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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기도, 내려오는 응답』   이 책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James W. Knox가 8차례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역자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고, 그동안 구한 것으로 인해 한없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설마 하고 주욱 읽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교회 서점에 우연히 눈에 띠어서 집어 들었는데, 많은 유익이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적은 게 있다. 가장 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도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수많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가 아예 하나님께 전달되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아들 하나님께 제시하시고, 아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기도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해 주신다. 만일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제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으로부터 그것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은 우리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도들과 제자들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간구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악한 현 세상에서 구원받는 것, 교회로 함께 모이는 것,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자신의 세대를 섬기는 것,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 악을 행하지 않는 것, 거룩히 구별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은사(선물)을 사용하는 것,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백지수표를 받은 것과 같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것을 구해도 기도의 끝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라는 말만 붙이면 응답받게 된다는 게 결코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원하는 것을 쭉 얘기한 다음에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르게 기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대부분의 기도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부르신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자가 되게 하거나 성공하여 잘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삼아야 할 가장 큰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달라고 구한 것이 없다.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한 기도는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구한 것인데 응답받지 못했다. 신약성경에 나온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기적인 삶과 이기적인 행위와 이기적인 동기와 이기적인 기도는 모두 같은 부류의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육신의 정욕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99%의 기도는 물질적인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단지 1%의 기도만이 영적인 것을 구하는 기도다. 이런 기도는 믿음의 기도 아니라 불신의 기도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더 이상을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니다. 이러한 기도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성경은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았고, 자신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구하는 성도들도 많이 봐왔는데, 이러한 기도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믿음이 부족해서 이런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가 아예 하나님께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신다. 만일 잘못된 것을 구하거나 잘못된 동기로 구하면 그 기도를 아들 하나님께 전달하지 않으시고 폐기시켜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구하는 것이 성경에 위배되지 않고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이라면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아들 하나님께 전달해 주신다는 것이다.
2022-08-18 17:05:57 | 이규환
비둘기는 속죄는 물론 정결과도 깊은 관련 있다는 말씀...새겨듣게 되는군요. 그리고 새한테는 안수 안 한다는 것, 제사장이 잡는다는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형제님의 글 속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위엄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 드립니다. 주님 은총 충만한 복된 날들 보내세요 ~ ^^
2022-08-12 22:22:11 | 최영오
하나님께서는 소나,양, 염소로 제물을 드릴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규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로 제물을 대체할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새를 번제로 드릴때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새에 안수하거나 직접 죽이지 않았고 제사장이 그 일을 맡아 새의 머리를 몸통에서 찢어 제단에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다음 두 구절을 보면 비둘기를 주님께 드리는 일이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민6:9-12에 보면 나사르 사람에 대한 법이 나오는데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마리를 회중의 성막문에 있는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그가 하나는 죄 헌물로 다른 하나는 번제헌물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레15:13-15에 보면 남자에게서 유출병(구체적으로 어떤 병인지 성경에선 언급하지 않음)에서  회복되면 7일을 기다려 여덟째날에 나사르 사람에 대한 법처럼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두마리를 취해 하나는 죄헌물로 다른하나는 번제 헌물로 드렸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비둘기를 주님께 드리는 일은 가난한 자들의 번제의 의미 뿐 아니라 사람이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고자 할때 특별히가난한 자들이 속죄받아 죄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장애물을 두지 않으셨음을 볼수 있습니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드리며 주님앞에 나아오는 누구라도 정결함과 속죄받은 자유함을 누리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둘기 번제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발견하게 되어 저도 기쁨니다.샬롬~
2022-08-12 00:51:51 | 오광일
선한사람- 사람의 기준에서는 선한사람이 있지요. 말씀에 비추어보면  사람은 모두 거짓말장이요  악한 아비의 자식들임이 분명하구요. 오직 참진리이신 분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되어 너무 감사해요. 사람 속에는 참으로 선한 것이 없음을 나자신을 돌아봐도 알게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삼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2022-08-09 16:38:02 | 이수영
자매님의 글을 읽으니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무지한 삶을 살았을 때 제 모습이 생각 나네요.   불신자들의 삶에서 선의 기준은 100명이면 100개의 기준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자기만의 선의 기준을 세워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 갑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았었어요...   주님을 알고 나서 그런 삶이 얼마나 무지한 삶인지 깨우치게 되었구요. 그리스도인의 선한 삶, 의로운 삶은 바르게 나눈 말씀을 통해서만 전적으로 가능하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에 적용 되어 나타나는 열매는  모든 지체들에게  풍성한 양식이 되어 사랑침례교회를 통해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밝히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   자매님의 소중한 글이 저에게 큰 기쁨이 되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2022-08-08 21:54:25 | 이은정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매님의 고민이 잘 느껴져서 감명깊게 읽었어요.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지는 내가 찾지 못하노라'라고 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 떠오르네요.  인간은 누구나 선을 행하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항상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거 같아요. 그럴 때 비로소 자매님 말씀대로 평강과 기쁨이 우리 삶에 넘치겠지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2022-08-08 21:11:26 | 심경아
자매님의 글을 통해 선의 기준, 선한 삶의 열매가 무엇인지 상고해 보게 되네요. 말씀안에 순종,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법, 성경적 교회의 법..등을 지키고자 하는 개개인의 노력과 자기성찰, 그리고 섬김과 지체 사랑등이 우리 모두에게 겹겹히 쌓일때...선한 삶에 다가설수 있음을 되새깁니다. 자매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씨에 늘 감동스러웠는데, 성경적 의미를 정의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엿보게되어..  제게도 도전이 되네요♡
2022-08-08 20:55:47 | 태은상
끝없이 말씀 앞에 자신의 생각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자매님과 함께 할 수 있어 늘 기쁩니다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저에게도 오늘 많은 생각을 주는 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내하라. 조심하여 아무도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도 선하며 모든 사람에게도 선한 것을 항상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중략)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중략) 모든 악을 삼가라.   아멘 !! 
2022-08-08 19:38:00 | 박정미
21년 이맘때 즈음, 착한사람, 선한 사람의 기준이 뭘까? 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 중 의인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에게 너무나 선한 행동을 했던 직장 동료가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 보인 반응을 보고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대상에 따라 상대적인 감정의 선을 베풀고 살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양보를 잘하고 이타적이며 힘든 일이 있어도 웃는 긍정적인 사람, 봉사를 잘하는 등 이런 류의 사람들이 착한건가?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하는 기준은 너무나 주관적이었으며 저에게는 착한 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치 못한 악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갈등 속에서 갑자기 ‘선’을 사전적 의미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전에는 <선하다: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나왔습니다.   아! 도덕적 기준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 선한 것이구나.   그럼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 바람직한 행동이 되는 도덕적 기준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 도덕적 기준은 국가의 법, 학교의 교칙, 교회의 회칙, 가정을 잘 이끄시는 부모님의 법 등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법을 잘 지키고 양심적인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한자로 착할 선을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눈 감고도 쓸 착할 선 자가 그날 제 눈과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善: 양(양)+ 말씀(언)의 조합으로 나오는 착할 선을 보고           맞아! 예수님의 말씀이 선한 말씀이시지!사람은 죄로 인해 선하게 살 수 없는 존재인데.. 죄가 없으신 의로우신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기록을 읽고 말씀 그대로 행하며 사는 것이 선한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말하려거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같이 하라” 란 베드로전서 4장 11절 말씀, 말에 실수하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야고보서 3장의 말씀으로 말도 더욱 조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선한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피로 죄들의 용서를 받고 다시 태어나서 의로우신 말씀으로 가득한 성경의 말씀을 상고하며, 말씀따라 살며,  제가 현재 속해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올바른 국가의 법, 정상적인 직장 조직의 법, 성경적인 교회의 법,  부모님의 올바른 가르침의 법을 지키며, 사람으로서 베풀 수 있는 아름다운 정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을 나누며 사는 것이라고 선함에 대한 저만의 정의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감독하며 너희에게 훈계하는 자들을 알고 그들의 일로 인해 사랑 안에서 그들을 매우 귀중히 여기라. 또 너희끼리 화목하게 지내라,    형제들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권면하노니 제멋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위로하며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하라.    조심하여 아무도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도 선하며 모든 사람에게도 선한 것을 항상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중략)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중략) 모든 악을 삼가라.   위의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 부터의 말씀은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제가 있는 어느곳에서나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말씀들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을 때는 제 안에 평강과 기쁨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부지중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이 나올 때가 많지만 제 생각과 행동을 주님 말씀 앞에 복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선함이란 성령의 열매를 빨리 맺어 보고 싶습니다.   오산에서.. 심동휘 자매 생각 올림.
2022-08-08 17:40:35 | 심동휘
  지지난 번 글의 어미새, 새끼새 관련 성경 말씀(신 22:6-7)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담긴 뜻...?...바닥에 깔린 취지...?...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해 헷갈려했던 일 하나를 말씀 드릴까 합니다.       창 15:9, 레 1:14, 5:7, 5:11, 12:6, 12:8, 14:22, 14:30, 15:14, 15:29, 민 6:10, 눅 2:24 말씀 중에는 희생물로서의 비둘기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런데...그들 말씀 중에 나오는 비둘기들이 문제를 일으키더군요. ^^      구체적으로, 해당 성경 구절들에 따르면,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서로 차별하여 말씀하고 계시거든요.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 또는 '산비둘기 두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희생물로 준비하라는 말씀, 그러니까, 집비둘기는 '새끼'만 희생물로 받아 주시겠다는 말씀이잖습니까.    위 말씀에 담긴 뜻 또는 그 바닥에 깔린 취지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이상하다...산비둘기 성체(成體)와 집비둘기 새끼를 동급으로 취급하시겠다는 뜻...?...그러면 산비둘기가 기분 나쁘겠넹...?...^^...아니면, 집비둘기 성체는 아예 희생물로 들고 오지 말라는 뜻...?...이유가 뭘까...?...집비둘기 성체는 희생물로 안 받을 테니까, 그것으로 계속 새끼 치고 해서 가난한 살림에 보태라는 뜻...?...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닌...것 같은데 등등의 생각들, 그러니까, 다소 생뚱맞은(^^) 생각들, 의문 같잖은 의문으로 인해 한동안 헷갈려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 의문에 대한 답...처럼 느껴지는 말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출 20: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만들려 하거든 다듬은 돌로 그것을 쌓지 말라. 네가 돌 위로 네 연장을 들면 그것을 이미 더럽혔느니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산비둘기는 성체, 즉 어른(^^)이든 새끼든 깨끗한 반면 집비둘기, 특히, 집비둘기 성체는 너희 사람들에 의한 사육으로 인해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느니라. 따라서 그런 더러운 생명체를 희생물, 헌물이랍시고 내 앞에 들고 오지 말라!'라는 뜻의 말씀...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올리는 희생물은 참으로 흠없고 정결한, 즉 완벽한 것이어야 하리라라는 생각 다시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이어서, '군대들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눈먼 것을 희생물로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다리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네 총독에게 바쳐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는 말 1:8 말씀이 떠올라 잠시 숙연함에 잠겼답니다.    글을 마무리할 때에 이르러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구원과는 하등의 관계 없는 하찮은 내용의 생뚱맞은(^^) 글...들을 계속 올린다고 나무라시는 분 혹시 안 계실까...라는 염려 말입니다. ^^ 희생물로서의 산비둘기, 집비둘기, 걔들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슴 깊이 되새겨 보았다...라는 그런 뜻으로 쓴 글이오니...좋게 봐 주세요 ~ ^^      
2022-08-02 23:37:36 | 최영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며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있지 아니하다...라는 요한일서 2:15-16의 귀한 말씀 상기하고 되새기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형제님 ~ ^^
2022-07-30 19:28:49 | 최영오
저는 MBTI로 분류되는 저 본인의 유형을 보며, 참 다행이다 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 자신의 강약점들을 객관적으로 보는데 도움 주고,   나와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입니다^^
2022-07-30 08:31:52 | 오영임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며 우쭐대지 아니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지  자기를 자랑하면 우쭐거리게 되는 것 같아요.
2022-07-29 15:39:48 | 이수영
자랑거리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자랑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하거나 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사람은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다. 자식 자랑, 솜씨 자랑, 외모 자랑 등 틈만 나면 자랑을 하려고 한다.   자랑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타인으로 하여금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 동시에 본인의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시기나 질투를 사서 인간관계를 해칠 수 있으니 양날의 검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자랑이라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상대방이면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친구, 가족, 지인 등의 학벌, 병역, 직업 등이나 특기 등으로 하기도 하고 물건으로 하기도 한다.   사무엘기하 14장 25절-26절에는 압살롬의 머리(털) 얘기가 나온다. 압살롬의 머리 무게가 2.3kg(1세겔=11.4g)이나 된다. 압살롬의 자랑거리 중에 자랑거리가 머리였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 안에 압살롬이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렇게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에게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더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그가 해마다 연말에 머리를 깎았는데) 그가 머리를 깎을 때에 그의 머리털을 달아보니 왕의 무게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압살롬이 반역이 일으켜 자기 아버지 군대와 전쟁을 하게 된다. 압살롬과 다윗의 군대가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다윗의 군대가 열세였다. 수적으로 열세인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의 군대를 숲으로 유인한다. 18장 8절에 ‘숲에서 멸망당한 백성이 칼로 멸망당한 백성보다 더 많았더라.’라고 나온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의 무성한 가지들 밑으로 갈때에 그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들리고 그의 밑에 있던 노새는 가버렸으므로’(18장 9절)   ‘요압이 자기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취한 뒤 압살롬이 아직 상수리나무 한가운데서 살아 있을 때에 그것들로 그의 심장을 찌르니,’(14절) ‘요압의 병기를 나르는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서 그를 죽이니라.’(15절) 사실은 요압은 다윗의 명령대로 했다면 생포해야 한다. 그러나 창으로 찔러 죽이고 만다.   압살롬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머리인데, 그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죽은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인생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오히려 어려움이 될 수도 있고,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어리석은 자들이 자랑을 한다고 한다. 빌립보서에서는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이라고 한다. 야고보는 야고보서에서 자랑은 악이라고 한다. 솔로몬은 내 입술로 하지 말고, 남이 나를 칭찬하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면 높아진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손실로 여겼고,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기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라.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기나니'(빌립보서 3장 7-8절)   ‘이제 너희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니, 그러한 기쁨은 다 악한 것이니라.’(야고보서 4장 16절)   ‘다른 사람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낯선 자가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어다.’(잠언 27장 2절)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장 12절)
2022-07-29 12:41:23 | 이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