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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구원에 이를까?   지난 주에는 친구를 잃을 뻔한 일이 있었다. 친구가 뇌졸중으로 119구급차에 실려갔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행히 응급조치를 잘해서 하루 만에 별일 없이 퇴원했다. 퇴원한지 이틀 후에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좀 만나자는 것이다.   만나자는 장소에 갔다. 그 친구는 피곤해 보였다. 만나자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친구는 “너는 평소에 죽음을 초월했다.”고 말하는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에 하루 입원해 있는 동안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 보게 되었고,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두렵다고 했다. 이 친구는 이번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몰랐느냐?”며 말 문을 열었다. 인간은 사고가 나거나 병이 들어 죽게 된다. 죽음은 남녀노소, 장소, 시간에 구애없이 찾아온다. 죽음은 인간이 체험하는 것 중에 마지막 코스다. 인간의 죽음은 공포다. 이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공포 극복 문제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래 걸리기도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영원히 산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거나 지옥에서 영원히 산다. 인간은 영혼육이 있는데, 죽음은 영과 혼이 육에서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은 육이다. 영과 혼이 잠시 사용해 온 장막이다. 이때 영과 혼은 지옥 아니면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을 나는 믿는다. 천국과 지옥을 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성경은 인간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준다. 또 사람이 왜 죽는지 가르쳐 준다. 죄 때문에 사망이 온다. 죄 문제를 해결하면 사망의 문제도 해결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희생했다. 그리고 묻히셨다가 부활하셨다. 야구에서 구원투수가 있듯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믿으면 된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내가 평소에 죽음을 초월했다고 말하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사후대책은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나는 지금 네가 사후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하는 말,  “그거 교회 얘기잖아! 전에 교회 몇 번 다녔었지, 그런데 체질에 안 맞아서~~~”   며칠 전에 생사를 넘나들던 친구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구원에 이를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베드로전서 3장 15절)
2022-06-23 15:10:01 | 이규환
제목 : 구원 그 이후   지은이 : 박영선     '하나님께 열심' 이라는 구호에 몸부림치던 시절, 박영선 목사는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주제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본질에 천착해 왔다.  그가 믿음의 주체와 원동력을 신자가 아닌 하나님으로 선포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만을 끈질기게 붙들어 온 결과이다.   젊은 시절, 울법 준수와 명분 강조가 전부였던 당시 설교 단상에서 그는 믿음과 성화와 은혜를 성경이 말하는 자리까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초기 설교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을 거침없이 추적하여 하나님의 열심과 일하심의 신비를 풀어내며, 이를 아는 신자의 명예와 자랑을 역설하고 있다.   현재 그는 30년간 몸담아 온 남포교회에서 설교 사역을 계속해 오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하나님의 열심>, <박영선의 다시 보는 로마서>, <박영선의 욥기 설교>, <주의 말씀에 둘러싸여>, <박영선의 기도>, <인생> 등이 있다.   <독후감상>      나는 이 책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다가 그동안 바빠서 보질 못하고 최근에 읽게 되었다. 책장에 꽂힌 책 제목을 볼 때마다 책의 내용이 몹시 궁금했는데 책장을 펼치니 지은이의 삶과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먼저 깨달은 자가 토해내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 엿보였다.   이 책은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의 '수준 확인'을 시작으로 해서 '신자의 질그릇', '영적 싸움', '신자의 적극성', 신'자의 훈련', '신자의 성숙' 등등 그리고 각 장은 성경의 귀절이 먼저 나오고 이 성경 말씀을 들어올려 지은이는 쪽집게 같이 신자들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열변을 토하듯이 신앙이 성장하는 문장으로 풀어놓았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쓰여져 있는데 목사인 지은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 같다.    " 이 책에서는 많은 신자가 고민하는 신앙의 '성장'에 관하여 이야기 합니다. 이 문제는 예수를 믿고 난 후 신앙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숙제거리입니다. "     1장에서는 우리의 출발선에 대하여 <상한 갈대는 꺾지 아니하며 연기나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사42:3)>를 보고 성경은 인간은 상한 갈대요 연기나는 심지로 묘사하고 있음과 <온 누리를 비춰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니라> 으로 전개하는 것이 얼른 와닿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시고 선언하신 목적지와 그것을 이룰 수 없는 나의 상태가 너무도 이율배반적이고 도저히 연결될 수 없어서 느끼는 황당함으로 고민하는 갈등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갈등이 없는 자에게는 신앙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를 보며 <내가 꺼져 가는 등불이며 상한 갈대임에도 불구하고 하늘 나라에 갈 것이라는 약속이 이해되지 않으니까 의문도 버리고 갈등도 버리는 이상한 지점에서 대강 눈 감고 외면하고 살기로 결심해 버립니다.>를 보고나니 막연했던 그 갭의 차이가 명확해 진 것 같았다. 이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출발 지점을 고백하고 <하나님, 저는 이렇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며 그 길은 하나님이 이끄실 것이고 이것은 신자에게 요구되는 배짱이라고 하는 지은이가 참 멋있다.     2장은 '자의식'인데 표현이 정말 리얼하다.    "우리는 믿는 사람답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 때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니까 '척'이라도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기도 많이 하는 척, 고민 없는 척, 믿음 생활을 정당하게 하는 척을 합니다. 믿음생활에 대해 물어보면 서로 곤란해 집니다. 서로 아픈 곳은 건드리지 말자는 묵계입니다"   아마도 지은이는 목회를 하면서 신자들의 상태를  보고도 말로 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나보다. <누군가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래?"라고 한다면 "그래, 그래서 예수 믿는다"하고 뻔뻔하게 대꾸하는 것만큼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배짱입니다> 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그동안 도덕적 차원을 따지는 믿지않는 자들에게 점잖게 일갈을 날릴 수 있는 좋은 대답을 발견한 것 같다.     지은이에 대한 솔직한 고백도 있다.   "설교를 마치고 나면 늘 교양 없고 거친 제 말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사람이 덜 되어 빨리 고치지 못하고 그다음 주에도 동일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럼에도 계속  그 자리에 섭니다. 바로 설교하는 맛 때문입니다."   감격을 맛으로 비유하며 '"나는 하나님의 졸병이다"라고 고백하는 담대함이 신앙을 성숙하는 데에 필수적인 도약지점이며 하나님 편에 서는 이 감격, 이 맛, 이 자랑이 아무리 나쁜 지적에도, 또 스스로 갖는 좌절감에도 자폭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는 말에 그 마음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의 질그릇'에서는 늘 기억하며 늘 새기고 싶은 귀한 글이 있었다.   "죄의 유혹에 직면할 때 인간의 시각과 촉각이 얼마나 나약한지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이놈의 질그릇이 아직도 이러는가'하고 놀라지만 성경은 그 문제가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고쳐져서 신앙이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고쳐지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아는 만큼 자기의 주권을 하나님에게 이양할 때 신앙이 성숙합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시;62:8)> 말씀이 생각났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은 너무 좋으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이 무엇인지 매일 확인해야 한다는 부분을 보았을 때 나는 정신차려서 글을 읽었다. 그리고 찔림도 있었다.   " 모든 책임을 집어던지고 갑자기 주의 일만을 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부분을 놓치고 세상을 위하여 할애하고 사는 것에 대한 성경의 지적을 아프게 받자는 말입니다. 돌이키십시오. 자녀가 대학교에 못 가면  어떻습니까, 똑똑한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똑똑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녀를 기르지는 마십시오."   지금은 우리 아이 둘 다 결혼했지만 읽어볼수록 마음이 참 찔린다. 또, 내가 이 책을 보면서 감명깊게 본 부분은 바로 여기이다.    "어제 하나님이 도와주신 은혜로 승리했다고 해도 그것은 어제의 일입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 놀아도 괜찮다는 안심으로 이어지지 않기 바랍니다. 어제까지 받은 도움으로 오늘과 내일의 승리를 위한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훨씬 뒷 장에 나오는 얘기이지만 나는 이 부분과 연결하여 읽었다.   "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이후의 생애가 이전과 다르기 때문에 결단하고 문턱을 넘어선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문턱에 앉아 있습니다. 모두 철로 변에 앉아서 하나님이 6.25때 나를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이야기하고 자갈로 공기놀이나 하고 있습니다. 넘어선 그 다음 생애가 없습니다.  자랑이라고는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가. 내가 그때 얼마나 몹쓸 죄인이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어떻게 은총을 베푸셨는가 하는 이야기뿐입니다."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하여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부분 같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마지막을 장식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요구에 순종해야 하는 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성장에 있어서 출발점입니다. 에베소서 4장 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가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얻은 소명에 합당하게 걷고> 생각만 하지 말고 행하십시오. 행하기 위해서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이 길에 들어온 것은 마음에 감동과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놓아 주신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 행해야 합니다."     이 책을 덮고나니 18편의 설교를 들은 것 같다. 구원 그 이후.....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럼 나는? 이라는 질문을 내게 던져보게 한 귀한 책이었다.
2022-06-23 00:00:40 | 이정자
공산주의의 통일전선 전술   한민호 국장의 강의를 들으면서 예전에 공산주의 이론을 강의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미 싹이 잘리고 사라졌어야 할 낡은 이념이 아직도 버젓이 스멀스멀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강의 중에 언급된 공산주의 통일전선 전술에 대해서 좀 더 추가하고자 한다.   공산당의 혁명 목적은 정권 타도다. 공산당은 혁명에서 강자인 정부를 타도하고 정권을 잡기 위해서 당연히 남의 힘을 이용하게 된다. 남의 힘을 이용하기 위한 전술, 이것이 곧 동맹 전술(통일전선 전술)이다. 여기에 대하여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훨씬 힘이 센 적을 이기는 일은 설사 아무리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일시적인, 동요적인, 위약한, 믿음직스럽지 못한, 조건적인 동맹자라도 좋으니까, 대중적 동맹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반드시 가장 면밀하게, 주의 깊게, 조심스럽게, 솜씨 있게 이용하여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좌익소아병』 중에서   공산당이 자신들보다 훨씬 힘이 센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대중을 끌어들여서 이들을 제 편으로 삼아 이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가능성이 아무리 작은 세력도 이용해야 하며, 또 일시적이든, 확고하지 못한 것이든, 위약한 것이든,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이든, 조건이 달린 것이든 간에 어쨌든 이용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이용하되, 가장 면밀하게, 주의 깊게, 조심스럽게, 솜씨 있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술의 중요성에 대하여 레닌은 또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마르그스주의를 털끝만큼도 이해하지 못한 자이다. 꽤 오랜 기간 그리고 가지각색의 정치 정세 속에서 이 진리를 실제에 적용하는 능력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자는 혁명계급을 돕는 길을 아직 배우지 못한 자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정치 권력을 잡기 전에도, 잡은 뒤에도 다 같이 적용된다.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좌익소아병』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아무리 잘 아는 체하더라도, 만일, 이 동맹 전술을 알지 못한다면 그런 자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털끝만큼도 모르는 것이나 조금도 다를 것 없다는 얘기다. 또 만일 말이나 글로는 이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혁명 운동의 실제 투쟁을 통해서 이 전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여러모로, 꽤 오랫동안 실천적으로 증명하지 않은 자는 아직도 공산주의 혁명이 무엇인지를 배우지 못한 자라는 것이다. 이 전술의 중요성은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 전이나 잡은 후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인은 이 전술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 가지의 활동 영역에서 비공산주의자와 동맹을 맺지 않고서는 공산주의 건설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전투적 유물론의 의의에 관하여』 중에서   이렇게도 공산주의자들은 동맹전술을 중요시하고 있다. 모든 순간에 있어서 사람을 볼 때는 언제나 이용물로서만 보고 이용 가치로써만 평가하여 상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당이 이 전술을 사용할 때, 그 이용 대상이 되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레닌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설사 아무리 작을 가능성일지라도 동맹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진 사람, 즉 모든 사람이 이용 대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의 모든 계층-학생, 청년, 일반 지식층, 여성, 군대, 농민, 노동조합, 각종 예술단체, 과학기술단체, 언론 기관, 관리는 물론 심지어는 보수 정당과 자본가까지도 이 전술의 이용 대상이 된다.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은 강력한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이질적인 세력과도 가능하다면 서슴없이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또 실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이용 대상과 동맹을 맺을 때도 다른 계급이나 다른 그룹들을 공산당과 혼동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 이 동맹은 어디까지나 일시적, 조건적이란 것을 레닌은 말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와 여러 반정부적 그룹과의 연대성을 갖지만 언제나 노동자를 타자로부터 구별하고 이 연대성이 일시적이며 조건적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임무』 중에서   마르크스는 한 술 더 떠서, 공산당이 다른 세력들과 동맹을 맺고 싸운 덕택으로 적과의 투쟁에서 이기게 되면 승리한 다음 순간부터 그 동맹자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투쟁 중에도, 투쟁 후에도, 노동자는 모든 기회에 부르조아 민주주의자의 요구와 함께 자기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승리한 최초의 순간부터 불신은 자기의 이제까지의 맹우를 향하여, 공동의 승리를 독점하려고 하는 당파를 향하여 가져야 한다.  『소셜 데모크라트』 중에서   공동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동안은 일시적으로나마 동맹자가 될 수 있지만 이 싸움이 일단 승리로 끝나게 되면 그 첫 순간부터 이제까지의 맹우(장래나 그 밖의 일에 대하여 서고 굳게 맹세한 친구)를 불신의 눈초리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의 전과를 그 동맹자가 독점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공산주의자들의 동맹 전술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강력한 적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이질적인 세력과도 동맹을 맺음으로써 그것을 이용하되, 어떤 경우에서도 이론, 강령, 기치 상의 타협이나 양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승리한 첫 순간부터 이제까지의 맹우를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전술은 철저한 불신 위에서의 철저한 이용의 전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공산주의 본질』, 윤원구 지음, 건국이념보급회 출판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산주의 통일전선 전술에 휘말리면, 알면서, 모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이미 포섭된 것이고, 나중에 반드시 간첩 혐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이 전술에서 보듯이,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들은 부모도 버리고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라는 사상무장을 받기 때문에, 이들에게 선한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양심을 인두로 지진 사람들이다.
2022-06-16 13:23:54 | 이규환
아홀라와 아홀리바   남편이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거나 아내가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 것이 발각되면 난리가 날 것이며, 그 가정은 파탄이 날 것이다.   에스겔서 23장에는 두 창녀 이야기가 나온다. 언니 이름은 아홀라이고, 동생 이름은 아홀리바다. 사마리아는 아홀라요, 예루살렘은 아홀리바다. 이들은 이집트에 있을 때부터 행음을 했다. 하나님은 이 두 자매를 '내 것'이라고 한다.   아홀라가 자기 이웃 아시리아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아시리아의 선정된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아시리아의 모든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힌다. 하나님이 그녀를 그녀의 사랑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게 되고, 그들이 그녀의 벌거벗음을 드러내고 그녀의 아들딸들을 빼앗았으며 칼로 그녀를 죽인다.   그녀의 동생 아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녀보다 더 지나치게 사랑하며 행음 면에서 자기 언니보다 더 많이 행음하여 더 부패하게 된다. 그녀가 자기 이웃인 아시리아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모자라, 갈대아의 바빌론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들 자매는 그들의 손에 피가 있으며 또 그들이 자기 우상들과 간음을 행하고 또한 자기 아들들을 그 우상들을 위해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악한 행위를 한다. 그들이 자기 자식들을 죽여 자기 우상에게 바치고는 바로 그날 성소에 들어와 성소를 더럽힌다. 그 결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차례로 포로생활을 간다. 아니 나라가 망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와 정혼한 순결한 신부로 보았다. 교회와 그리스도가 정혼한 것을 큰 신비라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니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에베소서 5장 31절~32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 죽게 되었나니 이것은 너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분과 결혼하게 하려 함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7장 4절)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니라.’(야고보서 4장 4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들을 죽이라. 그것들은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인데,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로새서 3장 5절)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해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너희를 한 남편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고린도후서 11장 1절-3절)    정혼과 결혼 사이에 있는 교회 즉 신부는 결혼할 때까지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특히 아내는 신실함을 유지하고 다른 남자에게 정을 주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 품에 안기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면 남편이 질투한다. 남편이 질투하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2022-06-09 18:07:56 | 이규환
MBTI가 무엇입니까?   최근 일부 기업에서 입사 지원서에 MBTI 유형을 기재하라고 하면서, 어떤 유형은 지원을 자제하라고 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MBTI는 무엇일까?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마이어스(딸)와 브릭스(어머니) 모녀가 정신분석학자 칼 융(JUNG)의 이론을 근거로 만든 성격 유형 검사다.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의 8가지 척도를 조합해 16가지 유형(ISTJ, ISTP, ISFJ, ISFP INTJ, INTP, INFJ, INFP, ESTJ, ESTP, ESFJ, ESFP, ENTJ, ENTP, ENFJ, ENFP)으로 성격을 분류한다.   외향(E, Extroversion)과 내향(I, Introversion)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구분한다. 외향형은 심리적 에너지가 외부로 향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열정적으로 보인다. 내향형은 심리적 에너지가 자기 내부로 향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보인다. 외향형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이 많은 편이다. 반면, 내향형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외향형은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진다. 내향형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외향형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선호하고, 내향형은 상대방이 다가오기를 선호한다. 일 잘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   감각(S, Sensing)과 직관(N, iNtuition)은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는가에 따라, 감각형과 직관형으로 구분한다. 오감으로 수집하면 감각형, 통찰력으로 수집하면 직관형이다. 감각형은 오감으로 정보를 수집하므로 세부적이며 구체적이고 현실을 지향한다. 직관형은 보이지 않는 이면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므로 추상적이고 미래를 지향한다. 감각형이 나무를 본다면, 직관형은 숲은 본다. 이것 또한 일 잘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사고(T, Thinking)와 감정(F, Feeling)은 의사결정을 할 때 어디에 기준을 두는가에 따라, 사고형과 감정형으로 구분한다. 사고형은 의사결정을 할 때, 객관적, 논리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결정하는 것을 선호하며, 감정형은 의사결정을 할 때, 사람이나 감정을 기반으로 결정하는 하는 것을 선호한다. 집을 살 때에도 둘은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 이것 또한 일 잘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   판단(J, Judgment)과 인식(P, Perception)은 생활양식의 선호에 따라, 판단형과 인식형으로 구분한다. 판단형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거의 계획을 수립한다.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하려 한다. 계획이 차질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식형은 계획을 수립하는 것보다는 상황 대응적이다. 임기응변이 강하며, 지나치게 통제받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 또한 일 잘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에너지의 초점, 정보수집, 의사결정, 생활양식은 무엇을 더 선호하느냐에 따라 구분될 뿐이다. 오른손잡이라고 해서 왼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왼손잡이라고 해서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을 생각해 보면 MBTI 유형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유형이라도 선호하는 강도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위 8가지 척도는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외향형은 말을 많이 하므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강점이 있다. 대신, 말로 인한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다. 내향형은 말이 적으므로 신중하고 차분해서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대신, 사람을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며, 부정적이거나 차갑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는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잘못(fault)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MBTI는 타고난 성향에서 자신의 강‧약점을 알고,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잘못)을 관리하는 용도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지나치게 신뢰하면 내가 알고 있는 나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2022-05-18 14:52:37 | 이규환
나 같이 죽은 개를 돌아보시나이까?   사무엘하 4장에는 므비보셋의 슬픈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이다. 유모 손에서 자랐다. 예스르엘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소식이 왔을 때에 다섯 살이었는데, 그의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할 때에 급히 도망하였으므로 그가 떨어져서 두 발을 절게 된다. 평생 장애인으로 우울한 삶을 살아간다.   사무엘하 9장에는 다윗 왕이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부르는 내용이 나온다. 왕궁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얼굴을 대고 엎드려 경의를 표하니, 다윗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하여 반드시 네게 친절을 베풀고 네 조상 사울의 온 땅을 네게 도로 주리라. 너는 계속해서 내 상에서 빵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주의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나 같이 죽은 개를 돌아보시나이까?하니라.’   므비보셋은 다윗 앞에 나가 엎드렸다. 그러면서 ‘죽은 개’라고 표현한다. 사무엘상 24장 14절에는 사울 왕이 다윗을 추격할 때,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의 뒤를 쫓으려고 나왔나이까? 왕께서 누구를 뒤쫓나이까? 죽은 개와 벼룩을 뒤쫓나이다.’라며 다윗은 자신을 죽은 개와 벼룩이라고 한다.   ‘죽은 개’란 자기비하의 표현이다. ‘죽은 개’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 성찰이 있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고백할 때는 겸손함의 표현이 된다. 성경은 인간이 벌레, 먼지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은혜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므비보셋에게 다윗이 먼저 찾아간다. 그리고 이름을 부른다. 땅을 도로 주며, 내 상에서 빵을 먹으라고 그 동안의 삶을 회복시켜 준다. 이 장면은 데자뷔처럼 어디에서 본 것 같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것이다. 우리가 죄인일 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므비보셋처럼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아파하고 있는 모습, 상처받은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치료해 주시고, 상처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로마서 5장 8절)
2022-05-11 12:17:54 | 이규환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   우선은...감히 하나님에 관한 생각인즉, 먼지같은 존재들을 향한 한량없는 사랑 때문에 차마 바로 공의를 실행하지 않으시고, 회개하라고 돌이키라고 거듭 거듭 기회 주시다가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거시기로다 싶으실 때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그래서 참으로 공의로우시고 사랑 많으신 분 아닐까 싶군요.   다음으로는...라과디아에 관한 생각인즉, 명색이 판사가 법치주의를 완전 농락(^^)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검사의 기소장에 피고로 적혀 있지도 않을 판사 자신과 방청객한테 벌금형을 때리다니...?!...당췌 말도 안되는, 그야말로 황당한 판결 아니냔 말입니다. (어디까지나 농담입니다. ^^)   잘 읽었습니다, 형제님 ~ ^^  
2022-05-02 13:28:25 | 최영오
우리는  반면교사도 정면교사도 모두가 될 수 있기에 늘 언행을 조심해야지요. 무엇보다 항상 모든일에나 말에나 주님께 묻고 행하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내 생각대로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2022-04-28 16:59:30 | 이수영
반면교사와 정면교사   학식과 인격이 높아 세상 사람의 모범이 되는 일이나 사람을 사표(師表)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본받을 만한 모범이라는 뜻의 귀감(龜鑑)이라는 말도 있다. 둘 다 훌륭한 본보기를 일컫는 말이다.   이와는 달리 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나쁜 본보기를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한다. 타인의 나쁜 언행을 보고 나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이다. 1957년 중국 공산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한 연설에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반동분자들을 가리켜 “일부 중죄인을 빼고는 체포하거나 숙청하지 말고, 그냥 제자리에 두고 고립시킨 채 반면교사로 이용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 뒤 이 말은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해져 마치 고사성어라도 되는 듯 널리 사용돼 왔다.   정면교사란 말은 반면교사를 모방하여 사용되는 용어다. 그 뜻도 ‘본받을 만한 대상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교사는 ‘그릇된 모습으로의 교사’를 말하고, 정면교사는 ‘올바른 모습으로서의 교사’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교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은연 중에 말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고, 정면교사가 될 수도 있다. 반면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거울을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거울은 우리의 점과 흠을 정확히 지적해 주기 때문이다.
2022-04-27 13:03:52 | 이규환
 늘 믿음을 삶으로 보여주며 두 따님이 주님께 오는것이 가장큰 소망이었고 기도로 키운 따님이 엄마의 사랑을 깨닫고 사위까지 믿음안에 거하게되는 아름다운 상견례 긴 세월동안 주님에대한 헌신의 열매를 보는듯 합니다. 아름다운 5월의신부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둘째따님과 사위가 한가족이 되어 교회의 빈자리가 더 복되고 기쁨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이되기를 소망합니다.
2022-04-22 22:02:04 | 김경애
십자가의 패러독스   역설(paradox, 逆說)은 언뜻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분명하게 모순되어 있어서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함께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자랑하며 이 방패는 단단해서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가 없다고 했다. 또 창을 자랑하며 이 창은 날카로워서 어떤 방패라도 뚫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으면 어떻게 되겠소?”   세상에 이런 방패와 창은 함께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경우를 ‘모순’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상반되는 공의와 사랑의 두 가지 속성이 모두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혼란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는 공의와 사랑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들의 우두머리라고 고백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다고 한다. 죄인은 죽어 마땅하다고 한다.   한편,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원수들까지 사랑하라고 말한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셨다고 말한다.   공의는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대로 행했는지 행하지 않았는지 공정하게 심판하고 공정하게 상과 벌을 내리는 것이고, 사랑은 죄를 용서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공의는 심판해야 하고, 사랑은 심판을 보류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딜레마가 있다.   미국에서 1930년 한 할머니가 굶고 있는 손자들을 걱정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10달러의 벌금형이 선고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라과디아가 갑자기 "그리고 그 벌금은 제가 내겠습니다."라며 스스로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고는 나머지 법정에 있는 모든 경무관, 검사, 변호사 및 방청객들에게도 50센트의 벌금을 선고했다. 이 할머니가 이렇데 된데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때 거둬들인 돈은 벌금 10달러를 제외하고 전액 노인에게 전달되었다. 이때 할머니는 진심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판사가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은 공의이고, 심판대에서 내려와 대신 벌금을 내는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초나라 상인의 창과 방패는 상존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공존한다. 그곳이 바로 십자가다. 바울은 이것을 신비라며,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한다. 공의만 있다면 우리 중에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사할 뿐 더 이상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같은 일을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 (로마서 1장 32절)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들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2022-04-21 13:46:02 | 이규환
자매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너무 좋아라하시는 함박 웃음띤 자매님 얼굴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자녀의 손을 잡고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매님의 간증을 통해 큰 깨달음과 반성이 밀려오네요^^;;   감사합니다~~~ 
2022-04-11 10:50:39 | 서선숙
그리스도인은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이목에 관계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때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짧은 자매님 간증을 통해서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이제 결혼한 자녀분 가정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욱 풍성한 가정이 되시면 좋겠습니다.축복합니다^^
2022-04-06 09:56:35 | 오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