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2019-06-12 09:14:26 | 김영익
아멘!!
2019-06-11 14:20:06 | 박정미
아멘
2019-06-11 13:44:31 | 이수영
아멘~
2019-06-11 13:27:26 | 유계월
아멘~!
2019-06-11 11:27:20 | 이남규
아멘~!!!
2019-06-11 10:11:52 | 어수석
아멘!!!
2019-06-11 08:37:38 | 김경애
아멘~
2019-06-11 01:00:24 | 김혜순
오 주여!
악한 자에게서 대한민국을 건지시고 난폭한 자에게서 대한민국을 보존하소서.
그들이 마음속으로 해악들을 꾀하고 싸우기 위해 계속해서 함께 모이며
뱀같이 자기 혀를 날카롭게 하였사오니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오 주여!
사악한 자의 손에서 대한민국을 지키시고 난폭한 지에게서 대한민국을 보존하소서.
그들이 대한민국의 가는 것을 뒤엎으려 하였나이다.
교만한 자들이 대한민국을 잡으려고 올무와 줄을 숨겨 두고 길가에 그물을 치며
대한민국을 잡으려고 덫들을 놓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말하기를 오 주여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니 우리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오 우리의 구원의 능력이신 하나님 곧 주여!
주께서 전쟁의 날에 우리의 머리를 덮으셨나이다.
오 주여!
사악한 자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고 그의 사악한 계략이 진척되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자신을 높일까 염려하나이다.
대한민국을 에워싸는 자들의 머리로 말하건대 그들의 입술의 해악이 그들을 덮게 하소서.
타오르는 숯이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시며 그들이 불 가운데와 깊은 구덩이에 내던져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악담하는 자는 땅에 굳게 서지 못할지니 재앙이 난폭한 자를 사냥하여 그를 넘어뜨리리이다.
주께서 고난당하는 대한민국의 사정과 대한민국의 헌법을 옹호하실 줄 우리가 아나이다.
참으로 의로운 자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며 곧바른 자들이 주 앞에 찬송하며 거하리이다.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9-06-10 22:49:56 | 박혜영
링컨의 연설은 게티즈버그를 뺄 수가 없지요.
링컨의 심정이 충분히 전해집니다.
창조주인신 주님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2019-05-30 21:38:00 | 이수영
샬롬이 시대에 크리스찬 가져야 할 건전한 보수주의 정신에 관한 좋은 칼럼이 있어서 공유합니다.기사에 인용된 성경구절은 킹제임스 흠정역 버전으로 수정했고, 나머지 내용은 기사 원문과 동일합니다.이 기사에서는 시편 90편을 다루면서,지금 크리스찬들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긍휼을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이 국가를 위해 계속 기도합니다.-----------[미래한국 칼럼] 링컨의 연설에서 찾은 보수주의 "여든하고도 일곱 해 전에"기사 링크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8051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Gettysburg) 연설은 미국, 아니 전 영어권을 통틀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불과 10개의 문장으로 이뤄진 그 간결함 덕분에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외워지고 인용되는 연설이기도 하다. 미국의 교과과정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 연설을 쉽게 외울 수 있도록 제작된 노래와 랩(rap)이 여럿 있을 정도다.
“여든하고도 일곱 해 전에” (Fourscore and seven years ago)로 시작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로 끝나는 이 헌정사는 사실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의 행사측으로부터 링컨이 “적절한 몇 마디 말씀”을 해줄 것을 부탁 받은 것이었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미국 남북 전쟁이 진행되던 1863년 11월 19일,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주의 게티즈버그에서 죽은 장병들을 위한 링컨의 연설은 역사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링컨은 이 기회를 통해 “자유의 새로운 탄생”(a new birth of freedom)을 선언하며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장식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19일, 그로부터 4개월 전 양측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남긴 게티즈버그 전투의 숨진 병사들을 봉헌하는 자리에서, 링컨은 이 짧은 2~3분 분량의 연설 속에 희생자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추모는 물론이고 미국의 건국정신과 당면한 전쟁의 명분, 그리고 미국의 장래에 대한 염원까지도 매우 통렬하고 온전하게 담아냈던 것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큰 울림과 유효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이 연설은 북한 동포의 ‘노예제’를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을 뿐 아니라, 노예해방을 위해 싸워야 할 한쪽에서마저 둘로 쪼개져 자멸 수순을 밟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Fourscore and seven years ago”
이 게티즈버그 연설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겨 있는 심오한 뜻과 정신은 이미 수많은 책과 논문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비교적 많이 다뤄지지 않은 “Fourscore and seven years ago” 라고 시작하는 연설 도입부의,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만, 생소할 수 있는 영어 표현이다. 한 ‘score’는 ‘20’(스물)을 뜻하는 영어의 고어(古語)다. 따라서 ‘Fourscore’는 80, 즉 우리말로 ‘여든’을 의미한다.
링컨은 야외에서의 대중연설인 만큼 직관적인 이해가 쉽도록 “87년 전에” 라고 하지 않고 왜 굳이 여든과 일곱을 나누어 “여든하고도 일곱 해 전에” 라는 표현을 구사했을까? 단순히 운율적 운치를 고려한 수사적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19세기 당시 미국에서는 score로 수를 세는 것이 매우 일상적인 표현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보다 깊은 뜻이 있는 것일까?
사실 킹제임스버전(KJV) 영어성경의 표현에 어느 정도 익숙한 크리스천이라면 이 ‘score 계수법’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예순’을 뜻하는 threescore와 ‘여든’을 뜻하는 fourscore는 킹제임스 영어성경에 각각 89번과 35번이나 나온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이브러햄 링컨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 특히 당시 미국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던 킹제임스 성경을 거의 외울 정도로 완전히 통달하고 그 문맥과 언어를 내면화하고 있었다. 아메리칸 대학의 대니얼 드라이스바흐(Daniel Dreisbach) 교수는 특히 이 게티즈버그 연설에 “킹제임스 성경의 운율(rhythm)과 어법(phrase)과 주제(theme)가 곳곳에 담겨있다”고 관찰한다.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올 때 품에 지녔던, 최초의 영어 주석성경이자 대중보급 성경인 제네바성경도 ‘scor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과 독립혁명 즈음에 미국인 대부분의 가정에는 제네바성경 혹은 킹제임스성경이 비치되어 있었고 사실 당시 미국인의 국어교육은 성경으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북전쟁 당시에도 미국인 3분의 2가 크리스천이었고 대부분 제네바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의 표현에 익숙했다는 사실은 성경의 문체가 미국인들의 국어 구사력의 가장 권위 있는 모범 어법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링컨이 연설에서 청중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성경적 표현’을 차용한 것은 가장 호소력 있고 엄숙하게 대중을 단숨에 사로잡기에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링컨은 이 “여든하고도 일곱 해”라는 표현에 어떤 수사학적 효과 이상의 무게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링컨의 고뇌는 단순히 내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연설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그는 “자유로 잉태되어(conceived in liberty)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바쳐진(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미국이라는 국가가, 그 명제를 위해 싸우다 둘로 쪼개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 can long endure.)
이는 노예제 폐지에 반발해 미합중국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한 남부지역뿐만 아니라, 북부에서도 이제 전쟁에 지쳐 남부연합군과 평화협정을 꾀하는 민주당의 반전(反戰) 움직임 때문이기도 했다. 링컨은 아직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남북전쟁의 가장 참혹했던 전투의 폐허 위에 서서, 주어진 짧은 시간에 국민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설득하고 연합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순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자연법이라는 영감과 신앙
1776년 건국의 아버지들이 기독교 전통에서 흘러온 자연법의 영감과 삼권분립 및 연방주의라는 천재적 발상으로 세워낸 자유공화 합중국 미국이지만, 이제 다시 더 이상 인간의 힘만으로는 그 나라를 지켜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위대한 정치철학적 실험(American experiment)이 인간의 결정적 한계에 다다른 것을 통감한 것이다.
드라이스바흐 교수는 링컨의 “Fourscore”라는 표현이 시편 90편 10절의 “우리의 햇수의 날들이 칠십년(threescore years and ten)이요 강건하면 팔십(fourscore years) …”이라는 구절에서 차용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링컨이 외웠던 시편 90편의 모세의 기도에는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인간 한계에 대한 뼈저린 통찰,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조건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평균 일흔 해, 길어야 여든 해인 “인간의 연수”(10절)를 이제 일곱 해나 넘어가는 미국은, “사람의 자랑과 수고”(10절)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진 “은혜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링컨과 미국인 모두는 “세대를 넘어 우리의 거처”(1절)가 되신 창조주 앞에 “날아가는 티끌”(3절, 10절)이자 “밤의 한 순간(경점)”(4절)임을 깨닫고 “우리의 날수 세는 것 ”(11절)을 배워 오직 “하나님의 아름다움(은총)”을 구해야 하는 (17절) 처지였던 것이다.
일흔하고도 한 해를 넘어가는 대한민국
광야의 40년을 마쳤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이 기도의 주인공 모세의 심정도 이와 같았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노예생활에서 구출해 내고 무려 40년 동안 시내산의 법도를 백성에게 훈련시킨 모세였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애굽에서 나온 어느 누구도 요단강 건너의 언약의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 죄로 인한 사람의 한계는 정해진 것이었고 여호와의 섭리는 모세가 죽은 후 완전히 다른 다음 세대 여호수아를 통해 확인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링컨도 남북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암살되었다.)
그것은 “믿음의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은 받지 못하는” (히 11:39) 믿음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모세는 자신은 밟지 못할 그 땅의 후손들을 위해 신명기를 남기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인간 행사를 위탁하며 두 번 간절히 사무치는 기도를 올렸다. “우리 손이 행한 일을 주께서 우리 위에 굳게 세우소서. 참으로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그 일을 주께서 굳게 세우소서”(17절)
이제 71살이 되는 대한민국이 놓인 처지도 그렇다. 사람의 연수인 “일흔 해” (threescore years and ten)를 넘어 이제 한 해가 지나고 있다. 100년 전 “자유로 잉태”해 71년 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명제에 바쳐진 이 자유민주공화국은, 비록 한반도의 반쪽으로 시작했지만 놀라운 개인의 자유와 번영을 이뤘다. 이제 과연 그 자유의 나라가 우리 인간의 연한 이상으로 버틸 수 있을지를 시험받는 치열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일부는 이미 이 과정에서 생명을 바쳤고 우리는 그 희생 위에 서 있다.
이 시점에 우리에게, 적어도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세와 링컨의 기도처럼 “날 계수함”을 깨닫고 인간 연한을 넘어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실 창조주께 엎드리는 것이다. 71년 전 제헌국회 첫 회의에서 이승만 임시의장이 고백했듯이, 자유민주공화국을 이 땅에 세우게 된 것도, 지금까지 공산주의의 엄습에도 버티며 자유를 지켜온 것도,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자랑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즉, 이제 자멸과 자유회복의 기로에서 다시 한번 자유를 선택하기 위해 창조주의 간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보수주의 정신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와 인간 상위의 창조질서에 대한 뼈저리는 인정이다. 그렇게 비로소 창조섭리의 안목을 가지고 믿음의 영역에 발을 내디딜 때, 이 땅에 노예 된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북한 동포와 마침내 함께 누리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자유의 탄생”(new birth of freedom)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미래한국(http://www.futurekorea.co.kr)
2019-05-30 13:27:42 | 오광일
구구절절 와닿는 말씀들이 가슴 깊숙이 새겨집니다.
좋은 책과 감상문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9-05-08 01:13:15 | 이명석
건국의 아버지!!!
우리백성이 다시는 종의멍에를 메지 않기를 기도하셨던
믿음의 사람 이승만대통령!!!
혜안이 있으셔서 우리를 70년간 자유롭게 살도록 기초를
놓아주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분이
암울한 현실앞에 그립습니다.
2019-05-07 16:19:52 | 김경애
우리에게 전파된 기독교 믿음이 곧 피의 역사였고,
우리나라 대한 민국도 피의 역사로 세워진 나라=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다시금 감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다음세대들도
자유롭게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껏 찬양하고 섬길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9-05-07 09:06:57 | 이수영
이 책은 1913년 하와이에서 출간된 후 현대어로 정리하여 2008년 재출간 되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소개가 따로 나와 있지 않아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직접 쓴 서문으로 대신한다.
[서문]
일본이 한국교회를 핍박한 것은 교회와 민족과의 깊은 관계 때문이었다. 이 책을 통해 상세히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목격한 것들과, 미국 각 신문에 보도된 자료들, 미국 각 교회에서 대표들을 파송하여 직접 보고 된 내용들, 각 교회들의 월간 잡지들과 미국의 선교회에서 발간한 글들을 토대로 그 대강을 추려 간단하게 작성한 것이다. 따라서 깊이 읽어 보면 분명 잘못된 부분이나 부족한 점들이 발견될 것이다.
무릇 무엇인가를 소망하는 사람은 그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일을 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일을 하고자 하는 자는 그 일의 실상을 알고자 할 것이다. 이는 거꾸로 이야기 하면 일을 알아야 올바로 행할 수 있으며, 올바로 행해야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과도 얻어지지 못할 것이다.
무릇 이글을 쓰는 뜻은 일본의 잘못함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한 바를 알리고자 함이다. 이 뜻을 알고 행하기를 힘쓰길 바라며, 이 글이 더 나아가 우리 민족 전체에게 유익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재판의 전말은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번역하여 따로 발간하도록 하겠다.
1913년 3월 일
이승만 자서自序
[독후감상]
나는 이 책의 제목과 저자를 보고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포장을 뜯어보니 바로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미소가 보였다.
한국교회핍박
자유로운 현재에 이 말이 참 와닿지가 않는다.
한국교회를 핍박...누가? 왜? 어떻게?
어떤 내막이 있었을까?
나는 한국교회핍박과 이승만 대통령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첫 장을 열고 이어지는 사진 자료들을 보면서 특히 <이승만과 함께 감옥에서 성경공부를 하던 옥중동지들-왼쪽 중죄수 복장을 하고 있는 이가 이승만이다> 사진을 바라보며 어떤 내용인지 더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국교회핍박, 외교상 관계, 내치상 관계, 한국기독교청년회(YMCA), 선천학교와 재판전말 등 5개의 큰 제목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은 105인 사건인데 이것은 한 시대 한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지는
것을 알게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105인 사건에 대해 이 책은 <1911년 일제가 무단통치의 일환으로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확대,조작하여 애국 계몽 운동가들을 투옥한 사건이다>이라고 간단하게 되어 있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이렇게 쓰여있다.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 해(1910년)에 안명근이 독립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쓴 사건이 있었다. 일본은 평안도를 중심으로 하는 배일 기독교 세력과 신민회의 항일 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그 사건을 날조하여 신민회원을 비롯한 민족 지도자 600여 명을 검거하고 그중 중심인물 105명이 기소되었다.
신민회의 지도급 인사였던 윤치호, 양기탁, 이동휘 등과 교육자, 해서 지역의 유지 김홍량 등이 피소되었고, 체포·기소된 인물이 105명이라 “105인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건 관련자들이 압송되는 것을 경성의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 안에서 보던 이승훈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리다가 총독부 경찰에 의해 정체가 탄로나 체포되기도 했다.
체포 이송 도중 신석규는 경의선 열차로 호송되던 중 투신하여 자결하였고, 한태동 등은 옥중에서 사망하였으며, 전덕기 등은 고문 후유증으로 죽었다.
이 사건으로 신민회의 전국 조직은 모두 와해되고, 1심에서 105명 모두 유죄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는 99명은 무죄, 나머지 6명은 유죄가 선고되어 옥고를 치렀다.
기독교 인사이자 반일인사로 지목된 이승만은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출국, 체포를 모면하였고, 김규식은 이 사건 이후 일제의 꾸준한 회유와 협박을 피해 1913년 차량편으로 만주에 인삼장사 하러 간다는 핑계로 몽골로 망명하였다.]
<일본은 통상을 개시한 이후부터 세계 각국의 신임을 얻고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줄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자국에 해악이 되고 수치스러운 일들은 기필코 은폐하는데....일본의 외교력과 수단이 점점 노련해져...남들이 쉽게 신뢰할 만큼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외부에 보여진 모습이다. 이런 일본이 은폐하려다 세계 각국의 비판적인 여론을 받게 된 것이 105인 사건인 것이다. 뉴욕 헤럴드와 태양보, 영국 런던의 시사주간지와 일본 고베의 제펜 크로니 등에서 집중적으로 한국인들의 무죄 사실을 보도하는데다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은밀히 보낸 편지와 공문들을 연재한 선교회 주간지도 있었고 미국 교회들이 움직이니 일본의 외교력도 하나님 앞에서는 허사였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후로 외교적인 모든 상황을 자신들의 뜻대로 통제해 놓았는데 그 상황의 통제에서 빠져나가는 기독교는 외국인들과 연대하고 서양의 각 나라와 정보를 주고받는데다 기독교에 입교한 이들은 새로운 사상과 애국정신으로 굳게 배이니 일본 입장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얼마 후에 일본이 발표하길 미국 선교사 수 십 명도 이 일에 관련된 증거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사건이 교회에서 시작된 일임을 발각했으며...몇 몇 선교사의 이름을 진술에 꾸며 넣었다...미국의 각 교회에서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은폐하고 싶었던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니 일본의 고민은 알만하다. 그래서 일본은 간접적인 반대활동으로 일본에 가있던 손병희와 이용구로 하여금 '천도교'와 '시천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설립하게도 하고 공자교,단군교, 중앙교 등의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많은 신흥종교들을 세워지게 하며, 일본 조합교회에서 선교사를 서울로 보내 일본인은 체쳐놓고 한국인들에게 전도하며 기독교에 간접적인 반대활동을 펼쳤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20-30명의 한국인도 단체를 설립하지 못하거늘 100만명의 한국인이 동학 세력의 단체를 세우는 것을 아무 이유 없이 허락해 주겠는가? 이것만 보아도 그 이유를 가히 추측할 수있다 하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구나! 하는 부분은 <교회 순례객들은 산천경개나 구경하고 다니는 자들과 달라서 한국 도처의 정치, 종교, 사회상 모든 상활을 살피고 조사하며 세계의 다른 상황들과 비교하며 이곳 사정을 저 나라에 가서 설명하고 저나라 사정은 다른 곳에서 전하기도 한다> 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돌보시는구나!하는 느낌이랄까..
한국의 기독교가 일본 사람들의 생각에는 일본의 정책에 반하는 세력으로 판단하는 이유를 8가지로 들고 있다. 그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이유는 첫번째 이유로 교회가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장소이다. 여기에서 청년 애국운동가들의 전도하는 말이 '우리는 나라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천국을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이 다 따라 생기리라'를 보며 이들의 신앙을 잠시 생각했다. 이 책은 이승만 대통령이 저자이지만 저자에 대해 나온 대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오니 반가웠다.
'믿는 사람들은 군병같으니'
이 찬송가는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는 동안이나 대통령이 된후에도 이 찬송가를 부르면 용기와 힘을 얻었고, 그 후 이승만 추도예배나 기념행사에서 이 찬송가는 그의 영혼 앞에 항상 불려지고 있다하니 다시 한번 그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기도 했다.
두 번째로 교회 안에 왕성한 활동력이 있다.
세 번째로 기독교의 합심하는 능력이다.
네 번째로 교회 안에서 국민의 원기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로 교회 안에서 청년교육을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로 기독독교인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로 선교사들의 덕성과 정의를 지닌 세력이 한국에서 확장된 것이다.
여덟 번째로 '혁명사상'의 풍조가 동양에 전파되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자들이 보기에는 한국교회는 독립사상을 배양하는 곳이오 한국교인은 장래 혁명을 주창할 자이므로 한국교회를 일본인이 통괄하며 한국 교인을 일본인이 다스리기 전에는 장래 화근을 막을 수 없는 줄로 여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을 이렇게 단정지었다.
<일본인이 세상 권력으로 기독교회를 타파하려함은 과연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세상권력의 배후를 알고 하나님의 권능을 아는 이승만 대통령...
이런 분이셨구나!
이 책의 간행사에서 정진경 목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승만 박사는 1948년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당시 국회의원 중 기독교인이 10%도 안 되는 척박한 상황 중에도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라 자랑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고 기도로 시작하여 대한민국 국회속기록 첫 페이지를 기도문으로 열게 한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나라 지도자이시다.>
처음 이 책을 펼칠 때는 중죄수복 입은 이승만 대통령 사진에 뭉클했는데 덮을 때는 대한민국을 돌보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대한민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
그리고 하나님...
대한민국이 이 핍박을 통해 건국된 기독교 나라임을 알게 되니 지금 누리는 이 모든 자유가 너무 귀하다.
나는 책을 덮으며 이 말씀을 생각했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2019-05-06 18:04:08 | 이정자
국익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 놓은 정치인들이 국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본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정치계는 사익과 자당의 이익을 국익에 우선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들을 탓할 필요도 사실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의 수준은 해당 국가의 국민수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죄 덩어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이 사익추구에 여념 없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사익추구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선을 넘는 것이 문제겠지요.) 다만 선택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지게 된다는 점에서 다수의 표결로 선출된 그들의 그릇된 정책들의 추진으로 인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맹에서 벗어 난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OECD국가 중에서도 상위에 들만큼 한국인의 교육수준은 세계적입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의식수준도 그에 미치는가? 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는 집권여당을 포함한 범여권의 저의(그 행위는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로써 커밍아웃한 것입니다.)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온갖 거짓의 향연을 펼치면서 사회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들이 연일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저항이 소규모에 그치고 있음은 이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이 ‘자유’라는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정말 비싼 대가를 치르겠구나. IMF외환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태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구나.’ 라는..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지금의 정권은 자기들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우파, 보수, 자본주의에 손가락질을 하겠지요. ‘너희들 때문이다. 적폐청산이 덜 돼서 그렇다. 이 땅에 친일파들과 미제의 앞잡이들이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다. 재벌들이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착취하고 있다. 부동산에 세금을 더 매겨야 한다.(그들이 불로소득을 챙기고 있으므로.) 최저임금이 덜 올라서 그렇다. 더 올려야 한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거짓말. 마땅히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그들의 철면피적인 행태를 깨닫고 이제 좀 빠져나올 때도 된 것 같은데 국민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거짓(사회주의)의 늪에 빠져서 그것이 자기의 숨통을 조일 때 까지 있을 작정인가 봅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적과 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적에게 선의를 지속적으로 보임으로써 얕잡아보이게 되면 국가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워지게 됩니다. 남한과 북한은 왜 ‘우리 민족끼리’가 될 수 없는가? 상충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체주의 독재정권이고 우리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상충한다는 말은 곧, 적이라는 말입니다. 불량한 깡패집단인 전체주의 독재정권에게 잘 지내보자고 손을 내민다? 그것은 적에게 우리의 나약함을 내보이는 것이고 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가소로이 여길지를 생각하면...그러니 ‘오지랖 넓은 중재자’같은 모욕을 듣고도 깨갱거리면서 조용히 있는 것이지요. 김정은과 그 하수인들이 관영언론을 통해 어떠한 모욕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을 해도,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현 집권세력의 대응은 무대응, 아니면 감싸주기입니다. 국내의 정적들에게는 적폐청산운운 하면서 그토록 모질게 핍박하고 북한정권에는 어찌 그토록 하염없는 해바라기일까를 보면서 우리는 햇볕정책이라 일컫는 유화정책이 가지고 있는 사악함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햇볕정책의 햇볕은 전체주의 독재정권에게 비춰지지 그들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북한주민들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 본질입니다. 진정 북한주민들은 헌법상 우리 국민인데 그들의 숨통은 조이고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열어주는 햇볕정책은 사실상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사악한 정책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듯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안)하고 상충하는 체제인 적에게 내미는 손은 비굴함과 나약함으로 비춰지고 적은 그 점을 한껏 이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잘못 뽑은 지도자 때문에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게 됨을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남한과 북한. 언제나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듯이 두 가지 상충하는 체제중 하나가 무너져야 비로소 우리 민족끼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북한정권이 무너져야 하고, 북한주민들이 압제에서 해방되는 날, 그 때가 바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권은 두 가지를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이룰 수 없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습니다(1국가 2체제 연방제통일). 물과 불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은 계속 노예로 살라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사악하기가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일은 집권 범여권세력이 선의로 포장한 사회주의라는 시한폭탄을 국민들에게 선물이랍시고 강제로 안겨 준 것입니다. 재깍재깍 초침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상자 속에 들어있는 선물이 폭탄임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터지고 난 다음에는 후회해 봐야 소용없으니 많은 국민들이 사회주의의 사악함을 알 수 있도록 계속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또, 적지 않은 희생과 비용을 치루더라도 마침내는 선을 이루기를, 또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또한 베네수엘라의 과이도 임시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자유의 작전이 반드시 성공하길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youtu.be/f8UCu9J1EEQ
http://youtu.be/ZALVkMfs2uc
2019-05-03 15:32:37 | 이광희
레위기를 보면서 느꼈던- 12지파가 다 똑같이 드린 헌물을 일일이 기록해 왜 이렇게 다 기록하셨을까?
'이하동문' 하면 훨씬 짧아 질텐데 생각하다가 주님은 그만큼 하나 하나가 특별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누구의 아들이고 이름은 무엇이고, 무엇을 잘하고- 사람을 만드신 주님이시니 무엇을 모르시겠어요.
다만 그러한 기록을 통해 우리 개인은 하나님의 눈앞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요.
우리는 각자가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2019-04-07 10:56:07 | 이수영
자매님을 향한 낭만적인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열매들을 기대합니다.
우리모두가 하나님께 향한 바라봄이 점점 닮은꼴로
나타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아침 상큼한 소식에 힘을 얻고 일어섭니다.
2019-04-07 08:37:27 | 김경애
참 아름다운 신앙고백이네요.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어가도 내 자신을 잊지않고 늘 마음과 언행을 살피며 새록 새록 믿음을 점검하는 모습에 제 마음도 부드러워지네요.
구원의 감격과 삶의 여정을 이따금씩 가만히 멈추고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도록 좋은 도전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4-07 08:21:53 | 오혜미
매일 감사하지만 자매님 글로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주님과 만난지 오래되었음을 고백하지않을수가 없네요.
이렇듯 글로 남기는것도 아무생각없이 살고 있는 나를 깨우는데 필요한거 같아요. 주님의 첫사랑을 되새기며.....
2019-04-06 21:01:18 | 이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