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담대함' '자기 쓴뿌리' '자기 정죄함'
이런 의미들에 대한 단상은 결코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단어들인 거 같아요.
이렇게 예리하고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 우리모두가 시험들거나 실족하는 일이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인생은 좋은 일로 메꾸기에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이제 60을 바라보며 더욱 느껴집니다.
청원자매님 말대로 정말 성령충만한 글이네요.^^
2015-09-17 08:07:59 | 오혜미
우리 영생의 동지들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주님의 일꾼들로써 함께 나아가요.
정말 헛되지 않은 수고를 주님께 드리고 싶네요! 현제님의 뜬금 좋은 글에 감사해요~^^
2015-09-17 07:24:06 | 성호현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고전 15:58-
아멘아멘아멘입니다.
저도 장형제님처럼 본문에서 갈무리해 덧글에 옮겨봅니다.ㅎㅎ
김형제님, 언제 이렇게 좋은 글을 쓰셨는지요. 앞으로도 성령충만한 글 부탁드립니다.
2015-09-16 19:10:01 | 이청원
오늘 이뉴스투데이에 나온 기사입니다.
'영재발굴단' 김종혁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9669
2015-09-16 18:34:36 | 관리자
김정호형제님!
인생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펼쳐주시는 커다란 위로와 사랑을 일필로 단숨에 써 내려가며 귀한 은혜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게는 아래의 문장들이 특히나 용기와 힘을 가져다 주었기에 다시금 적어봅니다. 샬롬^^
1. 늘어진 저의 손과 무릎을 반드시 말씀으로 다시 굳게 세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주의 일을 사모하는 영에게 있어서 큰 구렁텅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나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당연히 매를 맞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기다려 주시고, 기회를 주심으로 징계를 참아주시는 주님, 이것이 ‘주의 긍휼’ 아니겠습니까? 감사드릴뿐이지요. 그래서 곁길로 갔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분께 신속히 돌이키면 우선 안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주님은 돌이키는자들을 기뻐하십니다.
3. 결코 마귀에게 작은 틈도 주지 마십시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틈 탈수 없습니다. 말씀을 굳게 믿고 읽으며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세요. 그리고 새힘을 얻으시면 시간을 아껴서, 다시금 주의 일꾼으로 일하십시오.
나의 늘어진팔과, 무릎이 힘을 얻어 굳세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까지 잠시 힘들고 어려웠지만, 이후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직 주를 다시 만나고 난후가 확연히 다릅니다.
2015-09-16 15:58:24 | 장용철
“오늘 말씀 읽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 늘어진 저의 손과 무릎을 반드시 말씀으로 다시 굳게 세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주의 일을 사모하는 영에게 있어서 큰 구렁텅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나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직 우리를 건져 주시는 주[LORD]가 계시기에 글을 쓰면서 저도 힘을 얻습니다.-
(딤전 3:13, 킹흠정) 『집사의 직무를 잘 수행한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좋은 지위를 얻으며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에서 큰 담대함을 얻느니라.』
이제 신앙적으로 성숙단계에 오르셔서 주의 일꾼으로 일하시는 지체들, 특별히 집사의 직분을 맞고 계신 형제님들은 이미 어느 정도 믿음의 맛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성경적 근거로 보면, ‘믿음의 담대함’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주께서는 늘 우리에게 동행하여 주실뿐 아니라, 일할 능력까지도 공급해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일하는 각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기에 잘 감당하면 그 능력 공급하심과 믿음의 담대함이 더 클 것이고, 혹여나 적절히 감당했으면 거기에 걸맞은 믿음의 담대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분량만큼 주시는 것이기에 더 크다고 더 작다고 우리가 사람을 높이고 낮출수는 없겠지요. 우리는 오직 주의 말씀대로 믿고, 일꾼으로 세우신 분께 감사드리거나 낙심한 지체에게 서로 위로하며 더욱더 말씀대로 지체를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 합니다. 오직 주께서만이 주의 일꾼들을 판단하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의 군사들은 이제 앞으로 더욱 만군의 주께 더욱더 인정받는 좋은 일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혹여나 전쟁중에 부상을 당하거나, 고갈되었거나, 혹여나 곁길로 갔는지 서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곁길로 간’ 지체들을 위해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혹여라도 이런 지체들에게 ‘다시 일어날 이유’가 있어서 더 나누어 보겠습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써의 일꾼들은 늘 대대장되신 주 예수님의 명령하심에 민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한일에 푹빠져서 자기의 자랑으로 자기도 모르게 가득채워지게 되면 믿음의 담대함이 아닌, ‘자기 담대함’으로 무엇이나 된 것처럼 우쭐 되는 행동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또는 갑작스럽게 지체들에게 또는 목사에게서나 조금이라도 마음에 인간적인 섭섭함을 듣게 되면 저 뒤로 움츠러들어 등껍질속에 감추어버린 거북이 같이 숨고 안나오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항상 기회를 봐서 교회를 떠날 생각만하게 되겠지요. 자기 하는 일에 부족하여서 아쉬움만 남는 것이 지나쳐서 정죄감에 빠져있게 되어 무능력하게 되는 경우도 곁길로 빠진 것이라 할수 있겠지요.
그 동안 교회에서 ‘자기 담대함’, ‘자기 쓴뿌리’, ‘자기 정죄함’으로 일한 오류들에 빠지게 된다면 주와 계속 멀어지게 되고, 직무 수행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되고 감당치 못한것보다 오히려 안좋은쪽으로 결과를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오류들에 빠졌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주께서는 그 일꾼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주께로 돌이킬수 있도록 깨달음과 참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심을 늘 감사드립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곁길로 갈 때 마다 돌이킬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고, 바로 매번 채찍질하신다면,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성한대 없이 결코 지금 이순간까지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매를 맞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기다려 주시고, 기회를 주심으로 징계를 참아주시는 주님, 이것이 ‘주의 긍휼’ 아니겠습니까? 감사드릴뿐이지요. 그래서 곁길로 갔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분께 신속히 돌이키면 우선 안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주님은 돌이키는자들을 기뻐하십니다.
(동시에 이것도 마음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진노하기를 늦추시고 기다려주실 뿐이지, 우리가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강퍅한 마음을 계속가진다면 결국 주님의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마음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볼때 큰 전환점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돌이킨후가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주를 만난후부터 바로 주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의심많은 도마가 전과 후의 고백이 다릅니다.
(요 20:25)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였으나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분의 두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분 옆구리에 넣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요 20:27) 『그 뒤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두 손을 보며 또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으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니』
(28)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
우리가 곁길갔을때와 주님을 다시 만났을때가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힘들어 했던 영이 다시 소망을 가질수 있다는 성경의 초대입니다.
주께서는 이시간도 믿음의 좋은 군사들이 빛을 발하여 일어나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허무의 자리에서, 낙심의 자리에서, 무능력의 자리에서, 두려움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시어 믿음으로 나아가 담대함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실패 하셨습니까? 사망의 쏘는(sting) 것이 자꾸 나를 괴롭힙니까? 율법적으로 정죄감에 빠져 계십니까?
잠시 고개 드시고,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 보십시오. 그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주의 보혈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분께 아뢰십시오. 피해가 안된다면, 부르짖으셔도 됩니다. 예배당이 아니여도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기도할수 있습니다.
다시 직무 수행할 영적인 능력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결코 마귀에게 작은 틈도 주지 마십시오.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고,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틈 탈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굳게 믿고 읽으며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세요.
그리고 새힘을 얻으시면 시간을 아껴서, 다시금 주의 일꾼으로 일하십시오. 나의 늘어진 팔과, 무릎이 힘을 얻어 굳세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까지 잠시 힘들고 어려웠지만, 이후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직 주를 다시 만나고 난후가 확연히 다릅니다.
훗날에 우리 모두가 이런 고백으로 주께 영광돌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 15:10-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고전 15:58-
2015-09-16 12:56:58 | 김정호
예배시간에 목사님께서 소개할 때 수줍어하는 모습이
몇 달 사이에 의젓해지고 많이 자란 것 같아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네요.
종혁이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서 특별한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바랍니다.^^
2015-09-16 01:04:34 | 김상희
안녕하세요?
일산에서 오시는 김창곤/조금희 부부의 큰아들 종혁이가 SBS의 영재발군단에 뽑혀
내일 저녁(9월 16일 수요일 저녁 8시 55분)에 SBS에 나옵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photo2&write_id=1393
아마 우리 교회도 나올 것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같이 보시고 주일에 격려해 주세요.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서 귀한 아이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9-15 15:10: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 자매모임은 메밀꽃이 한창인 인천대공원에서 모임을 가지려 합니다.
자매라면 누구나 참여하실수 있고요,
17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인천대공원 동문 메밀밭 에서 뵙겠습니다. 샬롬.
* 자매모임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015-09-12 17:18:4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9월 16일 수요일 어르신 모임은
교회옆 늘솔길공원에서 도시락데이를 할 예정입니다.
편안한 복장(운동화, 모자, 양산등)과 반찬 한가지씩 준비해 오시고
10시 30분까지 교회로 오시면 같이 출발하겠습니다.
밥과 물은 교회에서 준비합니다.
각 가정의 어르신들께 안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롬.
2015-09-12 17:11:00 | 관리자
기회가 있을 때 또 만나뵈러 가야겠습니다. 함께 있어드리고 혹시 이동이 가능하신다면 차에 모시고 바람이라도 쇠러 나가야겠습니다. 도움 감사드립니다.
2015-09-11 15:00:29 | 장영락
고린도전서 15장과 데살로니가 전서 4장을 오랜만에 주의깊게 읽어보았습니다. 쇠약하신 형제님 상황으로 인하여 만약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9-11 14:59:00 | 장영락
장영락 형제님..
형제님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임박한 죽음을 앞둔 지인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어떤말을 해주면 좋을까?
사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 어떤 인간의 말도 위로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곁에 있어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적 시골교회를 다니던 시절, 100세가 되신 어르신 형제님이 계셨는데,
주님께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교회도 못나오시고 해서 저희 어머니와 방문을 여러차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당시 그 어르신은 막상 죽음이 다가오니 두려움과 불안으로 힘들어 하셨고, 그래서 저희가 했던일은 구원에 확신, 천국의 소망에대한 성경말씀을 읽어드리고 함께 찬송도불러드리고 하면서 평온한 마음을 되찾으실수 있도록 했던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난 며칠후 그 어르신은 평안하게 주무시듯이 주님께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에 임박해 있는 성도에게 큰 위로는 같은 믿음의 성도가 함께 곁에 있어주는 그 자체인것 같습니다.
2015-09-10 23:57:42 | 오광일
장영락형제님,
얼마나 안타까우면 이렇게 글을 남기셨을까요?
저는 사랑침례교회 성도 입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투병중에 있는 성도분을 지켜보는 형제님의 슬픔이 크시겠네요.
무엇보다도 진통제등 의료혜택을 받는다면 육신의 고통을 줄이고 편안하게 하늘의 부르심을 받을수 있을텐데 그나마도 힘들다고 하니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의학적으로 한달간의 생명이 허락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나마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의식은 겨우 몇일정도 밖에 안 남았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이런 상황을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옆에 있는 지인들이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네요.
다만,
형제님의 글처럼 환자분이 구원받은 성도라고 하니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과 살전4:13-18절을 낭독하므로써
고통중에 있는 분에게 하늘의 소망으로 위로해 주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는 것이 가장 큰 위로겠지요.
그리고 그분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때
구원에 대해서 다시한번 정확하게 언급하는 것은 가장 좋은 위로가 될것 같습니다.
형제님께 큰 조언이 안되어 죄송합니다.
다른분들의 의견들도 많이 참고하시여 환자분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5-09-10 17:39:55 | 김영익
사랑하는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보내주신 CD와 책자는 정말 잘 보고 있고 특히 CD는 출근 시간 내내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너무나 좋습니다.
한가지 문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가까이 사는 성도분이 암 말기로 투병 중이신데 가정형편이 많이 안 좋아 병원 치료는 못 받으시고 시기적으로도 이미 복수가 가득 차고 황달이 오셔서 한 달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제 말을 알아듣기만 하시고 힘이 빠지셔서 말씀도 잘 못 하시더군요.
그분께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지만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고 또, 저보다 좋은 믿음을 가지신 분 앞에서 욥의 친구들처럼 주제넘을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그분의 눈만 바라보다 기도하겠다고만 말하고 왔습니다. 오늘내일 다시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시간은 별로 남지 않은 것 같고...어떤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많이 겪으신 분들 조언을 구합니다.^^
2015-09-10 14:27:29 | 장영락
맞아요~
달라졌어요를 시청하는 우리는 객관적이지만 당사자들은 주관적이라
제 모습을 보지 못하지요.
그래서 녹화된 장면을 보여주면 화들짝 놀라고 변화가 생기더군요.
그러기에 솔직하게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마음이 필요해요.
방어나 공격이나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는 전혀 해결이 안되요.
자기 고정관념이나 자기 생각을 다른 쪽에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2015-09-10 11:07:32 | 이수영
관계형성에 있어 객관적 관점에서 이해하기가 말처럼 쉽진 않지만
알고 노력한다면 좋은관계로 유지 발전하지 않을까..
깊이 공감이 가는 글 감사합니다.
2015-09-10 10:32:39 | 김상희
논현지역이 찬양을 드리며 하나로 뭉쳤네요.
가사도 은혜롭고 반가운 지역 지체님들의 찬양이어서
더욱 아름답게 들리네요.
반주자 현수도 어느새 그리스도 청년이 되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2015-09-10 10:21:27 | 김상희
글을 읽으니 오래전 TV에 나왔던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라는
커피 CF 카피가 생각났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본받아
다만 나의 사방 몇 미터라도 따뜻한 영적 온기를 발산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생활밀착형 교훈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주는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2015-09-09 17:17:21 | 김대용
"이제 이것은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하니라. 높이 일으켜진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스라엘의 달콤한 시편기자가 이르기를, 주의 영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며 그분의 말씀이 내 혀에 있었도다.(사무엘하 23:1-2)"
성경 속에 그 일생이 그려져 있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 특히 다윗은 다양하고 교훈적인 체험을 많이 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그의 생애 속에서 옛날 다른 성도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시련과 유혹을 봅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그는 더욱더 우리 주 예수님의 모형이 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거의 모든 계층과 환경에 속한 인간들이 겪는 고난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왕들은 왕들 나름대로의 시련이 있는 법인데 다윗은 바로 그 왕관을 썼던 사람입니다. 시골 농부는 또 농부 나름대로의 근심 걱정이 있는 법인데, 다윗은 목자의 지팡이를 가지고 양떼를 쳤던 사람입니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은 또 많은 역경을 만나는 가운데 고난을 겪기 마련인데, 다윗은 엔게디 굴에 거한 적이 있던 사람입니다.
대장에게도 어려움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대장으로서 스루야의 아들들에게 심한 대접을 받는 체험을 했습니다. 이 시편 기자는 또 그의 친구들 가운데서도 어려움을 당하는데 바로 그의 조언자인 아히도벨이 그를 저버렸습니다. "참으로 내가 신뢰한 나의 친한 친구 곧 내 빵을 먹은 자가 자기 발꿈치를 들어 나를 대적하였나이다.(시 41:9)"
또 그의 가장 악한 원수들은 바로 집안 식구들이었습니다. 즉 그의 자녀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가난과 부요함, 영광과 치욕, 건강과 약함 등 이런 것들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유혹들이 그에게 힘을 과시했습니다. 그는 또 밖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교란시키는 유혹을 받았으며 안으로는 기쁨을 해치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 고난에서 벗어났는가 하면 곧 이어 또 다른 고난에 빠졌습니다. 한 가지 낙심과 놀라움을 겪고 일어나 정신을 차렸는가 하면 또다시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고난과 시련의 모든 파도가 덮쳐 왔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때문에 시련과 고난 받는 성도들이 다윗의 시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떻든, 너무 기쁨에 넘치든, 낙심하여 우울증에 빠져 있든, 아무튼 다윗은 우리의 그런 기분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우리도 여러 해 동안 그 말씀에서 배움을 얻으며 은혜 안에서 자라다보면 다윗의 시를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요, 그 시들이 "푸른 초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시 23:4)"
"스펄전의 365일 묵상"
2015-09-08 20:29:53 | 박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