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1,25번이 제일 취약하네요..어떤날은 말씀 한장에-예쁜 구름보다가-양자역학내용에-하나님계심 가득 확인하고 혼자 신나하다가도 작은염려로 물들어 금새 시들려고 할때가 있어요..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놀라지 말라.나는 네 하나님이니라.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참으로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떠받쳐 주리라-이사야서41장1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 22:23~33) - https://youtube.com/watch?v=63ULtPgQlpY&si=5zXyS24p_a0vhhHU
2025-11-29 17:12:06 | 목영주
세상이 말하는 길은 언제나 선택하기 쉽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좋고, 자기 위안으로 덮여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에 따라 성경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시선과 기준을 따르며 살겠습니다^^
2025-11-29 09:52:48 | 김지훈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살고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세상에 동화되기 싶다는 말에 공감이 되요.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검을 가지고 있기에분별할 수 있지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동행하시니 양심이 민감하게 되요.
세상을 떠나 살 수 없고 바른 정신을 갖고 살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믿는 모든 성도들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2025-11-29 08:31:40 | 이수영
세상의 시선, 하나님의 시선
요한일서 2장 15절과 16절은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자칫 정신 줄을 놓으면 세상에 동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기 때문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준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뜻은 전혀 다르며, 그 둘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세상은 겉모습, 인기, 성과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런 것들이 우리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과 세상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은 "세상은 이렇게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비교를 통해, 우리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세상은 실수를 비난하지만, 하나님은 회개를 기뻐하신다. (누가복음 15:7)
2. 세상은 성공을 칭찬하지만,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하신다. (사무엘상 15:22)
3. 세상은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하나님은 나누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히브리서 13:16)
4.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만, 하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를 복되다 하신다. (요한복음 20:29)
5. 세상은 강한 자를 높이지만,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야고보서 4:6)
6. 세상은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잠언 12:22)
7. 세상은 외적인 예배를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삶의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 (잠언 21:3)
8. 세상은 자기를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를 기뻐하신다. (누가복음 18:14)
9. 세상은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주는 것을 더 복되다 하신다. (사도행전 20:35)
10. 세상은 유명해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조용히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마태복음 6:4)
11. 세상은 보복하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용서하라고 하신다. (마태복음 6:14-15)
12. 세상은 힘 있는 자를 따르지만, 하나님은 낮은 자와 함께하신다. (이사야 57:15)
13. 세상은 빨리 올라가길 바라지만,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는 믿음을 귀하게 여기신다. (이사야 40:31)
14. 세상은 넓은 길(자신의 길)을 가라 하지만, 하나님은 좁은 길을 택하라 하신다. (마태복음 7:13-14)
15. 세상은 네가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고린도전서 6:19-20)
16. 세상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고 하신다. (고린도전서 10:31)
17. 세상은 지금을 즐기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골로새서 3:2)
18. 세상은 약점을 숨기라 하지만, 하나님은 약할 때 강함이 드러난다고 하신다. (고린도후서 12:9-10)
19. 세상은 자기를 위해 살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웃을 위해 살라고 하신다. (빌립보서 2:3-4)
20. 세상은 인기 있는 사람을 높이지만,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높이신다. (시편 37:6)
21. 세상은 걱정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염려를 맡기라고 하신다. (베드로전서 5:7)
22. 세상은 복수하라 하지만,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로마서 12:19-20)
23. 세상은 자기만 챙기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신다. (로마서 12:10)
24. 세상은 불평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라고 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25. 세상은 두려움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이사야 41:10)
26. 세상은 자주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말라기 3:6)
27. 세상은 죄를 숨기지만,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라고 하신다. (요한일서 1:9)
28. 세상은 죽음을 끝이라 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신다. (요한복음 11:25)
29. 세상은 네가 누구냐고 묻지만, 하나님은 내가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로마서 14:8)
이 비교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세상의 기준은 시끄럽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세상이 말하는 길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시선과 기준을 따를 것인가?
누군가 물으면, 성도는 당연히 매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2025-11-28 18:33:47 | 이규환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지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성화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5-11-17 08:34:15 | 김지훈
공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모범이 되어야 말에도 힘이 있으니까요. 그리스도인이지만 yesman은 아니어야 하지요.
복음을 전하면 뒤집어지는 세상은 마지막이 맞아요.
2025-11-16 07:25:46 | 이수영
여러모로 역량부족인 거기다 겁까지 많은 제가 하나님없이,믿음없이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저의 미숙함이 부끄러움으로 끝나지않고 (하나님갈망하게된)큰 감사 이유가 되게 해주셨어요.
-심지어 달을 바라보아도 그것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참으로 별들도 그분의 눈앞에서는 순수하지 아니하거든 벌레인 사람이야 얼마나 더 그러하겠느냐?벌레인 사람의 아들이야 얼마나 더 그러하겠느냐?하니라.-욥기25장5,6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uzVPOd3iJjQ&si=N4jJ48-i3A_gTSDW
2025-11-15 22:42:05 | 목영주
"수세미는 당연아닐테고.." 너무 웃기네요
2025-11-15 15:05:59 | 정예준
사람들은 성경책보다 먼저 성경을 믿는 사람의 삶을 본다는 말씀에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25-11-15 15:02:38 | 정예준
글 읽다보니 감정팔이 목사가 생각나네요.
2025-11-14 14:14:39 | 이규환
아하, 익스피어런스!(아, 바로 이거 였구나)
2025-11-14 13:55:25 | 이규환
제5의 복음서, 세상이 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지인이 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찾아갔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다니자고 했다. 내 말을 들은 지인은 조목조목 그리스도인들의 언행에 대해서 말했다. 거친 표현도 했다.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도를 시도해 보면 말처럼 쉽지 않다. 전하려는 사람은 말문이 막히고, 듣는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성경을 아무리 권해도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게.”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설득력 있는 논리나 감동적인 간증도 때로는 통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성경책보다 먼저, 성경을 믿는 사람의 삶을 보기 때문이다. 복음의 내용을 듣기 전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인격과 태도에서 메시지를 느낀다. 그 사람이 진짜로 믿는 것을 삶에서 확인하려 한다. 결국 복음을 향한 불신은,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즉, 복음 전도의 가장 큰 어려움은 복음을 전하려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 자체에 있을 수 있다.
성경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 네 복음서가 있다. 그러나 세상은 오늘도 다섯 번째 복음서, 곧 그리스도인의 삶을 읽고 있다. 아래 사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를 그 지인이 지적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1. 말과 삶이 불일치한 모습
직장이나 가정에서 신앙을 말하는 이가 오히려 비신자보다 더 거칠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기도와 말씀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남을 무시하거나 쉽게 화를 내고, 다른 이의 뒷말을 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처럼 말과 삶이 다를 때, 복음은 설득력을 잃는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 너희는 그들의 행위대로 하지는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아니하며"(마태복음 23장 3절)
말로는 복음을 전하지만 삶으로는 복음을 부정하는 경우이다. 삶이 따라오지 않으면 진리가 왜곡된다.
2. 물질적 축복을 신앙의 열매로 여기는 모습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믿음이 좋으니 복을 받았다”는 식의 평가가 흔히 들려온다. 직장을 잘 구하고, 사업이 번창하며,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축복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복음을 물질의 풍요와 동일시하는 순간, 십자가의 본질은 흐려진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나?” (마가복음 8장 36절)
복음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누구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3. 교회 밖 사람들과 거리 두고 정죄하는 태도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때로는 세상 사람들과 벽을 쌓는다. 신앙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쉽게 비판과 정죄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예수님의 태도는 달랐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들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7절)
복음은 담을 쌓기보다 다리를 놓는 일이다. 정죄는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만, 이해는 다가오게 만든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4. 신앙 고백은 있으나 삶의 열매가 없는 모습
예배는 드리지만, 일상에서는 성경과 무관한 태도가 지속될 때 복음은 의심받는다. 기도는 하지만 변덕이 심하고, 말씀은 외우지만 정직하지 않다면, 누가 그 믿음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야고보는 분명히 말한다.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17절)
복음은 들려지는 것만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다.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말로만 남게 된다.
5.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너희끼리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무슨 사랑을 말하느냐”고 묻는다.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열, 소문과 험담이 이어질 때, 공동체는 복음의 향기를 잃는다. 사랑 없는 진리는 차갑고, 분열된 공동체는 외면당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35절)
사랑은 교회의 가장 강력한 복음 증거이다. 세상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
결론: 우리는 어떤 복음서를 써 내려가고 있는가
세상은 성경책을 펼치기 전에, 그리스도인을 먼저 읽는다.
복음서를 공부하기 전에,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의 태도를 관찰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어떤 복음서를 쓰고 있는가?”
“나를 통해 복음이 선명하게 전해지고 있는가?”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직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날 때, 가장 깊이 전해진다.
오늘도 세상의 누군가는 ‘내 삶이라는 복음서’를 읽고 있다.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날마다 삶을 다듬고, 겸손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 지인은 당분간 믿기 힘들 것 같다.
2025-11-14 13:47:53 | 이규환
우리가 가진 속성 중 특히 경계해야 할 교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5-11-03 08:59:44 | 김지훈
찾는 마음이 없으면 찾아지지 않아요.
가장 좋은 성경이라 말해도 듣지를 않죠. 진리를사는 건데 돈이 아까운지? 다른 건 잘 써도 유독 성경엔. 인색하고.
마귀의 자식이 주님의 자녀로 옮아가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죠.
2025-11-02 08:35:56 | 이수영
'대책없음'이란 단어가 오늘은 참 친근하게 들리네요~^^ 제가 좋아하는 욥기시리즈를 듣는 요즈음-- 하나님을 깊이깊이 알지 못해 그렇게도 제 상황에 징징대었나 싶은게(자매님들은 저의 성화과정이라 봐주시지만..)-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해야지..에서 하나님만으로 기쁘구나,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이 너무 좋다..라는 일상고백이 감사합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이 굴리시는대로 제가 굴려지는 것이-점점더 기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말씀으로 그분을 더 많이 깊이 알아가야겠어요..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에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며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욥기 42장5,6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5-11-01 16:01:00 | 목영주
두어 달쯤 전이었던가, 어떤 장로교 목사님 설교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완전 본의 아니게, 그야말로 우연히 마주친 유튜브 영상이었다 보니, 중간중간 정지시켜 잠깐잠깐 보는 식으로 하여 불과 5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시청을 마쳤습니다.
그런데...훑어보듯 지나친 그 영상 속 한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답니다. 너무나 감명 깊은 말씀이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람'이란 존재, 그 '속성'에 관한 서글픔 자아내는 그런 장면이었답니다. 이하, 그 장면부터 찬찬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상19:12(이세벨을 피해 굴속에 숨은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대목) 관련 상황 설명하면서 그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중략)...여기서, 세~미한 소리란 어떤 소리냐?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그런 미~세한 소리를 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작~~은 소리를 엄청 비중 있게 강조하시더군요.
안 봐도 비디오라고, 50년 넘게 목회 활동 하신 목사님의 자못 엄숙한 표정, 그러니까, 미~세한 하나님 목소리 못 들을까 봐 무척 긴장한 듯한 그 표정과, 그리고 그보다 더한 긴장감 느껴질 정도의 엄숙함 속에서 조용히 숨죽여 아멘...!...역시 우리 목사님...!...하고 있는 성도들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그런 모습들 떠 올려본 다음...엥? 웬 바늘? 뜨개질용 대바늘도 아니고 바느질용 바늘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거기서 왜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나오지? 그리고 세~미는 또 뭐지? 수세미는 당연히 아닐 테고...라는 생각에 즉시 영상 시청을 멈추고 NIV 성경(비교 목적으로 곁에 두고 있는) 영어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A gentle whisper...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러니까, gentle whisper, 그 두 단어를 ‘세미한 소리’라고 번역한 거죠. 글쎄요...아무리 소리의 톤을 낮춰 표현한다손 치더라도, 부드러운 속삭임...정도라면 모를까, 세미한 소리...를 넘어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그러니까, 들릴락 말락 한(거의 안 들리는) 그런 소리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번역 문제를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뜻은 제대로 못 전하고, 대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어떤 말씀 선포자와, 그 선포자의 말과 분위기에 취해 있는 성도들...이 연출하는 허울뿐인 예배 현장, 경배 현장의 서글픔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도망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음은 물론 곧 잡혀 죽을 절박한 상황에 놓인 엘리야한테 하나님께서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그런 미~세한 소리로 말씀하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생사의 갈림길 아니라 죽음 직전의 엘리야 청력 테스트 하실 일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
이제는 죽었다 하고 있던 엘리야의 마음 어루만져 주시듯,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통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셨을 뿐인데...미~세한 소리는 뭐고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는 또 뭐냐, 그 말씀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상식적인 차원을 벗어난 황당한 일...그러니까, 별다른 의미 없는 목소리(하나님 목소리를 두고 이런 표현 하자니 좀 그렇습니다만 ^^) 하나를 대단한 의미 있는 듯 꾸며놓고선 그에 감동하는 일...너무 황당한 그 일을, 결국은 자신을 포장하여 우매한 대중 앞에 드러낼 뿐인 그런 일을 저분은 감히 하나님 팔아서 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에서 답답~해지더군요.
그분이나 그 사람들이나 모두 그런 생각은커녕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 향한 경배의 일념으로 그러고 있음 생각하매...그 답답함이 참으로 큰 서글픔으로 느껴졌답니다.
이어서, 위와 같은 서글픈 장면이 발생하는, 아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근원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생각해 본 결과, 사람...그러니까, 죄성을 지닌 ‘사람’이란 존재의 어떤 속성 때문이라는 결론 내려지더군요.
그렇다면 그 속성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바로 떠 오르는 ‘속성’이 뭔고 하니...‘대책 없음’ 이었답니다. 그러니까, ‘대책 없음’이 사람이란 존재의 속성이다...사람은 좌우지간 대책 없는 존재, 그 자체다...!...라는 결론에 이르더라는 말씀입니다. ^^
원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인지라...대책 없음, 그 속성의 근원은 또 뭘까...?...그러니까, 어떤 근원적 속성, 즉 진짜 속성으로 인해 사람은 대책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자아도취, 헛똑똑이, 자기만족, 인생의 자랑, 기타 등등...수~없이 많은 단어, 표현들이 제법 한참 동안 뇌리를 스쳐간 끝에 한 단어가 결론처럼 드러났답니다. 교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결국은 그것, ‘교만’을 속성으로 지닌 사람이란 존재는 유튜브 영상 속 그런 서글픈, 일종의 가증한 장면 연출할 수밖에 없는 거다...라는 결론 내려지더군요.
바꿔말씀드리면, 그런 장면이 결국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말씀입니다.
꼬리를 물고 이는 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답니다. 그렇다면...사람은 정녕 대책 없는 존재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잠6:16-19) 중 첫 번째로 명시된 ‘교만’을 숙명적 속성으로 지닌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그것이었습니다.
역시 한참 동안 머리 굴린 끝에...결론...제법 그럴 듯한 결론 하나를 찾았답니다. 교만...그것이 사람이란 존재의 숙명적 속성인 만큼 그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그러나 거의 그 속성 없는 듯한 사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그곳에 가면...이라는 결론 말입니다.
그곳이 어디냐구요? ... 하나님 말씀 온전히 보존된 바른 성경, 성경 속 하나님 말씀 온전히 전하는 말씀 선포자, 그리고 하나님 뜻에 따른 사랑으로 서로 권면하는 성도들로 구성된 지역교회, 거기가 바로 그곳...아니겠는가...라는 결론 내려봤습니다.
늦가을로 접어들 11월 둘째 날 찾아갈 사랑침례교회, 그곳을 그려봅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 끝 )
2025-10-31 19:03:33 | 최영오
말씀을 꼼꼼햐게 맥락으로 봐야하는 중요성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10-04 07:58:32 | 이수영
첫째, 둘째, 셋째 모두 아멘입니다. 감사합니다.
2025-10-02 17:25:33 | 정예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톨릭은 그저 역사속의 일반인을 교부라고하며 체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 늘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요한일서 5장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10-02 17:20:42 | 정예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일 5:7 말씀을 다시 되새겨 보며 이오 ㅏ관련된 내용도 형제님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2025-10-01 10:17:40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