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 주신거 자주 와서 보겠습니다. 가려진 게 걷어졌으면 초장?에 실천해서 어영부영 안 하겠습니다(하나님 것으로 큰 기쁨 얻는 저의 작은 노하우에요^^)제가 튀어나와 예수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잘 기억하겠습니다..
2019-02-16 13:49:16 | 목영주
정 목사님과 얼마전에 이황로 목사님도 잘 설명해 주시고, 이렇게 또 자세히 정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전의 전통을 고수 하시는 분들도 정확히 인지 하시면 좋겠습니다.
성경에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음을 아시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생각해요.
2019-02-16 12:54:57 | 이수영
(더 8:11) 그 편지에서 왕은 모든 도시에 있던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어서고 또 그들과 그들의 어린것들과 여인들을 습격하려는 백성과 지방의 모든 권력자들을 멸하고 죽이고 소멸시키며 또 탈취물로 그들에게서 전리품을 취할 것을 허락하되
아하수에로왕(페르시아어로는 크샤야르샤(Khshayarsha), 영어로는 크세륵세스1세(Xerxes 1), B.C.486-465)은 다리오 1세와 고레스 대왕의 딸인 아토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인도에서부터 이디오피아에 이르기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을 통치한 매데와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을 그때 아하수에로 왕국과 비교한다면 아마 그 백스물일곱 지방중에 하나쯤 될겁니다. 위 말씀을 보면 '지방의 모든 권력자들을 멸하고 죽이고 소멸시키며'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구절 뿐만이 아니라 구약시대 남왕국과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물론, 신약시대 사도행전 12장에서도 헤롯왕이 하나님의 천사를 통해 벌레에게 먹혀 죽임을 당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 에스더서의 말씀을 인용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살시키려는 하만의 계략이 현 시대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독 성경말씀을 전체적으로 보지를 않고 어느 구절만 딱 띄어서 잘못된 해석을 하며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면 안된다고 당연한듯이 말을 하고, 또 교회에서 목사가 정치적 설교를 하면 아래 말씀들을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강제시키려합니다. 바깥에서 자꾸 이런 댓글들이나 메일을 받다보니 좀 울분이 생기네요. 바라기는 정말 아래 말씀을 주장한다면 바로 알고 제대로 좀 순종했으면 좋겠습니다.
(롬 13:1~2) 모든 혼들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
(벧전 2:13) 너희는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네, 맞습니다. 저 말씀들만 딱 띄어서 보면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아래 위 문맥을 잘 살펴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어라 하는가를 잘 이해를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고정관념된 틀안에 갖혀 더 알려고 하지를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최종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이 바로 선다면 그 말씀에 순종을 하는 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위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 성도안에 정확한 확신을 드리려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왜 태극기를 휘날리며 집회에 참석해야 하는지도 함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13장 1~2절 말씀과 베드로전서 2장 13절 말씀의 아래 문맥을 한번 보세요.
(롬 13:3-4) 치리자들은 선한 일이 아니라 악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나니 그런즉 네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네게 선을 베푸느니라. 그러나 네가 악한 일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헛되이 칼을 차고 다니지 아니하나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보복하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집행하느니라.
(벧전 2:14)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잘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해 그분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라.
위 말씀에서 보듯이 치리자들은 악한 일에 두려움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선을 베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주님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 하시는 선(아가도스 ἀγαθὸς, good)이 무엇입니까?
(눅 18:1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로마서 13장 말씀과 함께 풀어서 보면 우리의 최종권위인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선이란, 하나님을 위해 올바른 일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 보내신 자들이라면 12 사도와 하나님의 대언자들을 말합니다. 그분들에게 하듯 하라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처음에 바빌론 포로 시절에 생겨났던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선포한 말씀이 이사야 61장 말씀입니다.
(사 61:1) 주 하나님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온유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고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결박된 자들에게 감옥에서 놓임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요,
지금의 현 정부는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거의 다 알고 있듯이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평등을 무기삼아 적화로 묶으려 하고 있으며, 이 세상 법이 없어도 하나님의 법인 양심의 법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공산화될까 두려움과 함께 마음에 상함을 주고 결박을 시키려 하고 있는데 과연 이들이 하나님의 사역자(minister)라고 불릴 수 있겠습니까? 현재 드러난 수 많은 잘못된 일들로 그 행위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도 이 땅의 그 당시 정치인들과 악한 치리자들에게 강하게 말씀하신 것 같이 그 길을 따르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가치관에서 나오는 바른 행위입니다. 도덕의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가 기독교의 가치입니다.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행위를 문제로 삼지만 종교라는 것은 영혼의 자유라는 자신의 존재를 문제삼기 때문에 도덕보다는 기독교가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치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이해한다면 오히려 세상의 도덕 가치가 훨씬 나을 것입니다.
혹시 또 예수님께서도 잘못된 정치인들에게 강하게 대응하셨다는 말을 잘못 이해 하실분들을 위해 신약 시대 유대인들의 지도 계층에 대한 도표를 한번 보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계층
특 징 및 역 할
관 련 구 절
총 독 부
총 독
로마의 기사 계급에 속한 관리들로서 유대에서 군사,사법적 최고 권위자이며 특별히 군사권, 재판권, 세금 징수권 등을 장악했다.
마 27:2; 행 23:24
행정관료
총독은 일반 행정을 보좌하는 자들로서 부집정관, 각급 행정 지역의 장들인 읍장등을 거느리고 있었다.
마 9:11; 눅 19:2; 요 18:31
군지휘관
총독의 지휘하에 식민지 유대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던 군대로서 대략 6000명으로 구성된 군단이 있었다. 이 군단은 군단장, 천부장, 백부장 등에 의해 지휘되었다.
마 8:5; 행 10:1; 21:33
헤롯왕가
헤 롯 가
로마 제국을 대신해서 팔레스틴을 통치하는 이방의 이두매 왕가로서 형식상으로는 유대의 최고 통치 기관이다.
마 2:3-12; 막 6:14,22
헤 롯 당
헤롯 가문의 지지자들을 가리킨다. 본질상 정치적 집단은 아니지만 헤롯의 정책을 적극 옹호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막 3:6; 12:13
성 전
대제사장
성전 제사를 관장하는 최고위 성직자이면서 동시에 산헤드린의 의장직을 맡았다. 로마 정부의 강력한 지지하에 막강한 정치적 권력을 행사했다.
마 26:3; 눅 3:2
수 석
제사장들
성전의 봉헌 제물과 재정을 주관하던 권력자로서 산헤드린 회원이었다.
마 21:15,23; 눅 20:1-8
일 반
제사장들
24반열로 구성되어 매년 두 번 일주일씩 희생 제사를 수행하는 자들로서 총 1만8천명에 달했다. 이들은 개별 직업도 가졌다.
눅 1:5,8
레 위 인
1만여명에 이르는 이들도 제사장들과 같이 24반열로 나위어 음악 및 다양한 형태의 성전 봉사에 종사하였다.
민 18:1-7; 신 10:8
공 회
산헤드린
공 회 원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일단의 제사장과 장로들 71명으로 구성된 유대의 최고 재판기관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컸다.
마 26:57-59; 행 6:12-15
지 방
공 회 원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지방 공회에는 7-23명에 이르는 장로들로 구성된 공회원들이 있었다.
마 10:17; 행 22:19
세 리
산헤드린은 로마 총독부로부터 조세 징수를 위탁받아 집행하였는 바, 세리란 바로 세금 징수를 위해 고용된 자들로 징수 과정에서 허위 징수를 일삼았다.
마 9:9-11; 눅 19:2
회 당
회 당 장
회당의 우두머리이며, 집회 인도, 회당 건물 유지, 보존, 운용의 책임을 맡았다. 누구든지 율법(토라)낭독이나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회당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막 5:22; 눅 13:14
핫 잔
Hazzan
회당의 서열 2위로서 종교 회의의 인도자 역할을 하며 회당장의 조수로서 제반 직무를 수행했다. 기도문을 암송, 율법을 낭독하는 일도 이들이 맡았다.
눅 1:2; 행 13:5
랍 비
Rabbi
랍비 학교를 졸업한 자들로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율법의 난해 문제를 해석하고 가르쳤다. 또한 평상시에는 아동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마 23:7-10; 요 1:38,49
위 도표에서 보시듯이 신약 시대 유대인들의 지도 계층은 거의 다 정치적 집단에 속해 있습니다.
서기관(Scribe)이라는 말은 어떤 특정 조직의 소속원이 아니라 율법을 읽고 필사할 줄 아는 능력과 일반 행정 지식을 가지고 각종 조직에 속하여 봉사하는 직업인들을 통칭하는 말이며, 공회 서기관, 성전 서기관, 사설 서기관 등 그 소속에 따라 다양했는데, 정치적으로도 산헤드린 공회, 성전, 로마 식민 정부체제의 각종 기관에 속하여 일종의 행정 관료로서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원칙상 어떤 종교 분파에 전속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으나 대개 바리새파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전승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마치 드러나지 않는 무덤 같도다. 사람들이 그 위를 걸으면서도 무덤인 줄 알지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이유가 어느정도 이해가 되실겁니다.
또, 헤롯당에 대해 조금 더 보충 설명을 드리면 헤롯당이란, 헤롯 대왕이 로마 정부를 대신하여 팔레스틴을 지배하는 자가 되었을 때부터 그의 왕조가 무너지기까지, 즉 대략 B.C.37- A.D.44년까지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모인 자들에 대한 통칭입니다. 헤롯은 본래 이방 이두메(에돔) 출신으로서 민족적 폐쇄성과 종교성이 강한 유대인 통치에 늘 위협을 느끼는 동시에 유대의 메시야 사상을 위험시 했었으며, 헤롯 왕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에 도전하는 정치적 메시야로 인식하고 예수님을 로마의 정치 형벌인 십자가형으로 죽게 만드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이런것을 볼 때, 지금부터 2000여년 전의 미분화된 사회, 더욱이 종교성이 강한 유대인 사회에서 그것도 독립 정부가 없이 헤롯 가문의 분봉왕제와 로마 총독 정치 체재가 혼재된 그 시기에 각 종교 분파들은 상당한 정치 사회 집단이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으며, 주님께서는 이런 잘못된 정치 세력들을 함께 꾸짖고 저주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 정부에서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정치적 설교를 하지 마라며 오히려 주님과 반대의 길을 가려고 하고, 더군다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용기있게 성경의 총체적 진리(Total truth)를 전하는 목사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 망정 비방의 소리를 무식하게 내는 것을 보면 정말 통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성경을 통해 본 로마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보는 것 같이 말입니다. 위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 말씀들로 교회나 목사가 정치에 참여하거나 강단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된다고 말하시는 분들은 다시한번 위 말씀들을 자세히 이해하시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강조 했던 그 말씀들에 정말 좀 제대로 순종하시면 좋겠습니다.
(고전 10:23)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세워 주지는 아니하나니
(고전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
다만 교회라는 전체적인 틀을 놓고 봤을 때 적절하게 한 주제로 쏠리지 않게 또, 하나님의 오른쪽 가치를 선포하고 나가시는 목사님을 도와 역반응이 나오지 않도록 성도 개개인이 질서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기독교인들이 태극기 집회에 함께 참여 해야 된다고 말씀 드린 것을 성경 기록에 따라 짧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전에 영 혼 육 성도의 가치관 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의 영(spirit)은 곧 말이며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흐름은 곧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이데올로기적 사상의 세상 흐름과도 같다고 했으며 그 배후엔 영적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싸웁니다. 그렇다고 기도만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믿음에 따른 행위가 나와야 합니다. 선을 행할 줄 아는데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는 것은 선한 행위입니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가 기독교위에 세워졌듯이 이 대한민국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믿음의 기도위에 세워졌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자유를 지킬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집회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위 로마서 13장 말씀과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바르게 이해를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속중심에 섰다면 시간이 되는 한 바른 가치관을 가진 영의 흐름에 우리도 참여를 해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의 여유가 있는데도 참여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앞에 위선자가 되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바른 말씀을 따라 해석을 한다면 믿음에 따른 행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앞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속이는 일이 없기를 기도 드립니다.
(홈페이지에 좀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다시 좀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샬롬)
2019-02-16 11:13:49 | 이명석
자매님 애타는 마음이 공감됩니다...... 보수우파의 깃발 아래에는 어쩌면 이렇게 인재가 귀한지요 .... 그러나 주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정말 사람의 눈에는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 주님께는 아무일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이런일들을 통하여 주님의 공의로우심을 더욱 분명하게 더러내 보이실줄로 믿습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2019-02-10 23:03:29 | 박천호
얼마전 몇 분과 교제를 나누며 우리의 영(spirit)이 신약시대에 다시 태어난 성도에겐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말씀을 나눴지만 글로 좀 써 달라는 부탁도 있으셨고, 또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것 같아 영 혼 육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닌, 실질적으로 자세하고 알기 쉽게 말씀안에서 되짚어 보려 합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안에서는 완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우리는 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혼과 영과 육을 나눌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현실에서는 가늠하지조차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쁜 환경속에서 자신을 주의깊게 살피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주 된 요인은 성령님께서 영과 혼과 육을 나눌수 있다고 말씀으로 기록하신 것을 우리의 생각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위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서 보시다시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이지,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깊이있게 더듬다보면 다시 태어난 성도라 불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시간속에 어디쯤 와 있는가를 투명하게 보게 되며 곧 끝나는 시간을 넘어 그분의 속성속에 있는 영원(Eternity)을 바라보게 됩니다. 영원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소망을 품는 것은 이 세상 육신에 있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다시 태어난 성도의 또 하나의 특권입니다.
위 히브리서 4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이지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 성경 구절들을 보시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실겁니다.
(창 2: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창 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욥 27:3~4) 내 숨이 내 속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내 콧구멍에 있을 동안에는 내 입술이 결코 사악한 것을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속이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욥 33:4)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분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살아있는 혼(living soul)이 되었지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에덴 동산에 있던, 계시록에서 보여주신 새하늘과 새땅의 생명나무의 길은 막히게 됩니다. 이것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찢어지며 다시 그분의 숨을 받아 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에 속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으로입니까?
(롬 8:11)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나님의 '숨'은 곧 '하나님의 영'이시며, '성령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말씀'입니다.
(살후 2:8)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시키시고 친히 오실 때의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
(살후 2:8) And then shall that Wicked be revealed, whom the Lord shall consume with the spirit of his mouth, and shall destroy with the brightness of his coming: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입의 영'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직접하시는 말씀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걸 다른 뜻으로 해석하실 분은 없으실겁니다. 다음의 요한복음 6장 말씀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다른 성경에서는 입의 기운, 입김, 입에서 나오는 영, 등으로 번역하여 말씀이 아닌 다른 쪽으로 해석을 하게 만들고, 은사주의나 신비주의, 체험주의 등을 양산하며 원래의 뜻을 희석하고 있습니다.
위의 요한복음 6장 63절 말씀처럼 살아 있는 그 무엇이 다른 죽어 있는 것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죽은 것이 무엇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살리는 것이 바로 영(the spirit)인데 그것이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르는 말씀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의견이었고, 다시 태어난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숨 안으로 침례되어 성령님과 한 영(one spirit)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절대 대체되어 할 수 없는 일이며 오직 그분의 숨이신 말씀을 통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이상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크시고 무소부재하신 그분안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며 성령침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영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람의 영(spirit), 하나님의 영(Spirit)
우리 사람은 숨을 내쉴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 내 뱉는 말이 곧 영(spirit)입니다. 동시에 영은 교통(Communion)과 직감(intuition), 그리고 영이 있기 때문에 영감(Inspiration)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성경적으로 영은 형상(image)을 말하며 실체적으로 존재합니다.
(욥 4:15~16) 그때에 내 얼굴 앞으로 한 영이 지나가므로 내 몸의 털이 곤두섰느니라. 그 영이 가만히 서 있었으되 나는 그 형체를 분간하지 못하였느니라.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고 거기에 고요함이 있었으며 내가 한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기를,
민수기 22장에서도 보듯이 발람의 나귀의 입을 여신 것도 나귀에게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멸될 영일지라도 그분께서 입을 여시면 말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 세상안에 지으신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모든 자연 생태계의 숨을 쉬는 생명체는 하나님의 숨과 연결되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 3:21) 누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느냐?
물론 하나님께서는 길위에 있는 생명이 없는 돌들에게도 소리를 지르게 할 수 있습니다.(눅 19:40)
하지만, 지금 현 시대에선 기록된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해야 할 모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기적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보이시진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령하나님께서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가장 뚜렷이 알 수 있는 그분의 일은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가장 큰 miracle이지만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하는 존재가 바로 다시 태어난 성도들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성령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 수가 있을까요?
(레 10:3)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내게 가까이 오는 자들 가운데서 내가 거룩히 구별되며 온 백성 앞에서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아론이 잠잠하니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자기들의 향로와 이상한 불을 드리므로 그 즉시로 죽고나서 모세를 통해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이들이 이상한 불을 드린곳은 성소입니다.
성막에는 뜰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육과 혼과 영이 있습니다. 성소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바로 혼에 해당됩니다. 혼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를 담고 있으며 뜰인 육신적인 생각을 따를 수도 있고, 지성소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로마서 7장 말씀에 기록된 사도바울의 심정처럼, 우리는 우리의 지체들 안에서 한 다른 법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과 싸워 각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우리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너무 자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직접 만났고 신약의 거의 모든 교리들을 바로 세우고 생명이 다 할 동안 주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사도바울조차도 속사람인 혼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따르기를 원하는 마음과는 달리 원치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마침내 한 법을 깨닫게 되니 그것이 곧 성령의 법,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정죄함에서 벗어난 율법의 의의 성취, 육신의 연약함이라는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영혼의 자유를 증거하는 것을 성령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 보여주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이 말씀을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기를 원합니다. 성령을 따라 걷는다는게 무슨 뜻일까요?
그냥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따르면 되는걸까요? 아니면 좋은 느낌을 따라가면 성령을 따라 걷는 걸까요?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으니 네 행위가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내 행위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는 야고보서 2장 18절 말씀을 행위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처럼 열심을 내서 교회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걸까요?
위에서 저는 성령님안으로 침례되어 다시 태어난 성도는 주님과 한 영(one spirit)을 이루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님의 숨을 '하나님의 영', '성령님', '말씀' 이라고 했습니다. 영은 그리스어로 프뉴마(pneuma), 히브리어로는 루아흐(ruwach)이며 숨, 바람, 호흡을 말하고 기본어가 '숨쉬다'이며 '흐름'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 세상 사람들의 사상(思想)의 이데올로기적(Ideologie)흐름이 영적인 존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요 20:22) 그분께서 이것을 말씀하시고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
단도직입적으로 먼저 말한다면, 성령님을 따른다는 말씀의 의미는 바로 기록된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죽어있던(단절되어 있던)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혼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이 믿음과 섞이면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듯 거듭나는, 다시 태어나는 출생의 신비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한 영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실체적으로 눈으로 보이질 않으니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게 되면 젖을 찾듯이 성령님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마찬가지로 말씀의 젖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갈급하게 말씀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혹시 이런 것이 없다면 본인의 출생을 꼭 다시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다시 태어난 성도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셋째 하늘까지도 충만하신 그분안에 푹 잠겨 있다고 말을 할 수도 있고, 육신안에 있으나 다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있다고 말을 할 수도 있으며, 같은 숨을 쉬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 무엇으로 같은 숨을 쉴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세상적인 것, 그 어떤 능력이 뛰어난 것, 모든 부와 명예도 아닌 오직 올바른 성경의 모든 기록된 말씀으로만 됩니다. 이것외에 성령하나님과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뒤져도 없습니다.
바로 기록된 그 말씀들에 성령 하나님의 숨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위대한 신분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과 한 영, 한 숨을 이루고 있다니요? 이것을 사실적이고 올바르게 깨닫고 기록된 말씀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 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faith of the 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즉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믿음이라는 겁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변할 수 없고 강력한 믿음, 바로 이 믿음에서 행위가 나와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바로 이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가 야고보서에 말하는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씀에 따른 바른 행위를 나타낼 수가 있고, 이것이 곧 올바른 믿음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중심에 가득 차게 되면 예레미야처럼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도다." 라고 하는 것처럼 저절로 말씀에 따른 행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된 말씀에 따라 행할때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의지를 가지고 있는 혼을, 순종 또는 복종을 시켜야 하는데 여기에는 항상 우리의 자존심이 도사리고 벽을 세우기 때문에 자기부인이 꼭 필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님을 따라 걷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얼마나 말씀들을 마음판에 새기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잠 7:1) 내 아들아, 내 말들을 지키며 내 명령들을 네게 쌓아 두라.
(잠 7:2) 내 명령들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잠 7:3)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 판에 기록하라.
뒤집어서 다시 말한다면, 올바른 성경기록의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의 숨이며, 성령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영이 되십니다. 다시 태어난 성도들이 주님과 한 영이 되어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그 말씀들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판에 새겨 놓았을 때입니다. 우리가 첫 사람 아담을 따라 본성에 속한 몸으로 이 땅에서 심을 때 하나님께서는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통해 영에 속한 각자 고유의 몸을 주시기 위해 그 무게를 달고 계신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첫째 아담인 프쉬케(psuche, 히:네페쉬(nephesh))라는 살아 있는 혼(living soul)으로 심어, 둘째 아담인 프뉴마(pneuma)라는 되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죽을 몸도 부활하신 주님의 영화로운 몸처럼 영에 속한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의 영(spirit)입니다.
(잠 16:2)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나 주께서는 영(靈)들을 다시느니라.
(고전 15:45)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고전 15:45)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신약시대 다시 태어난 성도의 가치관
이제 신약시대 다시 태어난 성도의 바른 가치관은 무엇으로 나타낼 수가 있을까?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가? 를 짚어보려 합니다. 일단 구약시대 spirit 가 사람의 정신으로 나타내는 구절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수 5:1) 요르단 서쪽 아모리 족속의 모든 왕과 바닷가의 가나안 족속의 모든 왕이 주께서 요르단의 물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마르게 하사 우리를 건너가게 하셨음을 들을 때에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더 이상 정신이 없었더라.
(수 5:1) And it came to pass, when all the kings of the Amorites, which were on the side of Jordan westward, and all the kings of the Canaanites, which were by the sea, heard that the LORD had dried up the waters of Jordan from before the children of Israel, until we were passed over, that their heart melted, neither was there spirit in them any more, because of the children of Israel.
(삿 15:1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나오더라.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정신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더라. 그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느니라.
(삿 15:19) But God clave an hollow place that was in the jaw, and there came water thereout; and when he had drunk, his spirit came again, and he revived: wherefore he called the name thereof Enhakkore, which is in Lehi unto this day.
(삼상 30:12) 또 무화과 덩이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더라. 그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빵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으므로 먹은 뒤에 그의 정신이 다시 그에게 돌아왔더라.
(삼상 30:12) And they gave him a piece of a cake of figs, and two clusters of raisins: and when he had eaten, his spirit came again to him: for he had eaten no bread, nor drunk any water, three days and three nights.
몇 구절 더 있지만 너무 길어질거 같아 이 세 구절만 인용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영(spirit)은 정신(spirit)과 같은 의미를 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유독 맑은 정신(mind,sober, himself)을 강조하며 23구절에서나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몇 구절만 보여 드리면,
(벧전 5: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Be sober, be vigilant; because your adversary the devil, as a roaring lion, walketh about, seeking whom he may devour:
(막 5:15) 예수님께 이르러 마귀 들려 군단을 지녔던 사람이 바른 정신으로 옷을 입고 앉은 것을 보고는 두려워하더라.
(막 5:15) And they come to Jesus, and see him that was possessed with the devil, and had the legion, sitting, and clothed, and in his right mind: and they were afraid.
(눅 15:17)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이르되, 내 아버지께는 빵이 풍족하여 나누어 줄 수 있는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구나.
(눅 15:17) And when he came to himself, he said, How many hired servants of my father's have bread enough and to spare, and I perish with hunger!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크신 긍휼안에 용서라는 작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듯이 모든 곳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바람과 숨쉬는 흐름을 가지고 있는 성령님(Holy Ghost)안에 이미 우리의 작은 spirit가 침례되어져 숨을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그분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분리된 자신을 내어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예배가 이루어지는데,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가득 채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성도는 굳이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리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앞에서 맑은 정신, 그 정신을 감싸고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행위만이 그분께서 받으실만한 예배가 된다고 생각이 되며 해석이 됩니다. 이미 우리는 주님과 한 영으로 대체되어 있고 존귀하신 그분의 말씀들이 마음판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 13:1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씻은 자는 모든 곳이 깨끗하므로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다시 태어난 자도, 불신자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나, 하는 육하원칙 아래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때는 똑같지만, 제일 상위에 있는 꼭지점의 영성이 다른데, 이것을 가치관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마음에 들어있는 것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면 하나님의 것으로, 카이사르의 것들은 카이사르의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면 하나님의 말씀들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싶으면 세상 것들로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 것을 말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나, 그것이 요점(要點)이 되는지 듣는 사람은 알게 됩니다.
(눅 6:45) 선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을 내나니 그의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마음(heart)은 영과는 다르지만, 양심을 통해 영과 교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음이란 육신적으로는 심장을 이야기하며, 영적으로는 사람의 가장 깊은 속중심(지성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 교만과 불만, 순종과 불순종이 마음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마음은 사람의 중심인데, 이 중심을 바른 가치관으로 이끄는 것이 성도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성경으로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바른 교리를 가지며,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주의깊게 살피고, 그 말씀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연구하며,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에 기꺼이 내 자신(정신)을 내어 주고, 성경의 모든 기록들에서 본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의 속 중심에 세우며, 자든지 깨든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것, 이것이 곧 맑은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경건이며 유익이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못하는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저부터도 마음은 원이나 육신의 연약함으로 잘하지를 못합니다.
다만, 이렇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줄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바른 가치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또 올바른 성도로 살며 우리의 시간이 다 하고 주님앞에 섰을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 4:20~27) 내 아들아, 내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들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한가운데 간직하라.
그것들은 그것들을 찾는 자들에게 생명이 되며 그들 모두의 육체에 건강이 되느니라.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비뚤어진 입을 네게서 버리며 뒤틀어진 입술을 네게서 멀리 하라.
네 눈은 바로 보고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볼지어다.
네 발의 행로를 곰곰이 생각하며 네 모든 길을 굳게 세우라.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할지어다.
[요점 정리 fact]
"성경적으로 우리의 영(spirit)은 하나님의 숨(창 2:7)이며, 아담이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전까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의 영(spirit)이요 정신(mind,sober,spirit, himself)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 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에 속하질 못했지만, 성령 침례를 받고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의 영은 하나님의 숨(Spirit) 안으로 잠기면서 하나님의 숨이신 성령님으로 다시 출생을 하며, 그 숨(Spirit)으로 인해 되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에 속하게 된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숨이신 올바른 말씀이 우리 마음판에 새겨질 때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과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영(숨)과 소통을 이루며 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올바른 말씀에서 나오는 그 가치관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믿음의 행위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시는 이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숨이시요, 말씀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고 계시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롬 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잠 8:9) 깨닫는 자에게는 그것들이 다 명백하며 지식을 얻는 자들에게는 올바르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와같이 쉬운거 같으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구하며 이 혼잡한 세상에서 교리의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로 분별하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연구해서 바른 행위를 나타내며, 그날에 주님앞에 섰을 때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샬롬
2019-02-09 13:29:38 | 이명석
아버지! 위태한 안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싸워줄 용사를 세워주세요.
야당보수 정치인들 중 누가 우릴 위해 싸우려하나요? 우리가슴은 까맣게 타는데, 무수한 기회들을 흘려보내며 그들중 아무도 왜 싸우지를 않는걸까요? 혹시 리더가 되면 지금 가장 시급한 이 나라의 안보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는 있는걸까요? 힘없는 국민은 마음이 타는데 그들에겐 자신들의 명예욕과 권력욕이 안보의 위중함보다 우위에 있어보입니다.
다윗처럼 거인 골리앗을 두려워 않고 정확히 적을 처서 대한민국을 공산화로부터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싸울줄 아는 용사! 잠자는 다수 국민을 깨우며 싸우자고 앞에 설 용감한 용사를 보내주세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스템 공산주의가 싫어요. 이상황을 울부짖는 숫자가 부족하여 주님의 의를 드러낼수 없다면, 돌로도 사람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아버지,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울부짓는 사람의 수를 채워주세요. 나라의 좌경화와 (북한과의 )연방제를 미워하고, 좌경화로 빠져드는 늪에서 살려달라 외치는 우리의 소리를 긍휼히 들어주세요.
우리를 위해 싸워줄 정치인이 없는, 기회가 많고 건강한 다양한 분야에서 꿈을 추구할 자유가 있는 시스템인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감사해하는 국민은, 지금 도움없는 풍전등화 고아같아요. 정치인 누구도 간악하고 포악한 종북에 맞서 용사의 소리를 내는 자가 없어요. 둘러봐도 없어요. 가진것이 많아 배에 기름이 두둑히 낀 자들처럼 야당보수정치인들 나태하고 적이 얖잡아 볼 엉뚱한 말들만 해요. 주님 우리는 자유대한민국에서 살고싶어요. 우리를 버리지 마시길 간구합니다.
주 하나님, 나의 아버지! 우릴 중간에 끔찍한 공산당에게 내던져 주실려고 70년전에 자유, 인간다움,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수 있는 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주셨던건 아니시죠? 지난 70년간 우리가 악했고 회개도 더뎌 주님의 눈에 매운눈물을 주는 우리였지만, 그렇다고 아름다운 자유와 날씨를 잠깐 경험케 했다가 빼앗아버리고 우릴 어둠속에 내팽개쳐 버리려는 것은 아니지요 주님?
그런다고 주님속이 시원해지실 것 같지도 않아요. 그런다고 주님의 의가 세상사람들에게 드러날것 같지도 않아요. 오히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한국이 공산화 되버린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은 종이 호랑이일뿐 이세상에 종교로써의 하나님은 있을지언정, ‘아하! 그들이 말하는 말씀이 살아있다는 창조주 하나님은 허구이고 거짓이구나’ 할것입니다.
우리 자유대한민국이 망한다면, 비참한 공산주의가 된다면, 한국사람들을 통해 전해들은 ‘주님의 영광’은 세상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것입니다. 주님! 저 포악한 북 독재정권과 그것을 이상적 롤모델인듯 추앙하는 한국내정치세력들의 위선에 주님의 의의 분노를 쏟을 정도의 명분있는 울부짖음의 숫자를 채워주셔서 우릴 구해주세요!
ps: 우리를 구하여, 평안가운데 살게 해주시는 것을
‘기뻐’해주세요.
2019-02-08 22:48:18 | 오영임
아멘!
2019-02-08 22:36:37 | 오영임
아멘!
2019-02-08 22:36:04 | 오영임
아멘!
2019-02-08 22:35:34 | 오영임
아멘!
2019-02-08 22:34:56 | 오영임
아멘!
2019-02-08 22:34:20 | 오영임
바다 밑을 향해 가라앉는 배 속에서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는 무기력함에 암담한 현실이지만..
모든 것이 낱낱히 드러나고 흑과 백이 갈수록 분명해지니 어느 지점에서 악의 정점을 찍을지 아버지께 긍휼만을 간구합니다.
그 때에 거뜬히 일어서기 위해 늘 깨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2019-02-07 14:27:01 | 김상희
오직 모든것의 결말은 아버지 하나님 손에 있기에
안타까움과 어이없음과 분노도 다스려 주시기를~
우리나라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2019-02-07 10:58:53 | 이수영
아멘!!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2019-02-07 07:00:17 | 김경애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하는 이쁜 자매님들 마음에 함께 붙어 아버지의 긍휼을 간절히 구합니다.
2019-02-07 00:11:51 | 김혜순
오는 차 안에서 "우리나라는 날씨도 좋다~아". 하나님아버지가 우리나라를 예뻐해 주시기로 작정하셨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 길 따라 가는거..당연 감격하며 가겠습니다. 내일도 하루 감사하며 복음 알리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맑은정신 거룩하게 살겠습니다..아버지! 예수님! 저희 나라 꼭 살려 주셔야 해요~ 사랑해요 아버지..사랑해요 하나님...
2019-02-06 22:45:28 | 목영주
한국사랑. 70년전에 험한 이념전쟁속에서 기적처럼
자유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을 생각하면 깊은 감사가 우러남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한민국에 부어진 풍성한 감사와 은혜와 영광이 우연 또는 힘의 역학관계로 기인된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긍휼이라 믿고 있습니다. 불가능 중에 가능함이라 더 소중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민주주의 한국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속끓는 마음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승리의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셔서 싸워 승리 주시길 원합니다.
나라의 안보 걱정 안하고 이 찬란한 대한민국에서 살수 있는 날들을 위하여....
(ps. 이미지를 첨부 했는데 좀 안맞는 것 같아 삭제했습니다)
2019-02-06 21:17:36 | 오영임
형제자매 진솔한 교제 모든분 옥합 향유입니다~
돌아돌아 사랑침례교회 플러그인 되어 곰곰히 생각하면 함께 하겠습니다.
2018-12-31 10:04:12 | 김홍한
지역리더님댁 중심으로 자매님 한분한분 형제사랑 정성 담은 음식모여서 만찬 입니다~
2018-12-31 09:54:38 | 김홍한
푸짐한 만찬 이네요.
형제님 반갑습니다.
2018-12-27 09:42:31 | 허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