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니 크로스비...대단하신 분이셨군요.
감명깊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형제님 ~ ^^
2022-11-24 21:56:57 | 최영오
견고한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각양각색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절박함(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재림이 임박하다는)을 가지고 전도를 한다. 이런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그렇지만, 예레미야의 뼈속에 사무치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고백과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
복음을 전할 때,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5가지 정도로 그룹핑할 수 있다. 첫째는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믿어라.”며 말도 꺼내지 말라는 부류다. 이런 부류를 만나면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부류들과 계속 접촉을 시도하면 자칫 관계가 끊어지기도 한다. 둘째는 발끈하는 부류다. 내가 왜 죄인이냐?며 발끈하며 저항을 한다. 셋째는 의심하는 부류다. 어떻게 물 위를 걸어? 어떻게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일 수 있어? 처녀 탄생이 말이 되는거야? 부활이 가능하긴 한 거야? 넷째는 보여 달라는 부류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증거를 보여 봐.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도록 방치할 수 있느냐며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를 대 보라며 보이라고 한다. 이들은 천국과 지옥도 보이라고 한다. 다섯째는 다 좋은데,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부류다. 정중한 것 같지만 사실 듣기 싫은 것이다. 다음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소식이 없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어느 왕과 같은 부류다.
이상이 내가 전도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들 반응에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수 필요가 있다. 막연히 이들의 패러다임이 견고하다고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반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창조와 십자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복음 전도의 힌트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힌트가 있다. 이들 부류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은 다 죽는다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이점을 전도에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의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시각도 아니다. 영적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영적 눈을 떠야한다.
“아버지! 우리의 영적 어둠이 깨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십시오.”
2022-11-24 16:12:39 | 이규환
빛과 어둠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죠!
작은 건전지에 의지한 랜턴 하나라도 어둠을 몰아내죠.
작은 랜턴과 비교불가이신 주님은 그 자체가 빛이시라
어둠이 피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둠의 자식인 우리를 빛의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이 너무 놀라워요.
생각할수록!
2022-11-17 17:10:05 | 이수영
참 빛은 그림자가 없다!
2019년 9월부터 시작해서 2021년 5월에 끝난 요한복음 강해를 다시 들으면서, 무슨 일인지 예전에 배웠던 상보성 원리가 자꾸 떠올랐다.
상보성 원리는 닐스 보어(1885~1962, 덴마크)가 1927년에 도입한 개념이다. 양자역학에서 상보성 원리(相補性原理, complementarity principle)는 양자역학적 물체가 어떤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파동 또는 입자의 성질을 보인다는 원리이다.
보어는 동일한 실재에 존재하는 입자성과 파동성이라는 두 가지 배타적이면서도 상보적인 속성에 주목했다. 고전물리학의 관점에 따르면 한정된 영역에 존재하는 입자와 공간의 일정 범위에 퍼져서 존재하는 파동은 완전히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면 빛은 경우에 따라 입자 혹은 파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절대 동시에 입자이며 파동일수는 없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성이라고 부른다.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데 있어 ‘신속’과 ‘정확’은 상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임박한 마감 시간 속에서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기사를 작성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신속성을 추구하면 정확성이 떨어지고, 정확성을 추구하면 마감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낮과 밤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낮이 오면 밤은 물러나게 된다. 선과 악도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빛과 어둠 또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빛의 특성은 어둠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빛은 어둠을 물러가게 한다. 아무리 어둡던 곳이라 해도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견디지 못하고 물러가게 되어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참 빛(1장 9절)이시라고 한다. 창세기 1장 3절의 그 빛이시다. 그 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1장 5절) 그 빛은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빛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받을 수 있는데도...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 아품을 말할 수 있다. 우리 성도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우리는 빛을 안다. 우리는 빛을 사랑한다. 침례자 요한이 참 빛을 증언했듯이 우리도 빛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참 빛은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2022-11-17 12:50:39 | 이규환
감사합니다. 형제님 느끼는 일들을 그때마다 올려주셔서.
함께 나누면 배가 되는것 같아요^^
2022-11-12 11:44:17 | 이수영
꾸준하게 글을 올려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형제님의 신실함에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2022-11-09 23:23:40 | 오광일
위대한 작사가가 될지는 잘 모르겠고 좋은 크리스천 수필가가 되어 가는 것은 느껴집니다~!
2022-11-09 16:10:34 | 이남규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신앙생활을 시작할 즈음, 구원이 무엇인가로 씨름하고 있을 때, 우연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라는 찬송가를 듣게 되었다. 4절에 “멸망의 죽음에서 날 건지셨네, 아아 주의 사랑 깊고 크셔라”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대목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양 볼에 눈물이 흘려내리는 경험을 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에서부터 십자가에서 숨지는 모습까지를 담고 있다. 그때 찬송가 가사가 성경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매일 찬송가를 들으며 따라 부른다. 며칠 전 ‘오 놀라운 구세주’라는 찬송가를 듣는데, 후렴에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가 너무 좋아서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찬송가를 들으면서 작곡자가 누구인지, 작사가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오 놀라운 구세주’를 따라 부르면서 이 곡을 작사한 사람은 누군일까 궁금했다. 확인해 보니 패니 재인 크로스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맹인이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6주가 막 되었을 때 의사의 의술 부족으로 영원히 시력을 잃어 일평생 맹인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녀의 아버지 존 크로스비도 중병이 들었고 곧 며칠도 안돼 세상을 떠났다. 21세에 과부가 된 그녀의 어머니는 남의 집으로 일하러 다녀야 했고 가난했다.
생후 6주 만에 시력을 잃고 일평생(94세) 맹인으로 살아야했던 패니 크로스비는 자신의 장애를 불행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주어진 자신의 삶에 불평과 원망과 불행 대신 만족과 찬양의 길을 선택했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했으며 긍정적인 삶으로 기적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 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내주 내 모든 짐 벗기시네
죄악에서 날 끌어 올리시며 또 나에게 힘주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측량 못할 은혜로 채우시며 늘 성령의 감화주사
큰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토록 내 생활을 도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주 예수님 공중에 임하실때 나 일어나 맞이하리
큰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리 저 천군과 천사들 함께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맹인이 메마른 땅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큰 바위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 힌트는 출애굽기 33장 22절이었다.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내가 너를 그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가는 동안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그녀는 94년의 생애동안 1,000여편의 시를 썼고, 그 중에 24곡(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가도록 등)이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실려 있다. 패니 크로스비는 성경이 전부였다. 여기에서 나는 성경을 읽는 또다른 의미를 발견한다. 혹시 모르겠다. 성경을 열심히 읽다보면 위대한 작사가가 될지도~~
2022-11-09 12:28:03 | 이규환
사건‧사고에 대응하는 7가지 유형
지진 등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7가지 유형은 아래와 같다.
유형#1
이 유형은 사고가 발생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관심은 어디에 본질이 있는가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왜 그럴까? 라고 생각한다. 근본 원인에 관해서 관심이 크다. 이들은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올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성(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유형#2
이 유형은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이다. 이들은 당면한 일이 눈에 빨리 들어온다. 시키지 않아도 일을 잘 찾는다. 실제적인 필요를 즉시 인식하고 그 필요를 채우는데 매우 민첩하다. 사건의 처리에 더 관심이 있다. 이들은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
유형#3
이 유형은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시스템을 먼저 생각한다. 시스템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를 따진다. 진실 또는 사실이 왜곡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아는 바를 이론적으로,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제시하거나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문제를 만나면 원리나 원칙으로부터 출발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매우 이성적이다.
유형#4
이 유형은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하고자 한다. 사고 현장에서 상담자 역할을 자임한다. 사기가 떨어지거나 축 처진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세워주는 말을 잘한다. 연구나 학습보다는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는 것에 더욱 큰 관심이 있다.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피하기보다는 직접 대면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시련이나 역경을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로 여긴다. 장애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긍정적이고 디딤돌로 생각한다.
유형#5
이 유형은 사고가 발생하면 물질적으로 도와주고자 한다. 성금이나 구제품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물질적 필요가 있는 사람에 대해 마음이 끌린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 시간, 재능 등을 필요한 사람에게 대가 없이 주고자 한다. 다른 사람이 모르게 돕는 것을 좋아한다. 기부 천사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유형#6
이 유형은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에 직접 가서 진두지휘한다. 현장의 무질서하고 어수선한 면이 눈에 빨리 들어온다. 이들은 동시다발 처리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현장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주어진 목표와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 맡은 일을 위하여 가용한 자원(인적, 물적)을 조직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능숙하다. 큰 조직의 리더들이 대부분 이 유형에 속한다.
유형#7
이 유형은 소외된 사람, 상처받는 사람, 불쌍한 사람에게 특별히 마음이 끌린다. 사고가 발생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슬픔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 함께 울어준다. 이들의 행동은 머리보다는 가슴에 주로 좌우된다. 이 유형 중에는 너무 슬퍼서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 사고가 발생하면 슬픔의 여운이 다른 유형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된다.
로마서 12장 6절~8절을 생각해 보면서, 위 7가지 유형 중에서 나는 어떤 유형인지를 비교해 보면 시사점을 얻지 않을까! 최소한 1개, 많게는 2개~3개가 겹칠 수도 있다.
2022-11-02 14:57:58 | 이규환
글 속의 남편 분 말입니다, 종업원한테 미안해서 티셔츠랑 양말 사 들고 나올 정도로 엄청(^^) 마음씨 고운 분과 함께 사는 '축복받은 남자'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무척 답답한 남자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나님께서 복, 그것도, 큰복 주셨음에도 당췌 그걸 못 알아차리고 부부싸움이나 하는 저런 남자에게는 복 주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오랜만에 들렀다가 형제님 글 읽고서 반가운 마음에 헛소리 비스무리한 댓글 달아봤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형제님 ~ ^^
2022-10-27 21:41:41 | 최영오
재능과 은사 관련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형제님 ~ ^^
2022-10-27 21:24:02 | 최영오
어느 누가 뭐라든
5.16은 혁명, 참으로 위대한 혁명이라고 믿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이 있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고 봐야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형제님 ~ ^^
2022-10-27 21:19:57 | 최영오
ㅎ 남편이 화 낼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 기준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지요.
우리 부부의 경우는 남편의 안목이 훨 나은편이라 남편에게 물어보는 편이고 잘 따르지만 내가 사고 싶으면 남편이 인정해주죠.
의사소통이 잘돼면 좋겠지만 상태가 늘 좋지만은 않으니~
부부이기에 서로가 상대를 인정해주고 충분한 교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22-10-26 07:53:43 | 이수영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된 쇼핑
어떤 부부가 토요일 오후, 쇼핑을 하기로 했다. 쇼핑이 끝나면 근사한 곳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외출을 했다. 부부는 아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쇼핑을 시작했다. 남편이 먼저, 옷을 고르기 위해서 이 옷, 저 옷을 입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다음에 사기로 하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아내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남편 : 그게 뭐야?
아내 : 티셔츠 하고 양말이요.
남편 : 그거 왜 샀는데...(심기가 약간 불편하다)
아내 : 종업원한테 미안해서 샀어요.
남편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종업원들은 그런 일하면서 월급 받는데...
아내 : 그래도 그렇지요. 수고했는데...
남편 : 당신! 그런데다 돈을 함부로 쓰는거야?
아내 : 이까짓 티셔츠와 양말 몇 푼 된다고 그래요? 짜증나게~
이후 부부는 언성을 높이며 크게 싸웠다. 근사한 저녁식사는 물 건너 갔고.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로 싸우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 왜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질까?
의사결정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누구나 의사결정을 할 때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사실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을 하고, 어떤 사람은 정보를 사람 또는 관계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을 한다. 전자는 사실에 입각해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의사결정을 하고, 후자는 내가 내린 결정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며 의사결정을 한다.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원칙과 원리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똑똑해 보이고 빈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 또는 관계 중심인 사람들이 볼 때에는 매우 차갑게 느껴지고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반대로 사람(관계)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그 중심에 사람이 있고, 인화를 중시한다. 따뜻하고 인정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논리적인 사람들이 볼 때는 기준이 없어 보이고 한심하게 보인다. 그리고 불안하게 보인다.
의사결정에 이르는 과정과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입장에서 말을 내뱉으면서 상대방을 자극하게 되고,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특징을 모르면 부부관계는 물론 모든 대인관계에서 사사건건 부딪힐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다르다. 틀린 게 아니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부부는 서로 다른 두 인격체가 만난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와 같은 문제는 상대방을 알고 이해를 한다면 그렇게 심하게 다툴 사안은 아니다.
2022-10-25 11:50:46 | 이규환
일반적으로는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섬기게 되지요.
복음을 전할 때에 (듣는 사람의 반응이 있을 때) 기쁨은 성도가 된 이후에 누리는 기쁨이지만 특별히 배우려고 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은사로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성도가 마땅히 성경을 공부해야 하지만 은사로 주어졌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보았고요.
복음 전도와 성경공부는 성도의 의무 같아요.
은사가 주어지면 더욱 드러나게 되구요.
2022-10-21 08:56:19 | 이수영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은사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노래 부르는 은사가 없습니다.
은사가 없는데도 찬양을 한다고 해서 은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서에 나오는 섬김도 마찬가지로,두 사람이 섬긴다고 할 때, 성과 측면에서 차이가 날 겁니다.
섬긴다고 해서 은사를 받았다고 하기 보다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섬기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2022-10-21 07:43:41 | 이규환
성령님으로부터 왔는지 여부가 은사인지 달란트(재능)인지의 구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고전12)
가령 예를 들어보자면
피아노를 전혀 못쳤는데 구원받은 이후 성령님께서 선물로 피아노를 칠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갑자기 잘치게 됨 - 은사
구원여부와 상관없이 피아노를 조금 배우다보니 다른 사람들 보다 빨리 배우고 잘침 - 재능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상 살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 양보 헌신 등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교회 출석과 구원 받은 이후 성도들을 위해 섬김 희생 하게 된다면 이럴 때 섬김의 은사를 받았다라고 할 것 같습니다 (롬12:7)
2022-10-20 17:33:53 | 유해용
재능(Talent)과 은사(Gift)
1. 재능(Talent)
재능을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나 소질’ 이라고 정의한다. 갤럽은 『강점혁명』에서 강점을 구축하는 한 가지 요소로서 재능의 정의는 더욱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재능이란 생산적으로 쓰일 수 있는 사고, 감정, 행동의 반복되는 패턴이라고 정의한다.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강하다면 그것은 재능이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것 역시 재능이다. 인내심이 강하다면, 그것 역시 재능이다. 책임감이 강하다면, 그것은 재능이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고, 감정, 행동 패턴이 생산적으로 쓰일 수 있다면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정의하면 재능은 누구나 있는 것이며, 흔하디 흔한 것이 재능이다.
2. 재능의 단서
1) 무의식적인 반응
내가 어떤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맨 처음에 나타낸 무의식적인 반응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머리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감정, 행동이야말로 재능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실마리다.
2) 과거 특정 사례
재능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과거에 있었던 특정한 사례를 떠올려 본다. 예전에 경험했던 사례를 선택해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과제를,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혼자서 하루종일 집에서 무엇을 하면서 보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루하고 따분했을 수도, 너무나 편안해서 행복감을 느겼을 수도 있다.
3) 동경
동경(Yearning)은 무엇인가를 늘 마음 속에 두고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동경은 재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어렸을 때 어떤 활동에는 끌리고 어떤 활동은 이상하게 싫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동경하던 일을 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되는 이유는 사회적 또는 재정적 압박 때문이다. 누구나 오랫동안 동경의 대상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재능을 발견하기 원한다면, 동경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4) 학습 속도
학습속도를 보고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재능의 존재와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속도다. 신속한 배움은 한 사람의 재능에 관한 중요한 실마리이다. 재능을 알고 싶다면 어떤 종류의 일을 빨리 배우게 되었는지, 어떤 행위가 금방 쉽게 익숙해지는지 살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들은 매우 어려워하는 것을 나는 너무 쉽게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 재능이 있는 것이다.
5) 만족
내가 무엇에서 만족감을 느끼는지 본다. 재능을 발휘할 때는 기분이 좋아진다. 따라서 어떤 활동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면, 재능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을 할 때 만족감을 느끼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3. 은사(Gift)
위와 같은 재능이 교회로 넘어오면 은사(Gift)가 된다. 앞에서 재능은 흔하디 흔한 것이라고 했다. 은사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하나 이상의 은사를 선물로 받는다. 굳이 재능과 은사의 차이점을 말한다면, 재능은 개인을 위해서 사용하지만, 은사는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은사가 없는데도 은사가 있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하려고 의욕을 앞세우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은사가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요즘 사역(섬김)에 대해서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은사를 선물로 받았는지 곰곰 생각해 본다.
2022-10-20 11:41:09 | 이규환
이론으로만 알고있던 매슬로우 주장이 확실히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이든지 공과는 양측면이 다 논의 되어야 하지만 한가지 목적으로 과오를 크게 부각시키고 그렇게 교육받았었지요.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이 언제나 바로 잡힐지~
식민사관으로 점철되어 온 우리의 역사도 바로 알려지기를 .....
2022-10-13 11:00:08 | 이수영
『박정희의 위대한 5.16 혁명』을 듣고
전에 ‘고기 먹으로 교회에 간다’ 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고기는 성경의 어려운 부분을 말한다. 개인마다 어려운 부분은 다를 수 있겠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나는 이사야서, 요한계시록이 굉장히 어렵고 힘들었다. 처음에는 도대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어려운 부분이 우리 사랑침례교회에 와서 해소되었다. 너무 감사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우유를 먹는다. 조금 성장하면 이유식을 먹는다. 좀더 성장하면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다. 많이 성장하면 드디어 고기를 먹는다. 고기는 부드러운 고기도 있고 딱딱한 고기도 있다.
구원을 받으면 다시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은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게 된다.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된다(베드로전서 2장 2절). 구원을 받으면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설교를 듣게 되는데, 처음에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읽다보면 하나 둘씩 이해가 되고, 점점 더 깊게 이해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나 성도들이나 다 일정한 단계를 밟으면서 성장한다는 점이다.
김용삼 기자의 강연 내용 중에,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1인당 국민소득이 4천~7천달러는 돼야 한다는 연구결과(로버트 달)와 당시 대한민국은 하루 세끼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이슈인데,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민주주의를 주장했다는 대목에서 매슬로우(Maslow) 욕구 5단계 이론(needs hierarchy theory)이 떠올랐다. 아래 그림을 보자.
이 이론에 따르면 욕구는 하위욕구(부족해서 생기는 욕구)와 상위욕구(더 성장하고 싶어서 생기는 욕구)로 나뉘고, 인간의 욕구는 하위단계에서 상위단계로 계층적으로 배열돼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욕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에 바쁜 사람에게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라고 요구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하루 세끼가 걱정인 사람에게 민주주의가 눈에 들어올까? 우리나라의 발전단계는 바로 이 이론이 잘 설명해 준다. 박정희 대통령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하게 되면 깔끔한데, 독재 운운하며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들에게 매슬로우 욕구 5단계를 한 번만 들여다 보라고 권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목사님이 누누이 강조하듯이, 기록할 당시의 배경(상황)과 수신자를 알고 읽으면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접근이 어떤 사안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정도(正道)가 아닌가!
2022-10-12 15:43:38 | 이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