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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갔읍니다. 60년대 후반기였으므로 모든 것이 낙후된 환경이었구요, 도심에서 살다가 친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하면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버선 발로 뛰어 나오실 정도로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앞서가는 농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이 호롱불을 사용하던 시절에 전기를 가장 먼저 끌어서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정에 사기로 된 애자를 감고 전기줄이 쳐있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젖소를 4-5마리정도 키우셨고, 과수원을 갖고 계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과수원을 날라 가듯이 뛰어갑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참외와 수박을 원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고모와 삼촌이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었기에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과수원은 그야말로 땡볕이었습니다. 우마차길 옆으로는 아카시야 덤불이 우거져 있었지만 그늘로 쓰기에는 적당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수원 한 복판에는 원두막이 있어서 그늘도 만들어 주고, 갑자기 소나기가 올 때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2층으로 된 원두막은 사방으로 뚫려 있고 그늘 창이 있어서 그야말로 놀이터로는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 원두막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원두막위에서 놀고 있는데 고모가 식칼을 가지고 마루 틈 사이로 찔러대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나는 무서워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밑에서 올라오는 칼을 피하려고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고모들은 나의 행동이 재미있었는지 계속해서 칼을 찔러 대었습니다. 칼이 위에서 올라 올 때 마다 펄적 펄적 뛰어 다녔고, 급기야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는데 그 칼에 발을 찔리고 만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목에 당시 칼에 찔린 흉터가 남아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마루 틈으로 칼을 찌른다고 한들 그 틈을 피해서 서있기만 하면 아무 염려가 없었을 텐데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칼에 찔리고 만 것이죠, 고모들도 칼에 찔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장난삼아 한 것일 뿐인데 장손이 칼에 찔렸으니 크게 당황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 찔린 것만 기억이 날 뿐 다음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청 울었던 것 같고 이일로 고모들은 할아버지에게 혼 줄이 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기억은 흐릿해도 당시 초등학교 1-2학년 때쯤 일어난 이 사건은 지금까지 상처와 함께 두고 두고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도 믿음의 자리에서 벗어 나도록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는데(벧전5:8) 사실 믿음의 자리에 굳게 서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널빤지의 틈을 피해서 널빤지 위에만 그냥 있으면 되는 것이었죠,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마귀는 믿는 자들을 해할 권세가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험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면 조급한 마음에 성급한 결정을 하거나 믿음의 자리에 이탈된 상태에서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7-8절)  장마의 소식도 있지만 더운 여름 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심겨진 생명의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씀과 가까이 하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시는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글에서 발췌한 내용을 겸하여 올립니다.     사람들은 저 마다 마음속에 벽이 있다  직언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양면의 칼날과도 같다. 그래서 직언은 홀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새로운 길을 여는 개척자로서의 당연한 착각하기 쉬운데 그래서는 안된다. 이는 직언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다. 사람을 대하면서 일일이 지적하고 성격상 결점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은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에게 부담감만 안겨주는 것이다. 당신은 직언을 하면서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 마다 마음속에 벽이 있다. 그 벽안에 자존심을 숨기고 있는데 당신이 직언을 통해 그것을 깨뜨리려 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 하겠는가? 말은 아낄 수 있을 때 최대한 아껴야 한다. 반드시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원만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라 이것도 기술이다. 진정 변화를 시도하고 싶거든 변화로 인해 잠시 일어나는 문제들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자신이 있을 때 그렇게 하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좋은글 중에서-
2012-07-12 11:08:38 | 조양교
둘러보면 혜택받는 것도 많고 누리는 것도 많은데 정작 자족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보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아야 하는데 너무 위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012-07-12 11:04:12 | 조양교
우연히 장애인 사업장 얘기를 보게 되었는데 한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어요. 항상 즐겁게 웃으면서 일을 하기에 기자가 물었지요.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아니요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요 이 일이 좋아요.” 하면서 또 환하게 웃는거에요.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매일 같이 똑같이 하는 일에 대해서 나는 그 아가씨처럼 즐겁게 일을 했는지? 반성하게 되었어요. 그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주는 돈을 포기하고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원했어요. 일하고 싶다고...... 국가에서 주는 돈 편히 앉아서 받을 수 있지만 내 힘으로 일하고 보수를 받고 나름대로 꿈을 위해 살 수 있어서 좋다고...... 너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반대로 일하지 않고 살 수 없나를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장애가 있지만 자기 힘으로 일하고 작지만 나름대로의 보람을 누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어요.   후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직장생활 중인 싱글입니다. “언니는 너무 좋겠다.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매일 출근해야 하지 않아서.” 공교롭게도 아침에 방송에서 직장을 구하는 절절한 편지를 들었거든요. 어떤 사람은 만원버스에 시달리면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도 그 가운데 끼기를 소원하고 너무 너무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고맙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가끔은 사람들이 눈이 앞에만 있어서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님 안에 들어와 오랜 시간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고통, 어려움, 고난, 오래 기다림, 오래 참음, 오해, 등등-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는 말씀을 인용하지 않아도 고난 중에는 전능자이신 주님께 엎드릴 수밖에 없고 사람의 매를 사용해서 주님만이 신실하시고 유일한 피난처이신 것을 알게 하시고 또한 주님께서 시간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것 같아요.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요. 당시에는 깜깜한 터널 속에서 ‘ 끝이 있긴 한가?’ 싶기도 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면 그 가운데 주님께서 보호하시고 눈물로 동행하셨던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나은 환경과 조금 더 풍족한 생활이 목표가 되면 노예가 되어버리고 기쁨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단순하게 몸만 낮추어도 서 있을 땐 전혀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지요. 주님께서도 바울도 겸손을 자주 말하고 족한 줄 아는 마음에 대해서도 언급했지요. 지금 이 시대에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 선택하며 살아야겠어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알면서 친절을 베풀고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2012-07-12 01:23:23 | 이수영
지난 주는 대청소를 해 주셨네요, 그래서인지 한결 깨끗해 보였습니다. 먼거리에도 궂은 일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점점 불어나고, 또 참여를 통해 애착심을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12-07-09 15:08:14 | 조양교
믿는 자들을 빛이요, 소금이라 하셨는데 정작 우리는 빛과 소금과 같이 태워짐이 없이, 녹아짐이 없이 빛과 소금이 되려고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보다는 상대방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글을 올려 주셨네요, ^^ 칼럼글에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2012-07-09 14:59:30 | 조양교
친구를 만나다   잊고 있었던 친구. 며칠 전 나는 삶이 곤고한 친구를 만났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역시나 그 친구는 소주도 1병을 먹었다. 내가 보기에 전혀 변함이 없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간단히 요즘의 근황을 물어보니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 먼저 다니던 직장이 여의치 않아서 수개월을 쉬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는 있었는데 다행이도 어딘가에 취직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녹녹치 않은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나이에는 일자리가 있어서 내가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 받은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전의 생활이 얼마나 화려했고 얼마나 좋았었던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현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할 수가 있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잠깐 잊고 있는 사이. 그 친구가 식사가 끝나갈 즈음에 조용히 입을 연다. 아까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나 얼마 전부터 성당을 다니고 있다.’라고 한다. 순간 내가 멍해진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 친구는 그동안 수 없이 나와 시간을 같이 보냈고 내가 지금 교회에 다니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조금은 실망이다. 배신감도 들었다. 내가 이야기 한다. 친구야! 믿음생활을 하고자 하는 것에는 내가 참 잘했다고 말해 줄 수는 있으나 선택은 매우 잘못 한 것 같다. 성당에서 무엇을 가르쳐 주던? 성경은 읽어 보았냐? 등등 을 물어 보았으나 그저 성당을 다니니 마음이 편해지더란다. 기독교는 뭔가 세뇌를 당할 것 같아서 싫다고 한다. 친구는 종교인이 되었다. 내가 말했다. 친구야 너는 그냥 종교인이 된 것이야. 그리고 하나님이 혹 너에게 지혜를 주신다면 네가 가서 곧 배우게 될 천주교의 교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위에 교만히 올려놓은 거푸집인데 그것이 집인 줄 알고 거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터인데 그 시간이 너무 안타까워’ 라고 했다. 친구가 이야기 한다. 너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배웠냐고 물어본다.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한다. 종교에는 자유가 있지 않느냐? 고도 한다. 그래, 분명 종교에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품속인 것을 수많은 종교인들이 그 자유라는 잘못된 개념으로 자신을 가두려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구나. 세상 사람들은 실생활과 종교생활은 분리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열심히 하던 대로 살다가 주일에 한번 아니면 어쩌다 한 번 교회, 성당, 절, 사원 뭐 이런 곳에 가서 나름 어떤 의식을 행하고 오면 그 것이 곳 믿음 생활인 줄로 아는 것 같다. 천주교(天主敎)라고 하고 믿는 것이 하느님이라던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름부터가 문제가 있구먼.. 하늘의 주인?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주인이 하늘에 있다? 그래서 땅의 생활은 별개고 의식은 따로 행하는 것인가? 아뭏튼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르니 혹여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어느 곳에든 계셔서 나와 함께도 계시지. 그래서 나는 늘 두렵기도 하고 또 행복하기도 해. 너는 그걸 아직은 모르리... 친구 눈에 비쳤던 내 모습. 친구가 나에게 말한다. 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고, (사실 난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잘 아는 것도 아닌데도), 혹시 그 길(목회)을 염두에 두고 쭉 갈려고 그러느냐고 한다. 그리고 친구는 교회에 다니면서 공부를 - 무엇을 공부 하는 지는 그들이 모르지만 - 열심히 한다는 것은 곧 목사나 전도사나 어떤 목적이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 좋아하던 것들을 다 정리? 하고 교회에 다니는 내 모습이 그에겐 내가 목회에 뜻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보여 졌던 것이다. 하긴 처음 교회를 다니면서 나도 잘 모를 때에 기성교회들의 문제에 대하여 그들과 공론할 때가 있었으니 그 친구가 그렇게 생각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소위 교회에 미친 사람처럼 보여 졌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알면 미쳐야 하지만... 친구 눈에 비쳤던 다른 친구들의 모습인 기독교인. 그 친구가 말했다. 자기의 다른 친구들도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할 짓 못할 짓 다하면서도 교회에 대한 일은 또 극성으로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올바른 이야기를 한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독교인들은 마치 예수님과 결혼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말한 취지는 기독교인들의 열심-가정을 내팽개치고 교회에만 적극적인 것들-을 비유한 것처럼 보여 지는데, 참으로 그 말은 옳도다! 나도 한 동안은 그런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나와 무엇이 다른가 하고 생각해본 때도 있었다. 대한민국엔 천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있다는데 아직도 나에게 참기독교인 이라고 하면서 전도가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올바른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그리 많은 것 같지가 않다. 너무 비약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기독교인이라 하면 신앙이라는 틀을 메고 가는 종교인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하는 부류가 대다수 이고 똑 같은 그렇고 그런 한통속의 사람들로 여기는 듯하다. 내가 생각해본 나의 잘못. 사람들의 일상이 모두 다르듯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동기와 시간과 장소가 다 다르다. 또 예수님을 알고 나서 소개하는 방법도 전부 다르다. 나도 처음엔 교회를 다니면 만사형통이 되는 줄로 알았다. 최소한 목사님의 말씀만 들으면 다 되는 줄로 알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다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은 깨닫고 있다. 내가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잘 준비 되어 있다면 말이다. 친구들을 만날 때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돌이켜보았다. 나도 교회를 다니면서 그동안 취했던 것들 즐겼던 것들을 나름 정리 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보인 내 모습은 교회를 나가려면 먼저 하던 짓? 을 하지 말아야 되는구나 하는 인식을 먼저 심어 줬었나 보다. 먼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가운데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되는 것인데 말이다. 내가 약속의 이유를 댈 때 나는 성경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안 맞는다. 라고 했었는데 물론 나는 필요한 조치였지만 친구들은 나는 별종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야 라는 인식을 또한 심어 줬는가 보다. 이 또한 하나님을 알고 나면 더욱 가깝게 다가서려면 더욱 열심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는데 말이다. 좋은 모양이라도 잘못 보일수가 있구나...   친구는 하던 짓을 계속하기를 바랬고,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지만. 나는 내게 기회가 많을 줄로 생각하고. 아주 잠시 기다렸는데, 친구는 위로 받기를 원했고, 나는 시간이 기다려줄 줄로 알았는데, 친구에게 나를 보여 주면 친구도 욕심으로 도전을 할 줄 알았는데, 나는 결국 헛것, 내 겉모습만 보이고 말았습니다. 내가 무어라고. 열심히 올바르게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을 나와 같은 별종으로만 생각케 했으니 오늘 또한 죄를 지었습니다. 친구는 내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다른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어렵지만 바른길로 들어서기를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꼭 말해 주어야 되겠습니다.    
2012-07-09 11:21:07 | 최현욱
어제 오후 시간에 시험이 아닌 것 같은 시험을 보았죠? 갑자기 심장이 달아오르는 느낌. 마치 뭔가에 찔린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시험을 치루는 가운데 살고 있지만 점수가 주어지는 시험엔 전부 만점을 맞지는 못하더라도 열심을 내서 준비를 하는데 어제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성경을 보아 왔지만 문제처럼 주어지니 빈칸 채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주어진 문제에만 열심인 것으로 습관화 되어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말았지요. 참으로 주님께 송구한 시간이었습니다..
2012-07-09 11:04:01 | 최현욱
나날이 달라지는 예배당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우리가 성전이기에 성전들이 모여 또 다른 성전이 되는 주일아침은 주께서 주시는 말씀과 어떤 즐거운 일들이 생길지가 기대가 돼요. 예배당 문을 열었을 때 너무도 말끔한 상태라 청소봉사를 한 성도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는 듯 했어요. 김 문수 목사님과 정 명도 형제님, 권금성 형제님, 장봉훈 형제님과 이수봉 형제님은 아이들과 함께 오셔서 325개나 되는 의자들을 모두 뒤로 밀고 아주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셨네요. 너무 깨끗하고 말끔한 이유가 있었어요. 주님께서 수고하신 손길들에 좋은 소식이 곧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도들이 한 분 한 분 봉사의 손길을 내미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충만 형제님은 커피 자판기 청소를 맡겠다고 하고 오늘 청소를 깨끗하게 했지요. 고경란 자매님은 어르신들 식탁 봉사를 맡기로 하고요. 만찬 빵 만들 때 이 재식 형제님이 밀가루 반죽을 미셨다고 해요. 김선희 자매님과 고경식 형제는 유리문을 닦아 주었고요. 모두 함께 더불어 상급을 받자고요. 주님께서 ‘행한대로 받게된다’고 하신 말씀과 훗날 주님 앞에서 회계보고 할 때 형제를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대했는지? 서로 먼저 존중했는지? 서로를 세워주고 성도를 섬기고 말씀을 나누는 성도들을 배나 존경했는지? 물어보실 때 대답할 것이 있어야겠지요.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눈앞에 기록되어 만인 앞에서 내가 한 말과 행동이 하나도 빠짐없이 파노라마처럼 마치 동영상으로 녹화된 것처럼 드러나겠지요? 정말 두렵습니다!!! 사람의 눈보다는 하나님의 눈을 더 두려워해야겠지요.   오후에 김 목사님의 <성경론> 특강은 너무 재미있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었어요. 다음 주도 기대가 되고요. 준비하시느라 힘드셨을텐데 토요일에 청소도 하시고 청년모임도 갖고 부목사로서 활약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청년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서로 연락해서 청년모임이 점점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두고 모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바른 말씀에 든든히 서고 훈련을 잘 받아 전국으로 퍼져 나갈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참, 토요일에 5시경에 교회 청소하러 오셨던 부부가 계셨다는데 누구신지 궁금합니다. 청소 지원서에-11층에 붙어 있어요- 미리 기록해 주시면 인원을 적당하게 안배할 수 있거든요. 교회까지 오셨다가 가셨다는 말을 듣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누구신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꼭 뵙고 싶네요^^  
2012-07-08 22:23:45 | 이수영
시험가운데 있을 때는 모르지만 시험을 통과한 후에 돌아보면 주님의 도우심으로 한단계를 넘은 것을 알게 되더군요. 시험이 없으면 나태해 지는 것은 확실해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다 기쁨으로 여기라. 너희 믿음의 단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야1:2,3.
2012-07-08 22:17:42 | 이수영
이번 주에 시험 하나치렀습니다. 사실 이글의 제목을 보고 마음을 추스리고 읽으려고 미뤄놨는데 읽고 보니 제가 시험을 치르고 통과 한 것을 알았습니다.(학점이나 자격증을 따는 시험은 아니고요..^^) 매번 어렵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신 것을 시험을 치른 후 알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가 한 성령안에 있으니 한 지체가 아파도 함께 아프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중에 있는 우리 지체들 ....쓰러지지 말고 다시 일어납시다...
2012-07-07 18:01:57 | 오혜미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경이로움을 다시금 새기게 되는 좋은 글입니다. 연어의 두 가지 삶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사례인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과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012-07-06 18:07:39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