이전에 신학과 철학의 분야에서 진화론이 뿌리 내릴수 있는 악의 토양을 조성했기 때문입니다.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기원은 어디입니까?또 우리는 무엇입니까?그 답은 오직 성경만이 말해줍니다.창 1:26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어...(중략)창 1:27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고 남성과 여성으로 그들을 창조하시니라.창 1:31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보라, 매우 좋았더라.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니라.하나님 께서는 단 두 구절에 네 번이나 강조하시며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되어있습니다.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5일에 걸친 창조 기간동안 온 우주를 창조하시며 좋았다고 하시지만(it was good)여섯째 날 비로소 자신의 형상(image)대로 지으신 사람을 창조하시고서야 매우 좋았더라(it was very good)라고 말씀하십니다.창세기 1장에 벌써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존재의 기원), 우리는 무엇이라는 것(존재의 인식)에 대한 답을 벌써 얻었습니다.따라서 우리는 온 우주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이 입증 되었습니다.왜?바로 우리는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또 한번 확증해 주십니다.창세기 3장에 기록된 대로 우리는 우리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사망의 운명에 처한 우리를,우리를 지으신 그분 곧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모든 피와 물을 쏟고 죽기까지 하시며 사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이제 고갱의 마지막 질문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남았습니다.성경은 말합니다. 값없이 주신 그 분의 은혜를 믿고 받아들인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종착지가 영원히 다르다는 것을요...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그리스도인이 왜 죽을때까지 공부해야 되는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고후 10:5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힘든 시기 , 힘든 계절입니다. 늘 주 안에서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을 쓰며 이재만 선교사의 세미나와 책, 헨리 모리스 박사의 저서, 프란시스 쉐퍼의 저서를 인용하거나 참조 했습니다.    
2023-06-30 18:43:27 | 박세원
-과학이라고 호소하는 진화 가설(假說), 그 거짓의 산(山)-연세가 있으시고 성숙하고 신실한 신앙을 가진 성도분들이라면 오늘날 진화론이 정설로 둔갑해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는것에 대해 기가 막힐 겁니다.'아니 요즘 애들은 얼마나 넋이 빠져있으면 진화론 따위를 믿고 있어?!'라고 말이죠. (사진 - 진화론이 사실이고 성경이 거짓이라고 일주일 내내 온종일 학교에서 세뇌받고 매주 신앙이 약해지는 아이들) (사진- 진화론 그 자체랄 수 있는 생명의 나무)   (사진 -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지질 시대표) (사진- 진화론을 떠받치는 기둥은 모두 가설에 의한 것이라고 풍자하는 그림)   간추리자면 생존경쟁,적자생존,돌연변이,자연선택 등이 진화론의 요(要)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진화론을 포함한 현대 과학주의를 잉태한 근원적인 토양은 바로현존하는 과정들이 영원한 과정들이므로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들도현재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가정해온 "균일설 또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의 철학인 것입니다.   ※ 찰스 다윈은 비글호 여행 기간 동안에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읽고, 자신의 진화론이 작동되는데 필요한 오랜 시간을 확보했습니다. 여담으로 이 동일과정설은 카톨릭과 개혁주의에서 주장하는 종말론인 후천년설,무천년설과 불교의 윤회사상(輪廻思想)또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개인적으로 사료됩니다.요즘 심심치 않게 Karma(업보)와 Circle of life(삶의 순환) 라는 말을 접할 수 있습니다.크리스천이든 아니든 양심과 진지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화론의허술함에 대해 깨달을수 있을 것입니다.과학계에선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과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현대과학의 실험과 발견은 압도적으로 창조를 지지하고 그 증거들을 발견해가고 있는 중입니다.진화론자들은 다음의 3가지 문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전이 화석의 부재                               (사진 - '종의 기원(1859)'을 썼던 찰스 다윈도 1872년에 출판된 6번째 판 챕터 10.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 에서 " 지질학은 그런 훌륭한 단계적 고리를 제시 하지 않는다. 이는 진화론의 분명하고 치명적인 반론이다."라고 고백)     둘째, 종류(kind)변화의 부재           ...혹자는 말합니다. 1865-66년 발표된 맨델의 유전법칙(우열의 법칙,분리의 법칙,독립의 법칙)이 조금만 더 빨리 학계의 주목을 받았더라면지금과 같이 진화론이 득세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죠.   맨델의 완두 교배 실험도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를 확증해 주는 것 이었습니다.한 종류(kind) 안에서 유전적인 재조합에 의해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을 우리는 변이(variation) 라고 합니다.다윈과 그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변화는 사실 종류가 변화하는 진화가 아니라 한 종류안에서 다양해지는 변이에 불과한 것입니다.진화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소진화(microevolution)-변이와 돌연변이가 무수히 반복되면 대진화(macroevolution)가 발생한다는 것은 여전히 관찰된 증거가 없습니다.성경에 가서보면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1-12,21-25절에서 이르시길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을 그것의 종류대로(kind)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스트롱 성구사전에 가서 보면 'kind'는 코드번호 4327으로써 성경에 구약에 31번 사용되었고 히브리어로는 מיין (miyn)이며 그뜻은 'species-종'입니다.20세기에 들어 유전법칙이 생물학계에 보편적으로 인정받으면서 그전까지는 형태에 의한 분류를 했으나 현재는 개체사이에 교배가 가능한 무리를 지칭하는것으로 정착되었습니다.  호랑이,사자,고양이는 기존에 다른 '종'으로 분류되었지만 염색체 숫자가 38개로 동일하며 서로 교배 할 수 있습니다.이처럼 교배의 한계로 정했을 때 가장 가까운 생물학적 분류단위는 '과(family)'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물분류학자들은 기존의 형태에 의한 분류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호랑이,사자,고양이를 다른 '종'으로 분리시킵니다.창세기는 하나님이 각 개별 종(species)들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속(genus/miyn)을 창조하셨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각 속들 안에,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수한 종들로 분리되는 것(종의 분화-speciation라고 불리는 과정)이 가능하도록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청사진을 집어넣어 놓으신 것입니다.   셋째, 유전정보 추가의 부재   진화의 3R : Rearrange(재배열), Remove(제거), Ruin(파괴) =새로운 정보가 없다=진화가 없다진화론에 의하면, 돌연변이(mutations)가 일어나 자연이 생물들을 선택할 때, 새로운 생물학적 정보(new biological information)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생존 경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연 환경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모든 돌연변이가 유익하기 보다는 99.9%유해한것이라고 으뜸가는 진화론자들 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며 돌연변이로 인해 생긴 변종들은 그대로 놔두기만 하면 거의 모두가 사멸되거나 자기 조상의 형태로 복귀 되거나 합니다.그러므로 신 다윈주의자(neo-darwinists)들의 최후의 유일한 소망인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정보의 증가의 사례는 불가능하며 전무합니다.마지막으로 진화론자들이 무질서와 무기체의 세계로부터질서와 조화로운 우주 및 유기체로 발전되어가고 있다는 거짓 주장에 대해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매우 효율적인 반론 중에 하나 입니다.진화는 모든 과정들이 "질서의 증가"쪽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가설이고 엔트로피 법칙은 모든 과정들이 "무질서의 증가" 쪽으로 향하는 우주 법칙인데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 될 수 밖에 없습니다.그런데 열역학 제 2법칙은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근본 원칙이라고 과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 실험적으로 수없이 입증되었고, 모든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법칙은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너무나 확실한 법칙입니다.그러면 진화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반론을 제기 합니다.하나는 열역학 제 2법칙은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매우 유한하고 국소적인 곳에서만 관찰가능 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적용의 보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합니다.그러나 이 법칙은 언제,어디서든간에 과학적인 실험을 거치기만 하면 예외 없이 항상 옳다고 증명 되었습니다.또 하나는 열역학 제 2법칙이 소위 "고립계(isolated systems)"에서만 적용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지구 자체는 하나의 열린 계로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진화적 과정과 이 과정이 수반하는, 계속 증가하는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힘의 근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물론 이것역시 철학적 주장으로서 열역학 제 2법칙이 형식적으론 이상적인, 고립계라는 조건으로 정의되어 져야만 하는게 사실이지만그것은 언제나 "열린 계(open systems)" 위에서만 시험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는 진짜로 고립계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리고 열역학 제 2법칙은 고립계든 열린 계든 상관하지 않고 어디에서 시험을 받든지 항상 옳다고 증명됩니다.바로 이 이유로 인해 기계나 생명체들이 노후되고 노화되어 100%효율을 발휘할 수 없고 영구운동이 불가한것입니다.어떤것들은 일시적, 국소적으로 질서와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그 끝은 이 법칙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입니다.  당연히 성경 속(시편 90:6; 102:11 ; 102:26/사 40:7;51:6/히 1:12/벧후 3:11-12)에서도 열역학 제 2법칙을 엿볼수 있습니다.이상으로 진화론과 그 허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습니다.진화론에 관한 반증자료와 증거는 너무나 방대하고 현재까지도 계속추가되고 있습니다.이 글을 적으면서 거의 대부분의 자료와 글들을 인용했는데 출처는• 한국 창조과학회 사이트(https://creation.kr/)• 창조과학 선교회의 이재만 선교사의 책과 세미나(안타까운 것은 이분은 자신의 은사랄수 있는 헨리모리스 박사의 KJV 사용의 당위성 전승의 부재,정통 기독교회사와 로만 카톨릭 교회사의 구분 부재 등이 있고 인용에 관한 몇몇 오류가 존재합니다)• 헨리 모리스 박사의 저서위와 같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진리와 신앙의 수호를 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믿음의 선진들께 늘 감사한 마음뿐이며아울러 부족하고 아둔한 글이 형제,자매님들의 시간을 뺏지 않았길 간구하며 늘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2023-06-27 18:50:14 | 박세원
형제님, 확실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은귀가 있어도듣지 못하고, 안 들으려하고,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 같아요. 올바른 것을 듣고 깨닫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올바른 것 자체가 싫은지 비트는 부류도 있어요. 너무 교만해선지 절대로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2023-06-23 06:30:10 | 이수영
먼저 킹제임스 성경과 사랑침례교회로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며 형제,자매님들 더워지는 날씨에 늘 주 안에서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요즘 크리스천 진영 내.외부를 막론하고 근본주의자 하면 반(反)지성주의자로 매도당하고 낙인 찍는 참으로 비(非)이성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사실 조금만 진지하게 접근해보면 반(反)지성적인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럼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자면, 밥 존스 대학 교리사 및 교회사 교수 였던 데이빗 빌 박사에 의하면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사람들을 접하기를 갈망하며, 성경 전체를 절대적이고 무오하고 권위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옹호하며, 거룩의 교리와 실천에 확고히 선 사람이다."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근본주의자들이 신봉하는 근본교리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성경의 무오성(Biblical inerrancy)과 축자영감(verbal inspiration)-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Biblical miracles)-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Christ's virgin birth)-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Christ's deity)-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Christ's substitutionary atonement)-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Christ's bodily resurrection)-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Christ's an imminent of second coming)성경에서 말하는 중요한 교리들이 많이 있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이 환원시킬 수 없고 줄일 수 없는 최소한도의 교리들을 근본교리들(the fundamentals)이라 합니다.그런데 교리 중 가장 첫째요, 으뜸이랄 수 있는 성경 무오성에 관해근본주의와 개혁주의 간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카톨릭과 개신교 쪽에선 이 성경 무오성에 관해 하나님의 복음을 담은 성경이 인류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에 완전함을, 흠 없음을 강조하는 신학적 개념의 용도로 정의하고,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예수님의 선포(마 5:18)처럼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딤후 3:16)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전체 계획을 위한 특별 계시로써 단 한글자도 틀림이 없고 오류가 없는 완전한 사실이라고 믿습니다.우리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모든 존재(특히 인간)의 기원에 관한 물음에 관한 답을 바로 성경의 첫장에서 부터 볼 수 있습니다.그것도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루 24시간 또 6일을 사용하셔서 온 우주와 인간을 창조(창 1장/출 20:11)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6일 창조를 믿고 또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께서 그 창조주 하나님 이란것을 알게되면 그 분의 대신속죄 또한 어렵지 않게 믿게 될 것입니다.헌데 애석하게도 개신교계 내에서 이 근본적인 신앙,문자적 성경해석을 반(反)지성주의자 들로 매도 하고 있습니다.그런데 말입니다...개혁신앙의 시초랄 수 있는 루터와 칼빈은 뭐라 말했을까요?루터는 " 모세는 우리에게 6천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라고 했으며칼빈은 "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한순간에 완수하시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께서 작업을 6일간 나누어 하셨다는 것은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이래도 하나님의 6일 창조와 인류 6천년 역사에 관한 문자적 성경 해석이 안식교의 그것이라고 감히 용감하게 말해도 되는건가요?누가 반(反)지성주의자 인가요?크리스천이라면 칼빈의 말처럼 '왜 하나님이 굳이 6일이나 걸리셔서 세상을 창조하셨을까?'라고 의문을 가지는게 정상 아닐까요?구태여 여기에 카톨릭의 그것처럼 비유적,풍유적 해석을 함으로써유신진화론(간극이론 포함)같은 이단 사상을 교회에 스며들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이유가 뭘까요?하나님께 너무 어려운 일(창 18:14/렘 32:17,27)이 있나요?우리가 성경을 왜 믿을까요?여러 이유들을 들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성경이 바로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저명한 신학적 자유주의자로 유명한 컬솝 레이크는 근본주의는 사실상 정통 기독교와 동의어라고 일찍이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는 "교육은 받았으면서도 역사신학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지만, 근본주의가 새롭고 생소한 형식의 사상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기독교인들에 의해 한때 보편적으로 신봉되었던 신학의 잔존물인 것이다.근본주의자가 틀릴 수도 있으며 , 나는 그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통에서 떠난 것은 우리이지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권위를 기초로 하여 누구든 근본주의자와 논하려 드는 사람의 비운을 나는 안타깝게 여긴다. 성경과 교회의 신학체계는 근본주의 편에 있다."햐...보시다시피 자유주의 신학자의 진술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통 개혁신앙 한다고 떠드는 사람들보다 훨씬 솔직하고 양심적이라고 느낀것은 저 뿐만이 아니겠지요?'종의 기원(1859)'을 썼던 찰스 다윈은 1872년에 출판된 6번째판 챕터 10.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 에서 " 지질학은 그런 훌륭한 단계적 고리를 제시 하지 않는다.이는 진화론의 분명하고 치명적인 반론이다."라고 고백한것과 오버랩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보며 우리는 왜 최종권위가 '오직 성경' 이며 올바른 성경(KJV)을 문자적으로 올바르게 읽고 해석(문자적 성경해석 또는 세대주의)하는 근본주의 신앙을 고수 할 수 밖에 없는지 적어보았고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좀더 나눠보고자 합니다.   -시11:3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로운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2023-06-22 19:28:04 | 박세원
안녕하세요?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미국 현대 교회사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랑침례교회에서 추구하는 이른바 근본주의 신앙과 복음주의는 교리ㆍ신학ㆍ거룩의 실천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복음주의는 결국 혼합주의와 종교 다원주의로 귀결된다는것을 우리는 미국의 교회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점에서 팀 켈러와 존파이퍼는 개혁신학(칼빈주의) 복음주의의 노선을 걷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의 저서와 가르침이 얼만큼의 유익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다만 이들이 향하고자 하는 신앙의 종점은 순수한 기독교회랑은 차이가 있다는걸 말씀 드렸을 뿐입니다.   성도 개개인의 신학적 깊이와 분별력은 다 차이가 있고 누구든지 자신의 신앙을 과신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제 글이 의아하시다면 사도들이 직접 개척했던 초대교회들이 현존하고 있는지 돌아볼것이며 가깝게는 미국에서 근본주의 신앙을 추구했었던 신학교와 교회의 변천사를 보면 알수 있을것입니다.   글을 맺자면 자매모임 하시는 자매님들께  제 글이 불편함을 유발했다면 사과드리며 저는 단지 팀 켈러를 비롯한 대중적인 목회자들이 우리 생각만큼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 순수한 분들은 아니란걸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늘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2023-06-13 12:43:25 | 박세원
박세원 형제님도 서두에 말했듯이 좋은 쪽으로 기여한 바가 있지요.  우리는 목사님이 늘 말씀하셨듯이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기에 100%좋은 사람없고 , 100%  다 나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올바른 길을 갔는데 끝에는 이상해지는 일이 다반사다보니 형제님이 염려하시는 것이지요~ 좋은 면은 취하되 그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니까  염려 마세요^^ ,
2023-06-13 10:25:24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