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마7:2)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한 법칙이어서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 대하여 무슨 판단을 하면 여러분도 그와 똑같은 기준으로 그대로 판단 받게 됩니다.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의 결함을 찾아내는 데 민감하다면, 여러분도 그와 똑같은 수준의 민감함으로 판단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로마서 2장 1절도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똑같은 판단으로 정죄를 받는다고 함으로써 이 법칙을 확실히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다른 사람의 교만, 탐욕, 위선, 거짓이 잘 보이는 이유는 우리 마음에도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은 겸손이며, 정말 겸손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내게도 이보다 더 악한 죄들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판단할 아무 자격도 없습니다."
2014-06-22 23:00:52 | 박진태
올 연초부터 목사님이 매주 월요일날 보내주시는 문자를 보며 성경일독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데 처음엔 새해를 맞아 의욕 넘치게 성경을 읽다가 요근래는 내가 성경을 읽고 있는건지 읽는 분량에 쫒겨서 글씨를 읽는건지 모르게 숙제를 하듯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나마도 이번주는 정해주신 분량을 다 읽지도 못했구요.
글을 읽다보니 어떤 마음가짐으로 성경을 대하고 읽어야 할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제 다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서 남은 성경일독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2014-06-22 01:28:04 | 이정희
평소 점잖고 조용하신 김형욱 형제님께서 마치 포효하는 한마리 사자와 같이 저돌적으로 정답을 외치는 모습이 가장 인상깊네요.^^
그 모습을 멋지게 순간포착하신 우리교회 기자 형제님도 최고십니다요.
저희 지역은 다들 간이 작아서 그나마 가지고 있는 점수마저 잃을까봐 찬스도 못쓰고 있다가 마지막에 용감하게 찬스를 외쳤는데 '오 마이 갓' 하고많은 문제중에 땡칠이와 쌍라이트 포스터가 나와 모두를 기암하게 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또 그 문제를 맞추는 지역이 있으니 정말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모든 지체들이 함께 할수 있어서 행복했던 찬송벨 이었습니다.
상으로 받은 세정티슈로 요즘 열심히 청소하고 있답니다.
2014-06-22 01:17:44 | 이정희
주소는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917-9번지 현대41타워 더브릴리에 4층.
전화 02-2168-3000입니다.
2014-06-21 14:29:47 | 관리자
올한해도 어느새 반년이 흘러갑니다.
연초에 계획하였던 성경읽기를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겠습니다.
2014-06-21 11:21:15 | 김영익
김형욱형제님의 멋진 사진이 찬송벨에 대한 핵심정리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찬송벨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즐겁고 활기차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먼 지역에서 오시는 성도님들과 인원수가 적은 지역의 성도님들을 배려하면서
자리배치를 하였는데, 어쩔수 없이 논현.송도.부평 지역에게는 조금 먼 자리가 배정되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쁨으로 함께해주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샬롬~
2014-06-21 09:38:57 | 장용철
ㅎ 새삼 그날의 열정적인 저요!저요! 가 생각나요^^
문제도 사회도 차분하게 진행해 주셔서 화기애애하게 끝났어요~
간만에 주일학교 때 부르던 찬양도 맘껏 부른 날이었네요^^
종일.모두가 찬양을 한 즐거운 날이었어요.
주님께서도 미소 지으셨을것 같아요~
연주에 ,진행에 ,보조하느라 수고한 형제님들 모두가 찬양으로 하나 되었지요^^
2014-06-20 20:39:50 | 이수영
정확한 음정이나 박자도, 화려한 바이브레이션도, 힘찬 발성도 아니었지만
아흔 평생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음성은 마치 천사의 그것과도 같았습니다...
6월 셋째 주일, 사랑침례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주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빵과 포도'즙'으로 주의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이애실 사모의 "어? 성경이 읽어지네!" 만화판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모두들 쉽게 읽어서 성경의 흐름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셨네요~
격동의 한 세기를 살아오신 이영백 목사님의 특별찬송이 있었습니다.
무어라 형언하기에도 부족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은혜로운 찬양을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cm&write_id=795
오늘은 목사님께서 베드로전서 일곱 번째 강해로 '그리스도의 옷차림'이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설교영상 :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517
관련 글 :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636
오후에는 온 성도가 지역별로 팀을 나누어 함께 하는 "도전! 찬송벨"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 음악담당자이신 장용철 형제님께서 총괄/기획하신 멋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역별로 사전 연습과 실전 자리배치를 위한 안내도면까지 준비되어 있네요~ 아 꼼꼼하다!^^
현수막과 점수표도 전면에 비치되었습니다.
보조진행자 이성준 형제님의 선창으로 "도전! 골든벨"이 시작되었습니다. 빠~빠빠빠~빠빠~빰~~~
문제를 맞힌 후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함께 찬양을 불렀지요~
회중찬양을 인도하시는 세 분의 형제님들이 앞에서 종을 들고 심사를 해 주셨습니다.
각종 선물이 준비되었네요~~ 선물이 무엇인지 가시적(!)으로 확인이 가능해 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북돋아 줍니다~ㅋ
자, 본격적으로 문제가 출제되며 지역별 경쟁이 후끈~ 달아 오릅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너도나도 그 동안 연구(!)한 복음성가 문제의 "정~답!!!"을 외치느라 잠잠할 틈이 없었네요~ㅎㅎ
그렇게 정답을 맞히고 나면 그 찬양을 완곡해야 추가 점수획득이 가능합니다. 틀리면 다른 지역으로 패~쑤!
정답으로 맞힌 찬양을 함께 부르는 모습이 정말 정겨워 보입니다!
장용철 형제님께서 야심차게 준비하신 마지막 문제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이걸 보고 연상되는 찬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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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후렴구의 "빛내리~ 빛내리~ 빛내리~" ㅎㅎㅎ
이 밖에도 재치만점의 문제들로 가득한 찬송벨 시간이었습니다.
지역별 자웅을 겨룬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 간발의 차이로 서울 지역이 분당/용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짝짝짝~~
이어진 시상식입니다!
모두들 한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지역별로 모여서 했기에 지역 담당자 되시는 형제님들의 노고가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준비해 주신 장용철 형제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즐거운 시간을 갖고 난 후, 저녁식사가 준비된 식당으로 Go Go~~~
자매님들께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눈으로도 맛있는 떡꼬치와 우동 한 그릇~~ 또 돌아요 군침! ♨♨♨
오늘은 끝까지 북적북적한 주일이었습니다~^^
2014-06-20 18:32:08 | 관리자
지속적으로 체꼐적으로 성경읽는 일을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겠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정작 말씀읽는 일들이 너무 소홀해 지고 있음을 반성합니다.
말씀의 능력이 내 안에서 움직이게 하옵소서!
2014-06-20 17:43:43 | 조양교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일인 것 같네요, 균형을 잡고 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 보아야 겠습니다. 사랑침례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균형을 잡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본질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2014-06-20 17:41:22 | 조양교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성경읽기 - 조지 뮬러 -
저는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은 후 처음 4년 동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먼저 신앙 서적을 찾는 잘못에 빠졌습니다. 이전처럼 소설들을 읽지는 않았지만, 설교집과 경건한 위인들의 전기를 주로 읽으면서도 성경을 가까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성경을 거의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 관계로 저는 성경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지식에 있어서나 은혜에 있어서 어린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참 지식은 성령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거의 4년 동안 믿음의 기초에 대해서조차 무지한 가운데 지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眞理)만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요 8:31-32).
1829년, 24세가 되어 비로소 말씀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제 삶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성경보다 다른 책들을 더 좋아하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쓴 책을 더 즐겨 읽는 사람이 있다면, 저의 사례를 통해 경고를 받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는 다른 책들에 더 매료되어 왔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성경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가장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읽기 전(前)에, 그리고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와 더불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뛰어난 선생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성령님께서 언제나 즉각적으로 가르쳐 주시지는 않기 때문에, 어떤 구절에 대해서는 그 뜻을 보여 주시기를 거듭 간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갖고 인내로써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뜻을 가르쳐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3. 구약과 신약을 매일 일정량 읽어서 성경 전체를 체계적으로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각 성경기록의 연관 관계를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2) 영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영양분을 골고루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3) 이렇게 체계적으로 성경 전체를 통독해 나감으로써 성경 전체의 개념을 균형 있게 파악하게 되어, 어떤 특정한 견해에만 치우치거나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 전체를 한 번도 통독하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날마다 빠뜨리지 않고 하루 몇 장씩 읽으면 일 년에 성경 전체를 한 번 읽을 수 있습니다.
4. 우리가 읽은 말씀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읽은 구절 가운데 몇 구절만 묵상하거나, 시간이 허락하면 읽은 내용 전체에 대해서 하루 종일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성경의 한 책이나, 서신서, 복음서의 한 부분을 날마다 규칙적으로 묵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배운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과 기쁨 가운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 깊이 새겨져서 반드시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 조지 뮬러.
2014-06-18 20:08:38 | 박진태
옥성호 형제의"서초교회 잔혹사'를 읽고 허탈감에 빠졌었던 얼마전 때가 생각납니다.교회란 곳이 어쩌면 가장 안전한 불법의 온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균형감각은 커녕 시조에 밀려 부초처럼 떠 다니는 우리의 교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올바른 인성교육 대신 돈 많이 버는 법,출세 하는 법만 가르치는 세상의 풍조가 고스란히 밀려들어온 작금의 교회들에 중용의 도를 가르칠 분,어디 계신가요?
2014-06-18 17:09:53 | 유옥희
"중생한(다시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종종 더 곤고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을 통해 저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반성해 볼 수 있는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6-17 20:41:16 | 김대용
저는 넷째부분이 특히 약하네요~무거운 책가방이 계속 들고 있으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듯이 긴 연단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4-06-17 09:01:16 | 목영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회 단체 사진을 찍은것같이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네요. ㅎㅎ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구요..
늘 행복하고 사랑 넘치는 가정 되길 기도합니다~
2014-06-17 07:39:41 | 김세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 대해서 어느 저명한 사회학자는, "화산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문명과 같다"라고 표현 하면서, 그런 문명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범죄학자들은, 이 시대를 '인간성 상실 시대'라고 표현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처럼 '위험사회', '인간성 상실시대'를 국면하게 된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극단으로 치우치려 하는 성향 즉, '균형감 상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우리 기독교도 지금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사회의 극단의 흐름을 타고 영적인 균형감을 잃어버린 채, 마치 부패경쟁을 하듯 추락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출간된 "서초교회 잔혹사"와 같은 제목을 가진 서적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배경을 충분히 뒷받침 해주고 있는듯 합니다. 또 이처럼 영적 균형감을 잃어버린 교회는 당연히 영적 균형을 상실한 성도들을 양산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금식을 하고, 말씀을 보고, 설교를 들어도 '영적 균형감'이 상실되어 버린 상태에서는 오히려 그것은 영민한 사탄의 도구로 활용이 되어질 수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균형감 즉, 중용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떤 철학자는 '중용'에 대해서 먹는 것으로 표현한 바가 있는데, "잘 먹었다는 것은, 단지 입으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먹고 난 뒤에 소화를 잘 시켜 배설을 잘 했는가를 확인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잘 먹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영적인 음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말씀을 잘 먹었다는 것은 많이 읽었다거나 많이 깨달았다가 아니라 얼마나 내것으로 소화를 잘 시켰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제 아무리 우리손에 들린 진리의 성경 "킹제임스 흠정역"이라고 해도 영적 균형감이 상실된 채 지식으로만 알고 자신의 것으로 충분히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로 사탄의 영민한 도구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우리 사랑침례교인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소유해야 할 것이 바로 '영적인 균형감'이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신 28:14>, <수 1:7>
"너는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말 들 중의 어떤 것에서든지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섬기지 말지니라"<신 28:14>.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심히 용감한 자가 되어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것을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수 1:7>.
이와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좋은 글이 있어서,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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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균형감
A. W. 토저
1. 도덕적 이중성
사람들의 성격이나 행위는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치려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우리는 흔하게 듣게 된다. 종교 사상가들은 이런 불균형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처방을 내렸다. 공자는 “중용(中庸)”을 가르쳤고, 석가는 “금욕주의와 육신의 안락을 피할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침”과 “부족함”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는 것이 덕스러운 생활이라고 가르쳤다. 기독교도 이런 도덕적 불균형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가 내리는 처방은 “새 철학”이 아니라 “새 생명”이다. 기독교의 이상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중생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종종 더 곤고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를 하나님과 거룩함으로 끌고 가려는 힘과 그를 죄로 끌고 가려는 힘이 자기 안에 병존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여전히 육신적으로는 아담의 자녀요 흙의 아들이다. 이런 도덕적 이중성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심리적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다.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 5:17>. 그러나 참된 성도 안에는 하나님의 유전자가 있다. 그리고 성령님은 그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그를 성장시키려고 활동하신다.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육신과 싸우려고 할 때 그의 전투는 때때로 그로 하여금 금단적인 것들을 행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성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성령님의 활동은 무의식적이거나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지성과 의지가 하나님의 자애로운 뜻에 순종하여 협력하여야 한다. 바로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은 양 극단 중의 하나에 빠지게 된다. 도 어떤 이들은 영적으로 완전히 수동적인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성품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뒷짐지고 기다린다. 불가능한 것을 이루려고 애를 쓰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언급한 불균형이다. 우리의 도덕적 반응이 없으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하고 절제의 훈련을 하고 하나님의 목적들을 인정하여 받아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발전은 없다.
2. 영적인 기형의 상태
거룩하게 되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서 결국 영적인 기형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우리는 담대해지려다가 지나쳐서 뻔뻔스럽게 될 수 있다.
용기와 온유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리스도에게 이 두가지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분이 그분의 적들과 대립할 때, 이 두 가지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나타났다.
둘째, 우리는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다가 그것이 지나쳐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
솔직하면서도 무례하지 않는 균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발견되었다. 자신은 언제나 숨김없이 솔직하게 다 말해 버리는 성격이라고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 말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불같은 성격의 베드로도 사랑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말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벧전 4:8 참조>.
셋째, 깨어 있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의심하는 버릇에 빠질 수 있다.
오류와 싸우다 보니 우리는 우리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의를 품는 경향이 있다. 사탄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이단을 쫒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이단에 빠지도록 유혹하다가 실패할 때 사탄은 우리가 우리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하도록 부추긴다.
넷째, 진지해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우울해질 수 있다.
성도들은 언제나 진지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침울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경건이 아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심각한 정신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기쁨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명약이다. “항상 주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다섯째, 양심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양심의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질 수 있다.
우선 사탄은 성도의 양심을 파괴하여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 실패 할 때 그는 반대적인 전술을 써서 신자의 양심을 병들게 한다. 이것은 신자가 양심적으로 너무 예민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까봐 늘 두려워하기 때문에 늘 고민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들은 신앙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동들의 수를 줄여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하는 것조차 두려워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스스로를 고문하는 것을 “경건의 증거”라고 착각한다.
3. 끝맺는 말.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가?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만난 자신만의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고, 또 그분의 진리와 그 진리를 체험적으로 사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또한 진리로 성화되는 경험도?.., 그리고 그 충만한 경험으로 인한 평안이 마음에 넘치고 있는가? 이 경험은 아무도 당신을 대신해서 해 줄 수 없으며, 이 경험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참된 성도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출처: 살아있는 이들 80호
2014-06-17 05:37:23 | 김상진
다른자매님의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단체사진의 이레때문에 한참 웃네요 ㅎㅎ.
부부가 되신 두분께 정말 축하드립니다.
2014-06-17 00:56:42 | 이청원
목사님, 말씀에 기준한 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명확한 기준없는 애매모호함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 하나님 말씀대로 옷차림 잘 입는 사랑침례교회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2014-06-16 15:14:43 | 한원규
여기저기 눈가를 훔치며 들으시는 성도들, 찬송하시는 목사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성도들도 많았습니다.
"내 본향 가는길" 이 찬송을 목사님 처럼 은혜롭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처럼 듣는 모든이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강건한 모습으로 저희들과 오래도록 함께 해주세요.
2014-06-16 14:33:04 | 이정희
처음 교회와서 멀리 광양에서 매주마다 올라오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 다섯번 데굴데굴 구르면 코다을 거리에 살면서도 매번 주일날이면 난리 법석을 하며 교회오는 제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매주 교회학교 배식준비도 기쁨으로 함께 해주고 계시는 자매님께도 늘상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귀히 여기는 두분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십니다.
이번에 형제님께서 추진하시는 일 진심으로 잘 되시기를 바라고 또 매주 예배드리러 오가는길에 안전을 책임져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2014-06-16 14:20:33 |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