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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이 있으면 중간간다. 침묵은 금이다. 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없이 성급하게 나서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지 아예 물러서 있으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말하고 쓰는 일은 듣는 것보다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합니다. 생각이나 분별없이 말하고 쓰는 것은 경계해야 겠지만 말이나 글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치매 예방에도 좋을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깜박 깜박하고, 책을 읽으려해도 집중이 잘 안됩니다. 책을 사놓고는 앞부분 1/5정도 읽고는 정작 중요한 부분을 읽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네요, 장문의 댓글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2012-06-16 09:33:46 | 조양교
공감합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차피 주님나라에선 다 드러날터이니 모자란대로 어설픈대로 표현하는 거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안에서는 새는 바가지가 아무리 꾸민들 밖에서 안샐 수 없잖아요? 꾸밈없이 자기생긴대로나마 교제하고 싶은 거에요. 자기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상대도 열기 어렵잖아요. 푼수면 푼수대로 그냥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만 함께 나누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거에요. 아이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있는그대로 함께 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몇마디 말이라도 댓글 달아주시면 교제가 되어 참 좋을텐데 싶어요.
2012-06-16 08:40:49 | 이수영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살아있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 떠난 이들이 하루만 더!! 하고 외치다 결국 보지 못한 오늘입니다. 저는 내일은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내일은 당겨 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일을 무심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현재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데도 너무나 소홀히 보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일은 하나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며 하나님만이 조종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  말을 못해서 고민인 저에게 작은 뻔뻔함을 주셔서 이렇게 글을 조금씩 쓰시게 하여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릴 때 늘 과묵이로 통하고 어른들께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말을 제 때에 할 줄 몰라서 못한 것이고 욕구불만의 표시였는데 상대방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할 말만 딱 하고 말았던 것이고, 그래서 말이 짧아졌습니다. 지금은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 합니다. 아직도 감정 조절은 잘 안 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각으로 조절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한 때는 너무 감성적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낭만? 누구든 다 가져본 추억이겠지만 특별히 저는 소심한 편이라 매우 감성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잘못된 음료에 의지할 때가 많았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딱....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니 또한 감사 합니다. 사랑은 마치 서로 맞잡고 있는 탄성체 같습니다. 절제된 힘을 주어 서로 당길 때에야 비로소 본래의 기능을 합니다. 서로 무리한 힘을 주다가 한쪽이 놓으면 다른 한 쪽은 아픔을 겪게 되지요. 또, 둘 다 놓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또 무리하게 서로 잡아당기면 상하게 되어 돌이킬 수가 없게 되고 말지요. 그러나 누구든 한 쪽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그것의 생명은 회복될 것입니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형제자매님들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 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끝내고 이제 말씀 안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건강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 때는 나의 주장이 전부 옳다고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만심과 이기심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외면하고 마는 그런 생활을 했었습니다. 이런 생각들도 고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다지요? 정말 다행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살아계신 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들은 죽었습니다. 그리곤 그냥 죽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신을 필요할 때 찾아서 로봇처럼 조종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그런 존재쯤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지요. 그리스로마신화를 어릴 때 읽었는데 이런 것은 개인적으론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하구요. 예수님 알기 전에 저도 그랬습니다.   다 같은 생명을 주셨는데 어떤 이는 마귀의 삶을 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때론 육신이 지쳐서 혼을 괴롭게 할 때도 있지만 우린 성령님이 각각 함께하시니 서로 싸우지 않고도 똑같은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되는 줄 알게 하신이 하나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조형제님글에 대한 댓글> 사람들에게 각각 주어진 분량이 있겠지만 모든 것 연습하면 숙달되어 지겠지요? 전부 다 완벽하게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읽기와 듣기는 중요합니다. 곧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하기와 쓰기는 곧 나와 남(?)이 공유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그 표현의 방법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느낌이 각양각색으로 달라지게 되지요.   격언에 "침묵은 금이고 연설은 은이다." 이런 말 도 있는데 이것은 말할 때 그 만큼 생각을 많이 하여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한 편의 설교를 하기 위해서 수많은 생각과 문헌과 말씀을 참조 하시지요. 특별히 저희 목사님은 여러 가지 일 들을 병행 하시니 더욱 시간을 많이 쓰십니다. 하하, 이건 아부 성 발언이 아닙니다. 성도님들 오해 마시기를...제가 어떤 계기로 약간의 설교를 준비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고충을 압니다. 다른 분들의 설교를 듣고 그대로 읽어 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또 다른 뉘앙스로 발전을 하게 되고 말더군요. 쓰기에 있어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신다는 분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형식이 없이 자유롭게 자기만의 글 들은 일기 또는 낙서를 통해서 많이들 써 보셨겠지만, 또 특별히 직업상, 연구 논문 등 써야 되는 당위성을 가진 것 외에 어떤 지면에 공개? 한다는 것은 나의 겉모습뿐 아니라 속마음도 드러내어야 된다는 불편한 심기? 가 있게 마련이지요. 차라리 "안 쓰면 아무 일도 안 일어 날 것을 내가 무어라고" 내가 안 써도 누군가 쓰겠지? 이런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써버릇 해야 합니다. 조금은 다른 내용이지만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라는 소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종이가 사람보다 오래 참는다’ 내용상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서 한 말 같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쓰는 곳이 종이보다는 전자판 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쓰여진 것이 곧 기록이고 표현이고 역사입니다. 잘은 몰라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말씀과 역사는 전부 쓰여진 것들로 인하여 마련된 혜택이라 할 수 있지요. 쓰기를 주저했다면 우리에겐 역사가 없었을 겁니다.   조형제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쓰기는 거창한 문학 작품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님들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대한 진솔한 사연? 또는 체험 또는 감상 등 이런류의 글들도 바람직하다 하는 것 같으시네요. 모두모두 참여 하여 주세요..  
2012-06-15 22:28:48 | 최현욱
듣기, 말하기, 쓰기가 다 힘이 드는데요. 그 중에서 제 경우는 글쓰기가 무척 힘이 드는 것임을 느낍니다. 나름 은혜 받은 대로 성도에게 덕을 끼쳐보고자 글을 몇 번 썼는데요. 한번 쓸 때마다 몇 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더라고요. 덕을 끼치려다가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써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면 어쩌나하고, 보고 또 보고 검토하게 됩니다. 여기나 킵바이블에서 글 쓰시는 분들의 수고를 잘 이해할 것 같아요. 홈페이지가 활력 있도록, 형제님의 꾸준하신 수고에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2012-06-15 14:53:59 | 이상걸
초등학교 국어과목이 읽기, 말하기, 쓰기 로 나누어져 있었거든요. 요즘은 읽기와 듣기 말하기 쓰기로 듣기가 추가되었어요. 듣기의 중요성을 교육현장에서도 실제로 반영한 것 같아요. 같은 공지를 들어도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으니 듣기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상대가 말하는 것을 자기의 생각으로 걸러서 듣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해도 생기고. 모두 다 중요하기 때문에 초등 교과에 반영되어 있지요. 듣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말하기는 소통이기에 또 중요하고 쓰기역시... 다 잘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2012-06-15 10:29:27 | 이수영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계2:7절)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소리들을 접한다. 수다한 소리들이 존재하고 어떤 것들을 귀를 솔깃하게 하기도 해서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핏대를 올리면서 받아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7번 거푸 반복되고 있다. 두 번 언급하면 강조의 의미로 볼 수 있지만 7번 반복의 의미는 “절대”라는 의미를 붙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특별히 듣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세상의 소리보다, 세상의 이론보다, 세상의 뉴스보다, 첨단 과학의 소식보다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시대에 성령 하나님의 역할이 많이 왜곡되어 전파되고 있지만 성령 하나님은 임의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성경 기록을 드러내시며, 예수님과 예수님 사역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되고, 어떤 내용을 전하려는지 알게 되며, 난이도가 높은 일들을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바벨탑 때 언어가 흩어졌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바벨탑을 쌓는 일을 그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은 더 강력한 권능이 있다. 말씀을 통해서 존재함, 생명과 활력이 생기고 일(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앞선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목마른 사슴과 같이 사모하고 사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말하기”이다. 들은 내용을 100% 전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비통신을 통해서 경험해 보지만 처음에 전달한 내용이 마지막에 가서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변모되는 것을 목격한다. 어떤 내용을 알고 이해한 것과 그것을 말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처음에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 믿으세요 라는 하는 말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른다. 친구들에게 교회 다닌다는 말을 못해서 꿍꿍 앓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데 어떻게 내가 믿는 바를 정리해서 전한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말하기에는 왕도가 없다. 자꾸 반복해서 말을 하는 길 밖에 없다. 어른이 돼서 미국에 간 사람들을 보면 10년이 지나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불편한 점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수할까봐 두려워서 말을 꺼내지 않아서 일 것이다. 기록된 말씀을 소리를 내서 읽기도 하고 흥얼거릴 필요가 있다. 저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예전에 말하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별명이 꿀먹은 벙어리라고 불릴 정도로 한마디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손님이 오시면 그냥 고개만 끄덕하고 내 방으로 솟살같이 들어가곤 했다. 언어는 자주 사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하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말이 어눌했던 것 같고 사도 바울도 언변가는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말은 비록 달변하지는 않더라도 나의 갖고 있는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보다 더더욱 힘든 것이 바로 쓰기이다. 저의 글을 읽는 사람은 느끼셨겠지만 허술한 부분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표현상 문제가 간혹 발생되어서 알맹이를 보아 달라고 호소를 하곤 한다. 최형제님께서 글쓰기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리셨는데 쉬운 것 같으면서 막상 가지고 있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저 같은 경우 개인 블로그에서 글쓰기를 연습(?)하는데 예전에 쓴 글을 보면 왜이리 허접한 글을 썼나하고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할 경우가 많이 있다. 킵 바이블이나 본 교회 사이트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중에 완벽에 가까운 글을 올리시는 분들이 있다. 저는 웹의 공간이 완벽의 글을 쓰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조금 잘못된 글을 쓰더라도 교리상 큰 위험 요소가 없는 이상 너그런 마음으로 포용하고 개인 교제를 통해서 더 나은 표현에 대한 대화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삐뚤어진 저의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부딛침을 두려워 하는 자는 결코 성장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말하기, 쓰기의 영역에 있어서 골고루 균형잡아 나가서 계시록에 기록된 복을 누리는 신자가 되기를 구한다. “이 대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계1:3절)  
2012-06-14 15:37:03 | 조양교
기도해 왔던 김 형제님 가족을 만나는 주일이라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 문을 열었지요. 토요일에 차 대식 형제님과 고 경식 형제님이 청소를 열심히 해 놓으신 티가 났지요... 찬송가가 삐뚤빼뚤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 허 형제가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있는 가운데 김 문수형제님 가정이 일찍 도착하셨습니다. 반듯하게 깍아 놓은 듯 단정한 예성이와 예찬이가 악기들을 들고 뒤따라 나타났지요. 사진에서보다 훨씬 범생이의 느낌과 순수한 어린아이의 느낌의 혼합이랄까- 자매님과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중에 성도들이 속 속 도착하셨고 .. 부목사님 가정이 궁금해서 일찍 오시는 것 같았어요.   요즘은 정 목사님 가정도 일찍 오십니다. 교회가 가까워진 덕분이죠. 목사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주셔서 지속적으로 활기차고 즐겁게 섬기도록 기도해주셔요. 성도들이 교제하실 일이 있으면 일찍 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주일은 목사님을 차지?할 시간이 없으니 말이죠^^   오후 집회가 끝나고 염 형제님과 차 형제님이 이곳저곳 청소기와 밀걸레로 미는 모습과 신 자매님과 딸이 걸레를 들고 창틀을 닦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교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예쁜 마음을 보는 듯 했지요. 성도들이 전국구다보니 남아서 교제하고 싶어도 못하는 데 남아 있는 성도들이 교제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을 돌보는 모습이 생겨나는 것 같아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다음 주엔 청소 자원했는데 금요일에 와서 청소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들도 하면서 섬기려는 열심을 하나 둘 보여 주어 너무 감사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어떤 것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 예뻐 보여서 자랑을 하고 싶어져요. 가정도 가족 구성원이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것처럼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백짓장도 맞들면 가볍고 함께 나누는 가운데 정도 깊어져 더 가까워지고 사정들도 알게 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피로 더 끈끈해져 가지요.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된 성도들은 서로 마음을 터놓고 교제하다보면 금방 가까워지는 것을 경험하잖아요? 주일은 서로 바빠 교제를 깊이 하기 어려운데 따로 시간을 내어 청소도하고 개인교제도 하면서 여러 겹 줄로 견고하게 교회를 세워가는 것 같아 참 뿌듯해요. 실제로 경험하면서 누리는 기쁨을 많이 나누어 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보는 것만 올리지만 주님께선 하나도 빠짐없이 보시면서 기뻐하시겠지요?  
2012-06-10 22:11:38 | 이수영
정말 공감이 됩니다. 구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이 너무 고통에 겨워 견딜 수 없을 땐 주님을 찾지만 풍요로워지면 다른 신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참 신기하다 ' 했지요. 살아보니 그 모습이 나의 모습임을 깨달았어요. 힘들고 어려울 땐 주님께 부르짖어 응답을 받고는 평안해지면 망각하는 나의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625를 겪은 세대들이 사라지지 않은 지금도 친북을 외치는 어리석음이 우리 사회에 있고 '나만 아니면 되지 '라는 생각이 정치, 경제, 교육, 사법 할 것 없이 팽배해 있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세태에 있어요. 어제가 없이는 오늘도 없고 오늘이 없이는 미래도 없는데.. 항상 기억해야 할 것들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도록 주님의 믿음으로 지속적으로 굳건히 바르게 이끌어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 합니다...
2012-06-07 17:54:08 | 이수영
반공 궐기대회를 밥 먹듯이 하였던 기억이 생생하고, 호국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사명으로 인하여 지금 이시간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일텐데 작금의 정치행태와 사회 전반의 비 상식적인 사고는 정말 개탄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나름 분별을 잘 해서 무엇이 옳고 그름 인가를 판단할 줄 알아야 되겠는데.. 중요한건 교육부분에서도 이제 강하게 주장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면 어린아이들이 무엇에 기준을 두고 배워야 할른지, 어제 모 000 에게 현충일이 뭔 날인줄 아느냐 했더니 그냥 노는 날 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앞으로 세상적으로도 죄가 죄인줄 모르게 되는 세대가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2012-06-07 14:11:15 | 최현욱
어제 현충일이라 동작동 국립묘지를 방문하였다. 더운 날씨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들었다. 군 동기 2명이 안장되어 있는데 사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다. 10여명의 동기들이 모여서 추모를 하고 함께 근무했던 동기들의 회고담을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가졌다. 2명의 동기가 없었다면 현충원에 올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순직한 2명의 동기로 인해 뜨거운 날씨이지만 여러 생각들이 숙연한 가운데 스쳐 지나갔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한 친구는 교육계 전반의 문제점과 요즘 중학생들의 행태에 대해 많은 걱정을 토로한다. 학생들도 현충원으로 나들이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눈치가 보여서 그런 일도 쉽지 않다는 분위기이다. 정치색을 띤 많은 사람들이 포진되어 있어 현충원같은 곳을 보내려하면 우경화로 내 몰릴 수 있다는 후문이다. 지나친 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현직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나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수없이 펼쳐져 있는 묘비석들을 바라 보면서 평상시 느낄 수 없었던 애국심이 뭉클하면서 올라온다, 625전쟁이 일어난지 불과 60년이 지나고 있고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는 하나 이렇게 많은 묘비가 있고,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빨리 기억 저편 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순환하면 정신을 차릴까? 그런 안타까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나 언론보도를 보면 너무 쉽게 잊어버린건 아닌가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은 잊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한 것 같다. 주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행하신 일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잊지 말아야 할 장치로 주 예수님이 오시기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번제 헌물을 주셨고, 주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신약성도들에게 침례와 주의 만찬으로 회상장치를 마련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사기를 보면 순환의 글들이 기록되어 있다. 죄를 범하고, 심판받고, 사사를 통해 구원하시고, 평화의 시대가 돌아오고, 이스라엘은 또 다시 죄를 범한다. 사람의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수레바퀴와 같이 영속적인 순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방향을 사람이, 권력을 잡은 자들이 끌고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신다. 당대에 살면서 이 사실을 인지하기는 사실상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이라는 벽이 너무 강력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드리는 가정예배, 오늘은 어머니께서 팥 칼국수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 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와 팥 칼국수로 저녁을 먹었다. 어제는 둘째 딸까지 합류해서 온 가족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아내는 준비해온 원고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는 빨리 안끝내나 하면서 눈총을 준다. 끝나고 나면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눈총을 느끼면 가뜩이나 버벅대면서 진행을 하는데, 말이 꼬여서 결국 말 실수를 한다. 그래도 가족인지라 그냥 웃고 넘어간다. 교회 식구들을 인도하시는 목사님의 고충을 피부로 이해하는 순간이다. 가족이 함께 모여있는 시간이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들까지 이제는 감사함을 갖는 것 같다. 우리 사랑침례교회의 각 가정들이 믿음으로 든든해 질 때 교회도 더욱 든든해지리라 생각된다. 가장의 책무는 가정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아담과 이브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아담의 다음 세대인 가인에게 하나를 더 추가하셨는데 물론 아벨에게도 해당이 되겠지만 죄를 다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과 환경을 잘 다스리고, 주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죄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2012-06-07 13:39:11 | 조양교
리더로서의 사실적인 고민을 써주셨네요^^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리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번에 교회 이전에서도, 머리 되신 예수님을 기준으로 해서, 그 밑에 허락하신 리더가 있었기에 잘 진행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무임승차자가 된 것 같아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2012-06-04 18:38:51 | 이상걸
각 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서 일을 해나가면 문제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통해 노하우가 생기게 되고요. 내 집일도 뒤로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한 성도들 덕분에 여러 성도들이 함께 누리게 되어 감사드려요. 이젠 주님께 시간을 더 드려야 겠지요.
2012-06-04 17:37:01 | 이수영
토요일에 청소를 하러 모이시면 여러가지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네요. 피어스 선교사님께서 단골 멤버가 되실 듯^^ 주님을 섬기기위해 모인 소규모의 모임이 교제를 통해서 더욱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서로간의 사정을 알 수 있고 마음을 나누는 기회가 되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주일 아침은 마음도 바쁘고 번거로운 점도 있거든요. 소규모의 섬기는 모임들이 많이 생길수록 교회가 더 사랑으로 넘쳐나겠지요?
2012-06-04 17:27:54 | 이수영
일을 하려다 보면 마찰과 논쟁이 생깁니다. 일을 안하면 마찰빚을 일도 없지요, 교회 인테리어는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됩니다. 진행되는 과정이 너무 본이 되었읍니다. 지나치게 주장하는 사람도 없고, 충분히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완벽이란 것은 없죠, 예배하고 섬기는 공간으로 잘 다듬어졋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과 더불어 수고 하신 한분 한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히 보상해 주실줄 믿습니다.
2012-06-04 14:23:33 | 조양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