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반환점을 도는 7월의 첫 주일, 참된 신약교회를 추구하는 사랑침례교회입니다!
단 한 주간 못 뵌 목사님인데 왜 이리 반가운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애틀의 성도님들과 반가운 나눔을 가지셨던 것이 제일 큰 위안이 되셨고,
학교 업무와 기타 여러 가지 교회 관련한 일들로 미국에서도 쉴 틈이 없으셨다 하네요..
시차 적응도 안 되는 상황과 가장 어렵게는 온전치 못했던 치아의 치통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다지요.. ㅜㅜ
주일 오전 내내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하여, 설교 준비가 불가능하시다 판단하셔서
오늘 설교는 신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신 정명도 형제님께 일임하셨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명도 형제님께서 "편견없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언해 주셨습니다.
갑작스레 준비하시느라 어려우셨을텐데,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522
예배를 위해 본 교회의 찬양을 담당하시는 장용철 형제님께서 특별찬송을 해 주셨습니다.
은혜로운 찬송 함께 하시죠~!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cm&write_id=813
7월부터 교회 사무를 담당하게 되신 최상기 형제님의 소개인사가 있었습니다.
순간 포착이 늦어 고개숙여 인사하시는 모습만 담게 되었네요. ㅜㅜ;;
여러 가지로 수고가 많으실텐데, 참 좋으신 성품과 인자하신 얼굴로
사랑침례교회 '얼굴'의 역할을 잘 감당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photo2&write_id=1643&cate_name=&sfl=write_subject%7C%7Cwrite_content&stx=%EC%B5%9C%EC%83%81%EA%B8%B0&sop=and
오늘 오후에는 좀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상진 형제님(경호학 박사)이
지난 7080부부모임에서 런칭(!)하신 "미디어로부터 우리 아이 지키기"를 주제로 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교육부서(유치부 제외)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 밖의 관심있는 성도들이 모두 모여 마지막 때의 영적 흐름과
사탄 마귀가 어떻게 미디어를 이용해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지를
여러 컨텐츠를 통해 면밀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또는 심각하게
때로는 즐겁게!
오후 시간임에도 많은 성도님들과 학생, 학부모님들이 참석해 유익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시의적절하게 잘 준비해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강의를 해 주신 김상진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고로 이번 강의는 불가피하게 미디어 컨텐츠를 다루다보니
저작권 문제로 인해 유튜브와 교회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의 후 신학원 시험(조직신학2, 성막강해)이 있었습니다.
졸업하신 김영익 선배님(!)의 여유로운 시험 감독이 인상적입니다! ㅎㅎ
강의가 끝나고 머릿속이 많이 채워진 것에 비해 뱃속이 허전(!)하였답니다~ ㅎㅎ
지난 주, 어떤 형제님과 자매님께서 직접 농사를 지으신 것이라며 감자를 박스로 가져다 주셨습니다.
잘 키운 감자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시던 저녁조(!) 자매님들이 카레로 저녁을 준비해 주셨네요~~
그래서 만든 카레. 짜자~~~~~~~~ㄴ!
깍뚝썰기 된 감자가 들어간 카레맛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아.. 또 먹고 싶으다! 쩝쩝...)
열심히 땀흘려 농사지은 감자를 선물해 주신 형제, 자매님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식사때마다 항상 맛있게 잘 드시던 피어스 선교사님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은 허전함이 큽니다!
교회 아래층의 요양병원에서 입원해 계신 선교사님이 잘 회복되셔서
전처럼 식사하시고 재미있게 대화도 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생각나실 때마다 성도님들께서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 승리하시고 다음 주에 다시 뵈요~ 샬롬~~~
2014-07-07 23:10:59 | 관리자
가장 위대한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던데 형제님의 좋은 목소리로 하나님앞에 은혜로운 찬양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4-07-07 15:14:29 | 이정희
우리가 하는 이 세상의 염려는 항상 사소한 것들이라는 말씀이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곰곰히 제가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을 생각해보니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먼 장래의 먹고 입고 사는 의식주에 관한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네요.
심히 부끄럽습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마6.34)
2014-07-07 14:54:48 | 이정희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7-07 14:53:16 | 관리자
이제 히브리서 강해는 2번 더 하면 끝납니다.
그 이후에 적당한 시간에 소그룹 모임을 다시 한 번 갖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7-07 14:49:20 | 관리자
깨끗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찬양을 들려주신 장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7-07 14:47:03 | 관리자
2014년 7월 6일 (주일 오전)
유튜브 링크 : http://youtu.be/9pZIJCtBlS8
2014-07-06 17:07:33 | 관리자
"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너희 몸을 위해 너희가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상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당연히 염려하는 것을 가리켜 불신앙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때까지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어디에 있느냐? 이번 휴가 계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느냐? 네가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 주님 아닌 다른 것을 맨 앞에 놓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미리 염려하느라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지 마십시오.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돌보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세세한 일들로 늘 염려를 달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시는 말씀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마귀입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염려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세상의 염려는 항상 사소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보거나 손에 쥐지 못하면 믿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것이 불신앙의 시작입니다.
이 불신앙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2014-07-05 23:02:11 | 박진태
김창열 형제님 평안하신지요?^^
문의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강좌는 조직신학 9강~14강까지입니다.
특히, 14강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자세한 강의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직신학 14_삼위일체 하나님(6)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24&cate_name=%EC%A1%B0%EC%A7%81%EC%8B%A0%ED%95%99&page=3
위에 링크된 주소를 클릭해 시청하시면 됩니다.
해당 강의에 대한 노트는 아래에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셔서 제1강 하단에 첨부된 pdf 파일을 내려받으시면 됩니다.
*조직신학 강의 노트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286
감사합니다.
2014-07-04 18:15:32 | 김대용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956
성경이 다르면 찾기 어렵지요.
2014-07-04 15:00:24 | 이수영
정동수 목사님 삼위일체 강해를 어디서 들을 수 있죠?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2014-07-04 12:45:11 | 김창열
형제님의 글을 읽고 나니, 한 마디로 "주님만 바로보는 삶"이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어떻게? 보다는 왜? 라는 외 글자가 마치 돌처럼 저에게 날라오는듯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애정결핍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삶. 하늘의 보상만 바라보는 삶. 그런 삶이 아직까지는 추상적이라고 느껴져서 제 자신이 괴롭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실제적으로 제 삶에 다가오고, 느껴질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7-04 10:41:55 | 김상진
많은 공감을 합니다.
'나는 알아~' 또는 '너보다 많이 알아~'
라는 식의 위선의 모습이 제 안에도 가득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공식이 제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지길 간절히 원하는 바입니다.
겸손한 복음전도자가 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7-04 10:34:34 | 김상진
참 요목조목 잘 말씀해주셔서 그날의 교제가 생생합니다.
인생선배님들의 조언으로 월요일은 다 찾아들으며 폭우를 만난듯하였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보면볼수록 왜이리 말씀이 달콤한지요.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2014-07-04 00:03:48 | 이청원
저희집 꼬맹이들이 초등부 저곳 저시간을 거쳐 벌써 중등부 고등부가 되었네요.
사랑침례교회는 오늘도 주님 안에서 이렇게 잘 흐르고 있군요.
참 흐뭇합니다.
2014-07-03 23:54:27 | 이청원
형제님의 글을 통해 이 시대의 여러 모습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같은 성도이지만 소명을 받고 양떼(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바르게 이끄는
목회자(목자) 혹은 설교자의 직무는 직업이 아니라는 언젠가 들었던 어떤 목사님의 말씀에
저도 100%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천만 가지 직업보다 열등해서가 아니겠지요.
"이렇게 슬프고도 악한 시대에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직무 중에 가장 위대한 직무"라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명쾌한 말처럼 그 어떤 직업이나 직무가 소유할 수 없고 비교 조자 불가한
육중한 가치를 지니기에 직업 혹은 돈벌이 수단이라 감히 칭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목회의 직무가 이렇게 타락하고 그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현실을 보며
목회자와 성도들 모두는 양방향에서 입체적으로 사안을 보며 성경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자칫 현시대의 타락을 피하고자 다른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면
구더기가 생길까 무서워 장을 못 담그거나 목욕물만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4-07-03 21:16:30 | 김대용
왜 바른것을 알면서 바르지 않은것들을 버리지 못할까?
바른것을 알았으면서 왜 떠나는것일까?
정말 공감하는 왜?입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해온 분 일수록 자연스레 몸에 습관화 되어 있는 것이 많지요.
바르지 못한 것을 알면 버리기가 필수인데 그게 안되면 어려움에 처하는 것 같아요.
알고 - 결단하고 - 실행하기 까지 자기부인의 길이지요. 우리 모두가.
2014-07-03 20:23:28 | 이수영
샬~롬
사랑침례교회에 와서 유독 이 의문들을 많이 반복하는 저를 봅니다..
왜, 사람들은 바른성경을 외면할까?
왜, 사람들은 바른걸 알려줘도 듣지 않고 들을 생각도 못하는걸까?
왜, 바른걸 알면서도 떠나는 걸까?
왜, 바른걸 믿으면서도 바르지 않은것들을 버리지 못할까?
왜, 왜일까요?
2014-07-03 16:59:50 | 이명숙
"왜? 저의 삶은 변화하지 않나요?"
제 첫 질문에서 킹제임스성경과 사랑침례교회를 통해 답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글을 통해, 늘 질문하고 배우는 모범생의 모습으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2014-07-03 12:27:04 | 태은상
과학 문명의 발달은 저장매체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하우를 자신만 갖고 있다가 죽으면 후손은 그 노하우를 알길이 없습니다. 그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기면 후손들은 기록을 바탕으로 더 발전된 형태를 통해 더 나은 기능과 편리성을 강구하게 됩니다. 역사시대에는 대부분 종이 기록에 의존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메모리와 랜칩의 개발로 용량이나 처리속도 또한 방대하고 과거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이용하고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죠?
어떻게? 라는 의문을 해결해 나가면서 불편했던 것들이 편리하게 되고, 성능이 개선되고, 세분화, 전문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능을 잘 활용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들 수 있고,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으로 그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빨리갈까? 마차,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이 탄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에 이길까? 칼, 화살, 총, 대포, 미사일, 핵무기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일상의 편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어떻게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삶의 질과 양이 풍성해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라는 의문을 해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선진국보다는 원시부족과 같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게 나옵니다. 사람은 먹고, 입고, 자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왜? 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왜? 라는 문제에 대해 나름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제시한 사람들을 보통 성자나 현자, 사상가, 철학자라 부릅니다. 인생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왜 죽는가? 등등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고민하던 때도 있었고,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한 차원높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나름 고상한 척 해보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들이 전도라는 매체로, 요즘에는 유투브라는 매체로 성경기록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왜? 라는 문제에 끊임없이 부딪히게 됩니다. 왜 성경을 읽어야 하나? 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해야 하나? 왜 교회를 나가야 하나? 왜 예배를 드려야 하나? 왜 기도를 해야 하나? 왜 암송을 해야 하나? 믿음의 본질적은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바른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고 합당한 행실이 우리 삶속에 배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할 때 거기에서 하나님 말씀의 회복과 경건한 삶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에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갖고 다양한 종교 시스템으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 침례교, 등 개신교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름으로 자기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물과 조직과 사람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왜? 라는 본질적인 질문보다는 어떻게? 라는 현상적인 질문이 더 중요해지게 됩니다.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해결하면서 현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사람이 없는 교회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끌어 모을까? 궁리합니다. 연예인 간증집회를 하면 될까? 두 날개 운동을 하면 될까? 건물의 편의성을 증대시켜 볼까? 등등을 강구합니다. 큰 교회는 나름대로 또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큰 덩치를 유지해야 할까?
교회안에서도 속성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양산합니다. 성경 속독법, 기도하는 법, 예배드리는 법, 등 등, 사역자들에도 일어납니다. 직업으로서의 목사, 전도사, 직원 등 자신의 삶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헌신적 섬김에 따라 일정한 보상차원의 사례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사례 자체를 목적으로 교회에 봉사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신학교도 목사나 성경교사가 되려는 사람이 훈련 차원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신학교가 목사나 교사 양성기관으로 전락해 버리면 일자리 없는 목사나 교사는 교회나 그 당사자에게도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신학교는 신학교를 유지해야 하니까 검증안된 사람까지 학생을 유치를 할 수 밖에 없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영역에서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도 설교중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라는 화두를 종종 던지십니다.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왜 봉사하십니까? 왜 교제를 하십니까? 왜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덧글을 다십니까? 왜 헌금을 하십니까? 왜 학생부 교사를 하십니까? 왜 주방 봉사를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일에 분주했던 마르다보다는 주님의 무릎옆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경청했던 마리아를 향해 네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보고 돈을 보고 했을 때 실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라는 질문에 진솔한 답변을 찾을 때 비로소 마음과 행함이 일치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순환을 추구하는 삶이 우리 가운데 있었으면 합니다. 두서없는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2014-07-03 10:34:39 | 조양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