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께서 그런 경험 하곤 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만, 성경 읽다보면, 어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구절들, 말씀들이 있더군요. 그런 특별한 느낌들 중 하나,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은 느낌 하나를 적어보려 합니다.
우선 사건(? ^^)의 발생 경위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교회, 사랑침례교회 출석 이래로 많은 도움 주고 계시는 몇 분 형제님들 중 어느 분께서 '성막' 관련 대화 도중 '지성소 안으로 향 연기를 들고 들어가고' 어쩌고 하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 말씀 듣는 순간 '엥? 피 갖고 들어가는 건 알고 있지만...연기를 갖고 들어가? 뭣땜시? 어떻게?' 라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저...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나오는지요...?^^" 라고 여쭤본즉, "레위기, 정확히 몇 장 몇 절인지는 나중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저녁 때쯤, 친절한 문자 답변이 왔습니다, '레위기 16장 12-13 절 ^^'이라고.
이 글에서 말씀 드리고자 하는 '매우 특별한 느낌'인즉, 문자 답변 받는 즉시 성경 펼쳐놓고 레 16:12-13 말씀 확인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매우 특별한 느낌...그러니까...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전율...을 동반한 엄숙함이랄까, 장엄함이랄까....위엄이랄까...그런 것이랍니다.
레 16:12-13
또 주 앞의 제단에서 불타는 숯이 가득한 (full of burning coals of fire) 향로를 취한 뒤 곱게 간 (beaten small)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가득 담아 (hands full of)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그 향을 주 앞에서 불 위에 놓아 향의 연기가 증언 위에 있는 긍휼의 자리를 덮게 할지니 이것은 그가 죽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위 레 16:12-13 말씀이 진짜로 전율처럼 느껴지더냐구요...? ^^ 뻥 치지 말라구요...? ^^ 성경 말씀을 두고 뻥을 치다니요? 무슨 그런 큰일날 말씀, 가당찮은 말씀을... ^^ 뻥 아닙니다. 진짜로 그랬습니다. 위 밑줄친 대목들을 접하매 그런 느낌, 즉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그냥 향로 하나 들고 들어가 향 연기로 긍휼의 자리 가리라 정도의 말씀이 아니라...활활 타는 숯불 가득 담긴 벌겋게 달아오른 향로에다 곱게 간 향을, 그러니까, 불에 닿는 즉시 연기로 확 피어날 수밖에 없는 상태의 미세한 향을...그것도, 한 줌 정도가 아니라 양손 가득 담아서 뿌리라는 말씀...인 거죠.
다시 말씀 드리자면, 희끄무레한 정도의 연기가 아니라, 네가 피워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짙은 향 연기를, 그것도, 순식간에 피워 내어 긍휼의 자리, 그 거룩한 자리를 자욱하도록 완벽히 가리라...는 엄명.
지극히 높으신 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음성이 흘러 나오는 긍휼의 자리...그 거룩한 곳을 감히 빤히 바라보는 등의 불경스러운 짓 하지 말라. 죽는다...는 엄중한 말씀...!...들리는 듯하여, 거룩하심의 본질...?...실체...?...같은 것이 참으로 전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에 이어서...감히 범접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주를 가까이서 보려고 접근하다 죽임 당하지 않도록 산 둘레에 쳐 졌던 경계선(출 19:12-25), 주께서 그들에게 드리라고 명령하지 아니하신 불을 드렸다가 죽임 당한 나답과 아비후(레 10:1-2), 주의 궤를 들여다보다 죽임 당한 오만 칠십 명의 벳세메스 사람들(삼상 6:19), 소로 인해 흔들리는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붙들었다가 죽임 당한 웃사(삼하 6:6-7) 등에 관한 기록들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이 글은 일단 여기서 끝입니다.
사실은 말입니다. 이 글을 쓰고나니까 하나 궁금증이 이는군요. 양쪽 손 가득히 향을 담아 들고 선 상태에서...벌겋게 달아오른 향로는 어느 손으로 어떻게 들어..?...삼손(three hands)...? 아니면, 향로 갖다놓고 향 들고 들어가 향 연기 자욱하게 피운 다음 피 갖고 들어가...? 아니면, 피부터 갖다놓고? ... ... ... 댓글로써 그에 대한 답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22-07-19 10:54:17 | 최영오
모든 판매가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설명도 잘하고 질문에 대답도 잘해요.
타종교도 기독교를 벤치마킹한 듯 비슷비슷하지만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
2022-07-17 07:34:41 | 이수영
앞으로의 삶, 그 존재이유를 '전도'에 두고 싶은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형제님 ~ ^^
2022-07-15 13:44:00 | 최영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음에감사 또 감사 드릴 뿐입니다
주님 은총 충만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2022-07-15 13:16:57 | 최영오
주님의 지혜와 그 신비
생각할수록 감사와 감탄할 뿐이더군요
주님 은총 충만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2022-07-15 13:03:40 | 최영오
과찬의 말씀에 부끄러울 뿐입니다 ;; ^^
형제님의 좋은 글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주님 은총 충만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2022-07-15 12:58:16 | 최영오
보험영업과 전도의 공통점과 차이점
최근 전도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아주 오래 전에 한 달간 보험영업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도가 보험영업과 흡사하는 생각이 들었다.
1. 공통점
1) 만나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한다. 보험에서는 'one hundred list'라고 해서 약 100명 정도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한다. 전도도 명단을 작성하기도 하고, 꼭 명단을 작성하지 않더라도 만나야 할 사람들을 떠올린다.
2) 언제든지 설명할 준비를 한다. 보험에서는 이것을 'show the plan'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보여줄 준비를 한다. 전도도 준비를 해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질문이 다르기 때문에 준비해야 거기에 맞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우연히 만나는 사람에게도 기회만 되면 설명한다. 보험도 전도도 마찬가지다. 설명할 기회와 상황이 되면 즉시 설명을 한다.
4) 성공하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고, 성공하지 못하면 의시소침해진다. 보험에서 한 두 번 거절 당할 때, 우수한 사람은 “이 사람은 아닌가 보다.” 하고,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우수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서 그만둔다. 전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거절당하면 “이 사람은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기소침해지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5) 성공 여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의 성공도, 구원을 받아 들이는 것도 오로지 상대방의 의사에 달려있다.
2. 차이점
1) 계약에 성공하면 수익이 발생한다. 보험은 계약에 성공할수록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한다. 그러나, 전도는 성공해도 수익이 없다. 돌아오는 것이 없다. 물론 천국에서 보상이 있겠지만...
2) 보험은 계약에 성공한 사람을 또 만나서 다른 상품을 판다. 전도는 만난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상품이 없다. 물론 성화를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만날 수 있지만...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베드로전서 3장 15절)
2022-07-14 15:32:09 | 이규환
형제님의 글 덕분에 그저 무심코 읽었던 구절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새일지라도 어미와 새끼를 동시에 취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미물에게도 적용하시는 하나님.....
만약에 어미만 취하면 어미를 잃은 그의 새끼도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고
취하게 될 경우엔 어미를 놓아주고 새끼만 취하라는 하나님의 지혜와 자비로움....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생명윤리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2022-07-13 11:04:48 | 김영익
형제님, 말씀을 상고하고 나눠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자연물을 통해 창조주이신 주님의 지혜의 신비하심과 오묘하심에 감사하게 되지요.
지구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말씀 하나도 허투로 말씀하신 것이 없음에 감탄합니다.
2022-07-12 11:44:06 | 이수영
형제님!
산행을 하면서도 통찰을 얻는 놀라움에 감동입니다.자주 좋은 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2-07-12 10:55:58 | 이규환
아하~! 하나님의 질서, 그런 깊은 뜻이 담겨 있었군요.
역시...오 형제님! ^^
주님 은총 충만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2022-07-12 10:49:49 | 최영오
형제님, 일상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의미를
상고해보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형제님 덕분에 저도 신명기 22장6-7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윤리의 법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길을 가다가 우연히 새둥지에 새끼들이나
알이 있고 어미가 함께 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었을때 어미는 반드시 놓아주고 새끼들을 취하라는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연계를 주관하고 다스릴 권리를 주셨지만(창1:28) 그것을 남용하거나
착취하는 형태(어미, 새끼, 알들 까지 모두 취하는 행위는 남용과 착취이겠죠)로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휘하여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창조질서 가운데 새들에게도 형성되어 있는 어미와 자식간의 관계를 존중하면서
꼭 취해야 하는 경우라면 알이나 새끼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의 연속성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를
볼수 있는 구절인것 같습니다.
2022-07-12 00:10:13 | 오광일
주말이면 어김없이 동네 산을 찾아갑니다. 생기 넘쳐 흐르는 신록 속을 걷노라면,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영과 혼과 몸으로, 그야말로 리얼하게(^^) 느끼게 됩니다. 숲속 여기 저기, 온 땅에 가득 채워진 하나님의 뜻, 성경 말씀의 뜻을 되새겨 보는 순간들도 더러 있답니다.
어느 해 여름 주말산행 중의 경험담에 관한 글을 가리늦게 이제서야 올려 봅니다. 그다지 때를 가리지 않는 내용...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
우선. 이 글의 근원이라고 할 만한 성경 말씀인즉, 신 22:6-7 '길을 가다가 네 앞의 나무나 땅바닥에 있는 새 둥지에 새끼들이나 알들이 있고 어미가 새끼들이나 알들을 품은 것을 우연히 보거든, 너는 그 어미와 새끼들을 함께 취하지 말며 어미는 반드시 놓아주고 새끼들을 취할지니라. 그러면 네 일이 잘되고 네가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입니다. 말씀에 따르면, 새끼들 품은 어미 새 보거든 어미 새는 놔두고 새끼들만 잡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그 말씀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고깃살로 치면 아무래도 새끼보다 어미 새가 더 많을 텐데 말입니다. 설마, 새끼 육질이 더 쫄깃쫄깃, 맛있으니까 이왕이면 새끼 잡아먹어라, 이런 뜻의 말씀은 아닐 것 아닙니까. (이 문장은 어디까지나 농담입니다. ^^)
대략 1 년이 넘도록, 산행 중 새소리 들려올 때면, 거의 어김없이 그 말씀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이상하다, 하나님께서는 왜...도대체 왜 어미 새는 놔두고 새끼들을 취하라고 하셨을까...?...라는 궁금증 또한 어김없이 이어지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산행 중 어디선가 새소리 들려오매 다시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답니다. 왜 어미 새는 놔두고...세상 구경 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을 불쌍한 새끼들만 취하라고, 잡아먹어라고 하셨을까...를 생각 또 생각하며, 떠오르는 성경 구절들을 되새겨 보던 중...번쩍!...한 생각이 일더군요. 그래...!...아버지 없는 자...!...바로 그것 때문 아닐까....?!...어미 새를 잡아가 버리면, 불쌍한 새끼들은 졸지에 아버지(어머니일 수도 ^^) 없는 자들, 말하자면, 곱배기로 불쌍한 새끼 새들이 되어 버릴 것 아닌가, 절대로 그렇게는 만들지 말라...는 그런 말씀이었구나 라는 생각 말입니다.
바보 도 터지는 때에 준하는 희열, 영적 희열을 느끼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성경 앱을 켠 다음 '아버지 없는'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해당 구절들이 좌~악 뜨는데, 참 많더군요. 출 22:22 '너희는 과부나 아버지 없는 아이를 괴롭히지 말지나라', 신 10:18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를 위해 판단의 공의를 집행하시고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나니' 등을 비롯하여, 무려 40여 곳에 '아버지 없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긍휼이 드러나 있더군요.
아버지 없는 자, 즉 사람과 새는 다르지...않은가...?...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아니다, 까마귀에게도 먹이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어미 잃은 새들, 그것도, 갓난 새끼 새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리오...! 라는 생각으로 바로 바뀌더군요.
그와 동시에, 앞서 말씀 드린 출 22:22 성경 말씀을 비롯한 40여 개의 해당 구절들을 하나씩 차례로 읽어 보았습니다. 찌리~ㅅ하게 전해져 오는 하나님 말씀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말입니다.
2022-07-11 15:06:31 | 최영오
흐미~...!...@@...@...... (<- 무엇인가로 얻어맞은 느낌)
참으로 의미심~~~장한 좋은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 ^^
2022-07-11 12:02:43 | 최영오
바둑 사랑과 하나님 사랑
나의 유일한 취미라면 바둑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둑을 배우기 위해서 일간신문을 구독했다. 신문을 구독한 것은 신문에 나오는 바둑기보를 보기 위해서였다. 신문이 도착하면 제일 먼저 바둑기보를 보는 기쁨이 있었다. 성인이 돼서는 월간 바둑 잡지를 구해서 기보대로 바둑판에 놓아 보기도 하고, 사활문제집도 가끔 사서 보기도 했다.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바둑이 지금은 아마추어 5단 정도된다. 통계적으로 아마추어 5단은 5천 명 중에 1명 정도된다고 한다. 요즘은 바둑 앱이 잘 개발되어 있어서 다운받아서 가입하면 곧바로 원격으로 바둑을 둘 수 있다. 전혀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도 언제든지 둘 수 있는 좋은 시대다.
출퇴근을 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서 직장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핸드폰으로 바둑을 두면 한 판 정도 둘 수 있는 시간이다.
며칠 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강적을 만나서 대마가 심하게 몰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수읽기를 잘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겨우 타개를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려야 할 역을 2개나 지나고 있었다. 순간 어찌된 일인지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둑을 너무 너무 사랑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한 적이 있는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면서까지 하나님 생각에 몰두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그게 우상이라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머리를 무엇인가로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바둑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안 것 같다. 건너 편으로 가서 다시 되돌아 오는 가운데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2022-06-30 14:02:36 | 이규환
사람은 급할때는 하나님을 자기도모르게 찾으면서 그 일이 해결되면 " 내가 언제?" 하지요...
세상이 마음에 가득 들어있어서요.
들을 귀를 주시기를~
2022-06-27 07:37:03 | 이수영
몇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군요.
1. 대책 없는 친구 분...아닌가 싶군요. ^^ 죽기는 겁나고 체질에는 안 맞고...체질에 맞아서 죽는감? ㅋㅋ (농담입니다 ^^)
2. 어떤 점이 체질에 안 맞는지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풀어 주심이 어떨런지...싶습니다만. ^^3.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라는 배드로전서 말씀 중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두려움으로...두려움으로, 그 구절이 무겁게(두렵게?) 느껴지는군요.
좀 아는 척 껍적거리다가 하나님 말씀 잘못 퍼뜨리는 죄 짓지 말라...는, 그런 뜻의 말씀으로 이해되기에 말입니다.
(그런 뜻 아니라면(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나증에 제대로 갈챠주세요 ~ ^^)
2022-06-27 00:21:41 | 최영오
귀한 책에 대한 소중한 독후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 ^^
2022-06-26 23:59:44 | 최영오
양심을 인두로 지진 사람들...진짜로 무~서운 거시기들이죠.
아참!
경기도 동탄에 있는 북경반점이란 곳에서 멸공짜장면이란 메뉴를 내놨는데엄~청시리 잘 팔린데요. 고객들이 줄을 서는 바람에 그 집에선 배달 안한답니다.
중국집에서 배달 안한다? 그건 완전 맛집이죠. 완전 대~~~박나고 있답니다.
어쨌든, 공산주의자들, 빨거시기들은 싸그리 없애는 것이...! ^^
2022-06-26 23:45:14 | 최영오
정혼과 결혼 사이에 있는 교회...라는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나 할까요. ^^
그러니까, 휴거 그리고 정식(^^) 혼인 잔치에 제대로 이를 때까지
순결한 한 처녀, 즉 교회의 멤버로서 똑바로(^^) 살아라는 말씀으로 들렸기 때문이랍니다.
좋은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형제님 ~ ^^
약간 다른 얘깁니다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야고보서 4장 4절의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가
한글판 NIV 성경에서는 '간음하는 여인들아' 로 되어 있더군요.
그들 영어원문에는 '너희 간음하는 사람들아(You adulterous people)' 라고 되어 있음에도 말입니다.
그러니까...우리나라 사람 어느 누군가가 그렇게 바꿔 버렸다는 뚯이겠죠...?
엄청 찔리는 게 많은 '남자'의 소행 아니었을까...싶더군요.
기가 찼다고나 할까요... ^^
감히 성경 지식 어쩌고 하려는 것이 아니오라
그냥
웃자고 해 본 말이었습니다 ~ ^^
2022-06-26 23:14:33 | 최영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