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형제님.. 이미 국내에서도 지난 주에 개봉하여 현재도 상영 중에 있습니다~^^
2012-04-14 10:52:33 | 김정훈
권위적인 남편과 살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신혼의 단 꿈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혼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모든 일과와 집안에 발생되는 제반 일들을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완벽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자신이 정한 룰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고상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아내에게 하루 일과표를 세세하게 기록하게 했습니다. 분수에 맞게 검소한 삶을 습관화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시간 순서에 따라 적어야 했고, 결과를 확인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집기 비품들은 남편이 정한 그 자리 그 위치에 두어야만 했습니다. 공동 생활하는데 있어서 정해진 자리에 두어야 시간 낭비 없이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용 후 그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면 가차 없이 원인 분석 및 차후 방지대책에 대한 회의(?)를 장시간 진행합니다. 남편은 매우 논리적이었고, 분석적이었으며 분명한 주관을 갖고 일관성 있게 아내에게 줄기차게 요구를 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자기 방식에 적응해 올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이런 삶이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시간이 흘러가면서 남편의 의중을 알기에 어느 정도 남편의 기준에 맞추어 주기로 하였습니다. 하루 일과표, 주중 계획서, 월간 계획, 자신의 일거 수 일 투족에 대해 남편에게 수시로 보고를 했습니다. 집안의 물건을 사용한 뒤에는 항상 남편이 놓았던 그 위치에 갖다 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 이런 고통에서 해방되는가 하면서 분노를 억누르면서 하루하루 힘든 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내는 남편이 교통사고를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남편에게서 해방되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래도 함께 한 정은 있어서 약간의 슬픔이 있기는 했으나 자유의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이 여인은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남자는 이전 남편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자상했고 부드러웠으며 항상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항상 살펴 주었습니다. 자신에게 헌신적인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이 남자는 변함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아낌없는 배려와 사랑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너무 행복한 삶이었고, 너무 즐거운 삶이었습니다. 다시는 이 행복한 삶을 빼앗기기 싫었고 영원히 지속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한참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서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예전과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남편과 살았을 때 그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아 올랐습니다.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의 삶을 새로운 남편에게 알려주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게 대해 꼼꼼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집안 정리정돈도 남편이 쓰기에 적당한 위치에 두고 그 위치에 두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같은 방식의 같은 패턴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에는 억지로 얽매여서 마지못해 했는데 지금은 자원해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던 것입니다. 새로운 남편의 생각과 헌신적인 마음을 알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남편에게 했던 것입니다. 같은 일이었지만 그 일은 힘들지 않았고 즐거움과 행복함속에서 겉모양뿐 아니라 정성까지 담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 여인은 정감 있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나는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혹시 권위적이지 않을까? 자상한 척 하지만 뭔가 지시적이고, 가르치려 하고 내 방식대로 교정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아내를 위한 헌신적인 마음보다는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하지 않은가? 한번 나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일정 부분 이 여인의 첫 남편과 같은 모습이 있지않나 반성해 봅니다. 나 스스로 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화하기 편안한 시간을 마련해서 물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정생활에 대한 글들이 많이 올라오니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주일을 준비하시는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04-14 10:39:18 | 조양교
저는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국내 개봉되면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2012-04-14 10:25:18 | 조양교
목사님, 좋은 시간 되십시오~^^
2012-04-13 22:35:56 | 김정훈
글을 정성들여 쓴것 같네요. 역시 요리의 맛은 정성입니다.
2012-04-13 14:13:54 | 김영익
댓글이 넘 늦은감이 있어 포기(?) 했다가 ....ㅋ
와우~ 역시 과학자다우시네요.
저보고 데이타좀 뽑아보라 일이 주어졌다면 끙끙거리며 힘들게 했을텐데 말입니다.
김형제님의 성도칼럼에 대한 남 다른 애착은 곧 사랑교회에 대한 사랑과 비례하는거겠죠?ㅎㅎ
이후에 몇 편의 글을 더 올리셨으므로 '금단증상'에 관한 걱정은 심각하게 생각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하하~ 잘 읽었습니다.
2012-04-12 14:37:36 | 김상희
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해설을 들었으니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내서 아내와 함께 보아야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2-04-11 23:33:05 | 관리자
하하.. 그러게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인간의 몸으로 고통을 직접 느끼신 우리 예수님만큼 나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주실 '명의'가 없는 것이겠지요!
2012-04-11 19:25:13 | 김정훈
세상 쪽으로 마음을 살짝 열어두면서 읽으니 감칠 맛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12-04-11 14:42:21 | 김상희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받으신 고통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아픔은 아파 본 사람만이 안다는 말 100% 공감합니다.
의학 상식과 함께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가 아픈 증상을 얘기한면 그 아픔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까?
그리고 통증의 예만 봐도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여러가지 증상이 있는데
똑같이 아파보지 않고서야 어찌 알 수 있을까? 등등 말예요..ㅎㅎ
2012-04-11 14:20:15 | 김상희
ㅎㅎ 갈매기들의 세계를 전혀 모르니.. 그냥 대장 갈매기 따라 줄을 지어 질서 있게 잘 날아가는구나 했는데.. 갈매기의 장거리 비행을 위한 놀라운 비밀이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교훈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4-11 13:53:56 | 김상희
현재 미국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오랫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올랐던 수잔 콜린스(Suzanne Collins)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헝거게임(Hunger Game)>이다.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 소설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는 소설과는 또 다른 장르이니만치 평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 소설은 읽지 못하였지만, 적어도 영화만으로 보았을 때는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야기는 미래의 어느 시점, ‘팬암’이라는 제국이 지배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팬암의 수도인 ‘캐피톨’은 12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 전체 영토를 지배하며 관할하고 있다. 각 구역의 사람들은 매우 가난하지만, 정부의 체제에 순응하며 별다른 저항을 할 엄두도 못 내며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캐피톨’의 사람들이 누리는 부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가 매년 한 번씩 개최하는 소위 <헝거게임>이라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방식의 게임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다.
각 구역마다 매년 2명의 10대 남녀를 자원 또는 강제로 선발하여 이렇게 모인 총 24명의 소년 소녀들을 일정한 공간 (산도 있고 강도 있는 매우 넓은 공간 임) 안에 집어넣고, 그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경쟁 게임을 시킨다. 더군다나 이 경기를 TV로 생중계하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면서, ‘캐피톨’의 시민들은 누가 이길지 내기까지 걸면서 열광적으로 즐기는 이 나라 최고의 축제 이벤트가 바로 말 그대로 ‘배고픈 자들의 게임’ 즉, <헝거게임>이다.
여러 구역 중에서도 최고로 가난한 구역인 12구역에서, 어느 날 추첨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헝거게임에 나가야만 하는 동생을 살리기 위하여, 16살 여주인공 ‘캣니스’는 이 경기에 자원하게 된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이제 그녀가 펼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담과 로맨스로 관객 몰입도를 한층 높여 주며, 뒷이야기 들을 끌어간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영화의 호불호는 갈려지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영화를 보는 눈이 적어도 아마추어 수준은 조금 벗어났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필자의 눈으로 볼 때도 이 영화.. 꽤 괜챦은 편이다. 나머지 이야기의 결과와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더 이상 이 자리에서 필자가 논의할 주제는 아니어서 생략하기로 하고,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본 영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팬암제국은 크게 3개의 작은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는 12구역으로 나눠진 보통 사람들의 세계다. 둘째는 캐피톨로 불리는 소위 엘리트 시민들의 세계.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엘리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공간인 세 번째 세계, 즉 헝거게임이 있다. 엘리트 시민들은 보통 사람들을 구역 안에 가두고 통제한다. 여기에 순응하고 살아가면 비록 가난하고 질은 떨어지지만 생명은 보장된다. 그래도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이들의 반란을 제어하기 위해서 엘리트 그룹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게임의 룰을 제시하며, 보통 사람들을 헝거게임의 틀 속으로 집어넣는다. 여기서 살아남는 자는 보통 사람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며 반란의 기운은 사그러든다. 왜냐하면 엘리트들이 누구라도 원하면 헝거게임을 통해 정당한 (?) 방법으로 엘리트 사회로 진출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 놨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 나타난 팬암제국의 모습은 매우 단순화된 구도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근본 구조가 많이 닮아 있다. 영화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있고, 대다수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다. 엘리트 그룹은 독점하다시피 세상의 부를 거머쥐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삶의 질고에서 힘들어 하며 꿈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엘리트 그룹은 여러 가지 룰을 바꿔 가며 헝거게임 같은 구도를 만들어 준다. 가령 여러 가지 정치적 이념으로 판을 짜 주기도 하고, 다양한 철학이론과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며, 때로는 경제 활동의 방식을 여러 형태로 바꿔주기도 해 가며 그 룰에 따라 게임을 하라고 한다. 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그리하여 엘리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하여 문자 그대로 피 흘리는 서바이벌 게임을 뛰며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게임의 룰 속에서 더러는 성공을 거머쥐며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의 얼굴이 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이란 것이 본래 그렇듯이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자 혹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무한경쟁의 치달음 속에서 비록 승자로 살아남을지라도 그 성공에 상응하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지금 어떤 게임의 룰을 따라 헝거게임이 진행이 되고 있는가? 성장위주의 자본주의 이념 속에서 적자생존적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유물론적 인본주의 진화론의 룰인가? 아니면 좌파니 우파니 아직도 방향을 못 잡고 한물간 구시대적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벌여야 하는 정치 논리의 룰인가? 서바이벌 게임 속을 바삐 뛰어 다니는 동안 우리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누군가가 어느새 한명씩 숨죽어져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고는 있는가? 우리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이 게임을 하게 되었는지는 과연 제대로 알면서 뛰어 다니고 있기는 하는 것인가?
본래 3부작으로 쓰여진 소설에 맞추되, 영화는 그 표현과 시간적 제약의 한계를 감안하여 총 4부작으로 계획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주인공의 운명과 팬암제국의 결말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직 소설을 읽어 보지 못한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현실 세계의 결말은 어찌될지를 알고 있다. 팬암의 세계에는 없으나, 현실세계에는 존재하는 바로 그 '책'이 한 권 우리 손에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영화 속에 보면, 헝거게임에 출전하는 소년 소녀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각자의 오른팔에 칩을 심는 장면이 나온다. 헐리우드 영화가 잘 쓰는 서브리미널(subliminal) 기법이라는 것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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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제가 지난 4월 1일 자로 올린 성도컬럼에서 당분간 글을 쉬겠다고 해놓고는 오늘까지 몇 편의 글을 더 올렸습니다. 처음엔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길 내용의 글을 한편 올려야겠다 생각했다가, 내친 김에 부활주일까지 이어졌고, 급기야는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와 관련하여 오늘 또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공연히 실없는 사람같이 되버려서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잠시 글을 쉬려고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연구실에 그 동안 밀린 논문들을 정리하여 써내려면 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던 것인데, 제가 이렇게 성도컬럼을 쉽게 못 떠나네요..^^;; 아무쪼록 이런 저의 상황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 당분간 저의 글은 뜸 해지겠지만.. 다른 형제 자매님들께서 꾸준히 좋은 글들을 올려 주시리라 믿고, 또 많은 분들이 댓글로 호응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저도 틈틈이 댓글은 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주님 안에서 늘 강건하시길 바라면서 전 이만..
2012-04-11 01:32:03 | 김정훈
눈으로 보는 글에서 맛이 느껴집니다.
맛과 향을 마음에 담아 정신 건강을 지켜야 겠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건강을 위해 맛난 음식도 먹어야 겠습니다--비도오고~~ㅋㅋ
2012-04-10 15:09:24 | 박진
하하~ 재미있는 글이네요.. 다만 신앙인이 쓴글이 아니어서인지, '신앙'과 '진실' 그리고 '사랑'이 우리 삶이라는 음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한 것이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윗트가 살아 있는 재밌는 글입니다.
2012-04-10 13:40:03 | 김정훈
오늘과 내일은 비 소식이 있네요,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고 나무에 초록물들이 가득 올라왔으면 합니다. 작년에 저희 영업장 화단에 어린 철죽을 100여촉 심어 놓았는데 겨울을 나는 동안 얼어 죽었는지 살아서 잎을 내는 철죽이 몇 그루 되지 않아 속이 몹시 상합니다. 뿌리를 너무 얇게 심어서 그런가, 아님 토질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어쨋든 조금 지나봐서 싹이 영 나오지 않는 것들은 뽑아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화단에 나무조차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신앙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지인으로 부터 온 글중에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음식은 훌륭한 쉐프가 다양한 레시피를 잘 버무렸을 때 맛있는 음식으로 탄생하듯이 우리도 성경 말씀이라는 레시피가 우리의 삶에 잘 녹아지고 버무려 졌을 때 맛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먼저 크고 깨끗한 마음이라는 냄비를 준비한 후 냄비를 열정이라는 불에 달군다.
충분히 달구어지면 자신감을 교만이라는 눈금이 안 보일 만큼 붓는다.
자신감이 채워지고 나면 성실함과 노력이라는 양념을 충분히 넣어준다.
우정이라는 양념을 어느 정도 넣어주면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으니 잊지말고 넣어 준다.
약간의 특별한 맛을 원할 경우 이성간의 사랑을 넣어주면 좀더 특별해진다.
이 사랑이 너무 뜨거워지면 집착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생기지 않도록 불조절을 잘
해야 한다. 만일 생길 경우는 절제라는 국자로 집착을 걷어 내면 된다. 이때 실패하면 실연이라는 맛이 나는데 이 맛은 아주 써서 어쩌면 음식을 망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 쓴맛을 없애고 싶을 경우 약간의 용서나 너그러움,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넣어주면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깊은 맛을 원할 경우는 약간의 선행과 관용을 넣어 주면 된다.
가끔 질투, 욕심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방치해 두면 음식이 타게 되므로 그때 그때 제거한다. 또 가끔 권태라는 나쁜 향이 생기는데 도전과 의욕이라는 향료를 넣어서 없앤다.
이쯤에 만약 삶이라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힘들어서 지치게 되어 포기하고 싶어지면
신앙이라는 큰 재료를 넣어주면 새로운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기쁨이라는 맛이 더해 가는데 그 맛이 더해져 잘 어우러지면
진정한 자유라는 맛이 생기게 된다.
그 후에 평안과 감사함이라는 행복한 향이 더해짐으로 음식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이 향은 아주 특별한 것이라서 이웃에게 베풀어 주고 싶게 된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요리는 끝난 셈이다.
마지막으로 진실이라는 양념을 넣어 한소끔 끓인 후 간을 본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소스를 충분히 뿌려주면 이 모든 맛이 더욱 잘 어우러져 정말 맛있고 깊은 맛이 나는 '삶'이라는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 좋은 글에서 -
2012-04-10 13:15:11 | 조양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형제 자매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청소를 하면서, 음식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사랑 가운데 연합하는 이 아름다운 교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리라 믿습니다.
2012-04-10 07:19:59 | 김문수
김상희 자매님, 오랜만에 홈피에서 만나뵙네요~ ^^
창조를 어떻게든 안 믿게 만들면 결국은 성경 전체를 불신하게 되니까 사단도 그것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감사합니다.
2012-04-10 00:30:41 | 김정훈
다시 봐도 벅찬 아픔의 감동이 밀려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가깝게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2012-04-09 21:30:45 | 김상희
진화론으로 교육을 받고 자란 후 어른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계획을 알고 믿었음에도
세뇌가 된 진화론의 개념들까지 격파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것 같아요.
진화론을 믿느냐 창조를 믿느냐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진화론과 타협한 신학이론이라니.. 정말 경악할 일이네요..
마귀는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운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게 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부턴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해야겠어요~~ㅎㅎ
2012-04-09 21:04:59 | 김상희
와~ 형제님, 해수욕장에 계시다니..부럽습니다! 저도 쉴 때는 푹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좋은 시간 보내고 충전하여 오세요~~^^
2012-04-09 18:02:14 |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