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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제 광고 드린 대로 허춘구 형제님 어머니께서 소장 문제로 입원 중이십니다.   소장이 막혀서 의사가 소장을 뚫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체력이 수술을 감당 못해서차선책으로 추를 매달아 위장까지 넣었다고 합니다.   연세가 많으세요.   형제님 어머니와 온 가정이 힘을 얻도록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4-03-31 11:48:20 | 관리자
주님의 사랑스런 열 다섯 왕자님.공주님들의 은혜로운 찬양 잘 들었습니다. 먼 훗날 이 영상을 보면서, 어여쁜 믿음과 작은 입술로 주님이 나의 삶을 다스리시고 인도해 주심을 고백했던것을 기억하고, 난 항상 주님만 찬양하겠다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로 더욱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잘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절-아버지 큰사랑 감사해요. 내게 독생자를 주셨네 나를 가까이 부르신 주를 찬양. 나의 눈떠 보게 하셨네 2절-예수님 내삶의 주 되시네. 내 맘에 불을 붙이셨네 나의 모든삶 새롭게 변화됐네. 주님의 길로 인도하네 3절-성령님 거룩한 영이시여. 나의 모든것 다스리네 나는 주님의 손길을 원합니다. 난 항상 주만 찬양하리
2014-03-30 22:21:27 | 장용철
형제님,자매님.또한 청년 자매님 반갑습니다^^ 오늘에야 확실히 오형제님가정을 알았습니다 자매님의 눈치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바른교회에서 한 지체됨을 감사드립니다.
2014-03-30 20:56:35 | 최은희
내가 잘못 알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유대로 들어가자, 하시매 그 분의 제자들이 그 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최근에 유대인들이 돌로 선생님을 치려 하였는데 또 거기로 가시나이까? "(요11:7,8)   본문에서 제자들은 하필이면 어려움을 겪었던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그리로 가시려 하시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말씀이 틀릴리가 없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오히려 그 분께 해가 될 것 같아 보이더라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불순종이야말로 예수님께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주님의 명령이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내 생각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혹시 그 일이 주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시는 것을 막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충성하고 있습니다. 과연 제대로 주님의 뜻에 충성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그 분의 말씀만을 믿고 걸음을 내딛는 것을 의미합니다.(마14:29) 나의 생각에 대한 충성은 먼저 내 생각을 앞세워 모든 것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신뢰입니다.   당신은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걸음을 내딛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까? 그냥 기쁨으로 단순하게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때 너무 따지지 마십시오.   당신은 주님께 충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주님의 말씀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생각을 주님의 말씀에 덧붙이고 있습니까?   "그 분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2:5)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2014-03-29 19:09:28 | 박진태
형제님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도 알려주시면 더 좋지요~ 누구도 자기 뒤통수는 보지 못하기에 거울이 필요하지요. 거울이 보여주는것이 제모습이지만 여러가지로 왜곡으로하는것이 사람인 것같아요. 부모가 자식을, 조부모가 손자를, 남편이 아내를,자부심이, 자만심이..... 정직하게 보여주는 대로 보는 것도 지혜인것 같아요.
2014-03-29 09:02:38 | 이수영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내가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시편 30:6)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해마다 좋은 날씨 덕분에 풍년이 되고, 벌이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려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온 가족이 항상 건강하고 화목한 가운데 아무 걱정없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합시다.   누구든지 이렇게 항상 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가 설사 지금까지 살았던 성도들 중 가장 훌륭한 성도라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건방져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 훌륭한 다윗조차 형통한 삶이 계속되자,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고 어리석게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다윗보다 조금도 더 낫지 않습니다. 아니 그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존재들 아닙니까?   혹시 지금 잘 나가고 있습니까? 조심하십시요.   가는 길이 웬지 계속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합니까? 그렇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요. 하늘에 한 점 구름도 없이 맑은 날씨만 계속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형통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늘 행운이 따른다면 우리는 그 성공과 행복에 도취되어 목에 힘을 주면서 엄청 잘난 척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세상적으로 계속 형통하기만 하는것은 오히려 아주 무서운 시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통들에 대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연단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둔해지면서 차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때문에 주시는 속 깊은 선물입니다.   "스펄전의 365일 묵상 중"
2014-03-28 23:21:20 | 박진태
경건서적중 읽은 내용중에 오랬동안 은혜받은 글을 올립니다.   주께서 심판하신다.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 5:10)   바울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드라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정결한 빛 가운데 살아가는 법을 안다면,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이루어주신 놀라운 일들을 기쁨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항상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해 주님과 계산해야 되는 그 순간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일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실족할 수 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죄의 완고성입니다. 죄가 우리 속에 끈질기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필코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애를 쓰고 기도해도 계속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게 됩니다. 죄의 대가는 우리가 그 죄에 점점 더 익숙해지며 그 죄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안 될뿐더러, 차츰 그것을 죄로 여기지도 않게 됩니다.   이런 죄와 싸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단순히 죽는데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안에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 2:20)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때  그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빛 가운데 사는 것은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주님처럼 매순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가장 치명적인 바리새주의는 위선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입니다. 자신은 죽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2014-03-28 22:49:13 | 박진태
본문: 148*210 288쪽 가격: 14,000원 구입:생명의 말씀사 들어가는 글   제1부   황금의 집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제1장  구원의 설계자제2장  구원에 있어서의 율법과 은혜제3장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곳   제2부   성막 뜰지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구원 계획제4장  누구든지 나아올 수 있다제5장  보혈의 기초제6장  성막의 지붕제7장  해달의 가죽과 신발제8장  말뚝과 줄제9장  십자가의 그림자제10장  하늘에서 내려온 불제11장  물두멍   제3부   성소와 지성소그리스도의 보혈 아래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영광제12장  하나님의 집에 있는 기구들제13장  금 등잔대제14장  기도하는 곳제15장  찢어진 휘장제16장  오직 하나님과 단 둘이제17장  피 아래 있다제18장  죽음과 부활   제4부   피의 집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오묘한 그림자제19장  피의 집제20장  하나님의 증오제21장  피로 화목되었다제22장  우리의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제23장  피의 신성함제24장  속죄일
2014-03-28 15:59:48 | 관리자
한 번 보고 판단(분별)을 해 볼까도 했는데, 그럴만한 가치도 없겠어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세상의 주목을 끄는 것은 배후가 마귀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되네요. 세상의 문화가 다 그렇지만 특히 영화는 거의 대부분 진리안에 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겐 멀리해야할 쟝르인것 같아요. 좋은 정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3-27 15:52:26 | 김상희
50대 자매님들과도 얘기했지만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겨울 김장김치도 맛있게 잘 먹었는데 식구가 많다보니 벌써 소진이 되었군요. 박목사님까지 애쓰신 형제 자매님들께 고마운 마음 전할 뿐입니다. 맛있는 김치를 생각하니 군침이 도네요.ㅎㅎ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03-27 15:41:39 | 김상희
용기(?)내어 노아를 본 소감을 적어봅니다.     영화 "노아"를 봤다.그런데 참 씁쓸했다.어떻게 물의심판, 구원의 예표를 그렇게 설정할 수 있단 말인가?? 타락한 천사 루시퍼가 노아를 도와준 결과 다시 승천하는 거 하며,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인듯, 그러니까 인간은 루시퍼의 도움으로 구원받는다는 메시지) 방주에 들어간 왠 짝도 안맞는 6사람과 불청객, 무분별한 동물들 하며,구원의 방주에서 칼부림 하며 싸우는 건 또 뭐며,쌩뚱맞게 쌍둥이 자매출산과 여자 아기를 죽이려는 노아의 고뇌하며,홍수심판에 대한 의미부여 없는 하늘의 무지개 하며.... 이 외에도 자세히 보면 왜곡 투성이다. 물고기가 진화하고, 괴물들이 방주를 짓고, 므두셀라가 기적을 일으키고, 홍수로 인해 그가 죽고, 비둘기는 그냥 나뭇가지(잡아 뜻은 게 아니라)를 물고 날아가고 노아가 벌거벗은 현장에 며느리가 서 있고, 아라랏산의 모습까지도.... 정말 완전히 성경과 다른 노아다.하나님은 노아를 의인, 완전한 자,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자(창6:9)라 칭하고 있다. 그런 노아를... 어두운 현 세상, 구원의 희망으로서 방주를....   예수님의 몸이 채찍에 찢겨 나갓듯  성경이 난도질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아무리 영화라지만이렇게 성경내용을 왜곡해도 되는걸까???하나님은 계22:18~19절 말씀에서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이렇게 엄중히 경고하시지 않았던가??   앞으로 이와 같은 성경인물을 다른 영화가 시리즈로 개봉될 예정이란다.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분별력이 더없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2014-03-27 10:03:24 | 김민수
위에 말씀하신 고인께서 살아계실때 그분의 설교를 몇 편 접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교회의 문제를 용기있게 공감되는 표현들로 잘 지적하셔서 매우 존경해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 귀국하신 이후 저의 가까운 친척중에 그 교회를 출석한다하여 그들의 요청으로 분별을 위해 그분의 설교를 다시 들었을때 저는 원어를 사용한 영해가 너무 심하며, 지적인 우월감은 위험수준임을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 친척은 제 말을 수용하지 않았고, 대개 그렇듯이 자기가 믿고싶은 것들을 고수했지요. 저는 그 교회 출석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조심할 부분은 있다고 몇번 더 말해줬는데,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께 대한 확신과 믿음이 너무 강해서 사이만 나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뒤부터는 저는 농담반 진담반 제 친척에게 너는 예수교가 아니라 'ㅇㅇ교' 신도라고 농담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분의 비디오를 틀어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가운데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영에 말씀하신다는 것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위에 언급한 것 외에는 고인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또 고인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 자체가 온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인에 대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위의 글을 읽고 오해가 생길수 있는 한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고인께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근본주의 신학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세대별로 성경을 나누어 이해하는 관점이나 문자적 해석의 원칙면에서도 전혀 다른 입장이며, 다만 현대 지역교회들의 종교놀이와 성경을 벗어난 병폐들에 관한 지적에서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 정도입니다. 또한 제 개인적인 확신 가운데 하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서로 섬기고 서로 사랑할 존재이지 결코 의지하거나 전폭적으로 따를 대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사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주목하시고 이 땅에서 연약함에 쌓여 계실때에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빕니다. 샬롬
2014-03-27 09:03:58 | 임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