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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믿음의 기초가 또 필요해서 창세기강해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죽을때 <은혜>라는 찬송가를 들으면 참 행복할것 같아요.. -보라,내가 너희에게 한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고린도전서15장51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youtu.be/svCxJvzYfJ0?si=RIyBEIC1vvyi8Fjq  
2026-03-28 07:34:56 | 목영주
형제님, 자세한 해석에 따른 감사의 시간에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요. (3)  ~지상재림,  그에 앞선 7년환란   이라는 부분이 마치 환란 후 휴거처럼 보이는데 여기 문장을 수정해 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2026-03-28 06:25:39 | 이수영
  회중찬송 후 내려놓았던 찬송가 책 다시 펼쳐 들고 원곡 가사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 복된 소망인 ‘휴거’를 원곡 가사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 뒤늦게 들었을 때를 그 한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한 달은 넘었을 것 같은 언젠가 그런 경우가 있었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 그 노래를 부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라고? 원곡 가사 중에 감탄사 ‘아!’가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하여, 내려놓았던 찬송가 책 다시 펼쳐 들고 원곡 가사 전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휴거’ 때문이 아니라 감탄사 ‘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탄사 ‘아!’는 없는데...?...그거야 뭐, 번안 과정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며 훑어보던 제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meet Him in the air, 공중에서 그분 만나다, 바로 그 대목이었습니다.   여기 있잖아?! ... 그런데 우리말 가사에는 왜 없지? 라는 생각에서, 단순히 살펴보는 정도를 넘어 일종의 탐색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원곡 가사 전체를 감싸고 도는 진리의 말씀...말씀들이 강렬한 느낌으로 전해지더라고나 할까요. 작사자 D. W. Whittle, 휘틀, 1883년 이 원곡 가사 쓰신 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날 이후...‘아 하나님의 은혜로’, 그 노래가 특별히 어떤 말씀 구절들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나름대로 탐색해 보았습니다.   엄청스리 똑똑한 ai 도움 받아 뿌리의 말씀 탐색해 본 결과 그리고 그 결과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밝혀볼까 합니다.   우선, 해당 찬송가 가사를 한 절씩 차례로 옮겨적어 보겠습니다. 첫째 부분(한글)은 우리말 가사, 둘째 부분(영문)은 원곡 가사, 셋째 부분(한글)은 제 나름의 번역문, 넷째 괄호 부분은 ai 도움 받아 선별해 낸 말씀 구절들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절 :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I know not why God’s wondrous grace to me He has made known, nor why, unworthy, Christ in love redeemed me for His own,   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그분께서 내게 알게 하셨는지, 또 왜 자격 없는 나를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구속하사 자신의 것으로 삼아주셨는지 난 모른다네   ( 엡2:7–9, 롬5:8, 엡1:7, 벧전2:9, 고전6:19–20, 롬11:33 )   2절 :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I know not how this saving faith to me He did impart, nor how believing in His Word wrought peace within my heart,   어떻게 이 구원의 믿음을 그분께서 내게 심어주셨는지. 또 어떻게 그분 말씀 의지함이 내 마음속 평안 만들어내는지 난 모른다네   ( 히12:2, 롬10:17, 빌4:6–7, 요14:27, 롬11:33 )   3절 :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I know not how the Spirit moves, convincing men of sin, revealing Jesus through the Word, creating faith in Him,   어떻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사 사람들 죄 확실히 알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 드러내시고 그분 향한 믿음 일으키시는지 난 모른다네   ( 요16:8, 요16:13–14, 히4:12, 롬10:17, 고전12:3, 롬11:33 )   4절 :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I know not when my Lord may come, at night or noonday fair, nor if I’ll walk the vale with Him, or meet Him in the air,   언제 내 주님께서 오실지, 밤일는지 밝은 한낮일는지, 또 내가 그분과 함께 골짜기를 걷게 될는지, 또는 공중에서 그분 만나 뵙게 될는지 난 모른다네   ( 마24:36, 마24:42, 살전5:2, 시편23:4, 살전4:16–17, 롬11:33 )   후렴 :   나는 주 예수님 믿으며 내가 그분께 맡긴 것들을 / 주 예수님 지키실 줄 매우 확실히 아네.   But I know whom I have believed, and am persuaded that He is able to keep that which I’ve committed unto Him against that day.   그러나 난 안다네 내가 믿어온 그분을, 또 그날을 대비하여 내가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는 줄 확신한다네   ( 딤후1:12 )   ...   원곡 가사 내용과 매칭되는 것으로 ai가 선별해 준 성경 구절들을 하나씩 찾아 확인해 본 결과...역시 그렇더군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I know whom I’ve believed, 그 찬송가 원곡 가사에는 상당한 수준(?)의 하나님 말씀이, 그리고 그에 뿌리내린 확고한 믿음(faith)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사자 휘틀이 어떤 분인가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D. W. 휘틀(1840-1901), 매사추세츠주 출신인 그는 미국 남북전쟁에 북군 장교로 참전(21세)했다가 1863년 부상으로 퇴역했으며, 전쟁 후 시카고에서 사업 이어가던 중 신앙에 몰두하여 전도사역의 길로 들어섰답니다. 1870년대부터 순회 집회와 성경 강연 중심으로 전업 복음 전도자로 활동했으며, J. 맥그라나한(1840-1907)과 함께 19C 후반 미국 부흥 운동에 크게 기여하신 분으로서, 드와이트 L. 무디(1837-1899)와도 긴밀히 협력했다는군요.   위 괄호 안에 적힌 말씀 구절들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I know whom I’ve believed, 그 가사에 담긴 의미를, 작사자가 하나님 앞에서 찬양해 올리고 싶었던 그 은혜의, 그 감사의, 그 믿음의 깊이를...가슴으로 느껴봤습니다.   ...   그리고...‘아 하나님의 은혜로’에서 시작하여 ‘I know whom I’ve believed’를 거쳐 D. W. 휘틀, J. 맥그라나한 등에 이르는 탐색작업 전반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1) 원곡 가사 탐색의 필요성   찬송가 영어 원문, 즉 원곡 가사 내용은 물론 매칭되는 진리의 말씀 구절들까지를 가끔은, 아니 어쩌면 자주, 살펴볼 필요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번안 과정에서 원곡 가사 내용이 바뀌어져 버릴 것임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작사자가 애당초 올려 드리고자 했던 하나님 향한 찬양의 거룩함 자체가 크게 훼손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실 만한 내용의 가사, 즉 노랫말 만들어 제대로 찬송하지는 못할망정, 다른 사람 잘 만들어놓은 걸 거시기한대서야 말이 되냐, 이 말씀입니다. ^^   (2) 사라진 대목들에 관한 서글픔   원곡 가사에는 있었으되 번안 과정에서 사라져 버린 몇 개 대목들 생각에 안타까웠다고나 할까요. 음절에 맞춰 글자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그렇지...충분히 살려낼 수 있던데 말입니다.   위 몇 개 대목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meet Him in the air, 즉 ‘공중에서 그분 만나다’로서, 번안 과정에서 아예 의도적으로 무시해 버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답니다.   수많은 이 나라 그리스도인들이 저 찬송가 부르겠지만...원곡 가사에 따르면,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가 아니라...그분과 함께 골짜기를 걷게 될는지 또는 공중에서 그분 만나 뵙게 될는지 난 모른다네...라는 사실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생각하매 약간은 서글퍼지더군요.   (3) 새삼스럽게 느껴본 감사   위 사라진 대목, 즉 ‘공중에서 그분 만나다’와 역시 관련된 내용입니다. 사랑침례교회 생각할 때면 항상 느껴 온 감사입니다만, 이번 탐색 과정 중 다시 느껴봤다고나 할까요.   진리의 말씀으로 분명히, 순서대로 기록된 주님의 공중 재림 및 휴거, 7년 환란, 주님의 지상 재림 그리고 천년왕국을 논하기에 앞서 아예 천지창조 자체를 믿지 않는 사이비 그리스도인들 감히 행세하고 다니는 세상에 그래도...‘복된 소망’으로서의 휴거 담대히 선포하시는 목사님, 그리고 한 성령님 안에서 그 믿음 함께하는 형제자매 계심이 어찌 그리 감사하게 느껴지던지요. 새삼스럽게 말입니다.   (4) 성령님의 역사하심   위 3절에 기재된 성령님의 역사하심, 그 신비와 관련하여...찬송가 발표 시점, 즉 1883년을 눈여겨보게 되더군요.   그러니까...D. W. 휘틀 그리고 J. 맥그라나한이 하나님의 은혜, 성령님의 역사하심 등을 노래하며 수많은 미국인들 회심시키던 그때쯤인 1885년 4월 5일(부활절), 아펜젤러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가 암흑 세상 조선 땅에 진리의 말씀, 큰 빛을 전하러 들어왔으니...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하심, 그 신비 아닐까...요?   (5) 하나님의 은혜 알게 하신 이유   위 1절에 기재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게 하신 이유...를 찾아 엡2:5-10 말씀 구절들에 담긴 뜻을 묵상해 봤습니다.   말씀 내용인즉, 죄들 가운데 죽어 있던 너희, 즉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다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앉히사 그 놀라운 은혜를 보여(알려)주려 하시는데(엡2:5-7)...그 이유가 뭔고 하니...우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정하신 선한 행위를 하며 걷도록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엡2:8-10)...이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니까...반대로 생각해 본 결과...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려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구원 받았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당췌 아무 것도 모르고 살 것 아닌가...그러다가 한 순간에 지옥으로 직행할 것 아닌가...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놀라운 은혜를 알게 하신 거다...그런 말씀 같군요. 이 또한 은혜라 할 것입니다.      (6) 내 주님께 맡겨둔 것   가장 부끄러운 내용의 생각, 즉 속마음을 가장 인간적인 표현으로 밝혀보려 합니다. 뭔고 하니...내 주님 만나 그분께 뭔가 돌려받을 것 있는 사람, 그러니까, 휘틀 같은 사람은 참 좋겠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 ... 겉으로 웃되 속으로 눈물 짓고 있는 사람의 이 심정, 비애...이해가 되시는지요...?   애당초 맡겨둔 게 있을 리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서 대책(?)을 찾아본바, 한번 받은 믿음(faith)을 제대로 지켜냄은 물론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아는 지식 면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드릴 뿐입니다. ( 끝 )      
2026-03-27 12:09:42 | 최영오
제겐 저만의 세상생존전략이 있습니다~^^기쁨 긍휼의 마음을 가지면 세상사람들 속에서 일단 제가 덜 괴롭고 오히려 예수님 전하게 된듯싶어 휴-다행이다 합니다.그리스도인이라 저를 그냥 싫어하는경우빼고는 오히려 그들도 행복해하는것 같고요..하지만 이조차도- 육신에 유독 연약한 저를 진심인정, 하나님말씀을 뇌에 가득넣고 의식적훈련으로만 가능한 저의 옛사람입니다. -오 하나님이여,사슴이 물 있는 시내를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혼이 주를 찾기에 그렇게 갈급하니이다.-시편42:1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03-19 08:38:49 | 목영주
성도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듯 싶어요.  동창생도 친구도 어떤 모임도 처음엔 전도의 목적으로 시도하다가  "너 전도사 됐냐?" 시큰둥~  나중엔  피차가  피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없어져 성도들 외에는 모임이 안하게 되는.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비슷하게 벌어지는 일이죠~
2026-03-19 05:45:22 | 이수영
세상은 로또야!   예전에도, 지금도 이런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아내가 말한다. “당신은 로또야.”   남편이 묻는다. “왜?”   아내가 말한다. “안 맞아…”   남편이 묻는다. “무슨 말이야?”   아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그냥 웃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안 맞는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단순한 부부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이 왜 로또처럼 느껴지는지,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한 모임에 참석했다.   편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냥 웃고, 근황을 나누고, 평소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대화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비상금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들 웃는다. 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담패설이 섞였고, 가볍게 던지는 말들 속에 거짓과 과장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이야기하며 은근히 깎아내렸고, 그 안에는 시기와 질투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그러다가 말이 엇나가기 시작했고,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커지고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장면도 있었다.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멀어졌다. 같이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는 게 아니었고, 같이 있으면서도 어딘가 섞이지 못한 느낌이었다.   ‘왜 나는 이게 불편한가…’ 예전에는 이런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섞이고, 웃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웃다가도 멈추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 계속 마음이 걸린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부부의 대화 내용이 생각났다.   세상은 로또 같다. 정말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억지로 맞추려 해도 안 맞고, 그냥 있으려 해도 어색하다.   이런 상황에 딱 맞는 성경 구절이 있다. ‘(이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합당하지 아니하였느니라)’(히브리서 11장 38절)   그리고 이어서 이 말씀이 떠올랐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기 때문이라.’(요한일서 2장 16절)   이런 경험은 아마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비슷한 순간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검증하도록 하라’(로마서 12장 2절)
2026-03-18 17:24:44 | 이규환
형제님의 솔직한 간증에 저는 한참 모자란 인간임을 새삼 느낍니다. 그럼에도 이런 저를 위해 죽으셨다가 묻히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구원을 보장해 주신 예수님,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6-02-26 15:24:36 | 김지훈
형제님, 솔직하게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화...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바로 시작되는 것이 성화이니 겪을수록  예수님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거죠. 외딴 곳에 혼자 살면 성화도 없겠지요. 어울려 사회속에서  살아갈 때 빚어지는 것이기에.  
2026-02-26 13:12:08 | 이수영
형제님~멋있으세요!위로받고 오늘하루도 예수님 드러내며 잘 살아내겠습니다아~ 맞는말을 긍휼의마음으로 예쁘게 전달해도 억울한 입장에 놓일때 저는 하나님말씀만 뇌에 남겨놓아요. 또한 몇초있다 제가 죽는순간이라고 상상할때는 죄성강한 제가 아주 망가뜨리지는 않더라고요.. 제 믿음은 너무 나약해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가득채우고 낙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새로운창조물이라 여기며 무릎짚고 일어나요. 멈추면 포기할것 같아 지금까지 잘왔고,저는 분명 또 낙심할테니 성화기간을 죽을때까지 잡았어요~^^ 지금 이시대 거룩하고자하는 사랑침례교회 저희들을 보시고 나라위해 기도 드립니다. 예수님..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옛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린도후서5장17절
2026-02-26 10:20:28 | 목영주
최근 작심하고 성령충만, 성화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강해를 들으며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성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오늘은 어처구니 없는 고백을 하려고 한다.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성령 충만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삶의 변화라고. 성화는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과정이라고.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래, 나도 변해야 한다.” “이제는 조금 더 온유하게 말하자.” 진심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 그날, 불과 세 시간 뒤에 나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목소리는 높아졌고 표정은 굳어졌고 말은 날카로워졌다. 설교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입으로 상처 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게 나였다.   그 날은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화를 내는가. 왜 나는 이렇게 자주 무너지는가. 처음에는 상황을 탓하고 싶었다. 상대의 말투가 문제였다고, 내가 충분히 화낼 만했다고 합리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문제는 결국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내가 틀렸다는 뉘앙스를 견디지 못했다. 분노의 뿌리는 자존심이었다. 성령 충만을 들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내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서 있었다.   나는 성화를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성화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드러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인정에 굶주린 사람이었다. 나는 인내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참고 있다가 폭발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은 성화는 나를 포장해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벗겨낸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불편하고 아프다.   예전 같았으면 “저 사람이 잘못했다”라고 말하며 끝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내 태도가 부끄럽다. 여전히 화를 낸다. 여전히 감정에 흔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이것이 내 죄라는 것을, 이것이 내 교만이라는 것을.   어쩌면 성화는 넘어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는 선택이라는 것을.   성령 충만은 항상 평온한 얼굴이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는 방향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도망치지는 않고 다짐한다. 화가 올라올 때 잠시 멈추는 연습을 하자. 즉각 반응하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자. 하루를 마치며 내 말을 돌아보자.   크게 변하지 못하더라도 조금씩은 달라지기를 바란다. 성화는 느리다. 그러나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 화를 냈지만 그래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간다.   이것이 지금 나의 솔직한 간증이다.
2026-02-25 15:06:44 | 이규환
하나님의 말씀을 이리저리 해석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보니 이단 삼단이 나오는 거죠~ 왜곡하지 않고 문맥을 살피고 문자 그대로. 보아야 잘못 가지 않지요. 오직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데 속히 오시기를 ......
2026-02-04 16:25:03 | 이수영
천국의 소망이 커지고 싶어서 요한계시록 시리즈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우주를 통치하시는 전능자 나의 아버지 닮아 오늘도 신실한 하루 살아내겠습니다.. -보라.내가 속히 가리니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요한계시록22장7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Hpnbau4x4
2026-02-04 08:29:35 | 목영주
  하나님 말씀, 즉 성경 읽다 보면, 인간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가히 초월적 차원의 하나님 성품 느껴짐에 따른 놀라움, 두려움 등으로 인해 읽기를 멈추고 한동안 묵상에 잠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초월적 차원의 하나님 성품인즉 신실하심(Faithfulness)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절대적 권능의 하나님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신실함, 즉 faithfulness 를 감히 무시해 버린 듯한 무천년설 그리고 그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밝혀보려 합니다.      AD410년경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제국 멸망(AD476년)의 서막을 열어젖힌 이교도들의 말, 즉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한 결과 망했다"라는 주장에 대한 어거스틴(AD354-430)의 반론을 담은 책, 즉 신국론(The city of God)의 핵심적 내용이 바로 무천년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20장의 그 천년왕국은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재림 사이의 긴 시간, 즉 교회 시대가 영적인 천년왕국인 동시에 교회가 곧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장, 말하자면, 이스라엘대체신학 말입니다.    대략 1,600년 전의 그 무천년설이 16C 종교개혁 당시의 장로교 창시자 존 칼빈(1509-1564)에 의해 소위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결과, 성도라는 이름의 많은 사람들이 성경, 즉 하나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즉 문자적으로 읽고 읽은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비유적,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개혁주의 신학에 따른 무천년설이라는 그 주장이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짓는 일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언젠가 언 듯 들더군요.    그날 이후 무천년설, 즉 1)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이다, 2)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의 유죄 또는 무죄를 판단(짧은 밑천으로 감히 ^^)하는 작업에 착수했던바, 그 판단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우선, 1)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이라는 그 주장은 멀쩡한(^^) 천년왕국을 다른 것으로 바꿔 버림으로써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의 전체적 구성을 뒤틀리게 하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게 만든 그 자체로써 일단 ‘죄’ 짓는 일임이 틀림없다 할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계시록 20장 2절부터 7절까지의 6회에 걸쳐 구체적인 내용으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동시에, 엉뚱하게도, 다른 것, 즉 교회 시대가 그것이라고 한 결과...애당초 놀랍도록 완벽 정교하게 짜맞춰져 있던 성경의 전체적 구성은 뒤틀려져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어서, 2)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그 주장의 경우, 성경 말씀의 단순 이해 또는 해석 차원을 넘어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 백성, 즉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 차원에서 살펴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주하나님께서는 여러 성경 말씀 구절들을 통하여,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예의 몇 개 말씀 구절들을 짚어봤습니다.   우선 이사야서 49장 14, 15 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온은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버리셨고 내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도다.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그리고...예레미야서 31장 35, 36, 37절 말씀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는 낮에 해를 빛으로 주고 밤에 빛을 내도록 달과 별들의 규례들을 주며 바다의 파도가 울부짖을 때에 바다를 나누나니 군대들의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 만일 그 규례들이 내 앞에서 떠나 없어진다면 그때는 이스라엘의 씨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민족이 되지 못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일 사람이 위로 하늘을 잴 수 있고 아래로 땅의 기초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 또한 이스라엘의 모든 씨가 행한 모든 것으로 인해 그들을 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위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말씀 구절들에서 강력 분출되는 하나님 전능자의 신실하심이, 영원 불변의 뜨거운 Faith·ful·ness 가 정녕 짜릿한 전율로 마음(heart)에 와닿는 사람만이,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늘을 잴 수 있고 땅의 기초들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빼고.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을 향한 절대 불변의 하나님 사랑이, 읽는 사람 눈물 머금게 할 정도의 절절한 사랑이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상에만 해도 수~~~없이 많은 구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점까지 생각할 때면, 앞서 예를 든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말씀 구절들이 주는 짜릿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곤 했답니다.   자, 그렇다면 말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되는 거죠? 영원에 계시는 주 하나님 전능자의 신실하심을,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 불변의 참된 신실하심을 감히 부정하는 일임이 명백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문자 그대로의 천년왕국은 없고 교회 시대가 바로 영적 천년왕국인 동시에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 즉 개혁주의 무천년설은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의 전체적 구성을 뒤틀리게 하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게 만든 ‘죄’는 물론,    주 하나님 전능자의 절대 불변 신실하심을, 그 초월적 차원의 성품을 감히 부정하는 ‘큰 죄’ 짓는 일일 것이라는 판단 내려 봤습니다.             ( 끝 )    
2026-02-03 21:06:29 | 최영오
나라걱정..기도도 그리스도인답게 하기 위해서 영적인 복을 바라보며 살아야지..결단한 2026년입니다. 사랑침례교회 형제님!자매님! 같이 힘내요~~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 바,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2장9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시대, 새 예루살렘의 도래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 https://youtube.com/watch?v=TkRS4L8Y4ao&si=cyADTb_eFavViANf  
2026-01-27 17:22:52 | 목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