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님 이 글은 감성으로 읽었습니다...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말도 있는데 묵묵히 부족하더라도 자기자리를 감사한 마음으로 지키면 주님이 필요한 때 다 쓰임으로 족할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2012-03-23 17:40:28 | 최현욱
ㅎㅎㅎㅎ 저도 웃으면서 한마디....
차 형제님, 맞아요~~
성철의 말 아무 뜻 없어요.
말 그대로인데 무슨 큰 의미가 있는 줄 고심하는게 불교에서 도 닦는(참선) 일이죠.
참고로 제가 예전에 불교 신자였거든요.ㅎㅎ
2012-03-23 16:11:37 | 김상희
* 오래 전에 어디선가에서 읽었던 글인데, 같이 느껴 보시지요..
조금 깨어져 금이 가고
오래되어 낡아진 약간은 못 생긴
물 항아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항아리의 주인은
다른 온전한 항아리들과 함께
그 깨어진 항아리를 같이 데려가서
물을 길러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주인은
깨어진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항아리와 똑같이
늘 아끼며 사용했습니다.
깨어진 항아리는
다른 항아리와는 달리
물을 온전히 담아 올 수가 없는 자신의 모습에
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온전치 못하여 주인님에게 폐를 끼치는구나.
그토록 힘들게 구한 물이
나로 인해 새어버리는데도
나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사용하시다니….’
어느 날, 마음에 큰 용기를 내어
깨어진 항아리가 주인께 물어 보았습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깨어진 저를 버리고
새로이 온전한 항아리를 구하지 않으시나요.
저는 이제 별로 소용 가치가 없는 물건일 뿐인데요...”
주인은 그의 물음에 대답대신
빙그레 미소만을 짓고는
그 항아리를 등에 지고
집으로 계속 걸어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길을 지날 때 쯤
미소 지은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걸어 왔던 길을 보아라.”
그제야 깨어진 항아리는
주인과 함께 늘 물을 길어
집으로 걸어오던 그 길을 보았습니다.
그 길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쁜 꽃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주인님, 너무 예쁜 꽃이네요!
어떻게 이 산골 길가에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걸까요?”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메마른 산 길가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같이 기도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저의 모나고 깨어진 부분일지라도
하나님 손에 붙잡힘 되어
메마른 땅에 꽃을 피우는 도구로
시용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은 봄비가 종일 촉촉하네요~
2012-03-23 16:03:20 | 김정훈
성철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였으면 그만인데....
뭐 헤아리고 할 것이 있나요?
2012-03-23 15:58:45 | 차대식
그렇게 이해하고 진심을 받아 주시어 감사합니다.
사실 형제님이 또 질문 해오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었거든요..^^ 이청원 자매님이 또 "형제님, 유하게 말씀하세요~~" 할까 염려도 되고, 차대식 형제님이 또 "계속 논쟁하지 맙시다~~" 하면.. 딴 사람도 아니고 죽마고우인데 댓글도 함부러 못달겠고, 그리고 장문의 글을 쓰느라 없는 시간 쪼개는 것도 힘들고.. (휴~)
아이들 가르치느라 힘드셔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2-03-23 14:54:09 | 김정훈
'이심전심' 이겠지요~~^^
2012-03-23 14:42:25 | 김정훈
의미있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특히 과학적인 내용과 상충되어 보이는 내용을 접할 때 어떻게 이해하고 넘어 가야 되는지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 내용을 형제님께서 "성경의 기록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입장에서 기록된 글이 있고, 우리 사람들이 듣는 입장에서 기록된 글이 있습니다." 라는 말로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다만, 천동설을 받아 들여도 계산 결과가 같아진다는 부분은 사실이 아닙니다.
천동설이 갖고 있는 수 많은 어려움은 여기서 일일이 다 얘기하지 않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간다면, 그것은 케플러가 발견한 타원궤도입니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어스로 이어지는 천동설적 우주 모형에서는 행성의 운동은 지구를 중심으로 완전한 원을 그리는 등속원운동을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케플러는 실제 관측과 이론사이의 오차를 발견하고 결국 타원궤도(불등속타원운동)를 설정함으로 해결하였고, 나중에 뉴턴이 만유인력 법착을 발견함으로 그것을 가능케하는 힘의 원리를 보완설명해주게 됨으로 종지부를 찍습니다.
암튼 천동설을 받아 들이면 관측치와의 오차를 메꾸기 위하여 뭐 하나 할 때마다 매우 복잡한 계산이 필요로 하면서 계속 수정을 해주어야 하지만, 지동설을 받아 들이면 수학적으로 아주 께끗하고 멋있게 계산이 끝납니다.
지구가 꼭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불필요한 편견만 없다면, 이 모델이 훨씬 하나님의 창조솜씨를 그야말로 뷰티풀하게 드러내는 모델인 것입니다. 아울러 태양으로부터 각 행성들간의 거리 조차도 수학적으로 볼 때 아름답게 순서가 위치하도록 짜여져 있음으로, 지구를 향한 하나님의 애정과 섭리를 발견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지동설의 모델 안에서 보다 멋지게 드러나 지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2-03-23 14:40:26 | 김정훈
애정이 없으시다면 그런 장문의 글을 써주시진 않으셨겠죠^^
자세히 풀어 써주신 권면에 많이 배우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형제님께서 염려하신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2-03-23 14:30:01 | 유준호
죄송합니다. 너무 웃음이 나와서 웃고 갑니다. 차형제님의 댓글과 바로밑에 김형제님의 댓글에서 그만 웃음보가 터져나왔습니다. 저만 웃는건 아니겟죠~~~~
2012-03-23 14:23:37 | 김영익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수 년 전에 성철이란 불자(佛者)가 한 말인데, 얼마나 알쏭달쏭한 말을 하였던지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아마 아직까지도 그 제자들이 무슨 뜻인가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에잉~~ 나도 그냥 장문의 글을 쓰느라 시간 뺏기지 말고 차형제님처럼 한마디만 하고 말걸.. ㅠㅠ
2012-03-23 13:55:54 | 김정훈
요즘 국어 실력도 부족하기도 하고 댓글 달기가 조심스러워 집니다. 다른 견해를 갖고 꿍꿍 거리기 보다는 드러내어서 걸러질수 있는 것들은 걸러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이 문제가 이슈가 되었는데 김정훈 형제님께서 과학자의 입장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갖고 계신 마음을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갈릴레오 시대에는 천동설이 정상과학이었고, 현재는 지동설이 정상과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창조과학도의 한사람으로 과학자들은 지구가 도는 것을 전제로한 계산방식으로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구는 가만히 있고 천체가 도는 것을 전제로한 계산 방식을 만든다면 아마 결과도 동일할 것입니다. 결국 계산방식의 차이이지 도출된 결과는 동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천동설을 문자대로 믿는 사람이 과학자들의 지동설 계산방식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보여집니다. 내가 10키로 물러서나, 내가 가만히 있고 상대방이 10키로를 물러서나 결과가 같은데 구태여 지금의 지동설을 기반으로한 계산방식을 다 버리고 과학계 전체를 천동설의 계산방식으로 다 바꾸는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과학이란 과거의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것인데 같은 결과치를 가지고 천동설을 기반으로한 계산방식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틀의 이해를 갖고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여집니다. 성경의 기록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입장에서 기록된 글이 있고, 우리 사람들이 듣는 입장에서 기록된 글이 있습니다. 이 두글이 충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이해를 갖고 대하면 양쪽의 내용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00% 동일한 견해를 갖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견해를 무조건 용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관계와 주님께 영광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2-03-23 10:35:23 | 조양교
설은 설이고, 법은 법이라고 믿습니다.
계속 논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2-03-23 10:19:52 | 차대식
예전에 킵바이블에 한창 천동설, 지동설로 떠들썩 했던적이 있었지요~
그때 처음 이 사실을 접하고 충격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것은
제가 가진 성경의 권위가 더 세워졌고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짦은 이해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지요.
일반 주부인지라 지식적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가진
이 성경을 기초로하여 그대로 믿으면 되어 참으로 기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김정훈 형제님께서 연구하셔서 우리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교육과 더불어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하실수 있도록 더 잘 설명해주셔도 참 좋을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밤이요~
2012-03-22 23:58:56 | 주경선
'bara' 가 3번 각각 다른 곳에서 사용되어진 사실로 아주 중요한 창조의 원리를 알 수 있지요. 정말 하나님은 섬세하시고 정확하십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2012-03-22 23:29:12 | 김정훈
정확히 보시고 계십니다! 여호수아의 말씀을 저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2012-03-22 23:21:40 | 김정훈
형제님의 의견을 존중하며, 댓글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아래와 같이 저의 코멘트를 드립니다.
1. “저는 형제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 아래에 적은 저의 댓글을 읽고도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로서도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습니다.
2. “왜 자꾸 저같은 하찮은 사람이..”
-> 이런 표현은 앞으로는 안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겸손도 지나치면 오히려 누가 됩니다.
3. “저는 형제님께서 매번 강의하실 때마다 선생님들께 주일학교 수업 하지 말고 가서 듣자고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형제님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4. “천동설과 지동설. 어느 쪽도 실험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진 사실은 아니며..”
->과학의 역사에 관한 아무 책이라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지동설의 확립은 중세의 연금술을 우리가 오늘날 보는 객관적 과학으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게 한 결정적 사건의 하나입니다. 물론 일반 다른 과학의 분야 (e.g., 물리학이나 화학) 처럼 직접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성격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형제님이 말씀하신 의미의 실험과학은 아닐 수 있어도, 당시에 오랫동안 쌓여온 관측 데이터와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무엇이 더 설명하기에 쉽고도 잘 들어 맞는지를 놓고 정해진 이론이기 때문에 당대는 물론이요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지동설을 정설로 받아들이는데 주저가 없게 된 것입니다.
5. “어느 누구도 우주 공간에서, 또는 우주 공간과 동일한 조건으로 태양과 지구의 물리적 운동이나 질량을 완벽히 검증된 실험을 통하여 증명한 사례는 없으니까요.”
-> 정말 이런 문장을 접하면 왜 과학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하는지가 절실해지고, 나는 다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도 절대로 과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과학의 지식은 전체가 아닌 부분을 가지고 나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델’이라고 부르고, 엄밀한 수학적 확률과 통계적 방법 위에서 그 가능성을 얘기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형제님이 말한 바대로 우주공간과 동일한 조건으로 완벽히 검증된 실험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현대과학은 훌륭히 성공하였고, 비행기와 컴퓨터와 인공 심장을 만들어 내고 눈부신 세상을 펼쳐 놓았습니다.
6. “이곳에서 성경 구절들을 총동원해가며 논쟁을 벌이거나 설득하려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 밑에 달린 저의 댓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고, 따라서 그 어떤 구절도 행성의 궤도며 인력의 법칙 등을 수학적으로 기술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구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알기 쉽게 어떤 사실을 기록할 뿐이기에, 그것을 천동설의 안경을 끼고 보면 그렇게 보일 뿐이고, 반대로 지동설의 안경으로 바꿔 끼고 보면 또 그렇게 보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문제나 창조론의 문제가 아니라면 이 경우는 성경 구절로 논쟁하는 것은 어차피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7. “잠시 후에 우리가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보지 않는 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 이 말은 하나마나.. “에이, 천국이 있는지 우리가 죽어 봐야 알지 어떻게 알어?”하는 식의 논조와 비슷해서 별로 호감이 안가는 표현으로 들립니다.
8. “다만 저는 과학자가 아니고 주일학교가 과학수업을 하는 시간도 아니므로,”
-> 주일 학교가 과학 시간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곳이기 때문에 정확한 과학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창조과학적 지식이 없음으로 진화론에 무방비로 당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아이들은 그럼 이제까지 주일 학교가 과학시간이 아니어서 그대로 방치하고 놔뒀던 것이었나요?
9. “과학적으로 무지하고 어리석게 보여 무시당할 수도 있겠지만 뭐 할 수 없죠..
저에겐 천동설이 더 훨씬 자연스러우며 그렇게 믿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 형제님, 개인이 그렇게 믿으시기를 고집하시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교육을 맡고 계시기에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권면을 드리는 것입니다.
10. “물론 절대 천동설이나 지동설이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가 어느 쪽을 믿든지 하나님께서 6일 만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 그렇기에 굳이 천동설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 살고 있다면 형제님의 견해가 아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우리는 이미 천동설이 부정되고 있는 현대에 살고 있고, 그렇기에 굳이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도 아닌 천동설에 목숨 걸고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11. “이번 기회를 통해 편견 없이 진지하게 관련된 구절들을 찾아 읽어보시고 과연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각자가 연구해보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네요~^^
12. 형제님의 관심과 주장과 열정에 저의 애정을 전합니다. 언제든지 조금도 어려워하지 마시고, 마음껏 반대 의견을 개진하여 주십시오. 저는 할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청년을 사랑합니다!
2012-03-22 23:11:57 | 김정훈
오늘 점심 경에 이 글을 올리고 나서, 약 4시간이 지난 후에 정동수 목사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천동설을 믿으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잠깐 통화를 하고 난 후에 일단 논쟁의 소지가 남아 있는 주제이므로 내용을 삭제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만 고쳐서 다시 올리기로 하였고, 따라서 keepBible에 올려진 글은 바로그렇게 조치하였지요. 그런데, 교회 홈피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직 살아 있고 댓글도 둘이나 달려 있어 제 생각에 우리 홈피는 일단 수정 없이 그냥 놔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홈피니까^^) 이 댓글을 남깁니다.
저의 글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과학계에서 지동설이 확립된 사건은 소위 근대과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과학혁명’의 시발점과도 같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지동설은 현대과학을 배운 사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설과도 같은 내용이고, 거기에는 많은 역사와 문헌이 남아 있습니다. 한때 과학사 공부에 뜻을 두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면서 특히 케플러의 행성궤도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감탄해 마지않았던 시기가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지동설의 진영에 서 있던 갈릴레오, 케플러 등으로 이어진 과학천재들의 대열은 나중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정점에 다다르면서 말 그대로 ‘과학혁명’으로 이어졌지요. 또한 이것이 기초가 되어 오늘날의 우주천문학이 가능해졌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구에 앉아서 계산을 통해 로케트를 우주에 쏘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다 잘 알고 있는 일 아닙니까?
이 같은 사실 때문인지 심지어는 성경대로 6일 창조를 문자 그대로 믿는 창조과학 진영에서 조차도 제가 아는 한 지동설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지동설을 믿는다고 성경을 기록된 바대로 믿지 못하는 것은 더 더군다나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제가 저의 글에서 기술한 것처럼 가령 여호수아의 말이 천동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되는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그 말은 얼마든지 일상적 표현으로 있을 법한 표현이고, 그렇기에 오히려 성경을 더 신뢰하게 되기도 합니다. 마치 벳새다의 소경이 눈을 떴을 때 앞이 환히 잘 보인다고 하지 않고 나무가 걸어가는 듯한 이상한 표현을 가감 없이 그대로 기록한 것처럼, 현장에서 일어난 일 그대로 기록하는 성경의 진실성을 저는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도 우리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비록 지동설이 맞다고 할지라도 ‘지구야 멈추어라’라고 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해야 멈추어라’고 말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이지요.
오늘 목사님께서 알려주신 사이트 (http://geocentricity.com)를 들어가 보니 지동설이 아니라 천동설이 과학적으로도 더 맞다고 주장하는 글 들이 들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는 저 자신도 생소하여 앞으로 차차 시간을 두고 좀 더 연구를 해 볼 작정입니다만, 만일 여기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충격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과학의 근간을 뿌리 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고, 이 말은 결국 현대과학 전체와 맞서서 싸워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도 기록하고 있고, 어떨 때는 문학적 표현과 은유 혹은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부분도 같이 섞여 있습니다. 태양 혹은 지구의 움직임과 관련된 성경의 모든 구절이 결정적으로 어느 한쪽의 과학적 사실을 지지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성경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라고 보기 보다는 과학적 견해로 미루어 놓는 것이 더 지혜로운 처사라고 판단합니다. 실제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지 태양이 지구를 도는지에 관한 문제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와 같이 어느 쪽이 사실이냐에 따라 성경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따라서 일단은 두 가지 견해를 미해결 과제인 것처럼 판단을 보류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여유 있게 수용과 비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현재의 제 견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학교에서는 지동설을 가리키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자녀들에게 이 미묘한 차이를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기에는 어려움이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치명적인 문제가 안 되는 이 주제를 주류 과학의 입장에 반대하며 천동설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처럼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글에 적혀 있는 것처럼, 득보다 실이 훨씬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천동설을 고집하는 것이 무슨 신앙 좋은 것도 아니요, 성경이 반드시 천동설이 맞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며, 과학적 견해도 비록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여전히 논쟁이 남아 있는 것이라면, 저는 차라리 주류 과학의 입장대로 지동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가르치겠습니다. 다만, 참고로 천동설이 과학적으로 아직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에는 미해결 된 부분이 있으며 그 쪽의 주장도 나름대로 고려하며 접근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음을 알려주는 정도로 하는 것이 적합해 보입니다.
개인이 무엇을 굳게 믿느냐와, 어떻게 자녀에게 교육을 하느냐는 조금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의 해석에서도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을 수많은 모양으로 진화론자와 맞서 싸워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조롱하기를 좋아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동설을 믿는다고 말하면, (천동설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그들은 우리를 마치 아직도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거나 아니면 지구가 코끼리 등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길러내기 원하는 신실한 믿음의 자녀가 훗날 세상에 나가 천동설을 믿는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 자녀들이 정작 보다 더 힘주어 말하고 싶어 하는 창조의 사실과 성경의 권위와 은혜의 구원의 기쁜 소식에 대하여 그들은 콧방귀도 안 뀌며 조롱하며 그 자리를 떠나가 버리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제가 염려하고 안타까와 하는 점입니다. 사랑합니다.
2012-03-22 19:07:40 | 김정훈
저는 과학도 모르고 지식도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다고 믿는 한 성도로서
여호수아 10장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다만 세상을 향하여 천동설이 옳다는 주장을 펴거나 외치는 일로 실족거리를 제공하거나
논쟁을 유도하는 경우는 결코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어느쪽을 믿는다고 해서 믿음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배웠기에
각자의 믿음대로 믿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달아봅니다.
감사합니다.
2012-03-22 17:50:09 | 김상희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저는 형제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왜 자꾸 저같은 하찮은 사람이 형제님께 이런 역할을 하게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ㅜㅜ;
저는 형제님께서 매번 강의하실 때마다 선생님들께 주일학교 수업 하지 말고 가서 듣자고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천동설과 지동설. 어느 쪽도 실험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진 사실은 아니며 어떤 한 쪽만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고 말할 수도 없고 단지 각자의 지식으로 미루어 믿는 대로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 공간에서, 또는 우주 공간과 동일한 조건으로 태양과 지구의 물리적 운동이나
질량을 완벽히 검증된 실험을 통하여 증명한 사례는 없으니까요.
이곳에서 성경 구절들을 총동원해가며 논쟁을 벌이거나 설득하려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후에 우리가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보지 않는 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과학자가 아니고 주일학교가 과학수업을 하는 시간도 아니므로,
저는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냥 제가 믿는 대로,
성경에 쓰여있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발받침인 이 땅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으며,
우리를 비추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놓으신 조명장치인 해와 달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과학적으로 무지하고 어리석게 보여 무시당할 수도 있겠지만 뭐 할 수 없죠..
저에겐 천동설이 더 훨씬 자연스러우며 그렇게 믿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절대 천동설이나 지동설이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가 어느 쪽을 믿든지 하나님께서 6일 만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이번 기회를 통해 편견 없이 진지하게 관련된 구절들을 찾아 읽어보시고 과연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각자가 연구해보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3-22 17:13:51 | 유준호
특히 'bara' 단어의 설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이해를 갖게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정리를 잘 해주셔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2012-03-22 15:35:43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