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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가지시고 긍휼이 많으신 전능자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짧은 80인생이라도) 이리저리 흔들리다 오게 하실 분이 아니라는걸 우리는 말씀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주신 정확한 말씀으로 살기도 바쁜데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다가게 된다는 건 겸손하지 못한.. 사치라는 생각이 저의 소견입니다.
2023-08-23 16:04:20 | 목영주
실제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기도 속에서 만날 수 있어요. 인간은 타고난 거짓말장이인지라 생활 속에서, 생각 속에서, 행동 속에서 또는 말로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기도 중에 만나는 주님은  내 속을 지으신 분이고  모든 것을 아시니   투정도 했다가  일러바치기도 하고 고백도  하게 돼요. 모든것을 아시는 분이 아버지이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2023-08-23 14:57:29 | 이수영
두 부류의 신학자와 우리의 믿음   어떤 것이든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성경 또한 마찬가지다. 대충 알거나 모르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간다. 자! 다음 두 부류의 신학자가 있다. 어느 학자의 말을 믿어야 할까?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대한기독교서회 출판, 민경식 박사 지음, 민경식은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신약성서 본문비평과 신약성서 사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음)에서 민경식 박사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새로운 사본들의 지속적인 발견과 본문비평이라는 학문의 발전으로 점점 고대의 훌륭한 본문을 회복하는 길이 열리고 있다. 성경의 본문이 변한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성서의 본문이 변화하기에 우리는 성서를 우상화하지 않는다. 성서를 하나님으로 삼지 않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성서 자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성서를 통해 하나님의 모습이 계시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서의 본문이 변하기에 성서가 살아 움직여 우리에게 늘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온다.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 (도서출판 흰돌, 호주 목회자 키이쓰 파이퍼의 책을 이황로 박사(미국 West Coast Baptist College 교수)가 번역하고, 이기석 전 뉴저지 새순교회 목사와 이광복 광신대 교수이자 흰돌선교센터 원장이 감수했으며, 전 총신대 및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가 추천한 책)에서 정성구 박사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저는 이기석 목사님으로부터 이 책을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읽었습니다. 20여 년 전 저는 미국 뉴저지 주에서 목회하시던 이 목사님 초청을 받아 부흥 집회를 인도할 때, 이 목사님께서는 전수사본(Received manuscripts) 즉 공인(共認)본문(Textus Receptus)에서 번역된 영어 성경만이 참된 성경이라고 힘주어 말했고 저도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사실 이 공인본문(Textus Receptus)에서 <킹제임스 성경>, <틴데일 성경>, <루터의 독일어 신약 성경>, 칼빈이 주도한 <올리베땅 프랑스어 신약 성경>, 또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이요, 청교도들의 성경이며 미국 건국의 성경이었던 <제네바 성경>이 번역됐습니다.   저는 평생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과 칼빈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과 박물관에는 사본학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자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사본, 어느 본문으로, 어떤 신학적 입장에서 번역했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제네바 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은 그 당시 종교개혁의 정신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정신 위에 그리스어 본문인 공인본문(TR)을 바탕으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영역 성경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 뉴에이지, 로마 카톨릭 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적인 인본주의 사상으로 성경 번역에 심대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학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이들이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본문을 재구성한 것을 철저히 믿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이단이며 가장 잘못된 사본을 사용하고,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안목으로 번역해 버린 그들은 도리어 기독교 신앙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자들입니다.   이 책은 매우 학문적이며 사본학의 근원을 파헤치는 역작이라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이 책이 신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목회자와 모든 신학생들에게 두루 읽혀 성경 교육과 설교에 크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성경이 수시로 바뀌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까? 성경은 어느 사본, 어느 본문으로, 어떤 신학적 입장에서 번역했는가가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까? 쓰레기는 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 성경과 관련하여 누구의 말을 듣고 믿는가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면 잘못된 성경관을 갖게 되고 잘못된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다.    우리 교회에 멤버라고 하면 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만 사용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성도라면 내 손에 들린 성경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가? 지금부터 3,500년 전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록한 모든 단어가 정말 지금 이 시간 내 손에 그대로 있는가? 하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이 안에 기록된 하나님만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도 이 안에 기록된 예수님만 믿어야 하고, 구원도 이 안에 기록된 방법으로만 구원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우리가 가고자하는 천국도 이 안에 기록된 천국만 믿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하는 단어(Text)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내가 먼저 살펴보고 내가 먼저 확신을 가져야 하고, 이 후에, 누가 “당신은 왜 킹제임스 성경만을 쓰냐? 이단 아니냐?” 고 물으면 “나는 이래서 이 성경만을 사용합니다.” 라고 알려줘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놓여 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나 악한 사람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 그러나 너는 네가 배워서 확신하게 된 것들 안에 거하라.'(디모데후서 3장 12절-14절)
2023-08-23 11:56:58 | 이규환
먼저 성경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 감사드려요~ 덕질 예는 아이들이 공감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연신비속에서, 생명과학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감동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보라,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예레미야서 32장 27절- 요즘 위로받는 말씀입니다~^^ 
2023-08-23 10:25:57 | 목영주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을 읽다보니, 예전에 '친밀함'에 대해서 읽은 내용이 기억 납니다. 친밀함의 최고의 단계는  상대방의 꿈과 강점과 약점을 알고, 상대방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는 단계.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는만큼 친밀의 단계가 상승하지 않을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3-08-23 07:50:08 | 이규환
친밀하다 함은 가깝다는 말일 텐데 그것은 공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깝다고 느낄 때 쓸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내게 친밀한 친구를 생각해 보면 같은 경험을 많이 공유하고 늘 자주 만나고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한다. 만약 기본적으로 이런 관계가 아니라면 단지 아는 사이 혹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친구일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늘 소원한다. 나와 주님만이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관계를 바란다. 단지 아는 정도가 아닌. 그러기에 친밀한 친구와 자주 만나듯 매일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떼어놓는 일은 필수.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친밀한 만남을 위해 대화가 필요한데 구약의 아브라힘이나 모세나 이사야처럼, 신약의 사도들이나 바울처럼 직접 주님을 대면하여 이야기하고픈 강한 열망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때에 특별한 방법으로 만나주시던 하나님의 특별한 방식이었다.그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시대적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느꼈을 특별한 경험의 특별한 감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 주님의 실체는 말씀으로 다가오신다.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증해 주시는 그분의 인격이고 능력 그 자체이신 것이다. 그분과의 친밀함을 구하는 자는 먼저 성경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 그분을 말씀을 통해 받아들인 자들이라면 그분의 말씀들을 읽을 때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말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때 느낌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느낌은 따라오는 것이기에. 주님의 말씀을 펴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느낌은 절박하게도 덤덤하게도 올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과 얼마나 정신적으로 가까운가, 다시 말하면 그분의 말씀에 얼마만큼의 신뢰를 갖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이는 말한다. 예전에 방언과 함께 기도할 때 느끼는 그 친밀감 없이, 방언 없이 기도하려니 너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기도하기 힘들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덕질'하는 이를 보게 되면 그들의 열정은 정말 하늘을 찌른다. 어떤 스타에 대한 그들의 사랑의 감정은 대단해서 자기 부모의 생일은 잊어도 그 스타의 생일까지 챙기며 자기 돈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그에게 쏟아붓는다. 참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불가할 정도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당사자의 감정은 진지하다 못해 행복하다고 한다. 자기가 직접 그 스타를 만나 식사를 같이 한다거나 이야기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그 스타와 직접적인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런 일방적인 '느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주님과 교제할 때 자칫 이런 '일방적인 느낌'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왜 그토록 유명한 영성을 자랑하는 영성의 대가라 하는 사람들이, 예컨대 로렌스 형제나 마더 테레사나 머튼 같은 사람들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추구하고 또 일부 유익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기도 했지만 결국 명백한 영적 오류의 길로 갔던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고 싶다. 느낌은 따라오는 것일 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결코 아니라고.
2023-08-23 06:48:50 | 박혜영
예수님을 top으로 두지 않는 사회생활 특히 대인관계는 의미없고 힘들구나--힘든여정을 지나온 저의 큰딸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계시고 주인이신 예수님께 몽땅 맡기며 그분의 시간때까지 묵묵히 열심히 살아내는 것..끝이 보이지않아 억울한 것까지도 예수님께만 징징대는 그런 삶만이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아침부터 더운 오늘입니다. 힘내세요! 사랑침례 형제님 자매님~~
2023-08-18 08:27:45 | 목영주
여보! 나, 인생 헛 살아온 것 같아!   얼마 전, ‘Begin with the End in Mind’라는 제목으로 인생의 끝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자고 글을 올렸는데, 같은 맥락에서 아래 시를 공유하고자 한다.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기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먼 길을 나서며 처자를 맡길 수 있는 사람, 온 세상 다 나를 버려도 믿을 수 있는 사람, 침몰하는 배에서 구명대를 건네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라 할 수 있는 사람,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음을 맞게 될 때에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고 일러줄 사람, 죽음의 문턱에서 ‘저 하나 있으니’ 하며 안심할 수 있는 사람, 온 세상이 다 ‘예’라 하더라도 당당하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사람. 이 시는 이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를 묻고 있다.   그 사람은 친구가 아닐까. 죽을 때 자신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적인 인생이라 그랬던가. 목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 즉 나를 위해 대신 죽어줄 사람이다. 시 속에서 말하는 ‘그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이 시를 아내에게 보여주며,   나 : 여보, 나 인생 헛 살아온 것 같아! 아내 : ........ 나 : 나 죽으면 당신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아내 : ........ 나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 대신 죽어줄 친구가 없다니까. 아내 : 그래도 당신은 예수님이 있잖아요!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마태복음 28장 20절)
2023-08-17 17:39:47 | 이규환
~그녀의 손을 잡고 감사기도를 한 뒤 안아주었다--뭉클! 그날 자매님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뿌듯 기쁘셨을까 싶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전하는게 당연한건데 기회가 없는건지 제가 스스로 막고 있는게 있는건지..모르겠어요. 감동받고 갑니다 자매님~~
2023-08-12 20:34:15 | 목영주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 어린이집에 보조교사 2명이 새로 들어오셨다. 면접을 볼 때 물어보니 한 명은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는 교사였고, 한 명은 예수님을 모르는 교사였다.   첫 근무가 있던 날... 나는 그들을 십 분 예배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십 분 예배란 작년 12월 초부터 아이들 낮잠자는 시간에 교사들이 교대로  말씀, 찬양, 기도를 준비해 와서 함께 모이고 있는데 십 분 안에 끝나서 그 이름을 '십 분 예배'라 부르고 있다. 드디어 아이들이 낮잠을 자고 교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새로 온 보조교사들에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임 선생님이 서 있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 거기 선생님 두 분도 앉으세요~ 우리 예배보는데 같이 예배봐요."   "!!!!!!!"   그러자 보조교사 둘이 얼른 자리에 앉았고 아무렇지 않게 십 분 예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자연스럽게 그들은 십 분 예배에 참여하였다. 그 때 나는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다.    "고린도전서 7:14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었고 믿지 않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었나니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 자녀들이 부정하였을 것이나 이제 그들이 거룩하니라."   나는 그들에게 성경 책을 선물해 줬다.  그런데 그들이 성경은 어렵다고 해서 교회 도서관에 있는 <두란노 성경 이야기>와 <어린이 성경 이야기>를 빌려다 주면서 다 읽고 나면 치킨 쿠폰을 쏘겠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며칠 전 한 교사가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치킨 쿠폰을 보내줬더니 그녀의 딸이 감사하다고 말하는 영상을 보내줘서 웃은 적이 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K교사도 거의 다 읽어간다고 하니 기다려진다.   언젠가 나는 K교사랑 단 둘이 얘기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에 십 분 예배에 대하여 물어본 적이 있었다. K교사는 참 좋다고 하면서 자신의 딸이 아팠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고 참 좋았다며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내 마음이 너무 기뻐서 그녀의 손을 잡고 감사 기도를 한 뒤 안아주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였다.   "고린도 전서 3장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러므로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만 중요하니라."   지금은 낮잠 시간이라도 교실을 비워둘 수 없어서 두 팀으로 나눠서 모이고 있다.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예배라고 하기에는 공간이나 시간이나 인원이나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니 우리 모인 그곳에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을 믿는다.   "마태복음 18장 19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두 사람이 자기들이 구할 어떤 것에 대하여 땅에서 한마음이 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해 그것을 행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나도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하시니라."
2023-08-12 11:29:54 | 이정자
포모(FOMO)와 조모(JOMO)   핸드폰을 분실하고 어쩔 줄 몰라했던 당혹스러움. 회식에서 나만 빠진 경험, 부서간 회의에서 우리 부서만 쏙 빠진 경험 등등. 또 내가 보유하지 않은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거나 "이 방송 끝나면 이 조건으론 사지 못할 것"이라는 홈쇼핑을 보며 뭔가 불안해지는 것을 '포모 감정'이라고 한다.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는 무엇을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해보지 못한 가치 있는 경험을 다른 사람이 하고 있거나 그렇다고 보이는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을 뜻한다.   FOMO는 ‘매진 임박’, ‘한정 수량’처럼 제품의 공급량을 줄여 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드는 마케팅 기법의 하나였다. 다양한 SNS 채널에서의 소통이나, 주식시장이나, 암호화폐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묻지마 투자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포모증후군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은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 증상을 의미한다. 포모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심각한 두려움이나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 제외되고 있는 고립에 대한 공포감이 높으며 ‘소외 불안 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클럽하우스 앱은 초대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어 초대권을 구하기 위해 중고거래시장에서까지 초대권 판매가 성행하기도 했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모습에서 클럽하우스가 ‘가상의 엘리트주의’를 자극하고 포모증후군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치솟고 있는 상황을 ‘포모시장’이라고 정의했다. ‘남들도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손해인 것 같다’는 생각에 모두가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까닭에 주가가 오른다는 설명이다. 「노모포비아」의 작가 만드레드 슈피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50%가 넘는 성인이 포모증후군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10대의 24.1%가 이러한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포모증후군의 대표적인 모습은 바로 스마트폰의 사용 행태다. 잠자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업무 중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챙겨보고, 운전 중에도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면 포모증후군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바로 스마트폰 중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포모증후군이다.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진동이 울린 것처럼 느끼는 팬텀 바이브레이션(Phantom Vibration)이나 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 또는 공포를 느끼는 노모포비아(Nomophobia)가 대표적인 증상이다.   휴대전화에 수십에서 백여 개의 단체 대화방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대화방에서 올리는 메시지에 신경을 쓰는 일상은 비단 특정한 몇몇 사례는 아니다. 이렇게 우리는 적극적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하지만 다른 이들의 모습에 상대적으로 열등감이나 박탈감을 느끼거나 이로 인해 인간관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인한 포모증후군이 확대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디지털 디톡스’도 생겨났다. 몸의 독소를 뺀다는 ‘디톡스’의 의미에 ‘디지털’을 결합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줄인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에 대한 과몰입과 의존 내성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어하는 앱이 등장하고 눈을 보호하는 특수안경도 등장했다. 여행이나 숙박 시작 전에 스마트폰을 맡기면 할인이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모두 스마트폰에 대한 과몰입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이다. 바로 포모에서 조모(JOMO)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조모(JOMO)는 ‘Joy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놓치는 것의 즐거움’으로 해석된다. 소외되는 것을 오히려 즐긴다는 의미인데 이미 많은 이들이 경험해 본 즐거움이다. 혼자 있고 싶은 주말 스마트폰을 꺼두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누려보았거나 혼자 떠난 여행의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조모는 ‘혼자’의 즐거움과 ‘나를 위한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자발적 소외’라 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정보와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조모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앱 ‘포레스트’의 이용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SNS 한 달 끊기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에서 불필요한 앱을 하나둘 지우기 시작했다. 나는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을 20개에서 5개로 확 줄였다. 나름 구조조정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하니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확 늘어났다.   포모(FOMO)와 조모(JOMO)는 개인의 성향의 차이일 수 있다. 사람마다 힐링의 방법이 다르듯 많은 관계 속에서 힐링을 찾는 이들이 있을 수 있고,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다. 무리에 휩쓸려 한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찾아 많은 관계로부터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즘에 휴가를 가는 것도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이번에 교회에서 나눠 준 11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 혼자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2023-08-02 16:35:35 | 이규환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 기뻐하라고 하신 것은 명령문이에요. 내면의 기쁨은 외면에도 드러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세상은 기뻐할 일이 있어야 기뻐하지만 세상일이기에 생명이 짧아요. 바이블 빌리버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 맘속에 계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화평, 기쁨이 있어요.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기에 여러가지 세상 일들 가운데 낙심하기도 하고 세상 끝날까지  반복되겠지요. 우리의 몸 값이 예수님 몸 값임을 주지 시켜주셔서 감사해요.
2023-07-26 23:55:16 | 이수영
시련을 묵묵히 견뎌온 지난날을 회상, 본인성품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질 때도 주변사람보다 본인이 더 잘 알게된 적도 있어요~^^ 우리의 몸값은 예수님의 몸값이다. '나'라는 악기는 만든 분에게 맡겨야 한다--감동이에요!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비교 무기력에 빠지기 쉬운 사회분위기에서  자기 할일을 감사하며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다고 저의 아이들에게 말한적이 있어요. 날씨 하나에도 버거운 하루입니다. 힘내세요! 사랑침례교회 자매님 형제님~~ 
2023-07-26 13:55:28 | 목영주
내가 왜 기뻐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전도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 ‘항상 기뻐하라’ 이어서 18절에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되어 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도 ‘항상 주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살다보면 기뻐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일도 있는데, 항상 기뻐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지만 어떻게 하면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항상’이다. 항상은 잘못된 명령일까? 항상 기뻐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과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하나님 뜻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오늘날 기쁨이라는 단어 대신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치 이 땅에 사는 목적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세뇌된 것이다. 뭘 추구해야 행복한가? 대다수 사람은 돈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 돈이 있어야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권력자는 더 많은 권력을 추구하려 한다. 행복이란 목표는 신기루와 같다. 잠시 행복했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이 행복이다. 기쁨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기쁨의 모조품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행복 대신 기뻐하라고 하신다.   인간이 무엇을 하면 온전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C.S. 루이스는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갈망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우리가 또 다른 어떤 세계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설명일 것이다."고 말했다.   플루트라는 악기는 비싼 것은 2억 원, 싼 것은 2만 원짜리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소리만 들어서는 어느 것이 비싸고 싼 것인지를 모른다. 연주 전문가들은 “중요한 것은 악기의 값이 아니라 연주하는 사람이다.”라고 한다.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나는 소리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악기들은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서 보관한다고 한다. 그러나 악기는 그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대가)의 손에 들렸을 때 소리가 잘 날뿐만 아니라 악기가 완벽하게 보존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값은 얼마인가? 연봉 3천만 원? 연봉 3억 원? 연봉 300억 원? 우리의 몸값은 예수님의 몸값이다. 이런 값진 악기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악기를 가장 잘 망치는 지름길은 연주를 못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한다. 나(이규환)라는 이 악기를 가장 빨리 망가뜨리는 길은 내가 가지고 노는 것이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값싼 욕망, 저급한 욕망대로 사는 것이다. ‘나’라는 악기를 만든 분에게 맡겨야 한다. 그분이 ‘나’라는 악기를 연주할 때 나오는 소리가 기쁨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13절에 ‘이제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것들을 말하는 것은 그들이 내 기쁨을 자기들 안에서 성취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서든 기쁨을 알게 하려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차고 넘칠 때 기쁨이 흘러나온다.   우리 주변에는 기쁨을 빼앗는 지뢰로 가득하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잘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기쁨을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조언하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인생 전부를 맡길 수 있다면 그래서 그분이 인생을 연주하기 시작한다면 흘러넘치는 소리가 기쁨으로 퍼져 나올 것이다. 우리에게 흘러넘치는 기쁨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밀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그것을 깨달았다. 그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는 존재로 빚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일러준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주변에 보면, 아무리 봐도 행복할 것이 없고 기쁠 것 같지 않는데 왜 저리 기쁜가? 항상 웃는 얼굴이고 심지어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왜 기뻐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진정한 전도가 아닐까? 여기에 전도의 힌트가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올리브나무에 수고의 산물이 없고 밭이 먹을 것을 내지 아니하며 우리에서 양 떼가 끊어지고 외양간에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를 기뻐하며내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리라.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니 그분께서 나의 발을 암사슴의 발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들에서 다니게 하시리라.’(하박국 3장 17-19절)
2023-07-26 12:41:20 | 이규환