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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한복음 마지막 장을 묵상하고 다윗과 요나단이 부른 '요한의 아들 시몬아'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와  그 뒤 흘렸던 그의 비통한 눈물을 생각하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무너졌던 마음을 회복하고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한 베드로를 생각하니 시가 쓰고 싶었습니다.   <오늘 묵상 말씀>   요한복음 21장 17 세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자기에게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보며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바라보시니 베드로가 [주]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나가서 비통하게 우니라. (눅22:61-62)>를 생각하고, 예수님의 용서와 베드로의 회복을 묵상하였습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서 아주 오래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주님을 멀리했던 때에  다시 주님께로 돌아와서 식사 시간에 기도를 하려고 하니 아이들이 말하기를 속으로 기도하면 안되냐고 하더라구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므로 짧게 하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식사 시간에는 항상 공개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멘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는 숙였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어느 날부터 아멘~이라고  할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아이 둘 다 결혼을 하고나니 같이 기도할 시간이 없어져서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처음으로 우리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작은 사위가 그러더군요. 식사시간에 같이 기도하고 먹기로 했다고... 그리고 얼마 전에는 작은 딸이 손님하고 만나는 공개 자리에서 고개숙여 기도하고 식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 교회 형제자매 부부와 우리 작은 딸 부부가 서로 왕래를 하며 교제를 나누고 있다고 했는데 주님의 은혜와 함께 그분들의 기도에 대한 간증이 도움이 된 것 같았습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저는 오늘 묵상한 요한복음 21장 말씀과 함게 기도에 대한 간증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을 생각하면서 시를 썼습니다.       사랑의 표현 / 이정자   표현하자! 내가 주님 사랑함을 언제나 어디서나 용기내어 표현하자 그분께서 보고 계시니   표현하자! 내가 주님 사랑함을 세상 이긴  주님 말씀 붙잡고 또 붙잡아 담대하게 표현하자 그분께서 듣고 계시니   표현하자! 내가 주님 사랑함을 날마다날마다 그 이름만 찬양하고 목청높여 표현하자 그분께서 기뻐하시니   표현하자! 내가 주님 사랑함을 내 소망 내 감정 모두모두 그분 앞에 기도하여 표현하자 그분께서 받아주시니   https://youtu.be/Ss6gKGMnCxw
2022-09-12 11:10:49 | 이정자
안녕하세요   제가 어제 설교코칭 청중으로서 느꼈던 좋았던 점을 게시했는데 글이 맘에 안들어 오늘 아침 삭제했습니다  교회와 바른 성경을 위해 인생을 다 쏟아부으신 목사님 내외분의 헌신과 함께 성실하게 자리를 지켜오신 형제자매님들의 희생과 열심을 생각해보는 어제였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내외분의 바른성경을 선포하고 지키려하는 일관된 거룩한 희생과 집중의 무게감에 숙연해져서인지 어제 쓴 제 개인적 짧은 감상글로 인해 아침에 불편하게 잠을 깼습니다. 편안하게 타인의 인고의 열매 맛을 본 후 쓴 것 같은 부끄러움인가? 가벼움인가? 그 불편함에 민폐같아 아침에 삭제했습니다.  태풍이 기세꺽여 조용히 지나가길 소망하며 형제자매님들 태풍으로부터 안전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ps: 이 글 게시후 또 맘이 불편해지면 삭제버튼 누를게요      
2022-09-05 08:08:37 | 오영임
세상은 성경을 읽지 않지만, 성도를 읽는다!   전도를 목적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낮이 뜨거워 질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희들(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그러냐는 것이다. 아래 내용은 최근에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다.   1. 집 앞에 모르는 차가 있어서 차를 빼달라고 전화했더니, 차주가 “예배 중이라서 지금 차 못 뺍니다.” 라고 말하는데, 예배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그래서 너희들이 욕을...   2. 교회에 공사하러 갔는데, 장로라는 사람이 “공사 그렇게 밖에 못하냐고 심하게 호통을 쳐서 다시는 교회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에게 교회 얘기 꺼내지도 마!”   3. 이번에 폭우 때문에 침수로 하루종일 지하에서 물 빼는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도 콧빼기도 안 보여서 정말 서운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 그만 다녀야할지 고민이야!”   4. 사업 이야기 하러 왔으면 사업 이야기나 하면 되지, 묻지도 않은 교회 다닌다는 이야기는 왜 하는거야?   5. 우연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기 집 강아지가 감기에 걸렸다면서, 기도 좀 해달라고 하던데, 교회 다니면 강아지 감기도 낫게 해 주는거야?   6. 교회에서도 서로 다투고 싸운다며?   7. 너희들은 왜 얻어먹기만 해? 한번도 밥 산 것을 본 적이 없다. 교회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라고 가르치는 거야?   8. 이번에 또 한 건 했대! 000 교회 여자 문제로 시끄럽던데...   9. 어떻게 집사가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해? 뭐? 그리고 무죄로 풀려나도록 기도 부탁했다며?     세상에 나아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괴롭다.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너무 답답하다. 전도는 고사하고 구원 ‘구’자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여러 번이다. 세상은 성경을 읽지 않지만, 성도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읽고 있다는 생각에, 성도의 의미와 성화의 의미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2022-09-01 17:36:47 | 이규환
산신제등에 돌탑들이 모두 제모양대로 쌓는것이  모세가 받은 율법 부터  시작된거였군요~ 저는 그런풍습이 있었다는 것도  형제님 덕분에  처음 알았네요. 모든 것의 뿌리가 성경에 있는것을 ...
2022-08-24 09:47:31 | 이수영
  성경 말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구절로 인해 한동안 읽기를 멈추고 나름대로 깊이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더군요. 그런 구절, 그런 생각들에 관한 글입니다.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만들려 하거든 다듬은 돌로 그것을 쌓지 말라. 네가 돌 위로 네 연장을 들면 그것을 이미 더럽혔느니라...라는 출 20:25 말씀이 바로 그런 구절입니다.   위 출 20:25 말씀을 처음 접하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랬었구나...!...그런 관습이 하나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었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어떤 관습이냐 하면, 산신제 등을 위한 돌 제단을 만들 경우 반드시 다듬지 않은 돌들로만 쌓도록 되어 있는 우리나라 오랜 관습(풍속?)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 모르고 살았던 옛날, 그때 그 시절에는, 그런 관습을 상당한 문화민족, 말하자면, 동방예의지국(^^) 사람들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영적 차원의 수준 높은 관습이라는 생각에서 그 시작점으로서의 조상 분들에 대한 경의까지 품곤 했답니다. 조선시대 분들인지 고려시대 분들인지, 그건 정확히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위 출 20:25에 기록된 바와 같이, 돌 제단 관련 관습은 조선시대, 고려시대 등등을 넘고 넘어 먼 옛날, 이스라엘 땅 모세 시대 하나님 말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더군요. 한반도 내 어떤 시대에 자생적으로 형성된 관습일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만, 아무래도, 출 20:25 말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함이 가장 합리적이리라 생각...했답니다. ^^          어쨌든...그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인간...사람이란 참으로 사악한 존재로구나, 머릿속에 헛된 시작점 하나를 정해 놓고는 그 너머의 하나님을 외면하는...지독한 이 사악함을 어이할거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 이어서 우리나라 성씨들의 시조와 관련하여 동일한 생각, 말하자면, 헛된 시작점 너머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악함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시조 분의 아버지(당연히 계셨을 것),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등등을 넘어 올라가다 보면 결국 노아, 아담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건만, 거룩하신(^^) 시조 분, 즉 헛된 시작점 너머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대다수 불신자들의 경우)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어서 일어난 생각인즉, 인간...사람이란 존재의 사악함이 참으로 가증스러울 정도, 도저히 구제불능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헛된 시작점 너머의 하나님을 외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하나의 헛된 시작점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수천 년 이전의 노아, 홍수심판, 아담과 이브,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대신, 아예 수십만 년 이전의 아프리카 무슨 원숭이 암컷, 루시가 인류의 시조, 즉 시작점이라느니 어쩌고 할 뿐 아니라, 자바원인, 뭔 피테쿠스들, 네안데르탈인 등등, 조상...같잖은 조상들 마구 만들어 내었잖습니까.   여러 가지 생각들 끝에, 결론처럼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더군요. 하나님 보시기엔 참으로 기가 찰 일이겠다는 생각과,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진노의 포도즙 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사랑침례교회 성도로서 휴거의 복된 소망 품고 살아갈 수 있음이 너무나도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안내하기 위한 노력, 마땅히 해야겠다는 생각...등등이 그것들이었습니다.  
2022-08-23 18:13:15 | 최영오
『올라가는 기도, 내려오는 응답』   이 책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James W. Knox가 8차례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역자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고, 그동안 구한 것으로 인해 한없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설마 하고 주욱 읽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교회 서점에 우연히 눈에 띠어서 집어 들었는데, 많은 유익이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적은 게 있다. 가장 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도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수많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가 아예 하나님께 전달되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아들 하나님께 제시하시고, 아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기도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해 주신다. 만일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제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으로부터 그것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은 우리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도들과 제자들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간구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악한 현 세상에서 구원받는 것, 교회로 함께 모이는 것,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자신의 세대를 섬기는 것,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 악을 행하지 않는 것, 거룩히 구별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은사(선물)을 사용하는 것,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백지수표를 받은 것과 같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것을 구해도 기도의 끝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라는 말만 붙이면 응답받게 된다는 게 결코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원하는 것을 쭉 얘기한 다음에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르게 기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대부분의 기도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부르신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자가 되게 하거나 성공하여 잘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삼아야 할 가장 큰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달라고 구한 것이 없다.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한 기도는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구한 것인데 응답받지 못했다. 신약성경에 나온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기적인 삶과 이기적인 행위와 이기적인 동기와 이기적인 기도는 모두 같은 부류의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육신의 정욕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99%의 기도는 물질적인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단지 1%의 기도만이 영적인 것을 구하는 기도다. 이런 기도는 믿음의 기도 아니라 불신의 기도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더 이상을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니다. 이러한 기도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성경은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았고, 자신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구하는 성도들도 많이 봐왔는데, 이러한 기도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믿음이 부족해서 이런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가 아예 하나님께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신다. 만일 잘못된 것을 구하거나 잘못된 동기로 구하면 그 기도를 아들 하나님께 전달하지 않으시고 폐기시켜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구하는 것이 성경에 위배되지 않고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이라면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아들 하나님께 전달해 주신다는 것이다.
2022-08-18 17:05:57 | 이규환
비둘기는 속죄는 물론 정결과도 깊은 관련 있다는 말씀...새겨듣게 되는군요. 그리고 새한테는 안수 안 한다는 것, 제사장이 잡는다는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형제님의 글 속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위엄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 드립니다. 주님 은총 충만한 복된 날들 보내세요 ~ ^^
2022-08-12 22:22:11 | 최영오
하나님께서는 소나,양, 염소로 제물을 드릴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규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로 제물을 대체할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새를 번제로 드릴때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새에 안수하거나 직접 죽이지 않았고 제사장이 그 일을 맡아 새의 머리를 몸통에서 찢어 제단에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다음 두 구절을 보면 비둘기를 주님께 드리는 일이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민6:9-12에 보면 나사르 사람에 대한 법이 나오는데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마리를 회중의 성막문에 있는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그가 하나는 죄 헌물로 다른 하나는 번제헌물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레15:13-15에 보면 남자에게서 유출병(구체적으로 어떤 병인지 성경에선 언급하지 않음)에서  회복되면 7일을 기다려 여덟째날에 나사르 사람에 대한 법처럼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두마리를 취해 하나는 죄헌물로 다른하나는 번제 헌물로 드렸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비둘기를 주님께 드리는 일은 가난한 자들의 번제의 의미 뿐 아니라 사람이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고자 할때 특별히가난한 자들이 속죄받아 죄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장애물을 두지 않으셨음을 볼수 있습니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드리며 주님앞에 나아오는 누구라도 정결함과 속죄받은 자유함을 누리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둘기 번제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발견하게 되어 저도 기쁨니다.샬롬~
2022-08-12 00:51:51 | 오광일
선한사람- 사람의 기준에서는 선한사람이 있지요. 말씀에 비추어보면  사람은 모두 거짓말장이요  악한 아비의 자식들임이 분명하구요. 오직 참진리이신 분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되어 너무 감사해요. 사람 속에는 참으로 선한 것이 없음을 나자신을 돌아봐도 알게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삼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2022-08-09 16:38:02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