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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38&pn=1&num=141147 에서 일부...... 사이공 함락 후 월남의 군인·경찰은 무장 해제되고 수용소에 보내졌다. 그리고 월남의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도 모두 체포돼「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됐다. 이중 대부분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공산 정권은 수많은 공무원들을 잡아넣는 형무소가 모자라자 과거 월남군부대 시설을 형무소로 개조해 그곳에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를 수용하기도 했다.  반정부·반체제 운동을 벌이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들도 모조리 체포 처형됐다. 그들의 수감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것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층(下層)의 월남 국민들은 소형 선박을 이용해 목숨 건 탈출에 나섰다. 보트 피플의 숫자는 약 106만 명. 이 중 바다에 빠져 죽거나 해적에게 살해당한 숫자가 11만 명이었고, 살아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이 95만 명으로 집계됐다.  나는 이 참혹한 패망의 역사를 그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강대국과 맺은 방위공약이나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정은 절대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나는 티우 대통령이 미국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무질서와 공산 프락치들로 인한 국론 분열에 빠진 월남에 고개를 가로 저었던 미국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자기 국가의 안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안보는 미국과의 방위공약도 아니고 공산당과의 휴전협정도 아닌, 오직 자국(自國)의 군사력이 담보할 뿐이다. 체제가 안정되었다거나 경제력이 우수하다는 말은 조국에 충성하는 국민의식과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부 잠꼬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외교관이었던 내가 체포되기 전 사이공 시내에서 직접 목격한 놀라운 사실은, 월맹 군인들은 소금만 가지고 하루 두 끼 식사를 겨우 할 정도였고, 속옷은 구경조차 힘들었다는 점이다. 월맹군은 전차 부대를 제외하고는 군화를 신은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타이어를 잘라 끈으로 묶은 채 질질 끌고 다니며 월남군과 전투를 했던 것이다.  이런 군대가 최신무기로 완전무장을 한 월남 군대를 붕괴시켰다. 부패한 군대, 분열된 사회는 최신 무기를 고철로 만든다.  파리 휴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외국의 몇 및 언론은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휴전협정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며 걱정스럽게 지적했었다. 그러나 이런 충고를 무시한 키신저가 수상한 노벨평화상은 결국 자유월남의 시체 위에서 얻은 비극의 노벨상이 되고 말았다.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중공과 소련까지 동원해가며 맺었던 「방위조약」은 단순한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월남의 패망과 아비규환(阿鼻叫喚)에 빠진 월남 국민의 절규에 대해 침묵으로써 대답했다.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38&pn=1&num=141146   에서......월남의 90%를 정부가 지배했지만…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월남 국토 44개 성(省) 중 12개 성의 곳곳에만 표범의 반점처럼 공산군 점령지가 남아 있었다. 총 인구의 90.5%는 월남이 지배하고 있었고, 나머지 중 5%는 낮에는 월남, 밤에는 공산측이 지배하는 경합(競合) 지역, 그리고 4.5%는 공산측 지배하에 있었다.  그래서 월남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경제력 우위를 바탕으로, 공산측 지배를 월남 내(內)에서 자연스럽게 소멸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휴전 무렵 월맹은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매년 80만~100만t의 식량부족,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맹은 줄기찬 대남공세를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휴전협정 이전부터 숱한 공산당 프락치들이 월남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호치민이 1930년 2월에 창당한 베트남 공산당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의장인 웬후토가 1962년 1월에 창당한 인민혁명당에서 침투시킨 조직원들이었다. 그래서 월남 패망 당시 월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과,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전체인구의 0.5% 정도가 월남 사회의 저층(底層)에서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1969년 6월 6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베트남 임시혁명정부로 개편될 당시 이 정부의 법무장관이었던 쫑뉴탄의 증언에 의하면, 캄보디아 국경선근처 빈룽성 내의 지하 땅굴에 있던 혁명정부 청사에는 월남정부의 각 부처와 월남군 총사령부에서 이루어지는 극비 회의내용이 단 하루후면 상세하게 보고될 정도로 티우정권의 핵심에 공산 프락치가 침투해 있었다고 한다.  1967년 대선(大選)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쭝딘쥬와, 당시 모범적인 도지사로 평판이 자자했던 녹따오를 위시한 많은 정치인·관료들이 모두 공산 프락치였음이 알려진 것은 월남 패망 후의 일이었다.  반면 월남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벌어질 때마다 대공(對共) 전문가들이 쫓겨나는 바람에, 월남 대공기관과 정보기관은 형해(形骸)만 남아버렸다. 그들은 대(對)월맹 정보 수집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월남 내부에 침투한 공산 프락치 검거에조차도 무기력했다.  한 나라를 망하도록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정보기관부터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보기관과 대공기관이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평지풍파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간첩하나 못 잡는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락한 사실을 나는 너무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월남 패망 당시, 외적(外敵)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이후 월남은 월맹보다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월등히 앞서 있었다.  그래서 월남 지도부와 국민들은 상황을 너무도 쉽게 낙관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의 하나 월맹군이 도발하더라도 즉시 미국의 해공군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할 것이고 이후 대(對)월맹 경제 원조도중단하면, (당시)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한 월남군 기동력과 화력으로 월맹군의 공세에 당연히 맞설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공산군이 남침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오랜 전쟁 후에 온 휴전 체제에서 평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혹은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결국 그 믿음이 국방을 소홀히 하도록 하였고, 내부적으로도 극심한 정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1975년 9월에는 월남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정치인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과 분열, 반목, 대립과 갈등을 유감없이 연출했다. 고질적인 사회악이었던 뇌물과 마약, 매춘과 도박이 정치권의 혼란과 맞물리면서 마치 전염병처럼 전 국토를 휩쓸었다. 정부의 부정부패는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계층 간 갈등이 조장됨으로써 공산 프락치들의 활동공간은 점점 넓어져 갔다. 결국이 선거가 최후의 자유선거가 되고 말았다.       
2018-03-08 14:12:27 | 허광무
졸업은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되어 교회를 세우는 사람으로, 사회에서는 촉망받는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소망합니다.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2018-02-18 22:27:25 | 이현엽
졸업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보면서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그만큼 내적으로도 성숙했을 모습에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주님 안에서의 더욱 성숙한 출발을 다짐하는 계기로 졸업의 의미를 새기면 좋겠네요. 모두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18-02-18 03:25:52 | 김상희
   2017학년도를 마치고 졸업하는 각 부서 졸업생 명단입니다.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 여러분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삶의 과정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혹시 교회에 출석하시는 가정 중 명단에 누락된 졸업생이 있다면 각 부서 선생님들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018-02-17 02:18:23 | 정진철
안녕하세요? 이미 스스로 답을 찾으셨는데 인지를 못하신거 같습니다.^ 7년 환난기 중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 순교하는 것이나, 회심한 성도들이 질병이나 각종 사고로 짐승의 표를 요구 받기 전에 죽으나 하나님께는 매일반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7년 환난기나 구원을 받는데는 다른 것이 필요 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보여 드리면, (눅 7:50) 그분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 18:4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시력을 받으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하시니 (엡 2: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느니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느니라. (히 11:13)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히브리서 11장을 읽어 보시면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히 11:1)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히브리서 강해 23과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543&cate_name=%ED%9E%88%EB%B8%8C%EB%A6%AC%EC%84%9C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장만 읽어 보시더라도 확연히 알 수 있듯이, 피스티스(πίστις, pistis)라는 믿음은 확신, 신뢰, 진리의 뜻을 담고 있는 말로, 이미 믿음안으로 들어온 성도는, 확신과 신뢰와 하나님의 진리안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된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 믿음의 성도라면, 7년 환난기에 질병과 사고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죽든, 목배어 순교하든, 하나님께는 매일반이라는 말입니다.^ 평안하세요, 샬롬~
2018-02-15 02:21:01 | 이명석
안녕하세요. 정동수 목사님의 블로그 덕에 그간 궁금했던 성경 부분에 대한 이해도 얻고  보다 넓은 성경 지식을 공유하시는 그 노고에 늘 감사드리며 언제나 하나님 말씀전파와 구원복음에 전념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제목과 같은 질문으로 휴거 이후, 7년 환난기에서는 회심한 성도들 (휴거 이후 이땅에 남겨진 사람들 중 하나님께 죄를 회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를 믿고 그리스도로 영접한 성도들)은 7년 대환난 중 자신의 믿음을 짐승표를 받지 않고 순교 함으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혹은 끝까지 버팀으로) 그런데 회심한 성도들 중 질병이나 각 종 사고로 짐승표 요구도 채 받기전에 죽게되는 일들도 분명히 많이 발생 될 텐데 이렇게 된 성도들은 휴거성도와 마찬가지로 크게 고난을 접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될까요?? 
2018-02-14 23:16:47 | 서재원
남희 자매님.. 적절한 시기에 마땅히 기억해야 할 내용을 잘 올려주셨네요. 마음이 찔리는 가운데 이 글을 기억할 거 같아요. 설교말씀에 포장을 예쁘게 해서 더욱 주님의 말씀선물이 가치를 돋보이게 한 거 같네요. 바쁠텐데 늘 사랑교회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해요.♡
2018-02-14 17:02:34 | 오혜미
익숙함.. 편안함.. 가장 사랑하지만 그 익숙함과 편안함에 내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부대끼고 사는 가족.. 때로는 상처로 때로는 서운함으로..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바로 나의 가족임을 기억할 때 주님의 지상 명령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선명한 대상이 바로 가족이겠지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2-13 15:48:44 | 정진철
ㅎㅎ 요즘 독박육아와 가사에 심신이 지쳐있던 중 아이들을 대하는 제말과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일텐데 못난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당연히 저의 모습을 보고 배워갈텐데...반성과 함께 다시금 바뀌지않으면 않은 이유를 찾으면서 저부터 실천하려는 중입니다. 글보니...다시한번 마음에 굳은 다짐을 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2018-02-13 13:18:13 | 주경선
맞아요. 특히 부부간에 더 그런 측면이 있지요. 계속 '말'에 관해서 목사님께서도 책을 권하고 있고 설교로도 듣고 있으니 말이 곧 사람인 것을 깨닫고 있답니다. 엡 4:32 말씀대로 친절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겠어요..
2018-02-13 08:19:49 | 이수영
남희 자매님께서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목사님의 이번주 욥기 맥잡기를 듣고 말의 중요함과 위력에 대해 깨닫고 새기고 있던 중이었는데..ㅎㅎ 사람관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지만 제 자신을 돌아보니 정말 마음에 사랑이 가득할지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내 아이 조차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네요. 이렇게 좋은 글들을 읽게되면 한 번더 생각해보게 되고 깨닫고 잘 해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2-13 04:59:17 | 김상희
목사님 들려주시는 욥기 말씀과 가까운 분과 말에 대한 교제 나눴던 부분이라 참 공감이 됩니다. 옳으면서 위로되며 친절한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봅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2018-02-13 01:23:34 | 김혜순
우리는 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을까요? 올해 제 화두에요.  거기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사랑해요.  그런데 친절하지 않아요.  가끔은 사납기까지 합니다.  불친절함의 일상화,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아닌지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가 외출하는 할아버지에게  추우니 꼭 모자를 쓰고 나가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  “괜찮아”하면서 그냥 나서지요.  그 모습 끝에 할머니가 짜증스럽게 말합니다.  “아이고 저 노인네, 또 고집피우네.  저러고 나가서 독감이라도 걸려서  자식들 고생시키려고.”  할아버지는 언짢아져서  현관문을 꽝 닫고 나가버립니다.  분명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걱정돼서 한 말이겠지요.  이럴 때 직접 가서 모자를 씌워주면서  “아니에요. 추워요. 나중에 더우면 벗어요.” 라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쌓여 있다면,  당연히 친절하기는 좀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정말 가까운 가족에게,  조금 큰 아이에게,  부모에게,  친한 친구에게  우리는 좀 친절하지 않습니다.  좋게 표현을 안 합니다.  왜 우리는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러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이유도,  사회․문화적인 이유도,  개인적인 이유도 있어요.  하지만 이 불친절함을 바꾸지 않으면  가족이 행복할 수 없어요.  집단이 행복할 수 없어요.  사회나 국가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 때문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까울수록,  좋게 다듬어서 솔직하게 말했으면  아이는요,  부모가 좋게 말하지 않거나  친절하게 대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해도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거든요.  배우자도 그래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서로  매일 매일 상처를 주고받는다면,  함께 있을 때 편안하지 않다면,  그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살다보면  정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위로를 받으면 가장 힘이 날까요?  가슴 깊숙한 곳까지 따뜻해질까요?  바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위로를 받을 때,  힘든 순간조차 행복감을 느껴요.  아이도 그런 좋았던 경험을 많이 해야,  남한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좋게 말해주세요.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듣기 좋은 말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좋게 다듬어서  솔직하게 말하자는 거예요.  기분이 나쁘면  “아까 그 얘기 듣고 기분이 좀 나빴어.”,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아파.  그럴 것은 아닌데…” 라고 말하는 거지요.  어색하신가요?  그럼 비난이나 빈정거리는 것만이라도  걷어 내보세요.  그것만 빠져도 한결 좋아질 거예요.  곧 명절입니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불친절함에  상처를 많이 받는 시즌이지요.  부디 잘 버티시길,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아이도 달라질 수 있을까?" 오은영 박사-
2018-02-13 01:02:09 | 김남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