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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얼마나 훌륭한가?   교회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나에게 하나의 작은 고민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댓글로 글 잘 읽었다는 인사말과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칭찬을 듣고는 내 마음속에서 야릇하고 요상한 마음의 충동이 일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 하나가 잘못된 환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질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글 잘 읽었다는 칭찬을 계속 듣다 보면 나 스스로가 어느새 당치도 않은 훌륭한 사람 중 하나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어쩔 수없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요사스러운 마음이 생겼나봅니다.   나는 정확히 2001년 8월부터 내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면서 내 나름대로의 신앙에 대한 명제 하나를 걸어놓고 믿음생활을 하기로 작정하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삶에 있어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라는 단어를 넣고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단어는 기독교사상에 배경을 두고 있는 말이기에 이 말을 내 삶의 명제로 삼겠다는 결심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는 아직 “있는 그대로” 살고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으며 그러한 현실에 큰 불만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있는 그대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음에 매번 고민과 갈등을 겪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 수 없다고 하는 이 현실에 절망감마저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 나의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환갑을 한참 넘기게 된 지금까지도 전혀 있는 그대로 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있는 그대로”라는 것이 너무나 크고 너무나 엄청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나는 왜 빨가벗고 나돌아 다니지 못하는가? 이렇게 묻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 같은 질문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인 것 또한 너무나 잘 압니다. 누가, 사람은 왜 빨가벗고 나다니지 못하는가라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 같은 문제는 문제로 느낄 수조차 없을 만큼 엄청난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나 개인의 실질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방귀를 힘차게 뀌어댑니다. 그러나 옆에 사람이 있을 때는 소리가 안 나게 그만 참아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이 없는 데서 방귀를 뀌는 것도 나 자신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방귀 한번 안 뀌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나 자신입니다. 나는 이러한 나 자신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만 그런가 하여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밖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들어온 줄 빤히 알고 다그치는 아내 앞에서 가진 능청을 다 떨어가며 생트집 잡는다고 딱 잡아떼는 이름 없는 가장으로부터 국민의 혈세를 통치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어마어마하게 떼어놓았다가 들통이 나는 순간까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던 대한민국의 유명한 전직대통령과 코흘리개도 다 알 정도로 들통 날 대로 다 들통나버린 정사사건을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네버, 네버를 연발하던 미국의 유명한 전직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중간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도 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사람이란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그 만큼만 정말로 훌륭해도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세상에 알려진 그만큼도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훌륭하다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허명을 뽐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학창시절 때부터 글은 곧 사람이라는 말을 배워왔습니다. 내가 글을 써 보니 정말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내 속에 내가 쓴 그런 글의 세계가 없다면 글은 한 자도 쓰여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컴퓨터화면위에 한 자, 한 자 들어가 박히는 글들은 모두 다 내 속에서 지금 막 튀어나오는 글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내 속에 있던 것들이 컴퓨터화면위에 나와 박혀야 됩니다.   나는 지금 기독교정신이 담겨진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기독교 이야기란 하늘의 이야기입니다. 그 하늘의 이야기가 지금 어디서 나오고 있는가하니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내 육체 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나의 기독교정신은 나의 육체 안에 있고 나의 영과 혼도 내 육체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기독교정신과 영과 혼을 담고 있는 나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그 무엇과 비교가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년 어느 때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며 보고 느꼈던 그 연못이 생각났습니다. 연못바닥에는 더러운 온갖 잡동사니들이 다 빠져 있습니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은 물론 공원에 산책 나왔다가 코풀어 쓰레기통에 버린 휴지가 바람에 날려 연못 속에 가라앉은 것까지 그 속에는 없는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더러운 연못바닥에서 물위로 고개를 내민 연꽃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 실력으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연꽃은 연못바닥의 더러운 잡동사니들을 매달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빚으신 그 빛만을 안고 물위로 고개를 내밀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훌륭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의 훌륭함이란 바로 이 연못에서 고개를 내민 하늘빛 같은 연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하다는 그 한 사람도 온갖 쓰레기들의 잡동사니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연꽃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도 함께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따라 다니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 그들의 행위대로 하지는 말라“고 말입니다. (마 23장 3절)   나는 청년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엎어지고 자빠졌다 다시 일어나면서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나온 내 삶 동안에 일어났던 “사람의 바람”이야기만 다 하려고해도 지면이 부족할 정도일 것입니다.   “모모라는 유명한 사람이 나타났다", “어느 기도원에 신통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더라."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훌륭한 목사가 왔다더라.” “유명한 말씀의 종" “영력이 넘치는 목사” “굉장한 부흥회목사" 등등 실로 끝도 없는 사람의 바람이야기들 말입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신앙은 어떤 훌륭하다는 사람을 쫓아다녀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기독교신앙은 자기 자신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고민하고 고뇌하는 생생한 생활의 삶속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오늘도 살기위하여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그 작업현장에서 나오고, 엎어지고 자빠지는 삶의 실망과 좌절 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 힘차게 전진하는 그 고뇌와 결단 속에서 참된 살아 있는 신앙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유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람을 경계해야 됩니다. 특별히 “유명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름을 조심하고 “훌륭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일수록 더욱 경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에 빠지지 않고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참된 신앙은 어떤 용하다는, 유명하다는, 훌륭하다는 사람을 쫓아 산으로 들로 왁자지껄 쫓아다니는 달콤한 환상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신앙은 자식들의 학비를 걱정하는 그 쪼들리는 살림걱정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사소한 일로 다툰 부부싸움의 생각지 못했던 격렬한 감정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랬다가 멋 적게 다시 화해하는 그 멋 적은 화해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람이 살아가는 그 의미를 되새기고 부부싸움 한 후 다시 화해하며 살아야 되는 의미를 되새기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살아있는 예수님신앙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아름답게 피어있는 연꽃을 보고 더러운 연못바닥에 뿌리를 박고 피어난 꽃이라고 침을 뱉고 돌아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연못바닥에서 어떻게 이렇게 곱고 순백한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감탄하며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나 연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연못 감탕바닥에 손을 처넣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훌륭하다는 사람의 감탕밭에는 또 유명하다는 사람의 감언이설에는 그렇게도 쉽게 손뿐만이 아니라 영과 혼까지 다 디밀어 주며 쫓아다닙니까? 진정으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영원토록 쫓아 다녀야 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가 바로 우리와 같은 죄인의 몸을 입고 태어나 우리처럼 살았지만 죄는 없으신 단 한 사람이며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라고 나는 굳게 믿습니다. 오늘도 예수님 이외의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연꽃 구경하듯 하는 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2015년 11월30일 유 용수
2015-11-30 20:55:55 | 유용수
  안녕하세요. 11월 29일 오후시간에는 오랜만에 소그룹모임을 가지려합니다. 이번에는 부서별로 그룹을 나누었는데요,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고 해당하는 곳에 가서 좋은 교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소그룹모임안내- 각부서별 모임   1. 대상 : 유아- 유치 부모및 각부서 교사등     장소 : 12층 유아실   2. 대상 : 유년- 초등 부모및 각부서 교사등    장소 : 11층 유치부실   3. 대상 : 중고등부 부모 및 각부서 교사등    장소 : 소예배실   4. 대상 : 30,40,50,60,70,80대 자매님들    장소 : 12층 도서실앞   5. 대상 : 30,40,50,60,70,80대 형제님들    장소 : 방송실앞   6. 대상 : 유년,초등부 - 영화관람(영화준비완료)    장소 : 초등부실    지도교사 : 도우미 제 1청년.   7. 대상 : 중고등부 - 자체 프로그램   8. 대상 : 제 2 청년     장소 : 제 2청년부실   첨부: 중복되는 분은 본인에게 더 필요한 그룹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5-11-28 19:58:30 | 관리자
온성도가 한 마음으로 장형제님의 지도에 따라 즐거운 찬양을 하는시간이었어요. 모두가 함께 주님을 생각하며 같은 자리에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처음 방문하신 분도 두시간을 앉아 찬양하는 모습을 눈여겨 보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어요. 비록 애기들 의자가 힘은 들었지만요^^
2015-11-28 10:53:50 | 이수영
사랑침례교회 목사님, 성도님 여러분께 처음 인사를 드립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성기정 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저의 소개는 다음 기회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아침에 오피스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하는 일이 귀 사랑침례교회의 홈페이지를 첵크하는 일이 된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습니다. 언제나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만, 덧글을 작성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한마디 말씀만 드리고 싶어서 감히 덧글을 씁니다. 목사님, 성도 여러분, 정말로 너무나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십니다. 너무너무 훌륭하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합니다. 역시 귀 교회는 다르구나 라고 또 느끼고 알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소식들을 미디어를 통하여 접하면서..... 올해도 얼마남지 않았지만, 올해는 아니면 내년 초에는 꼭 한번 찾아뵙고 싶습니다. 그 때는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성도 여러분 !부디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샬롬! 입니다. 일본에서 성기정 올림
2015-11-26 11:05:24 | 성기정
안녕하세요? 파리테러와 광화문시위와 역사교과서가 엊그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소천이후 많이 숙연해진 오늘 아침 입니다.  가신분이나 남으신 분이나 예수님안에 계시다면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우리의 시작은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날의 감사와 불평, 긍정이든 부정이든 자신도 모르게 둘중 하나의 옷으로 갈아입고 오늘을 시작 하겠지요. 어제를 지나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의 현재는 항상 미완성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방금쓴 왜냐하면의 표현 또한 과거가 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안에 있음으로 이미 구원 받은 한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내 생각과 다르다 하여 동전의 양면은 결국 하나임에도 굳이 둘로 나눔은 시간 손해일것만 같은 생각이들어 이런 글로 칼럼에 올려 봅니다.       동전의 양면성 (두 얼굴 )    밥이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아요,...적당히' 맛 있게 되었을 때 쓰는 말입니다.이 적당하다는 말이,질죽한 밥이나 꼬들꼬들한 밥을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내일까지 납품을 요구받은 업체에서 오늘만큼은 근무 시간을 넘겨서라도 끝내줘야 하는데,사원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우리 '적당히' 하고 퇴근하지요!.... 이리되면 적당히 라는말이 오늘만큼은 더 이상 좋은 뜻으로 쓰여질순 없지요. 영어에서 inveterate 란 말이 있습니다.'오래 지속되는' 또는 '끈기 있는'의 뜻을 하고 있지요.적어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렇습니다.그러나 여기."He is an invterate gambler, ins't he?""그는 고질적인 노름꾼이야, 그렇지 않니?끈기있다는 말에 고질적이라는 명패를 걸어놓으니 맑은날에 황사가 됩니다.inveterate 란 말은 veteran (어떤 일의 전문인, 고참군인)과 함께     Latin 어의 vetus (old) 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지요.어떤 일에 오래 종사해서,한 분야의 베테란 급이면 얼마나 좋을까.그런데 그 좋은 말에서 '고질적'이라는 말도 나왔으니,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과거에 우리 어르신들(60대이상)께서 이양반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은듯 합니다.제가 듣기로는 비슷한 연배에 사람들에게 존중하는뜻으로 불려진듯합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찾아서 뜻을 헤아려 보니 그다지 나쁜뜻은 아닌것 같은데 대화의 장에서 대화의 상대와 주제에 따라 옵션이 발생 하는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도 좋은말 쓰기를 권면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사전을 찾아 봅니다.   사전적의미에서이 양반의 이 란1. 말하는이에 가까이 있거나 말하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2.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   이 양반의 양반 이란1.고려,조선시대에 지배층을 이르던 신분, 원래 관료 체제를 이루는 동반과 서반을 일렀으나 점차 그가족이나 후손 까지 포괄하여 이르게 되었답니다. 2.점잖고 예의바른 사람을 칭하는말 정리 하면 앞에 계신분은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 이라는뜻   그렇더라도 엊그제 싸우다 헤어진 사람이 내게 다시와서 이 양반아~ 엊그제 속편 찍어야지~하면 이양반아가 더이상 개인적으로 양반이 되거나 듣고 싶지않은 상태가 될수도 있는 세상이지요.   반대로 지위 좋은분으로부터의 이양반아 호칭은 여전히 미소를 만들수도 있지요.   혹여 상대방의 지위나 연령에 인기몰이에 편승된 호칭이라면 칼집에서 나온 칼이 될수도 있겠네요.     You and I 와 / 당신과 나/ 국민과 나, 같은 말이긴 하지만 듣는이의 일기와 기분에 따라서 무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엊그제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소천하셨습니다. 그분의 영욕의 지난세월이 방송을 통하여 회자되고 있을때 여야를 떠나서 가신분에게 향하는 부정보다 훨씬 많은 긍정의 평가들이 듣기에 참 편했읍니다. 정치도 살아있기에 각당의 논쟁에서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면 나도 당신도 아닌 우리의 이익에 당연히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데 아침에 잠깐 맞추고 오후엔 다른 얼굴의 양면성에서 우리는 양치기소년을 자주 만나게 되고 정한시간 임박하여 서로의 신뢰를 땡처리 하고 결국 최선이 아닌 차선에 손드는 잘못된 관습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건 아닌지요?. 법은 있으나 인내로 기다려야 하니 미리미리 대처못한 법의 미숙으로 민생은 급한불 끄기위해 편법이 등장합니다. 엊그제 해외에서 돌아오신 대통령의 국회의원을 겨냥하신 말씀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이기에 발생될 수 있는 정치적인  굴레이기에 이는 긍정만큼 부정만큼 주어지는 각자의 십자가이며 숙제일것입니다. 지시받은 숙제를 했든 바빠서 못했든 우리 주위에서 되어지는 일들이 당리당약을 벗어나서시종 국민의 안위만을 위하여 모두 좋은 쪽으로 충고하고 해석되고 좋은 쪽으로 결론이 맺어진다면 대한국인의 세계적으로 뛰어난 명석한 머리와 손재주로 얼마나 더 멋지고 좋은 공동체가 될수 있을까. 오늘따라 주변의 형제님 자매님들의 사랑스런 얼굴을 떠올리며 올겨울 좀더 따스하고 싶은 우리의 화평을 위해 동전의 두얼굴을 묵상해 보았읍니다. 샬롬
2015-11-26 10:08:29 | 윤계영
의 주제는 "즐겁게 찬송을 배우고, 힘차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귀한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성숙하고 질서있는 모습으로 즐겁고~ 기쁘게 찬송하셔서 저 또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침례교회만이 가능한 쉽지 않은 프로그램을 두 시간이 넘도록 모두가 온 맘을 다해 찬양하며 울고, 웃었던 은혜의 경험이 우리들의 예배와 삶 속에서도 더욱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수고해주시고 함께해주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샬롬^^
2015-11-25 13:16:31 | 장용철
그동안 수많은 찬송가를 불렀지만 이렇게 귀한 찬송가를 몰랐다는 것이 정말이지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왠지 애상적이기만 한 가락이 아니라 밝고 쾌활하며 기품있고 고상한 음악이 그리스도인을 거룩한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 감격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고귀한 찬송가를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거룩한 노래가 더욱 풍성하게 교회 곳곳에 울려 퍼지길 소원합니다. 그동안 마제스티 찬송가 편찬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모든 형제·자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5-11-25 11:33:42 | 김대용
그 날의 감격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요 장형제님의 뛰어나신 리더와 체리티 찬양단,회중찬양단, 회중들..바른 찬송가사가 더욱 더 은혜로웠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된것도 그동안 찬송을 번역하고 선별하신 형제 자매님들의 수고가 많으셨을 줄 알고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5-11-25 11:02:35 | 최은희
안녕하세요? 이렇게 귀한 찬양을 접하니 마음이 매우 기쁩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 기도, 전도, 선교 그리고 찬양 등 행하는 모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자막 처리해 주신 박영학 형제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샬롬 패스터
2015-11-25 10:21:4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잘 아시다시피 저희 교회 홈페이지는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100여 만 원 들여 꾸몄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교정을 거치고 지금은 수백만원짜리 홈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홈페이지의 가장 큰 특징은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메뉴들을 꾸미고 배치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교회가 성장하면서 저희 교회와 비슷하게 홈페이지를 꾸미고 싶다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답은 우리와 믿음이 같다면 얼마든지 저희 교회 홈페이지 형식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과 메뉴 등만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됩니다. 또한 제작할 때 원하는 자료(예를 들어 추천 도서 등)도 복사해서 써도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저희 사이트를 제작해서 관리해 주시는 송봉진 사장님에게 직접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010-3746-2420jin@nettor.com   아주 저렴하게 잘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와 믿음이 같다면  우리는 누가 저희 교회 사이트와 비슷하게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든 좋은 포맷이 이런 저런 용도로 사용되면 그것 자체가 우리의 기쁨입니다.   물론 이런 일로 우리가 프랜차이즈 교회를 한다고 근거 없이 비난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도울 수는 있어도 결코 그 교회에 영향을 미치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11-25 10:18:45 | 관리자
동영상 아래부분에 가사를 넣어주시니 자매님들의 합창을 따라 지휘자를 보며 신나게 따라 불렀네요.ㅎㅎ 찬양팀이 지휘자와 함께 앞에서 리드하는 아이디어가 반짝입니다. 연습시간이 길었을테니 앉아서 노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활기넘치는 찬양모습 속에서도 안정감을 주기도 했어요. 자연스러우면서도 생기넘치고 은혜로운 찬양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예배시간에도 이런 모습으로 온 성도가 기쁘게 찬양드리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연습시간이 활기가 넘치는데 예배시간엔 더욱 은혜로워야하지 않을까 하고요..ㅎㅎ 작년 12월이었나요? 할렐루야 찬양을 11층 곳곳의 성도님들 속에서 일어나 찬양을 했을 때의 감동이 오버랩 되기도 했네요.ㅎㅎ 감사합니다.^^
2015-11-25 05:16:26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